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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은네디 오코라포르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5월
평점 :
600여페이지의 소설을 이렇게 순식간에 읽다니... 오랜만에 가져보는 소설의 몰입시간이었다.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소설은 처음이었고, 신화라기보다는 전승과 전통을 바탕으로 한 판타지소설도 처음이었고, 여성 주체적 판타지소설도 처음이었다. 현실이 아닌것을 알고 읽으면서도 현실처럼 와닿는 것은 그만큼 내가 아프리카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리라...아프리카의 현실은 내게 판타지소설만큼이나 비현실적이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또다시 깨달았다.
아프리카 출신 작가의 책으로 전에 읽었던 것이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라는 책이었는데, 우연히 저자의 테드 강연을 보고 책을 찾아보게 됐었다. 저자는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라 두 나라를 오가며 활동하는 작가로 이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은 아프리카를 너무 몰랐구나 였다. 아프리카도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 사는 곳이었다. 내전 없는 평화로운 지역이 있었고, 가난하지 않은 부자도 있었으며, 우거진 자연속에 사는 원주민말고 도시에 사는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을 책이 말하는 여성의 불평등한 입장보다 더 강하게 내상식을 건드렸었다.
'누가 죽음을 두려워 하는가' 이 소설의 작가(1974년생)도 나이지리아인 부모를 두고 미국에서 자라 두 나라를 오가며 성장한 여성이었다. (책 뒤 감사의 말에서 형제자매에서 인사를 전하며 그 형제자매 이름중에 응고지 라고 있었는데, 위에 언급한 책의 저자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1977년 생 이라서 혹시 자매이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ㅎㅎ) 미국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으며 조국 나이지리아에 방문할 때마다 알게되고 느끼게 됏던 아프리카의 분위기가 책속에 잘 스며들어 있었다.
아프리카는 부족이 다양하고 부족별로 전승되는 설화와 관습이 다양한 곳이다. 우거진 삼림이 있는가 하면 광막한 사막이 있는 곳이고, 태초의 인류가 발현된 곳인가 하면 여전히 원시적 삶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무지의 땅으로 보이지만 지혜의 땅이기도 한곳, 아프리카는 그 자체로 어쩌면 판타지적인 땅인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마법사에 대한 책이다. 여자 마법사.
인종에 대한 책이다. 흑인과 백인 그리고 그 사이의 혼혈아.
성적 자유에 대한 책이다. 여성의 할례전통과 성적 자기결정권.
문명에 대한 책이다. 버려진 컴퓨터와 세상을 바꾸는 마법, 혼재된 반문명
그리고 이 소설은 사랑과 모험에 대한 책이다. 그리고 혁명과 반혁명의 책이기도 하다.
그렇게 이 소설은 다양한 문제의식들을 아프리카 전통설화를 이야기하듯이 판타지문학으로 완성한다.
소설에는 크게 두 부족이 등장한다. 흑인부족 오케케족과 백인부족 누루족.
누루족은 오케케족을 침략하고 강간하여 혼혈아 '에우' 를 잉태시킨다. 폭력의 증거 에우
주인공 온예손우는 그렇게 태어난 에우 였고, 어머니의 기원을 담아 지은 이름의 뜻이 '누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였다.
온예손우는 에우소녀였다. 멸시받아야 하는 존재인 에우이고, 존중받지 못하는 존재인 여성이었다.
두 부족의 창조신화를 담은 '위대한 책'을 다시 쓰는 운명을 타고난 온예손우는 특별한 존재인만큼 험난한 여정을 걸어야 했다.
마법사가 됐어야할 남자 므위타 는 치료사가 되고, 마법사가 되기를 거부받았던 여자 온예손우는 마법사가 되었다. 둘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었고, '이푸나니아'라는 평생 딱 한번만 할 수 있는 말을 서로가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 둘 사이의 딸 '에누이그웨' 천국 이라는 뜻을 가진 그 이름의 아이는 태어났을까?
소설은 몰입력이 높았지만, 정서적으로 멀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특히 어린 여자아이들의 성생활과 옆에 누가 있건없건 자유스러운 성행위에 대한 인식은 조혼풍습이 있는 아프리카에서 받아들여지는 부분과 내가 받아들일수 있는 부분사이에서 큰 간극이 느껴졌다. 할례 라는 악습에 대한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표현되었을 수도 있지만...
창조설화가 있고, 갈등관계인 두 부족이 있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영웅적 인물이 있다는 어쩌면 익숙할 수 있는 플롯은 저자의 문장력에 의해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다가오면서 마법과 영적세계의 묘사가 함께하니 그야말로 판타지세상을 만들어냈다. 얼키고설키는 인물들간의 관계는, 한정적 인물들로 막장관계를 구사하는 드라마에 익숙한 우리에게 쉽게 이해되는 구조인것도 같다. 또한 가부장적 남성의 입장과 순종적 여성상을 표현하는 구절구절들은 서양보다는 동양이 더 잘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고 보면 아프리카문화는 우리네와 비슷한 감성을 더 많이 갖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누가 죽음을 두려워 하는가 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의 여정을 통해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죽음이후의 세계에서의 조우를 그리는 것또한 우리네 정서와 닿는 부분이었다. 이승에서 못다한 인연 저승에서라도 라는 식 이랄까
사람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두려워 한다고 한다. 죽음도 모르는 것이기에 두려워 하는 것이라면, 나의 죽음을 알게 될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줄어들 수 있을까? 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다시말해 죽음을 향해간다는 것인데, 죽음을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 온예손우는 두려움에 반항하고 죽음에 저항하면서 자신의 생을 이어간 것일까? 아니면 죽음을 살아간 것일까?
첫장을 시작한후 놓지 못한체 끝까지 읽어가고 나서도 쉽게 뒷장을 덮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 여운은 무엇때문일지 좀더 생각해봐야겠다...
재밌게 읽었고, 좋은 소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