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
필리프 J. 뒤부아 외 지음, 맹슬기 옮김 / 다른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하얀 표지에 새가 날아간다. 모양새가 왠지 철새인 것 같다. 깨끗하고 작은 이 책은 쉽게 읽히는 철학책이다.
두명의 공동저자는 조류학자이자 작가, 작가이자 기자로 둘다 환경보호 관련 글을 써온 분들인듯 하다.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새들을 관찰하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생각들은 인간의 생활을 반추하는 철학이 되어 책속에 담겼다.
육지동물과 다르게 하늘을 나는 새라는 동물은 인간에게 이룰 수 없는 것을 향한 존재적 의미를 늘 지녀왔다.
날고자 하는 욕망은 실현되었으나, 하늘을 정복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새들은 여전히 신비스러움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하늘을 보고 날아가는 새를 보며 드는 생각들은 몽상적이고 추상적인 그래서 철학적인 생각들이 되곤 하는 것 같다.
청소년시절 읽었던 '갈매의 꿈'이라는 책을 참 좋아했었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끌렸던 것 같다.
하늘을 나는 것을 통해 더 높이 날아오르는 꿈을 이루는 갈매기를 통해 새의 의미는 내게 이미 철학적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새들의 생태를 보며 인간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글들은 글의 제목만으로도 그 의미가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존재의 나약함을 받아들이는 시간 - 오리의 털갈이
누구도 혼자 희생하지 않는 - 멧비둘기 부부의 완벽한 연대
삶이 무감각한 회색빛일 때 - 굴뚝새의 놀라운 하루
잃어버린 직관을 찾아서 - 큰되부리도요와 뻐꾸기의 신비한 여행
가족이라는 복잡한 울타리 - 거위의 정신적 젖떼기
고양이에게 도전장을 - 진정한 싸움꾼, 유럽울새
의심과 의문을 모르는 - 멧비둘기 연인의 다정한 사랑
지금 이 순간의 강렬한 행복 - 암탉의 모래 목욕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예술가 - 극락조의 춤
자유로워질까, 길들여질까 - 새장으로 돌아온 카나리아
너무 영리한 진화 - 바위종다리 부부의 유별난 바람기
호기심이 살렸다 - 유럽울새의 대담함
다시, 푸른 바다의 부름 속으로 - 영원한 여행가, 극제비갈매기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 독수리의 불안한 식사
그저 행복을 경험할 뿐 - 절제를 모르는 개똥지빠귀
겸손이 없는 지성이란 - 까마기의 놀라운 지적 능력
선악의 저 편에 선 - 뻐꾸기의 번식과 도둑갈매기의 비상
두려움이 우리를 흔들 때 - 그림자에게 놀란 방울새
어쩌면 별로 진화하지 못한 - 칼레 방울새와 마르세유 방울새의 노랫소리
사랑, 그 최고의 전략 - 펭귄의 이성과 오리의 열정
이 치열한 미의 세계에서 - 아름다움으로 증명한 검은머리방울새의 유능함
죽는 법을, 그리고 사는 법을 배우다 -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제비
제목들에서 이미 뭔가 느낌이 온다. ㅎㅎㅎ
'이미 알려져 있더라도, 인간이 원하는 이미지와 맞지 않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는 모습도 있다; 는 문장에서 자연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들인데 인간이 원하는 것만 선택적으로 알아왔구나 싶어서 씁슬했다. 변화하는 자연, 밤하늘의 별, 사방에 펼쳐진 풍경을 읽을 줄 알던 인간의 능력이 거의 퇴화되었음을 철새를 보며 새삼 느끼게 되는 것 또한 씁쓸했다.
'가족이란 개념은 보통 복잡한 체제를 이루고 있는 고등 동물, 특히 젖을 먹여 새끼를 기르는 포유동물과 조류, 즉 새들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다' 는 문장에서 새삼 신기했다. 그러고 보니 어류도 파충류도 알만 낳아놓고 가버리면 부화하는 데로 새끼들이 알아서 사는 데, 조류는 알을 낳지만 포유류 처럼 육아를 한다. 새와 인간의 공통점이 있었다니~! 그런데 가장 큰 차이점이 더욱 와닿았다. '어떤 동물도 늙었을 때 자식에게 의지하지 않는 다는 사실' 포유류도 조류도 새끼가 자라면 야멸차다 싶게 독립을 시킨다. 다시 보지 않을 완전한 독립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인간은...
유럽문화는 곳곳에 로마문화의 잔재가 남아 있는데, 수탉이 프랑스의 상징이 된데 로마인들이 한몫했다고 한다. '로마인들은 수탉을 뜼하는 라틴어 갈루스 와 골족을 뜻하는 갈리아 , 이 두 단어의 발음이 비슷한 것으로 말장난을 했다. 사실 둘 사이에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로마인들은 이런 방식으로 골족을 놀려 먹었다.' 로마인이 놀려먹던 동물이 골족의 나라 프랑스의 상징이 되다니 역사의 이면엔 참 우스운 일화들이 많은 것 같다.
티티새의 일화는 사랑에 대한 것이었는데, '티티새는 마음에 드는 새를 향해 노래를 부르기 위해 온종일 고민하지 않는다. 호감을 표시해서 상대 마음에 들면 드는 거고, 아니면 아닌 것이다.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세상이 무너지진 않는다. 새들에게 노래는 그리고 사랑은 치밀하게 짜야 할 전략도 고민거리도 아니다' 우리에게는 솔직함과 자연스러움, 단순함이 필요하다. 사랑에 대해서도
모래목욕을 하는 암탉 일화에서 카르페디엠 이라는 유명한 문장이 나온다. '이 철학적 문장은 현재 에 존재하라는 권유이자, 불교에서의 지금여기 에 있으라는 격려이며, 심리학에서 조언하는 그날그날을 살아라 라는 의미다. 이는 과거의 추억에 젖어 있지 않고, 미래에 대한 걱정과 희망과도 멀어지는 일이다' 라는 구절이 참 좋았다. 현재는 오늘은 그래서 선물 present 인 것인지도... '새는 그렇게 살아 있다. 성실하게, 다급하게, 무언가를 찾고, 파헤치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하지만 그러고 나면 몇 시간이고 나무 아래에서 가만히 쉴줄도 안다. 그저 매 순간에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카르페디엠'
동물의 세계에는 먹이사슬, 먹이피라미드가 존재한다. 독수리는 새들의 왕이라고 불리지만 육식동물이 나타나는 순간 먹이를 지킬 수 없다. '계급은 하나의 게임일 뿐이다.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도달하기 위해 들이는 시간에는 끝이 없다. 그리고 그 시간은 꼭대기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보다 훨씬 더 길다' 동물도 인간도 계급의 저 꼭대기 에 오르려고 긴 시간을 들이지만, 그 꼭대기 날카로운 자리에서 먹이를 먹을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는 것을 오르고 있는 동안은 모르는 것이 매한가지 인가 보다.
'우리가 아는 진실은 하나다. 새는 행복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는 것. 새는 그저 행복을 경험할 뿐이다. 걱정하지 않을 줄 아는 것, 여기서 행복은 시작되는 게 아닐까?' 새들에겐 보험도 걱정인형도 필요없다. 인간에겐 수많은 보험과 매시간 걱정인형이 필요한것 같다. 하지만 지금여기 에 집중하면, 과거에 묻고 미래에 질문을 던지지 않고 현재를 느끼고 현재를 살면, 인간도 조금은 더 행복해지는 것일까?
'새의 뇌에는 그 어떤 포유동물보다 뇌 활동을 담당하는 시냅스가 두 배나 더 많다. 이 사실은 뇌의 크기가 지적 능력에 관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 동물의 지적 능력을 정의 내리기 위해 너무나 '인간적인' 기준을 사용하곤 했다. 이 기준은 동물의 지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를 읽고 보니 정말 그랬다. 동물을 인간의 기준으로 테스트 하면 결국 얼마나 인간과 닮았느냐를 확인할 뿐 그것이 그 동물의 지능을 확인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동물과 인간에겐 필요한 지능이 다른데도? 새대가리 라는 속어에는 새는 멍청하다는 편견이 있는건데, 알고보니 새들은 멍청하지 않았다. 시냅스가 더 많다지 않은가! 인간의 뇌가 아무리 커도 그 뇌를 다 활용하지 못한다는데, 조그만 뇌를 가졌어도 더 많이 활용한다면 과연 어느쪽 지능이 더 우수하다고 할 수 있는 걸까?
뻐꾸기와 도둑갈매기 일화를 보며 선과 악이 불변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수긍이 갔다. '선악이란 결국 언제나 변화하는 환경과 맥락의 영향을 받는 집단 또는 개인이 만들어낸 관념일 뿐이라는 사실도'
'조금이라도 다르게 노래를 부르는, 외지에서 온 새를 쫒아내는 방울새처럼 우리 인간의 마음 속에도 '낯선' 억양을 들으면 울리는 빨간불이 있다 / 그러고 보면 결국 인간도 방울새보다 크게 진화한 것 같지는 않다' 같은 위트있는 문장들도 맘에 든다.
제비의 죽음 일화에서 '자연은 고통이 오래가도록 두지 않는다. 자연 속에서 최후의 순간은 언제나 짧다. 그리고 육체적, 정신적 쇠퇴는 존재하지 않는다. 새들의 세계에서, 삶은 순리대로 흘러갈 뿐이다. /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죽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저 사는 법을 배우기만 하면 될 일이다' 라는 마지막 문장은 여운이 길었다. '새를, 모든 생명을 보호하고 사랑하기로 한 바로 그 순간부터야말로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고 사랑할 수 있다' 는 저자의 마지막 문장 또한 그랬다. 삶은 죽음을 향해 가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인간이 자연을 무시하고 살때 멸종은 내일이 될 것이며, 자연에서 배우는 자세를 유지할 때 인간의 삶도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닐까
철학책이라고는 하나 학문적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고 흔하다고 볼 수도 있는 생각들을, 그렇게 잊고 살던 것들을 새삼 깨우치게 해주는 책이라서 가볍게 읽기 좋았다. 순서 상관없이 어디든 펼쳐 읽어도 상관없는 책이었고, 가끔 조금씩 읽기에도 좋을 책이었다. 읽고 나면 하늘 한번 바라보고 새도 조금 눈여겨 보며 그 시간을 오롯이 나를 쉬게 하는 시간으로 만들어주는 책이었다. 바쁜 일상에 쉼표 한번 찍고 가기에 좋을 책이었다. 부담없이 읽히면서도 잔잔한 여운이 있는 책이었다. 내용이 착하고 예쁜 책이랄까 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