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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블루스
마이클 푸어 지음, 전행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7월
평점 :
<<망쳤으면 어때, 또 다음 생이 있는걸!
9,995번 환생한 남자의 '완벽한 인생을 사는 법'
"1만 번의 기회가 있다면 더 완벽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영혼을 지닌 남자와 그의 죽음을 따라다니는 여자가 벌이는 기상천외한 환생 모험>>
기묘한 소설이었다.
제목만 봤을때는 환생하고 또 환생하는 다양한 삶을 읽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이번 생이 끝나도 다음 생이 이어지는데 그 생은 전혀 다른 생으로, 생에서 생이 순차적으로 서술되지 않을까 싶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블르톤을 좋아한다.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환생' 이란 단어에 눈에 들어왔는데, 다 읽고 나니 '블루스' 라는 단어가 눈에 남는다. 블루스가 뭐지? 검색해봤다.
블루스는 미국흑인노예들의 노동요에서 발생된 음악의 한 종류였고, 따라서 음울한 분위기와 반복적 리듬이 특징적인, 삶의 애환이 녹아있는 음악장르였다.
작가가 표현한 환생의 삶들과 블루스는 딱 맞아떨어진다.
남자 주인공 마일로는 알고 있다. 자신이 지구상에서 가장 늙은 영혼이라는 것을.
<<죽음은 하나의 문이었다. 우린 그저 그것을 통과하고, 또 통과해갈 뿐이지만,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죽음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마일로는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책속에는 '보아' 라는 개념이 나온다. 고대의 영혼, 전생의 자아, 우주, 대령, 오버소울 등과 혼용해 쓰이는 표현이다. 뒤로 갈수록 오버소울이 주로 사용된다. 우주적인 영혼이랄까.. 균형의 감각 이랄까... 우주 자체라고나 할까... 뭐 그런...
이 '보아' 라는 개념에 저항하는 존재가 딱 둘 있는데, 마일로 와 수지 이다.
<<당연히 최고의 죽음은 즉사였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었다. 마일로는 오직 단 한 번 즉사했다.
누가 뭐라든 간에 인간은 흙에서 태어난 게 아니다. 인간은 물에서 태어났고,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강처럼 죽으면 다시 물로 돌아간다. 마일로는 이미 1만번 가까이 그래왔던 것처럼, 다시 물가에서 깨어났다.>>
소설에서 묘사되는 죽음은 기존의 상식들과 좀 다르다.
수천번을 죽었는데 즉사 가 한번뿐이었고, 즉사가 최고의 죽음이라는 것은, 죽음은 늘 고통스럽다는 말이다.
소설속에서 삶과 죽음은 늘 강과 함께 한다. 강에는 늘 새로운 생의 모습들이 들어 있다. 묘한 윤회관이다.
여하튼, 마일로는 항상 죽고 항상 환생하는데 그때마다 항상 함께 하는 여인이 수지 이고, 수지의 본래 이름은 '죽음' 이다.
<<사람들은 죽고 나면 조용히 사색하는 시간을 보내기로 되어 있었다. 전생에 얼마나 의미 있는, 혹은 의미 없는 삶을 살았는지 숙고해봐야 하기 때문이었다. 사후 세계에서 배당해주는 집에는 살아생전의 삶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전생과 사후세계가 연결되는, 작가가 묘사하는 사후세계는 서양적이지 않다. 사실 윤회라는 것도 동양적인 개념이긴 하다. 그래서인지 나중에 부처도 등장한다.
사후세계에 도착하면 항상 두 여성이 마일로를 찾아온다. 그녀들은 자신들을 이렇게 표현한다.<< "우린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는 거의 모든 것이란다" "우릴 우주의 조각쯤 된다고 생각하렴" >>그리고 두 여성은 마일로에게 다음 생은 좀 더 완벽하게 살아보라고 재촉한다.<< "우리는 네가 불의 조각이 되는 걸 돕기 위해 여기 있는 거야" "우리는 네가 환상을 통과해서 실제 우주로 들어갈 수 있게끔 도우려고 이곳에 온 거야" >>그리고 결정적인 이유는
<<"모든 인생이 네게 뭔가를 가르쳐줄 거야. 그 가르침을 통해 너는 배우고 성장해서 결국은 완벽해져야만 해. 그러기 위해 너는 수천 번의 삶을 살아야 할테고" "그게 우리가 하는 일이야" "네가 다음번에는 어떤 삶을 시도할지 결정할 수 있게끔 돕는 거">>
<<"한 영혼은 1만 번의 인생을 살 수 있어. 1만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거지. 그 이후에는 모든 게 무無로 돌아가"
"그러니까 네 경우에는... 상황을 바로잡을 오직 다섯 번의 삶이 남아 있다는 거지. 그 기회 동안 네가 완벽함을 성취한다면, 넌 황금빛 섬광 속에 있는 태양의 문을 지나쳐가서 위대한 실재의 일부가 되는 거야"
"오버소울 말이야" "모든 것이 되는 거지">>
마일로가 환생했다가 죽어서 사후세계로 돌아올 때마다 이 거대한 두 여성은 마일로에게 좀 더 잘 살았어야지 하고 질책한다. 그리고 마일로와 수지의 사이를 이해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인간-영혼은 우주-영혼과 사귀고 그러지 않아. 얘는 인간이야. 그리고 넌 죽음이라고, 세상에 맙소사.">>
그렇다. 수지의 원래 이름이 죽음이라는 것은 수지가 하는 일이 인간의 죽음을 가져오는 일, 그러니까 사신이나 저승사자 같은 뭐 그런 존재라는 거다. 그런데 마일로와 수지는 사랑하는 사이이다. 그것도 무려 8천년 동안.
마일로가 환생해서 변변찮게 죽어 사후세계로 돌아올때마 마일로는 늘 어떻게 살았어야 했는지 혼돈에 빠진다.
<<"대체 누가 완벽한 삶이 이상적이라고 한거야? 내가 나의 불완전한 삶을 좋아한다면 어떻게 되는 건데? 내말은 그들이 '불완전'이라고 말할 때, 그건 인간의 욕망에 관한 얘기잖아, 안그래? 예를 들어, 누군가가 당신을 사랑하기를 갈망하고, 근사한 직업이나 차를 갖기를 소망하고, 자식들이 대학에 가기를 바라고, 사람들이 당신을 존경하기를 바라는 것 같은 거. 그리고 고통스러운 일들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 예를 들어 어머니가 돌아가신다거나, 가난이나 위험한 환경 속에 살아간다거나, 당뇨를 앓게 된다거나, 또는 너구리가 우리 집 쓰레기통을 다 뒤져놓는다든가, 그런 걸 불완전하다고 하는 거잖아. 하지만 그게 바로 '살아 있음' 이라고.">>
9995번을 환생했던 우주에서 가장 현명한 인간의 영혼이 하는 말은 9995번의 환생을 통해 결국 무엇을 배우게 될지 암시한다.
9995번 보다 더 많은 죽음을 사후세계로 이끌었을 수지는 완벽함을 성취한 영혼의 죽음을 보여주며 마일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건 단지 희생만으로 되는 게 아니야, 마일로. 만약에 늑대가 덫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자기 다리를 물어뜯어서 잘라버린다면, 그것도 희생이야. 하지만 동시에 그건 절박함이기도 해. 그게 완벽함은 아니잖아. 완벽함에는 사랑이 있어야 해"
"내게도 사랑이 있어" 마일로가 항변했다. "당신과 사랑에 빠졌잖아"
"'사랑'과 사랑에 빠지는 게 항상 같은 건 아니야. '사랑에 빠지는 것'은 인간적인 거라고. 일종의 화학작용이야. '사랑'은 우주적이지. 나도 역시 당신을 사랑해">>
수지의 조언을 듣고도 마일로는 완벽한 삶을 살지 못했고, 거대한 두여성에게 또 잔소리를 듣는다. 그들은 말한다.
<<"네가 완벽한 삶을 사는 순간, 우리도 네게 완벽한 순간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야. 물론 그건 놀랍고, 기가 막히고, 불가능할 테지만, 그래도 거의 모든 사람이 9천 번의 생애 내에 그걸 이루어낸다고, 너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게 내가 아는 전부야">>
수지는 우주의 보아 에게 '죽음' 의 일에 대해 사표를 낸다. 그리고 사라진다.
마일로는 강가로 내려간다. 환생의 삶이 있는 강가로 간다.
<<그는 그것을 일종의 자살로 간주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당신이 8천년 동안 한 여자를 사랑했는데, 우주의 보아가 갑자기 당신과 그녀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라고 갈라놓는다면, 그건 정말 견디기 힘든 일 아니겠는가.
우주의 보아도 스스로 선택하지 않는다. 한쪽 끝에서 원인이 제거되면, 수동적인 균형 유지 과정이 진행되고, 반대편 끝에서 그 결과가 나타난다. >>
마일로가 죽어서 가는 사후세계에서의 삶?(사후세계에서 사는 것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지?;;;)을 포기하기 위해 지구에서의 이승에서의 삶을 선택하는 역설은 무엇이 정말 삶인지 헤깔리게 한다.
<<그녀는 매일 조금씩 더 투명해졌다. 젠장, 수지는 생각했다. 예상보다 더 빨리, 그녀는 완전히 사라질 터였다. 결국에는 우주도 그녀가 옳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터였다. 즉, 약간의 불균형은 그리 나쁜 게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마일로가 1만번 가까이 환생했다가 다시 죽어도 여전히 완벽함 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왜 완벽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약간의 불균형은 괜찮을 거라는 수지처럼. 그래서 마일로의 환생블루스는 수지를 위한 사랑의 노래가 된다.
마일로는 기원전으로 환생하기도 하고 현대에 살기도 하고 몇백년후 우주세계에 환생하기도 한다. 그런데 마일로가 환생해서 살아가는 삶은 대체로 그닥 행복해 보이진 않는다. 마일로는 환생해서도 늘 전생의 영혼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전생을 기억하기도 한다. 결국 새로운 생이 아닌 이어지는 생은 과연 환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수지가 사라지고 사후세계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마일로가 깨닫게 된 것은 스승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부처의 제자로 환생한다.
<<"난 전적으로 완벽해지는 걸 바라지는 않아요. 그렇게 되면 삶의 주기를 떠나게 되는 거니까요. 나는 오랫동안 완벽함에 저항해왔어요.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에요. 이제 완벽해질 필요가 있어요. 그걸 느낄 수 있어요. 난 우주의 일부가 되지 않으려고 저항해왔어요. 그런데 지금은 무엇보다 더 간절히 그것을 원해요">>
마일로가 부처의 제자가 되었을 때 부처의 나이는 80세 였고, 너무 늙었고, 죽음을 앞에 두고 있었다. 죽어가면서 부처는 말한다.
<<"행복을 찾아 지구 끝까지 헤매 다니지 마세요. 완벽함이란 여러분의 지금 현재 모습에 행복해하는 겁니다.">>
마일로는 실은... 부처를 독살했다. 아무도 모르게.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럴만한 상황이라고 믿었다.
그 독을 나눠먹은 마일로가 죽고 나서 깨어난 사후세계에서, 이번에 마일로가 깨어난 곳은 강 옆이 아니었다. 그는 깊은 우물 바닥에 앉아 있었다. 일종의 감방 같은 곳이었다. 마일로는 화가났다.
<<빌어먹을, 그에게는 아직 살아야 할 삶이 한 번 더 남아 있지 않은가?
"가만히 있어, 그는 지상에서 살았던 가장 위대한 영혼이야. 넌 그를 죽인 나쁜놈일 뿐이라고."
마일로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그녀 쪽으로 홱 돌아섰다.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줄 알았어!" 그가 소리 질렀다. "나는 스승님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인간이 상상해낼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일을 해낸...">>
하지만 거대한 그녀들은 마일로에게 모두 망쳐놨다고 으르렁거린다.
<<투명해져가는 수지를 만난 마일로는 마지막 한 번 남은 환생에 대해 생각하고, 결심한다.
"당신도 나와 함께 가는 거애" 그가 말했다.
"아니" 수지가 말했다. "그러니까, 당신 말은 내가 인간의 삶을... 내가 인간이 된다는 거야?"
"한 번의 삶이야. 제대로 살든 못 살든, 성공하든 실패하든, 어쨋든 우린 함께하게 될 테니까, 모두 갖든가, 아니면... 다 잃든가, 모 아니면 도 라고"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 앞의 잿빛 물속에는 수천의 가능한 생명이 있었다.
그녀가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난 그게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 수지가 큰 소리로 말했다.
"신과 비슷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신처럼 되는 거겠지." 마일로가 말했다.
"당신은 그게 싫다는 말처럼 들리네"
"난 태어나는 게 싫어. 지긋지긋해"
"다 갖느냐, 다 잃느냐!" 그녀가 말하고는 돌아서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마일로도 그녀 바로 뒤에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삶 속으로 뛰어들었다.>>
1만번째 환생에서 그들은 만나고 사랑한다. 그 시대는 형편없이 열악한 시대였고, 폭력아래 노에처럼 사는 우주인의 삶이었다. 마일로가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조너선 야야'의 우화는 1만번째 마일로의 삶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조너선 야야는 관 속에 누워서, 자신이 너무도 형편없는 삶에 안주해 살았던 것에 슬픔을 느꼈어요. 하지 않았던 모든 일 때문에 두려워하며 살았으니까요. 그런 식으로 겁만 집어먹고 살았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이냐고요. 다른 식으로 살았더라도, 어차피 그는 지금 똑같이 자기 무덤에 누워 있을 테니까요.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돌아보고 자랑스러워할 멋진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거였죠. 하지만 그러지 않았기에, 지금 그는 화장실 쓰레기 처리장의 기억을 안고 무덤 속에 누워 있었던 거에요.>>
마일로의 이야기는 노예처럼 살고 있던 사람들을 각성시켰다.
"우리는 이미 죽은 목숨이에요. 그 희생을 가치있게 만들어보자고요. 그래서 폭력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어낼 수 없는 세상과 태양계를 만들어봐요. 그런 세상에서는, 누군가 폭력을 써서 다른 사람을 강제하고 통제하려 한다면, 사람들은 절대로 그 폭력에 굴하지 않게 될 겁니다. 그러면 머지않아 누구도 타인을 억압하려 하지 않게 될 거에요."
폭력아래 굴종적인 삶은 삶이 아니라 죽음이었다. 마지막 환생에서의 삶은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에 대한 은유 같았다.
여하튼, 마일로와 수지는 함께 죽었다. 그리고 함께 태양의 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 책은 거의 600여페이지에 달하는 조금은 두꺼운 편에 속하는 소설이다.
마일로가 살아내는 다양한 삶들은 다채롭다. 그런데 다채롭게 폭력적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은 반복된다. 삶은 선택할 수 있는데 전생의 삶에 의해 조건적이기도 하다. 죽음은 또다른 삶?!을 사는 사후세계와 연결되는데 이또한 전생의 삶에 의해 조건적 환경을 부여받는다. 삶과 죽음의 반복인 윤회는 환생을 통해 나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
1만번의 환생 동안 마일로는 끊임없이 성찰하고 깨닫는데 그렇게 이 책은 깨달음의 책이 되기도 하고,
1만번의 환생 동안 그가 추구한 완벽함은 결국 사랑 이었는데, 그렇게 이 책은 로맨스 소설이 되기도 하다.
환생이 만들어낸 블루스는 그렇게 지금 삶속에 그냥 자연스럽게 반복되고 있는 것을 알려주며 소설은 마무리 된다... 블루스를 많이 들어본적은 없지만, 진한 블루스 한곡 길~게 들은 것 같은 기분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게 된다...
ps. 소설 속 환생이나 사후세계에 대한 묘사에서 플라톤이 생각났다. <국가> 의 9권에서 '에르신화' 나 <파이드로스> 라는 대화편에서 '혼' 에 대한 묘사등을 작가가 참고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