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노 사피엔스 경제학 - 스마트폰 신인류가 생존을 위해 알아야 할 최소한의 디지털 경제 원리
전승화 지음, 김정호 감수 / 새로운현재(메가스터디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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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신인류가 생존을 위해 알아야 할 최소한의 디지털 경제원리

ECONOMICS FOR PHONO SAPIENS  (표지 中)

 

이 책을 처음 봤을때 내가 초점을 둔 단어는 포노사피엔스 였다. 그야말로 스몸비 전성시대 아닌가.

그런데 읽고 나서야 이 책은 경제학에 방점을 찍은 책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무척 시각적인 책이었다. 그야말로 포노사피엔스들을 위한 경제학.

경제학 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일단 왠지 어렵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저녁에 눈을 감는 순간까지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가 경제와 관련된 행동들임에도 일상이 경제학적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스마트폰이 수족처럼 내몸과 일체가 된 것처럼 모든 행동들에 함께 하는 지금의 시대는 더욱 00학 이라는 단어들이 더욱 체감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그런 요즘 신인류들을 위해 글자보다 그림이 많고 글자로 풀어낸 내용도 시각적인 것으로 표현하는 노력을 많이 한듯 하다. 학창시절 배웠던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한 가격형성이라는 교과서적 경제학이 아닌 핸드폰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떻게 기업들이 이익을 창출해내는지 설명하려 애쓰고 있다. 변해가는 경제학의 기본원리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볼 것을 권유하고 있다.

저자는 [신인류인 포노 사피엔스가 살게 될 '올웨이스 온라인 Always Online 세상에 대한 새로운 경제학] 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변해가는 세상속의 기본원리들을 알아챈다는 것은 필요하다고 나도 생각한다.

현재의 우리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켜고 끔으로써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태를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다. 아직은 내 의지로 온/오프라인 상태를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다가올 미래는 '올웨이스 온라인' 세상이라고 한다.

'올웨이스 온라인' 세상이란 어떤 것일까?

그동안은 우리가 디지털 세상이라는 마법의 램프를 들고 다니며 나만의 지니를 원할 때만 불러내는 식이었다면, 미래는 온 세상에 보이지 않는 마법의 랜프가 퍼져 있어서 내가 원하지 않아도 '(누군가의)지니가 항상 나를 지켜보고 있는 세상' 이라고 하겠다. (p. 36)

더 이상은 나의 선택 여부에 따라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나뉘지 않으며, 물리적 세상과 디지털 세상을 구분하기도 매우 어려워진다. 우리가 사는 세상 자체가 '올웨이스 온라인'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 여러 나라에서 집중적으로 추진 중인 '스마트 시티'가 대표적인 예이다. 바로 이것이 현재와 미래를 가르는 분기점이며,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5G가 상용화되는 2020년이 그 시작점이 될 수 있다. (p. 38)

이미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온라인 서비스를 일상화한 우리에게 4G 와 5G 네트워크의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5G 는 우리 주변의 무수한 사물과 우리가 사는 환경 전체를 실시간으로 온라인화함으로써 우리의 삶 자체를 '올웨이스 온라인' 상태로 바꿀 수 있다. (p. 39)

 

5G 관련 광고가 나올 때마다 그냥 핸드폰 속도 이야기겠거니 했다. IOT 상용화 제품들이 광고 될때마다 그냥 그렇게 좋은 집만 좋은 가전만 밖에서도 핸드폰으로 껐다 켰다 하는 거겠거니 했다. 무엇이됐건 나와 전혀 상관없는 얘기들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와 상관없이 내 주변이 실시간 온라인 상태가 된다는 것은, 그 바탕이 5G 네트워크이고, 그 시작점이 2020년 이라는 것은 조금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러한 변화를 체감하는 것은 과연 언제쯤일까? 일반적으로 그동안 미미해 보이던 과학기술의 영향력이 현실에서의 주류 현상으로 갑자기 자리 잡게 되는 시점을 '티핑 포인트 Tipping Point' 라고 한다. (p. 44)

대부분의 티핑 포인트가 2027년 이전에 일어날 것으로 예측되었다. 어디까지나 추측이기는 하지만, 2027년이 되면 4차 산업혁멱이라고 부르던 미래의 변화가 우리 삶의 주류 현상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p. 46)

 

2020년에 5G 가 자리잡으면 2027년에는 올웨이스온라인 상태가 된다는 말이다. 헐

너무 빠르다고 그럴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기술이라는 것이 유행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빠르게 변화시켰는지 되돌아 생각해보면 이 예측도 현실가능성에 힘이 실린다. 삐삐에서 핸드폰으로 핸드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시기는 간격은 짧아졌고 범위는 넓어졌다. 하물며 기본 네트워크 베이스가 바뀐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한 기술과 기계들은 비약적으로 성장할 것이 당연지사다.

세대간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며, 이러한 차이는 우리가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을 바꾼다. 그리고 한 시대의 생산 및 소비 방식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많은 인구수를 차지하는 세대이다. (p. 57)

컨설팅 기업인 A.T.커니의 2017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7년에 전 세계 81억 명 인구 중 가장 큰 비중인 30%가량을 차지하는 세대는 다름 아닌 Z세대라고 한다. (p. 58)

가장 빨리 태어난 Z세대가 1998년생이라고 보면, 아직은 20세도 넘지 않은 미성년들이 대부분이다.

2027년에 전 세계 인구의 반 이상을 차지하게 될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는 어떤 특성을 띠고 있을까? 우선 두 세대는 공통적으로 어렸을 때부터 혹은 태어나면서부터 인터넷과 같은 디지털 기술을 경험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이다. 차이가 있다면 밀레니얼 세대는 (X세대와 마찬가지로)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모두 경험한 세대인 데 비해

Z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과 함께 자라온 세대' 라는 것이다. 외국어를 익힐 때도 언제부터 해당 외국어의 환경에 노출되었는지에 따라 큰 차이가 나타나듯 디지털 활용에서도 Z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차원이 다르다. (p. 59)

'90년대생' 뒤에는 본격적인 Z세대라고 할 수 있는 '2000년대생'이 올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그들이 주는 변화와 충격을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이제 곧 그들이 우리 시대의 경제 방식을 좌지우지 하는 다수의 생산자이자 소비자가 될 테니 말이다. (p. 65)

 

인간이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시대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요즘은 패스트푸드 나 카페, 식당등에 가면 주문받는 직원 대신 키오스크 기계를 둔 곳이 늘고 있다. 나도 그 기계를 처음 사용할 땐 등에 식은땀이 흐를만큼 낯설고 긴장되고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쩔쩔매고 있는 내 뒤에 초등학생들은 자기 차례가 되자 별거아니라는 듯 툭툭 터치하면서 친구들과 메뉴선택의 즐거움을 수다로 풀고 있었다. 그런 경험 한두번 뒤 익숙해진 나는 어느날 키오스크 앞에서 쩔쩔매는 할머니를 도와드리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기계에 적응하는 속도보다 기계가 변화하는 속도가 더 빨라지면 나도 이런 모습이 되겠구나!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그림으로 보니 더욱 놀라웠다. 인터넷에서 단 '1분' 만에 일어나는 일들이란 정말 다시봐도 놀라운데 앞으로는 이런 일들이 어쩌면 1초에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의 학습능력을 좌우하는 디지털 데이터는 기하급수적으로 쌓여 이미 인간이 미처 처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간의 지능과 능력을 벗어난 '초지능'이란 결국 이런 것을 우려하는 말이다. '사람-사물-디지털'이 초연결된 미래 세상에서 무수한 센서와 디지털 기기, 그리고 그것들과 연결된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양산해내는 어마어마한 온라인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 말이다. 결국 이러한 초지능은 '올웨이스 온라인'으로 불릴 수 있는 '미래 세상을 통제하고 예측할 수 있는 힘'이다. (p. 135)

이러한 '초지능'을 가진 사람들은 누구인가? 저자는 인터넷 관련 사업에 투자하고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기업과, 그 기업들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국가 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한 개인으로서 거대 기업이나 국가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인가?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지금의 개인개인들은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이다. 예전 경제학 개념으로 보면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는 비교적 뚜렷한 경계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쌓여가는 데이터들의 중요성이 더해질수록 개인개인들의 중요성이 더해진다. 왜냐하면 그 데이터들의 생산주체가 개인들이기 때문에.

결국 미래 세상에서 가장 희소하고 가치 있는 자원은 '데이터'와 이를 만들어내고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의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 (p. 156)

기계화 되고 데이터화 되어갈 수록 중요해지는 것은 사람이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데이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사람뿐이다.

기계는 1+1=2 이라는 식의 데이터들만 만들어낼 수 있지만, 사람은 1+1=0 이라고도 1+1=1 이라고도 생각해 낼 수 있다. 상상력은 인간의 힘이다.

하지만 인간의 힘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지금의 경제원리와 기초개념들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인간의 가치를 인간이 찾아내려면 세상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저자는 변해가는 경제기초개념들을 자주 이렇게 도식화 하고 있는데, 정리가 한눈에 들어와서 보기 좋았다.

때론 너무 학문적이라 어렵다 싶을 때쯤 한페이지의 반이상을 채우는 이런 그림자료 들은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끝까지 읽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경제가 어쩌구 온라인이 어쩌고 생산이 어쩌구 여하튼 그래서 책읽는내내 떠오르는 질문, 그래서 급변하는 시대에 적응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저자는 차별화된 능력을 가지려면 평생학습 과 멀티태스킹 이 필요하다고 대답한다.

스펙보다는 능력, 평생벌이를 위한 꾸준한 평생학습,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멀티태스킹 이 가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우리에겐 이미 그러한 능력을 키우는데 필요한 장점들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희망을 심어준다.

이 책은 생산자가 읽으면 무엇을 생산해야 할지 힌트를 주고, 소비자가 읽으면 어떻게 소비해야 할지 힌트를 주는 책이다. 구세대가 읽으면 이렇게까지? 싶고 신세대가 읽으면 이게 뭔소리야 싶은 책이다. 하지만 어제 읽었다면 이해가 안되고 내일 읽었다면 이미 소용없을 책이다. 지금 오늘 현재에 읽어햐 할 책이다. 지나간 과거는 어쩔 수 없지만 다가올 미래는 현재에 따라 바꿀 수 있다. 희망적인 미래를 위해 알아두어야 할 경제상식으로 읽어둔다면 오늘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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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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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최진영은 '우리'라는 단어를 '불행의 연대로 이루어진 무리'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작가다. 삶이 무서워서 얼어붙은 사람에게 서슴없이 다가가서 짧은 칼날로 얼음을 깨뜨리는 작가다. 아마 최진영은 끝까지 우리 삶의 전부를 써낼 것이다. 그렇게 쓰는 사람으로서의 자신을 증명할 것이다. 이 모든 불행의 연대를 일인칭의 노래로 외우고 있을 것이다. - 황현진 소설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소설가였다.

'이제야 언니에게' 라는 제목을 이제야 / 언니에게 로 읽고 책을 시작했다.

다 읽고 나서

이제야-언니에게 라는 의미도 있음을 깨달았다.


이제야 는 과거의 어느 시점이기도 하고 소설속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다 읽고 나서

최진영 이라는 작가의 이름은 이제 잊을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


언니 라는 호칭은 사실 여성이 여성인 타인을 부를 때 자주 사용하는 호칭이다.

그래서 '이제야' 는 시간의 이름이자 소설속 화자의 이름이자 우리들 주변의 언니 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이제야 알게된 이제야의 아픔을 공유하는 언니에게 보내는 글이기도 하다.

그렇게 이제야 작가가 언니에게 말하는 글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말은 앞으로도 계속이어질 것임을 속삭이듯 강인하게 다짐하는 글이기도 하다.


"끔찍한 오늘을 찢어버리고 싶다."

2008년 7월 14일,

그날 이후로 제야의 모든 세상이 부서졌다.

소외된 자들을 끈기 있게 소설의 자리로 초청하는 작가 최진영

이제야 말할 수 있는, 끝낼 수 없고 끝나서는 안 되는 이야기 (표지 문구 中)


소설은 일기 형식으로 진행된다.

일기의 시점에 따라 어린이이기도 하고 소녀이기도 하고 아가씨이기도 한 제야의 속내를 읽다보면 그 내면에 함께 침잠해 들어간다.


제야에게는 그런 시간이 필요했다. 하루를 묻는 시간, 가만히 앉아서 글자에 일상을 가두는 시간이. 일어난 일을 나열하다보면 불분명하던 감정도 한군데로 고여 어떤 단어가 되었다. 엉켜 있던 생각을 정리하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결말에 닿기도 했다. 일기를 쓰면서 울기도 졸기도 했다. 미소 지을 때도 있었다. (p. 9)


소설의 첫장 부터 채 한페이지도 넘기기전에 제야가 어떤 성격인지 느껴졌다.

하루를 묻는 시간, 글자에 일상을 가두는 시간이 필요한 제야는

작가의 한 단면이자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읽는 이로 하여금 글자가 아닌 마음으로 언어를 전달받게 하고 있었다.


내게 모든 걸 떠밀고 나를 없애버리고 있다. 지금의 나를 쓰레기로 만들어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다 나를 위해서라고, 내 미래를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찢어버리고 싶은 건 내가 아니다. 그런데 내가 찢어지고 있다. (p. 49)

어째서 내가 변명을 하나. 변명은 가해자가 하는 것 아닌가. 당신들에게 나는 가해자인가. 나는 부끄럽지 않다. 그건 내 감정이 아니다. 내겐 아무 잘못이 없다. 아무 잘못이 없다. (p. 51)

찢을 수 없다. 찢으면 안 된다. 찢어버리면 지금의 나를 설명할 수 없다. 지금은 중요하다. 아름다운 과거보다 중요하다. 더 나은 미래보다 중요하다. 지금 나는 살아 있다. 그러니 다음이 있다. 내게도 다음이 있을 것이다. (p. 84)


성폭력 피해자들은 그들을 그렇게 부르는 것을 거부한다고 한다. 그들은 피해자가 아니다. 생존자다.

피해자는 피해를 해결하면 끝나는 거지만, 생존자는 그렇지 않다.

살아가는 내내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생존 그 자체를 위해 온힘을 다해야 하는, 그렇게 살아내야 하는, 그래서 살아남은, 그런 생존자다.


노력해야 해. 이모가 단호하게 말했다. 사람은 노력해야 해. 소중한 존재에 대해서는 특히 더 그래야 해.

노력은 힘든 거잖아요. 제야가 중얼거렸다.

마음을 쓰는 거야. 억지로 하는 게 아니야. 좋은 것을 위해 애를 쓰는 거지. (p. 164)

그는 나를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다. 기만하는 편이 훨씬 쉬우니까. 그는 쉬운 인생을 살 것이다. 나는 여태 애썼다. 다시 애쓸 것이다. 나는 애쓰는 사람이 될 것이다. 절대로, 그와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다. (p. 217)

난 선택했어. 그것을 비밀로 두지 않겠다고. 설명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도망치거나 숨는 대신 말하겠다고. 고통스럽겠지. 오해받을 거야. 어떤 사람들은 나를 이상하게 보겠지. 내가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를 폭력이라고 말할지도 몰라. 근데 말하지 않아도 마찬가지야. 난 고통스러울 테고 오해받을 거야. (p. 226)


[ 나는 어린 여자애여서 무시당했다가 젊은 여자여서 의심받고 늙은 여자여서 무시당하게 될 거야]

라는 제야의 말은 부정하고 싶지만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여지껏 그래왔다는 것을.

그래서 제야의 선택은 정말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것이라는 걸 우리는 알 수 있다. 여태껏 그런 선택을 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읽을 수록 마음 아프고 때로는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현실이었지만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제야의 마음을 들여다 본 순간부터 제야가 어떻게 살아남을지 너무 걱정되서 단숨에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제야보다 어른된 사람으로서

미안했다.


비록 소설속 인물일지라도 강릉이모 같은 어른이 제야 옆에 있어서 고마웠다.

내가 제야의 당숙모같은 쓰레기는 아니지만, 강릉이모 같은 어른으로 품어안을 수 있을지 반성했다.


제야가 상상했던 그 모든 복수의 방법들과 자책감에 빠져 고민했던 그 모든 죽음의 방법들은 낯설지 않았다.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고 뉴스를 들었을 때

그 가해자들에게 나는 속으로 그 모든 복수의 방법들을 상상하고

그 생존자들에게 나는 속으로 그 모든 죽음의 방법들이 염려스러웠다.

그래서 제야의 선택이 대견스러웠다. 존경스러웠다. 잔잔한 물결이 파도보다 더 크게 마음을 치는 느낌이었다.


작년에 강화길 작가의 '다른 사람' 이라는 소설을 읽었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여성들도 제야와 비슷한 경험을 했지만 제야와 다른 선택을 했다.

그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했던 그녀들의 선택보다 온전한 자신이길 바란 제야의 선택이 정말 빛난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야 언니에게

살아내줘서 고마워

라고 말하고 싶다. 응원하고 지지한다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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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읽는 서양철학 - 쉽게 읽고 깊게 사유하는 지혜로운 시간 하룻밤 시리즈
토마스 아키나리 지음, 오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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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고 깊게 사유하는 지혜로운 시간

소크라테스부터 니체, 사르트르와 들뢰즈, 마르크스까지

생각의 폭을 넓히는 19가지 철학적 통찰

일상을 더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생각의 실마리들 (표지문구 中)

 

 

표지가 참 예쁘면서 멋있다.

RHK코리아 출판사의 책들은 표지가 마음에 드는 책들이 많았다.

이 책은 표지가 일단 합격이었다. ㅎㅎ

이 책은 19장에 걸쳐 31명의 학자들에 대한 철학적 개념을 개략적으로 정리해주는 책이다.

한권으로 방대한 분야의 철학을 다루는 만큼 핵심포인트만 콕콕 집어놓았다고도 볼 수 있다.

이 책의 목적은 단순합니다. 깊게 고민할 때 그 고민을 잘 살필 수 있는 거울, 해결할 수 있는 도구 같은 철학을 당신에게 제시하는 것입니다. (p. 6)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철학책과 실용서의 중간즈음에 위치한 책이다.

서양철학사의 흐름에 따라 순서대로 배치했지만, 중간중간 아무데나 읽어도 괜찮을 정도의 간략한 내용들로서, 해당 철학사상의 배경이나 깊이와 무관하게 어떤 철학자가 어떤 개념을 제시했었는지 정도의 파악으로 일상에서의 생각툴로 적용시켜 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 주위에 '그런 일은 절대 용납할 수 없어'라며 젊은이를 야단치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는 없는가? 사실 그리스 시대에도 '사람은 다 제각각이라는 생각은 좋지 않아'라고 청소년들에게 설교를 하고 다니는 어른이 있었다. 바로 소크라테스였다. (p. 20)

한밤 중 아슬아슬하게 막차를 타면 술이 거하게 취한 아저씨가 사람들에게 다가와서 잘 알아듣지도 못할 설교를 해대는 장면을 가끔 볼 수 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겠지만, 소클테스 역시 청년들을 상대로 정의는 무엇인지, 선이라는 것은 어떤 건지 적극적으로 자신의 질문을 쏟아내듯 물어보곤 했다. (p. 21)

 

서양철학의 시작은 대부분 소크라테스에서 시작한다. 이 책 또한 그러하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를 이런 모습으로 등장시키는 것은 좀 아닌것 같다.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은 유명하지만 쓸데없이 참견하고 다니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소크라테스는 그에게 배우러 오는 청년들에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스스로 깨닫게 한것이지 아무나 붙잡고 설교한 것은 아니었다.

'악법도 법이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내려진 독약을 마신다. 민주정의 폭정으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소크라테스를 본 플라톤은 정치가가 되려던 꿈을 접고 사상가가 된다. (p. 27)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 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 말에 대한 에피소드는 가장 잘못 알려진 에피소드 중 하나다.

소크라테스의 죽음 관련해서는 제자인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론' 이라는 책을 통해 알려졌는데, 소크라테스가 모함을 받고 재판을 통해 독약을 선고받아 그것을 마시고 죽게 된것은 맞다. 하지만, 악법도 법이다 라며 독약을 마신 것은 아니다. 자신이 처한 당시 아테네의 정치 상황을 고려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하는 행동에 대한 영향력을 고려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철학적 삶의 모습을 고려했을때 가장 적당하다고 내린 행동이 도망가지 않고 독약을 스스로 마시기로 결정한 것이지 악법도 법이라고 악법을 인정해서 내린 행동이 아니었다. 이 부분은 해당 책을 읽어보면 더욱 정확히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읽어봤던 책이라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플라톤의 사상에는 철학의 모든 것이 있다고 일컬어지고 있을 정도로 그 분량이 방대하다. (p. 40)

서양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주석에 불과하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서양철학은 플라톤 철학에서 거의 갈라져 나왔다고 불 수 있다. 이 플라톤 철학을 연구하는 학회와 학회지가 있는데 그 대부분의 구독자들이 일본학자들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일본은 근대시대 서양학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연구했다. 플라톤 철학에 정통한 일본이 얼마나 방대하게 연구했을지 짐작도 안 가지만, 수많은 세계적 과학자는 배출하면서 왜 세계적 철학자는 없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누구보다도 실천철학에 대해 열심히 분석하고 설명했지만, 행동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사유하며 영혼만 움직이는 것을 가장 중요한 행복으로 봤다. 그는 인간의 행복을 철학의 핵심으로 두고, 모든 실천과 사유는 행복으로 향한다고 강조했다. (p. 47)

고대부터 철학의 목적은 결국 행복하게 사는 법을 찾는 것이었다.

행복으로 향하는 길을 알려주는 네비게이션은 곧 종교에서 먼저 알려주게 된다.

저자는 구약을 이야기하면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그리고 카톨릭의 기원을 말한다. 그런데 이슬람교의 시작도 구약이다. 왜 빼놓았을까...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두 사람은 신플라톤주의자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그리스도교와 융합시킴으로써 이 문제를 극복했다. (p. 68)

9세기부터 15세기 동안의 중세 그리스도교 철학을 스콜라 철학이라 한다. 좁은 범위에서는 그리스도교 내부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말하지만, 그리스도교 교의를 이성의 힘으로 논증하고 체계화하는 대대적인 과정에서 탄생했다. (p. 73)

 

중세 종교적 사상의 힘이 막강했다고는 하나 시간이 흐를 수록 (모든 권력이 그러하듯이) 약해졌고, 이것은 철학의 부활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맹목적인 신에 대한 믿음에서 이성적 사고로의 변화는 몇 백년 만에 이루어낸 중세시대 나름의 성과였다. 중세 이후 근대에 들어서면서 철학자들은 본격적으로 신을 파헤치게 된다.

데카르트는 논리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해냈다. 이를 인성론적 증명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신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주관과 객관은 일치하게 된다.

논리적으로 파고들어 생각하다 보면 결국은 하나님께로 귀결할 수밖에 없다. (p. 94)

 

문장에서 느껴지는 종교의 향기...

뒤늦게 저자의 이력을 다시 봤다. 일본인의 이름이 토마스!!! 조치대학 신학부를 나왔다는데 조치대학은 소피아대학의 일본명칭으로 예수회에서 세운 대학이다. 철학자로서가 아닌 신학자로서 철학을 공부하고 책을 쓴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로크의 막대한 업적은 다 소개되지 않은 상태다. 이제부터는 경험론의 두 번째 인물인 버클리의 주장을 살펴보겠다. (p. 122)

경험론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로크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로크의 이론은 '인격' 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인격을 중심에 두기 때문에 신을 부정한다. 저자의 이력이 다시금 생각이 안날수가 없었다.

일본은 '신도'라는 전통종교를 인구의 90% 이상이 믿는 나라다. ( 하나의 종교에 이정도의 퍼센트가 나오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 기원전에 시작된 애니미즘적 종교를 계속적으로 신봉해 온것이 일본 특유의 단결력이 나오게 된 힘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근대시대 다른 서양학문은 다 빠른 시간에 흡수되고 발달했어도 종교만큼은 선교사들이 발도 못붙이고 나왔던 곳이 일본이다. 그런 일본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철학을 공부한 저자의 종교에 대한 믿음은 소수이기에 한층 더 강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헤겔의 변증법을 통해 정신이 발전해나가면 최종적으로 외계에는 정신이 대립하는 것이 없어진다. 이때 정신은 절대의 자유를 획득하고 '절대정신'이 되어 절대자를 파악하게 된다. 절대정신이 자아를 자각하면서 자기실현의 과정을 겪으며 이루려는 목적은 '자유'다. 역사의 주역은 정신이고, 정신의 본질은 자유다. (p. 153)

나폴레옹이 혜성처럼 등장했을 때, 헤겔이 나폴레옹을 보고 절대정신이 나타났다고 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철학사가 아니라 철학실용서로 씌여진 책이므로 철학사적 에피소드는 뺄 수도 있지만, 나폴레옹 에피소드는 워낙 유명한데다, 철학을 도구적으로 잘못 사용한 사례도 되기 때문에 저자가 언급하지 않은 것에 대해 조금 의아스럽다.

'지금 나는 불행하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 현실은 거짓이고, 피안이 바로 참 세상이다' 니체는 이러한 사고를 데카당스 라 불렀다. 특히 유럽의 역사를 지배한 그리스도교가 이러한 전도된 해석을 허용한 것을 보고 그는 그리스도교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p. 176)

니체는 이처럼 가치가 역전된 원인은 오로지 증오나 복수심, 즉 로상티망에 있다고 했다. 약자가 세상의 불평등한 현실에서 강자를 증오하고, 그 결과 가치의 전도를 꾀하며 상상의 세계에서 이기려고 한다. 그것은 원한, 비뚤어진 생각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처럼 인간의 내연기관인 '힘에의 의지'가 르상티망에 의해 비뚤어지면 '세상이 나쁘다, 진실은 이렇지 않을 것이다' 라는 불평이 터져나온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 불평이 고도로 발달한 것이 그리스도교이고 지금까지의 철학이었다는 결론이 된다. (p. 177)

괴로운 인생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이것이 인생이었단 말인가, 좋아. 다시 한번' 하고 더 이상 스스로의 르상티망을 터뜨리는 것을 그만두고 말이다. (p. 186)

 

저자는 철학의 실용적 도구화를 추구하려다 보니 종종 해당 철학자의 개념을 이용하며 이렇게 생각해보라고 조언한다.

그렇게 니체의 기독교비판과 허무주의를 가뿐하게 '재도전 의지' 로 넘겨 버린다.

프로이트 관련해서 꽤 길게 설명하고 있는데, 사실 프로이트는 철학자가 아니다. 대부분 심리학서에 등장하는데... 무의식의 발견과 정신분석은 분명 커다란 의미가 가치가 있는 학문이지만 철학적으로는... 글쎄...

후설의 현상학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 대신, 이쯤에서 그의 제자인 하이데거의 사상을 살펴보겠다. 하이데거는 후설의 현상학에서 전혀 새로운 노선을 개척한 20세기 최대의 철학자 중 한명으로도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의 사상은 좀 더 어렵다. 한숨 돌리고나서 도전해보자. (p. 212)

13장 존재와 현상학에서는 후설과 하이데거를 소개한다. 하지만 하이데거 는 나치 조력 사실이 들어나면서 철학계에서 거의 배제되고 있는 인물이다. 최근에 나오는 철학책일수록 하이데거 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런데 저자는 하이데거의 철학을 꽤 비중있게 설명한다. 나치 독일과 일본이 같은 입장이라서일까...

살아 있는 자신에게 '존재'를 되돌려 보자고 하이데거는 생각했다. 본래 세계는 자신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하이데거는 지금까지의 근대적 세계관을 버리고 스스로를 기점으로 하여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재음미하고자 했다. (p. 215)

하이데거는 시간을 살아가는 현존재가 미래에는 이미 어떤 가능성도 없는, 궁극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요컨대 그 가능성의 끝은 죽는 것이다.

죽음을 자각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존재 전체를 파악할 수 있다. (p. 222)

 

하이데거가 나치에 협력했기 때문에 비판받은 것이 가장 크지만 철학적으로도 비판받을 지점이 많기 때문에 현대철학에서 제외되고 있는 거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오로지 개인적 고뇌의 과정이자 그 끝은 죽음이다. 머리싸매고 생각하고 생각한 철학적 결론이 삶은 죽음을 향해가는 거라는, 철학은 결국 노답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저자는 하이데거를 가치있게 다루려 한다. 저자가 일본인이라는 것을 까먹을래야 까먹을 수가 없다.;;;

저자는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부터 슬슬 신나는 것이 느껴진다.

세계는 논리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세계의 한계는 논리의 한계이기도 하다.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이야기할 수도 없다. '운명은 있는 걸까' '진실한 사랑이란 뭘까' '하나님은 어째서 세계를 구원해 주지 않는 걸까' '무엇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가' '정의란 무엇일까' '인간은 죽으면 어떻게 될까' ...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정해진 대답은 바로 이렇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만 한다" (p. 245)

비트겐슈타인의 출현으로 인해 철학의 중심 문제는 '인식'에서 '언어'로 옮겨 갔다. 이것을 언어론적 전회라고 부른다. 이렇게 언어 분석이 철학의 중심 과제라는 선언이 이루어졌다. (p. 251)

세계는 언어였다. 언어가 늘면 세계가 확장된다. 그렇다면 언어와 언어의 관계를 분석하면 세계의 구조를 알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철학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었다. (p. 260)

 

신에 대한 논쟁이 전혀 없는 철학이 되어갈 수록 저자는 열심히 설명한다. 인식에서 언어로 철학의 시선이 옮겨간 순간 저자는 철학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아주 가뿐한 기분이 된것이 책장너머로 전해져 오는건 나만의 느낌적인느낌인걸까...

사회주의 체제에서 멈춘 소련의 붕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마르크스의 사상은 이론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나 사회가 필요로 하는 물자의 생산양식이라는 측면에서 역사를 과학적으로 파악하는 관점을 보여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마르크스의 공적은 컸다고 할 수 있다. (p. 278)

유럽에서 극심했던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우리나라를 두쪽으로 갈라놓았던 이념전쟁은, 일본에서는 없었다.

일본은 군국주의에서 바로 근대와 현대로 성장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성은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윤에 내포된 불합리성과 착취의 개념을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이 철학은(후기 구조주의) 오늘날 철학의 주류이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철학'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을 조금만 알면 이상하게도 기운이 난다. 얼핏 생각하기에 가장 쓸모 있을 것 같은 이 철학이 일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에 가장 잘 맞아떨어진다. (p. 285)

결론은 이렇다. 지금까지는 대화언어, 그리고 그로 인해 자기 내면의 진짜 모습을 확인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며 에크리튀르(문자언어)는 보잘 것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사실은 에크뤼튀르가 어떤 언어들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 있다는 것이다. (p. 288)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하는 이상적인 모습은 스키조(동일성을 고집하지 않고 욕망의 다양성을 실현하는 방식)에 머물면서 파라노(동일성을 고집하는 경향을 가진 인간)는 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삶을 그들은 노마드 라 불렀다.

노마드는 자기동일적인 것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방기한다. 그들은 닫힌 것, 굳어진 것을 잇달아 파괴하고 '도주'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한다. '도주'는 사회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욕망들을 하나의 목적으로 모으지 않고 자유롭게 희롱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다 같이 하나로 뭉쳐서 열심히 하자' 따위의 상황은 일어날 수 없다. (p. 298)

 

저자가 반겨하는 후기구조주의 철학은 간단히 말하면 각자도생 이다. 하지만 가장 잘 뭉쳐있는 민족이 일본인들 아니던가?

프래그머티즘이라는, 미국에서 탄생한 철학이 있다. 실용주의로도 불리는 이 철학은 우리에게는 그다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자체로는 감히 측량할 수 없는 힘을 간직하고 있다. 이 사상은 미국 번영의 정신적인 주춧돌로서 지금은 비즈니스 사회에서 활약하며 뜻깊은 인생을 보내는 사람들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p. 300)

1929에 시작된 세계 공황 때도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적극적인 연설을 통해 국민 모두로 하여금 희망을 갖게 했다. 미디어도 긍정적인 메시지를 흘려보내는 노력을 이어갔다. 실패해도 그것은 반성과 개선을 위한 좋은 기회일 뿐, 나중에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신념이야말로 미국의 근본정신이다. 그와 달리 최근 한국에서는 나라가 이대로 가면 엉망이 되고 말거라는 소극적인 메시지가 난무하고 있다. 좀 더 밝은 신념을 가질 필요가 있다. (p. 311)

 

민주주의의 상징적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까고 시작하더니 미국을 칭송하고 한국을 참견하면서 책은 끝을 맺는다.

철학적 사고의 툴을 제시해주려던 저자의 의도는 종교적 신념을 여기저기서 은근히 내비치며 사회에 참여하지 않는 (유목민처럼 방랑하는) 개인주의적 현대철학을 칭찬하면서 철학서와 실용서 사이의 어딘가를 그럭저럭 잘 여행했다는 만족감으로 마무리된다.

철학을 다룬 책은 쉽게 읽히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한명의 철학자, 하나의 이론에 대한 책한권이 아니라 이렇게 종합적으로 대략적으로 구성된 철학책들이 자주 나오고 많이 읽힌다.

지적 다양성 면에서야 당연히 장점을 가진 책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철학책들을 읽어온 나로서는 여기저기 조금씩 아쉬운 부분들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에 대한 이러한 시도를 한 책들이 꾸준히 나오고 더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철학은 삶의 지혜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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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성이 고민입니다 - 혼자이고 싶지만 외로운 과학자의
장대익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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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이고 싶지만 외로운 과학자의

"사회성이 고민입니다"

혼자이고 싶지만, 혼자이긴 싫은 '나'에게

'과학'이 건네는 쿨한 위로 (표지문구 中)


제목만 언뜻 보면 심리서처럼 보이는 이 책의 저자가 장대익 이라는 것을 안순간 호기심이 확 일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를 읽었을땐, 과학책이라기보다는 역사서이자 인문서로 읽었기에 마냥 감동스럽게 읽었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를 읽었을 땐, 나온지 오래된 책이긴 했어도 국내 우주과학발달이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었기에 설레임마저 갖고 읽었었다.

하지만 리처드 도킨스 의 '이기적 유전자' 를 읽었을 땐, 저자 본인도 책을 쓸 당시의 관점에서 지금은 많이 물러나있는 상태라고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40년 전의 그 책이 진화론 과학서중 여전히 국내에서 탑순위에 올라 있는 것을 보며 많이 아쉬웠었다.


그러다 장대익 교수의 '울트라 소셜' 을 읽었는데, 우리나라에도 이런 진화학자가 있었구나 싶어서 너무나 반가웠었다. 내친김에 다윈의 정원 을 비롯한 다윈시리즈 까지 읽어댔었다. 이제 국내 뇌과학자 하면 정재승이 떠오르듯이 국내 진화학자 하면 장대익이 떠오른다. 한 예능티비프로그램 덕분에 물리학자 하면 김상욱까지. 과학자들의 과학적 성과와는 별개로 대중에게 알려지는 이름은 다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학문을 대중에게 친숙하게 소개해주는 과학자들은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의 이름은 반가운 이름이 되었다.


저자는 사회성의 진화를 연구하는 진화학자 이다.

유인원에서 사람이 된 순간 진화는 끝난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가 않다.

유인원에서 어떻게 사람이 된건지 과거의 진화과정도 다 밝혀내지 못했지만, 사람이 되고 나서도 과거의 사람과 현재의 사람과 미래의 사람은 다 너무나 달라서 그것이 진화이든 변화이든 사람에 대한 연구는 완료될 수가 없다. 더구나 사람의 사회성은 워낙 다채로운 양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연구될 수 밖에 없는 분야인 것 같다.


'울트라 소셜' 에서 인간의 초사회성에 대한 진화학자로서의 생각들은 대개가 고개끄덕여지는 내용들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공막 에 대한 내용이 굉장히 새로웠다. 대개 눈 하면 눈동자에 관심을 가지기 마련인데, 흰자위에 숨어있는 진화의 흔적들이 무척 재미있었다. 그렇게 인간의 사회성에 대해 과학적 통찰중인 저자가, 사회성이 고민인 사람들에게 건네는 과학적 답변들은 의외로 심리적 위로가 되었다. 애매모호하게 뭉뚱그린 심리적 위로가 아니라 그야말로 과학적 팩트를 알고 나면 저절로 인정이 되서 그런걸까... 여하튼, 저자의 말처럼 객관성과 보편성 때문이다.


과학자의 사회성 고민 상담은 다른 상담과 무엇이 다를까요? 팩트만 나열하거나 줄줄 외우는 게 과학은 아닙니다. 과학은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절차를 거쳐 형성된 보편적 경험 지식입니다. 과학의 언어가 달콤하진 않지만 큰 위로의 힘이 있는 것은 바로 이 객관성과 보편성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느끼셨듯이, 과학은 여러분의 사회성 고민이 여러분만의 것이 아님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p. 184)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래서 나의 고민이 이상하지 않고 누구나 하는 고민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고민의 반은 해결된 기분이 든다. ㅎㅎ



1장 Relationship 관계에 대하여 - 관계 총량의 법칙과 사회적 뇌

"타인과 어울리기가 힘들어요. 사회성이 부족한 걸까요?"


2장 Loneliness 외로움에 대하여 - 의존과 배제의 함수

"홀로 버려진 느낌이 들어요. 나만 외로움을 타는 걸까요?"


3장 Reputation 평판에 대하여 - 관종의 심리학

"모두에게 칭찬받고 싶은 나, 정상인가요?"


4장 Competition 경쟁심에 대하여 - 경쟁과 배려의 상관관계

"꼭 타인과 경쟁해야 할까요? 이기는 것만이 답일까요?"


5장 Influence 영향에 대하여 - 네트워크의 마음

"귀가 너무 얇은 나, 왜 나는 남의 이야기에 흔들릴까요?"


6장 Empathy 공감에 대하여 - 공감의 반경과 관계의 미래

"인간은 AI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각 장의 첫페이지에 씌여진 질문들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봤음직한 질문들이다. 우리는 가끔 혹은 자주 타인과의 관계에서 많은 물음표를 만들어내며 살고 있다. 그 물음표가 호기심이 된다면 답을 찾으면 그뿐이지만, 그 물음표가 고민이 된다면 어떤 식으로든 위로가 필요하다. 저자가 내놓는 답변들은 충분히 과학적 위로가 되고 있었다. 그 위로가 과학적이기에 어느정도는 호기심적 답변도 될 수 있다. 이러튼저러튼 그래서 책은 술술 읽힌다.


문과생들은 글을 잘 쓰고 이과생들은 글을 잘 못쓴다는 편견을 여지없이 깨주는 저자와 같은 과학자들의 책은 늘 박수쳐주고 싶다.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과학적 지식을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은, 통합과 융합의 시대에 굉장히 우수한 능력이라 부럽기도 하지만, 그러한 과학자들의 책을 읽는 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충분한 기쁨이 된다. 앞으로도 과학자들의 인문학적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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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자의 시간 여행 -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특서 청소년 인문교양 6
서승우 지음 / 특별한서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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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서승우 교수와 무인자율주행차를 타고 떠나는

과거-현재-미래의 공학여행

1990 - 2020 - 2050 년이 만나다 (띠지문구 中)


저자는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로서 국내 자율주행 분야의 리더로 관련 연구 개발을 선도하고 있는 분이라고 한다.

저자의 아들이 성장하면서 던졌던 많은 질문들에 대해 저자가 해주었던 대답들이 차곡차곡 쌓여 이 책의 개요를 제공했고, 저자 또한 학부생들의 인기 멘토이자 중학생 아들의 부모로서 공학자란 무엇인지 청소년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공학자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 알려주고, 저자가 30년 넘게 연구해 온고 있는 공학과 기술이 사회와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설명해주고 하는 저자의 바람은 30년 간격의 시간여행을 통해 설명되어 진다.

사실 시간여행이라고 하기엔 소설적 상황이 충분치 않긴 하다.

어떻게 시간여행을 했고 왜 그러한 인연이 이어진건지 그리고 이후의 시간여행은 또 이루어질지, 아니 사실 시간여행이긴 한건지 소설적 줄거리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내용들을 좀더 친숙하게 표현해보고자 소설적 장치를 살짝 이용한 것 뿐이다.

따라서 재미난 시간여행 소설로 기대하고 읽으면 좀 곤란하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공학자에 대한 직업소개서를 좀 쉽고 편하게 읽는다고 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과학은 자연 현상을 이해하는 학문이지만 공학은 과학에서 발견한 원리를 인간을 위해 응용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러니까 자연의 힘을 연구하는 것은 과학자가 하고, 그 힘을 이용해서 인간 사회에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고 새로운 응용 분야를 개척하는 것은 공학자가 하는 거야. 과학자들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현상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는 것일까?' 하는 것을 고민하고, 공학자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물건이지만 이걸 어떻게 하면 현실에서 만들어낼 수 있을까?' 를 고민하는 거지. (p. 27)

공학자가 발명가들과 다른 점은 바로 경제성을 얼마나 고려하는가에 달려 있어. 세상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만들어내고 자신의 생각을 제품으로 실현해보고자 하는 의지는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팔릴 수 있는 물건을 누가 더 잘 만들어내는가라는 관점에서는 큰 차이가 나지. 발명가들은 제조와 판매 등에 대한 고민은 별로 하지 않고 아이디어 자체를 구현하는 데 관심을 더 집중하는 경우가 많거든. 반면 공학자들은 시장에서 팔아야 하는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현실적 문제들을 더 많이 고민하는 사람들이지. (p. 34)


과학자와 공학자의 구분, 공학자와 발명가의 구분은 이 책을 읽고서야 확실히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스런 부분이다. ㅎㅎ

저자가 자율주행차 전공이다 보니 공학의 발달과 미래사회의 모습은 자율주행차관련 부분들로 설명되어진다.

자율주행차의 윤리문제 관련해서는 아직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저자가 제시하는 미래상은 저자가 바라는 모습일거는 생각이 든다.

청소년들이 읽기에는 현재의 혼란을 주된 이야기거리로 삼기보다는 희망적인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며 자율주행차의 과거의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생각해보고, 보다 전문적이거나 세부적인 관련 문제들은 다른 책들을 통해 찾아나가는 것이 아마도 가장 바람직한 독후활동이 될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냈을때, 둘째 아들이 왜 형이 주인공인 책만 썼냐고 투덜대서 곧 둘째 아들이 주인공인 책을 쓰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공학자의 꿈을 꾸는 첫째 아들을 위한 이책에 이어 어떤 꿈을 꾸는 둘째아들을 위한 책이 나올지 궁금해진다.

자신의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는 공학자로서의 모습보다도, 자녀의 꿈을 이렇게 풀어내주는 아빠의 모습이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공학자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읽어봄직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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