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는 클라스 : 인문학 편 - 고전·철학·예술 차이나는 클라스 7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제작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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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을 성찰하기 위한 지식과 지혜를 찾아서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문명의 뿌리를 탐구하다

방송을 잘 안보다 보니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를 직접 본적은 없다. 하지만 주변에서 회자되는 강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늘 궁금하곤 했다. 그러다 이 시리즈의 일곱번째라는 이 책을 만났다. 양정무 김헌 등의 익숙한 필진과 아리스토텔레스, 중세, 그리스 신전, 신화 등 평소 관심있던 주제들이라 더욱 눈길이 갔다.

책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지속 가능한 문명을 만든 지식] 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중세의 문화, 그리스 신전의 건축, 지리의 힘 을 다루고, [삶의 지혜를 일깨우는 예술과 문학] 에서는 미술하는 인간, 신화의 권력, 단테의 신곡, 괴테의 작품세계를 다룬다. 그러니까 유럽 역사와 인문학의 토대를 이루는 기초적 주제들을 두루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글을 보면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대해 '이것은 모두 매미소리다'라고 한 부분이 있거든요. (p. 19)

플라톤은 수학과 기하학에 대한 피타고라스 학파의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완전한 진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있다고 확신하게 됐습니다. (p. 23)

큰 틀에서 플라톤의 철학이 기하학적이고 수학적이라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생물학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p. 28)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의 존재를 믿었지만 종교적 신, 인격적 신이 아니었습니다. 자연과 우주의 질서의 정점에 있는 최고의 존재를 신이라고 생각했어요. (p. 33)

서양고전과 철학, 역사 책을 읽으며 플라톤 저작들을 몇 권 읽었었다. 플라톤 저작을 읽을 땐 그게 그렇게 대단해 보이더니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설명을 읽고보니 아리스토텔레스가 더 엄청 대단해 보인다. 이데아론을 매미소리라고 치부하는 아리스토텔레스를 품어준 플라톤이 대인배이긴 했겠으나 다방면의 업적을 남긴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야말로 천재라 할 만했다. 뒤의 내용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주 소환되고 하는 걸보니 점점 더 이 고대인물에게 관심이 간다.

19세기 독일을 중심으로 한 계몽주의 사상가와 역사가들은 자신들의 성취를 자랑하기 위해 앞선 시대를 모조리 부정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중세 시대를 한마리도 둥클레 에포케(Dunkle Epoche), 즉 암흑의 시대, 암흑기라고 정의해버리죠. 일본 역사학자들이 이 말을 그대로 베껴 쓰면서 한국 역시 중세를 암흑기로 알게 된 것입니다. (p. 53)

식민사관이라고 할거까지 없겠지만 세계사 지식에 있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들은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상당히 많은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일본의 판단에 의해 세워진 세계사의 기준들이나 명칭들에 대해서.. '중세 천 년의 빛과 그림자' 라는 주제는 동일 제목의 책이 있을 정도로 중세를 대표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중세가 분명 암흑기적 요소가 많긴 하지만 그 시대에도 분명 다양한 발전이 있었다. 무엇보다 이슬람권에서의 발달이 두드러지는데 특히 인상적이었던 표현이, '흔히 동양에서는 '자 왈' 이라고 하면 응등 공자를 떠올리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서구 세계에서는 1255년 이후부터 책에 '철학자가 말하기를' 이라고 적혀 있으면 자연히 아리스토텔레스라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p. 83)' 였다. wow 여윽시 아리스토텔레스!

서양은 문명의 변혁기가 되면 항상 발전의 모델을 정합니다. 그게 서양 문명의 기본 속성이에요. 이상적인 모델을 정하고 모델의 좋은 점을 잘 찾아서 그것을 토대로 문명을 발전시켜가는 것이죠. 마침 그리스 영토로 들어갈 수 있게 된 시점과 유럽의 문명 변혁기가 우연히 맞아떨어지 거예요. (p. 94)

이슬람 세력 지배하에 있던 그리스땅이 유럽으로 회복되면서 귀족자제들의 '그랜드 투어'는 그리스지역까지 확대되었고 이에 '건축적 숭고미를 폐허로부터 찾은 것 (p. 101)' 이 그리스신전을 급부상하게 만든 요소였다. 그렇게 유럽의 모든 도시엔 그리스 신전화한 건물이 서게 되었는데 로마주의의 대표자 조반니 피라네시와 그리스주의의 대표자 빈켈만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또한 성화를 그리기 위한 벽이 중요했던 로마시대 건축물이 벽을 중요시 했다는 것과 기둥중심의 그리스건축물과의 대조도 재미있었다.

지금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지도는 영국식 지도입니다. 특히 제임스 쿡 이후 영국에서 제작된 세계 지도와 아주 유사하죠. 즉 영국이 가장 강성했던 19세기에 만든 지도를 21세기에도 쓰고 있는 셈입니다. (중략) 사실 굉장히 큰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유럽 중심의 세계관, 특히 영국의 제국주의적 야망이 담겨 있는 지도이기 때문이죠. (p. 158, 159) 우리가 그동안 영국식 지도에 주로 의존해 세계를 바라봤던 게 문제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한국사회전체가 서구 중심주의의 오염된 지리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왜곡된 지도를 사용해 온 것에 대해 반성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요? (p. 162) 실제로 6대주 라는 개념은 유럽 중심적인 사고에서 비롯한 지식입니다.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어 별도의 대륙으로 보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나요? (p. 163)

그렇다. 지도에서 대륙을 나누어야 한다면 유럽과 아시아는 하나의 대륙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그동안 왜 문제 삼지 않았을까... 우리가 서양인도 아닌데 말이다. 실제 크기는 영국과 한반도가 거의 비슷하다는데 우리는 왜 우리땅을 항상 작게만 여기는 것일까... 지리에 대한 지식은 힘이고 권력이 맞는 것 같다. 저자가 절절히 토로한 지리교육 부재의 아쉬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지리에 대해 새로운 것을 알게되어 기뻤는데, 1154년의 알 이드리시의 세계 지도에 신라가 표시되어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1402년 태종시대에 만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아프리카의 희망봉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 가장 놀라웠다. 포르투갈의 항해자가 희망봉을 발견한 것이 1488년 이라는데 조선시대의 지도가 더 먼저 그곳을 알고있었다니~! 그런데 이 지도가 우리에게 없을 뿐더러 연구도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고 하니... 이런... '어쩌면 한국 학계와 사회는 그동안 영국이 주입한 왜곡된 지리적 상상력의 식민지였을 수도 있습니다. (p. 167)' 라는 문장이 안타깝게 공감된다....

초기 인류에게 그림은 일종의 언어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같은 언어를 쓰게 되면 공동체적 지식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겠죠.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호모사피엔스는 그림을 그림으로써 서로 소통하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었고, 후대에 자신들의 경험을 전달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p. 191)

미술과 생존을 연결시키는 사고방식은 무척 흥미로웠다. 네안데르탈인의 벽화를 처음 봤는데 호모사피엔스의 그림과 비교하며 일종의 '언어'로서의 역할로 풀어내는 것을 보고 예전에 다른 책에서 호모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성대구조가 달라 언어의 구사능력에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집단사회에선 예나 지금이나 '소통'이 중요한 것을... 여하튼, 선사시대의 주먹도끼의 미학적 요소와 라스코 동굴벽화의 실제적 모습은 무척 인상깊었다.

한마디로 신화는 권력유지의 수단이자 권력 쟁취의 도구였죠. (p. 216)

특히 흥미로운 사실은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자신의 권력을 만들고 지켜나가기 위해 똑같은 신화를 활용했다는 겁니다. 바로 아킬레우스의 이야기가 포함된 트로이아 전쟁 신화입니다. (p. 220)

신화 속 이야기가 이미 역사 속에서 벌어진 걸 알고 있기에 '아, 모든 게 신의 뜻대로 실현된 것이구나' 라고 착각하게 되죠. 이런 것이 문학의 마법적 속성인 겁니다. 이런 식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까지도 이뤄질 거라는 환상을 갖게 만들죠. (p. 258)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과 아우구스투스황제의 권력에 대해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이소크라테스의 범그리스주의가 알렉산드로스에게 연결되고 그의 태몽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게된 것은 무척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또 등장하니, 이 책의 주인공을 뽑으라면 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 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여하튼, 신화와 역사를 교묘히 연결지은 고대인들의 이야기를 읽고나니 감탄하면서도 좀 씁쓸하다.

단테가 <생각하는 사람>의 모델이기도 해요. 그래서 작품의 원제가 <시인>이었어요. 로댕은 단테를 흠모해서 <신곡>을 탐독했고 작품을 창작할 때도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p. 263)

단테의 초상화를 남긴 보티첼리, 평생 단테를 연구하고 강의에 일명 '단테 학자'라 불린 보카치오도 있죠. 심지어 괴케는 '<신곡>은 인간의 손으로 만든 최고의 걸작'이라고 찬미했을 정도에요. (p. 264)

원제는 이탈리아어로 '라 코메디아 디 단테 알리깅리', 즉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라는 의미예요. (중략) 단테는 '코메디아'라는 단어에 우리가 전통적으로 생각하는 희극이라는 장르가 아니라 특별한 희미를 넣었어요. 단테가 쓴 편지글을 보면 '코메디아는 비참함에서 시작하지만, 행복으로 열매를 맺는 글' '나는 슬픈 시작에서 행복한 결말로 이루어진 그런 작품을 쓰겠다. 그래서 코메디아라고 부르겠다' 라는 대목이 등장합니다. (중략) 코메디아라는 용어에 그런 뜻을 담은 겁니다. (p. 275)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단테의 <신곡>은 그의 망명 생활기간동안 쓰여진 것이라고 한다. 단테가 계속 권력의 정점에 있었다면 우리는 그의 작품을 못봤을지도 ㅎㅎ 그러나저라나 <신곡>이라는 제목도 19세기 중반 일본작가가 붙인 것이라고 한다. 이때 일본작가가 단테의 희극 내지는 단테의 코메디 라고 이름붙이지 않았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려나 하는 웃픈 생각을 하면서도 원제의 의미가 얼마나 제대로 알려져 있을까 하는 생각에 또 씁쓸해진다. 여하튼 이 작품이 가장 신기하게 다가온 점은 내용보다도 '운율과 강제를 통해 노래처럼 읽히는 글로 썼다. (p. 276)' 는 것이었다. '방금 말한 운율 운용의 규칙이 <신곡>의 1만 4233행 전체에서 같은 형식으로 반복됩니다. 그뿐 아니라 1만 4233행 전체의 각 행을 11음절로 맞추기도 했어요. (p. 277)' 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긴 작품을 노래로 외우는 사람이 은근히 많다고;;; 피렌체어로 읽을 수 없는 나로서는 느낄 수 없겠지만 여하튼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호메로스가 생각났다. 그리고 만약 읽게 된다면 '연옥'에 좀더 관심이 갈것 같다. 그동안 없던 '연옥'개념을 만들어내면서 현실에서의 실용성(혹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한 것)을 얼마나 잘 종교화했는지 생각해봐야 겠다.

괴테의 작품은 평범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 320)

이전까지는 이성, 집안, 국가의 중대사가 중심이었다면, 괴테의 시대부터는 개인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까지 작품의 세계로 끌어들인 거예요. (p. 322)

괴테의 작품에 대한 새로운 배경지식을 얻은 것도 참 좋았는데 '괴테는 이 책(파우스트)이 출판되길 원치 않는 상태로 죽었어요. 그런데 그의 뜻과 달리 계속 출판됐고 덕분에 이렇게 여러분과 다양한 해석을 해볼수도 있었네요. (p. 336)' 라는 내용을 읽으며 괴테의 생각이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아우구스투스가 그토록 마음에 들어했던 <아이네이스>도 작가 본인은 출판을 원치 않았다던가... 허난설헌도 자신의 수많은 작품을 불태워달라고 했던가... 자신들의 작품을 남기지 않고 싶어한 작가들의 생각도 갑자기 궁금해지고...

여하튼, 아주 모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잘 알지도 못하는 인문학 분야들에 대해 쉽고 재밌게 배울 수 있어서 유익했던 책이었다. 이 시리즈의 '클라스' 가 좀 남다른것 같긴 하다. '차이나는 클라스' 인정~! ㅎㅎ

-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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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네시
수잔나 클라크 지음, 김해온 옮김 / 흐름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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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발하는, 꿈 같은 모험의 시간

당신을 아름답고 기이한 세계로 초대한다

'데뷔작으로 휴고상을 수상한 SF 천재작가의 16년만의 귀환' 이라는 홍보문구에 혹했다. SF 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데뷔작부터 천재작가소리를 들은 이의 작품이 무척 궁금했다. 휴고상과 SF 라는 단어에 초점을 두고 읽어선지 책을 몇장 읽지도 않았는데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휴고상에 대해 검색해봤다. 효고상은 과학소설과 환상문학에 주는 상이라고 나왔다. 아하... 이 작품은 SF나 과학소설이 아니라 '환상문학' 이었던 거다.

【 달이 북쪽 셋째 홀에 떴을 때 아홉째 현관에 들어가다 - 앨버트로스가 남서쪽 홀에 온 해 다섯째 달의 첫날 기록】 이라는 기묘한 시공간 개념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익숙해지는데 좀 시간이 걸렸다. 스스로를 '워낙 방대한 작업이어서 때로는 좀 아찔해지지만 과학자이자 탐험자로서 나는 세상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목격할 의무가 있다. (p. 21)' 며 홀들을 돌아다니고 기록하는 '나'의 시간들을 읽고 공간들을 상상하다보면 내 머릿속도 함께 아찔해지는 것이다.

'서쪽으로는 구백예순째 홀, 북쪽으로는 팔백아흔째 홀, 남쪽으로는 칠백예순여덟째 홀까지 가보았다. (p. 20)' 라는 공간과

'현재 살아 있는 사람은 나 자신 그리고 나머지 사람뿐 (p. 23)' 라는 등장인물

'피라네시. 그것이 그가 나를 부르는 이름이다. 이상한 일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것은 내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p. 25)' 라는 제목에 대한 의미까지 읽고나면 이 소설의 배경이 지구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지만 포인트는 그게 아니다. 내 이름이 아닌 것으로 불리면서도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나'의 독백을 읽어가면서 한 사람의 정신세계에 대해 얼만큼 공감하게 되는가, 거기에 '환상'의 포인트가 있었다.

이제까지 일지는 공책 아홉권을 채웠다. 이것이 열째 공책이다. 모두 번호가 붙어 있고 대부분은 기록이 담긴 날짜가 적혀 있다.

1번은 '2011년 십이월에서 2012년 유월까지' 라고 되어 있다. 2번은 '2012년 유월에서 2012년 십일월까지' 라고 되어 있다. 3번은 원래 '2012년 십일월'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언젠가 그 위에 줄을 긋고 '흐느끼고 울부짖던 열두째 달의 서른째 날에서 산호 홀을 발견한 해 일곱째 달의 넷째 날까지' 라고 고쳐져 있다. (p. 30)

그러니까 이 소설의 시공간은 SF적인 것이 아니었다. 2012년 십일월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 '나'의 시공간을 뒤바꿀만한 어떤 일이. 그래서 '흐느끼고 울부짖'을 만한 사건이.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공책은 열째 공책이라는 건 한권당 대략 6~7개월 정도 쓴것으로 보이니 현재시점은 5~6년이 지난 때라고 계산할 수 있다. 그러니까 2017년~2018년 정도. 환상문학을 이렇게 현실기준으로 계산하는 것이 걸맞지 않을수도 있지만 어쩔수 없다. 나는 그래야 이해가 되는 사람이다;;; 이렇게 계산하고 보니 이제 이 소설이 스릴러적으로 읽히기 시작한다. 이제 좀 호기심이 샘솟으려 한다. 환상문학이 어렵다면 나처럼 스릴러로 읽어도 될 작품인 것이다.

"오늘은 의식을 거행할 텐데, 자네가 여기 있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의식이란 예법에 따라 시행하는 마법인데, 나머지 사람은 그 방법으로 위대하고 은밀한 지식이 이 세상 어디에 붙잡혀 있든 거기서 풀려나 우리에게 오게 하려는 생각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의식을 네 번 거행했고 매번 조금씩 형식을 바꾸었다. (p. 68)

"헌데 여기엔 힘이 있는 게 하나도 없어. 살아 있는 것조차 아무것도 없잖아. 그냥 다 똑같은 황량한 방들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고 새똥으로 뒤덮여 부식되고 있는 조각상들만 가득하니" (p. 74)

'나머지 사람'은 피라네시와 화요일 금요일에 정기적으로 만나 대화를 나눈다. 때론 나머지사람이 의식을 거행하는데 피라네시는 네번 이라고 했지만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한번이 있었으므로 5번의 의식이 된다. 앞에서 시간계산했던 방식대로 추측하자면 '나머지 사람'은 일년에 한번정도 의식을 치루는 것 같다. '이 세상 어딘가에 '위대하고 은밀한 지식'이 있는데 그것을 발견하면 어마어마한 힘이 생긴다고 믿는다. (p. 24)' 그러니까 '나머지 사람'은 '위대한 지식' 과 '어마어마한 힘'을 갈구한다. 하지만 '집은 헤아릴 수 없이 아름답고, 무한히 자애롭다. (p. 19)' 라고 홀들을 생각하는 피라네시에 대비해 '황량한 방들' 과 '새똥'으로 바라보는 '나머지 사람'에겐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피라네시는 자신이 깨달은 것을 '나머지 사람'에게 말해주려고 하지만 '나머지 사람'은 무시한다.

"아 그럴게요! 신발만 있으면 아무 문제 없을 거예요. 세 시간 반이면 백아흔두째 홀에 도착할 거예요. 길어도 네 시간이면 돼요" (p. 80)

이백에 가까운 홀까지 가는데 네시간 정도라면 처음에 나왔던 구백예순째 홀까지는 20시간이 좀 안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환상문학을 읽으면서 '환상'을 공감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런식의 현실 계산이 정말 어쩔 수 없다;;; 내가 이해하는 방식이 이랬나 보다;;;) 그러니까 피라네시가 머물고 있는 공간은 하루이틀이면 다 둘러볼 수 있는, 조수간만의 차가 있는 파도가 치는, 각 홀마다 조각상들이 많은, 해안 동굴들의 집합체 라고 정리될 듯 하다. '미궁' 이다!

왜 집이 나머지 사람에게 훨씬 다양한 물건을 제공하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그에게는 침낭이니 신발이니 플라스틱 그릇이니 치즈 샌드위치, 공책, 크리스마스 케이크 등을 주면서 내게는 거의 물고기만 주니까. 어쩌면 나머지 사람이 나만큼 자신을 보살피는 데 능숙하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나머지 사람은 낚시하는 법을 모른다. 그는 결코 (내가 아는 한) 해조를 모아서 말리고 저장해 불을 피우거나 맛난 과자를 만들지 않는다. 물고기 가죽을 보존해서 그걸로 가죽(쓸모가 많다)을 만들지도 않는다. 집이 그에게 이런 것들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그가 죽는 것도 있을 법한 일이다. 아니면 (이쪽이 더 그럴듯한데) 내가 그를 돌보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야 할 것이다. (p. 84)

피라네시의 일상은 일종의 로빈슨크루소와 비슷하다. 해안동굴에서 물고기와 해조류로 사는 삶의 방식을 터득했다. 하지만 나머지 사람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데 나머지 사람에겐 항상 물자가 풍부하다. 피라네시는 집이 모든 것을 제공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프레임에서 피라네시는 나머지 사람이 자신과 동일한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피라네시가 바보는 아니다. 그는 시간개념이 정확하고 모든 홀을 기억하며 길을 잃지 않고 열악한 환경에서의 생존법을 스스로 터득했다. 다만 피라네시의 세상이 세계관이 달라진 것이다. 정작 본인은 그것을 몰랐지만.

"이번이 세 번째네. 패턴이 있어. 자네는 일 년 반마다 지식탐색을 그만두자는 생각이 떠오르는 듯해"

"이해가 안 가는데요, 제 기억력은 아주 좋다고요. 한번 가본 홀은 모조리 기억한다니까요. 칠천육백칠십팔 개에요"

"자네는 미궁에 관해서는 잊어버리는 법이 없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네 도움이 내 작업에 그렇게나 중요한 것이고. 하지만 다른 일들은 그렇지가 않아. 게다가 자넨 시간을 놓쳐 버리네"

"뭐라고요?"

"왜 있잖나. 요일이나 날짜를 틀리는 거지"

"안 그런데요"

"자네의 시간 개념이 어긋나 있을 때마다 나는 몇 번이나 바로잡아 줘야 했네"

"무엇과 어긋나 있다는 거죠?"

"나와. 다른 모든 사람들과"

"그럼 왜 당신은 잊어버리지 않는 거죠?"

"난 대비를 하거든"

"저도 할 수 있는 방법인가요?"

"아니, 아니. 그렇게는 안 되네. 미안하군. 자네한테 이유와 원인을 시시콜콜 설명할 수가 없네. 복잡하거든. 언젠가는 얘기해 주지" (p. 102, 103 일부 발췌)

나머지 사람에 의하면 피라네시는 주기적으로 무언가를 기억하지 못한다. 때로는 시간 개념이 어긋난다. 그때마다 나머지 사람이 피라네시에게 다시 알려준다. 그럴때마다 나머지 사람은 의혹을 가질만한 단어들을 부지불식간에 내뱉곤 한다. 둘만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피라네시에게 '다른 모든 사람들' 이라던가 '대비'라던가... 하지만 피라네시는 전혀 의혹을 가지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홀들을 둘러보고 조각상을 감상하고 새들과 대화를 나누며 물고기와 해조류만으로 살아가는 삶을 유지한다.

"잘 듣게. 내게 한 가지 약속해 줬으면 좋겠네"

"물론이죠"

"미궁에서 누군가를 혹시라도 본다면... 자네가 모르는 사람말이네... 그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을 거라고 약속해 주게. 반드시 숨어야 하네. 그 사람에게서 물러나게. 그 사람이 자네를 보지 못하게 해" (p. 110)

"그러면 정말 세상에 열여섯째 사람이 있는 거군요? 왜 한번도 그 얘기를 안 하신 거죠? 굉장하군요! 축하할 일이에요!" (p. 111)

그러다 상황이 변하기 시작한다. 파도가 들이치는 홀들에 조각상 들과 나머지사람 그리고 피라네시만 존재하는 세상이 전부 라고 생각했는데, 열여섯번째 사람의 존재가 등장했다. 나머지 사람은 숨으라 했고 피라네시는 축하할 일이라고 했다. 얼마후 피라네시는 한 노인을 만났지만 그는 나머지사람이 말한 열여섯번째 사람이 아니었다.

"사실 그 친구 생각은 전부 나한테서 온 거라네. 나는 내 세대에서 가장 위대한 학자였지. 어쩌면 다른 세대를 통틀어도 그럴지 모르겠구먼. 나는 이론을 세웠어 이것이... " 그는 홀을, 집을, 모든 것을 가리키려는 듯 양손을 벌렸다. "존재한다고 말이야.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지. 나는 이곳에 오는 길이 있다는 가설을 만들었네. 길은 실제로도 있고, 그리고 나는 여기에 왔고 다른 친구들도 여기에 보냈네. 모든 것을 비밀에 부쳤지." (p. 129)

"결국 우리는 다들 끔찍한 대가를 치러해 했네. 내 대가는 감옥이었어. 그래, 맞네. 충격적이겠지. 전부 오해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좋겠지만 나는 그들이 주장하는 일들을 정말로 했네.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그들이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했지." (p. 130)

"그랬지, 이 세상을 찾았지. 이 세계를 나는 '지류支流세상Dis-tributary World'이라고 부르네. 이 세계는 다른 세계에서 흘러나온 개념에서 만들어졌네. 이곳은 그 세상이 먼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존재할 수 없었을 거야. 아직도 그 처음 세상이 있어야 이곳이 존재할수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네. 전부 내가 쓴 책에 있네만." (p. 131)

피라네시는 이 노인을 예언자라고 생각한다. 노인이 들려준 이야기들은 '나머지 사람'에 대한 이해 혹은 피라네시가 집이라고 여기고 있는 공간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었다. 나머지 사람이 결코 이해하지 못했던 피라네시의 논리들을 수긍해주었다. 그리고 수많은 의혹들을 품게 했다.

"말해 보게. 케털리는 고대의 지혜까 아직도 여기 있다고 여기는가?"

"위대하고 은밀한 지식 말씀이신가요?"

"바로 그걸세"

"네"

"그리고 아직도 찾고 있고?"

"네"

"그것 참 재미있군. 절대 못 찾을 걸세. 여기에 없거든. 그건 존재하지 않는다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그 친구보다 한결 총명하구먼. 그게 여기에 숨겨져 있다는 생각, 그것도 유감스럽지만 나한테서 얻은 것일게야."

"조각상들이 있는 이유가 다른 세상에서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지식과 개념을 상징하기 때문인가요?"

"오래 머무를 수는 없네. 이곳에 머무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너무 잘 알고 있으니 말이야. 기억 상실, 철저한 신경 쇠약, 기타 등등. 그렇지만 자네는 놀랄 정도로 논리정연하군그래."

"나는 그 친구가 밉네. 그 친구는 지난 이십오년 동안 자기 말을 듣는 사람이라면 누구 할 것 없이 모두에게 나를 중상하고 다녔어. 그래서 나는 여기 오는 법을 16에게 소상하게 말해 줄 걸세. 시시콜콜 말이네" (p. 132~135 부분 발췌)

'알겠지만 예전에 자네가 부탁했을 때 내가 오지 않기로 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네. 자네가 나한테 쓴 편지 말이야. 그때는 자네가 시건방진 애송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때 자네는 아마 그랬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매력적이군. 상당히 매력적이야. (p. 137)'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노인은 떠났다. 아하! 닫힌 세계 라고 생각했던 피라네시의 '집'은 누군가 드나들 수 있는 곳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외부와의 연결에 대해 피라네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것보다 피라네시가 노인과의 대화를 되새겨보며 당황스러웠던 것은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서였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을수도 있다는 의혹이었다. 피라네시는 그동안 열심히 기록하기만 했던 자신의 공책들을 첫권부터 읽어보기로 한다.

자신의 기록이 분명함에도 자신의 공책에 있는 내용들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스릴러적 사건추적 분위기가 형성된다. 나에게 이 소설은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었다. 소설의 3분의1쯤 읽은 지금부터.

집이 너로 하여금 기억을 잊게 만들었다면 거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을 거야. (p. 164)

납치, 실종, 미궁, 오컬트 신봉자, 초월적 사고 그리고 자신을 찾는 열여섯번째 사람. 새로운 사실 새로운 증거 그리고 새로운 사람.

그동안 안개속을 걷는 것 같던 소설은 이제 기묘한 퍼즐맞추기로 전환된 듯 읽힌다. '2012년 11월 15일의 사건 (p. 242)' 이날 매슈 로즈 소런슨은 사라지고 피라네시는 탄생했다.

'집은 헤아릴 수 없이 아름답고, 무한히 자애롭다. (p. 345)' 라는 마지막 문장은 본문에서 이미 나왔던 문장임에도 마지막에 그 의미를 달리해서 다가온다. 인간의 고독과 그 고독을 품어주는 '집'에 대해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사실 소설 내용 자체만으로는 이 책을 소개하는 온갖 칭찬과 미사여구들이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옮긴이의 글'을 통해 작가의 삶을 알고나니 이 소설이 새롭게 공감된다. '힘겨운 시기를 보내던 때 작가는 다른 사람가 한 공간에 있는 것이 무척 힘들었는데, 홀로 이런 세계에, 건물들로 가득하지만 조용한 세상에 있는 상상을 하면 마음이 차분해졌다고 한다. 몇 년이 흐르는 동안 조금씩 회복되면서 작가는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쓰기 시작했고, 우여곡절 끝에 <피라네시>를 완성했다. (p. 351)' 자신의 삶을 담은 글은 그 울림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작가의 삶이 담긴 소설을 늘 애정한다. 허구일지라도 삶이 진정 담겼느냐와 담기지 않았느냐는 작품의 공감도를 전혀 달리한다. '피라네시가 집에 홀로 거주하면서 그곳에서 위로받듯이 작가도 상상속의 세계에서 조용히 위로받고 있었다. 피라네시는 그야말로 작가의 분신이었던 것이다. 이야기 속의 피라네시를 보면 '자기'를 잃고 어떤 면에서는 '분열되었다'고 할 수 있는 상태인데도 그런 그가 밝게 묘사되는 점이 신선하고 재미있었는데, 어쩌면 작가 자신도 그에게서 희망을 찾고 있었던것은 아닐까. (p. 352)' 라는 옮긴이의 말에 동의한다. 피라네시는 작가 그 자신이었다.

피라네시 라는 단어를 잠깐 검색해봤을때 그닥 소득이 없었는데 옮긴이가 해설을 붙여주어 고마웠다.

'주인공의 이름 피라네시는 18세기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건축가 조반니 바티스타 피라네시에서 따온 듯하다. 그는 16점으로 구성된 '감옥'을 판화로 발표했다고 하는데, 지하에 있는 이 감옥들을 보면 계단과 기계장치가 두드러 진다. (중략) 주인공 피라네시가 '집'이라고 부르던 공간을 상상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p. 354)' 누군가에겐 집이 감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소설속 노인이 실제 감옥을 좋아했던 것처럼 감옥이 집보다 나을수도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며 피라네시의 미궁이 감옥인가 집인가에 대해 의견이 크게 갈릴 것 같다. 감옥처럼 보이는 집일수도 집처럼 보이는 감옥일수도 있다. 매슈에겐 미궁이 감옥이었지만 피라네시에겐 집이었듯이 매슈의 집이 있는 도시가 피라네시에겐 감옥일 수 있다. 그래서 미궁을 다시 찾게 되는 심리가 이 소설을 환상문학으로 읽게하는 감정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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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프리퀀시 트리플 9
신종원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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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와 음향으로 가득 찬 진공

주술적 유물론의 세계

자음과모음의 <트리플 시리즈>를 여러권 읽고보니 이제 그 책의 작은 크기와 세 편의 짧은 단편이라는 구성에 익숙하다. 하지만 이 시리즈가 보여주는 젊은 작가들의 소설세계는 여전히 낯설다.

[마그눔 오푸스]

【 산모에게 태몽을 전할 때, 이야기의 많은 부품들이 탈락되거나 변형된다. (p. 15)】 1938년생 양계진 씨는 손자의 태몽을 꾸었다. 【1992년 어느 겨울, 양계진 씨는 이름 모를 늪에 발을 들인 적이 있다. (p. 21)】 파킨슨 병을 앓게 되면서 구부러져가는 손가락으로 끝끝내 부여잡고 싶었던것은, 그때 그 늪에서 잡은 잉어의 꿈을 생각나게 하는 손자였다. 【아가야, 내가 너를 어떻게 잡아 왔는데 (중략) 아가야, 너를 잃으면 이제 다시는 널 잡아 올 수 없어. 나에게는 이제 그런 힘이 없어. (p. 27)】 하지만 손자는 할머니와 그 늪에 가보길 청했고 수십년만에 찾은 창녕의 그 늪에서 양계진씨가 만난 것은 두려운 용왕이 아니라 아버지였다. 【태몽은 산모가 꾸는 게 아니라 으뜸으로 배짱 있는 식구가 꾸는 것이다. (p. 37)】 맏딸의 태몽을 꾸었던 아버지의 혼령과 대화를 나눈 이후 양계진씨는 마지막으로 용왕을 만난다. 【이것을 가지시고 (중략) 내가 가져간 보물일랑 이제 그만 잊어주시오 (p. 40)】 하지만 양계진씨가 몰랐던 것이 있었으니 용왕은 잉어의 주인이 아니라 태양의 주인이었다. 손자의 태몽을 꾼 할머니가 손자를 지키기위해 용왕에게 저항해온 시간은 기실 그녀만의 '마그눔 오푸스'였던 것이다. 연금술사들이 금을 만들고 철학자의 돌을 만들듯이 할머니의 작은 태양은 용왕에게 '걸작 (p. 40)' 이었다.

[아나톨리아의 눈]

【 1)소설가는 실제 보드게임의 공용 장비인 구각뿔 주사위 두 개를 반드시 사용할 것. 2)텍스트는 주사위를 굴려 나온 합:0~99 사이의 값만큼 전진할 수 있다. 3)주사위를 굴리는 횟수는 열 번으로 제한하는 데, 열 개의 평면 픽션을 새로운 십면체 주사위의 눈으로 구부려 접기 위함이다. 4)위의 세 가지 규칙은 석촌동에 거주하는 게임 기자이자 보드게임 마스터 이명규의 마스터링 아래 협의되었다. (p. 47)】 주사위는 구르고 굴러 2 - 66 -77 - 50 -18 - 71 - 49 - 70 - 6 - 26 이라는 열 개의 숫자를 결과로 내놓았고 작가는 그 숫자에서 연상되는 짧은 글들을 소설 속의 소설인양 써놓았는데 '창녕에는 지금도 집안사람들의 집성촌이 남아있다고 하는데 (p. 72)】 라며 앞의 단편과 이어지는 듯도 싶지만 주사위의 결과가 운명이 아니라 운이듯이 그저 잠시 지나가는 문장이었을 뿐이다.

[고스트 프리퀀시]

【소설가 김태용은 2019년 1월 29일 한 주택에 초대받았다. 은평구 역촌동에 지어진 이 적색 양옥집은 다만 불란서 주택으로 알려져 있을 따름이었다. (p. 93) 소설가는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 집 안에 나만 있는 것이 아니구나. 아니, 오히려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아직까지 이 버려진 장소에 남아 있구나. (p. 96)】 소설가는 <On - going Project 역촌 40 : 백오십점일평방미너> 라는 낭독전시를 기획하고 2021년 그 공연에 '나'는 시인 박지일과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반복적인 의성어 텍스트만을 다양한 사람들이 반복해서 낭독하느 그 전시공연 참가 이후 시인 박지일은 악몽에 시달리는데 다른 참가자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괜찮았다. 【무언가 픽션이 되면 그것은 사라진다. 소설가는 이것을 잘 알고 있다. 세계 어디에서든 목소리는 굽이치는 파혼을 남기게 마련이며, 그러므로 글쓰기는 오래 전부터 잉크를 빌려 목소리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안티 노이즈로 사용되어 왔던 것이다. (p. 98)】 소설가 김태용은 폐가의 음성을 텍스트화 함으로써 시인 박지일은 의성어의 악몽을 시로 씀으로써 '안티 노이즈'에 성공했다. 그리고 '나'는 유투브 동영상의 노랫소리에 들려오는 에디슨의 혼령의 목소리를 텍스트화 하면서 그 목소리에서 벗어난다. 【무언가 픽션이 되면 그것은 사라진다. (p. 130)】 그러니까 '반복재생되어 들려오는 소리' 라는 고스트 프리퀀시 (혼령 잦은 출몰)는 텍스트화 하여 픽션으로 만들고 나면 그제야 진정한 허구가 되는 것이라고나 할까.

이어지는 작가의 에세이 [운명의 수렴] 에서 저자는 소멸되어 가는 육체의 시간의 수렴인 죽음에 대한 필연성을 강하게 자각하면서도 【지난 시대의 소설가들은 지금도 저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뛰어난 책들은 이따금 작가보다도 오래 살아남아, 이렇게 각기 다른 방에서 여전히 울려 퍼집니다. 그러니까 소설은 저에게 목소리입니다. 문학이기 전에, 이야기이기 전에. 모든 시대에 그것은 어울리는 목소리를 가질 자격이 있습니다. 소설가는 어떤 목소리를 남길지 고민해야 합니다. 선택해야 합니다. 까마득한 미래까지 울려 퍼질 목소리는 오직 자기 자신과 부딪칠 때 영구적인 진동을 얻습니다.... (p. 143) 다다르기 전까지는, 어디에 수렴하게 될지 알수 없다. (p. 144) 】 라며 수렴을 향헤 가되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진동을 만들어낼지에 대한 우연성을 생각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이소 문학평론가는 해설의 제목을 [주술과 언어의 유물론] 이라고 거창하게 붙이고선 【삶과 죽음, 탄생과 소멸의 운명적 연쇄가 부챗살을 이루며 서사의 장력을 지탱한다. 상세하고 화려하며 커다란 부채, 이것이 신종원 세계의 특징적인 형상이다. (p. 150)】 라고 작가만의 개성을 예찬하지만 글쎄...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소설을 읽으며 항상 그렇게 분류하는 것은 아니지만 때론 문학이나 문예창작을 전공한 그러니까 작가를 양성하는 과 출신의 작가들과 그러한 과들과 전혀 무관한 전공이나 직업출신이지만 작가가 된 작가들로 나뉘어지는 경험을 하곤 한다. 이러한 구분을 할 생각을 하게되는 것은 <고스트 프리퀀시> 같은 책을 읽었을 때다. 작가적 작가주의랄까... 그들만의 소통방법 그들만의 세계에서나 통용되었을 법한 문장들로 멋드러지게 포장했으나 그 내용에 있어서 무슨 말을 하고 싶다는 건지 전달력이 떨어지는 소설들. 물론, 그런 전공 출신 작가들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고 비전공 출신 작가들도 그런 작가적 작가주의의 문장들을 구현할때가 있곤 하지만 '문예창작'적 특유의 색이 진하게 느껴지는 그런 단편들이 있다. 이 책 속 신종원의 소설처럼.

대중적 인기가 별로 없을 것 같은 연극을 보러가면 파릇파릇한 학생들이 관객의 다수를 점령하고 있는 것을 볼 때가 있다. 교수나 선배의 연기를 보기 위해 왔을 그들에겐 그 연극이 연극 자체였을까 수업의 연장이었을까... 여하튼 일반 대중으로 보는 나와는 다른 시각으로 다른 공감을 형성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연극을 찾아보는 나는 어떤 생각이었나를 문득 생각했던 시간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시간이 겹쳐졌다. 지금까지 9권이 나온 트리플 시리즈 중 5권을 읽은 애독자로서 이 책의 젊은 패기는 여러모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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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시간
유영민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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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둘러봐도 아득한 지평선뿐인 모래사막

그 한가운데 던져진 여인의 시간

<오즈의 의류수거함> 작가의 신작이라기에 처음 호기심이 갔고 심상하면서도 예사롭지 않은 표지그림에 두번 호기심이 갔다.

개인적으로 청소년문학을 좋아해서 종종 읽는 편인데, 자음과모음 에서 나오는 청소년문학 작품들은 대부분 만족감을 주었기에 가장 애정하는 시리즈 중의 하나로 그 시리즈중에서 <오즈의 의류수거함> 도 읽은 적이 있다. 여고생이 주인공이었던만큼 그리고 청소년문학이었던만큼 특유의 생기발랄함이 가득한 소설이었는데 <화성의 시간>은 청소년문학이 아니라서인지 문체가 달라진듯한 느낌이 들정도로 화자의 연령대에 맞춰진 작품이었다.

그리고 표지 그림 속의 여자

표지날개를 보니 작품 제목이 Sundy Head of a young woman 였다. sundy 라는 단어를 처음 봤다. 번역하면 젊은 여자의 햇빛 받은 머리 정도가 될 터인데 그림속 여자의 어느 부분은 분명 빛나고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어둡고 외로운 분위기라서 그 언밸런스함과 sundy 라는 생경한 단어때문에 표지를 한참이나 쳐다봤더랬다. 그리고 작품을 읽으며 그림의 제목과 닿아있는 문장들을 만날때마다 아~! 감탄했다. 이렇게 내용에 적절한 그림을 표지그림으로 쓰다니 역쉬 자음과모음 이랄까. ㅎ

"만에 하나, 여동생이 돈 때문에 매부에게 살해라도 당했다면 피붙이로서 그 한은 풀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p. 17)

형사를 그만두고 사설탐정을 하고 있는 성환에게 특이한 의뢰가 한건 들어온다. 6년전 실종됐다는 여동생을 찾아달라는 오빠의 요청이었는데, 가난한 집안사정으로 일찍 헤어져 서로 소식도 모르고 살다가 경찰의 방문으로 동생의 실종을 알게 됐다는 오빠는 여동생이 실종만기로 사망선고가 내려지면 매부가 거액의 보험금을 타게 되는 것을 알게 됐다며 뭔가 이상하다고 사건을 의뢰했다. 경찰이 조사한 결과는 혐의없음 이었다.

대하가 없어진 것은 아이 죽음 이후부터다. 성환은 장례식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집 안에서 아이만 사라진 것이 아니란 사실을. 웃음, 농담, 기대, 계획, 소망 같은 것들도 더불어 증발해버렸다는 사실을. 어쩌면 아이가 그 모든 것을 거느리고 있었을까. 아니, 아이 자체가 그 모든 것의 총합이었을까. 자식이란 원래 그런 존재일까. (p. 22)

성환은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를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로 잃었다. 성환 부부의 일상은 무너졌고 딸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형사도 그만두었다. 그나마 가진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사설탐정 같은 것이었기에 민간조사원 사무실을 차려놓고 도망간 외국인아내를 찾아달라는 것 같은 간단한 사건들을 해결하며 그만그만 지내고 있던 터였다. 성환은 이번 의뢰는 지금까지의 사건들과 전혀 다를 것임을 직감한다.

"저 디오라마는 언제쯤 완성되나요? 그 모습을 꼭 한번 보고 싶군요"

"완성되면 알려드리죠. 이제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p. 44)

사라진 문미옥을 찾기 위해 가장 먼저 만난 이는 남편 오두진이었다. 작은 홍보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오두진의 사무실에는 거대한 디오라마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의 취미라는데 그는 전쟁의 폐허를 만들고 있었다. 지난 6년간 조금씩 무언가 인내하고 기다리듯이...

"우리나라에서 한 해 실종되는 사람 수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한 100명쯤 되려나?"

"9만5천 명입니다."

"지금까지 누적된 수가 아니고요?"

"그렇습니다. 가출이나 일시적인 잠적을 뺀, 순수하게 실종된 사람이 9만5천 명잊. 쉽게 말해, 하루에 260명씩 사라지는 셈입니다." (p. 68, 69)

실종자가 저렇게 많았나? 놀라운 숫자였다. 문미옥 실종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전체적인 줄거리이다 보니 '실종'에 대한 언급은 당연할 수도 있지만 책을 읽다보면 그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다양한 사회사건들의 이면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문장들이 등장한다. 학교폭력, 가출, 성추행, 탈영, 노숙자, 해외입양 그리고 보험사기

"보험하기의 진짜 문제는 그로 인한 보험금 누수 때문에 일반 보험가입자의 부담이 증가하는 점에 있습니다. 지난해 보험사기 적발액이 6천억 원 정도인데, 걸리지 않은 액수를 포함하면 4조원에 육박합니다." (p. 100)

문미옥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면서 성환은 점점 더 문미옥이라는 인물에 대해 끌림을 느낀다.

오두진과 문미옥은 쇼윈도 부부였다. 문미옥에겐 동거남이 있었고 딸도 있었다. 그런데 왜??

성환은 보험수령날짜가 다가오면서 보험사조사원도 뒷조사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문미옥의 실체는 무엇인가... 오두진의 그 소름돋게 하는 웃음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러다 성환은 깨닫게 된다.

그 여자가 살아 있다. 어딘가 살아서 숨 쉬고 있다... (p. 133)

처음 사건을 의뢰받았을 땐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사건을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묘한 실종 이었다. 사건은 살인이 아니라 실종이 맞았다. 아니 어쩌면 살인이 될지도 모를 긴박한 실종이라고 해야 하려나...

제가 지금 화성에 있다면 믿으시겠어요? 지구로부터 약1억6천만 킬로미터 떨어진 그 행성 말이에요. 이곳은 소피가 살았던 시베리아처럼 몹시 춥고 황량해요. 그리고 저 외엔 아무도 없어요. 벌써 이곳에서 지낸 지 여러 해가 흘렀지만 도무지 외로움과 적막감이 익숙해지지가 않아요. 그래서 때때로 혼자 웅크리고 앉아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합니다. 그렇지만 저에게 아무런 버팀목이 없는 건 아니에요. (p. 169)

문미옥은 화성같은 곳에서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지구귀환을 꿈꾸며.

거리에 면한 통유리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 속에서 머리칼이 반짝이며 빛났다. (p. 416)

이 문장 전에도 이와 비슷한 문장이 나오긴 하지만 표지그림에 딱 어울리는 문장은 이 문장이 아닐까 싶었다.

초췌한 얼굴일지언정 오후의 햇살에 반짝이는 머리칼을 볼 수 있듯이 그녀의 피폐한 삶에도 한줄기 햇살이 내리쪼일 수 있을까.

사건을 조사하는 민간조사원 성환은 50대의 수사관으로 짐작되는데 성환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소설은 그래서인지 그나이대의 아저씨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노련하지만 예상되고 느리지만 차근차근 정확히 진행하면서 묵묵하면서도 묵직한 중년남자의 그런 심상함...

그닥 새로운 전개는 아니었지만 한줄한줄 빼놓지 않고 천천히 읽게 되는, 작가가 무척 공들여 쓴 작품임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자기만의 폐허를 목격하기도 하고 화성에 뚝 떨어진듯 고독에 헤매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 시간들을 뒤로하고 하늘의 별도 보고 햇살에 반짝이는 물결도 볼수 있는 지구에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되곤 한다. 그 시간들을 헤쳐나올 수 있게 해준 것은 결국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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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하는 역사학 공부 EBS 30일 인문학 2
김서형 지음 / EBS BOOKS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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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에 대한 지대넓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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