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똥인지 된장인지 굳이 먹어봐야 아는 사람' 중에 '똥'역할이었다. 사람들은 어딘가 독특한 기척을 맡고 내게 다가왔다. 특별한 능력도 매력도 없다는 것을 알고 망설임 없이 떠났다. 그런 경험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나는 스스로 특별한 축이라고 여기며 살았는데, 사실은 별게 아니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잘하는 것도, 가진 것도 없었으니까. 사람을 만나는 것만은 잘해내고 싶었으나 마음 먹은 것 중에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사람들은 저절로 붙었다가 떨어져 나갔다. 그때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창 밖의 날씨가 바뀌었다. 특별한 사람에서 특별하지 않은 사람으로, 평범한 줄 알았으나 이상한 사람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정해진 순서처럼 착착 진행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어 윤조야. 내 업보 였다.
윤조와 항상 붙어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던 건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그저 윤조와 함께 있으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땀이 솟은 팔과 등, 그 위로 부는 바람, 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감각 같은 게. 윤조만 바라보는 동안 가족, 다른 친구 등 인간관계는 단절되었다. 성적도 살아가는 모양도 엉망이었다. 윤조와 함께 있는 게 너무 즐거워서 내게 미래라는 시간이 있다는 걸 잊어 버렸다. (p. 13)
나는 훌륭하게 살 생각은 없었지만,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며 살고 싶었다. 윤조와 그냥저냥 지내는 건 불가능했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그런 마음으로 윤조와 연을 끊었다.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다. 나는 어느 순간 윤조를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편안하고 지루한 삶이 적성에 맞는 듯 했다. 잊고 있던, 혹은 잊었다고 믿었던 윤조가 내 눈앞에 나타난 건 내가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걸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을 때 쯤이었다. (p.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