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직업을 간단히 말하자면 사진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려서 미국으로 이민간 저자는 미국식 교육을 받았음에도 한국의 문화유산에 대한 소중함을 잊지 않았고 영어권에서 사진기자로 활동하면서 한국문화유산이 제대로 번역되지 못해 묻히거나 왜곡되는 것을 안타까워 했던 것 같다. 한국의 문화유산을 제대로 알리고자하는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하였고 이 책은 그러한 프로젝트 중 하나로 진행됐던 것에서 25개의 문화유산을 엄선하여 책으로 엮은 것이다. 사진이 가장 압도적이긴 하지만 한글과 영어로 동시에 설명되어 있는 이 책을 읽다보면 왠지 이 책 자체로서의 유용성과 가치면에서 더욱 빛나는 듯 했다.
크게 세 챕터로 구분되어 소개되는 문화유산에는,
[세계가 기억할 빛나는 한국의 유산]으로 고인돌, 백제 금동 대향로, 경주 첨성대, 신라의 유리그릇, 팔만대장경과 장경판전, 종묘 제례와 종묘 제례악, 서원,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골 / [한국의 찬란한 역사를 품은 유산] 으로 연천 전곡리 주먹 도끼,.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정문경, 가야,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 성덕 대왕 신종, 민간 인쇄 조보, 이순신, 독도 / [한국의 고유함을 오롯이 새긴 유산] 으로 토종개, 한글, 하회 별산굿 탈놀이, 온돌, 한지, 증도가자 금속 활자, 김치, 제주마 등이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이 역사인문서라기 보다는 걸출한 사진작가의 책이니만큼 감각적인 사진만으로도 보는 재미가 있는 책이지만 역사적인 내용도 쏠쏠히 배우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다. 역사덕후라거나 역사책 쫌 읽었다 하는 이들이 읽어도 재밌고 역알못 독자들이 읽어도 재밌을 책이라는 말이다.
첫번째 유산인 고인돌에서부터 길지 않은 내용에서 벌써 흥미로운 관점이 시선을 끈다.
세계에서 고인돌이 한국에 가장 많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일 것이다. 전 세계에 6만여 기의 고인돌이 있는데 그 가운데 4만~4만5천 기가 한반도에 남아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는가? 그 옛날 그토록 많은 고인돌을 만들만큼 번성했던 한반도 땅의 인류는 현재의 한국인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저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서양인의 DNA가 고인돌에서 발견된 유골에서 나왔고 '돌'이라는 어원을 쫓아 올라가보면 한자가 우리 문화권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생각까지 해볼 수 있게 된다.
우리의 문화유산 이야기 이기에 뿌듯함은 당연히 깔고 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문역사학자가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바탕으로 사실을 짧고 굵게 전해주는 이 책을 읽으면서도 엄청난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문화유산 그 자체에 대한 가치를 새삼 다시 느끼게 된다.
그 유명한 백제 금동 대향로에는 한반도에 살지 않는 코끼리, 원숭이, 악어 등이 조각되어 있고, 경주에서 발굴된 유리잔은 기원전 2세기에 이미 로마의 유리잔을 수입할 만큼의 교역력이 있었음을 보여주기도 하며, 전곡리 주먹 도끼는 구석기 인류마저 서양이 우월했다고 믿던 학계의 학설을 완전히 뒤집은 증거였다. 정문경 이라는 청동거울은 현대 과학으로도 재현하기 힘든 최고의 '나노 테코놀로지'기술을 보여주고 있고, 가야의 고분군은 다양한 미스테리를 ㅍ품고 있으며, 성덕 대왕 신종을 옮길 때 새로 제작한 쇠막대기는 결국 사용치 못하고 오래된 녹슨 쇠막대기를 사용해야 했을때 부러지지 않고 그 육중한 무게를 거뜬히 버텨내는 것을 보며 감탄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우리 고유의 한지도 우수하지만 종이를 만드는 기술이 우리에겐 삼국시대부터였지만 서양은 한참 후였고 종이가 이모양이니 활자는 당연히 우리가 더 앞선 시기에 활발히 사용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오래된 금속 활자본 이라고 알려진 '직지'보다 138년 앞선 시기에 사용되었던 금속활자 '증도가자' 이야기는 호기심을 절로 불러일으킨다.
활자말고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들, 유일한 것들이 한반도에는 참 많다.
수학여행가면 사진에 배경으로나 찍히는 첨성대는 원래 모습 그래도 보존되어 있는 천문대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 기상 관측대 이고, 종묘 제례는 동아시아의 왕실 제례 의식 가운데 500년 넘도록 원래의 의식 그대로 지금까지 전해져오는 유일한 왕실 제례의식이며,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 그림은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 그림과 고래잡이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문화유산 관련 사진들이라고 해서 박물관에서나 볼법한 그런 사진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월송대 사진이었는데, 이순신 장군의 유해를 임시로 모셨던 그곳이 풀이 나지 않기로 유명하다니... 왜인지 이유가 짐작되지 않는가? 그 이유를 일제 강점기와 연결짓는 내용이 독도 관련해서인데, 강치의 멸종과 향나무 이야기 그리고 토종개 도살이야기는 일제 강점기였으니까 그렇다쳐도 미군에 의해 벌어졌던 '독도 조난 어민 위령비' 관련 이야기는 그동안 미처 몰랐던 내용이었기에 더욱 안타까웠다.
신선한 이야기도 꽤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품종개라고 하면 진도개와 삽살개 밖에 몰랐는데 동경이, 풍산개, 바둑이, 릿지백 이야기는 흥미로웠고 하회탈이 웃는 탈인줄 알았는데 별신굿 탈놀이에 등장하는 12개의 탈을 의미하는 것도 처음 알았고, 너무나 당연한 온돌이 한국에만 있던 고유한 난방 기술이라는 것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아니, 바닥을 뜨듯하게 하는 것에 그 오랜 역사 기간 동안 전세계인들이 그토록 무심할수 있었다니 하면서 ㅋ
문화유산 사진집이라고 할수 있는 책이지만 박물관 도록 같은 책을 생각했다면 책장을 넘길수록 예상밖의 사진에 놀라게 될 것이다.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2회나 받은 사진작가라니 역시~! 하게 된다고나 할까. 표지부터 의미있다고 생각했다. 그 유명한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인데 표지에 떡하니 있는 사진은 뒷모습이다. 그동안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보아왔던 것은 모든 유산의 앞모습만 이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니 이제 뒷모습 뿐만 아니라 그 이면을 봐야할 때가 온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