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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2월
평점 :
읽는 내내 묘하게 무거움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왜일까...
우주인 헬맷을 쓰고 있는 샐러리맨의 표지가 산뜻하다고 생각했는데
딱히 큰 사건이나 갈등이 두드러지는 내용도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한장 한장 무거웠을까 나는...
저자의 표현 중에 마음에 드는 표현이 있었다.
'대지를 고르고 얇게 덮었을 뿐인 공기의 껍질을 우리가 하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그 바깥에 끝없는 깊이의 우주가 있어서다'
소설이 시작되자 마자 다음장에 나오는 이 표현이
평소 거대하다고 느끼던 하늘을 공기 껍질일 뿐이라고 하는 이 표현이 참 좋았다.
우주에서 보면 하나의 푸른점일 뿐인 지구에 사는 나는 티끌보다 작은 존재라는 것이 새삼 느껴지면서 우주에 관심을 유도했다.
우주인 선발에 응시하려고 하면서 주인공이 생각했던 궁금점 끝에 이런 말이 나온다.
'우주인들은 헤아릴 수 없는 실험을 수십 년 동안 해왔지만 결과는 자기 나라에서만 나눠 가진다.'
얼마전에 칼 세이건의 코스믹커넥션 이라는 책을 봤었는데, 위 문장이 새삼 공감되는 문장들이 많았다. 50년 전에 그 책이 쓰여진 수준에서 우주과학은 그닥 발전한 게 없다. 오히려 냉전시대에 경쟁적으로 급속히 잘 성장하다가 냉전 종식 후 우주산업도 종식된 듯 하다.
또, 마음에 드는 표현이 있었다.
'서른다섯, 청춘은 떠났지만 연륜은 도착하지 않았다.'
삼십대 중반의 나이에 무모할 수도 있는 도전을 하면서, 청춘은 아니어도 연륜이 오기 전이라 시작할 수 있는 나이 라는 생각에 저절로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렇지 그럴 수 있는 나이이지 하면서...
소설 속에서 중력은 이렇게 설명된다.
'중력은 모든 것이 제가끔 움직이고 저마다 살아가게 하는 힘이고 조건이고 운명이다'
지구가 끌어당기는 힘 중력은 물리적 법칙을 떠나 생각해보면, 삶에 적용하는 중력은 어쩌면 동력일 수 있다. 무엇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는가?
우주인으로 선발되는 과정은 끊임없는 경쟁이다.
'같은 일을 하면 왜 이리 진정한 친구가 되기 힘들까?' 라는 생각엔 참...할말을 잃게 되기도 했다. 그러게 그게 참 힘들지..하면서...
'내 기분의 밑바닥에는 쓸쓸한 아픔이 있다' 이 문장에서 비로소 이 책이 왜이렇게 무겁게 느껴지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밑바닥에 쓸쓸한 아픔을 깔고 있는 것이 읽는 내내 느껴진다. 그런데 무엇때문에 그렇게까지 주인공이 쓸쓸하게 아픔을 지속적으로 느끼는 건지 공감할 수 없었다. 어린 여동생의 죽음에 책임을 질만한 일을 한것도 없었는데 마음에 돌덩이처럼 얹어놓고, 가장의 부담감은 새삼스러운 게 아닌데 주인공은 내내 과하다 싶게 쓸쓸해하고 아파한다. 뭔가 더 있겠지 뭔가 아파할 만한 큰 사건이 있었을꺼야 하며 읽어나갔지만 없.없.다. 너무나 평범함 일상 들이었다. 다들 그러고 산다. 그런데 주인공은 왜 그렇게 까지?
'회전문으로 도로 들어온 거 같아' 라는 표현이 나온다.
밖으로 나가려고 회전문으로 들어갔는데 돌아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 그런 느낌 안 겪어본 사람이 있을까? 거기서 지치는 것 이해한다. 그 속에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최선을 다하는 주인공의 자세엔 분면 배울점도 많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이소연우주인이 겹쳐졌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뒤로 갈수록 뚜렷이 존재가 느껴졌다.
작년에 티비에서 우주인 이소연 씨의 다큐가 있었다.
한국인 최초 우주인 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그 사건?!은 일종의 정치쇼 였다. 후속 조치는 아무것도 없었고 세금은 날아갔고 그렇게 날린 주동자들이 아니라 그녀가 욕을 먹었다. 그녀는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좌절 후 외국에 나가 공부하면서 자신을 추스르다가, 자신이 우주인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남자를 만나 결혼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뭔가 하고 싶다.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기억난다. 우주에서 지구와 통신 시간은 제한되어 있는데 실험이나 뭔가 과학적 사실들을 얘기할라치면 우리나라 관계자들은 그보다도 가슴에 단 마크가 잘 보이게 화면을 조정하라는 말부터 했고 언급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었다. 그 마크를 달고 누구에 의해 지원받아 우주에 나갔다는 것 그것만 있으면 됐던 거다. 그녀는 백수가 됐다. 여전히 백수다.
http://omn.kr/r124
소설의 마지막즈음에 주인공이 우주인이 된 인물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생각한 부분이 있다.
'너는 오로지 너의 힘과 지혜와 태도로 너의 길을 열어간 것이라고,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의지와 기량으로 그 어떤 시샘도, 비웃음도 이겨냈다고. 너는 스스로 속을 다졌고 너무나 겸손했다고. 나는 너를 볼 때 살아가는 위안을 느끼고, 마음 가득히 흐뭇해진다고.'
나는 이 말을 우주인 이소연 씨에게 해주고 싶다.
이 소설은 착한 소설이다. 악인이 없다. 소설에 꼭 악인이 있고 대립구도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물들이 다, 너무 다 개연성이 있어도 읽기 힘들다. 너도 이해하고 너도 이해해 하면 대체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결을 한단 말인가. 이점에서도 읽는 내내 무거웠다. 어떻게 뭐라도 할 수가 없어서...
저자는 후기에서 도움을 준 이소연 씨를 언급하면서 다시한번 소설의 허구적 인물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러기엔 그녀의 시간이 너무 많이 느껴지는데다, 상쇄할 만한 주인공의 극적 무언가가 없어서 아쉬웠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주인 양성에 대한 계획도 생겼으면 좋겠고, 과학에 관심이 높아졌으면 좋겠고, 장기적인 기초과학과 기초산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되뇌어 졌으면 좋겠고,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우주인을 꿈꿀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
그냥 소설이지만, 때론 소설이 주는 문학적 표현들이 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현실을 바꿀 수 있게 되기도 하니까.
"중력" 을 응원한다. 열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