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가 표의문자이기에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몇개의 글자 아니 한개의 글자로도 그 글자에 새겨진 의미가 의외로 길 수 있는 문자가 표의 문자니까. 그 길수도 짧을 수도 있는 글자 하나로 지금의 나의 기분을 의미로 연결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한자를 많이 안다면 그렇게 해보고 싶어질 것 같다. 무언가를 의미심장하게 압축하여 표현할 수 있다는 것, 매력적이지 않은가.
차례를 보면 '기분'으로 한글자한글자 리스트가 적혀 있다. 살아 있다는 기분, 색깔의 기분, 얼룩을 닦는 기분, 떠나는 기분, 알고 싶은 기분, 집에 온 기분, 계절의 기분, 쓰는 기분, 옮기는 기분, 읽는 기분 헤아리는 기분, 살고 싶다는 기분. 이 기분들은 때론 저자의 '기분'으로 찾아낸 글자일 수도, 한자라는 글자 자체를 연구하며 모아놓은 글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의 기분이라는 것이 주관적이므로 저자의 기분과 같은 기분을 느낄 수는 없겠지만 그 기분을 한문이라는 글자로 그것도 단 한개의 글자로 표현해 놓고 보니 읽는 내내 오히려 저자의 기분을 나름 전달받고 공감하는 느낌이 들었다. 에세이를 즐겨 읽지 않는 내겐 '기분' 보다도 '글자'로 소통되는 산문이었기에 '한자'라는 함축적 의미로 소통하는 글들이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기도 하다.
첫 한자부터 그랬다.
名 이름 명
'인공의 빛이 없었떤 과거의 세상. 해가 떨어지고 나면 어둠이 얼굴을 지웠기에,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말하여 본인을 증명해야 했다. 저녁[夕]과 입[口]이 만나 이름[名]이라는 글자를 이룬 것은 그래서다. ' (p. 15)
예전에 학창시절에도 이런식의 한자풀이가 가능한 한문을 배우는 시간은 참 재밌었다. 고대인들의 그럴싸한 글자만들기 이야기가 재밌었는데... 모든 한문으 그런식으로 만들어진 건 아니라서 모든 한문이 재밌지는 않았기도;;;; 여하튼 이 책의 시작이 참 마음에 들었다. 한자 이야기들이 너무 재미있어서 사실 저자의 '기분' 보다는 한자 읽는 맛으로 책장이 빠르게 넘어갔다.
坐 앉을 좌
'두 사람(人人)이 나란히 땅에 앉아 있다. 주어진 좁은 자리를 나누어 앉아 함께 땅을 덥히는 시간이 '坐'라는 글자에 담겼다. 애초에 혼자가 아닌 둘이 행위의 주체였던 '坐'의 비밀을 알고 나서는 지금 같은 공간에 '앉아 있는' 우리 사이가 새삼 애틋하게 귀하겨 여겨졌다.' (p. 22)
한문이 새겨지는 과정이야기, 그 의미 이야기에 지금의 우리가 느낄 법한 '기분'으로 자연스레 연결되는 이런 문장들이, 빠르게 넘기는 책장들 사이에서도 콕콕 마음을 두드렸다.
來 올 래
'來 자는 갑골문에서 보리의 형상으로 그려져 있다. 고대인들은 상서로운 곡식인 보리를 하늘에서 내려주는 것이라 믿었다. 하늘로부터 온다는 의미가 번져 '來'자는 '오다'를 말하는 글자가 되었다.' (p. 33)
하늘이 곡식을 내려준다는 믿음 같은건 옛말인지 오래되었다. 하늘이 비를 내리는 게 아니라 수증기가 모여 구름이 되고 비가 내리고...어쩌구저쩌구...과학적으로 우리는 옛 믿음들에 대해 많은 것을 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천벌은 무섭고 하늘이 아니라면 우주 어딘가에 뭔가가 올것 같고 한걸 보면 인간사는 고대와 그닥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하튼 '來' 라는 글자가 보리였구나...
夜 밤 야
'팔을 벌리고 선 사람의 겨드랑이 아래 옆구리 뒤로 달이 떠있다. 이것은 밤 '夜'자가 품은 장면이다.' (p. 46)
行 다니다 행
'여행의 '行'자는 십자 모양의 사방으로 갈린 사거리를 본뜬 글자다. '行'자는 곧 그 갈림길을 걸어 다닌다는 의미다.' (p. 81)
이런 식의 한문 자체의 한자 이야기가 개인적으로 재밌지만 이 책의 제목에서 그러니까 '한자의 기분'에서 주인공은 '한자'가 아니라 '기분'이다. 따라서 한문 자체의 이야기보다는 그 한문과 저자의 어떤 기분이 왜 연결되었는가가 주로 쓰여진 산문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