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세계 경제 시나리오 - AI 버블 붕괴와 투자 전략의 대전환
최윤식 지음 / 넥서스BIZ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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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버블 붕괴와 투자 전략의 대전환

"위기를 예측하고 기회를 준비하라!"

저자소개를 보니 미래학자로 강연과 저술을 엄청 활발하게 해온 이라서, 개인적 취향으로 이런 종류의 책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지만, 마침 동일 이름의 지인이 생각나기도 해서, 그래 미래의 경제는 어떤 방향이려나 그 궁금증이 이 책으로 조금이나마 해소가 되려나... 하며 책을 펼쳤다.

경제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이다. (p. 5) 이 책에서 다룰 주제는 바로 그 '기울어진 조각'들이다. 도미노의 첫번째 조각이 넘어지면, 당신이 아침 커피를 마시며 주식 앱을 열었을 때, 화면이 온통 파란색으로 물든 것을 보게 될 것이다. (p. 6) 이 책의 목적은 막연한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다. 흔히 혼돈은 기회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준비된 사람에게만 기회이다. (...) 독자들이 '기회를 잡을 준비'를 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이 책을 집필하였다. (p. 10)

-서론 中-

이제는 정말 경제가 일상인 시대가 되었다. 살림살이 팍팍하고 저축은 커녕 빚을 내서라도 투자를 해야할 것만 같은 위기감 속에서 쏟아지는 경제지표 숫자들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건지 알수 없지만 불안한 마음에 이게좋다더라 저게좋다더라 하면 너무나 쉽게 그 유혹에 빠져들곤 한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 경제를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문학자들처럼 공부할 시간은 없고 인터넷 속에 넘쳐나는 짧은 글들은 뭐가 진실인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그럴땐 하나의 맥락으로 쓰여진 한 권의 책이 좋다. 그리고 일단은 지금 현 상황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쉬운 책부터. 예를 들면 지금 펼쳐든 이런 책 말이다.

시장의 기대가 엄청나서 투자금이 정신 못 차릴 만큼 쏟아지지만, AI를 활용해서 핵심 업무에서 폭발적인 생산성을 만들어내기에는 '더 많은 시간'과 '더 높은 기술적 수준'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건 AI가 '캐즘chasm'단계에 갇현다는 말이다. 캐즘이란, 초기 시장에서 혁신가나 얼리 어답터들이 큰 관심을 보이지만, 실제 사용 경험에 따라 보편적으로 확산될지 아니면 이탈될지 결정되는 단계다. (p. 25)

캐즘이라는 말이 뭔지는 몰라도 이런 궁금증은 확실히 생긴다. 다들 AI , AI 하는데 이 AI로 돈을 어떻게 벌지?? 이 AI가 어떤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것이지? 단순히 질문에 답해주고 사진을 이쁜 그림으로 편집해주는 것이 AI가 다가 아닐 뿐더러 그런 걸로는 돈을 못벌지 않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가장 중요한 교훈을 잊지 말라. 예상치 못한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대부분 미리 징후를 보내온다. 문제는 당신이 그 징후들을 읽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p. 66)

위기가 곧 기회다 라는 말은 사실 흔하디 흔한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이 늘 유효한 것은 역사가 그말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망해가던 IMF시대에도 누군가는 새로운 대박을 터트렸고, 누군가 생을 포기하고플 정도의 순간에도 누군가는 같은 이유로 생의 의지를 새롭게 얻곤 했다. 분명한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위기'라는 점이다.

저자는 다양한 위기 징후들을 설명해준다.

'대륙별로 평가할 때도, 북미 대륙보다 유로존이 더 심각한 상황이다. (p. 72)'

'지난 30년간 성장 호르몬을 과다 투여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거인으로 자라났지만, 이제 그 약물의 치명적인 부작용에 시달리기 시작한 중국이다. (p. 82)'

이처럼 유럽과 중국이 갖고 있는 부채가 실재적 경제로 쓰나미를 일으켜 온다면? 저자는 '달러 스마일 이론'을 하나의 대응책으로 제시하기도 하는데, 문제는 지금 미국경제도 만만찮게 위기라는 점이다.

미래는 '예언'할 수 없다. 대신 '예측'할 수는 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점쟁이처럼 맞출 수는 없지만, 논리적·확률적으로 '경우의 수'를 미리 생각해 볼 수는 있다는 의미다. 필자가 예측해본 2026년 미국 주식시장의 '경우의 수'는 크게 2가지다.

시나리오1: 2026년 전형적인 폭락 장세가 일어난다. 이럴 경우, 2027년 대반등 시작, 2028년 대세 상승장으로 진행된다.

시나리오2: 2026년에 2단 대폭등 장세가 일어난다. 이럴 경우, 2027년 대폭락, 2028년 대반등 시작이다. (p. 169)

그야말로 시나리오는 시나리오일뿐 현실이 될지 안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이 경제적 위기 그것도 세계적으로 경제적 위기라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니 어떤 방식으로든 부의 대이동은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흐름이 한 나라안에서 일어나기엔 이미 경제는 세계적으로 너무나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 따라서 한국의 경제적 위기는 세계의 경제적 위기의 흐름을 제대로 읽을때 헤쳐나갈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2026~2027년은 한국 경제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p. 233) 라고 말하며 한국의 생존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예상해보고 있다. 미래에 대한 재설계는 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 국가적으로 해결해 가야할 시대가 되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위기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위기와 함께 항해할 수 있는 지혜다. 이 책이 그 지혜를 나누는 작은 불씨가 되기를 소망한다. 위기는 끝이 아니라 설계도를 다시 그릴 기회이다. (p. 252)

이 책은 어디에 투자를 하라고 한다거나 언제 어떤 문제가 생길거라고 섣불리 말해주는 그런 카더라통신 같은 책이 아니다. 위기를 현실적으로 와닿게 해주고 그럼에도 그 위기 속에 기회를 찾을 수 있는 희망을 심어주고자 이런저런 예상을 해주는 책이다. 그러니 경제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저자처럼 2026 시나리오를 써보면 어떨까. 누구나 잘 살려고 노력하지만 누구나 잘 살지 못하는 것은 준비가 어느 정도 되었느냐와 얼마나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사람은 결국 준비된 사람이다. 먹고살기 힘들다힘들다 말만 하지 말고 우리도 준비를 하자. 어떤 준비를 해야할 지 모르겠다면 일단은 경제관련 책을 읽어보는 것부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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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기분 - 한문학자가 빚어낸 한 글자 마음사전
최다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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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믿음은 경전으로 남았고 인간의 선과 악은 법의 조문으로 남으며

인간의 사랑과 미움은 문학으로 남았다.

-뒤표지 박준 시인의 추천사 中-

한글은 정말 대단한 문자인 것 같다. 같은 모양의 글자를 어떻게 읽느냐 어느 문맥에 놓느냐에 따라 달리 읽히니 말이다. 예를 들자면, 밤, 배 뭐 그런 단어들... '한자'도 내겐 그러했다. (띄어쓰기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한문을 의미하는 한자와 한개의 글자를 의미하는 한자라는 두가지 의미로 내게 읽혔기 때문이다. 한문학자가 쓴 산문집이니 한문이야기겠거니 하면서도 차례에서 한글자한글자 새겨놓은 한개의 글자리스트들을 보면 그게 왠지 이 책의 진짜 '한자'같았다.

기분을 말해줄 정확한 언어를 찾는 것만으로 덜 외로울 수 있다. 한자의 세계 안에 살면서 내 언어는 한자라는 문자가 지닌 결을 닮게 되었다. 한자가 인간의 사고와 감정을 형상화하는 문법을 따라 생각하고 느끼며, 말하고 쓰게 된 것이다. 여러 방향으로 가지를 뻗은 획들이 반듯한 네모 안에 모여든 채 긴 의미를 함축하는 한자, 한자가 짓는 표정의 기분을 읽어나가다 보면 내 마음의 궁색한 어느 구석이 소환되었고 비로소 그늘진 마음의 목소리를 명쾌하게 들어보 수 있었다. (p. 10) 이 책은 모양도, 역사도 각기 다른 여러 한자의 기분에 기대어 풀어지고 매듭지은 기록장이다. 내 기분을 맡길 한자를 골라, 한자의 기분을 빌려 나의 기분을 말해보는 일의 반가움과 기쁨을 나누고 싶었다. (p. 11)

-프롤로그 中-


'한자'가 표의문자이기에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몇개의 글자 아니 한개의 글자로도 그 글자에 새겨진 의미가 의외로 길 수 있는 문자가 표의 문자니까. 그 길수도 짧을 수도 있는 글자 하나로 지금의 나의 기분을 의미로 연결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한자를 많이 안다면 그렇게 해보고 싶어질 것 같다. 무언가를 의미심장하게 압축하여 표현할 수 있다는 것, 매력적이지 않은가.

차례를 보면 '기분'으로 한글자한글자 리스트가 적혀 있다. 살아 있다는 기분, 색깔의 기분, 얼룩을 닦는 기분, 떠나는 기분, 알고 싶은 기분, 집에 온 기분, 계절의 기분, 쓰는 기분, 옮기는 기분, 읽는 기분 헤아리는 기분, 살고 싶다는 기분. 이 기분들은 때론 저자의 '기분'으로 찾아낸 글자일 수도, 한자라는 글자 자체를 연구하며 모아놓은 글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의 기분이라는 것이 주관적이므로 저자의 기분과 같은 기분을 느낄 수는 없겠지만 그 기분을 한문이라는 글자로 그것도 단 한개의 글자로 표현해 놓고 보니 읽는 내내 오히려 저자의 기분을 나름 전달받고 공감하는 느낌이 들었다. 에세이를 즐겨 읽지 않는 내겐 '기분' 보다도 '글자'로 소통되는 산문이었기에 '한자'라는 함축적 의미로 소통하는 글들이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기도 하다.

첫 한자부터 그랬다.

名 이름 명

'인공의 빛이 없었떤 과거의 세상. 해가 떨어지고 나면 어둠이 얼굴을 지웠기에,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말하여 본인을 증명해야 했다. 저녁[夕]과 입[口]이 만나 이름[名]이라는 글자를 이룬 것은 그래서다. ' (p. 15)

예전에 학창시절에도 이런식의 한자풀이가 가능한 한문을 배우는 시간은 참 재밌었다. 고대인들의 그럴싸한 글자만들기 이야기가 재밌었는데... 모든 한문으 그런식으로 만들어진 건 아니라서 모든 한문이 재밌지는 않았기도;;;; 여하튼 이 책의 시작이 참 마음에 들었다. 한자 이야기들이 너무 재미있어서 사실 저자의 '기분' 보다는 한자 읽는 맛으로 책장이 빠르게 넘어갔다.

坐 앉을 좌

'두 사람(人人)이 나란히 땅에 앉아 있다. 주어진 좁은 자리를 나누어 앉아 함께 땅을 덥히는 시간이 '坐'라는 글자에 담겼다. 애초에 혼자가 아닌 둘이 행위의 주체였던 '坐'의 비밀을 알고 나서는 지금 같은 공간에 '앉아 있는' 우리 사이가 새삼 애틋하게 귀하겨 여겨졌다.' (p. 22)

한문이 새겨지는 과정이야기, 그 의미 이야기에 지금의 우리가 느낄 법한 '기분'으로 자연스레 연결되는 이런 문장들이, 빠르게 넘기는 책장들 사이에서도 콕콕 마음을 두드렸다.

來 올 래

'來 자는 갑골문에서 보리의 형상으로 그려져 있다. 고대인들은 상서로운 곡식인 보리를 하늘에서 내려주는 것이라 믿었다. 하늘로부터 온다는 의미가 번져 '來'자는 '오다'를 말하는 글자가 되었다.' (p. 33)

하늘이 곡식을 내려준다는 믿음 같은건 옛말인지 오래되었다. 하늘이 비를 내리는 게 아니라 수증기가 모여 구름이 되고 비가 내리고...어쩌구저쩌구...과학적으로 우리는 옛 믿음들에 대해 많은 것을 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천벌은 무섭고 하늘이 아니라면 우주 어딘가에 뭔가가 올것 같고 한걸 보면 인간사는 고대와 그닥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하튼 '來' 라는 글자가 보리였구나...

夜 밤 야

'팔을 벌리고 선 사람의 겨드랑이 아래 옆구리 뒤로 달이 떠있다. 이것은 밤 '夜'자가 품은 장면이다.' (p. 46)

行 다니다 행

'여행의 '行'자는 십자 모양의 사방으로 갈린 사거리를 본뜬 글자다. '行'자는 곧 그 갈림길을 걸어 다닌다는 의미다.' (p. 81)

이런 식의 한문 자체의 한자 이야기가 개인적으로 재밌지만 이 책의 제목에서 그러니까 '한자의 기분'에서 주인공은 '한자'가 아니라 '기분'이다. 따라서 한문 자체의 이야기보다는 그 한문과 저자의 어떤 기분이 왜 연결되었는가가 주로 쓰여진 산문집이다.



기분에 낀 연기煙氣를 해소하는 가장 빠르고 손쉬운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다. 어디에서 어떻게 응결되어 마침표 찍을지 미상인 글을 일단 시작해 써나가는 것. 소복소복 무참히 쌓여오던 시절의 기분을 노트북의 흰 창, 수첩의 백지에 어떤 모양새로든 끄적여 내려가다 보면 통쾌한 문장이 탁! 하고 떠오르는 때를 반드시 만난다. 어떤 문장은 부채가 디어 자욱했던 기분의 연기를 훨훨 날려주기도 하고, 어떤 문장은 색안경이 되어 매캐한 연기를 산천에 낀 우아한 안개로 둔갑해주기도 한다. 머지않아 연기가 걷히거나 혹은 연기를 잊게 될 순간에 도착해 비로소 후련한 숨을 내쉴 수 있게 되리라 믿기에, 어딘가 갇혀 있는 기분일 때에도 떠오를 미래에 많은 걸 맡겨 둔다. (p. 163)

읽다보면 저자가 느꼈던 비슷한 기분의 어떤 때가 떠오르기도 한다. 나라면 그때의 그 기분을 함축하여 어떤 한자로 대신할 수 있을까...생각해보기도 한다. 중요한건 한자를 알고 모르고가 아니다. 한자를 많이 안다면야 아 이 기분엔 이런 글자를! 할 수 있겠지만 한자를 몰라도 상관없을 것 같은 것이, 길고 어지러운 기분을 단정하게 줄이고 함축해본다는 시도가 중요한 것 같아서.

내가 시도해보는 노력은 생활을 무심코 채운 단어와 글자들의 정중앙으로 파고 들어가서 그 진짜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일이다. 일상에서 무심코 발음하는 단어들을 구서안 한자 그리고 그 한자가 뿌리 깊은 이야기를 돌아보는 일이 나의 기분, 나아가 누군가의 기분을 명료화하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p. 266)

- 에필로그 <기분의 뿌리> 中-

뒷표지 박준 시인의 추천사 처럼 이 책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감상적이다. 그러니 한자를 잘 모른다고 괜히 두려워하지 말고 용감하게 이 책을 펼쳐들길 바란다. 굳이 차례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 이 책을 펼친 순간에 내 눈에 꽂히는 그 한자의 페이지로 가서 한두페이지 읽고 나면 깨달아 진다. 아 이런 기분을 이런 한자로, 이렇게 한글자로 정리할 수 있었던 거구나 하고.

무언가를 정리한다는 것은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주변의 물건들을 정리하고 주변의 사람들을 정리하고 주변의 많은 것들을 정리하면서 정작 그날그날의 내 기분을 정리하며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이 책을 천천히 곁에 두고 읽으며 한번 시도해 보자. 내 기분을 '정리'하는 일 말이다. 그렇게 잘 정리되고 정돈된 기분이 내 삶을 보다 명확하게 해줄 수 있을 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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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 - 경성에서 서울까지, 시간을 건너는 미술 여행
우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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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숨결과 현대의 몸짓이 맞물리는 우리 그림 이야기

이 책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원인 저자가 <한겨레>토요판에 연재한 미술 칼럼 '우진영의 한국 근현대 미술 잇기'와 이후 웹진 <아르떼>로 지면을 옮겨 연재한 미술칼럼 '우진영의 한국 근현대 미술 산책' 글들을 보완해 만들어졌다.

원래 예술가가 되고 싶어 어린 시절 거의 모든 예술 분야의 사교육을 받았다는 저자는 나름 좋아했고 꽤 열심히 했지만 사춘기 무렵 '내게는 예술적 재능이 없다'를 깨닫고 미술사학도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전공한 저자에겐 '쓰고 싶다'는 강한 열망까지 있어 그림을 보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고 이렇게 책까지 나왔으니 요즘말로 성공한 덕후가 아닐까 싶다.

총5부로 구성된 이 책에선 매 글마다 두 명의 화가가 다루어 진다. 한명은 근대, 한명은 현대다. 한국 서양화의 역사는 길지 않기에 사실 근대와 현대가 구분이 되려나 싶기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거의 매글마다 덧붙여진 현대화가 작가들의 인터뷰에선 매번 비슷한 답변이 있었다. '한국의 근대 작가들을 많이 알지는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작가를 알게 되었다' 라고... 그러니 일반 독자로서 우리는 얼마나 생소한 작가들이겠는가, 고로 이참에 한국 서양화가들에 대해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근대 화가와 현대 화가를 묶은 기준은 오롯이 작가의 감상에 따른 결과물이다. 감상이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라 독자가 보기엔 왜 이 두 화가를 엮었는지 공감이 안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또한 이 책을 감상하는 재미중 하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읽는다기보다는 감상한다는 마음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내겐 그러했다.

그림을 잘 모르는 나라서 더구나 한국의 서양화에 대해선 거의 무지하다할 정도인 나라서 이 책이 재미가 있으려나 싶기도 했는데, 왠걸 첫 글부터 호기심이 일었다. 근대 화가로 김주경의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과 현대 화가로 정영주의 [도시-사라지는 풍경531]을 다루었는데 이게 근대와 현대가 바뀐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두 그림에서 느껴지는 시대감이 영 달랐다.

글을 읽어나갈수록 드는 생각이, 근대로 구분된 화가의 그림들을 보면서 그 시대 우리나라에 이렇게 잘 그리는 서양화가들이 많았다고? 싶었다.

내가 서양화라고는 했지만 이게 맞는 표현이 아니긴 하다. 수묵화를 그린 화가들도 다수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수묵화도 전통적 방식으로 그려진 것은 아니라 서양화를 배운 사람들이 나름 서양화적 다른 방법을 고민하고 발전시키고 반영하며 그린 그림들이라 또 아주 틀린 표현이 아닌것 같기도 하다.

그림이라는 것이 그리는 사람도 주관적 해석을 해서 그리는 거고 보는 사람도 화가와 다른 주관적 해석을 해서 보는 것이다 보니 때론 화가의 해석을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전문가라고 할 저자도 어떤 그림에선 뭔지 모르겠고 혼란스럽다 하니 일반 독자는 오죽하랴. 하지만 저자는 '그냥 내 식대로 해석하지 뭐'라고 결론 내리고 감상을 넘어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사실 독자로서 따라가기 어려운 부분은 그림에 대한 감상 보다는 이런 저자의 상상의 영역이다. 게다가 저자가 열심히 쓴 문장들을 나름 투영해 볼 대상인 그림이 실려있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어서 대략난감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들어떠하고 저런들어떠하리, 새로운 것을 감상한다는 것 자체가 쉼의 시간을 주는데.

그러니 '미술사는 인문학의 꽃이다. 우진영은 그 명제를 글로 증명해냈다'며 표지에 거창하게 둘러댄 홍보문구처럼 책속에 인문학도 역사도 그닥 없다고 해서 욕할 것 없다. 한국의 근대와 현대에 이런 멋진 그림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만으로도 이 책을 감상할 이유는 충분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의 크기가 너무 작은 것은 좀 아쉬웠다. 하지만 이또한 괜찮다. 그림이 궁금해져야 미술관에 가서 직접 보고싶다는 열망이 생길 테니까.

언제부턴가 이런저런 외국미술관과 협약된 대규모 전시회들이 성황이라는 소식을 심심찮게 듣기도 하고 직접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앞으론 잘 모르는 작가더라도 소규모 전시더라도 부러 찾아가고 싶어질 것 같다. 한국에도 이런 멋진 작품들을 그려내는 화가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 말이다. 그러다 내가 열광할만한 애정하는 화가를 발굴하게 될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그나저나 미술관에 가본지 꽤 오래전인 것 같다. 이 책을 읽고나니 갑자기 너무나 미술관에 가보고 싶어진다. 어떤 그림이든 그림을 보고 일상을 잊고 온전히 그림에 대한 감상만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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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관계 레볼루션 - 기술 패권 시대, 변화하는 질서와 한국의 생존 전략
이희옥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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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정학(技政學)'시대, 살아남을 것인가 도태될 것인가

정치·외교·경제·기술 분야 최고의 전문가 4인이 제안하는

생존을 위한 한국의 선택

'기정학(技政學)'이라는 단어가 낯설어서 이 책에 눈길이 갔다. 미중 갈등이 한두해 된것도 아니고 이 두 강국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 책도 적지 않다. 하지만 서로 다른 분야들이 합심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책이 필요한 때다. 이 책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경제 안보와 기술 패권을 연결하는 기정학(技政學)적 전략 아래, 한국에 '안미경미安美經美'라는 단일 선택을 요구하며 압박 강도를 점점 높이고 있'(p. 7)는 미국의 입장을 제대로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면 말이다.

2025년은 중국이 2014년에 야심 차게 입안한 정책인 '중국제도 2025' 10년 계획이 끝나는 해이기도 합니다. (p. 4) 트럼프 2기 정부는 한국이나 일본, 멕시코, 캐나다 같은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국들에까지 고율의 관세 정책으로 일관하면서 세계는 빠르게 그리고 불화길하게 바뀌고 있습니다. (p. 6) 이러한 상황에서 미중 패권 전쟁 전개 양상은 결국 한국의 운명과 직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p. 8) 저희의 대담을 통해, 미중 기술 패권 전쟁에서 한국은 반드시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단정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p. 9)

들어가는 말 中

이 책은 성균관 대학교의 각 분야 전문가 4명의 교수 즉,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희옥, 경제학과 교수 김영한, 화학공학부/반도체융합공학과/미래에너지공학과 교수 권석준,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차태서 이렇게 4명이 모여 대담한 내용을 주제별로 정리한 책이다. 대담이다 보니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대화체로 쓰여 있어서 마치 영상을 글자로 읽는듯 편하게 읽힌다. (조금만 상상력을 가미하여 4명에게 캐릭터와 목소리를 부여한다면 책을 읽는 어느 순간부터는 글자가 말로 들리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다. ㅎㅎㅎ)

4개의 챕터는 그 장의 중심 화두라고 할 수 있다. 1.미국, 무엇을 원하고 어디로 가는가 / 2.미중 경쟁,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3. 한국, 생존할 것인가 도태될 것인가 / 4.길 없는 길 위에서 살아남기 라는 큰주제들은 모두 시대가 던지고 대중이 궁금해하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기에 이 4명의 전문가들이 함께 이야기 나누며 답을 정리해 나가는 과정에 동참하다 보면 어느 순간 고개를 갸웃하게도 되고 어느 순간 깨우쳐지게도 되면서 조금은 희망을 찾게 되기도 한다. 지금 한국에게 가장 큰 고민은 트럼프 2기 정부라 할 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미국의 상황부터 제대로 알아봐야 한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초래한 소득 격차 같은 부작용, 그로 인해 노동 계급의 어떤 분노가 폭발한 것이 포퓰리즘 부상의 주요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것, 이것이 경제적 관점에 따른 설명이고요, 문화적 관점에서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유색 인종들의 이민이 늘었고 북미 지역, 또 서유럽에서는 소위 '다수-소수'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원래 다수였던 인종이 소수화되는 것, (...) 그에 대한 문화적인 불안, 인종적인 불안 같은 것을 백인들이 느끼고, 일종의 반격현상이 발생합니다. (...) 정치의 영역으로 폭발한 것이 미국에서는 '트럼프 현상'이고, 현재 MAGA의 전체적인 배경을 이루게 됩니다. (p. 21, 22)

지금 미국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MAGA 세력이나 그 배경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런데 이 MAGA가 정말 미국의 슬로건인가? 정말 트럼프의 논리인가? 하면 그게 또 단순하게 그렇다고만은 할수 없다고 한다. 미국이 중국에 날을 세운지 꽤 되었고 그에 따라 '신냉전'이라는 표현도 심심찮게 사용되지만 중국은 현상황을 그렇게 보고 있지 않다고도 하고.

지금까지 미중 신냉전, 미중 경쟁을 둘러싼 주된 담론은 보통 미국의 국력을 중국이 언제 따라잡을 것인지, 또는 따라잡지 못하는 것인지 등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객관적 국력 격차에 굉장히 주목해 이루어져 왔죠. 그래서 미중 사이의 군사력이나 경제력을 비교하고, 만약 둘 사이의 격차가 사라지게 된다면 전쟁이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등 미중 관계를 '투키디데스 함정'개념으로 많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국내 상황, 특히 트럼프 등장 이후 약 10년간의 상황을 봤을 때 오히려 투키디데스 함정보다는 '킨들버거 함정'을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p. 35)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아테네의 성장에 대한 스파르타의 두려움이 두 국가 간 경쟁을 촉발했다고 평가함으로써 신흥 강대국의 부상이 기존 패권국의 불안을 자극하면 결국 무력 충돌로 이어진다는 것이고, 킨들버거 함정은 1차 세계대전 이후 패권국의 지위를 얻게 된 미국이 보호 무역을 고수하며 패권국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결과 대공황이라는 세계적 혼란이 지속되었고 이것이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고 미국의 경제학자 킨들버거가 분석한 것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이 책에서 한 대담자는 이 킨들버거 함정을 현상황에 빗대며 '탈단극'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미국의 국력이 약해지거나 중국의 국력이 강해져서 생기는 문제보다는, 오히려 미국이란 나라의 '주관적 의지'가 빠르게 쇠퇴하며 생기는 문제가 더 클수도 있겠다(p. 36) 라면서.

과거 사례를 보더라도, 영국도 그랬고 그 이전 패권국도 그랬고 (패권)하강기에는 점차 약탈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거든요. 지금 미국도 점점 더 단기적 국익에 집중하고 동맹국들로부터 조금씩, 어떻게 보면 '조공'내지 '보호세'를 뜯어내려고 하는데, 이게 사실 과거 패권국에서도 어느 정도 보였던 모습이라는 겁니다. 즉 트럼프가 그렇게 특이한 사례는 아니라는 거죠. (p. 50)

읽다보면 미국의 상황은 당연하게도 단순하지가 않다. 트럼프를 선택한 미국인들의 선택이 이해가 안됐었지만 트럼프가 그렇게 특이한 사례가 아닌 것을 보면 가능했음직한 선택이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경제 관련 지표들이 보이는 부정적인 흐름은 오로지 트럼프 자신이 만들어 낸 거거든요. (p. 53)'라는게 문제다. '예측 불가능한 형태의 협박으로 동맹국에 소위 '삥 뜯기' 전략을 취했을 때 가장 많은 정치적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걸 트럼프 스스로 알고 있 (p. 55)' 다는게 문제다. 이러한 트럼프가 중국에 대해 오판을 하고 있는 거라면? 지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딱 사이에 끼어 있는 한국은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저런 질문에 대해 답을 정리하는 건 이 책에 대한 스포가 될 것 같아서 이쯤에서 호기심이 생긴다면 책을 직접 읽어보기를 권한다. 200여 페이지의 짧지만 굵은 내용들이 호로록 읽히면서도 묵직한 혜안을 밝혀줄 것이다.


세상을 어떤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느냐, 또 누가 창의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느냐가 더욱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p.205) '좋은 세상'은 계획만으로는 오지 않습니다. 상상과 꿈으로부터 나오죠. 이 꿈이 바로 문제 제기의 영역입니다. (p. 206)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 세상이 망해 가고 있다 라는 말 한번쯤 안해본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정치의 ㅈ만 나와도 설레설레 고갯짓을 하게 되는 사람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좀더 살 만하게 만드는 것 또한 정치의 영역에서 일어난다. 정치의 어둠 속에서 벗어나면서 경제의 희망을 찾아보려고 하는 이때에 우리가 해야할 일중 하나는 질문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질문이 제대로 된 답을 찾게 한다. 한국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두 강대국의 관계에 대해 그 사이의 한국에 대해 질문을 가져보고 책속의 대담자가 되어 함께 이야기 나누듯 이 책을 읽어보자. 어쩌면 책 내용의 이해를 넘어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게 될 수 있을 지도 모르니.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겠다라는 식의 큰 꿈은 버린지 오래다. 하지만 질문하는 정도의 꿈은 지금도 가질 수 있지 않겠나. 더구나 그 질문이 세상을 좀더 살만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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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미술사 - ‘정설’을 깨뜨리고 다시 읽는 그림 이야기
박재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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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의 모든 작품은 선택되고, 때로 오해되었다가, 마침내 되돌아온다

"최초" "원조" "천재"의 신화 너머 섬세하고 입체적인 '두번째 해석'

역사를 좋아해서 역사책을 몰아읽어대던 때가 있었다. 서양사를 파고들다보면 자연스레 접하게 되는 영역이 미술사다. 고대그리스시대부터 예술은 서양사와 그 결을 함께 해온터라 미술사조가 분명했던 건 그만큼 그 시대의 역사에서 예술이 그 색깔로 존재감을 뚜렷이 드러냈다는 의미다. 따라서 그 미술사조가 왜 대표적이 되었나 배경을 찾아보면 역사적 사건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서로 돌고도는 관계가 역사와 미술사였다.

여하튼 그렇게 역사를 읽다보면 자연스레 미술사도 꽤 많이 알게 되는 터라 역사책이 부담스러울때 가볍게 읽게 되는 책이 미술사책이 되기도 했다.눈이 즐겁기도 하고.

왠만한 미술사책들을 읽고나면 사실 미술사도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처럼 큰줄기만 기억하게 되곤 하는데 그럴때 소소하고 세밀한 재미를 주는 책을 곁들이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바로 이 책과 같은 책을 읽어야 할 때랄까.

이 이야기들은 모두 사실일까? 반드시 사실이어야만 의미가 있는 걸까? <두번째 미술사>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p. 4) 예술을 둘러싼 수많은 '왜?'를 놓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예술가들의 많은 일화가 사실은 후대에 덧씌워진 이야기들이었다는 점이다. (p. 5) 누가 역사에 남고 누가 사라지는가는 단순히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와 사회가 어떤 이야기를 선택해 기억하는가에 달려 있다. (p. 6) 우리가 왜 특정 이야기를 더 진실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지 그 바탕에 놓인 문화적 욕망과 기억의 힘도 함께 탐구하고자 했다. 결국 이 책은 미술사 자체를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바라보려는 작은 시도이기도 하다. (p. 7)

-프롤로그 中-

우리가 아는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고 하지 않나, 미술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아는 과거의 이야기들은 결국 앞선 이들이 남기고자 했던 기록들이기에 우리는 그 기록들 너머 버려졌던 기록들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균형이 맞을 테니까. 그리고 이 감춰진 이야기들이 실은 더 재미있다. 팩트임에도 카더라처럼 알게되는 묘미랄까.

차례를 보면 크게 7개의 질문아래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묶여져 있다. 거장의 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예술가는 어떻게 브랜드가 되는가, 누가 기억되고 누가 잊히는가, 무엇을 그리고 무엇을 그리지 않는가, 예술가의 뒤에는 누가 있는가, 작품 제목은 왜 문제가 되는가, 미술관은 어떻게 명작을 만드는가. 어떤 질문이 가장 끌리는가? 그 쳅터부터 읽기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이 책은 시대순서적으로 쓰인 史가 아니라 두번째 미술사니까 말이다.

이미지는 상당 부분 고갱 스스로가 만들어낸 '자기 신화'였으며, 실제 타히티에서의 삶은 훨씬 더 복잡하고 모순적이었다. (p. 34) 식민지 현실 속에서 자신만의 이상을 끊임없이 조작하고 설계해야 했던 예술가(p. 36) 고갱 자신이 타히티 생활을 의도적으로 낭만화 했다(...) 실제 타히티 여성들은 이미 기독교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유럽식 복장을 갖춰 입고 있었고, (...) 고갱이 화폭에 담은 풍경과 인물상들은 결국 존재하지 않았던 원시성을 상상으로 보완한 결과였다. (p. 37) 그는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타히티의 현실을 왜곡했고, 상상 속 원시 낙원의 신화를 창조해냈다. (p. 39)

예술작품에 대한 선호도는 개인의 취향일 테지만 역사적으로 인정받는 명화의 영역에는 어느정도 대중적 공감이 있어야 할텐데, 나는 미술사를 읽으며 가장 공감할 수 없던 명화가 고갱의 작품들이었다. 고갱의 자만심도 거슬렸고. 그가 어느정도 자의적이자 의도적 낭만화를 그렸다는 것은 알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의도적이라기 보다 거의 사기꾼적으로 자기신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을 확인하니 역시 싶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기신화창조가 성공했다는 점이 씁쓸했다. 영웅은 시대가 만들어낸다고 하지않나, 명화도 그러하다, 그 시대에 통할 것 같은 자기신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영웅이 되고 천재화가가 된다. 우리도 최근 겪지 않았나? 만들어진 신화에 속아넘어간 댓가는 엄청나다는 것을.

1857년 살롱전에 출품한 <이삭줍기>는 노동계급을 내세웠다는 이유로 보수적인 평단의 혹평을 받았지만, 같은 해 그리기 시작한 <만종>은 종교적인 정서를 담은 덕분인지 한층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p. 74) 밀레가 1857년에서 1859년 사이에 완성한 이 작품은 처음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1860년 벨기에 화가 빅토르 드 파펠뢰에게 단돈 1,000프랑에 팔렸다. (p. 75)

주목받지 못하던 그림이 경매에서 미국인에게 넘어가면서 프랑스의 국민작품이 되었다. 당시의 애국심을 건드렸던 이 그림이 프랑스 자산가에 의해 프랑스로 돌아오면서 명실상부한 프랑스 대표 그림이 되었다. 명화는 물론 기본적으로 잘 그려진 그림이어야 하겠으나 대부분 이렇게 당대의 감정을 건드려야 하는 것이다. 이래서 명화는 역사와 땔래야 땔수 없는 것이다. 시대가 만들어내는 신화창조의 결과물이 되기도 하니 그 시대가 무엇을 왜 원하는가는 역사가 알려주므로.

프랑스 법에 따라 기관주문 8점, 개인 주문 4점을 포함한 총12점을 원본으로 간주한다. (...) 1999년 삼성문화재단이 일곱 번째 에디션을 들여오며 한국에서도 <지옥의 문>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는데, 재단은 로댕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기 위한 로댕 갤러리를 별도로 마련한 바 있다. (p. 82)

하지만 지금은 볼 수 없다. 갤러리 이름도 바뀌었고 작품은 어느 수장고엔가 고이 모셔져 있다. 내가 미술사를 진즉 읽었더라면 상설 전시할때 볼 수 있었을텐데... 이젠 죽기전에 한번 볼수 있을지 알수가 없다. 아쉬운 일이다. 여튼 이 옛날에 이런 선구안으로 한국의 예술품 보유 수준을 높여 놓은 것은 대단한 일이다.

드 라 투르의 재발견은 단순히 작가 한 명을 발굴하는 일이 아니라, 미술사 자체가 어떤 '기억'을 선택하고 또 어떤 '망각'을 가정하느냐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예술이 잊히고 다시 소환된다는 건 그 시대의 취향과 문화정치, 철학이 맞물린 복합적인 사건이다. (p. 93) 예술사 안에서 '누구의 목소리가 기록되고, 누구의 존재가 지워졌는가'를 되묻는 일이기도 하다. (p. 95)

드 라 투르 라는 이름이 생소할 것이다. 하지만 그림을 보면 아하! 무릎을 탁 치게 될 것이다. 어디선가 한번쯤은 봤을 법한 유명한 촛불 그림이니까. 그림 제목은 <등불 아래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이다.

정말 칸딘스키 혼자 힘으로 추상미술이 시작된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추상회화의 탄생에는 여러 숨은 주역들이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20세기 초 스웨덴의 여성 화가 힐마 아프클린트다. (p. 114)

'최초' 나 '원조' 가 붙은 것들에 우리는 아주 큰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더한다. 하지만 알고보면 '최초'가 최초가 아니고 '원조'가 원조가 아닐 수 있다. 추상미술의 시발점으로 칸딘스키가 거론되지만 그보다 100년 전에 이미 그런 추상미술을 그려낸 화가가 있었다. 그런데 왜 '최초'나 '원조'가 될 수 없었을까? 추상미술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시대적 여건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모든 '최초'와 '원조'에 한번쯤 의심을 가져봐야 한다. 정말 처음이라고? 맛집도 그렇지 않은가, '원조'라고 붙은 곳 치고 진짜 원조가 잘 없는. 창조의 영역인 예술에서도 모든 새로운 것이 갑자기 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법은 없다. 모든 창조는 다 앞선 이들의 경험이 바탕되었기에 가능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1세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이야기는 오랜 세월 예술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으로 회자되어 왔다. (p. 160) 하지만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그럴싸한 허구'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역사 연구에 따르면 다빈치가 사망한 1519년 5월2일 당시 프랑수아1세는 루아르 계곡에 머물고 있지 않았다. 파리 근처 생제르망에서 둘째 아들 앙리의 탄생을 축하하는 궁정 연회에 참석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바사리의 기록에는 사실과 어긋나는 부분이 많다. (p. 162)

미술사를 읽다보면 만나게 되는 이름이 '바사리'인데 그가 미술사의 기초를 서술해놓았기 때문일테지만 그가 쓴 미술사는 역사라기 보다 창작에 가까웠다. 그가 선별해놓은 명화의 기준과 천재의 이야기들이 다 팩트일 수는 없지만 바사리가 쓴 미술사의 영향력은 지금도 막강하다. 최초나 원조의 힘이 이런 거니까. 하지만 허구를 허구라 굳이 밝히지 않는 선택을 하는 지금도 그 이유는 시대의 '선택'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늘 생각해 봐야 한다. 이 시대의 선택이 왜 이런가에 대하여.

벨기에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의 1929년 작에 적힌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문구 중 하나다. 작품의 진짜 제목은 프랑스어로 <이미지의 배반>이다. (p. 204)

작품의 제목은 몰라도 저 문구는 아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아니 사실 그림의 제목이 저 문구인줄 아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사실 저 문구는 넌센스에 가깝다. 그림이니 진짜 파이프일수는 없다.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생각한다. 파이프인데 왜 아니라고 하지?하면서. 사실 최초나 원조라는 수식어는 이럴때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개념미술의 아이디어를 이렇게 대중화한 화가가 또 없지 않나 싶어서.

제목과 대중의 인식에 대한 넌센스적 그림의 대표 경우가 또 있다. 뭉크의 <절규>다. 이 그림의 제목사실 절규가 아니었다. <자연의 비명> 이지. 그림속 인물이 내지르는 절규라는 것과 자연에서 들리는 비명때문에 귀를 막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은 너무도 다른 해법 아닌가? 하지만 대중이 선택하는 제목에는 다 그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처럼 예술은 시대를 반영한다. 어떤 식으로든.

미술관의 벽이 항상 하얀색이었던 건 아니다. 지금의 전시 방식은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전시 문화의 결과물이다. 원래부터 그랬던 건 없다. 19세기까지의 미술관의 전시실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다. 벽면은 붉은색이나 초록색 벨벳 천으로 덮여 있었고, 샹들리에나 금빛 몰딩 같은 장식도 많았다. (p. 251)

전시장의 인테리어에 그리 관심을 두지 않게 되곤 하지만, 사실 이 '배경'에는 상당한 공을 들여야 한다. 작품을 더 빛나 보이게 하기 위해선 그 배경이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배경에 그림이 걸리느냐에 따라 그 그림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 19세기 전시장의 이 화려한 배경을 염두에 두고 그림의 색채를 선택하는 화가들도 많았다. 배경이 흰색이었다면 다른 명화가 탄생했을 수도. '어떤 공간이 무엇을 이상적인 에술로 간주하느냐는 기준은 결국 그 공간의 미학과 정치가 결정한다. (p. 255)' 우리가 예술작품을 관람할때 우리는 의도된 연출에 따른 해석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니 그 의도를 파악해보는 것은 관람의 새로운 재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살면서 예술 작품 하나 벽에 걸고 살게 될 일이 과연 한번이나 있을수 있나 싶지만 그래서 예술품은 내게 너무 먼 사치품이겠거니 하고 살게 되기 마련이지만 소유하지 않아도 예술전시 관람은 더 쉬워졌으므로 우리는 예술세계에 한발 더 내디뎌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예술품은 그저 한 예술가의 작품을 너머 그 시대의 메세지를 담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의 문화적 욕망 읽기라는 측면에서 미술사를 읽어보고 전시관람도 해보고 그런 경험이 쉬워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누리며 살 수 있기를 바래본다.아마 이 책이 그러한 경험을 더 쉽게 도와줄 것 같기도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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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2-07 0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익한 미술교양도서라고 판단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