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 라 에르모사 게이샤 #2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9월
평점 :
품절


청사과의 부드러운 산미, 그리고 언에어로빅가공법 조금은 새롭게, 호기심이 느껴지네요. 듣기로는 무산소발효한 커피는 나름의 독특한 향을 가진다고 하는데, 과연 어떠할지 기대반 걱정반? 입니다. 사실 지난번 콜름비아 라 에스페란자 게이샤는 생각보다 게이샤치고는 너무 평범하고 단조로왔습니다.일단 예약주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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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신뢰하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우리의 작은 이야기를 위해 작성한 대본,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신뢰에 근거하여 그분과 맺은관계는 배제한 채 복만 요구하는 대본에 하나님이 협조하셔야 한다는 우리의 오만하고 어리석은 기대를 약화시킨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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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는 빠른 눈길로 훔쳐보았다. 저리도 준수하게 잘생기고서울에서 대학까지 다니는 부잣집 아들이 뭐가 모자라서 좌익을하는 것일까. 좌익은 지주나 부자들을 원수로 삼고, 가난한 농부나불쌍한 노동자를 한편으로 한다고 하지 않던가. 부잣집 아들이 좌익을 했으니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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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Eritrea on the Red Sea. The name Sahel comes from the Arabicsahil, which means "coast," and is how the people living in the regionthink of it-as the shoreline of the vast sand sea of the Sahara. It isanother sort of shore, one where the influence of Islam diminishes.
From the Sahel to the Mediterranean the vast majority of people areMuslims. South of it there is far more diversity in religion.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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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망사』를 쓴 영국의 에드워드 기번, (3)의 전형으로는 『전사(戰史)의 저자인 투키디데스를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심양면으로 우세했을 터인 조국 아테네가 왜 스파르타에 패했는가. 그 책임을 남에게 전가할 수도 없는 아테네 사람 투키디데스의 깊은 회한과 뜨거운 분노가역사 저술의 최고 걸작을 낳았다. - P21

역사 서술의 동기는 크게 다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호기심이 풍부하여, 그로써 알게 된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기를천성적으로 좋아하는 경우.
(2) 과거를 서술함으로써 현재와 미래에 교훈이 되기를 바라는 경우.
(3) 비참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동포에 대한 강렬한 분노. - P21

상상하건대, 제정 로마시대의 최고 역사가인 타키투스는 (2) (3)의 혼합형이었던 듯하다. 아니, (2)가 4분의 1, (3)이 4분의 3을 차지하 - P21

"이것을 다 쓴 뒤에도 나에게 목숨이 남아 있다면, 그 노년기는 네르바와 트라야누스 황제를 이야기하는 데바칠작정이다."
그런데 타키투스는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집필자체를 그만둔 것은 아니다. 네르바와 트라야누스에 대해서는 쓰지 않았지만,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사망한 뒤부터 시작하여 네로 황제의 자결로 끝나는 『연대기』를 썼기 때문이다. - P20

후세가 오현제(五賢帝)의 한 사람으로 꼽았을 뿐 아니라 동시대의로마인들마저 ‘최고의 제일인자‘(Optimus Princeps)로 찬양하고, 게다가 이것을 공식 칭호로 삼기로 원로원이 의결했을 만큼 평판이 좋았던트라야누스 황제의 치세에 관해서는 신뢰할 만한 문헌자료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 P23

동시대 사람인 타키투스나 수에토니우스만 쓰지 않은 게 아니다.
200년 뒤인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시대에 여섯 명의 역사가가 분담하여 쓴 『황제실록』(Historia Augusta)은 도미티아누스 황제로 끝난수에토니우스의 『황제열전』속편을 쓰는 것이 목적이었는데도 하드리아누스 황제부터 시작했다. 여기서도 네르바와 트라야누스는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빠져버렸다. 1년 반밖에 재위하지 않은 네르바를 무시한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20년이나 재위한 트라야누스를, 게다가온갖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쌓은 트라야누스를 다루려 한 로마 시대의역사가가 한 사람도 없다니! - P23

후세에 쓰인 연구서를 흔히 ‘제2차 사료‘라고 부르는 로마사 연구자들이 ‘제1차 사료‘나 ‘원사료‘라고 부르는 것은 다음 여섯 가지다.
(1) 문헌자료(로마 시대 사람이 써서 남긴 글)(2) 고고학적 성과(3) 금석문(비석, 동판 등)(4) 금화, 은화, 동전(5) 초상 등의 조형미술(6) 파피루스 문헌(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중동 일대의 것에 한함) - P24

하지만 이 한마디가 트라야누스에 대한 후세 역사가들의 견해를 결정했다. 그리고 고고학, 금석문, 화폐, 조형미술, 파피루스 문헌 등이이 견해를 실증했다.
그렇다면 이제 더이상 타키투스를 ‘원인‘(原案)으로 삼을 수 없게된 내 입장도 결정된다. 제7권과 제8권에서는 "타키투스여, 당신은 트라야누스가 못된 황제라고 단죄하지만 정말로 그랬을까" 하는 의문을중심축으로 삼은 반면, 이 제9권에서는 "그가 현제라는 데에는 뭇사람의 의견이 일치된 모양인데, 그렇다면 현제란 과연 무엇이며, 어떤 이유로 로마인들은 그를 현제로 찬양했을까"가 내 생각의 중심축이 될것이다.
어쨌거나 그 시대를 ‘오현제 시대‘라고 부른 것은 후세지만, 동시대로마인들도 ‘Saeculum Aureum‘ (황금 시대)이라고 불렀으니까.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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