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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불씨는 어디에나
실레스트 잉 지음, 이미영 옮김 / 나무의철학 / 2018년 5월
평점 :
품절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8/0513/pimg_7576761531906614.jpg)
500페이지에서 겨우 5페이지 부족한 두꺼운 소설책, 이런 장편을 거침 없이 세상에 내놓는 작가들을 사랑한다. 독자들을 사로잡을 자신이 있다는 그들의 오만함이랄까, 자신감이랄까 특유의 그 무엇이 내게 없다는 것을 알고 소설가를 꿈꾸다 포기한 어린 시절의 나는 아직도 내 속에 시퍼렇게 살아있어 시기 가득한 열정으로 이런 무거운 책을 (임신 8개월이라 무거운 몸으로) 오늘도 열심히 짊어지고 다니며 읽었다.
이야기의 배경은 "계획"이란 것이 철저하게 우선시되고 추앙 받는 지역사회 셰이커하이츠. 그 곳을 대표하는 듯한 변호사 리처드슨, 기자인 그의 아내 리처드슨 부인, 부족함 하나 없이 살아온 십대 아이 셋... 더하기 하나, 이 막내는 셰이커하이츠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다른 가족들과 달리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맘에 들지 않는다.
이런 막내딸이 말썽을 부려도 리처드슨 부인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순탄하고 평온하기 그지 없었는데 그런 그녀의 앞에 무계획, 불안정의 아이콘! 미혼모 미아와 그녀의 딸 펄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녀들의 자유분방함이 리처드슨가의 아이들을, 리처드슨 부부를 여러 모양으로 변화시키고 혼란스럽게 만든다. 일련의 사건들이 작은 불씨처럼 지펴지고 스스로가 옳다고 믿어왔던, 그래서 열심히 지켜왔던 일상이 마구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리처드슨 부인과 미아의 대립이 흥미롭다. 그들 인생의 여러 사건들의 짜임이 촘촘하고 인물 간의 갈등도 평범한 듯 보이지만 첨예하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8/0513/pimg_7576761531906615.jpg)
작가가 인물들의 입을 빌어 하는 평범한 이야기들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 특히 미아, 그래서 그녀의 한 마디가 미친 걸스카우트(리처드슨가의 막내 이지)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켜 행동하게 만들고, 그녀의 작은 행동이 엄마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렉시로 하여금 털어놓게 만들고, 무디와 트립은 그녀의 작품으로 위로받았을 듯. 하물며 철의 여인 같았던 리처드슨 부인까지도 스스로의 본심을 깨닫고 칼날 같은 울음을 토해내게 됐으니 쿠크다스 같은 나의 멘탈이, 나의 마음이 동하지 않았을리 만무하다.
하여 두꺼운 소설책은 훌륭하다, 라는 나의 지론은 이렇게 오늘도 건재하다. 그대들에게도 일독을 권하며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