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들의 이상한 과학책
신규진 지음 / 생각의길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평판이 좋은 대중과학서를 읽다 보면 단순한 과학적 사실만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과학적 사실이 도출될 때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과학이 의심이나 회의의 학문이라는 특성 때문에 기인한 것입니다.

 즉, 절대 진리의 과학적 사실이란 없고 현재의 패러다임에서 합리적으로 수용할 만한, 혹은 합리적이라 믿을 만큼의 충분한 증거가 쌓인 과학적 사실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과정을 설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좀더 멀리 보기 위해 필요한 ‘거인의 어깨’에 오르는 과정인 것이지요.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과학 지식 뿐만 아니라 과학적으로 사고하고 문해하며 맥락을 이해하는 ‘과학 리터러시’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그게 바로 과학책을 읽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좋은 대중과학서는 시중에 많이 출간되어 있습니다. 특정 분야를 깊게 파고들어 설명하는 과학책도 있고 ‘렉처 사이언스’ 시리즈와 같이 특정 주제를 바탕으로 여러 과학 분야의 전문가가 해당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 과학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분야의 주요 원리나 이론을 한 권에 모아서 설명해주는 좋은 대중과학서는 의외로 드뭅니다. 




이번에 출간된 “최고들의 이상한 과학책 (신규진 著, 생각의길)”은 ‘원리와 법칙, 공식과 이론을 꿰뚫은 결정적 과학 28가지’라는 부제 하에 현대 과학 이론의 주요 분야 (전자기학, 광학, 운동역학, 상대성이론, 핵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질학, 의학, 우주론 등)을 총 28가지 아티클로 정리한 책입니다. 저자는 현직 고교 과학 교사이면서 저술 활동도 열심히 하는 분으로 알려져 있으며 ‘올해의 과학 교사’를 수상한 바도 있다고 합니다.


 이 책의 각 아티클은 현대 과학의 주요 이론과 원리에 영향을 준 ‘최고’ 과학자를 중심으로 과학 발전의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습니다. 그 중 몇 개의 아티클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먼저 소개드릴 분은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입니다. 패러데이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3살부터 서점에서 서점 점원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이 때 서점에서 제본하는 책의 내용을 섭렵하면서 과학에 대한 흥미를 키우다 당대 최고의 과학자 중 하나인 험프리 데이비 (Sir Humphry Davy, 1778~1829)의 조수로 채용되어 연구소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패러데이는 두각을 나타내게 되는데 패러데이의 연구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게 되어 별다른 학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장일치에 가까운 추천을 받아 왕립학회 회원이 됩니다. 

이때 패러데이는 모터나 발전기의 원리를 최초로 발견하여 ‘전자기력에 의한 회전’이라는 논문을 통해 발표하였고, 이후 전자기 유도 실험을 성공시킵니다. 이를 계기로 실제로 작동하는 인류 최초의 발전기까지 만들어냅니다.  패러데이의 전자기 유도 실험은 이후 맥스웰 방정식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현대 과학에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아인슈타인이 가장 존경했던 선배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는 어떤 작위도, 어떤 지위도 사양하고 연구와 실험에만 몰두하다 1867년 세상을 뜨게 됩니다. 


고대 철학자 중에 한명인 에라토스테네스 (Ερατοσθένης, BC 276~BC 194)은 소수를 찾아내는 알고리즘은 ‘에라토스테네스의 체(Sieve of Eratosthenes)’를 개발했는데 그의 이름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바로 막대기 하나로 지구의 크기를 측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위도가 다른 두 지점 (시에네, 알렉산드리아)에서 하짓날 정오에 막대기의 그림자 각도를 이용하여 지구의 크기를 측정했는데 지금보다 약 10% 정도 큰 값으로 비교적 정확하게 측정했습니다. 이 때 가정으로 삼았던 것은 바로 지구가 구형이라는 것과 빛의 직진성이었습니다. 비이성적인 반지성주의가 득세하면서 지구평면설 같은 유사과학이 최근 그 힘을 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3000년 전에 살았던 고대 그리스인이나 동아시아인들도 월식이나 달의 위상 변화 등에서 유추하여 지구는 구형이라는 생각을 일반적으로 했음을 볼 때 현대 과학에 의한 증거가 차고 넘치는 시점에서 지구 평면설을 믿고 있다는 것은 참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외에도 흥미로운 아티클들이 책에 가득하니 직접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최고들의이상한과학책, #신규진, #생각의길, #과학발전의역사,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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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랜드 - 사악한 돈, 야비한 돈, 은밀한 돈이 모이는 곳
올리버 벌로 지음, 박중서 옮김 / 북트리거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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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nternational Consortium of Investigative Journalists, ICIJ)라는 NGO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탐사보도 관련 민간 단체인 공공청렴센터(Center for Public Integrity, CPI)의 산하 조직으로 전 세계 60여개국의 탐사 보도 관련 언론인들이 참여하고 있는 비영리 탐사보도 전문 기관입니다. 


이 단체가 국제적으로 유명하게 된 것은 바로 파나마 최대의 로펌인 모색 폰세카(Mossack Fonseca & Co.)가 보유한 1,150만 건의 비밀문서인 파나마 페이퍼스(Panama Papers)를 2016년에 폭로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폭로한 문건에는 아르헨티나 대통령, 사우디 아라비아 국왕, 아이슬란드 총리,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 중국 국가 주석의 친척, 한국 전 대통령의 자녀 등 전 세계의 부유층과 권력자들이 어떻게 돈을 빼돌려 재산을 은닉했는지에 대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이 사건에서 모색 폰세카라는 회사가 재산을 빼돌려 은닉하고 싶어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바로 역외회사(域外會社, Offshore company) 설립 등의 역외 금융 서비스입니다. 

(이 문건에 이름이 오른 몇 명이 물러나는 것에 그치고 폭로의 파괴력에 비해 의외로 조용하게 잊혀졌으며 오히려 이 폭로를 주도했던 기자는 차량 폭파 테러로 사망하였습니다.)


그 1년 뒤 ICIJ는 버뮤다의 로펌 애플비(Appleby)가 보유한 1,340만 건의 비밀 문건인 파라다이스 페이퍼스를 폭로합니다. 이 문건에는 영국 여왕, 미 대통령의 측근, 일본 전 총리, 한국 대기업 총수를 비롯해 나이키, 애플 등의 역외 투자 및 탈세 정황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위 사건들을 보면서 부자와 권력자들이 돈을 해외로 빼돌렸구나 하고 생각이 들긴 하지만 역외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기사들을 따라 가다 보면 대충 감은 잡히지만 명확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이번에 출간된 “머니랜드 (올리버 벌로 著, 박중서 譯, 북트리거, 원제 : Moneyland: Why Thieves and Crooks Now Rule the World and How To Take It Back)”를 통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자인 올리버 벌로 (Oliver Bullough, 1977~)은 영국 웨일즈 태생의 탐사 전문 기자입니다. 그는 신흥 부유층인 올리가르히(Олигархи, 러시아 등 구 소련 국가들의 경제 특권층)가 흘린 돈의 흔적을 따라 추적하면서 유령 회사, 신탁 등 역외 금융 서비스 혹은 국제 자산 보호 산업이라 명명된 조세 회피 사업을 파헤쳐 책으로 출간하였습니다. 이 책은 출간 이후 ‘타임즈’, ‘이코노미스트’, ‘선데이타임스’ 등 유력 매체에서 올해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고 스파이 소설의 대가인 존 르 카레 (John le Carré, 1931~)의 추천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전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 (Віктор Федорович Янукович, 1950~)는 단 4년 간 우크라이나를 통치하면서 수억 달러를 훔쳐 그 자신은 엄청난 부자가 되었지만 우크라이나는 파산하고 맙니다. 그는 자연보호구역을 자신의 별장으로 만들었는데 그 면적은 무려 300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고 합니다. 참고로 서울의 면적이 605제곱킬로미터이니 서울의 절반 정도가 그의 별장이라 생각하면 그 규모를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의 재산을 파헤쳐 보니 온갖 익명의 소유주들이 튀어 나오고 법적으로는 손을 댈 수 없었으며 자산은 비록 우크라이나에 있었지만 법적으로는 따라갈 수 조차 없는 어딘가에 있는 셈이었습니다. 


저자는 돈은 국적 없이 자유롭게 국가를 넘나들며 빠르게 흐르는 반면 이를 규제해야 하는 법은 따라 움직일 수 없어 법규를 적용할 수 없는 역외 구조의 세계를 야비하고 사악한 돈이 은밀하게 모이는 나라, ‘머니 랜드’라 명명하고 이를 감시하고 무너뜨려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 나라를 통치하는 사람이 그 나라를 약탈하는 일이 얼마나 쉬운데 반해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는 이야기를 보면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라는 환상이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기초 위에 있는가를 깨닫게 합니다. 



#머니랜드, #올리버벌로, #북트리거, #박중서, #역외, #조세회피, #21세기해적질, #돈이모이는곳, #약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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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김선지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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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戰士)의 유골이 발견되었습니다. 누구나 남성의 유골이라 생각했겠지요. 하지만 최근 DNA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 유골은 여성의 유골로 밝혀지게 됩니다. 바로 초기 철기 문명을 이끈 스키타이 유적에서 발굴된 여성 전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https://www.sciencealert.com/new-dna-analysis-reveals-an-ancient-scythian-warrior-was-a-13-year-old-girl?fbclid=IwAR0StS4t6MLAe9vBqTfrm4pedUYXpHx34hzURHSIKSyeT7QVwuHsqR8vP28)

전사하면 남성을 먼저 떠올리듯 우리는 많든 적든 고정된 성역할 혹은 편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지금에 와서는 어떤 차별주의자도 마음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던 간에 여성들의 능력이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이야기를 ‘공식적’으로 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불과 100여년 전의 영국에서는 여성이라는 성별 집단 전체적으로 금치산자로 분류되어 남성의 보호 아래에서만 경제 활동이 가능했고 모든 소득과 재산은 아버지 혹은 남편의 소유가 되었으며 계약의 주체가 될 수도 없었으며 심지어 남편에게 체벌권까지 주어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동안의 역사 역시 남성들에 의해 편찬되나 보니 역사 기술 역시 젠더 편향성을 띠고 있었습니다. 한 분야에서 여성의 이름이 역사에 단 한 줄이라도 남겨지려면 남성 동업자에 비해 월등히 뛰어날 때에만 가능했던 시대적 맥락까지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아니 거의 대부분의 분야에서 여성의 이름은 역사에서 지워지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예술이나 과학 쪽 역시 마찬가지인데 과거에 지워진 여성의 업적은 여전히 복원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김선지 著, 은행나무)”의 출간은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이라는 저자의 포부 하에 ‘편견과 차별, 억압에 맞서 싸운’ 스물 한 명의 여성 미술가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영감과 그 영감을 나타낼 수 있는 능력으로만 평가받을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과는 다르게 예술계에서의 성차별이 매우 강고하고 뿌리 깊다는 것은 지난 몇 년 간 예술계에서 쏟아진 미투 사례에서도 우리는 충격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제 1세계라고 다르지 않은 모양입니다. 책의 서문에 따르면 미술사의 명저라고 칭송 받는 H.W. 잰슨의 “서양미술사”에는 여성 화가의 이름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고 나중에서야 구색 맞추기로 끼워넣었다고 합니다. 최근에도 이러한 성차별은 여전해서 전 세계적으로 전시회 비율을 성별로 비율을 내보면 남성이 7, 여성이 3 정도라고 하니 과거 지금보다 더욱 성차별이 심했던 시대에 여성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라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런 의견에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이 책은 그러한 젠더 편향을 조금이나마 정상으로 돌리려는 시도일 것입니다.


이 책에서 소개된 여성 예술가 모두 인상 깊었지만 그 중 특히 인상 깊은 두 예술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먼저 유디트 레이스테르 (Judith Leyster, 1609~1660)입니다. 그녀는 사회 전반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황금 시대의 네덜란드에서 활동한 여성 화가입니다. 그녀는 서민들의 일상을 캔버스에 담은 풍속화가로 여성으로서 최초로 하를렘에서의 직업화가로 알려져 있으며 24세에 성 루카 길드원으로 가입할 만큼 생전에 유명한 화가였습니다. 하지만 그녀 사후 미술사에서 거의 잊혀졌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녀 작품의 독자적인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뛰어나고 훌륭한 작품은 오직 남성만이 창작할 수 있다고 하는 뿌리 깊은 성차별적 사고 때문에 그녀 작품을 남성 화가 프란츠 할스 (Frans Hals, 1582?~1666)의 것으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참 어이가 없는 일이지요. 


책에 소개된 유디트 그녀의 자화상입니다. 책에 이 작품에 대한 평가가 적혀져 있지만 그걸 고려하지 않더라도 미술에 문외한이 보더라도 그간 보아온 대가의 자화상과는 다르게 ‘셀피’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위 사진은 책에 소개된 “사냥 장면”이라는 작품인데 무려 종이 오리기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 작품은 요아나 쿠르턴 (Joanna Koerten, 1650-1715)이라는 여성 미술가의 작품입니다. 그녀는 미술의 여러 분야에 재능을 보였지만 위 작품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녀는 특히 종이 오리기에 있어 독보적인 존재였다고 합니다. 그녀의 작품은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 영국의 윌리엄 3세 등 당시 유럽의 왕실과 귀족에서 앞다투어 구매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으며 당대 최고 화가 중 하나인 램브란트의 작품보다 비싸게 판매되었다니 그녀의 명성이 얼마나 높았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예술 분야를 독자적으로 창조해낸 그녀이지만 미술사학자들은 그저 민속 예술로만 치부하고 미술사에 기록하지 않은 것 역시 성차별적 발로였다면 과한 해석일까요? 더구나 안타까운 것은 그녀의 걸작들이 종이라는 소재의 특성 상 지금은 겨우 15 작품만 남아 있다는데다 그나마 전시실에 걸리지 못하고 수장고 속에서 수 백년 간 잠들어 있다는 점입니다. 여성인데다 회화보다 낮게 평가 받았던 공예가라는 ‘이중의 질곡’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예술을 재창조한 그녀는 진정한 예술가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외에도 미술사에 잊혀진 많은 여성들의 훌륭한 족적이 책에 많이 소개되어 있으니 직접 확인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싸우는여성들의미술사, #김선지, #은행나무, #우수출판컨텐츠, #브런치북대상, #문화충전200, #서평이벤트, #도서이벤트, #서평단




※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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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이 사랑한 컬러의 역사 CHROMATOPIA
데이비드 콜즈 지음, 김재경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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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약 수십만년 전부터 그림을 그려왔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스페인 알타미라와 프랑스 라스코 벽화입니다. 특히 알타미라 동굴에 그려진 벽화는 소의 특징을 잘 잡아 붉은 색이나 갈색 안료를 사용하여 매우 정교하게 그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렇듯 인류는 그 존재를 스스로 인식한 이후부터 무언가를 그려왔습니다. 인류는 사물을 근사(近似)하게 묘사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것에 맞는 색을 가진 안료를 찾아 왔을 것이라 당연스럽게도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물감을 제조하여 판매하는 것은 훨씬 후대의 일이고 그동안 화가들은 자신의 예술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스스로 물감을 만들어 자신만의 색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이번에 출간된 “예술가들이 사랑한 컬러의 역사 (데이비드 콜즈 著, 김재경 譯, 영진닷컴)”는 이러한 안료의 역사를 일반인이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저자인 데이비드 콜즈는 평생을 색과 안료를 연구한 현직 물감 제조업자로 옛날부터 지금까지 예술가들이 색을 표현했던 중요한 안료 60여 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단순한 텍스트로만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호주의 사진작가 아드리안 렌더의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 데이비드 콜즈의 깊이 있는 설명을 함께 감상함으로써 직관적으로 안료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안료에 대해 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지만 그 중 의미 깊게 다가온 몇 가지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먼저 황토입니다. 황토는 인류가 사용한 최초의 안료로 사용 흔적은 무려 25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앞서 설명한 알타미라나 라스코 벽화에도 사용된 바 있는 황토는 함유된 철에 따라 노랑색, 빨강색, 갈색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고대인들은 황토를 곱게 갈아 가루로 만든 다음 물에 섞어 물감으로 사용했으며 점차 이를 개선해 불순물까지 제거하여 색의 순도를 높여 왔다고 합니다. 특히 노란 빛을 띠는 황토 (Yellow Ochres)는 불에 구워 사용할 수도 있는데 중간 불에는 주황색으로, 강한 불에는 붉은 색으로 변해서 다양한 색깔에 사용할 수도 있었다고 하는데 색을 표현하기 위해 이러한 방법을 탐구한 고대인들의 노력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호두 역시 안료의 재료로 쓰인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호두 열매의 색소와 타닌을 통해 추출한 안료는 풍부하면서도 부드러운 갈색을 띤다고 합니다. 호두 열매에서 색을 추출하는 방법으로는 온수와 냉수 추출 두가지가 있는데 온수 방식은 시간이 좀 덜 걸리는 대신 색이 다소 연하고 냉수 추출 방식은 과육이 발효되는 시간이 필요해 최소 두 달은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호두 잉크는 영구적으로 착색되고 내광성이 강해 직물의 염료로 많이 사용되었다고 하네요.



혹시 밴타 블랙이라는 물질을 기억하십니까? 밴타는 수직 정렬 나노 튜브 배열(Vertically Aligned NanoTube Arrays)의 약자로 가장 완벽한 검정을 구현하기 위해 영국 연구진이 탄소나노튜브를 활용하여 빛의 99.965%를 흡수하는 물질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간단하게 생각해도 이 검정색에 대한 많은 활용방법이 있겠지만 실제로는 어떤 예술가에 의해 반타 블랙의 사용이 자신의 예술적 목적에 독점적으로 사용하게 제한함으로써 많은 논쟁을 촉발시켰고, 이러한 독점 사용권 논쟁은 이후 가장 분홍스러운 분홍, 가장 노랑스러운 노랑, 가장 초록스러운 초록 안료의 개발을 이끌면서 흥미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어찌되었던 이 가장 완벽한 검정색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검게 보이는데 과거에는 자연 재료를 통해 색을 표현하는 안료를 만들어왔다면 현대에는 과학 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안료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렇듯 보다 완벽한 색에 대한 인류의 탐구와 추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밴타 블랙보다 빛의 흡수율을 더 높여 더 완벽한 검정을 MIT 연구진이 만들어내면서 밴타 블랙은 더 이상 가장 완벽한 검정이 아니게 되었다고 합니다.) 


굳이 미술에 대한 관심이 아니더라도 색과 안료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발전하여 왔는지에 대한 미시사 관점, 과학 기술이 안료의 개발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대한 관점 등 다양한 관점에서의 지적 호기심을 충분히 충족시켜줄 수 있어 매우 만족스러운 독서였습니다.  



#컬러의역사, #색채학, #미술사, #예술사, #예술가들이사랑한컬러의역사, #미술역사, #색채디자인, #크로마토피아, #데이비드콜즈, #아드리안렌더, #김재경,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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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공장
엘리자베스 맥닐 지음, 박설영 옮김 / B612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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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맥닐(1988~)은 어렸을 적 부모님과 함께 런던으로 휴가를 떠납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존 밀레이의 ‘오필리아’라는 작품의 아름다움에 푹 빠지게 됩니다. 그 후 그녀는 존 밀레이가 속한 라파엘 전파 형제회(Pre-Raphaelite Brotherhood, Pre-Raphaelites)라는 예술 단체에 대해 알게 되고 그들에 대한 관심을 이어갑니다. 그러다 그들이 그린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들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되고 그들의 삶과 라파엘 전파 형제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지워져 갔는지에 대해 알게 됩니다. 특히 맥닐은 ‘오필리아’의 모델이자 그림의 모델로만 머무르지 않고 그녀의 예술적 영감을 직접 표현하기 위해 그림을 배워 스스로 화가가 되고 시인이 된 엘리자베스 시달 (Elizabeth Eleanor Siddall, 1829~1862)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녀의 찬란하면서도 비극적인 인생에 매료됩니다. 

맥닐은 그녀에게 영감을 준 ‘빅터 윈드 뮤지엄 오브 큐리오시티(The Viktor Wynd Museum of Curiosities)’와 엮어 주체적인 예술인으로 살고자 했던 엘리자베스 시달의 삶을 소설적으로 복원합니다. 


그 작품이 바로 최근 국내에 소개된 ‘인형공장 (엘리자베스 맥닐 著, 박설영 譯, B612, 원제 : The Doll Factory)입니다.  

때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에 인류 역사상 가장 광대한 제국 중 하나를 건설하면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명성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시대입니다. 지금은 대화재로 사라져버린 수정궁 (The Crystal Palace)의 위용은 아마도 그러한 자부심의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자부심이 발하는 빛의 이면에는 ‘인간’을 전시할 만큼 기묘한 문화를 만들어내는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했습니다. 

또한 광기에 가까운 수집벽 역시 유행했는데 그런 욕구를 대표하는 사람이 바로 사일러스 리드입니다. 그의 시선에 첫사랑과 닮은 여인이 눈에 들어오고 친근하지만 낯선 그녀가 자꾸 생각납니다. 그러다 그의 관심은 점차 집착으로 바뀌어 가는데….


언니인 로즈와 함께 인형 가게에서 도자기 인형의 얼굴을 그리고는 있지만 아이리스 휘틀은 언제나 스스로의 그림을 그리고 싶어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심부름을 가던 그녀는 윌리엄 홀먼 헌트, 존 에버렛 밀레이,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등이 소속되어 있는 라파엘 전파 형제회 (Pre-Raphaelite Brotherhood)의 모델 제안을 받습니다. 그녀는 설터 부인의 인형가게에서 탈출할 기회가 찾아온 것을 깨닫게 되는데…



이 작품이 엘리자베스 맥닐의 데뷔작인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역사 스릴러 장르 소설입니다.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겠습니다.  


Ps. 책 표지에 문장 하나가 눈길을 끕니다. 바로 이 작품의 주제의식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문장이라 생각합니다. 

“Freedom is a precious thing”


Ps.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여성은 교육을 받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으며 자신의 수입이나 재산, 심지어 신체까지 아버지의 것이며 결혼 후에는 남편의 것이 되었다고 합니다. 즉, 당시 여성은 자신의 권리로 법적 존재가 될 수 없었죠. 그러므로 재산을 가질 수 없고, 소송을 제기할 수 없으며 계약의 당사자가 될 수 없고, 이혼을 제기할 수 없으며 남편으로부터 체벌을 당할 수 있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이러한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여성의 지위를 생각하고 책을 읽으면 감상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인형공장, #엘리자베스멕닐, #엘리자베스시달, #박설영, #B612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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