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ㅣ 슬기로운 방구석 와인 생활 1
임승수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3월
평점 :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임승수 著, 수오서재)”를 읽었습니다.

와인에 대한 책을 읽었지만, 사실 한편의 블랙코미디를 한편 본 기분이다. ‘요즘 쏟아져 나오는 무수한 와인책 중 또 한 권의 책이구나,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으로 첫 장을 펼쳤지만, 몇 장 읽자마자 세상에 이런 와인 책이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마르크스 책을 쓰는 사회과학 저자라는 이채로운 경력은 물론 흥미로웠지만, 그보다는 ‘그러한 직업 덕분에’ 없는 살림 중에서도 와인을 사랑하는 마음을 어쩔 수 없어서 정말 짠하게 방구석 와인 생활을 즐기는 모습이 더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도 꽤 오랫동안 와인을 혼자 마셨고, 결혼 후 그리고 코로나 덕분에 다시 집에서 와인을 마시고 있는 내 모습하고도 많이 겹쳐지기도 하여 더 공감이 갔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그러한 혼술족을 위한 책이라는 점이다. 와인을 구입하는 팁부터 무척 자세하다. 와인서쳐나 셀러트래커, 비비노 같은 앱은 요즘 애호가 사이에서 꿀팁으로 자주 공유되고 있는 정보인데, 책에서는 대놓고 제발 사용하라고 간청한다. 또한 해외 와인직구법도 무척이나 자세하게(문구까지) 설명한다. 일반적인 와인 설명 책에서는 보기 힘든 내용들이다. 할인장터와 행사와인을 항상 애용하는 모습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밖에 없다. 우리의 돈은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책 중간중간에 나오는 가성비 와인 추천등도 꽤 유용한 정보이다. 사실 대부분 유명한 와인들이고 맛에 대한 보증이 이루어진 와인들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책에 적혀있는 가격으로는 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아서 좀 속이 쓰려지긴 한다.
와인과 함께 먹는 생생한 음식 이야기에도 절로 입맛이 다져진다. 스테이크 묘사는 참으로 리얼하며, 참송이 구이와 샤르도네같은 매칭은 한번 개인적으로도 시도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 소개를 하고 있다.
그 외에 와인을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 스월링, 향기 맡기, 천천히 마시기 같은 기본적인 사항도 와인 초보자 입장에서는 중요한 팁으로 다가올 듯 싶다. 저자가 마지막에 언급한대로 이 책은 수많은 와인 전문가의 글 홍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솔직한 상황을 글로 남긴 책이다. 즉 와인 초보자에게 필요한 정보 위주의 글을 모아놓은 것으로 마지막 페이지에 실린 ‘슬기로운 와인생활을 위한 팁들 10계명’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내용을 정리해놓은 짧은 요약본일 것이다.

초보자를 위한 아주 기본적인 내용 외에 보다 흥미로운 이야기도 몇 꼭지 찾아볼 수 있다. 보르도 5대 샤또 이야기나 부르고뉴 와인 등급 이야기, 파리의 심판 이야기는 와인 초보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습득해야 하는 내용이긴 하지만, 그보다는 루디 와인이나 로익 파스케의 리베르 파테르(Liber Pater) 이야기는 다른 와인 전문 책에서는 그리 다루어지지 않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와인을 마실때 안주겸 이야기하기에는 이보다 더 재미있는 내용은 없으니 이 책에 딱 부합하는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내용을 알고 있다면 와인 내공이 있는 분들과의 술자리에서도 ‘아니 초보자라면서 그런 것도 알어?’ 하는 놀라움을 선사해 줄 수도 있다.
글을 전문적으로 쓰시는 작가분의 글 답게(?) 글 자체가 무척 재미있다. ‘샴페인의 절륜한 향기’, ‘흡수 및 증발하는 괴랄한 느낌’ 같은 단어 선택은 사회과학작가(?)의 범상치 않은 내공을 보여준다. 사실 책 중반이나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지만, 이 책의 몇 부분은 이상하게 익숙하고 전생에 읽어본 듯한 야릇한 느낌이 들었었는데, 사실 이 책은 오마이뉴스에 ‘임승수의 슬기로운 와인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들을 묶어서 출판한 책이었다. 그래서 전에 우연히 몇 편을 인터넷에서 읽었었던 것이었다. 온라인 미디어를 통해 발표된 글답게 친숙한 말투와 자유로운 소재가 이 책에 매력을 더하는 듯 싶다.
물론 저자의 컨셉과 초보를 위한 책이라는 책 컨셉 답게 고급스러운 내용은 별로 없다. 그리고 고급 와인 이야기도 별로 없다.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인생 와인이야기가 있지만 대부분의 와인 이야기 그리고 추천와인들은 마트에서 볼 수 있는 가성비 와인들이다. 나 이거 마셔봤다 하면서 비싼 와인들을 줄지어 소개하는 시중에 많은 책들보다는 훨씬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데일리 수준을 벗어나는 와인 중에서는 이 책에서 소개하는 와인들 보다 훨씬 더 넓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이런 와인들을 알아 가는 것은, 일단 이 책을 통해서 기본을 떼면 스스로도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와인전문가 분이 아니기 때문에 중간에 살짝 기우뚱하게 만드는 몇 문장들이 있지만 이런건 그냥 애교로 넘어갈 수 있을 정도이다.
글 중간에 나오는 와인, 안주, 사람의 삼위일체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과 정확히 일치한다. 맛있는 와인은 맛있는 음식과 함께 마시는 것이 맛있고, 거기에 함께 마시는 사람들도 좋으면 그 것이 최고가 아닐까? 이런 글을 쓰시는 분이라면 분명 함께 와인 마시기에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으신 분인 듯 싶다. 책에는 (차마) 담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들을 함께 와인잔에 담아 나눈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아마 나잇대도 비슷하실 것 같은데, 언젠가는 함께 와인 잔을 스월링하며 와인잔에 코를 가득 대고, 천천히 감탄하며 와인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
#와인에몹시진심입니다만, #임승수, #수오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