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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계몽 - 이성, 과학, 휴머니즘, 그리고 진보를 말하다 ㅣ 사이언스 클래식 37
스티븐 핑커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1년 8월
평점 :
‘요즘 것들은’ 어쩌구 저쩌구, ‘예전이 좋아서’ 등등.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듣기도 하고 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깔려 있는 것은 분명 과거가 현재보다 더 좋았다는 인식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류는 계속 퇴보를 거듭하고 있다는 의미인데 과연 그럴까요?
우리의 세상이 예전보다 점점 나아지고 있고, 여전히 우리의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괜찮다고 이야기해주던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비해 교육을 더 많이 받고 있으며 더 건강하게 그리고 더 오래 삽니다. 그 뿐 아닙니다. 우리는 과거에 비해 훨씬 윤택한 생활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죠. 우리는 우리가 걱정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세상은 아직도 살아갈만 한 곳이라는 것을 “팩트풀니스 (한스 로슬링, 올라 로슬링, 안나 로슬링 뢴룬드 共著, 이창신 譯, 김영사, 원제 : Factfulness)”이라는 책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트럼피즘이나 지구평면설, 창조론, 안티백서 등 반지성주의, 그리고 차별과 혐오가 횡행하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반이성주의, 반문명주의의 대두, 극우 정치 세력의 득세, 기후위기, 감염병 팬데믹 사태 등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무시하기에는 너무 큰 걱정거리들도 만만치 않습니다.
스티븐 핑커 (Steven Pinker, 1954~)의 신작인 “지금 다시 계몽 (김한영 譯, 사이언스북스, 원제 : Enlightenment Now: The Case for Reason, Science, Humanism, and Progress)”를 읽었습니다.

이 책의 저술 목적은 서두에 저자가 곧바로 밝히고 있습니다. 현재 상황을 어둡게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음을, 그들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 책을 쓰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계몽주의의 핵심 사상이 고취해온 긍정적 세계관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계몽주의, 저자가 반지성주의 등에 대항하여 꺼내온 무기입니다, 무지몽매한 우중을 지식인들이 깨우친다는 의미를 가진 계몽이라는 단어는 상당히 구시대적이며 봉건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실에 필요한 개념이라 저자는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계몽주의라는 외피를 둘러싼 포장은 다소 낡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을 살펴보면 이성, 과학, 휴머니즘, 진보 등으로 지금의 시점에서도 충분히 필요한 것이며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들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의 구성 역시 그러한 가치에 걸맞게 1부 계몽, 2부 진보, 3부 이성, 과학, 휴머니즘으로 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계몽(啓蒙)에 대해 ‘인류 스스로가 초래한 미성숙 상태나 종교적, 정치적 권위의 도그마와 인습에 나태하고 소심하게 복종하는 상태에서 탈출하는 것’이라는 정의를 인용하여 ‘감히 알려고 하라 (Sapere Aude)’는 계몽주의의 모토를 바탕으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바탕으로 한 인류 전체의 진보를 꾀하는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러한 계몽주의의 영향 하에서 인류가 차근차근 진보해 왔음을 각종 데이터와 과학적 근거들(예를 들면 뉴스 논조의 변화, 산모 사망률, 연령대별 기대 수명,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수 등)를 바탕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보에 대한 거부감, 반계몽, 반이성주의 같은 반동적인 움직임은 끈질기며 호소력이 강합니다. 그러므로 저자는 이성, 과학, 휴머니즘, 진보와 같은 계몽주의적 가치를 끊임없이 강조하여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수천년의 역사를 통해 쟁취한 진보와 휴머니즘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고 잃어버리게 된다면 우리의 번영은 더 이상 자연스럽지 않게 될 것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일화적 증거에 귀를 기울이는 우를 범합니다. 하지만 일화(逸話)는 추이와 현상을 대변하지 못합니다. 저자는 수학과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이 지금 나쁜 것이 과거가 더 좋았음을 증명하지 못합니다. 저자는 철학을 기억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우리 앞의 문제를 과학적 방법론으로 짚어보면서 우리가 지금 맞고 있는 탈진실의 시대, 그리고 포퓰리스트의 시대를 분석한 책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교양인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입니다.
덧붙이는 말 : 저자인 스티븐 핑커는 캐나다 태생의 심리학자입니다. 특히 그는 언어와 인지과학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와 더불어 대중에 대한 글쓰기로도 유명합니다. 또한 그는 인간의 선한 본성을 믿고 있고 미래를 보다 희망적으로 바라보는 대표적인 과학자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그의 저작들이 많이 출간되어 있기도 합니다. “빈 서판 (김한영 譯, 사이언스북스, 원제 : The Blank Slate)”,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김한영 譯, 동녘사이언스, 원제 : How The Mind Works)”,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김명남 譯, 사이언스북스, 원제 :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 Why Violence Has Declined)” 등 그의 대표작이기도 한 마음 3부작은 이미 출간되어 있으며 언어 3부작 중 “언어본능 (김한영, 문미선, 신효식 共譯, 동녘사이언스, 원제 : The Language Instinct)”, ”단어와 규칙 (김한영 譯, 사이언스북스, 원제 : Words and Rules: The Ingredients of Language)” 등 2권 역시 출간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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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