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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절박하게 묻고 신하가 목숨 걸고 답하다
김준태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3월
평점 :
책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강한 끌림을 느꼈다. <왕이 절박하게 묻고 신하가 목숨 걸고 답하다>, 이 처럼 간절하고 치열한 문장이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궁금했다. 처음에는 '조선시대의 이야기'쯤으로 여겼지만 책을 읽다보니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히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깨달음을 주는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조선시대 왕이 던진 책문과 신하가 응답한 대책을 바탕으로, 위기 속 나라를 어떻게 바로 잡을 것인가에 대한 역사적 사유와 실천적 지혜를 담고 있다. 격변하는 세상 속에서 무엇이 옳고 어떤 길이 바른지 혼란스러운 이 시대에, 몇백 년 전의 문답이 오히려 지금보다 더 분명하고 실제적인 해답을 제시해준다는 점이 놀라왔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문제들이 과거 조선의 위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 그리고 그에 대한 치열한 질문과 답면이 마치 '기출문제집'처럼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과 아이디어를 던져준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 하겠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현인들의 지혜를 빌려 오늘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보는 일이기도 하다.
이 책은 총 18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선 500년의 역사를 시간순으로 따라가며 왕과 신하 간의 치열한 문답을 다루고 있다. 태종과 변개량, 세종과 신숙주, 연산군과 이목, 중종과 궈별, 선조와 조희일, 정조와 정약용, 철용과 김윤식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리더와 참모들이 이 나라의 앞날을 고민하며 주고받는 질문과 답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각 편마다 주제는 다르지만, 이 모든 문답을 꿰뚫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 바로 '수양'이다.
나라를 바로 세우고 백성을 편안하기 위해, 그리고 군주의 마음을 바르게 인도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바로 '수양'이다. 학문에 힘쓰고 마음을 다스리며, 처음과 끝을 한결같게 하려면 수양해야 한다. 원칙을 지키고 갈등을 조율하며, 타인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옳은 충언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도 수양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심지어 좋은 인재를 알아보는 일, 공정한 법 집행, 관계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일, 나아가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판단하는 일까지도 모두 수양에서 비롯된다는 말에서 과연 그 시대를 움직였던 사상과 철학의 중심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되새기게 된다.
그리고 오늘날처럼 변수가 많고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일수록, 중심을 잡고 스스로를 단련하는 '마음의 근력'이 더욱 필요하다. 이 책은 바로 그 수양의 본질과 호용을, 역사 속 실제 사례를 통해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설득한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내면의 힘'이르는 사실을 명확하게 깨닫게 된다.
이 책은 태종과 그의 질문에 답한 변계량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태종은 가장 원론적인 질문을 던진다. 옛날 성군들은 어떻게 그처럼 어진 정치를 펼칠 수 있었는지, 지금 그러한 정치를 본받아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도 통하는 가장 본질적인 고민이다. 이에 대해 변계량은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는 마음에 근본을 두고, 나라를 다스리는 법은 때에 알맞아야 합니다."라며 '중도'와 '시의'를 강조하였다.
그가 말하는 '중도'는 단순한 중요이 아니다. 현실에 안주하거나 타협하는 것도 아니며, 무조건 고전의 원칙에 얽매이는 것도 아니다. 그는 성현의 정신, 즉 이상과 원칙을 바탕으로 하되, 그것이 현실 속에서 유연하게 구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요즘 말로 하자면 철학 있는 실용주의를 주장한 것이다. 변계량은 "사의를 논하면서 세상해 아무해 중에 미치지 못하면 앝은 곳으로 흐를 것이다"라고 경고하였다. 이 원칙 없는 실용이 오히려 세상을 그르 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문답은 단순히 조선 초기의 사상적 논의로 그치지 않는다. 지금 우리의 정치와 사회에도 유효한 질문과 답이다. 이상과 현실, 원칙과 실용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이를 수 있는가? 변계량은 그 해답을 '근본을 잃지 않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에서 찾았다. 이는 바로 우리가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기 위해 갖춰야 할 리더쉽의 덕목이자, 삶의 철학이기도 하다.
정조와 정약용의 문답은 실용성과 현실감이라는 점에서 특히 눈길을 끈다. 정조는 당시 조선의 문제로, 신하들의 전문성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어떻게 하면 인재를 효율적으로 등용하고 활용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 이에 대해 정약용은 탁월한 인사제도 개혁안을 제시한다. 하급 관리에게는 다양한 직무 경험을 통해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고, 상급 관리에게는 임기를 길게 부여해 행정의 연속성과 전문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인사의 기술적 운영을 넘어, 소외되거나 사장되는 인재가 없도록 하자는 제도적 철학이 담긴 대책이다.
정약용의 제안은 오늘날의 인사 행정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부처의 장관이 2년 이상 재임하는 일이 드물고, 공공 영역에서 순환보직으로 인해 전문성이 축적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중요한 정책과 행정이 단절되고, 조직의 신뢰도마저 흔들릴 수 있다. 더불어 그는 관행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출신 성분, 지위, 지역을 기준 삼아 인재를 제한하는 태도야말로 진짜 ‘인재 부족’을 초래하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정조의 책문과 정약용의 대책은 단순히 당대의 행정 개혁안을 넘어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을 제공한다. 리더가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태도는 '인재를 볼 줄 아는 눈'이며, 그 눈은 편견 없이, 차별 없이 열려 있어야 한다. 너무도 당연한 말 같지만, 바로 이 당연함을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쓸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고전적 문답은 오히려 더 명료하게 현재를 비춘다.
이 책은 단순한 역사서만은 아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에 담긴 문답은 왕도 신하도 모두 깊은 책임감과 신중함으로 고민한 끝에 던지고 응답한 질문과 답이다. 이들은 개인의 안위나 체면보다 나라의 앞날을 먼저 생각했고,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으며 이상과 원칙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자 하였다. 그 치열한 고민과 통찰은 몇백 년의 시간을 넘어 지금 우리에게 유효하게 다가온다. 결국 이 책은 과거의 책문을 빌려 오늘의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이 시대, 당신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는가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