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 뽑은 고대시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고전
고운기 지음, 이길룡 그림 / 현암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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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망매가>

 

생사의 갈림길

여기 있으니 두려웁고

"나는 갑니다" 말도

못하고서 갔는가

 

어느 이른 가을바람 끝에

여기 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은 모르겠네

 

아, 미타찰 세상에 만날 나는

도 닦아 기다리리.

 

 

나는 순전히 이 시 한 편을 위해 이 책을 읽은 것 같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로 시작하는 <공무도하가>의 슬픈 아름다움과

무릎이 헐도록 두 손바닥 모아 천수관음 앞에 빌고 빌어 두노라로 시작하는 <천수대비가>의 간절함과,

밤늦도록 노닐다가 집에 들어와 토해내는 처용의 다리가 넷이더구나, 그리고

을지문덕 장군이 우중문에게 보내는 그만하면 족하니 의 호연지기가

학교 교실에서 이것들을 접했던 십대 때와는 무척 다르게 다가온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때는 그때대로 좋았다.

깨끗한 마음과 머리로 배웠던 구절들이 그 사이 이해도 깊어졌지만 때도 많이 묻었다.

 

어쨌거나 다시 읽어본 시 구절들은 여전히 좋고 번역자의 해설로 눈이 밝아져서

더 세심히 이해하고 느끼는 것도 있었다.

 

다만 옛말, 한문으로 되어있어 어차피 현대어로 번역을 해야한다면

왜 굳이 옛스런 표현을 써야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스님, 청산이 좋다 말 마소

심사를 털어놓자니 눈물만 삼키는구나

대비 눈물로 젖어서 이울지 아니하는 것이더라

같은 표현들이

아름답고 살아있는 지금 우리 말로 번역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말은 살아있는 것이니까, 과거로 퇴행하기보다는 현재와 미래로 나아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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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자서전
로욜라의 이냐시오 지음, 예수회 한국관구 옮김 / 이냐시오영성연구소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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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종교인의 관점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그의 영적 체험이 매우 낯설다. 낯섦을 보완해줄 친절한 설명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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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의 진리 - 비폭력 투쟁의 기원
에릭 에릭슨 지음, 송제훈 옮김 / 연암서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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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알게 된 책인데, 가치에 비해서 너무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  

 

에릭 에릭슨은 심리학 개론 수업에서 기본적으로 언급되는 학자이기는 하지만 그의 이론은 많이 묻힌 듯 싶다. 기본적으로 그의 이론은 프로이드에서 출발하며, 인간의 유년기에 집중했던 프로이드와 달리 그는 인간의 인생 전반이 발달의 연속이며 이것은 9개 단계로 나뉜다고 분석했다. 간단히 말해서, 그는 사람이 노년기까지 계속 성장한다고 보았다. 생애 각 단계는 단계에서 단계로 이어지면서 단계의 내재적 힘이 확대되어 나가고 다음 단계에서 연쇄적으로 통합되면서 전체 생애 주기 속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이 책은 이런 큰 전제하에 인생의 중년을 분석하기 위한 인간의 한 표본으로서 간디를 다룬다. 그는 그 전에 이미 인간의 유년기와 청년기를 다룬 연작을 발표했는데, 참고로, 청년기에 대한 분석 대상은 루터이다. 

 

미리 말하자면, 글은 전반적으로 매우 흥미로우면서 동시에 너무 난해하다. 화제의 초점이 수시로 주변 인물로 향하고, 특히 전반부에서 그런 경향이 심하다. 초입부의 난관을 인내심을 가지고 잘 넘어가면 중반부 이후로는 비교적 읽기가 수월하다. 다행히 마지막까지 읽어낸 덕분에, 혹시나 덮었더라면 영영 놓쳤을 에릭슨의 깊은 인간 이해와 간디의 가치를 엿볼 수 있었다. 역자의 충실한 번역과 노고에 깊은 감사와 찬사를 드린다.  

 

간디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분분한 모양이다. 성자라고 하나 그의 그림자는 크고 짙다. 간디라는 인물이 성취한 인간의 잠재성이 거대한 만큼 그 안에는 모순이 심하고 외면하고픈 약점과 추함도 평범한 이들의 그것보다 강도 높다고나 할까. 그래서 간디를 추앙하는 사람이나 비난하는 사람이나 감정적으로 격렬해질 수밖에 없어보인다. 여기에 대해서 에릭 에릭슨의 분석은 매우 수긍할만한다: 완벽한, 진실한, 당당한, 교묘한(사람이라는 간디에 대한) 이런 평가는 일방적이며 각자의 자아상을 투사한 것이다... 이 하나 하나는 진실하면서도 그것들만이 전부는 아닌 다양한 투사들이다... 이런 투사들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 역시 지도자의 재능이 아니겠는가.

 

간디의 자서전을 20대 시절에 읽으면서 매우 혼란스러웠다. 닮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속에서 그를 밀어내는 무엇이 있었다. 그 무엇은 아마도 간디의 어두운 면에 대한 본능적 혐오가 아니었을까 싶다. 간디의 지나친 죄의식, 특히 아내에 대한 사디즘적 행동, 자신의 믿음에 대한 극단적인 충실함 같은 것들이 이십대의 마음에는 좀 두렵기도 했던 것 같다. 에릭 에릭슨도 비슷한 이유로 이 책을 중도에 중단하고 싶었노라 실토한다: 나는 당신(간디)이 진실을 주장하는 대목에서 일종의 허위를, 비현실적인 순수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깨끗하지 못한 어떤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비폭력을 다루는 대목에서 다른 형태의 폭력을 감지했던 것 같습니다.

 

에릭 에릭슨은 자신의 이론에 근거해서 간디의 어린시절과 청년시절을 매우 충실하게 살피면서 이 단계들이 그의 장년으로 어떻게 수렴되고 확대되며 또 유지되는지를 분석한다. 그리고 간디 장년의 중요한 사건으로서, 아메다바드 파업을 다룬다. 따라서 이 파업에 대한 상황 설명, 그 이면의 간디의 인간 관계들, 간디를 둘러싼 사람들에 대한 분석도 아울러 다루고 있다.

 

정체성이란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것이며 동시에 발견하고 구축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 에릭슨의 책을 읽으며 도달한 결론이고, 실제로 에릭슨이 말하고자 하는 바라고 생각한다. 에릭슨은 간디의 유년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그의 장난기를 언급한다. 간디의 장난기는 그의 생애에서 도덕적 조숙함의 무게를 덜어주고 그의 개인적, 정치적 표현 방식에 특별한 차원을 더해주며 비폭력 운동의 핵심적 요소였으리라고 에릭슨은 추정하고 있다.

 

간디의 청년기에서도 여러 중요한 특징들이 언급되는데, 예를 들자면 간디-아버지의 관계가 이후에 간디-영국의 관계에서도 반복된다는 것이다. 간디에게 아버지는 일종의 '우월한 적'이었고, 적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적을 돌봐주는 것은 간디에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였다고 에릭슨은 분석한다. 그래서 간디는 대영제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전쟁 준비를 돕고자 부상병 후송부대를 편성했다. 

 

간디는 행동하는 인간이었다. 그는 말했다. 신은 우리 앞에 직접 나타나지 않고 다만 우리의 행동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말이나 노래가 그의 '마음에 깊이 박혔다'는 것은 그가 그것을 실천할 것임을 의미했다. 행동이란 '진리 실험'의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리는 찾아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수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간디의 행적은 때로는 '일관성이 없어' 보였다. 에릭슨에 따르면, 간디의 인생은 오로지 진리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일관성이 있었다. 매우 일리 있는 추정이다.

 

간디에게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일면은 그의 정직성이다. 공교롭게도 이 책과 병행해서 읽은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에서 간디에 대한 짧은 에세이가 있었다. 오웰의 간디관이 내게 다 납득이 가는 것은 아니지만 오웰이 정확히 짚은 그의 미덕도 정직성이었다. '간디는 정직했을 뿐'이며 '그가 말하거나 생각하기를 두려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고 오웰은 말한다. 간디는 오로지 진리를 '실험'한다는 정신에서, 어떤 원리나 이념 속에 본질적으로 내재할 수밖에 없는 모순도 외면하지 않았다. 자기를 부정할 수 있는 힘은 결코 아무나 갖지 못한다.  

 

-우리의 의무는 전쟁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누군가에게 맞더라도 받아치지 말라고 가르쳐왔습니다. 우리가 지금도 그렇게 가르칠 수 있을까요?

-나는 인도에서 힘이 회복되어야 할 필요성을 확실히 느끼고 있다. 어쩌면 그 결과는 대학살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도는 이를 경험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상황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그는 프로이드처럼, '모두가 애써 외면하려는 명백한 사실들을 직시'했던 한 '정직한' 인간이었다고 에릭슨은 말한다. 인간의 본능과 무의식을 들여다봤던 프로이드처럼 간디 역시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았다. 프로이드와 달리 그 방향이 사회, 국가, 정치를 향했을 뿐.

 

간디가 아메다바드 파업이라는, 인도에서 그가 가장 처음 벌인 대대적 사회 운동에 대한 에릭슨의 추적은 인간의 공격성에 대한 분석으로 수렴한다. 간디는 노동자들의 편에서 공장주들과 타협을 벌이는 과정을 기본적으로 아힘사(비폭력)의 원리에 따라서 진행했는데, 그의 문제 해결 방법은 이랬다. 

 

먼저 신중한 조사를 하고, 두번째로는 해결 방법을 결정하며, 세번째로는 상대와 본격적으로 대면한다. 그런 뒤에 상대의 의견을 듣고 나서 다시 이 편에서 해결책을 결정한 뒤 이것을 상대에게 (숨기지 않고) 자세히 알려서 상대로 하여금 건설적인 제 3의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런 식으로 노동자와 공장주는 '진실'되게 대면하고 '단계적'으로 변화되어 나간다. 간디의 비폭력 원리는 단지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뜻뿐만 아니라 타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진리를 존중하며 타인을 응징하려 하지 않는다.   

 

에릭슨에 따르면, 인간의 공격성에는 본능적인 것(instinctive)과 본능에서 비롯된 것(instinctual)이 있다. 우리가 인간의 내면에서 공격성을 볼 때 이것을 본능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에릭슨의 견해다. 그는 여기에 대해 두 숫사슴의 싸움과 뉴기니고원의 두 원시부족의 전쟁을 보충적 예로 들고 있다. 두 숫사슴과 두 원시부족은 싸움 혹은 전쟁을 극화된 모습으로, 즉 하나의 의식처럼 치룬다. 요란하게 싸우고 후퇴하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지만 그것은 절대 상대를 완전히 절멸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만 물리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의식화는 인간의 공격성을 단순히 본능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반증이라는 것이 에릭슨의 생각이다. 

 

이러한 전쟁의 관습은 일종의 의식이고 (이러한 전쟁이 수십년, 수백년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의식을 상대가 준수할 것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의식화는 진화의 한 표본일 수 있고 인간에게도 유전적으로 내려올 수 있다.

 

간디의 비폭력 정신, 즉 공장주들에게 전적인 신뢰를 보여주면서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 다음에 취할 행동을 결정하고 상대방이 약점을 보일 때도 이용하려 들지 않는 태도, 상대방에게 변화할 기회를 준다는 정신은 두 숫사슴의 싸움과 두 원시부족의 전쟁에서 보이는 그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신뢰는 간디의 행적 속에서 희망적으로 변주되었다.   

 

조지 오웰은 서양인의 시선에서 간디의 외모가 '인상적인 편이 아니'었고 그의 동양적 해탈 관념이 '내세적이고 반인본주의적'이라고 말하면서도 그가 '끝까지 증오 없이 집요한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정치의 공기를 소독'했고 정치인으로만 봤을 때 그가 남긴 향기는 너무나 '맑았다'고 얘기한다. 간디에 관한 오웰의 글은 느낌표로 끝난다... 간디는 인간의 가능성을 마치 광부가 금을 캐듯, 탐험가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 집요하게 탐색했다. 그 에너지가 놀랍고, 그 선의가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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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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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이성, 그 이성에 정직하려는 마음, 그 마음을 진심으로 살려준 행동, 그리고 미학적 열정!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는 이 책 전체를 다 읽은 후에야 비로소 온전히 이해되었다. 조지 오웰에게 존경을 바친다. 거의 다 좋은 글들이지만 그중에서 ‘너무 너무 좋았지‘는 꼭 읽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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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모든 것들 - 2단계 문지아이들 61
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부희령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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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편의 짧은 이야기들을 묶은 책이다. 길가에 핀 수수한 꽃들로 만든 아름다운 꽃다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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