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권상미 번역가의 말대로, 올리브는 '좀 남다른' 어머니다. 그녀의 아들은 성인이 되어 심리 상담을 받고 난 뒤, 올리브에게 말한다. "이젠 엄마에 대한 두려움에 지배당하지 않을 거예요." 올리브에 대해 주변 인물들의 평가도 썩 좋지 않다. 올리브는 언제나 자기 이야기만 하고, 절대 사과를 하지 않으며, 나르시시스트(자기 예찬자, 성격장애자)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그녀에게 배웠던 학생들 중에는 그녀를 좋아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그냥 우리 같은 사람이다. 다만 조금 더 솔직하고 괴팍할 뿐. 그리고 우리보다 약간 더 성찰적일 뿐.  


<올리브 키터리지>를 발표하고 십일 년 뒤에 작가는 다시 올리브를 불러냈다. 전작에서 이미 노년기에 접어들었던 올리브가 이번에는 팔십 대까지 나이를 먹으며 더 깊숙이 노년기로 들어간다.   



두 작품을 이루는 단편 하나하나가 모두 독립적으로 읽힐 수 있는 작품이고 하나같이 빛나는 수작들이다. 이 작품들이 모두 노년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올리브는 늙어가지만 단편의 주인공들은 십 대에서부터 팔십 대까지 고루 분포돼 있기 때문이다. 올리브의 말대로 "모두 어떤 시기를 지나는" 중이다. 그 시기는 어느 하나 더 쉽거나 더 편안하지는 않은 것 같다. 다시 말해, 시기마다 다른 식으로 어렵고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리브 키터리지 연작은 본격적인 노년 소설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뛰어난 노년 소설이다. 


늙는다는 건 당황스럽다. 내가 처음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윤여정 배우의 말대로, 나도 이 나이는 처음이다. 십 대였을 때도 이십 대, 삼십 대였을 때도 나는 당황스러웠다. 처음이었으니까. 사십 대에서 오십대로 나아가면서 '아줌마'로 확실하게 도장을 찍은 지금의 내 모습도 내게는 생소하다.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노화도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처음이다. 죽음은 언제나 곁에 있었지만 지금은 더 바싹 다가왔다. 어떻게 늙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어려운 숙제처럼 내 앞에 펼쳐졌고, 그래서 노년 우등생들의 말과 글을 찾아보기도 한다.  


어떤 이는 말한다. 추한 꼴을 보이기 전에 스위스로 가서 안락사를 하고 싶다고. 나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더랬다. 남은 가족들은 고인의 가장 최근 모습을 기억하기 마련이라서, 암 수술 후 피골이 상접해진 아버지 모습이 기억에서 지워지지가 않는다. 그런 모습으로 아버지를 떠올리고 싶지 않은데도. 돌아가신 시어머니께서 마지막 침상에서 어렵게 숨을 이어가시던 모습도 그렇다. 죽는 게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구나, 가슴이 아팠다. 돌아가시는 분들을 옆에서 보며 나는 품위 있는 모습으로, 다시 말해서 건강한 모습으로 죽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모순적인 생각을 했다. 소위 나잇값을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이상적인 노인상을 세우기도 했다. 현명하고 인격적으로 완성된 노인을. 귀여움은 덤으로. 실제로 그런 분들을 가끔 뵙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얼마나 경박하고 허튼 것인가!


우리는 모두 어떤 시기를 지나고 있다. 노인이 되기 전에 고독과 빈곤과 질병이라는 3대 고통을 잘 준비해놓으라는 충고는 유익하긴 하다. 쓸데없이 젊은 사람들 속에 끼지 말라는 말도. 손자 손녀들에게 넉넉히 용돈을 주라는 말도. 하지만 이런 말들, 외부에서 세우는 나이 듦의 바람직한 모습들은 나를 포함해서 나이 들어가는 모든 이들을 비인간적으로 소외시킨다. 마치 사람을 물건처럼 취급하면서. 마치 곧 버릴, 아니면 지금이라도 그냥 던져버려도 될 고물처럼.  


우리는 각자 나름의 고통을 안고 있고, 자기 자신이 수수께끼다. 인생은 20대에서 끝나든 30대, 40대에서 끝나든 모두 지극히 사적인 것이다. 바람직한 젊은이상을 정해놓을 때 99.99퍼센트의 젊은이들을 바람직하지 못한 존재가 된다. 바람직한 노년과 바람직한 죽음을 정해놓으면 나머지 99.99퍼센트의 인생들도 역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하나같이 사느라 수고하고 있다.  각자 지극히 사적인 역사를 가슴속에 품은 채. 


다시 소설로 돌아가서, 올리브라는 인물에게 감정이 이입되는 까닭은 워낙 인물을 입체적으로 살려낸 작가의 재주도 있겠지만 그녀의 모습이 나 자신의 모습과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모습과 말이다. 


<다시, 올리브>에 실린 단편 햇빛은 불치와 완치의 기로에 선 (아마도 암) 중년의 여인 신디의 이야기다. 올리브는 이미 80에 접어들었고, 그러니 두 사람은 누구보다도 죽음과 가까이 있다고 해도 좋다. 신디는 남편과 아들들에게 못난 모습을 보인 것 때문에 괴로워하는데 그런 신디에게 올리브는 말한다.  "신디 쿰스, 평생 끌어안고 가야 할 나쁜 기억 한두 개쯤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니."


그 나쁜 기억 중의 하나가 올리브에게는 가령 이런 거였다. 아들이 어릴 때 그녀는 아이를 무섭게 닦달했다. 대답해! (다른 길)  그녀는 노년에 큰 사건을 겪게 되는데, 남편과 우연히 들린 병원 응급실에서 강도 두 명에게 인질로 붙잡혔던 것이다. 간호사와 의사를 포함해 4명의 인질은 화장실에 갇혔고 강도 하나가 그들을 감시했다. 강도는 무심결에 복면을 벗었는데, 놀랍게도 어린 십 대 남자아이였다. 여드름이 잔뜩 솟은 그 아이는 극도로 불안해했는데 남편이 내뱉은 어떤 말이 아이를 더 자극했고, 아이는 남편에게 총을 들이대며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대답해! 아이의 광란을 보면서 올리브는 '그 광기 어린 좌절이 어딘지 익숙하다' 느낀다. 그것은 아들에게 소리치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올리브는 자신의 내면 깊이 묻혀있던 '나쁜 기억'을 어렵사리 기억해낸 것이었다. 사건은 경찰이 강도들을 진압하면서 해결됐지만 올리브는 오랫동안 그때의 일을 되새김질한다. 사건 한 순간 한 순간을 수십 번 되감으면서 자신이 극도의 불안 속에서 저도 모르게 남편에게 내뱉었던 말(진심의 잔인한 칼날)과 남편이 자신에게 했던 말(진심의 잔인한 칼날)을 떠올렸고, 아들을 윽박지르던 자신의 깊은 좌절감을 인정했다. 단편 말미에 올리브는 소년원에 있을 그 아이에게 작업복을 만들어주기로 한다. 그 아이에 대한 깊은 연민에서, 그리고 절망했던 젊은 날의 자신에 대한 아픈 연민에서.  


80년을 살아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고,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내가 왜 이런 욕구를 느끼고, 왜 저런 욕망을 품는지. 과거에 했던 수많은 실수들이 가끔씩 가슴을 후벼 파기도 한다. 40대를 지나면서 나는 내가 착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선량한 사람이다'는 항진 명제나 다름없었는데, 놀랍게도 나는 비열하고 이기적이며 상스러운 말을 나도 모르게 뱉어내곤 했다. 그것도 여러 차례. 그때마다 마음의 험악한 바닥을 짚는 느낌이었다. 아, 나는 착하지 않구나! 그것은 당황스러운 발견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홀가분했다. 나를 감싸고 있던 뭔가가 깨진 것 같았다. 그 뭔가는 독선, 위선, 같은 말로 설명될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비로소 내가 내 자신에게 정직할 수 있게 되었구나, 하는 안도감이랄까. 인간의 선함과 악함의 경계선을 확인했으니 이제 어디쯤에서 멈춰야할지 알아서 참 다행이구나, 싶었다. 오래 살지 않았다면 몰랐을 깨달음이었다.  


<다시, 올리브>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단편을 고르라고 한다면, 시인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소설에서 계급 문제를 민감하게 다루는데, 미국사회는 이민자들로 이뤄진 나라이고 그 안에서 인종문제와 빈부격차의 문제 등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뒤엉켜있다. 그래서 프랑스계 캐나다인은 아마도 무시를 당하는 계층인 모양인데, 이 단편에서는 이 계층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올리브가 가르쳤던 앤드리아가 주인공이다. 그녀는 미국의 계관시인으로, 메인주 주민들의 자랑거리다. 앤드리아가 고향을 찾았을 때 올리브는 우연히 그녀를 알아보고 그녀에게 다가가 알은 채를 했다. 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나중에 앤드리아는 올리브가 얘기했던 것들을 시로 썼다:


삼십사 년 전 내게 수학을 가르쳐준 누군가는
나를 나를 겁에 질리게 했는데 이제는 스스로 겁에 질려 있었다.
그녀는 내가 아침 먹는 자리로 와서 앞에 앉았다.
귀밑머리가 하얗게 센 채
내가 늘 외로움을 탔다고 말했다,
그 말이 자기 이야기인 줄 모르고.
...
그걸 시로 써, 그녀가 말했다, 
맘껏 써.


올리브는 이 시를 읽고 처음에는 너무나 불쾌해했다. 칭찬은 아니니까. 하지만 실제로 올리브는 앤드리아에게 자기 얘기를 시도 써도 좋다고 했다. 단, 자신이 겁에 질려 있다는 말은, 자기가 늘 외로움을 탔다는 말은 하지 않았었다. 자신이 그렇다는 사실을 몰랐으므로. 올리브는 곰곰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다행'이라고 앤드리아의 SNS에 댓글을 달았다. 시인이 시를 써준 덕분에 자신이 프랑스계 캐나다인에 대한 편견이 있다는 것, 앤드리아가 유명했기 때문에 아는 체를 했다는 것(즉, 자기가 속물이라는 사실), 자기가 외로웠기 때문에 그녀 앞에 가서 앉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올리브는 자신에게 말했다. "넌 이걸 기억해야 해. 올리브, 바보야, 이걸 잘 기억해둬."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영원한 수수께끼여서, 때로는 타인의 눈을 통해 바라보아야만 깨닫게 되는 것들이 무수히 많다. 


인생은 오래 살아볼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록 늙고 병들어서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게 되어도, 비록 기억이 사라져 현실과 단절된다 해도. 다른 사람 눈에는 비참해보인다고 해도. 그 모든 과정은 나에게 주어진 길이니까. 그 길을 끝까지 성실하게 걸어내는 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해내야 할 일이지 싶다. 그 길이 길수록 우리는 조금은 나은 인간이 될 기회도 그만큼 많다. 무병하든 무병하지 않든 장수는 비극적 드라마지만, 추락하는 것은 아름답다는 말도 있지 않나.  


"나도 알아, 알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남편 헨리에게) 별로 잘해주지 못했다는 거야. 그게 지금 마음 아픈 거고. 정말로 마음이 아파. 요즘 이따금 내가 인간으로서 아주 조금, 아주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아. 헨리가 내게서 그런 모습을 전혀 못봤다고 생각하면 정말 괴로워." 햇빛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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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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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사에서 또 한 명의 특별한 인물이 출현했다. 내 주변에서 마주칠 것 같은, 너무나 입체적이고 개성있는 여자 주인공이다. 솔직하고 직관적이며 인간적인 올리브를 탄생시킨 저자에게 감사함마저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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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전, 두껍전, 장끼전 - 병든 용왕 살리자고 성한 토끼 죽을쏘냐 겨레고전문학선집 27
권택무 외 옮김 / 보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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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부에 현대어로 풀어쓴 글을 싣고 후반부에 고어 원문을 실어놓아 비교하며 읽기 좋다. 하지만 풀어쓴 글과 원문이 다른 부분이 많아 의아하다. 원문과 다른 이본들을 같이 참고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토끼전의 다양한 이본들 목록을 실어놓았으면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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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화성행차 - <반차도>로 따라가는
한영우 지음 / 효형출판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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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98년에 나온 <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과 거의 같은 내용인 것 같은데, 더 간략하게 정리한 보급판이다. 아쉽게도 품절됐다. 꼭 다시 나와야 할 책이다! 훌륭한 왕을 뒀다는 사실에 마음이 벅차고 아름다운 그림도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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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동화 남자 심리 읽기 그림 동화 심리 읽기
오이겐 드레버만 지음, 김태희 옮김 / 교양인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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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담을 깊이 읽는 재미가 있다. 나 자신에 대한 생각, 내가 했던 경험들, 앞으로 나아갈 방향 같은 것들을 다시금 되짚어볼 수 있었다. 저자의 생각이 때로는 과하고 함축적이어서 정확히 파악하기 힘든 대목들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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