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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개청춘 - 대한민국 이십대 사회생활 초년병의 말단노동 잔혹사
유재인 지음 / 이순(웅진)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한국 전통의 해학을 흔히 '웃음으로 눈물 닦기'라고 한다. 현실의 고단함을 웃음으로 해소하고자 하는 우리만의 방식이다. <위풍당당 개청춘>은 참으로 각박한 청춘의 사는 모습을 무척이나 유쾌한 언어로 풀어낸 에세이다.

모든 세대가 그 시대 안에서 나름의 고민을 떠 안고 살아왔지만, 오늘날을 살아가는 이십대만큼 각박한 청춘을 보낸 세대는 드물 것이다. 요컨대, 그간의 세대들이 겪는 청춘의 고뇌가 '무언가를 하는' 것에서 오는 고뇌였다면, 지금의 이십대들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고뇌로 시름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며 대학 졸업 후 3년을 백수로 지낸 저자의 고뇌 속에서 오늘날의 청년 실업자의 현 주소가 보인다. 일터가 아닌 도서관으로 향하는 매일매일, 아픈 것조차 사치가 되는 미취업자의 비정한 현실을 젊은이답게 통통 튀는 말로 써내려가고 있다.

책은 실상 저자의 백수시절보다 사회 입문기의 해프닝들이 대부분을 이룬다. 사회의 부름을 받은 날의 환희와 직장 생활의 권태로움, 직장 생활을 해나가는 동안 깨우친 요령들을 자신의 체험에 근거해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것들을 기록함에 있어 많은 인용을 도입하는데, 특히 쇼팬하우어의 <인생론>에서 언급된 '고뇌'와 '권태'를 '미취업'과 '취업' 상태에 빗대 풀어낸 것은 꽤 공감이 갔다.

그러나 자신의 '직장체험기'를 풀어낸 부분에 이르러서는 직업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한 터라 개인적인 이야기에 그치고 말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뒤로 갈 수록 책의 정체성이 모호해진다. 사회 보편의 이야기로 시작해 블로그에 남긴 개인적 일상으로 흘러간다. 단지 그 배경이 직장일 뿐.

전체적으로 20대의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유쾌하게 풀어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전 사회 풍토를 조망하고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한 개인의 직장 체험기에 그친 감이 있어 아쉽다. 일례로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다'라는 현실적이고 냉정한 주장이 책의 초반에 등장하는데, 여기에 대한 대안을 찾지 못한다면 상당히 위험한 주장이 될 수 있다. 그것이 많은 청년 실업자들에게 푸념의 근거로, 혹은 변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세대의 특징을 반영한 가벼운 책들이 많이 쏟아지고 있지만, 많은 이들이 갖는 책의 효용성에 대한 믿음은 여전하다. 책은 친구들과 하는 잡담이나 개인 블로그에서 내뱉는 푸념과는 분명 달라야 한다. 가벼운 글쓰기에도 최소한의 책임감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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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아극장>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유모아 극장
엔도 슈사쿠 지음, 김석중 옮김 / 서커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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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본 문학의 거장의 책 치고 당혹스러운 표지다. 표지에서부터 웃기기로 작정한 듯 보인다. 책에 실린 글을 하나하나 읽노라면 표지에서 의도한 대로 피식피식 웃음이 난다. 그런데 웃긴 건 분명한데, 그 간질이는 방식이 다르다. 표피보다는 내피를 간질이는 느낌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나오는 웃음도 배꼽을 잡는 웃음이 아니라 슬금슬금 새어나오는 웃음이다. 삶에 대한 애정이 빚어내는 은근한 웃음(우리 아버지 등), 기발한 상상이 만들어내는 통쾌한 웃음(마이크로 결사대 외), 조롱과 아이러니가 만들어내는 차가운 웃음(우리들은 에디슨, 동창회 등)과 같은.

수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까지 오른 바 있는 일본 문학의 거장 엔도 슈사쿠의 작품으로는 독특한 작품집인 <유모아극장>은 작가가 다소 무겁고 어두운 느낌을 주는 고정화된 자신의 이미지를 벗어보고자 지어낸 글들이다. 어두운 이미지에서 탈피해 작가 자신의 경박한 이미지를 내보이고자 쓴 글이라고 하는데, 거장이 만들어내는 경박함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 짧고 가벼운 글 들 속에도 삶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묻어난다.

이 소설집에는 12편의 짧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이 이야기들은 책의 표지나 제목에서 기대되는 것과 같이 엄청나게 기발하고 대담한 발상을 담고 있지는 않다. 한 편 한 편이 일상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해프닝을 그리고 있다. 거창하지도, 심오하지도 않고, 일상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을 포착하여 하나의 플롯에 담았다. 오랜만에 만난 입담 좋은 친구가 풀어내는 그간의 일들을 듣는 느낌을 준다. 때로는 허풍과 과장이 섞여 있지만 막판에는 다 함께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담백한 이야기의 모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쓰인 것이 1960년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야기의 품격이 오늘날과 비교해서 크게 동떨어지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당시에는 꽤 획기적이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사모하던 여인의 몸속에 들어가 회충과 결투를 벌인다든지,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여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엉뚱한 발명품들을 만들어낸다든지 하는 발상은 당시로서는 분명 기발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인간을 사랑하는 원숭이, 자신과 꼭 닮은 사람의 존재도 독특한 소재거리였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발상의 기발함을 차치하고, 보편적인 삶과 인간성에 맞닿아 있는 이야기들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충분히 공감할만한 세련됨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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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베이니 가족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민승남 옮김 / 창비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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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가족이라는 말에 가장 어울릴 것이다. 가족은 개개인의 삶의 크고 작은 부분에 끊임 없이 관여하기 마련이지만, 언제나 완전한 형태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조이스 캐럴 오츠의 <멀베이니 가족>은 완전한 형태의 가족이 해체되고 재결합하는 과정을 그리며, 그것이 가족 구성원 각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방대한 서사 속에 펼쳐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멀베이니 가족이었다(We were The Mulvaneys).' 이 소설의 첫 구절이자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 이 과거형의 문장 속에 멀베이니 가족의 영화가 함축되어 있다. 소설의 전반부에는 1970년대 중반 뉴욕주의 한 소도시에서 농장을 운영하며 타인의 부러움을 받았던 멀베이니 가족의 자긍심 넘치는 삶이 막내 아들 저드의 눈을 통해 생생하게 묘사된다. 맨 손으로 멀베이니 지붕 회사를 설립해 지역의 영향력 있는 인사로 떠오른 가장 마이클 멀베이니와 굳은 신앙심과 타고난 자애로움으로 가정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는 그의 아내 코린, 그리고 네 자녀의 이상적인 삶이 그림같은 하이포인트 농장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그리고 곧 외동딸 매리앤이 강간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가족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모든 가족을 충격으로 몰아 가는 그 사건으로 인해 사랑과 신뢰로 똘똘 뭉쳐져 있던 가족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더 없이 단단하고 이상적인 가족은 점차 붕괴되어가고 가족 구성원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이후 소설은 해체된 각각의 가족 구성원이 사는 방식을 묘사하면서, 가족을 벗어난 그들의 삶도 가족이라는 올가미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치열하게 묘사한다. 가족의 품으로 되돌아갈 날을 간절히 기다리는 매리앤은 물론이고, 모든 것에 무관심하고 냉소적인 둘째 아들 패트릭 조차도 자신이 일구어 가고 있는 삶에 깊이 침투해 있는 가족이라는 존재를 끝내 외면하지 못한다. 소설은 가족의 아웃사이더였던 패트릭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복수를 펼치는 것으로 한 번의 클라이맥스를 맞는다. 이들 가족은 서로를 상처입히지만 결국 가족이란 운명공동체 안에 속해 있음을 긍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상처 받고 무너져 내리는 가족 구성원들의 방황의 종착지는 가족일 수밖에 없다.

마이클 멀베이니의 몰락을 통해 극대화되는 이 가족의 비극은 공허하면서도 동시에 꽉 찬 슬픔을 느끼게 한다. 큰 아들을 만나고 돌아온 다음날, 더러운 자신의 방에서 깨어난 마이클 멀베이니가 백마를 탄 아이들에 대한 환상에 젖는 장면은 처절하게 슬프면서 보석같이 반짝거리는 명장면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다. 비극의 마지막 순간 비춰지는 가족에 대한 애절한 사랑은 슬픔을 극대화시킨다. 인간은 너무나 쉽게 무너지는 존재이지만,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닫게 된 것이 마이클 멀베이니의 가장 큰 비극이 아닐까.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유형을 떨치고 차 안에 숨어 자신이 살아온 마을과 농장의 모습을 훔쳐보는 매리앤의 간절한 모습이 펼쳐지며 가족공동체의 숙명에 대한 주제의식이 표면으로 떠오른다. 20여년이 흘러 마침내 해후를 맞이하는 이들의 모습은 누가 뭐라해도 '멀베이니' 그 자체다. 이 책은 또한 한번 무너지기는 쉬우나 다시 되찾기 위해서는 힘겨운 노력이 필요한 행복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가 가족 서사는 더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가족 서사에는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가치가 들어 있다. 그 누구도 자신의 뿌리를 부정한 채 혼자서 완전한 존재일 수 없다.

<멀베이니 가족>은 소설이라는 장르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을 그리듯이 생생하게 묘사되는 배경, 방대한 서사 속에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잡고 있는 인물, 긴 시간 동안 일관적으로 유지되는 사건의 개연성, 아름다운 언어와 그 언어가 함의하는 다양한 상징 등. 게다가 작가의 체험에서 우러난 듯한 한 시대의 철저한 복원으로 인해 멀베이니 가족의 역사는 상당한 진실성을 부여받는다. 이 모든 것들은 단단하게 응집된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작품 속에서 완전한 세계를 구축하고 인물에 생명력을 부여하여 자신의 서사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일 때, 그 작가는 독자를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조이스 캐럴 오츠가 거장으로 칭해지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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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생활백서 - 2006 제30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민음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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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민음사 '오늘의 작가상'에 두번 내리 실망한 터라(<걸프렌즈>, <마이짝퉁라이프> - '오늘의 작가상'이란 타이틀과 나란히 놓이기엔 제목부터가 민망하다) '오늘의 작가상'은 거들떠 보지도 않게 됐는데, 단 두 작품으로 인해 주옥같은 작가들을 배출해 온 '오늘의 작가상'에 가혹한 비평을 가하는 건 공정치 못하다는 생각에 또 한 권을 집어 들었다. 그렇게 만난 2006년 수상작인 박주영의 <백수생활백서>는 마음을 돌리기는 커녕 '그 생각'에 확실히 쐐기를 박아 주었다.

<백수생활백서>는 소설의 가장 큰 본질인 '창조성'과 '이야기'가 완전히 실종된 소설이다. 팍팍한 인생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구미를 당길만한 타이틀을 내걸고는 그것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한 젊은 여성의 독서담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리하게 늘어 놓는다.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해 일을 할 수 없다는 '자발적 백수'인 주인공을 내세워, 작가 자신의 독서력을 끊임없이 과시하고 있다. (그래 너 책 많이 읽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주인공이자 화자인 젊은 여성의 입을 통해 '나는 책을 읽는 것이 좋다', '나는 영원히 책을 읽을 것이다' 식의 같은 말만 끊임 없이 되풀이하는 동안 이야기는 단 한발짝도 전진하지 못한다.

자신의 독서력을 자랑하면서도 자신의 취향이 너무나 확고해서 다른 취향은 이해하지도 못하겠다는 단호한 어조도 거북하다. 사실을 말하자면 주인공의 독서 취향은 나 자신의 취향과도 많이 닮았다. 그러나 공감은 커녕 그 오만한 독선에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릴 정도다. 타인의 취향을 너무 쉽게 깔아 뭉개는 저 단호한 어조는 얼마나 건방진가. 특히 '옷이나 사면서 행복해 하는 여자'라는 표현 따위로 책에 미쳐있지 않은 여타의 사람을 깎아내리려는 서술은 또 얼마나 오만한지. 책을 좋아하면서도 편협하지 않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주인공은 끊임없이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자신의 삶이 만족스럽다는 장광설을 쏟아낸다. 책에 미쳐 사는 주인공의 특별한 척이 짜증나도록 지겹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으면서 아버지의 일을 도와주지도 않고 책만 읽어대는 여자의 지루하고 끝없는 자기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작가는 화자의 입을 통해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소설은 읽기가 힘들다'고 말하고 있다. 동시에 '책은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고도 한다. 반복되는 주장은 일관성조차 잃고 있다. 또 모든 서술은 직설화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나는 어떻다', '내 친구 유희는 어떻다', '나는 책만 있으면 된다' 등. 직설 화법에는 작가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개입되게 마련이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한 서술은 소설의 방식이 아니다. 문학의 기본은 '돌려 말하기'가 아니던가.  

<백수생활백서>에서 화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모두 책에서 나온다. 이야기가 실종된 빈 공간에 이 책 저 책에서 따온 인용들만 난무하다. 모든 사건이 어떤 다른 소설 속에서 나온 문장들로 정리가 된다. 작가는 창작의 수고로움을 포기한 대신 인용의 수고로움을 선택한 듯 보인다. 책 표지의 추천사에는 이를 두고 "그 자체로 불후의 도서관인 소설"이라고 칭하고 있다. 꿈보다 해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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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 - 세쌍둥이와 함께 보낸 설피밭 17년
이하영 지음 / 효형출판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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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이 더 편한 곳, 더 세련된 곳, 더 복잡한 곳으로 끊임없이 나아간다. 더 좋은 직업, 더 좋은 학군을 찾아 끊임없이 거처를 옮긴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문명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호젓한 곳을 찾는 '특별한' 사람의 이야기는 늘 있어 왔다. 책을 읽어도 TV를 봐도 희귀한 삶을 다루듯 그들의 일상을 조명한다. 왜? 말 그대로 희귀하니까. 앞으로 나아가기에도 바쁜 세상에 당당히 뒤켠에 조용히 물러설 줄 아는 그들의 용기에 약간의 동경의 시선을 보내면서.

그러나 그 동경의 시선은 다소 이중적이다. 호젓한 그들의 삶을 부러워하면서도 자신은 그러지 못하는 것은 용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많은 것들을 버리고 싶지 않은 욕심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를 벗어난 호젓한 자연속의 삶에 대한 향수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는 도시에서 나서 쭉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조차도. 자연을 갈구하는 인간의 심리는 인간이 완전한 자연의 일부였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오래된 본능이 아닐까.

<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는 자연을 향한 인간의 갈망을 자극하는 에세이다. 서울에서 대학까지 나온 저자는 세 쌍둥이와 함께 강원도 한 산골에서 17년 째 삶을 꾸려가고 있다. 반지하로 갈 수 없어서, 차선으로 선택된 산골 생활이지만 결국 산골이 주는 수많은 혜택에 동화되어 성공적으로 산골에 정착한다. 그리고 지금은 자연이 주는 즐거움을 누구보다도 잘 누릴 줄 알고 그 삶에 감사할 줄 아는 행복한 곰배령 아줌마가 되었다.

이 책의 곰배령은 완전한 생활의 공간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완상하며 느긋한 삶을 살아보자는 식상한 구호의 나열이 아닌 것이 마음에 들었다. 저자는 생활 속의 자연을 말하며 자연에 대한 애정과 거기서 얻는 기쁨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한다. 콩을 삶아 메주를 쑤고, 호미를 들고 나물을 캔다. 벌과 강아지를 키우기도 하고, 자연에서 얻은 갖가지 재료들로 맛있는 밥상을 차리기도 한다. 저자는 이렇듯 철저하게 경험을 바탕으로 산골의 사시사철 나날들을 구체적으로 감칠맛나게 묘사한다.

오늘날 도시 삶을 버리고 자연으로 회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사회가 어려울수록 자연으로 도피하려는 것은 비단 오늘날의 일만은 아니다. 조선시대 강호가도를 노래하는 시가에서도 자연은 도피와 위안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가 말해주는 수많은 자연의 혜택을 보고 있자면 자연이 단지 도시 삶의 고단함을 떨쳐 버릴 수 있는 일시적인 도피처로 여겨지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자연이 실패로부터의 도피처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일부가 되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자연의 혜택을 누리며 살 수 있는 날들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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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영 2010-03-09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ㅎㅎ
실은 이럴 줄 몰랐답니다.
산골의 현실과 저의 상상속의 산골생활은 무척 달랐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낭만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더랍니다.^^
어리버리 하다보니 아이들은 훌쩍 자라났습니다.
봄인가 싶으면 어느 새 여름이고 가을이 훌쩍 다가왔습니다.
이러다가 '땡땡땡' 이 삶이 종이 울릴 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미루어 둔 것은 언제나 그 상태로 남아 있을 뿐이었죠.
궁리는 늘 궁리로 그쳤었고요.
기록을 들여다 보니 살아온 날들이 조금은 느껴졌더랍니다.
산골생활 17년을 정산을 해 보고 싶었습니다.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쓸 수 있고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는 옛말을 듣기로 하였습니다.
책을 내 보고 저는 참으로 기뻐합니다.
고슴도치가 제 새끼를 예뻐하듯이 저는 '곰배령 꽃비'를 무척 예뻐합니다.
나래, 다래, 도희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어여쁜 아이인 것처럼
'곰배령 꽃비'는 제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어여쁜 책입니다.
저와 함께 하는 아이와 책이 소중하고 어여쁜 것처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아이와 책들역시도 소중하고 여여쁘다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깐짜나부리님, '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 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리뷰도 반갑습니다.
능동적인 삶이 보편타당한 일상이기를
저도 깐짜나부리님과 더불어 고대합니다.

눈 내리는 설피밭의 오후,
주렴처럼 드리워진 고드름 창 안에서
깐짜나부리님의 리뷰 '자연을 온 몸으로 호흡하는 가족이야기' 를
세쌍둥이네 풀꽃세상 홈피 (www.jindong.net)의 풀꽃사는 이야기 방에도 게시함을
세쌍둥이 엄마가 고합니다.










깐짜나부리 2010-03-22 00:05   좋아요 0 | URL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그 용기를 닮고 싶습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