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1인용 식탁>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1인용 식탁
윤고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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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고은의 처녀작 <무중력증후군>은 좋은 작품과 작가를 많이 배출해 기본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한겨레 문학상의 질적 수준을 떨어뜨리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재미와 문학성을 보여주었다. 아직 신인이며 잘 알려진 작가는 아니지만 젊은 작가 치고는 힘 있고 탄탄한 내공을 갖추고 있다고 느꼈던 윤고은의 신작 소설집 <1인용 식탁>에도 전작의 잔영은 많이 묻어난다. 전작과 유사하게  9편의 단편을 묶은 이 소설집의 테마는 환상을 좇는 현대인의 공허함쯤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소설집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들은 철저하게 현실 세상을 기반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다. 그것도 몹시 구차하리만큼 사실적인 현실이다. 왠지 모르게 소외되어 혼자 점심을 먹을 처지에 놓인 직장인, 신춘문예를 통해 화려하게 등단 했음에도 실업자로 불리는 일이 잦은 소설가, 빈대에 대한 강박관념에 신음하는 현대인 등이 소설의 주인공들이다. 작가는 이처럼 필부필부라 할 만한 면면을 놓고 하나의 주제 속으로 집요하게 파고들기 시작한다. 이들이 파고들어가는 세계는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공간이기도 하고(1인용 식탁), 강박에서 벗어나려는 탈출구이기도 하며(달콤한 휴가, 인베이더 그래픽), 현실도피를 위한 이상향이 되기도 한다(아이슬란드).

이 소설집 속에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 달이 번식하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과 같이, 황당한 일들이 그럴 수 있다는 듯이 능청스럽게 벌어진다. 혼자 먹는 법을 알려주는 학원이니, 빈대 퇴치를 위한 모임이니, 꿈을 파는 철학관이니 하는 것이 현실의 세계에서 존재할 법한 것들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에 소속된 인물들은 진심으로 진지하게 그 공간에서 추구하는 목적을 향해 투신한다. 작가는 철저한 현실적 인물을 등장시켜 그들에게 환상을 보게 하는 것이다. 철저한 현실 속에 마련된 환상의 공간을 통해 환상에 맹목적으로 투신하는 현대인의 공허함을 그려낸다.

표제작인 <1인용 식탁>은 직장인의 점심식사라는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는 소재를 들고 왔지만, 군중 속의 소외를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어 많은 공감을 준다. <달콤한 휴가>는 빈대의 번식이라는 기발한 상상력을 통해 현대인의 강박관념을 세밀하게 묘사해내고 있다. <인베이더 그래픽>이나 <아이슬란드>는 현실 세계의 핍진한 묘사로 인해 현대인의 고단함을 묘사함과 동시에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꾸준한 이상향 지향을 보여준다. 현대인의 불안의식을 가시화시켜 이를 상업화하는 세태를 꼬집는 <박현몽 꿈 철학관>은 <무중력증후군>과 상당히 유사한 서사구조를 보여준다. 그밖에 기계 문명에 잠식당해 인간성을 상실해 버린 세태를 우화적으로 그린 <로드킬>이나, 부패한 타임캡슐의 복원 과정을 통해 내면의 심리를 들춰내는 <타임캡슐 1994>도 독특한 발상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홍도야 울지마라>는 이 소설집에서 이례적으로 성장소설의 구조를 하고 있는데, 유기농 식품과 솜사탕의 대비를 통해 현실의 세계와 유년의 추억 사이를 오가는 한 소녀의 성장담을 잔잔하게 들려준다.

<무중력증후군>에서 보여주었던 해학성은 많이 완화되었지만, 문체 곳곳에 스며있는 유머와 상황의 아이러니는 여전히 유쾌하게 다가온다. 능청스러운 화법으로 현실 세태를 꼬집는 방식도 여전하다. 9개의 작품 모두 뛰어난 작품성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결 같이 젊은 작가의 무한한 가능성과 패기가 느껴지는 작품들로 일정 수준의 재미를 보장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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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1인용 식탁>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 스물여섯의 사람, 사물 그리고 풍경에 대한 인터뷰
최윤필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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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물과 사람들에 이야기가 두서없이 섞여 있다. 그러나 특별한 테마도 없이 떠도는 이 26편의 이야기들을 하나씩 읽노라면 그것들이 모두 '바깥'이라는 구심점을 향해 모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갖지 않는, 관심을 가질 기회조차 없었던 스포트라이트 바깥 세상의 이야기들이다. 이처럼 그간 주목 받지 못한 세상을 주목하는 기자의 시선을 따라가면 우리가 사는 곳이 생각보다 다양한 색깔을 띠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것이 이책 최윤필의 <어느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의 매력이다.

작가가 찾아나간 세상 밖은 다양한 사람과 사물, 풍경들이 펼쳐져 있다. 이목을 끄는 소식들과 최신 유행, 첨단을 남들보다 빨리 전해야 하는 기자라는 직업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대형 서점 대신 파쇄공장을 방문하는가 하면, 잘 나가는 아이돌 스타 대신 '찌질한' 괴짜 인디 밴드를 찾아나선다. 그렇다고 해서 사소한 것이 밀려 있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강한 항변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다양한 존재들에 대해서, 그들이 꿈꾸는 것들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사실들을 전달하려고 애쓸 뿐이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관심사들이 있기 마련이다. 많은 수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수 개의 상영관을 가진 멀티플렉스 극장이라든가 현재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아이돌 가수나 올림픽 메달리스트, 불교와 기독교 따위의 메이저 종교들과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시대의 관심사는 그 정보 또한 차고 넘친다. 게다가 잦은 노출과 시선의 집중으로 인해 습관적인 관심이나 맹목적인 추종으로 치달아 존재 자체가 지닌 가치가 희석된 경우도 많다. 동심원의 안쪽, 가장 좁은 면적을 차지하려고 아웅다웅하는 안쪽의 세상은 치열함만이 남은 듯 하다.

그러나 바깥에 존재하는 것들은 사뭇 다르다. 노인들을 위한 2천원 짜리 고전 영화 상영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보다는 묵묵히 훈련하는 2인자 국가대표 선수, 무속과 유교 같은 사라져 가는 전통 사상 등이 그런 것일 진대, 이들에게는 좀 더 넒은 바깥을 꿰차고 앉아 있는 존재로서의 여유마저 느껴진다. 작가가 주목하는 대상은 관심 밖의 존재라기 보다 아예 존재하는지 조차 몰랐던 그런 존재들인 경우가 더 많다. 이는 비단 이 책에서 조명되고 있는 것들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사람이나 사물들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서 한 발짝 비켜선 채 그만의 가치를 위해 존재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이 책은 바깥에 존재하는 그 무엇에 대해 감상과 동정을 일체 배제한 채 객관적인 시선을 줄곧 유지한다. 팩트를 바탕으로 한 기사이므로 일체의 가치판단이 개입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작가가 직접 선정한 인터뷰이들의 면면만으로도 그의 포커스가 향하는 방향과 그에 대한 관심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 책은 바깥 세상이 결코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 채 한 켠으로 밀려난 세상이 아님을 거듭 말하고 있다. 우리 개개인은 안 쪽보다는 대체로 바깥 쪽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는 주목받지 못한 모든 존재들에 대한 가치의 정의를 새롭게 내리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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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8 제너시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2058 제너시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7
버나드 베켓 지음, 김현우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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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에 관한 이야기가 이토록 오래동안 인간의 관심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인류의 기원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뉴질랜드의 작가 버나드 베켓의 <2058 제너시스>는 인류의 현재 역사를 창세기 이전으로 되돌린다는 점에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다. 과학적 상상력을 통해 인류에 대한 물음에 접근해간다는 점에서 작가 자신의 과학적 전문인으로서의 이력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이런 류의 소설이 던져주는 기발한 상상의 이면에는 과학 테크놀로지가 잠식해가는 오늘날과 앞으로의 사회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꾸준한 물음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 과학적 상상력과 창세기 신화의 조합은 결국 인류의 미래와 과거가 교차하는 오늘날의 인류에게 그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오랫동안 공상과학 소설에서는 로봇을 통해 역설적으로 인간의 이야기를 해오곤 했다.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달해도 본질적으로 기계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그 어떤 인간만의 특성이 있다면 그것은 마땅히 지켜져야 할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2058 제너시스>에서는 인간인 아담과 안드로이드인 아트의 끝없는 논쟁을 통해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탐색해 나간다. 고대 플라톤의 시대로부터 인간만이 가진 특질이자 세계를 이해하는 틀이 되어왔던 '관념'이 인간의 본질이라는 아담의 주장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것은 오래된 신념이고 누구나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는 인간만의 특질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인간이 '관념'과 똑같은 것이 부여된 기계가 존재한다면 그것을 인간만의 특질로 볼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오랫동안 철학자들의 주된 관심사였던 인간 존재에 대한 여러 답변들을 안드로이드인 아트를 통해 꾸준히 반박한다. 결국 로봇에 의해 인간의 사유와 감성은 부정되고 인간은 광물의 진화 과정에서 발생한 변종에 불과하다는 차가운 결론에 이른다.

<2058 제너시스>는 완전한 허구이며 그 무엇보다 상상의 여지가 개입하기 쉬운 SF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논리적이다. 작가가 구상한 창조적 세계는 현재의 역사를 그대로 잇는다. 즉 이 소설 속 미래 사회는 막연한 상상의 공간이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후인 2058년을 기점으로 새롭게 창조된 세계다. 현재의 역사를 넘어 허구적인 미래의 세계로 접어드는 과정에서 현 국제 정세와 이해관계에 따른 인과성을 고려했으며, 새로운 국가가 세워지고 국가주의 정책이 펼쳐지는 과정에서도 치밀함을 잃지 않는다. 로봇과 인간의 논쟁도 과학적 지식과 철학적 사유가 어우러지며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전개된다.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창세기에 대한 재해석을 바탕으로 고대 아테네 폴리스를 모방한 미래적 국가를 등장시킨다. 인간은 관념에 종속된 존재라는 세계관이나 귀족적인 계급 의식, 문답법을 통해 지식을 이끌어내는 방식 등이 그렇다. 철저한 국가주의 사회의 모습 또한 고대 그리스 폴리스 사회의 재현으로 보인다. 비정한 미래의 사회의 모델을 고대 사회에서 찾아낸 것은 아이러니하다.

앉은 자리에서 짧은 시간에 뚝딱 읽을 수 있는 가벼운 분량과 뛰어난 가독성을 지닌 책이지만 그 속에는 과학, 철학, 종교, 역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지식을 담고 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지성에 호소하는 차가운 소설이지만 그 속에서 뜨거운 것을 찾으려는 시도를 간과해선 안 된다. 작가는 치밀한 논리를 펼치면서도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본질에 대한 탐색을 계속해 나간다. 풍부한 서사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예상을 뒤엎는 발상의 전복과 방심을 허락하지 않는 놀라운 결말은 소설의 매력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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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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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인조의 첫째 아들 소현 세자는 이정환의 '국치비가(國恥悲歌)' 두 수에서 언급되어 그 비극적 운명의 일면만을 짐작할 수 있을 뿐, 역사의 중심부에 서 보지 못한 채 뒤안길로 사라져 간 인물이다. 길지 않은 일생에서 10여년 세월을 적국의 땅에 볼모로 잡혀 살았으며, 환국한 지 2달여만에 의문의 죽음을 맞았으니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였던 숱한 왕족들 중에서도 치욕적이고 고독한 삶을 살았음이 분명하다. 이 비극의 인물이 소설가 김인숙을 통해 새로이 생명력을 부여받았다.

소설 <소현>은 수많은 문학작품의 모티프가 되었던 병자호란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누구도 깊이 관심을 두지 않았던 소현 세자에게 포커스를 맞춘다. 왕족이고 세자의 삶을 살았으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리고 만 인물의 고독한 내면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 팩트가 작가적 상상력으로 확장되는가하면, 작가의 말에 이르러 다시 역사적 팩트로 되돌아 온다. 작가는 어디까지나 최종판단은 유보하고 있지만, 결국 소현 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자신의 역사적 입장을 작품 속에 드러낸다. 물론 이 소설은 소현 세자의 죽음에 대한 역사적 입장을 드러내기 위해 쓰여진 것은 아니다. 작품은 소현 세자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간 세월과 환국 후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삶의 모습을 그리면서, 조선 권력층들의 충의와 청나라를 향한 이중의 시선을 드러내는데 치중한다. 

조선의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장면의 하나로 꼽히는 병란의 전쟁 당시의 처참함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지만, 패전이 가져온 고난의 세월이 10여년 이상이나 지속되었음에 대한 비장함이 소설 속에는 더 잘 드러난다. 왕에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패전이 가져온 절망과 혼돈이 작품 곳곳에 그려진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결국 소현 세자의 고독한 내면으로 집중된다. 조선을 향한 그리움과 임금을 향한 충의만으로 버텨왔던 굴욕의 시간은 권력층의 야욕과 사대를 강요하는 적국에 의해 무위로 돌려진다. '희생'이라는 말에는 작은 것을 버림으로써 큰 것을 얻어간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소현 세자의 희생은 굴욕과 상처만이 남았고, 적을 더욱 완전하게 만들어 주었을 뿐이다. 결국 위대한 희생조차 될 수 없었던 소현의 일생은 변방의 나약한 소국으로서 겪어야했던 서러움을 응축한 국치비가(國恥悲歌)인 것이다.

소설 <소현>은 소현 세자의 고독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다양한 주변인물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소설적 재미를 더하고 있다. 위로는 왕에서부터 아래로는 투전판을 들락거리는 역관과 무녀의 이야기까지 두루 포용하고 있다. 이 모든 인물들이 하나의 서사 줄기로 수렴됨은 물론이다. 소현과 봉림, 인조, 도르곤 등의 역사적 실존 인물에 만상, 막금과 같은 가공의 인물들을 첨가해 고루한 사실의 나열에 그칠 수 있는 역사소설의 한계를 극복한다. 또한 부분부분 추리적 기법을 첨가해 긴장감을 불어 넣으며, 역사적 격동기 속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각 인물들의 충의와 가치관을 잘 드러내고 있다.

역사적 한계의 재해석 작업은 사료적 한계와 관점의 편협함에 따른 비판 등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나 역사의 재해석이라는 대범한 작업은 또한 소설이라는 장르적 이점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소설 <소현>은 역사적 팩트를 전아한 문체와 섬세한 필치를 통해 소설적 재미를 최대한 살려 그려내고 있으므로, 비판적 독서만 잘 이루어진다면 의미 있는 독서 체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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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 - 자라지 않는 아이 유유와 아빠의 일곱 해 여행
마리우스 세라 지음, 고인경 옮김 / 푸른숲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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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있어 타인의 비극에 관해서는 쉽게 슬퍼하거나 동정할 수 있다. 그러나 당사자가 되어 비극을 견디는 일에는 누구도 능숙하지 못하다. 그러니 같은 상황을 겪지 않은 이상 책이나 티비로 접하는 누군가의 투병일기를 진심으로 공감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마리우스 세라의 <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는 저자 자신에게 닥친 고통의 순간을 당사자 스스로의 시선으로 써내려간 에세이다. (생후 5개월 된 아이가 불치병을 선고받았을 때 그 비극의 파장이 자식보다 부모에게 더 크게 미친다는 일반적인 신념에 따르면  비극의 주체는 아이이기보다 부모임에 틀림 없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감내해야 할 슬픔이나 절박함이 여과 없이 드러나기 쉽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슬픔을 과장하여 떠들어대지 않는다. 평범한한 일상을 이야기하듯 장애를 가진 아들을 보듬는 나날들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담담함 속에서 애끓는 부성애가 드러나는 순간들이 있다. 타인의 대화를 엿듣는 중 아들을 향해 "(너의 병이 낳는다면) 심지어는 레알마드리드 팬이 될 수도 있어"라고 불쑥 내던진다든가, 멋진 안무의 춤을 추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내 아이는 절대로 못할거야'라고 삭인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또 마이솔린, 데파키네, 사브릴렉스, 토파막스, 노이아프렌, 케프라, 트릴렙탈, 리보트릴. 무엇의 이름인지 짐작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약 이름을 한없이 늘어놓는 것으로 아이가 받고 있는 고통을 이야기하는 식으로.

유이스 세라 파블로, 유유는 평균 수명 7세라는 희귀병으로 생후 7개월부터 성장이 멈추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보다는 그 아이를 지켜보는 가족이 겪어야 할 슬픔의 무게가 더 크다. 그러나 가족들은 현실을 받아들인다. 슬퍼하되 좌절하지 않고 간간히 찾아오는 작은 행복에 감사할 줄 안다. 그들은 유유가 살아있는 한 많은 나라를 여행하기로 결심한다. 이 책은 유유의 탄생 직후 보인 증상들과 병을 선고받기까지의 과정, 여러 곳을 여행하며 느낀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감정을 최대한 절제한 작가의 서술에서 그가 짊어져야 할 고통의 무게가 읽힌다. 그러나 작가는 그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슬픔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삶의 일부로 수용함으로써 오히려 아픔에 대한 거리두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어느 불행한 사건을 그리고 있음에도 비극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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