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튤립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8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송진석 옮김 / 민음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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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명이 잘못되었네요. 뒤마와 뒤마피스는 부자지간이지만 엄연히 다른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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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고객센터 2011-04-25 18:27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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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과 쓸개>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간과 쓸개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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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는 진정한 재미는 주로 장편에서 발견되곤 하지만, 삶의 단면을 포착하는 타인의 시선이 궁금할 때는 단편 소설만한 것이 없다. 한정된 분량 안에 세계와 세계를 바라보는 개인과 그 개인에 대한 가치평가를 골고루 담아내고 있어 단 한 편만으로도 삶을 향한 응시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최근 들어 현대인의 팍팍한 삶의 방식이나 피폐한 정신을 조명하고 있는 작가들이 적지 않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구체적인 세계의 모습은 또한 제각기 다르다. 그러나 수많은 작품들은 결국 크게 인간에 대한 부정과 인간에 대한 긍정으로 양분되는 듯하다. 김숨의 소설집 <간과 쓸개>는 굳이 말하자면 인간에 대한 부정의 시선에 보다 가깝다.

우선 이 소설집에 실린 9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비상식적인 사고와 행동을 일삼는다. 저녁을 차려내는 일에 비정상적으로 몰두한다든가(모일, 저녁), 계단을 허무는 것에 유난히 집착한다든가(흑문조), 자신의 아이들을 병적으로 두려워하는(룸미러) 식이다. 한 편에서 터무니 없는 주장을 늘어 놓으면 다른 편에서는 그 황당한 주장에 어떤 의혹도 제기하지 못한다. 배관 수리를 구실로 집안 곳곳에 구멍을 파헤쳐 놓아도(흑문조), 남편이 난데없이 여자를 데리고 집안에 들이닥쳐도(육의 시간), 집주인이 전세금을 터무니 없이 올려달라고 우겨도(내 비밀스런 이웃들) 인물들은 그 어떤 적극적 대응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습적인 무기력증과 타성은 정신적 이상징후라 여겨질 만큼 과장되게 그려진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정신은 대체로 혼란스럽다. 때로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조차 모호한 환각에 빠지기도 한다. 비상식적인 행위들에 대해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기 때문에 그 세계는 그 자체로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쯤 되면 대체 상식적인 행위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상식과 비상식의 경계는 대체 누가 결정하는 것인가?

<간과 쓸개>에서 정신의 문제는 그 어느 것도 분명한 것이 없어 보인다. 소설은 정신의 영역을 환상적인 기법으로 처리하는 대신 인간 육신에 치중한다. 그런데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의 육신은 한결같이 병들어 있다. 간과 쓸개, 폐와 뇌 등 병마는 육신 어느 곳에든 깃들어 있다. 육체의 불완전성은 역설적으로 육체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병이 깃드는 육신만은 비상식이 난무하는 정신의 세계와 달리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표제작인 '간과 쓸개'에서 병든 육체는 생생한 현실로 그려지지만, 저수지에 대한 아득한 기억은 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육의 시간'에 등장하는 여인은 그 육신을 천년 이상 보존해 왔지만 '소파에 고요히 앉아' 있는 것 외에는 특별한 행위를 벌이지 않는다. 긴 세월을 거쳐 보존된 것은 정신이 아닌 육신일 뿐이다.

비상식적인 정신과 병든 육체를 가진 인물들은 상호 간의 소통에 실패하고 있다. 도처에서 인물들은 실종되거나 동물과 동일시됨으로써 고독 안으로 침잠한다. '모일, 저녁'에서는 모처럼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아버지는 온 저녁을 전어를 굽는 일에 몰두하고, 어머니는 엄청난 양의 음식을 차려낸다. 그러나 잘 구어진 전어와 푸짐한 진수성찬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오붓한' 저녁식사는 불발에 그친다. '사막여우 우리 앞으로'는 폐장 시간을 앞둔 동물원에서 예정된 자매의 재회가 주된 서사를 이룬다. 그러나 와야 할 동생이 오지 않고 날이 저물어 감에 따라 동물의 우리와 인물의 위치는 반전되기에 이른다. 결국 그는 우리 안에서 사막 여우를 대신해 울음을 터뜨리지만 그 누구도 그가 우는 이유에 대해 물어 오지 않는다. '북쪽방'에서는 아예 아내에 의해 구석진 방으로 내몰린 남자가 등장한다. 쇠약해진 육신을 이끌고 유폐되듯 아내에 의해 북쪽방으로 옮겨진 남자는 생을 반납한 채 광물처럼 소멸해 간다. '내 비밀스런 이웃들'에서는 이웃은 고사하고 부부 간의 핀트가 맞지 않는 대화에서 관계의 단절을 절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럭키 슈퍼'의 아버지는? 이미 유통기한을 훨씬 넘겨 상품성조차 없는 식품으로 한없이 전락해 버린 후다.

정신의 가치가 보다 중시되는 것이 오늘날의 세태라고 할 때, 김숨의 소설들은 절망적이다. 모든 인물들은 세계와 단절되고 고립되어 있다. 유일한 실재인 육신은 병들거나 지쳐 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암담한 세계만이 펼쳐진다. 어쩌면 뚜렷한 물성을 지닌 재료에 대한 작가의 집착은 절망의 심연에서 출구를 찾기 위한 노력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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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궁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한밤의 궁전 안개 3부작 3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김수진 옮김 / 살림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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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호러, 스릴러, 모험 등 한 장르의 범주 속에 가두어 두기에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소설은 조금 복잡하다. 그의 작품들은 모든 장르의 특징을 망라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이 모든 장르의 관습을 배반한다. 그러나 이러한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환상적이고도 몽환적인 분위기는 작품마다 일관된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다른 소설들과 함께 '안개' 3부작'의 하나로 칭해지는 <한밤의 궁전> 또한 그 장르적 복잡성과 특유의 분위기로 인해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색깔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인도 캘커타의 한 고아원, 주인공 벤을 비롯한 7명의 동갑내기로 구성된 '차우바 소사이어티' 멤버들은 16세를 맞이하여 고아원을 떠날 준비를 한다. 그런데 이들은 고아원을 떠나기 직전 우연히 어떤 미스터리하고 괴기스러운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자신들을 공격하는 존재의 정체조차 모른 채 7명의 멤버들은 고아원을 찾아온 또 다른 소녀 쉬어와 함께 그 존재에 맞서 싸우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이들 각자는 자기만의 용기와 지혜, 인내를 발휘한다. 그런데 이 책은 이런 줄거리에서 대체로 기대되는 바와 같이 선과 악의 단순한 이분법을 지향하지는 않는다. <바람의 그림자>의 훌리안 카락스와 마찬가지로 표면적으로 행해지는 악은 좀 더 복잡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적어도 주인공 벤과 쉬어에게는. 작가는 공포의 대상에 세대를 잇는 인물과의 밀착관계를 설정하기를 좋아하는데, 이러한 딜레마는 주인공들에게 혹독한 시련을 안겨준다. 막 고아원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넓은 세계로 나아가야 할 벤에게 자신이 마주해야하는 악의 존재는 단순한 악이 아니라 대면해야만 하는 진실인 것이다.  

인물들이 악한 존재를 대면하는 것이 왜 꼭 성년의 문턱을 넘어 울타리 밖으로 나가는 시기여야만 했을까. 고아원은 그 어떤 존재로부터도 위협받지 않는 안전지대이다. 그 곳을 벗어난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대면해야 함을 의미하고, 익숙한 모든 것과의 이별을 의미한다. 게다가 그들이 나아가야 할 세계는 저주 받은 뜨거운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식민 도시이거나 머나먼 미지의 제국(이언의 경우)이다. 이들 앞에 갑자기 나타난 악의 존재는 바로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잠재되어 있던 막연한 불안감과 공포가 때를 맞춰 표면화된 것이다.맞서 싸울 수 있는 구체적인 대상인 악령은 그 공포의 근원이 명확하다는 점에서 막연한 불안감보다 오히려 덜 공포스럽다. 아이들은 좀 더 명확한 공포의 실체와 마주함으로써 내면의 불안과 맞서 싸우게 되는 것이다. 꿈이든 사랑이든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세계로 나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며칠 동안의 모험은 결국 통과의례와도 같은 것이다. 이 시기가 떠올리기 힘들만큼 '무서운' 시기로 기억되는 것은 성장의 험난한 과정에 대한 일종의 상징화일 것이다.  

제국주의 시대의 영국이 지배하는 인도 캘커타. 저주받은 듯한 뜨거운 더위.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소설로는 이례적인 배경을 통해 펼쳐지는 이 독특한 미스터리는 그래서인지 조금 더 다층적으로 읽힌다. 8명의 소년 소녀들이 겪게 되는 단 며칠 간의 모험담 속에는 괴담과 전설, '악'과의 대면, 용기, 사랑, 우정의 가치에 대한 해명이 골고루 나타난다. 이러한 시공간적 보편성을 지니는 스토리 라인은 사폰의 기존 작품과 마찬가지로 유럽의 한 음습한 공간을 선택해 전개되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작가가 선택한 배경은 인물들의 성장담을 위해 좀 더 풍부한 장치를 제공해 준다. <한밤의 궁전>은 차가운 물의 이미지가 지배적이던 <9월의 빛>이나 <안개의 왕자>와는 달리 뜨거운 불의 이미지가 지배적으로 나타난다. 캘커타의 찌는 듯한 더위, 기차 화재, 불멸의 상징 불새 등. 소설 속의 불은 전체적으로 재앙이라는 부정적 상징으로 쓰인다. 이 부정적 상징은 쉬어가 들려주는 시바의 저주와도 맞물리며 캘커타의 뜨거운 더위를 보다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런 한편 불은 원형적으로 정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악령이 불과 함께 산화되어 사라지는 작품의 마지막 부분은 부정적인 모든 것들이 소멸하는 순간이다. 악령으로부터의 해방과 함께 시바의 저주가 풀린 캘커타에는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쉬어의 운명은 희생적 제의의 성격을 보여준다.   

<한밤의 궁전>은 다소의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작품 세계를 아우르는 모든 특징과 분위기를 모두 담아내고 있다. 판타지와 스릴러적 요소를 차용하고 있지만 복합적인 구성이나 풍부한 복선, 명쾌한 결말에 기대기 보다 삶의 진실에 접근하려는 꾸준한 노력이 특징적이다. 무엇보다 그의 작품은 고딕풍의 괴담과 청소년적 감성의 조합으로 세대를 아우르는 재미를 준다. 이것이 사폰의 작품들이 장르적 정체성의 모호함과는 별개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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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협려 세트 - 전8권
김용 지음, 이덕옥 옮김 / 김영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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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협려를 읽고나면 다른 무협소설을 읽기가 힘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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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
제스 월터 지음, 오세원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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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출신 미국 작가 제스 월터의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The Financial Lives of Poets)>는 제목 그대로 구차하고 구구절절한 소설이다. 저명한 타임지의 간택을 받은 데에는 당연히 작품 자체의 완성도도 어느 정도 기여했겠지만, 무엇보다도 책이 보여주는 세계에 대한 시의성이 크게 한몫 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애초에 'financial'이라는 단어가 소설 제목에 흔히 쓰이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소설은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몰락해가는 미국의 한 중산층 가정의 모습을 추적한다. 집이 넘어가기 직전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가족들 몰래 집을 지켜내려는 가장의 애환이 르포르타주만큼이나 생생하게 전해진다. 빚과 실직이라는 중대한 경제적 문제에 맞닥뜨린 주인공에게 설상가상으로 부모, 아내, 자식에 이르는 집안의 갖가지 우환마져 겹쳤으니 이쯤되면 보통 사람으로선 견뎌낼 재간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 맷은 이 모든 사태를 방기하지 않고 홀로 고군분투 한다. 빚을 유예하기 위해 매일같이 전화 다이얼을 돌리고 취업을 위해 굴욕적인 연봉을 놓고 협상하기도 한다. 치매에 걸린 늙은 아버지를 데리고 병원을 찾는 일, 아내가 만나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남자를 찾아가 염탐하는 일, 학교 폭력 사건에 연루된 아이들의 학교를 찾아가는 일에도 소홀함이 없다. 경제적인 몰락에서 시작된 위기로부터 가정을 지켜내려는 가장의 눈물겨운 사투는 그야말로 처절하다. 그러나 절절한 사연들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소설은 신파스러운 접근법을 지양하고 있다. 주인공 맷은 생활의 고단함을 한탄하며 토로하는 대신 실소나는 유머로 절박함을 완충한다.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는 다양한 상황적 아이러니를 그려내며 물질적인 문제와 정신적인 문제의 간극을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애초 '시인들'이 '생활'을 위해 고군분투 한다는 제목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경제적 몰락이 궁극적으로 다다르는 곳은 정신적인 황폐다. 금융과 시라는 태생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아이템의 조합이라는 기괴한 발상으로 창업을 시작한 맷에게 그때부터 몰락은 예견되어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자기 밥그릇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자가 금융 자문 관련 창업을 하려 했다는 아이러니도 문제이건만, 몰락의 수순을 밟아가는 과정에서도 그 '시적'태도를 여전히 버리지 못해 구차한 현실을 시적 재료로 삼는다. 시인 오규원의 생각을 빌리자면 800원 밖에 나가지 않는 '프란츠 카프카' 한 잔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황이 심각해질 수록 정신과 물질의 간극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 간격만큼이나 추락하는 높이는 늘어난다.

경제적인 몰락이 심각한 것은 정신적인 순수성을 너무 쉽사리 앗아간다는 것에 있다. 가족 관계에서의 소원함도 마리화나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나약한 정신도 모두 경제적 몰락과 함께 찾아온다. 심지어 위기는 도덕성에 흠집을 내는 그럴싸한 구실마저 제공해 준다. 막다른 곳에 몰린 맷이 '잡초사업(?)'이란 타락의 길로 발을 들여 놓는 것도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생활고로 인해 벌어진 일련의 행위들을 범죄로 치부하기는 그렇지만 어떤 절박함도 도덕적인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분명 그의 '타락'이 맞다.

4리터에 9달러나 하는 우유를 파는 타락한 자본주의의 상징 '세븐일레븐'은 그 이름으로 인해 자연스레 '나인 일레븐(9.11)을 연상시킨다. 전 세계를 정신적 공황으로 몰아 넣었던 '나인 일레븐(9.11)'은 이미 참담할 지경에 이른 주인공의 처지에 대한 은유이자 미국 사회가 봉착한 위기에 대한 상징이다. 겉잡을 수 없는 추락이 비단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고 단 한 사람의 특수한 사례도 아닌 이상 범세계적인 위기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소설은 구체적인 미국의 사회상에 대한 묘사가 돋보임에도 문화적 차이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문제의식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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