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병에는 향수가 없다
성지혜 지음 / 문이당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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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글을 쓰기로 작정한 계기가 있다.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작가로서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다. 여고시절 박경리 작가를 만난 순간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저자의 도발은 즉시 이 책을 읽고 싶게 했다. 존경하는 작가를 만난 순간, 미래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강단성은 그동안 얼마나 소설가의 꿈이 간절했는지 보여준다. 글 한 번 써보자고 대들며 닮고 싶은 작가가 있다는 점은 큰 자산이다. 글 길을 잃고 우왕좌왕할 때 등대가 되어준다. 저자는 박경리라는 거목을 등대 삼아 소설을 빚었다. 소설 속의 외침은 그동안 삶의 역경 속에서도 신앙과 글쟁이로서의 굳은 다짐을 주춧돌 삼아 글 쓰는 삶을 이어가리라 고백한다. 때론 느리게, 때론 몰아치는 숨으로 이야기를 잇는 문체가 무척 신선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느낌을 준 소설집이다.

 

글을 읽을 때 가장 먼저 접하는 게 제목이다. 제목의 의미를 유추해보며 글의 행간을 짐작한다. 그러면서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슬그머니 글 속에 들어간다. 하지만 향수병에는 향수가 없다."라는 제목은 한참 동안 생각하게 했다. 향수 없는 향수병을 어디에 쓸까. 향수병은 있지만 인공의 향수는 향수가 아니라는 뜻일까. 단순히 향수병엔 향수가 없음을 말하는 걸까. 이런저런 추측을 하며 책을 접했다. 8편의 소설이 담겨있다

 

<나를 이겨라>는 저자가 소설가가 된 계기와 역경을 극복하며 글쓰기에 전념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을 이야기한 소설이다. 저자는 여고시절 박경리 작가를 만난다. 그러면서 소설가의 꿈을 키웠다. 평소 흠모하는 작가가 진주에 온다는 기사를 접한 저자는 바로 작가를 만나러 갔다고 한다. “저도 선생님처럼 소설가가 되고 싶어요.”라며 고백한다. 그날 이후로 박경리 작가의 그림자를 쫓으며 소설 쓰는 사람이 되었다. 한 사람의 일생을 가르는 어떤 계기는 드라마 속에 나 나오듯 극적 순간 같아도 이런 현실은 늘 존재한다. 어쩌면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고 다양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 현실일 때도 있다. 저자는 대작가들로부터 작가의 소질을 인정받고 몇 개의 필명까지 받는다. 결국 현재의 필명 지혜는 기도 중에 하나님께 받은 은사의 선물이다. 삶의 중간에 시들병이라는 무기력에도 빠졌다. 글쓰기에 큰 위기가 왔다. 결국 저자는 신앙심으로 극복하고 나를 이겨라라는 박경리 작가의 덕담을 가슴에 새긴다.

 

파란색 보석하면 사파이어를 떠올린다. 파랗다 못해 멍든 푸르름을 머금은 청량감이 일등이다. 터키석 또한 파란색이다. 사파이어에 흰 물감을 한 방울 떨어뜨린 듯 조금 연한 파랑이다. 향수와 보석은 여자들 취향 중에 조금은 고급 진 부류에 속한다. 향수야 그렇다 치지만 색상 별로 온갖 의미를 지닌 돌덩이에 경제적 가치를 지닌 로망의 물건이다.

터키석의 파란빛을 사모한다는 새미는 남편이 터키 출장길에 사 온 터키석 두 알을 선물 받는다. 보석과 향수, 살아가는데 필요하진 않지만 만족감을 주는 물건이다.

보석을 좋아하는 새침데기 성향의 새미가 모으기 시작한 향수병, 빈 향수병을 모으기 위해 값비싼 향수를 사는 새미 취미의 원인은 가족력에서 기인한다. 윗대로 냄새를 풍기는 체질 때문이다. 역겨운 냄새를 감추기 위해 향수를 사 모으기 시작했고, 급기야 향수병의 고급 진 외양에 빠진다. 새미는 전통 물품을 파는 세계 곳곳을 찾아 헤맨다. 진품이나 모조품을 가리지 않는다. 문양의 미에 빠진 새미의 향수병에는 향수가 없다. 향수가 없는 향수병은 빈 병이다. 빈 향수병이 가득한 집에 부부의 애정이 머물지는 않았다. “인간은 누구든지 자신만의 향기를 지녔잖아. 냄새가 싫다고 스스로 고립시키면 사람 사귐도 순조롭지 못하고 외톨이로 살아가기 마련이거든.” 남편의 충고는 향수병에 집착하는 아내의 수집병에 대한 충고였다. 새미 특유의 냄새에 사랑의 코가 멀었다는 남편, 수술로 특유의 냄새가 없어진 새미를 대하는 남편의 흔들리는 마음, 냄새를 그대로 물려받은 딸 토리의 결심, 이들은 냄새로 인해 향수를 접했다. 그러면서 차츰 인간에게 풍기는 진정한 향수가 무엇인지 알아간다. 결국 이젠 진정한 향수를 지녀야지라며 예루살렘 부활절 대축제 순례 여행을 계획한다. 나의 향은 무엇일까. 나만 모르는 향이 있고 모두 다 아는 향이 있을 터이다. 뿌리지 않아도 풍기는 자연스렁 향, 나만의 향이 좋은 향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결을 향한 단상>에서는 다솔이, 엄마의 자궁에서 잉태되어 느끼는 숨결로 시작한다. 그는 세상에 온갖 의구심을 품고 바람과 함께 거리를 떠돈다. 바람과 함께 성장하는 다솔, 제주도의 하르방을 보고 돌의 숨결을 느낀다. 앙코르 와트에서는 세월의 이끼가 돌의 문양과 어우러지는 신비스러움을 본다. 자연의 품에서 떠돌다 갈릴리 호숫가에 도착해 성인식을 치른다. 다시 돌아온 다솔은 정착하기 위해 지리산 토굴에 둥지를 튼다. 움막을 짓고 채소를 가꾸며 연명을 하지만 인간적인 욕망은 잠재울 수가 없다. 결국 다솔은 세상으로 나와 결혼식을 치른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성인식을 함께 했던 나탈리의 구애로 다솔은 사랑하는 여인과 둥지를 튼다. 이렇게 항시 너를 지키는 눈동자가 있다"라는 엄마의 충언은 아들에게 현실이 되었다.

 

인간은 세상에 던져진 순간 홀로 견뎌야 한다. 탯줄을 벗어난 인간은 독립적이다. 그 이치를 알아버렸나. 다솔의 여정은 생에 대한 온갖 의문으로 시작한다. 맨몸으로 겪고 느낀다. 인간은 육체적, 정신적으로도 혼자 살 수 없다는 이치를 깨닫는다. 다솔은 생에 육신과 영혼의 합일을 가져온 아내를 만났다. 저자는 결국 완전한 삶은 다솔이 도착한 지점임을 보여준다. 도착점은 다시 시작점이 되지만, 찾고 구하며 자신의 길을 나가는 이 일이 인생임을 말한다.

 

저자는 각각의 작품에서 이상적인 삶을 분주히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이렇게 소설을 누비며 드러나는 저자의 숨겨진 욕망은 어쩌면 나의 욕망과도 같았다. 글이라는 거울을 통해 비춘 나의 모습을 다시 한번 다독이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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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세계에 독백을 남길 때
가랑비메이커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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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은 좋은 산문은 유리창 같다라고 했다. 그런 글은 활자 사이를 비집고 반사되는 세세한 감정이 문장속에 살아있다. 이 글은 산문에 시의 옷을 입은 일기장같은 고백서다. 이 여정에 저자는 여행하듯 찾아와줄 독자를 기다리며 초대장을 내민다. 그러면서 깊은 밤중의 시간을 허락해 주기를 부탁한다. 저자가 독자에게 밤중의 시간을 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투명한 자신을 만날 수 있는 밤에라야 적나라하게 내면을 비출 수 있기 때문일까. 이렇게 민낯을 한채, 한껏 푸릇한 시어의 세계에서, 세상을 담은 마음의 조각들이 늘때마다 저자는 속엣말을 토해냈다. 관계와 대화, 독백으로써 끊임없이.

 

그러면서 문장이란, 한 사람의 독자를 향한 화살임을 고백한다. 저자가 쏘아올린 고백의 발자취를 따라가본다.

 

이를테면 이런 독백의 문장들이다.

당신의 시선이 머물 때 나는 무겁게 가라앉고 비로소 땅을 딛고 설 수 있다.” 수 백 번의 호의 보다 빚어 낸 문장의 온도를 함께 느껴줄 단 한 사람의 독자, 그들로 인해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작가로서 존재할수 있는 힘의 원천을 드러내며 글의 심지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가늠하게 하는 문장이다. 글을 읽다 보면 저자의 역사가 보인다. 정형화된 프로필과는 다른 내면의 역사다. 활자 사이에는 비집고 묻어있는 고유한 향기가 있다.

 

가슴속에 맴돌던 이야기를 삼키는 게 어른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어 보니 아니다. 일그러진 마음까지도 꺼낼 용기를 가질때이다. 미성숙한 어제는 안으로만 삭이며 혼자 이해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진짜 어른이 되는일은 드러내며 자신과 타인의 모난 구석까지 마주하며 받아들일 수 있을 때라고 말한다, 나날이 성숙해가는 관계를 꿈꾸는 저자의 마음이 드러난다.

 

한 존재를 발견한 뒤 차츰 시간은 그대로도 충분했던 서로에게 틈을 만든다. 그러면서 발명에 집중하게 된다. 저자는 상대의 좋은 점을 끊임없이 발견해가는 과정이 위대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빛바랜 사랑은 어느샌가 넘치는 무언가 발명하기를 갈망한다.

더 이상의 발견거리를 만들지 못하는 사랑은 유효기간이 지났음을 선고한다.

발견과 발명, 이 간극이 사랑과 이별의 거리임을 저자는 말한다. 끊임없이 한 존재에 대한 의미를 발견해가는 과정을 통해 사랑은 무르익고 유지된다는 뜻일터이다.

 

오해를 이해라 믿으며 자신을 숨기고 보이는 것은 유추할 수 있는 단서 쪼가리에 불과할 뿐, 내면의 나는 감춘 채 살았던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이젠 훌훌 털고 맨얼굴로 살고 싶다는 저자의 넋두리도 보인다. 무더위는 그림자까지 쓸고 가버리고 가을은 또 세월을 달고 온다. 여름을 보내면서 저자는 무심히 치달리는 시간을 또 아쉬워한다.

 

소리 내지 않으면, 부끄럽다고 아픈 표정을 숨기면 다시는 누구의 부축도 받을 수 없다는것을 저자는 알아버렸다. 마음을 솔직히 드러내 여기 있음을 알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살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솔직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의무와 체면, 상황 때문에 나를 누르고, 정제된 모습의 나로 살아야 하는 것은 타인도 마찬가지다. 목울대를 누르는 책임감의 무게 앞에서 때론 벗어나고 싶은 본심을 그대로 뱉고 행동으로 옮긴다면, 오히려 만족감 이상으로 당혹감도 클 것이다. 타인도 하고 싶은 대로 할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쌍방의 자유는 부딪힌다. 결국 나와 타자는 같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어떤 무게를 피하고 싶을 때는 반은 견디고 반은 호소한다는 기준이다. 그러다 보면 타인 또한 힘들어도 애쓰는구나라는 동지의식으로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며 함께 할 수 있으리라.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며 내 자유를 누리는 최선의 방식이 아닐까 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무르익는 세계란 끝엔 늘 몇 줄의 문장이 남겨진상황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숱한 새벽의 응답을 다시는 의심하지 않는다 라며 기도한다. 이렇게 저자는 타자와의 관계를 돌아보고 작가의 소명으로 끊임없이 문장을 엮겠다고 선언한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을 마주할 때가 있다. 환경이 변하고 시간이 흘러도 벗어 날 수 없는 일이다. 생을 연명하는 일과, 내 안의 목소리를 듣는 일, 이 두 가지는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저자는 한때 쓰는 삶이 세상에서는 청승이 되어버릴지 모른다라는 아버지의 충고에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쓰는 일이 '낭만'이라는 이유에서다. '낭만'을 사전에서 찾아 보았다.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라고 한다. 살기위해서는 필수인 경제적 뒷받침, '어쩔 수 없음'인 글쓰기는 불안정한 삶이라고 여긴다. 그런 연유로 딸이 안고 살지도 모를 경제적 곤궁까지 염려한 아버지 사랑의 표현 방식이었을 터이다.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걱정의 한 부분이다.

 

나는 늘 누군가 나를 발견할까 봐 두려웠고 막상 아무도 나를 발견해 주지 않으면 서러웠다.” 이 문장은 커티스 시튼펠트의 책에 나온다. 저자에게 영혼의 문장으로 다가와 영원의 문장이 되었다고 한다. 침잠한채 책을 좋아하고 쓰는 일로 희열을 느끼는 이들에게 어울리는 모습임을 직감했다. 숨어있으면서도 발견되길 바라는 숨바꼭질의 기억, 아슬아슬한 술래처럼 영원을 견디는 심정이었을까. 깊은숨이 몰아치는 화살같은 문장이다.

 

그러면서 더 이상 가면 놀이는 하지 않겠다며 끊임없이 나다움을 찾아간다. 쓰는 기쁨, 그 이상의 즐거움을 찾지 못했다는 저자다. 천상 작가로서의 숙명이 유리창에 비친다. 내면 밑에서 문장으로 건져 올리는 고백에 저자는 점점 더 무르익은 과일나무가 되어간다.

그러다가 돌이켜 보면 언제나 모든 건 기적이었고 축복이었다.”라고 회상한다. 힘든 일도 시간이 지나면 아쉬움이 된다. 저자 또한 일상이 기적임을 자각한다. 나 또한 사랑하는 이를 만나 지금의 내가 있고,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오늘이 기적이다. 일상은 무수한 기적의 순간이 모여 평면으로 보일뿐이다.

 

쓴다는 건 읽어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다. 저자는 기다리면서 어찌 쓰지 않겠냐 반문한다. 문장을 읽어줄 단 한사람의 독자를 기다리는 일은 쓰는 시간만이 가능하다. 저자는 이렇게 벗어날 수 없는 쓰는자의 허밍을 키보드에 싣는다. 밤으로 초대한 투명한 활자들이 유리창에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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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대, 경제의 미래
곽수종 지음 / 메이트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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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 세계는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지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이 책은 다양한 경제적 양분화와 위기를 어떤 자세로 대처할지 과감히 독자에게 건넨다. 읽기 전에는 경제 서적을 잘 접하지 않아서 어려울까 생각했다. 하지만 객관적이며 질서 있는 글의 흐름으로 한국경제가 나가야 할 방향과, 다른 나라의 예로, 우리 경제의 발전을 도모하는 저자의 집필 의도를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저자의 주장은 큰 틀에서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코로나19이후 마주하게 될 위기와 기회이다.

앞으로는 경제가 회복기에 들어선다고 한다. 지속적인 치료제 개발과 백신 접종으로 소비와 생산이 늘고 고용 인력이 늘기 때문이다. , 백신 접종으로 집단면역 70% 이상 달성시에 가능하다. 날로 변화하는 기업에는 기업가의 마인드가 중요하다. 기업이 성장 할수록 전문 경영인이 필요하며 기업 경영인은 인문학적 소양과 도덕적 가치관을 필요로 한다.

리더로서 비전과 확고한 메시지를 던질 때, 원활한 경제 흐름이 약속된다. 경제와 정치는 권력을 잇고 싶은 목적이 같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패권 줄다리기는 코로나로 인해 더 긴장상태가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62만여의 중소기업은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의 양상이 더 심화되고 있다. 중소기업의 운영 상태는 현상 유지에 급급했다. 그동안 경영 측면에서 많은 허점을 안고 있었고 대부분 가계 승계로 인한 세금문제, 도덕적 해이 등 투명하게 발전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위기 상황을 마주한 중소기업은 뾰족한 대안이 없이 어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대기업은 호황기를 맞았다. 노동력 감축으로 인한 구조조정의 명분화, 무급휴직등 노동비 절감, 정부의 각 종 세금 혜택, 언택트중심으로 바뀌면서 인건비 절감과 같은 실질적인 기업 이익이 급증했다.

 

이제 코로나 이후 세계는 속도와 정보의 시대가 되었다. 이에 발맞춰 우리나라는 2021113디지털 뉴딜 사업이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인공지능과 무선 네트워크 기술을 포함한 ICT 연구가 중점이다. 인터넷은 스마트 시대를 거쳐 인텔리전트 시대로 갈 것이라 보았다. 스마트 시대로의 대 전환은 빅데이터의 무한대 능력의 시대이다. 사회 모든 곳에 스마트 체계의 연결은 데이터로 모아져 빅데이터로 응축된다. 이 자료를 소유한 대기업의 역량은 다시 경제적 이익을 부른다. 그래서 어느 기업에서 최대한 빨리 스마트화된 시스템으로 장착하느냐는 미래의 기업 성장의 가능성을 예견한다. 스마트 시대를 넘어 인공지능을 탑재한 인텔리전트 시대로의 진화는 앞으로 닥칠 현실이 되었다. 점점 빅데이터의 정보가 자본의 힘이 되는 시대, 그 빅데이터를 어떤 가치관으로 경영하느냐가 기업가의 양심이며 인류의 품격이 될 것이다.

 

둘째, 변화의 본질을 이해하면 경제의 미래가 보인다.

생산도구의 변화는 인류 경제사에 놀라운 발전을 가져왔다. 도구의 진화로 생산량이 늘자 산업혁명을 통해 대량 생산을 가져왔고 인류는 경제적 풍요를 누릴 수 있었다. 욕망은 더 큰 욕망을 부른다. 자본을 축적함으로써 부()를 누리고, 부는 곧 권력으로 위계 된다. 미국과 유럽의 산업혁명 이후 자본가 계급이 생겼다. 돈을 죄악시하던 풍조가 자본은 권력이자 능력이라는 가치를 인정하게 되었다. 식량이 부족할 때 기아와 질병이 난무할 때, 인간은 전쟁을 통해 혁명을 도모했다. 말이 혁명이지 이권다툼일 뿐이다. 전쟁으로 다른 나라의 부를 쟁취해 이득을 보려는 인간의 모습일 뿐이다. 4차 산업혁명의 시작은 호기심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저자는 결국 4차 산업혁명에 대한 호기심을 어떻게 구현하고 사회가 받아들여 대중을 선도해갈 것인지가 관건이다. “라고 언급했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경제 방향 지침을 위해 미국, 일본, 네덜란드의 예를 들어 보여준다.

 

미국은 2021년 바이든 정부가 취임 후 코로나 안정화가 최대 관건이다. 백신 접종으로 집단면역을 꾀하고, 대중국 전략을 어떻게 구축하느냐가 시급한 문제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 패권 줄다리기는 코로나로 인해 더 긴장 상태가 되었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는 한국은 중국에 분명한 포지션을 취할 것을 요구했다. 아시아에서 대외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한국의 위상이 날로 커진다. 우리나라 경제 활동에 있어 미국은 중요한 위치에 있다. 미국 또한 우리나라의 상징성을 크게 여기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를 비롯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자부심 등이 그것이다. 앞으로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를 늘 견제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발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 저자는 한국 외교는 새로운 지향점을 전략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라고 언급하며 전략적 동맹관계임을 인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일본의 막부시대가 막을 내렸다. 1639년 쇄국령을 발표한 일본. 네덜란드와 중국만 나가사키에서 무역활동을 허용했다. 우리나라는 적극적이었던 반면에 일본은 오히려 문을 닫았다. 그러나 19세기 중반에 다시 상황이 반전된다. 1867년 사무라이 정권이 출발하며 메이지유신으로 산업화를 위한 군국주의 시대를 맞이한다. 이때 미국의 신문물을 받아들이고 적극적인 선진국 탐사를 했다. 사무라이 계급은 그동안 신분의 한계로 변화만 꿈꾸어오다가 메이지유신을 기치로 급격히 세를 확장했다. 전쟁과 싸움이라는 그들 혈통의 존재성은 정한론을 주장하며 결국 대동아공영권을 꿈꾸었다. 일본인의 정체성에는 현재까지 정한론과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일본 혼을 간직한 나라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하는지 매우 중요한 문제다. 결코 야심을 포기 하지 않는 일본의 대외교 정책은 우리의 강력한 의지와 단결된 힘으로 틈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

 

뉴질랜드의 개혁 성공은 전 세계의 롤 모델이다. 이는 민심을 바탕으로 의회 민주 정치, 리더의 추진성, 일관성, 투명성을 바탕으로 추진한 결과다. 여기에는 뉴질랜드 국민의 실용주의 성향과 소규모 개방경제의 틀을 강화한 점도 있다. 농축산물이 총 수출액의 60%를 차지하며 특화된 선진 농업경제 국가다. 그들은 정당 간의 이념을 떠나 책임정치로 민심을 따르면서 개혁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뉴질랜드가 보여준 성공은 국가와 국민 중에 누가 주인인지를 정확히 알고 개혁에 임했던 그들의 '자세'였다. 정치와 경제지표의 목표는 민심을 살피는 국민임을 알려준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와 경기 침체로 일상은 우울과 불안감이 공존한다. 여러 상황과 자료를 통해 코로나 이후 경제를 진단하고 안목을 제시하는 저자의 강한 음성을 들었다.

가뭄에 단비를 맞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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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바이러스 쇼크 - 인류 재앙의 실체, 알아야 살아남는다
최강석 지음 / (주)에듀넷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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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코로나 시국이라는 혼란 시대를 살면서 항상 불투명한 불안감이 있었다. 어렴풋이는 알지만, 원인과 결과 대처법을 속 시원히 알고 싶었다. 그 와중에 읽은 책이다. 동물전염병 국제 전문가이자, 바이러스 학자가 쓴 책이라 더 믿음이 생겼다. 객관적 지식과, 적당한 에피소드, 감상적 사유, 한 눈에 들어오는 데이터 자료까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쓴 책이었다. 축척되어온 과거를 교훈 삼아 미래를 준비하는 법도 알려주었다. 5장의 대제에 각각 3~4개의 소제를 달았다. 저자는 버트런트 러셀의 칠면조의 경고로 글문을 연다. 이 예를 빌려 일상의 안일함이 가져올 대재앙을 경고한다. 하지만 경고로 끝나지 않고 안일함 속에서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본문을 풀어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바이러스의 속성, 세균과의 차이점, 더해서 코로나19 병원체와 그동안 발생했던 바이러스 질병에 대한 다양한 정보도 알게 되었다. 코로나 시국에 막막했던 머릿속을 선명한 도표로 갈 길을 제시해준 책이다.

 

코로나19의 첫 집단 발병은 중국의 재래시장이다. 일찍이 전문가들은 각종 야생동물이 거래되는 중국의 재래시장을 시한폭탄의 저장고로 생각했다. 야생 조류가 갖고 있는 다양한 인플루엔자가 생고기를 만지는 상인들을 통해서 교차감염되는 경로를 우려한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원보균자는 박쥐다. 박쥐를 통한 매개체인 숙주를 거쳐 인간으로 전염되었다고 추측한다. 바이러스 원보균자가 박쥐인 이유도 자세한 설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박쥐의 균은 숙주간의 잦은 접촉으로 스필오버 과정이 진행되었다. 이렇게 우리도 모르게 모든 바이러스 쇽은 우리 일상을 깊이 침투해 은신하고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재앙, 과학자들은 이를 블랙 스완에 빗대고, X이벤트라고 정의 한다. 불시에 습격한 코로나19는 아무 대책이 없는 인간세계를 팬데믹으로 묶었다. 발생된 후에야 전 세계는 원인 규명과 백신 개발을 위해 요동했다. 괴질이 덮친 세상은 인포데믹 현상까지 겹쳐 혼란을 부추겼다.

 

저자는 푸시 앤드 풀이론을 말한다. 처음 접한 이론이다. 다양한 바이러스의 원인과 인간에게 전염되는 과정을 알면서 푸시 앤드 풀이론은 정확한 지적임에 고개를 끄덕인다. 결국 인류 대재앙 바이러스 쇽의 계기는 인간의 무분별한 욕심의 결과임을 재확인했다.

한 치 앞을 확신할 수 없는 오늘,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저자는 말한다. 인간이 야생 상태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아 야생에서 잠자는 바이러스를 깨우지 않는 일이라고.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일이 결국 인간을 위한 길임을 코로나는 뼈저리게 알려주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자는 거다.

 

바이러스에 대해 알고, 그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침투해 질병을 일으키는 기전도 알았다.

원인이 있어 결과가 있다. 인간의 욕심으로 그들 생존을 위협하는 마당에 인간이 어찌 다른 것들에게 너그러움을 바랄 수 있을까. 그들만의 생존법으로 인간에게 경고하는 이 현상에 두려움을 갖는다. 코로나19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백신을 접종하고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준비도 활기차게 이루어지고 있다. 생활 방역 수칙이 일상이 되었다. 맨 얼굴로 반갑게 악수하고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 머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자는 평소에 바이러스에 대한 기본 소양을 쌓고 있다면, 바이러스 정체에 대해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게 되어, 신종 바이러스가 유행할 때마다 난무하는 정보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판단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이처럼 적을 알고 답을 알면 앞이 보인다. 이 책은 내게 그런 답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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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1
아니 에르노 지음, 김선희 옮김 / 열림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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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하지 않은 일은 쓰지 않는다”라고 자신의 글쓰기를 명하는 아니 에르노의 소설이다. 건조하며 적나라한 사실 표현으로 엑스레이를 투시하는듯한 느낌 역시 이 책에서도 느꼈다. 단순한 문장 속에 슬슬 드러내며 내게 다가오는 단어 이전의 것 들을 포착하는 희한한 체험을 주는 작가다. 아니 에르노의 문장에서는 특유의 유치함과 고수의 롤러코스터를 탄다. 역시 흥미롭다.

 
치매 때문에 2년여 동안 요양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를 방문하면서 메모한 일기를 기억과 조율해 엮었다. 어머니를 추억하는 소설로 ‘한 여자’와 얼개가 겹친다. 하지만 그의 소설은 읽을 때마다 새롭다. 치매 앓는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나의 어린 딸이 되어버린 어머니지만, 결코 나는 그녀의 어머니가 될 수 없음을”고백한 작가. 그렇게 존재의 한계를 인식하며 묵묵히 사실을 기록하는 일로 어머니를 붙들어 매 놓는다. 이 과정을 통해 순리대로 어머니를 놓아주는 두 가지 의식을 치른다. 날로 피폐해지는 어머니를 지켜보며 죄책감과 두려움 속에 할 수 있는 일이란 겨우 글 쓰는 일뿐임을 고백한다. 현실적으로 괴리감은 있지만 그런 작가의 마음에 나도 한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어머니는 교통사고를 크게 당한 후 기억상실증이 생겼다. 결국 2년여의 혼란기를 거치며 치매로 발전한다. 집에서 함께 살았던 당시에 보였던 이상행동들, 작가는 어머니의 이런 행동을 보며 히죽히죽 웃는 주변인들을 목격한다, “어머니의 미친 상태를 비웃을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사람은 내 아들과 나, 오직 우리뿐이다.”라며 속울음 운다. 꼿꼿했던 어머니의 존재가 웃음거리가 되고 만 현실이다. 그래도 “미쳐서라도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어머니의 살아 있음을 감사해한다. 
 
 
심해지는 치매로 퐁투아즈병원 노인 병동에 입원한 어머니. 작가는 수시로 문병하며 병동에서 벌어지는 어머니와 노인들의 모습을 관찰한다. 특유의 몸짓과 표정들, 치매라는 정신의 피폐까지 겹친 병약한 노인의 마지막 모습이란 얼마나 기이한 풍경인지, 작가는 자신의 미래를 그곳에서 발견한다. 피하고 싶은 공포와 불결함, 비참함은 숙명으로 다가온다. 딸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두려움 없던 어머니였다. 이젠 비스킷 한 조각 스스로 입으로 가져가지 못하는 인지부조화와 병든 신체로 하염없이 딸만을 기다리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두고 돌아오는 작가. 표면상으로는 둘이지만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되는 모녀의 모습이다. 
 
 
꽃무늬 앞치마와 화장도구 세트, 세상에 매달리고자 악착같이 챙기던 사물들에도 관심이 없다. 틀니도 잃어버린 어머니, 얼굴 매무새를 고치고 틀니를 챙겨 먹을거리를 찾는 일련의 ‘생의 의식’을 하나하나 포기한다. 어머니를 비참함에서 건지지 못하는 딸로서의 죄책감은 작가자신의 ‘생명의 정지’와 같음을 인식한다. 육신은 살아있으나 죄책감의 고통에 “어머니의 삶과 함께 소멸되는 이치다. ‘어머니’는 곧 ‘나’임을 실감한다.”라고 작가는 고백한다. “죽음이란 목소리의 부재를 의미한다.“ ”아니~“ 하며 부르던 어머니의 목소리, 세상에 늘 있던 어머니의 목소리다. ”갈망하다 죽었다.“라며 딸과 함께 있지 못한 어머니의 갈망이 죽음으로 끝날 형국임을 자책한다. 한편으로는 고통 속에서 육신을 유지하느니 어머니가 어서 돌아가셔서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노인들의 병고는, 병자와 남겨진 자들의 입장이 다를 터이다. 작가의 생각처럼 차라리 죽음으로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과, 그래도 살아 있음을 원하는 두 가지 상황, 책의 중반부까지는 그래도 살아만 있어 달라는 작가의 마음이 읽혔다. 점점 고통스러워지는 어머니의 육신을 보면서는 차라리 죽음으로 편안해지시길 바라는 모습으로 바뀐다. 두 감정 모두 정답이 없다. 양가감정이 공존하는 것 또한 남겨진 자의 사랑일 터이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어머니가 글로 쓴 마지막 문장이다. 노쇠해져 처음 집을 떠나던 날, 정원에서 자주 놀던 거북이를 찾으려고 뒤돌아 보던 날 이 후에 쓴 문장이란다.
기억이 오락가락하고 육체가 약해질 무렵 온전한 정신줄을 집중하며 마지막으로 꺼낸 문장이다. 글의 맥락만으로는 명쾌한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추측하건데 정원을 공유한 거북이를, 사랑하는 딸을, 병들어 자신조차 무너질지라도 이 모든 것을 놓지 않고 ‘기억한다’는 다짐이 아니었을까. 영원히 계속될 세상의 반 밤, 병으로 고통받는 밤이지만 여전히 세상의 반을 차지하며, 딸을 떠나지 않는다는 극도의 사랑. 그런 사랑을 무의식적으로 간직한 작가는 어머니와의 흔적을 모아 소설로 헌사한다. 작가는 소설의 허울을 빌려 독자에게 어머니라는 자연을 생으로 툭 던진다. 이 의식에 나도 동참한다. 비극이 사랑이라는 교감 안에서 기쁨으로 등록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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