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인류 - 인류학의 퓰리처상 ‘마거릿 미드상’ 수상작
마이클 크롤리 지음, 정아영 옮김 / 서해문집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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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인류』는 달리기를 잘하는 법에 관한 책이 아니다. 달리기를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에 관한 책이다.


새벽 440, 알람 소리가 울린다. 해발 2500미터의 아디스아바바,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시각. 책은 이 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단순한 달리기 책의 도입부치고는 낯선 풍경이다. 그러나 이 한 줄이 책 전체의 분위기를 압축하고 있다.


저자 마이클 크롤리는 인류학자이자 마라토너다. 에티오피아 육상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현지에서 15개월을 선수들과 함께 뛰고, 먹고, 생활했다. 외부 관찰자로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새벽 훈련에 참여하고 한솥밥을 먹으며 그 리듬에 몸을 맡겼다. 그 결과물이 이 책이다. 원제 'Out of the Thin Air'는 고산 지대의 지리적 환경을 가리키는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와 정신의 영역을 탐구하겠다는 선언처럼 읽힌다.


인류학자의 눈과 달리기 선수의 다리로 쓰인 이 책에는, 어떤 스포츠 과학 논문도 담아내지 못한 것들이 있다. 숫자로 측정되지 않는 것들 즉, 믿음, 공동체, 고통에 대한 태도, 그리고 삶을 대하는 방식 등이 그것이다. 


에티오피아 선수들의 강점으로 흔히 고산 지대 환경을 꼽는다. 해발 2500미터 이상의 고지대에서 단련된 심폐 기능이 세계 최강의 마라토너들을 만든다는 논리다. 저자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훈련 장소의 고도를 물었을 때 선수가 답한 수치는 실제와 달랐다. 저자는 곧 깨닫는다. 정확한 고도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환경에 대한 '믿음'이다. 선수들은 자신이 극한의 환경에서 훈련하고 있다는 확신 자체를 동력으로 삼는다. 과학적 수치보다 정신적 확신이 먼저인 것이다.


에티오피아에 머무는 내내 누구도 타고난 재능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들이 훈련을 부르는 말 '레메메드'는 본래 '적응'을 뜻한다. 선수들은 적응 과정을 잘 관리하는 사람이거나 그렇지 못한 사람, 둘 중 하나였다.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환경에서 꾸준히 적응해나간 결과라는 인식이 문화 전반에 깔려 있다.


에티오피아의 달리기는 개인 기록의 스포츠가 아니다. 앞사람의 발소리를 들으며 보폭을 맞추고, 그 군무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확장해나가는 과정이다


"혼자 뛰는 건 그냥 건강을 위한 거예요달라지고 싶으면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달려야 해요자기 페이스가 아니라다른 사람들 속도에 맞춰야 해요." (49)


저자가 훈련 장소에 도착한 지 고작 5분 만에 훈련 일정이 잡혔다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그는 이렇게 간단할 줄은 몰랐다고 고백한다. 달리기는 원래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라는 듯이.


코치 메세렛은 반복해서 강조한다.


"뒤처지는데 익숙해지시면 안 돼요. 뒤처지는 것도 결국 훈련의 일부처럼 몸에 적응해버리거든요. '앞사람 발을 따라 뛰는 법'을 익혀야 해요." (95)


저자는 이 경험이 달리기와 인류학의 교차점에 있다고 말한다. 둘 다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달리기는 몸을 움직이는 행위이자, 타인의 삶을 온몸으로 이해하는 방법이다. 한편으로 에티오피아 선수들에게 달리기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절실한 수단이기도 하다. 코치 메세렛의 말처럼, "1초면 100만 달러를 벌 수도 잃을 수도 있는 시간(121)"이기 때문이다.


올림픽 마라톤 4위 출신 케니 무어는 달리기의 고통이 "뜨거운 레인지 상판에 손을 대었을 때의 고통과는 다르다"고 표현했다. 저자는 이 고통을 무력감, 견딜 수 없는 무게, 제어할 수 없는 두려움에 가깝다고 묘사한다. 멈춰야 할 것 같은 느낌, 하지만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달리기다.


에티오피아 선수들은 고통을 피해야 할 장애물로 보지 않는다. 고통과 함께 머무는 법을 안다. 메세렛 코치가 강조하는 조금 벅차지만 감당할 수 있고정신은 온전히 집중된 상태인 '통제된 달리기'는 칙센트미하이가 말한 몰입(flow)과 일치한다. 자신이 노력할 수 있는 범위를 가늠하고 그 선 안에 머무는 것. 약간이라도 그 선을 넘으면 금세 큰 문제로 발전하고 다시 돌아오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고지대는 달리기를 단순한 체력 운동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명상적 행위로 만든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개념은 '이딜'이다.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신앙이 선수들의 훈련 태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그 중심에 '이딜', '기회'라는 개념이 있다.


"이딜, '기회'를 만들어내는 최선의 방법은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고, 성실히 훈련하며, 무엇보다도 인내하는 태도였다. 모든 일은 결국 하나님 뜻대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는 건, 아무리 열심히 훈련하고 최선을 다한대도 지금은 자신의 때가 아닐 수 있음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미였다. 훈련과 경기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달리기에 임하면 결국 모든 게 잘 풀릴 것이라는 이 믿음은 성공과 실패 앞에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다." (299)


기록 갱신과 순위 상승에 집착하는 현대 달리기 문화와 정반대처럼 보이는 이 철학은, 사실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다. 옳은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가되, 결과에 대한 집착으로 자신을 소진시키지 않는 지혜다. 에티오피아 선수들이 세계 무대에서 꾸준히 강한 이유가 기술이나 신체 조건만이 아님을 이 개념이 잘 보여준다.


달리기를 하지 않아도 읽을 수 있다. 에티오피아 선수들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읽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우리가 달리는 이유, 함께 달리는 이유,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이유. 이 책은 그 질문들에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답한다. 결국 이 책이 묻는 건 달리기가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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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는 일
채수아 지음 / 모모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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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흔한 달콤한 로맨스나 완벽한 가족 화목을 노래하는 에세이가 아니다. 이 책은 오롯이 '사랑하는 쪽'에 서서 써 내려간 한 여성의 고백이자,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밝혔듯 '영혼의 자서전'과도 같다. 88편의 짧은 글 속에는 오랫동안 교직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1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시집살이를 견뎌온 한 사람의 삶의 무게가 조용히 녹아 있다.

 

저자는 사랑의 아름다운 면만 부각하는 '힐링'에 매몰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이 동반하는 고통과 가혹한 의무의 지점들을 솔직하게 꺼내 놓는다.

 

"어머님은 죽고 싶었지만, 죽지 않으셨다. 어머님은 도망가고 싶으셨지만, 가족을 끝까지 먹여 살리셨다." (18)

 

시어머니를 모시며 건강을 잃고 정든 교단마저 일찍 내려놓아야 했던 저자에게, 사랑은 화려한 수식어가 아닌 '그 자리를 지켜낸 삶' 그 자체였다. 이론이 아니라 뼈아픈 경험에서 길어 올린 문장들이기에 그 울림은 더욱 깊고 묵직하다.

 

상처를 통과한 사람만이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저자가 포착하는 사랑의 장면들은 지극히 평범하다. 만원 전철에서 친절을 베푼 낯선 학생에게 읽던 책을 건네주는 찰나, 우는 아이의 이야기를 지나치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는 시간, 사랑은 거대한 희생이 아니라, 이렇게 잠시 멈춰 서서 누군가를 '그냥 봐주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저자는 자신의 삶으로 증명한다.

 

결국, 타인을 향하던 사랑의 시선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타인을 위해 헌신하다 텅 비어버린 자신을 직면할 때, 비로소 진짜 회복이 시작된다.

 

"알겠다. 점점 알아진다. 그냥 좋은 마음으로 매 순간을 사는 거다. ... 지금 이 자리에서 사랑을 심는 거다. 사랑을 선택하는 거다." (262)

 

수십 년의 세월을 통과하며 지식이 아닌 '지혜'로 나아가는 저자의 고백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고민하는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책의 문장들은 유려하거나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소박하고 담담하다. 하지만 가르치려 들거나 설교하지 않고 그저 자신이 살아낸 것들을 담담하게 꺼내 놓기에, 마치 어머니가 차려주신 따뜻한 집밥처럼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린다. 무거운 고민이 있더라도 "오늘 하루만 잘 살자"는 다짐으로 씩씩하게 일어서는 저자의 태도가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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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한 세계 크로스 1
김연수.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최고은 옮김 / 북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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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이 세 개라면 선은 세 개, 점이 네 개라면 선은 여섯 개가 된다. 점이 하나 늘어날 때마다 연결의 가능성은 훨씬 더 크게 확장된다. 문학도 비슷하다. 서로 다른 작가의 세계가 만날 때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의 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 근접한 세계는 바로 그런 연결의 실험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한국의 소설가 김연수와 일본의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가 공통의 주제인 윤리적 딜레마를 두고 각자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서 쓰인 두 편의 소설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읽다 보면 결국 같은 질문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무엇이 옳은가그리고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김연수 작가의 우리들의 실패가 정치와 사회적 사건 이후에 남겨진 인간의 삶을 탐구한다면, 히라노 게이치로 작가의 결정적 순간은 예술과 진실 사이에서 갈라지는 개인의 선택을 다룬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같은 질문을 향해 수렴한다.

 

1. 우리들의 실패 - 개인의 실패인가, 시대의 실패인가

 

사람의 삶에서 실패는 보통 개인의 선택과 책임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어떤 실패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와 사회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김연수 작가의 단편 우리들의 실패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주인공 손동하는 대통령 탄핵 이후 벌어진 정치 스캔들에 연루된 인물이다. 설정만 보면 정치 르포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소설의 관심은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있지 않다. 작가가 탐색하는 것은 실패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과 기억의 방식이다.

 

소설은 기자가 손동하를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인터뷰라는 방식은 겉보기에는 진실을 밝히기 위한 장치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인터뷰는 오히려 진실이 얼마나 불완전한가를 보여주는 장치가 된다.

 

손동하는 자신의 과거를 설명하고 기자는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그의 말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어디까지 자기 합리화인지 독자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그 애매함이 바로 이 소설의 긴장을 만들어낸다.

 

손동하가 말하는 실패는 단순히 일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그는 마땅히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후회를 안고 살아간다손동하는 대의를 위해 희생했다고 믿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후회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감정이 한 사람 안에서 동시에 존재할 때 우리는 그를 쉽게 비난하거나 옹호할 수 없게 된다.

 

소설 속에서 반복되는 인식이 하나 있다. 세상은 인간의 희망이나 후회에 크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은 짚으로 만든 개일 뿐입니다. 잠시 존재하다가 그 쓰임이 다하면 버려지지요.” (49쪽)

 

이 문장은 인간의 삶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도 선택의 책임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제목이다

나의 실패가 아니라 우리들의 실패일까소설 속 인물들은 서로 다른 위치에 서 있지만 결국 하나의 현실 속에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의 선택은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어떤 사람의 생존은 또 다른 사람의 상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가 모두 연결돼 있는 한, 살아남았다는 말은 누군가에게는 죽었다는 말이 되는 것이겠죠.” (72쪽)

 

이 문장은 소설의 핵심을 보여준다. 우리는 서로 연결된 세계 속에서 살아가며, 그 연결 속에서 누군가는 실패하고 누군가는 살아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실패를 완전히 개인의 문제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 소설은 실패의 원인을 밝히기보다 실패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을 바라본다. 과거의 선택은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기억하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현재의 삶은 계속 흔들린다그래서 우리들의 실패는 정치적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이면서도 동시에 한 인간이 자신의 과거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2. 결정적 순간 - 사진이 포착하는 윤리적 딜레마

 

히라노 게이치로의 결정적 순간은 제목부터 흥미롭다. 사진에서 말하는 결정적 순간은 찰나의 장면을 포착하는 순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그 순간은 한 사람의 세계를 완전히 뒤흔드는 진실의 발견을 의미한다.

 

주인공 미즈마키 가스미는 큐레이터다. 그녀의 오랜 꿈은 거장 사진작가 사카키 미노루의 전시를 여는 것이다. 그러나 유고전을 준비하던 어느 날, 그녀는 그의 작업실에서 존재해서는 안 될 사진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 순간 그녀의 앞에는 두 가지 선택이 놓인다.

 

'진실을 밝히고 전시를 무너뜨릴 것인가' 아니면 '비밀을 덮고 예술적 업적을 지킬 것인가'

 

단순해 보이는 이 질문이 이야기 전체를 압도한다.

 

가스미가 처음 사진을 봤을 때 느낀 감정은 윤리적 판단이 아니라 생리적 혐오감이었다. 이후 그녀는 그 감정이 윤리적 거부감에서 비롯된 것인지 스스로 되묻는다이 장면은 인간의 심리를 아주 정확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종종 먼저 감정을 느끼고, 나중에 그 감정을 정당화할 이유를 찾는다.

 

가스미의 고민은 더 복잡하다. 그녀는 예술을 깊이 사랑하는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평생 존경해 온 예술가의 명성과 그 작품 뒤에 숨겨진 가능성 사이에서 그녀는 쉽게 선택할 수 없다.

 

이 소설은 일기, 기사, SNS 기록 등 다양한 형식을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구성한다. 하나의 사건을 여러 시점에서 바라보게 되면서 단일한 진실이라는 개념은 점점 흔들린다독자는 어느 이야기가 진짜인지 확신할 수 없다. 결국 작가는 독자에게 판단을 맡긴다.

 

소설에는 예술을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인물도 등장한다. 예술가의 인격과 작품을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는 태도 역시 등장한다. 그러나 작가는 어느 쪽도 완전히 편안한 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을 드러낼 것인가, 아니면 외면할 것인가. 그 선택의 무게를 이 소설은 조용히 보여준다.

 

3. 두 소설이 남긴 질문

 

우리들의 실패가 정치와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공동체의 실패를 다룬다면, 결정적 순간은 예술과 진실 사이에서 갈라지는 개인의 선택을 보여준다.

 

주제도 배경도 다르지만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독자에게 질문을 남긴다.

 

무엇이 옳은가, 그리고 우리는 그 옳음을 끝까지 믿을 수 있는가.

 

근접한 세계는 분명한 결론을 주지 않는다. 대신 읽고 난 뒤에도 오래 남는 불편한 질문을 건넨다. 어쩌면 그것이 이 책이 의도한 효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군가의 실패를 쉽게 이야기하지만, 그 실패가 사실은 우리가 속한 세계 전체의 실패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이전처럼 편안하게 판단할 수 없게 된다그래서 이 책은 읽고 난 뒤에도 한동안 마음속에서 계속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아마도 그 질문을 붙들고 살아가는 일 자체가, 우리가 실패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노력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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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심리학 다크 심리학 1
다크 사이드 프로젝트 지음 / 어센딩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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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에 대한 논쟁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인간은 본래 선한 존재인가, 아니면 악한 존재인가. 동양에서는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이 대표적인 논쟁이고, 서양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이어져 왔다. 장 자크 루소는 인간이 본래 선하지만 사회가 인간을 타락시킨다고 보았고, 반대로 토마스 홉스는 인간이 욕망과 이익을 좇는 존재이기 때문에 강력한 통치와 질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실 속 인간을 생각해 보면 이 두 가지 주장 중 어느 하나로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인간은 선한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기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어떤 상황에서는 타인을 돕지만 또 어떤 상황에서는 타인을 이용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악하다고 보기보다는 유혹에 흔들리기 쉬운 존재라는 설명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인간은 언제든 욕망과 이익을 좇을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타인의 감정이나 상황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때때로 다른 사람의 의도나 심리적 조작에 피해를 입기도 한다.


다크 심리학은 바로 이런 인간의 어두운 심리를 다루는 책이다.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이 이 책은 단순한 심리학 교양서라기보다 인간의 심리 조작과 권력 관계를 다루는 다소 냉정한 책이다. 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이 책을 경고서이자 매뉴얼이라고 설명한다. 상대의 교묘한 심리 기술을 알아차리고 스스로를 방어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한 책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원한다면 그 기술을 역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이 설명만 보아도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이 단순히 흥미로운 심리 이야기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소개되는 핵심 개념은 '다크 트라이어드(Dark Triad)'. 말 그대로 인간의 어두운 성격을 설명하는 세 가지 성향을 뜻한다.


첫 번째는 마키아벨리즘이다. 이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향을 의미한다. 권력과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조종하거나 이용하는 태도가 여기에 포함된다.


두 번째는 사이코패스다.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무시하는 반사회적 성격을 가진 사람을 가리킨다.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죄책감을 거의 느끼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세 번째는 나르시시즘이다. 지나친 자기애와 자기중심성을 의미하며,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타인을 도구처럼 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세 가지 성향은 모두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현실에서 어느 정도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사회적 성공을 거두는 사례도 많다는 것이다. 냉정하게 판단하고 타인의 감정보다 자신의 목표를 우선시하는 태도가 경쟁적인 환경에서는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인간 사회의 복잡한 구조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도덕과 실제 사회에서 작동하는 힘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한다.


책을 읽으면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의존 관계와 두려움에 대한 설명이었다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심리적으로 의존하고 있거나 강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면 그 사람은 상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이 인간을 조종하는 가장 강력한 조건이라고 말한다.

책에서는 의존 관계를 만드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의존할 대상을 정교하게 선택한다

상대의 불안이나 두려움을 적절히 자극한다

상대가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최소한의 호의와 지원을 제공한다


이 과정은 매우 교묘하다.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지배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움을 주는 것처럼 보이면서 서서히 의존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두려움의 효과를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사람은 두려움이 깊어질수록 냉철한 판단보다 포기양보를 선택하게 된다.


이 문장을 읽으며 여러 사회적 관계가 떠올랐다. 회사나 조직, 혹은 개인 관계에서도 두려움과 의존이 결합될 때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자신의 판단을 내려놓는다.


책의 후반부에는 삶의 무기가 되는 다크 심리 기술이라는 제목으로 다양한 심리 원칙들이 정리되어 있다. 이 부분은 마치 짧은 심리 전략 모음처럼 구성되어 있어 읽는 재미가 있다.


그중 인상 깊었던 문장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믿으며, 사실이 아닌 자신에게 필요한 확신을 믿는다.


이 문장은 인간이 얼마나 쉽게 편향된 판단을 하는지 보여준다. 우리는 객관적인 사실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이야기를 더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또 다른 구절도 흥미롭다.

정보는 강제로 뺏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꺼내게 만드는 것이다.


이 말은 심리적 설득이나 대화 기술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원칙이다. 사람은 압박을 받을수록 방어적으로 변하지만, 스스로 말하고 있다고 느낄 때는 더 많은 정보를 드러낸다.


이런 내용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약간 불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런 기술들이 현실에서 실제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심리를 이해하는 것이 타인의 조종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을 이해하는 것이 지혜일지도 모른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의미심장한 문장을 남긴다.

지혜로운 악은 선을 닮은 악이 아니라, 악을 통제하는 힘이다.


처음에는 이 표현이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말은 결국 악을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 같다.


인간은 완전히 선한 존재도 아니고 완전히 악한 존재도 아니다. 우리는 언제든 유혹에 흔들릴 수 있고, 상황에 따라 이기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인간의 어두운 면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고 통제하려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철학자 니체의 말처럼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우리를 들여다본다.” 인간의 어두운 심리를 이해하는 과정 역시 비슷한 경험일 것이다. 불편하지만 동시에 인간이라는 존재를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다크 심리학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질문이 있다.

누가 게임의 규칙을 주도하는가?”


인간 관계나 사회적 경쟁에서 결국 중요한 것은 이 질문일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판을 만들고 규칙을 정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 틀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인간 심리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냉소적인 시선을 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심리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타인의 조종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어쩌면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빛과 어둠을 동시에 바라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다크 심리학은 인간의 어두운 심리를 통해 인간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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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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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집어 든 것은 제목 때문이었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어딘가 못 박는 것 같은 문장. 체념인지 선언인지 경고인지 알 수 없는 그 문장이, 책을 펼치기도 전에 한동안 눈앞에 맴돌았다.


줄리언 반스의 책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그러니 처음 마주한 그가 이미 스스로 '마지막'을 선언한 작가라는 사실이 조금 낯설었다. 소설이 시작되기 전, 작가가 직접 쓴 편지가 실려 있다. 그곳에서 그는 이 책이 '하이브리드'라고 밝힌다. 픽션과 논픽션, 자서전이 합쳐진 형식이라는 것이다. 읽다 보면 자서전적인 부분은 쉽게 눈에 띄었지만,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는 내게 좀처럼 선명하게 잡히지 않았다. 아마 그것이 의도였을 것이다.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며칠 전 깜짝 놀랄 만한 가능성을 하나 발견했다. 아니, 더 나쁘다.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13쪽)

'가능성'에서 '사실'로 고쳐 쓰는 그 짧은 수정 하나가, 이 소설 전체의 방식을 미리 보여준다. 반스는 이 책 내내 그런 식으로 쓴다. 한 번 말하고, 다시 정정하고, 더 정확한 말을 찾아 한 발짝 더 들어간다. 편한 말 대신 불편한 진실을 고른다.


화자는 노년의 소설가 '줄리언'으로, 실제 작가와 거의 겹쳐 보이는 인물이다. 그는 젊은 시절 옥스퍼드에서 만난 두 친구, 스티븐과 진의 이야기를 불러온다. 오래전 깊이 사랑했지만 결혼하지 못하고 헤어진 두 사람은 노년에 다시 만나 관계를 회복한다. 겉으로 보면 '늦게 찾아온 사랑'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반스는 이 재회를 결코 낭만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화자는 스티븐과 진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결국 그 약속을 어긴다. 이 지점에서 소설은 본격적으로 기억과 진실의 간극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책 속에서 가장 오래 남는 문장 중 하나는 이것이다.


"삶이 픽션의 쓸 만한 재료가 되려면 천천히 썩어 퇴비가 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을 당시에는 내가 지금 듣는 게 픽션의 가능성으로 분해될지 되지 않을지 전혀 알지 못한다." (49쪽)


삶은 그대로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기억이라는 필터를 통과하고, 시간이라는 발효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서사가 된다. 반스는 그것을 '썩는다'는 말로 표현한다. 아름다운 비유가 아니다. 그러나 정확한 비유다.


이 소설이 단순히 한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스는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방식 자체를 보여준다. 한 장면을 묘사하다가 돌연 "그런데 이게 정말 그랬을까?" 하고 의심을 끼워 넣는 식으로. 결국 이 책은 기억에 관한 소설이고, 기억의 불완전성에 관한 소설이다.


줄리언 반스가 오래전부터 '기억이 곧 나 자신이다'라는 주제를 반복해 왔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알았다. 그의 전작들을 읽지 않은 독자에게도 이 소설은 그 주제를 충분히 전달한다.


"모든 죽음은 2차 피해를 준다. 죽어가는 사람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반면, 슬픔에 시달리는 사람은 앞으로 긴 세월 동안 그 영향을 받게 된다." (94쪽)


이 문장 앞에서 잠시 멈췄다. 죽음은 당사자에게서 끝나지만, 남은 사람에게는 오랫동안 이어진다. 기억 속에서 죽은 사람은 계속 살아 있고, 그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복잡한 의미를 띠어 간다.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지만, 기억 속에서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제목은 슬프면서도 어딘가 위로처럼 읽히기도 한다.


화자는 친구들의 삶을 바라보며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오해하고 있었는지 깨닫는다. 그가 믿어왔던 진실은 부분적인 기억의 조합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오해는 단순한 착각이 아니라, 인간이 기억을 통해 자신을 구성하는 방식 자체의 한계를 보여준다.


노년에 다시 만난 스티븐과 진의 사랑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잔인하다. 육체는 쇠퇴하고, 시간은 부족하고, 서로에 대한 감정은 처음부터 어긋나 있다. 반스는 두 사람이 다시 헤어진 이후 그 이유를 이렇게 정리한다.


"그의 비극은 사랑은 할 수 있지만 그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의 비극은 사랑은 할 수 없는데 그녀가 주고자 하는 것이 사랑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182쪽)


이보다 더 압축적으로 관계의 아이러니를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는 사랑하지만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사랑하지는 않는다. 그 오차 속에서 관계는 틀어지고, 때로는 비극이 된다. 스티븐과 진의 이야기는 특수하지 않다. 그것이 바로 이 장면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퇴장 선언'이다. 반스는 이 책이 자신의 마지막 소설이 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그리고 아주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나 자신이 고른 시간에 마지막 책을 끝내고 입을 다무는 것에는 적어도 한 가지 유용한 결과가 있다. 뭔가를 쓰던 중간에 중단되지 않는다는 것. 이런 식으로 죽음에 선택권을 넘겨주지 않고 있는 셈이다." (252쪽)


죽음을 선택의 문제로 바꾸려는 이 태도가 인상적이다. 미완성으로 끊기는 대신, 스스로 끝을 정하겠다는 것. 조용하지만 단단한 선언이다.


소설의 후반부에는 제목과 얼핏 어긋나 보이는 문장이 등장한다. "떠나면 대개 도착에 이른다." 떠남과 돌아오지 않음, 그리고 도착이라는 세 단어가 교차하며 이 책의 의미를 다층적으로 쌓는다. 떠남은 죽음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젊음도 떠나고, 관계도 떠나고, 한 시절도 떠난다. 그리고 그것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기억과 문장과 이야기는 남는다.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사실 당신이 없었다면 난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당신 팔에 잠깐 손을 얹었다가 아니 당신은 계속 구경하고 있어라 나는 살짝 사라지겠다. 아니 계속 구경하고 있어라." (263쪽)


'계속 구경하고 있어라.' 독자에게 건네는 이 마지막 말이 오래 남는다. 작가가 사라진 자리에서 독자는 계속 구경한다. 책 안의 이야기를, 책 밖의 세계를, 그리고 자신의 기억과 삶을. 반스는 그 자리를 조용히 비켜서며, 독자에게 계속 살아 있으라고 말하는 것처럼 읽힌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화려한 유작도, 극적인 고백도 아니다. 매우 일상적이고 담담하다. 하지만 그 담담함 속에는 오랜 시간 축적된 지혜와 체념, 그리고 유머가 공존한다. 삶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이야기를 만들고 기억을 붙잡는 이유를 보여준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묘한 기분이 남는다. 슬프지만 장쾌하고, 담담하지만 오래 남는다. 그것은 아마도 한 작가가 독자에게 건네는 가장 품위 있는 작별이기 때문일 것이다. 줄리언 반스는 마지막까지 그답게, 유머와 사유와 문장으로 떠났다.


줄리언 반스의 전작들이 갑자기 읽고 싶어진다. 이런 작가를 이렇게 마지막 책으로 처음 만났다는 것이 아쉬우면서도, 어쩌면 이것이 가장 적절한 순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떠남을 이야기하는 책으로 한 작가를 처음 만나는 것. 그래서 앞으로 읽어나갈 그의 책들이 이미 다른 무게를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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