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어떻게 인생의 길이 되는가 - AI 시대 어제와 다르게 살고 싶은 당신의 인생철학
모기 겐이치로 지음, 이초희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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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 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불안은 이제 특별한 감정이 아니라 일상이 되었다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고, 열심히 살아도 방향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드는 날도 잦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 앞에 오래 머무르게 된다.


모기 겐이치로의 철학은 어떻게 인생의 길이 되는가는 바로 그 질문에 스토아철학으로 답하는 책이었다철학을 거대한 사상 체계로 설명하기보다, 오늘의 삶을 버티게 하는 태도와 습관으로 번역해 보여준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책의 첫 문장부터 인상적이다. 


고대 스토아학파의 지혜가 주는 이 희망은 사람들을 압도하는 이 혼란의 시대에 우리에게 힘이 되어 줄 것이다.” (8)


지금 우리가 겪는 혼란과 불확실성이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오래전에도 그것을 견디기 위한 지혜가 있었다는 사실이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철학은 어떻게 인생의 길이 되는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감정에 대한 설명이었다스토아철학이라고 하면 흔히 차갑고 무표정한 삶의 태도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 책은 그 오해를 정확히 바로잡는다.


때로는 화가 날 수 있다. 감정은 그저 일어나는 것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그 감정을 지적이고 창조적으로 해석하고 감당하는 일 뿐이다.” (53)


이 문장을 읽으며 감정을 다룬다는 것이 감정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분노와 질투, 불안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중요한 것은 감정의 발생이 아니라, 그 감정을 어떤 방향으로 이해하고 사용할 것인가에 있다이어지는 문장도 좋았다.


부정적인 가능성이 있다고 부인하거나 억제하거나 완전히 없애려고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부정적인 감정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54)


감정을 없애는 대신 인정하고 더 큰 가치 안에서 정렬하는 것이것이야말로 현실에서 가장 실천 가능한 철학처럼 느껴졌다.


책을 읽으며 여러 번 밑줄을 긋게 만든 문장은 이것이다.


살아가면서 불확실성을 없앨 수 없다. 오히려 역설적이지만 잘 살기 위해서는 불확실성을 찾아내야 한다.” (63)


우리는 늘 확실한 답을 원한다맞는 선택, 실패하지 않는 길, 후회 없는 결정.

하지만 삶은 애초에 그런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저자는 불확실성을 제거하려는 강박 대신, 그 불확실성 속에서도 계속 배우고 조정하며 나아가는 태도를 강조한다. 넬슨 만델라가 긴 수감 생활조차 성장의 기회로 삼았던 사례는 그 메시지를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든다읽는 내내 내 삶에도 너무 많은 확실함을 요구하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문장을 이용한 행복에 대한 언급도 인상적이다.


불행한 사람은 모두 비슷하다. 그러나 행복한 사람은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행복하다.” (151)


좋은 환경, 좋은 날씨, 더 많은 조건이 행복을 보장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저자가 말하는 초점 착각(focusing illusion) 은 우리가 외부 조건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오히려 삶을 왜곡하게 된다는 통찰을 준다결국 행복은 정답을 맞히는 일이 아니라내 기질과 내 조건에 맞는 삶의 리듬을 발견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은 어떻게 인생의 길이 되는가』는 스토아철학 입문서이면서도 단순한 철학 해설서에 머물지 않는다뇌과학자의 시선이 더해져 감정, 자유의지, 행복, 불확실성을 훨씬 현대적인 언어로 풀어낸다무엇보다 좋았던 건 책을 덮고 나서 당장 삶에 적용해볼 수 있는 문장이 많았다는 점이다.


타인에게 과도한 기대를 하지 않기, 감정을 없애려 하지 않고 해석하기, 불확실성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행복의 기준을 외부가 아니라 나에게 두기 등 철학이 삶과 멀리 떨어진 학문이 아니라 오늘의 마음을 다루는 가장 현실적인 기술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불안이 커지는 시기, 삶의 방향을 다시 점검하고 싶을 때 곁에 두고 천천히 읽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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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의 시간으로 더 깊어지는 법에 관하여
레누카 가브라니 지음, 최유경 옮김 / 퍼스트펭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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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들과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이상하게 공허할 때가 있다메신저는 늘 울리고, SNS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흘러가는데도 정작 내 안은 조용히 비어 있는 느낌. 혼자의 시간으로 더 깊어지는 법에 관하여는 바로 그 공허함의 정체를 차분하게 짚어주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마음에 남은 것은 외로움 고독은 다르다는 저자의 구분이었다. 우리는 흔히 혼자 있는 상태를 외롭다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외로움을 내 안에 나를 찾을 수 없을 때 발생하는 감정이라고 말한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혼자 있는 시간이 왜 때로는 불편하고 두려웠는지 선명하게 이해되었다. 혼자가 문제였던 것이 아니라, 정작 자기 자신과 충분히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세상이 붙여준 수많은 꼬리표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였다직업, 관계, 성취, 성격 같은 라벨들 속에서 우리는 쉽게 자신을 설명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이름표들의 합이 진짜 내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혼자의 시간 속에서만 비로소 나는 어떤 사람인가보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를 묻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이 지점이 참 좋았다. 단순한 위로를 넘어, 스스로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질문을 건네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실천해보고 싶은 조언은 매일 5, 방해 없이 자신에게 몰입하는 시간이었다. 거창한 명상이나 루틴이 아니라 단 5분이라니 부담이 없다. 내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왜 그런지 적어보라는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좋아하는 것을 찾는 일보다 싫어하는 것을 분명히 아는 일이 오히려 자기 이해에 더 빠른 길일 수 있다는 점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또 하나 좋았던 점은 이 책이 고독을 관계의 반대편에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혼자의 시간은 관계를 피하기 위한 도피가 아니라, 더 건강한 관계를 위한 준비 과정에 가깝다. 자신과의 관계가 단단해야 타인과의 관계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조용하지만 힘 있게 전해진다. 혼자 있는 시간을 잘 견디는 사람이 결국 사람 사이에서도 더 편안해질 수 있다는 역설이 오래 남았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측면,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가 자아 형성에 미치는 영향은 조금 더 깊게 다뤄졌다면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의 장점은 완벽한 이론보다 지금 당장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사유의 방향을 준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읽고 나면 단순히 좋은 말이 많다로 끝나지 않고, 오늘 하루 내 시간을 어떻게 써볼지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혼자 있는 시간이 자꾸 불안한 사람, 관계 속에서 오히려 자신을 잃어가는 기분이 드는 사람, 바쁜 일상 속에서 내 목소리가 희미해졌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혼자의 시간은 외로운 방랑이 아니라나라는 세계로 들어가는 가장 조용하고도 용기 있는 입구라는 사실을 다시 알려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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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
김요한 지음 / RISE(떠오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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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를 읽을 때 은연중에 기대하는 것이 있다.


지친 마음을 다독여주거나, 다시 시작할 용기를 북돋아주는 따뜻한 문장들이다. 그런데 김요한의 각성은 그런 기대를 단호하게 비껴간다. 이 책은 독자를 위로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의 태도와 습관을 정면으로 돌아보게 만든다. 읽는 동안 편안함보다 긴장감이 더 크게 느껴졌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구조의 단단함이었다. 서문도 추천사도 길게 독자를 이끌어주는 장치도 없다. 100개의 짧은 글이 곧장 본론으로 들어간다. 각 글은 길지 않지만 압축된 밀도가 높다. 짧은 문장 하나가 긴 설명보다 오래 남는다.


특히 초반의 이 문장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태도를 잘 보여준다.


깨달음은 크지 않았다. 사람을 줄이고, 말을 줄이고, 핑계를 줄였다. 줄이는 

건 버리는 게 아니었다. 밀도를 높이는 거였다.” (9)


이 문장을 읽으며 각성이 말하는 변화는 더하는 일이 아니라 덜어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많은 관계, 더 많은 계획, 더 많은 다짐이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필요한 것들을 줄여 본질의 밀도를 높이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다.


책은 반복해서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세상은 말로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사람이 바뀌는 건, 단 하나, 움직일 때다.” (62)


이 문장은 익숙한 자기계발 문장처럼 보이지만, 책의 전체 맥락 안에서는 훨씬 더 날카롭게 다가온다. 우리는 늘 계획과 다짐의 언어 속에 머무르기 쉽다. 시작을 미루는 이유를 준비라는 말로 포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자기합리화를 허용하지 않는다. 결국 삶을 바꾸는 것은 생각의 양이 아니라 행동의 방향이라는 사실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남은 부분은 기준에 대한 이야기였다.


말과 관계는 지나가고, 다짐은 흐려지고, 감정은 식는다. 결국 남는 건 그 모든 것이 사라진 후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 하나의 기준이다.” (221)


각성이라는 제목이 왜 붙었는지 이 문장에서 가장 분명하게 이해되었다.

각성이란 거창한 깨달음의 순간이라기보다, 결국 흔들리지 않는 자기 기준을 발견하는 일에 가깝다. 외부의 위로나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혼자 남았을 때도 유지되는 태도의 중심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가장 크게 남은 변화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말수가 줄고, 설명하려는 습관이 줄었다. 내가 반복하던 변명, 미루던 행동, 불필요하게 붙잡고 있던 관계들을 조용히 돌아보게 되었다. 위로받은 느낌은 아니지만, 오히려 머릿속이 정리되는 감각은 분명했다.


따뜻한 공감이나 다독임을 기대한다면 다소 차갑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삶이 흐트러졌다고 느끼는 시점, 혹은 스스로를 다시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라면 이 책은 꽤 강한 자극이 된다. 편안하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덮고 난 뒤에는 이상하리만큼 생각이 또렷해진다.


어떤 책은 마음을 달래주고, 어떤 책은 방향을 보여준다각성은 분명 후자에 속한다. 위로 대신 기준을 남기는 책이다. 그래서 필요할 때 다시 펼치게 되는 문장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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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인류 - 인류학의 퓰리처상 ‘마거릿 미드상’ 수상작
마이클 크롤리 지음, 정아영 옮김 / 서해문집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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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인류』는 달리기를 잘하는 법에 관한 책이 아니다. 달리기를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에 관한 책이다.


새벽 440, 알람 소리가 울린다. 해발 2500미터의 아디스아바바,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시각. 책은 이 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단순한 달리기 책의 도입부치고는 낯선 풍경이다. 그러나 이 한 줄이 책 전체의 분위기를 압축하고 있다.


저자 마이클 크롤리는 인류학자이자 마라토너다. 에티오피아 육상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현지에서 15개월을 선수들과 함께 뛰고, 먹고, 생활했다. 외부 관찰자로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새벽 훈련에 참여하고 한솥밥을 먹으며 그 리듬에 몸을 맡겼다. 그 결과물이 이 책이다. 원제 'Out of the Thin Air'는 고산 지대의 지리적 환경을 가리키는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와 정신의 영역을 탐구하겠다는 선언처럼 읽힌다.


인류학자의 눈과 달리기 선수의 다리로 쓰인 이 책에는, 어떤 스포츠 과학 논문도 담아내지 못한 것들이 있다. 숫자로 측정되지 않는 것들 즉, 믿음, 공동체, 고통에 대한 태도, 그리고 삶을 대하는 방식 등이 그것이다. 


에티오피아 선수들의 강점으로 흔히 고산 지대 환경을 꼽는다. 해발 2500미터 이상의 고지대에서 단련된 심폐 기능이 세계 최강의 마라토너들을 만든다는 논리다. 저자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훈련 장소의 고도를 물었을 때 선수가 답한 수치는 실제와 달랐다. 저자는 곧 깨닫는다. 정확한 고도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환경에 대한 '믿음'이다. 선수들은 자신이 극한의 환경에서 훈련하고 있다는 확신 자체를 동력으로 삼는다. 과학적 수치보다 정신적 확신이 먼저인 것이다.


에티오피아에 머무는 내내 누구도 타고난 재능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들이 훈련을 부르는 말 '레메메드'는 본래 '적응'을 뜻한다. 선수들은 적응 과정을 잘 관리하는 사람이거나 그렇지 못한 사람, 둘 중 하나였다.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환경에서 꾸준히 적응해나간 결과라는 인식이 문화 전반에 깔려 있다.


에티오피아의 달리기는 개인 기록의 스포츠가 아니다. 앞사람의 발소리를 들으며 보폭을 맞추고, 그 군무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확장해나가는 과정이다


"혼자 뛰는 건 그냥 건강을 위한 거예요달라지고 싶으면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달려야 해요자기 페이스가 아니라다른 사람들 속도에 맞춰야 해요." (49)


저자가 훈련 장소에 도착한 지 고작 5분 만에 훈련 일정이 잡혔다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그는 이렇게 간단할 줄은 몰랐다고 고백한다. 달리기는 원래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라는 듯이.


코치 메세렛은 반복해서 강조한다.


"뒤처지는데 익숙해지시면 안 돼요. 뒤처지는 것도 결국 훈련의 일부처럼 몸에 적응해버리거든요. '앞사람 발을 따라 뛰는 법'을 익혀야 해요." (95)


저자는 이 경험이 달리기와 인류학의 교차점에 있다고 말한다. 둘 다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달리기는 몸을 움직이는 행위이자, 타인의 삶을 온몸으로 이해하는 방법이다. 한편으로 에티오피아 선수들에게 달리기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절실한 수단이기도 하다. 코치 메세렛의 말처럼, "1초면 100만 달러를 벌 수도 잃을 수도 있는 시간(121)"이기 때문이다.


올림픽 마라톤 4위 출신 케니 무어는 달리기의 고통이 "뜨거운 레인지 상판에 손을 대었을 때의 고통과는 다르다"고 표현했다. 저자는 이 고통을 무력감, 견딜 수 없는 무게, 제어할 수 없는 두려움에 가깝다고 묘사한다. 멈춰야 할 것 같은 느낌, 하지만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달리기다.


에티오피아 선수들은 고통을 피해야 할 장애물로 보지 않는다. 고통과 함께 머무는 법을 안다. 메세렛 코치가 강조하는 조금 벅차지만 감당할 수 있고정신은 온전히 집중된 상태인 '통제된 달리기'는 칙센트미하이가 말한 몰입(flow)과 일치한다. 자신이 노력할 수 있는 범위를 가늠하고 그 선 안에 머무는 것. 약간이라도 그 선을 넘으면 금세 큰 문제로 발전하고 다시 돌아오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고지대는 달리기를 단순한 체력 운동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명상적 행위로 만든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개념은 '이딜'이다.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신앙이 선수들의 훈련 태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그 중심에 '이딜', '기회'라는 개념이 있다.


"이딜, '기회'를 만들어내는 최선의 방법은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고, 성실히 훈련하며, 무엇보다도 인내하는 태도였다. 모든 일은 결국 하나님 뜻대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는 건, 아무리 열심히 훈련하고 최선을 다한대도 지금은 자신의 때가 아닐 수 있음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미였다. 훈련과 경기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달리기에 임하면 결국 모든 게 잘 풀릴 것이라는 이 믿음은 성공과 실패 앞에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다." (299)


기록 갱신과 순위 상승에 집착하는 현대 달리기 문화와 정반대처럼 보이는 이 철학은, 사실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다. 옳은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가되, 결과에 대한 집착으로 자신을 소진시키지 않는 지혜다. 에티오피아 선수들이 세계 무대에서 꾸준히 강한 이유가 기술이나 신체 조건만이 아님을 이 개념이 잘 보여준다.


달리기를 하지 않아도 읽을 수 있다. 에티오피아 선수들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읽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우리가 달리는 이유, 함께 달리는 이유,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이유. 이 책은 그 질문들에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답한다. 결국 이 책이 묻는 건 달리기가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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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는 일
채수아 지음 / 모모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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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흔한 달콤한 로맨스나 완벽한 가족 화목을 노래하는 에세이가 아니다. 이 책은 오롯이 '사랑하는 쪽'에 서서 써 내려간 한 여성의 고백이자,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밝혔듯 '영혼의 자서전'과도 같다. 88편의 짧은 글 속에는 오랫동안 교직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1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시집살이를 견뎌온 한 사람의 삶의 무게가 조용히 녹아 있다.

 

저자는 사랑의 아름다운 면만 부각하는 '힐링'에 매몰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이 동반하는 고통과 가혹한 의무의 지점들을 솔직하게 꺼내 놓는다.

 

"어머님은 죽고 싶었지만, 죽지 않으셨다. 어머님은 도망가고 싶으셨지만, 가족을 끝까지 먹여 살리셨다." (18)

 

시어머니를 모시며 건강을 잃고 정든 교단마저 일찍 내려놓아야 했던 저자에게, 사랑은 화려한 수식어가 아닌 '그 자리를 지켜낸 삶' 그 자체였다. 이론이 아니라 뼈아픈 경험에서 길어 올린 문장들이기에 그 울림은 더욱 깊고 묵직하다.

 

상처를 통과한 사람만이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저자가 포착하는 사랑의 장면들은 지극히 평범하다. 만원 전철에서 친절을 베푼 낯선 학생에게 읽던 책을 건네주는 찰나, 우는 아이의 이야기를 지나치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는 시간, 사랑은 거대한 희생이 아니라, 이렇게 잠시 멈춰 서서 누군가를 '그냥 봐주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저자는 자신의 삶으로 증명한다.

 

결국, 타인을 향하던 사랑의 시선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타인을 위해 헌신하다 텅 비어버린 자신을 직면할 때, 비로소 진짜 회복이 시작된다.

 

"알겠다. 점점 알아진다. 그냥 좋은 마음으로 매 순간을 사는 거다. ... 지금 이 자리에서 사랑을 심는 거다. 사랑을 선택하는 거다." (262)

 

수십 년의 세월을 통과하며 지식이 아닌 '지혜'로 나아가는 저자의 고백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고민하는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책의 문장들은 유려하거나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소박하고 담담하다. 하지만 가르치려 들거나 설교하지 않고 그저 자신이 살아낸 것들을 담담하게 꺼내 놓기에, 마치 어머니가 차려주신 따뜻한 집밥처럼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린다. 무거운 고민이 있더라도 "오늘 하루만 잘 살자"는 다짐으로 씩씩하게 일어서는 저자의 태도가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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