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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품격 - 박종인의 땅의 역사
박종인 글.사진 / 상상출판 / 2016년 11월
평점 :
1.단양 온달산성과 성주 윤수경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는 단양에 있는 온달산성. 그곳은 이름 그대로 평강공주의 남편- 고구려 장수 온달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고구려 장수 온달은 바로 이 곳 단양의 온달산성에서 전쟁 중 전사 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까지만해도 온달이 사망한 곳은 서울의 아차산성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째서 온달이 전사한 장소가 단양의 온달산성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을까?
단양에서 나고 자라고, 단양의 면서기가 된 한 남자- 윤수경 이라는 사람이 있다. 윤수경은 단양의 면서기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일을 하면서 만났던 고향 어르신들은 멀리 산 꼭대기에 있는 산성을 온달산성이라고 했다. 이에 의문을 품은 윤수경은 단양의 산성을 시작으로 주변의 지명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여기가 온달 부대가 부상병 고치던 군간이다", "저기는 온달 부대 최선전인 꼭두방터이고, 여기 중간방터는 보급부대 군량미 창고이다", "저 선돌은 온달이 죽고서 바위로 굳은 마고할멈이다"
단양 산성을 비롯하여 천지사방으로 전부 온달이었다. 그저 면서기였었던 윤수경은 그렇게 온달에 대해 조사하였다. 학계에 온달산성에 대한 논문을 제출한다. 하지만 고졸이었던 그의 말은 신뢰가 없었던 탓인가. 그는 공무원을 그만두고 대학교에 입학, 석사학위를 받고 사학자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다. 단양의 온달산성에 있는 온달의 흔적은 전부 사실이라는 것을..
2.충주 중원 고구려비와 유창종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구려비석, 충주의 중원고구려비의 이야기다.
국내에 유일하게 남은 고구려 비석, 이 사실은 정말 중요한 것이다. 중원 고구려비를 제외하고 떠오르는 고구려 비석이라곤 중국에 있는 광개토대왕릉비 밖에 없으니. 심지어 고구려 관련 유적도 한반도,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많이 찾아볼 수 없기에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가 나 역시도 고구려의 흔적이 너무 보고싶어서 일부러 경기도 연천의 고구려 성들을 보러 갔었고, 이 책에 나오는 중원 고구려비를 보기 위하여 충주를 가보기도 하였다.
(참고로 2013년에 중국 지안에서 새로운 고구려 비석이 나왔음)
충주의 중원 고구려비는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 그리고 고구려의 천하관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비석이다.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 제205호로 인정된 보물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1978년 이전까지는 전혀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그 때 까지만해도 한반도 내에는 고구려 비석이 없다는게 정설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중원고구려비에 대하여 알고 있을까?
유창종이라는 검사가 있다. 검사임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좋아하여 동호회를 만들어서 역사 답사 모임을 가고는 하였다. 답사를 하던 중 충주의 입석마을 이라는 곳에 오래된 비석이 있다고 하여 갔다가 발견한 것이 바로 중원고구려비 였다. 당시에는 진흥왕 순수비로 착각을 하기도 하였으나, 학계에서 연구결과 고구려비석 이라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이렇게 유창종이라는 사람이 찾았기에, 우리나라는 고구려비석을 품게 되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아마 이 비석은 그저 그런, 마을에 흔히 있는 비석으로만 남아있지 않았을까.
3.시화 대평원과 시화호를 지키는 최종인
예전의 시화호는 바다였다. 원래는 넓은 바다였으나 물막이 공사로 인하여 4000만평의 호수가 되었다. 그리고 그 호수에서는 생명체를 찾아 볼 수 없었다. 1997년, 학자들은 시화호를 "단 한 마리, 단 한 포기의 생명체도 발견되지 않는다" 라고 말하며 무생물대로 선언했다. 그렇게 시화호는 인간의 이기심에 의하여 죽음의 호수가 되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오랫동안 시흥에서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고, 직장은 시화공단에 있기 때문이다. 하여 이 책의 많은 내용 중에서도 시화호의 이야기가 제일 와닿은 면도 있다.
지금의 시화호는 20여전의 죽음의 호수가 아닌, 많은 생물이 사는 곳으로 바뀌었다. 막혀있던 호수가 아니라 바다물이 자유로이 넘나드는 곳으로 바뀌었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시화호 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 까지는 한 남자의 노력이 있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최종인 이다. 그는 시화호가 죽었던 그 과정을 꼼꼼히 기록하여 언론에 알렸다. 그리고 정부를 끈임없이 귀찮게 했다. 덕분에 시화호에 물길이 다시 열리고 바닷물이 들어왔다. 그리고 시화호는 10여년의 시간동안 자연 치유를 하였다. 지금은 천연기념물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곳이 되었다.
4. 마치며
이 책에는 땅에 얽힌 역사가 있다. 그 역사는 우리에게는 친숙한 역사, 당연한 역사이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기까지, 그 역사를 위해서 자신의 삶을 바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람들의 이름을 모른다. 당연히 모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앞선 시대를 살지도 않았고, 위인전에 나오는 사람들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 현재를 우리와 같이 사는 사람들이다.
※본 리뷰는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