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일본, 일본의 한국 - 이천 년 한일 교류의 현장을 가다
허문명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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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동아일보 기자들이 <한일교류사>를 주제로 직접 발로 뛰어 취재한 기사들이다. 어쩌면 해당 신문사에 대한 내 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아주 조금은 해당 신문사에서 볼 법한 위험한 생각들이 나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서문을 보면 이렇다.

 

최악으로 치닫고 있던 한일 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정치 외교적 상상력이 아니라 양국민의 정신속에 흐르고 있는 문화적 상상력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과거사의 아픈 기억과 상처들은 잊을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되지만 우리의 시선은 과거보다는 미래에 닿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우리 후손들을 위하는길일 것이다. (서문 )

 

미래를 위해서라는 말, 충분히 이해는 간다. 하지만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이런 상황에서 분위기 쇄신을 한답시고 찬란했던 고대사를 띄운다? 이건 정말 위험한 생각이 아닐까. 나 역시 한일고대사에 관심이 많고, 누구보다 좋아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일본은 지금도 변함없는 태도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역사 왜곡도 멈추지 않으며, 사과 한 마디를 안 하고있다. 모든 나라에 대해서 그렇다면 , 쟤네들은 원래 저런 놈들이지라고 생각하고 말겠는데, 지들 보다 힘 쎈 나라냐 아니냐에 따라 선택적 사과를 한 일본의 태도가 너무나 가증스럽지 않은가.

 

뭐 그래도 이 책에 깔려 있는 이러한 생각들만 조금 걷어 내면, 이 책은 한일 고대사 아니, 한일 교류사에 대한 완벽한 길잡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일본 전 지역에 숨어있는 도래인 흔적을 보고 싶어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정말 완벽한 가이드북이다.

 

여기는 무슨 전철을 타고 무슨 버스를 타고 가면 됩니다혹은 여기는 SNS에서 뜨는 핫플레이스 입니다라고 적혀 있는 것만 가이드 북이 아니다. 그런 내용이 하나 없어도, 어떤 장소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보는 사람에게 호기심을 심어주기만 한다면 그 책이야말로 진정한 가이드북이 아닐까 싶다.

 

1- 일본 안의 백제에 가다.

일본은 백제와 땔래야 땔 수가 없는 나라다. 백제가 각종 문화를 전승해준 덕에 일본은 고대국가로 나아갈 수 있었다. 백제는 일본에 많은 것을 전해주었고, 일본은 백제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귀하게 대접했다. 백제가 멸망할 때는 은혜를 갚듯, 일본에서 군대를 지원해주기도 했다. 백제가 멸망한 뒤에는 백제 유민들을 받아 들였으며 그들의 생활을 보장해주었다.

 

백제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문화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왕인 박사.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다. 왕인박사에 대한 기록이 국내 역사서가 아닌 일본 역사서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지만 말이다. 일본 역사서를 믿지 않으면서도, 일본 역사서에 실린 내용을 그대로 배우고 있는 걸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뭐 여튼! 그런 왕인 박사가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해주고 일본 태자의 스승이 되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심지어 일본 고대 정형시인 와카를 창시한 인물이기도 하다. 한일 고대사에서 엄청난 역할을 한 사람이지만, 100여년 전 일본은 왕인박사를 이용하여 일선동조론의 근거로 사용하기도 했던 씁쓸한 인물이기도 하다.

 

왕인 박사가 지은 와카 나니와쓰의 노래16대 닌토쿠 왕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지은 와카로, 일본 최초의 와카다. 근데 또 이 닌토쿠왕은 오사카부 사카이시에 있는 거대한 왕릉의 주인공이기도 하며, 백제인을 사랑한 왕이기도 하다. 심지어 닌토쿠왕릉에서 발견된 부장품과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부장품은 쌍둥이 소리를 들을 정도로 유사하다.

 

백제인 어머니를 둔 간무왕의 이야기라던가, 간무왕이 어머니를 위해 지은 히라노 신사, 다자이후나 백촌강 전투 등에 대한 이야기는 일본 여행기에서도 너무 자주 언급했던 터라 PASS!

 

나당연합군에게 사비성이 멸망하고, 백촌강 전투에서도 패배했다. 이 즈음 일본으로 넘어간 백제 유민은 약 20만명으로 추산된다. 일본으로 넘어온 많은 이들이 오사카에 터를 잡았다. 참고로 위에서 말했던 백제인을 사랑한 닌토쿠왕은 백제유민들이 터를 잡은 오사카를 수도로 삼았다.

 

오사카 동북부 히라카타시에는 지금도 백제마을이 남아있다. 정확히는 당시에 백제인이 도시를 만들고 살았던 도시 유적과 백제왕 신사다.

 

백제 선광왕(의자왕 아들)은 조국이 멸망했을 때 일본에 망명해왔다. () '백제왕'이라는 성을 하사받아 오사카 난바시에 거주했다. 선광왕의 증손인 경복왕은 도다이사 대불 주조에 금을 헌상해 하내수에 임명됐다. 경복왕은 일족 결합의 상징이자 일족의 명복을 위한 백제사, 씨족 신사인 백제왕 신사를 축조해 일족 다 같이 이 땅에 자리 잡고 산 것으로 보인다. - P115 ‘백제왕 신사 비문

 

이 비문에 대한 역사적 근거는 일본 역사서인 일본서기이다. 개인적으로도 정말 아쉬운 부분이 바로 이거다. 백제사는 우리나라 역사인데, 백제 이야기를 어떻게 우리 역사서 보다 일본 역사서에서 찾아야 하는지. 그렇다고 일본 역사서를 전부 믿으면 안되지만 말이다. 내 개인적으로 일본 역사서는 5%의 진실에 95%의 뻥을 추가한 느낌이랄까?

 

2주전에 읽었던 규슈 역사를 따라서 한국을 찾아걷다라는 책에 미야자키현 난고손 마을이 나왔었다. 그 책에는 백제왕 일족인 정가왕과 복지왕을 지금도 신으로 믿고, 매년 그들을 위한 축제를 한다는 점과 그 일대에 대한 설화가 중심이었다. 이 책에서 나온 난고손 마을은 위의 이야기와 함께 더 자세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예를 들어 난고손 마을이 일본의 백제마을로 거듭나게 된 이유라던가, 역사속 정가왕과 복지왕은 어땠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2- 일본에 뿌리 내린 한반도 문화를 찾아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를 공부하면 반사적으로 나오는 대답 중 하나가 빗살무늬 토기 듯, 일본 아스카 문화를 공부하면 반사적으로 나오는게 스에키 토기다. 스에키 토기는 일명 가야 토기, 즉 가야 도래인들에 넘어온 토기이다. 당시 가야는 뛰어난 제철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일본은 그런 가야에서 철정을 공급받았다. 철정과 함께 넘어온게 바로 스에키 토기. 하지만 스에키 토기 이전에 넘어온 토기가 있었으니, 바로 히지키 토기다. 히지키 토기는 한반도 에서 일본으로 도래한 최초인들에 의해 만들어져 사용되다가, 이후 가야인들에 의해 철과 함께 스에키 토기가 넘어온 것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관광 도시 교토, 이 곳에 있는 야사카 신사나 오중탑은 고구려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의 교토를 만든 사람은 신라계 도래인 하타씨 집단. 하지만! 과거 일본여행기 포스팅에서도 여러번 언급했고, 심지어는 국내 삼척 여행기 포스팅 때도 언급했기에 이 부분은 PASS.

 

그렇게 자주 갔던 교토였다. 하지만 정말 몰랐던 사실이 있었으니, 교토 외각 시가현에 있는 기시쓰 신사이다. 기시쓰 신사 앞에는 백제 도래인 귀실집사를 모시는 신사라는 설명이 있고, 심지어 귀실집사의 묘와 묘비도 있다. 일본에는 수 많은 신사가 있지만, 신사 내 묘비에 특정인에 대한 이름이나 사망연도, 생전 직책등이 표시되어 있는 것은 흔치 않다는 점에서, 기시쓰 신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기시쓰 신사가 모시고 있는 도래인 귀실집사, 그는 누구인가?

국사시간에 백제가 망한 뒤, 백제 왕자 부여 풍을 내세운 복신과 도침의 백제부흥운동을 배웠다. 복신은 백제 무왕의 조카이자 의자왕의 사촌으로 백제왕족, 부여 복신이다. 하지만 그가 전투하는 모습이 마치 귀신 같다 하여 '귀실'이라는 성을 받았다. 이후 귀실복신이라 불리었는데, 귀실복신의 아들이 바로 기시쓰 신사에서 모시는 귀실집사인 것이다. 더 놀라운 건 기시쓰 신사는 정부의 지원은 일절 받지 않고, 오로지 마을 주민들이 걷는 회비로만 운영하고 있는 점이다. 다음 일본여행은 간사이 지방을 고심하고 있는 나에게는 꼭 들러봐야 할 장소다.

 

백제 왕인 박사처럼 국사 시간에 꼭 배우는 사람 중 한명인 담징. 일본 나라현에 있는 호류지 금당벽화를 그렸다고 전해지는 고구려인이다. 그런데 지금 남아있는 호류지 금당벽화는 담징의 솜씨가 아니란다. 아 물론 원작을 후대에 모사한 거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모사를 떠나서 원작 벽화가 담징이 그린게 아니란다.

 

원작 금당벽화는 710년 사찰이 재건될 때 조성된 것인데, 담징은 그보다 103년 전인 607, 원래 건물이 지어질 무렵 활동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학계는 호류지 금당 벽화가 담징의 작품이 아닐 것이라는 데 더 무게를 두고 있다. P198

 

망치로 머리를 세개 두드려 맞은 느낌. 그럼 여태 내가 국사 공부하면서 외운 것은 무엇?! 이라는 심정이었다. 근데 다행히도 호류지와 담징이 아예 연관이 없다는 건 아니라고 한다. 2004년에 호류지에서 옛 절에서 불 타 색깔이 변한 60여 점의 벽화 파편이 발견되었다고. 즉 원 건물에도 벽화가 존재했으며, 이 벽화가 담징 혹은 백제나 고구려계 화공들이 벽화가 아니겠느냐? 라는 것이다. 근데 또 여기서 함정은, 지금 모사된 벽화의 원작 역시도 도래인 화공들이 그린걸로 추정한다는 것이다. 다만 담징처럼 이름이 안남아있었을 뿐! 호류지라는 절 자체가 백제계 도래인 세력인 소가노 우마코와 쇼토쿠 태자가 지은 것이다. 여기에 또 쇼토쿠 태자가 존경해 마지 않던 고구려인 혜자 스님도 있었으니. , 또 있다. 백제관음상이라고 불리는 불상이라던가?

 

이 외에도 역시나 교토 외곽있는 엔략쿠지와 미이사, 그 곳에 있는 신라명신과 장보고 이야기도 있으나 이 부분은 알고 있는 이야기라 PASS.

임진왜란 때 끌려온 도공의 이야기는 다른 책 리뷰에서도 많이 썼으니 역시나 PASS

 

3- 조선 통신사의 길을 따라서

올해 초였나? 통신사 흔적을 찾아 나서겠다며 대마도를 갔던 적이 있었다. 나에겐 막연히 통신사=대마도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급 깨달은 사실 하나. 생각해보니 통신사의 최종 목적지는 도쿄, 즉 에도 막부 라는 사실이었다. 근데 왜 당연하게 통신사=대마도라고 생각했을까? 당시 조선통신사의 사행길은 한양에서 부산까지 열씸히 내려간 뒤, 부산에서 바닷길을 이용하여 대마도를 지나 이키섬을 찍고, 아이노시마를 지나 규슈로 들어 간뒤 세토내해를 지나 오사카를 찍고 도쿄로 넘어가는 대장정이었다. , 통신사의 흔적은 대마도에만 남아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이 지나간 전 지역에 남아있는 것이다. 거기다 잘 생각해보니 난 몇 년 전 도쿄 여행 당시에 일부러 통신사들이 묶었던 다이토쿠지도 들렀다는 소오름 돋는 사실이..!! 내 머리속에 대왕 지우개가 있었나 보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조선과 일본은 교류가 끊겼지만, 대마도주 소 요시토시의 국서조작(?!) 덕분에 다시 교류를 시작했다. 국서조작이 워낙 큰 일이지만, 조선은 알면서도 암묵적으로 넘어간 면도 있으니 뭐. 양국의 필요하에 다시 교류를 시작했다고 봐야할 듯 싶다. 당시 일본으로 파견했던 통신사는 통신사라 부르지 않았다. 정확히 회답 겸 쇄환사라고 불렀다. 회답은 일본 막부에서 보낸 국서에 대한 조선 왕의 회답 국서를, 쇄환은 일본에 있는 조선 포로들을 송환을 의미한다. 이들 덕분에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이 돌아오긴 했지만, 생각보다 큰 호응은 없었다. 해서 4차 파견 때부터는 정식으로 통신사라고 부르며 총 12 차례에 걸쳐 통신사를 파견했다. 여기서 슬픈 사실 하나는 일본에서 더 이상 통신사를 보낼 필요가 없다고 한 그 시점부터 일본은 이미 근대화로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거다. 마지막 열 두번째 통신사가 일본으로 넘어간 건 1811. 그리고 딱 65년이 흐른 1876. 일본과 조선은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다. 강화도 조약은 조선 최초의 근대조약이자, 최초 불평등 조약이기도 하다. 조선 통신사에 대한 이야기는 대마도 여행기에서 많이 언급했으니 뭐.. 여기서 각설하는 것으로 하고!

 

요 근래 내가 읽었던 한일고대사, 한일교류사 관련 책 중에서는 제일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심지어 책의 내용을 죄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을 정도였다. 덕분에 한번 읽고 나서 또 다시 정독, 정독 또 정독. 물론 저 많은 양을 다 내 것으로 만들진 못했지만 ㅠㅠ.. 아주 달달 외울 정도로 맘에 드는 책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 책을 구입한 과거의 나! 아주 칭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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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셀프 트래블 - 나 혼자 준비하는 두근두근 해외여행, 2019-2020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조은정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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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간접여행은 미국 서부지역이다. 영어와는 1도 친하지 않은 나로써는 미국 여행을 가려면, 오로지 스마트폰 통/번역기에 의존해서 가야하는데, 차마 까다롭기 그지 없다는 미국 입국심사를 받을 자신이 없다ㅠㅠㅠ 근데 난 미국을 가고는 싶고, 심지어 미국 서부지역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흔적이 많이 있는 곳이고 ㅠㅠ! 근데 여기서 함정은 .. 이 책은 대중을 위한 미국 서부 여행 가이드북이다 보니, 아무래도 내가 원하는 도산 선생의 흔적은 없다.하하하. 이럴 때는 확실히 느낀다. 내 해외여행 취향이 조금, 아니 많이 마이너 하다는 것을 ㅜㅜ..



 

 

얼마나 많은 정보를 담았는 지는 목차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저자가 추천하는 미국 서부 지역 여행 코스부터 시작해서, 미국 서부에 왔다면 꼭 경험해야 할 것들, 먹어 보아야 할 음식, 가 보아야 할 각종 여행지 (특히 인핫플!!)를 총 망라했다. 물론 서부 지역 주요 도시인 로스엔젤레스, 샌디에이고, 라스베이거스,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포틀랜드에 대한 도시 별 관광 명소, 맛집&카페, 숙소 등도 별도로 체크되어 있다.

 


 

"미국 서부는 대체 어디인가?!”

 

  

미국의 서쪽이라고 해도 머리로는 딱 떠오르지 않아서, 미국 전도를 펴 보았다. 다만... 지도에는 진짜 미국만 있어서 한국과 얼마나 멀리 있나 감이 안왔다. 결국 구글맵 검색 시작! 지도를 자세히 보니 미국 서쪽으로 펼쳐진 태평양을 지나, 일본을 거쳐 동해를 지나면 바로 우리나라. 멀기도 엄청 멀다. 지금 당장 미국 서부, 로스앤젤레스를 간다고 하면, 직항 비행기 탔을 때 11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편리한 직항 비행기를 타도 11시간이나 걸리는 지금인데, 1백 여 년 전 당시에 미국 서부지역으로 이주했던 독립운동가들은 얼마나 힘들게 미국으로 향 했을까 생각하니, 뭔가 울컥했다.

 

이 책은 말 그대로 셀프트래블을 위한 가이드 북이다. 책을 보면서 자기 취향 대로 여행코스를 계획 하기에 딱 좋은 정보를 담고 있다. 하지만! 아주 간혹 여기도 가고 싶고 저기도 가고 싶어서 선택을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신랑 처럼(...) 그런 사람들을 위하여 취향별 여행 코스도 있었도 있었다.

 

 


레트로에 푹 빠진 사람들을 위한 루트66탐험 코스, 도시&&바다 등 유명 관광지를 모두 방문하는 관광 코스, 거대한 협곡과 호수등을 체험할 수 있는 대자연 코스, 나 처럼 박물관 도장깨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미술관&박물관 코스, 오로지 먹방! 을 위한 미식 코스 등이 바로 그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전제 되어야 할 점은 약 7~ 10일간의 여행기간이라는 점! , 미국 여행을 하려는 사람들은 대게 그 정도의 휴가를 얻고 오는 거니까. 큰 문제가 없으려나?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일 경우 디즈니 랜드나, 유니버설 스튜디오 등 미 서부 지역의 주요 테마파크도 잊으면 안된다. 대표 영화 및 드라마 촬영지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만약 내가 미 서부지역을 여행한다면, 나는 단연코 로스앤젤레스를 제일 처음 선택할 것이다. 그 다음은 샌프란시스코 랄까.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내 여행 취향이 좀 (...) 도산 선생의 흔적을 찾는게 메인이 될 느낌이라 그런가보다.

 

  

천사의 도시라 불리우는, 로스앤젤레스(LA).


미국을 대표하는 도시 중 한 곳인 LA는 각 국의 셀럽들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며, 할리우드의 도시로도 손꼽히는 곳이다. 무엇보다 그 곳에는 미주지역에 거주했던, 우리 독립운동가의 이야기가 남겨있다

 

시간을 조금 뒤로 돌려 1909. 하와이 합성협회, 북미 공립협회, 대동보국회가 통합하여 LA에 대한인국민회가 결성되었다. 대한인국민회는 미주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독립운동단체였다. 주로 독립자금을 모아 임시정부에 전달하거나 미주지역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매게체 역할을 맡았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대한인 국민회 3대 회장이었다.

 

P 77. 전 세계에서 제일 큰 LA의 코리아 타운. 바로 이 곳에 도산 안창호 우체국이 있다. 한국도 아닌 미국 연방의회가 도산이 독립운동에 헌신한 공로를 기려 2004년에 우체국 이름을 도산 안창호로 명명한 것이다.

 

P 80. 로스앤젤레스 자연사 박물관. 그 근처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살던 집이 바로 LA에 있다. 현재는 한국학 연구소로 사용되고 있는 집이다.

 

P 93. 할리우드 거리 (워크 오크 페임) 은 유명 배우나 감독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2Km의 거리를 말하는데 이 곳에서도 도산 안창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정확히는 안창호 선생의 장남이었던 안필립. 동양인 최초로 할리우두 배우였던 안필립. 도산 안창호는 반드시 나라를 세우겠다는 의미로 아들의 이름을 필립(必立)이라 했다.

 

이 외에도 LA에서 동쪽으로 가는 고속도로로 약 1시간 30분 정도를 가면 나오는 리버사이드는 과거에 오렌지 농장이 번성했던 곳이다. 이곳에서 도산 선생은 한인공동체 파차파 캠프를 건설하고, 오렌지 농장에서 일하며 독립을 위해 힘썼다.

 

미 서부의 또 다른 대도시 샌프란시스코는 도산 안창호 흥사단이 창립된 지역이자,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창립한 미주 대한여자애국단이 있던 도시다.

 

가끔은 해외여행 가이드 북에 한국인이라면 꼭 알아야 할 역사적 장소에 대한 정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모처럼 마음 먹고 가는 해외여행이니까, 혹시라도 내가 가는 여행지 근처에 뜻 깊은 장소가 있다면 한 번쯤 들러보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물론 여행지에서 멀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알면서 못 가는 것과 몰라서 못 가는 건 정말 엄청난 차이가 있기도 하고.. ... 출판사에 바라는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습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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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집쟁이들
박종인 글.사진 / 나무생각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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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러서 혹시나 하고 검색했던 박종인 기자님의 책, 한국의 고집쟁이들. 놀랍게도 재고가 있었다. (이 책 말고도 1권 더 있는뎅, 그건 나중에!)


 

이 책은 2008년에 출간된 책이다. 그렇다보니 책의 상태는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는데, 왠걸. 내가 생각한 것보다 책 상태가 더 안 좋았다. 대체 책을 왜 이딴식으로 관리하는 지 참.. 화가 난다 화가나 ㅠㅠㅠ 평소같으면 이렇게 보관하는 책은 절대 안사는데, 책이 없으니까.. 눈물을 머금고 샀다 ㅠㅠ

 

이 책 속에 나온 사람들은 하나 같이 고집쟁이다. 심지어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대체 왜 이런 삶을 사는 가 싶을 정도로 이해가 안가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끝까지 자기만의 길을 고집했다. 누군가는 장애를 앓고 있었고, 누군가는 가난에 몸부림 치면서도 끝까지 자기만의 길을 걸었다. 그렇게 오랜시간이 흘렀고, 그들은 그제서야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불꽃처럼 살다 간 채규철

채규철, 그는 대안학교 교사였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를 당해 온 몸의 절반을 화마(火魔)에 빼앗겼다. 6개월간 고된 수술 끝에 사람의 얼굴을 조금씩 찾아가기는 했지만, 결코 평범한 인생을 살 수는 없었다.

 

나는 십원짜리 인생이야.

아니, 화폐 가치가 절하되어 '백원 짜리 인생'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다방이나 음식점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담이나 종업원들이 다가와 숨 돌릴 틈도 없이

잽싸게 십 원 짜리 동전 한 닢을 주고는 제발 나가달라며 몸을 마구 밀어내.

내 모습이 다른 손님에게 혐오감과 불안감을 준다는 것이지. P 23

 

그렇게 배척당하는 삶이었지만 그는 결국 딛고 일어섰다. 경기도 가평에 '두밀리 자연학교'를 열었다. 대안학교이자, 자연을 배우는 생태학교다. 그는 이 곳의 교장이 되었다. 아이들은 그를 이미 타 버린 할아버지, ET 할아버지라 부르며 이 곳에서 자연을 배웠고 진짜 인생을 배웠다. 일반적인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진짜 인생을 말이다.

 

우리가 사는데 F가 두개 필요해.

Forget (잊어버리라), Forgive (용서하라)

사고 난 뒤 그 고통 잊지 않았으면 나 지금처럼 못살았어.

잊어야 그 자리에 또 새 걸 채우지.

또 이미 지나간 일 누구 잘못이 어딨어.

내가 용서해야 나도 용서 받는거야 . P25

 

나는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고 자부하면서 살았다. 외모나 권력이 아닌 사람 자체로 판단하고 있다고 내 스스로 생각했다. 물론 나 편하자고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조금만 돌아보면, 불과 몇 시간 전 내 모습만 떠올려도 바로 안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편견이 가득한 눈이었다는 것을.

 

만약에 살아계신 채규철 선생님을 내 눈으로 보았다면 난, 편견 없이 바라 볼 수 있었을까? 범인(凡人)은 상상하지 못하는 인생을 살았고, 남은 인생을 아이들을 위해 헌신했던 그인데. 나는 정말 편견 없이 그 사람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가능했을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채규철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지금, 그가 자신을 향한 편견에 어떤 마음 가짐으로 살았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된 지금. 난 지금까지 살아온, 짧다면 짧은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끼고 있던 색안경을 바로 벗어던지지는 못하지만, 그래도...색안경을 벗어 던지는 삶을 살고자 노력이라도 해봐야 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구두를 만드는 남궁정부

남궁정부, 그는 구두장인이다. 다만 그에게는 오른팔이 없다. 역시나 불의의 사고였다. 구두장이에게 오른팔이 없다는 건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을 건데, 그는 달랐다. 이 악물고 말로는 다하기 어려운 고통을 이겨냈다. 그렇게 고통을 참아내며 다시 구두를 만들었다. 다만 예전에 만들던 구두와는 조금은 다른 그런 구두였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구두, 장애인을 위한 구두였다.

 

"참을 인자 세번이면 왜 살인도 면할 수 있는지 알았어요. 그만큼 그 고통을 참는게 어려웠지." P44

 

어느 날 가게가 문을 닫을 정도로 곤궁해졌을 때

단골손님들이 찾아와 십시일반으로 모은 3천만 원 짜리 통장을 내밀었다고 했다.

"당신 없으면 우리가 걷지를 못하니, 당신은 꼭 돈을 벌어라" 하며

막무가내로 통장을 내밀더라고 했다. P46

 

세상이 많이 발전했다고, 삶이 많이 편해졌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부에 국한된 이야기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은, 아직까지 살기 불편한 나라다. 왼팔의 구두장인 남궁정부에게도 대한민국은 살기에는 불편한 나라다. 하지만 그는 그 불편함을 알고 있기에, 다른 불편한 사람들을 위하여 구두를 만든다. 세상에서 오직 하나 뿐인 구두를.

 

책을 읽다보면 '나라면 어땠을까?' 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하곤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저 질문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이 책 속에 나오는 사람들 같은 선택을 할 수가 없다. 지금만해도 딱 그렇지 않은가? 두 팔, 두 다리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는데도, 난 오로지 내 자신만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래도..이제라도, 조금씩 내 마음가짐을 바꿔보고자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나름 위안이 된다. 내 자신만 생각 할게 아니라, 오로지 남으로써 타인을 바라볼게 아니라, 또 다른 시선에서 나와 타인을 바라보는 노력을 해보는 것. 어렵겠지만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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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프라이어 119 레시피
문성실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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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서 한 집안 주방의 주인이 된 지 어언 3년 하고도 3개월 째, 우리 집에는 주방 가전이 하나 둘 씩 늘어났다. 그 시작은 없어서는 안 될 전자레인지.그 다음 튀김기, 그리고 미니 오븐까지. 거의 1년에 한 개 꼴로 사서 사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 에어프라이어를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지금!! 에어프라이어 레시피북이 내 손에 들어올 줄이야.


 

튀김기를 샀던 이유는 .. 튀김은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고 하니,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샀다. 하지만 이후 살이 뒤룩뒤룩. 이대로는 건강까지 위협할 것 같아서 과감하게 식단을 바꿨다. 그것도 키토제닉 식단으로 ! 근데 왠걸, 키토제닉 식단을 시작하니 외려 요리에 눈을 뜨고 말았다. 그래서 미니오븐 구입. 하지만 오븐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던 와중 에프를 이용한 수 많은 키토식 레시피를 발견! 이제는 정말 에프를 사야하나보다 ㅋㅋㅋ 이건 정말 에프를 사라는 하늘의 계시인가보닼ㅋㅋㅋ!!!

 

마음 경건히 하고 레시피 북을 펼쳤다. 펼치자 마자 눈 앞에 펼쳐진 건 119 가지의 레시피 목록 ㄷㄷㄷㄷㄷ. 에프로 정말 많은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건 알았지만 정말 상상이상으로 많은 요리가 가능했다. 아주 간단한 고구마구이나 통감자 구이부터, 간식으로 손색이 없는 요리들과, 누가 봐도 메인요리인 고기와 해물요리, 거기다 밥 반찬 ㄷㄷㄷㄷㄷㄷ 아니.. 밥 반찬까지 가능하다니, 역시 에프 사야하나........ ! 거기다 베이킹까지 된다. 하 이렇게 되면 우리집 미니 오븐 창고행인가 ...ㅋㅋㅋㅋㅋ


 

에어프라이어는 튀김기가 아니라 오븐입니다.”

 

맞는 말 ! 에프는 오븐이다. 오븐. 다만 튀김요리 같은 튀김요리도 가능한 오븐이다 ㅋㅋ 튀김도 가능하고, 굽기도 가능하고, 토스트도 가능하고, 데우는 것도 가능하고, 베이킹도 가능한 정말 만능 주방가전이랄까. ...ㅋㅋㅋㅋ 역시 미니 오븐 말고 에프를 샀어야 했나보다 ... 이건 뭐 오븐보다 요리의 폭이 더 넓잖아!!!!!!!!!!!!! ㅠㅠㅠㅠㅠㅠ

 


, 물론 에프로는 완전 바삭바삭한 튀김을 기대할 수는 없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건강한 음식을 먹을 생각을 하고 있다면, 요 부분은 감안해야지!!

 

이미 집에 있는 튀김기도 봉인해버린지 오래니까 ㅋㅋㅋ 아 자꾸 마음이 기승전 에프구입으로 넘어가는 이 느낌적인 느낌은 무엇인가 ㅜㅜㅋㅋ

 

이 책에서는 에프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세척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조리 할 때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지, 어떤 조리도구를 사용해야 하는 지 도 자세히 알려준다. 일단 조리도구나 각종 기본 양념은 이미 집에 다 있으니 ㅋㅋㅋㅋㅋ 에프만 있으면 되는 건가....!!

 


내 눈을 단박에 사로 잡았던 고기 및 해물요리들. 심지어 메인요리로 나오는 애들이다. 키토식을 하면서 고기하고 해물을 아주 지겹도록 많이 먹었는데, 요리 방법이 한계가 있어서..... 거기다 불로 요리를 하니 집에 냄새도 베고... 완전 너무 힘들었는데 ㅠㅠㅠㅠ 하 역시 에프는 신세계였다. 각종 삼겹살구이, 닭봉구이(!!!), 새우요리, 연어찜(!!!!) 어떻게 이런 요리들이 가능한건가! , 에프대신 미니오븐을 샀던 과거의 나를 매우 치고 싶...ㅠㅠ 그땐 생각이 너무 짧았나보다....

  

아보카도도 이렇게 메인 요리 마냥, 예술품 마냥 먹는 방법이 있었는데 난 그동안 무엇을 했나.... 아보카도 사올 때마다 매일 콥샐러드나 해먹었는데..

다른 메뉴로는 아주 가끔 아보카도 스무디가 끝이었는데..... ... 난 여태 무엇을 했나....


 

에프 레시피 중 제일 충격적이었던 게 바로 반찬 레시피다. 에프로 각종 고기류나 베이킹을 한다는 건 익히 알았는데, 반찬도 만들 줄 이야!! 이것이야 말로 신세계가 아닌가ㅠㅠㅠ 심지어 김까지 구울 수 있고!! 삼치 뿐만 아니라 오징어 구이까지. 하 세상에.... 키토식을 위해 사려고 했는데, 일반식 먹고 있는 우리 신랑한테도 맛난 반찬을 해줄 수 있는 건가 ㅋㅋㅋ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에프 홈 베이킹이 최고일지도 ...ㅋㅋㅋ 특히 치즈스콘 ! 이상하게 오븐으로 스콘을 도전할 때마다, 이것이 정말 스콘인지 아님 걍 못난이 빵인건지 의심 오브 의심이 들 정도로 이상한 모양만 나왔는데. 왠지 이 책에 나와있는 레시피대로 에프에서 만들면 정말 맛있게 나올 것 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미니오븐에서 써먹을 레시피를 찾아보려고 봤다가, 왠걸 에프 구입 뽐뿌만 심각하게 왔다. 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된 거 어떤 브랜드 에어프라이어가 좋은지 검색이나 해봐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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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 역사를 따라서 한국을 찾아 걷다
김홍수 지음 / 북랩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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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인터넷 서점에서 역사분야 신간 도서를 확인할 때가 있다. 그러다 제목이 끌리면 바로 구입! 30%는 선택 실패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높은 확율로 맘에 드는 책을 구입한다. 이 책 역시 알라딘에서 신간 목록을 보던 중 한일관계사 관련 분야라서 고민 없이 바로 구매를 한 책이다.

 

그리도 다행히도 선택 성공 !!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은 양의 내용이 있었다. 저자가 정말 많은 곳을 다니며 발품 팔아서 찾아낸 수 많은 도래인의 흔적들은 나를 규슈로 오라고 손짓 하고 있었다. 규슈 지역은 얼마 전 후쿠오카를 갔던 게 처음이라, 아직 내가 가본 곳은 많지 않지 않기 때문에. 아마도 이 책이 차후에 있을 규슈여행의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이 책의 분야가 워낙... 공부를 해야하는 느낌의 책이 다 보니, 읽으면서도 중간 중간 메모를 하고, 내 생각을 적어서 포스트잇을 붙여 놓았다. 다 읽고 다니 책에 붙인 포스트잇이 대체 몇개인가.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교토/오사카 지역에 대해서도 책을 내주면 정말 좋을 것 같다. 난 그래도 나름대로 교토지역의 도래인 흔적 찾기는 나름 열씸히 해왔으니까!

 

 

1- 일본 신화의 땅, 규슈

규슈는 신화의 땅이다. 일본의 역사서인 고사기, 일본서기에 따르면 일본의 건국신화는 규슈에서 시작된다. 특히 천손강림신화와 히무카 3대 신화는 규슈 땅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 중에는 고사기요약본이 있어서 그나마 일본 신화 쪽은 익숙한데, 일본서기는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 일본 가면 서점에 들러서 꼭 사와야지 하면서, 맨날 까먹고 그냥 한국으로 돌아온다 ㅜㅜ.

 

히무카 3대 신화의 경우 올 초에 대마도 와타즈미 신사를 방문하면서 확실히 머릿속에 각인을 시켰다. 특히 히무카 3대 중 남자쪽은 두, 세가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있어서 엄청나게 혼동이 왔었는데, 이번에 진짜 완벽하게 머릿속에 정리됬다.

 

신찬성씨록815년에 편찬한 고대 씨족의 계보서이다. 출신 별로 황별 335씨족, 신별 404씨족, 제번 326씨족, 그 외 117씨족으로 분류해 그들의 조상과 씨족명의 유래 등으로 1,182씨족을 기록하고 있으며, 황별 씨족, 신별 씨족도 한반도와 많은 관련을 찾아볼 수 있으나, 도래인의 자손인 제번씨족 중 백제계가 104씨족, 고구려가 41씨족, 신라에 9씨족, 가야에 9씨족이 한반도를 뿌리로 하면서 일본 역사에 크게 기여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P24

 

일본의 기록에 따르면 고사기의 저자 오노 야스마로는 도래계 씨족인 오노 호무치의 아들이라 한다. 1975년 전 까지만해도 오노야스마로 라는 사람이 실존 인물인지 아닌지도 확신이 없었으나, 1975년에 오노야스마로의 묘가 발견되면서 그가 실존인물 인 것이 밝혀졌다. 무엇보다 그 묘에는 41자의 글이 새겨진 동판도 발견되었다. 또 다른 기록에 따르면 오노 호무치는 백제가 멸망하던 그 때, 백촌강 전투(백강전투) 대패 후 일본으로 후퇴하는 선박을 타고 넘어 왔다고 한다. 백촌강 전투는 나당연합군과 백제 부흥군 + 일본 지원군이 대 격돌했던 전투로,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중요한 부분이다.

 

무엇보다 일본은 백촌강 전투 패배로 인해 나당연합군이 바다 건너 넘어올 것을 대비해, 규슈 곳곳에 성벽까지 올렸을 정도니 뭐.

 

​「일본서기에는 하늘나라에서 쫓겨난 스사노오가 맨 처음 다다른 곳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신라국에 내려와 소시모리 라는 곳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이 땅은 내가 있고 싶지 않다" 라고 하며, 배를 만들어 타고 동쪽으로 가 이즈모의 도리죠미네로 갔다. 스사노오가 다카아마노하라로부터 내려왔다는 신라국의 소시모리는 우리말로 '소머리', 한자로는 '우두'라고 적는데 경남 합천에 가야산의 최고봉이 우두봉으로 이 곳이 일본서기에 나오는 소시모리라고 추측되고 있다. 또 하나의 우두봉이 춘천 시내에 있는데 일제 시대 때 이 곳에 거대한 신사를 계획한 적도 있고 해서 이곳을 일본 역사의 근거지로 추정하는 연구도 있다. P24

 

교토 도래인 흔적을 찾으면서 알게된 우두봉. 그 때는 고구려 사신 이리지가 교토에서 야사카 신사를 창건할 때 고국에 있는 우두천왕을 모셨다는 이야기만 알았다. 고구려 사신인에 대체 왜 신라의 신 우두천왕을 모셔온 걸까 싶었는 데, 위에 내용을 읽고보니 뭔가 조금은 알 것 같다.

 

하늘의 최고신 자손인 니니기노미코토가 내려온 곳인 구리후루타케는 가야 신화에서 김수로왕이 하늘에서 내려온 봉우리 이름, 구지촌봉을 일본어로 읽는 것과 유사하다. 그리고 니니기노미코토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자마자 처음 하는 말로 가라쿠니를 언급하는 것을 보면 가야의 건국신화와 일본의 건국신화는 우연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P29

 

나도 콕 집고 싶었던 부분이다. 일본에는 생각보다 가야계 도래인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고, 무엇보다 가야를 뜻하는 '가라'와 관련된 지명이 너무나 많다. 심지어 일본 정부의 주도로 만든 책 고사기, 일본서기에 저런식으로 적혀있다는 건, 당시 정부를 주도하던 세력이 한반도 도래인 세력이라고 밖에 생각할 길이 없으니.. ! 순간 잊었지만, 고사기를 쓴 사람은 백제계 도래인이었다..

 

이 외에도 일본 신사가 무엇인지, 섭사와 말사라던가 신사, 신궁, 대사 의 차이 등 여러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이 부분은 내가 일본 여행기를 쓰면서 종종 거론했던 부분이니 패쓰 !

 

2- 고대 일본 규슈로 가는 길에서 찾은 곳

삼국사기에 백제 무령왕에 대해 이름은 융 또는 사마로 되어있으나, 언제 태어났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는 반면에 일본서기에는 무령왕의 출생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기록이 있다. 백제의 개로왕은 왜나라로 가는 곤지에게 임신 중인 부인을 함께 동행시키면서 "나의 임신한 부인이 이미 산월이 됐으니 만일 도중에 출산하면 같은 배에 태워서 조속히 백제로 돌려보내시오"라고 하였다. 하지만 임신한 부인은 일본으로 가는 중에, 앞에서 살펴본 항로 안에 있는 이키섬을 지나 가라쯔로 들어가기 전 가카라시마에서 출산한다. 그래서 아이의 이름을 도군(島君) 이라 했다. 그러자 곤지는 배 한척을 마련해 도군을 그 어머니와 같이 백제로 돌려보냈다. 1971년 발굴된 무령왕릉의 발굴품 중 지석에 기록된 이와 같은 내용 중 일부가 일본서기의 기로고가 일치해서 큰 반향을 부르기도 했다. P66

 

이 전 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무령왕이라는 인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없는 채로 있었다. 반면 일본 가카라시마에서는 사마왕이 태어났다는 전설이 계속 구전되어 왔다. 그러다 국내 세기의 발굴이자, 국내 최악의 발굴이라 손 꼽히는 무령왕릉 발굴 때 나온 지석으로 인해, 일본의 한 섬에서 구전되오던 전설이 실제였고, 우리가 등한시 하던 일본서기에 있던 기록이 사실이라는 게 밝혀졌다. 이 사실을 보고 깨달은 점이 있다. 일본서기는 분명 정부 주도로 기록한 사서이기 때문에 과장된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과장된 부분을 잘 덜어 내기만 하면 그 속에 있는 역사적 사실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 과장된 부분을 덜어내는 과정이 매우 험난하긴 하지만 말이다.

 

이 외에도 천일창으로 일컬어지는 신라계 도래인 아메노 히보코 이야기도 있다. 천일창의 이야기 역시도 텐만궁, 즉 스가와라 미치자네 관련 이야기를 하면서 몇번 언급했던 적도 있고 해서 역시 패스. 대략적으로 교토 키타노 텐만궁, 후쿠오카 다자이후 텐만궁 등의 제신인 스가와라 미치자네의 조상을 거슬러 올라겨면 천일창이 나온다는 뭐 그런 이야기다. 이래저라 스가와라 미치자네가 도래계 후손이라는 것 만은 명확하다는 점!

 

3-한반도와 대륙의 외교 통로 후쿠오카 다자이후 주변 지역을 가다.

불과 3주 전? 후쿠오카를 갔다 왔었다. 후쿠오카에서 꼭 가고자 했던 장소가 있었는데, 그 곳이 바로 다자이후 였다. 정확히는 다자이후 미즈키 유적, 다자이후 정청유적, 다자이후 텐만궁 이 세 곳. 물론 쿠루쿠루 버스 투어를 결정하는 그 순간 이 계획은 바로 폐기 처리 되었다는게 함정이다. 그나마 쿠루쿠루 버스 투어에 다자이후 텐만궁이 있었기에 가는 길에, 버스안에서 미즈키 유적을 멀리서나마 보는 것으로 만족했더랬다.

 

6607월 신라, 당나라 연합군과 전투에서 백제는 멸망한다. 일본은 구원군을 보내기로 하고 사이메이 천황이 나라 지역에서 규슈까지 온다. 그러나 규슈에서 4개월 후 사이메이 천황은 사망한다. 그 이후 황태자인 중대형 황자(덴지천황)이 전군을 지휘한다. 9월에는 백제왕자 풍장이 백제로 돌아갈 때 5천 명의 병사를 호위해서 보내고, 663년에는 27,000여 명의 증원군이 파견된다. 그것에 대응해서 당나라도 7,000여 명의 증원군을 보낸다. 결국 8월 말 양국은 백촌강에서 충돌한다. 사서에는 4백여 척의 배가 불타고, 강은 피로 붉게 물들었으며 익사자가 너무 많았다고 기술되어 있다. 일본은 대패하고 백제 부흥은 완전히 실패했다. P102

 

664년 미즈키 유적은 백제 멸망 후 일본은 당나라와 신라의 공격에 대비해 다자이후의 방비를 강화하기 위해 후쿠오카 평야와 쓰쿠시 평야에 걸쳐 가장 높은 장소에 토성을 쌓은 곳이다. 후쿠오카 시내에서 미즈키 쪽을 바라보면 왼쪽에 오노성이 있고 오른쪽에 기이성이 있다. 그 사이 가장 좁은 곳을 연결하여 흙으로 성을 쌓아 놓아 그 뒤쪽으로 침략하기에는 쉽지 않은 방어벽인 것을 실감할 수 있게 만들어져 1,300여년이 지난 지금도 견고해 보인다. P95

 

미즈키 유적, 한자로는 수성(水城)이다. 백촌강 전투 대패 후 많은 백제 유민들이 일본 구원군과 함께 도망쳐 온 곳이 바로 이 곳이다. 나당연합군이 너무 무서워서, 혹시라도 이 곳까지 쳐들어 올 까봐 백제식 산성을 쌓은 게 바로 수성이다. 실제로 보면 몽촌토성과도 흡사하다고 한다. 직접 가서 두 발로 밟지는 못했지만, 구글 로드맵으로 봤을 땐 흡사한 느낌도 들긴 했다.

 

다자이후 텐만궁 바로 옆에는 규슈 국립박물관이 있다. 일명 박물관 도장깨기를 하고 있는 나 로써는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인데, 쿠루쿠루 버스투어에서는 시간이 매우 부족했다. 딱 텐만궁을 슬쩍 둘러볼 정도의 시간 밖에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규슈 국립박물관은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 이 곳에서 한일 고대사 관련한 서적을 많이 판매한다고 들어서, 정말 기대했었는데.. 아무래도 그런 서적들은 일반적인 서점에서는 많이 판매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결국 책을 사기 위해서라도 이 곳에 꼭 다시 와야만 한달까 ...하하하

 

이 책에는 위에 언급한 것 외에도 규슈 북부, 중부, 남부 전 지역에 남아 있는 여러 역사 유적지가 있다. 무타가타군 주변에는 대표적인 도래인 집단인 하타씨 집성촌이 있고, 일본 최초의 신사로 알려진 레이후 신사는 백제 성왕의 제3왕자: 임성태자와 연관이 있다. 특히 임성태자와 그 일행들이 터를 잡은 야마구치 현은 이후에 메이지 유신의 주 세력들을 탄생시켰고, 현재 일본의 총리인 아베마저 이 곳 출신이며 임성태자와 연관성이 있다는 등의 내용도 있다. 아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더 확실한 연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지만.... 무엇보다 진짜 그렇다고 해도, 아베 스스로가 아니라고 하겠지만.

 

일본에서는 갓파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하나 이곳 야스시로에는 시내 여기저기에 가라로 시작하는 지명이 눈에 많이 보인다. 이곳에서는 갓파를 가랏파(加羅輩:가라배)라고도 한다. , 가라의 무리들, 바다를 건너온 이방인들이 세월이 가면서 특징이 과장되어 상상의 동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P161

 

어쩌면 일리가 있는 추측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문구다. 워낙 가야와 관련된 지명이 일본 곳곳에 남아있기도 하고, 실제로 가야 도래인이 일본에서 많이 생활하기도 했으니. 위에서 언급은 안했지만 가야 김수로왕 탄생설화나 수로왕의 7왕자 이야기 등 일본과 연관이 있는 부분이 꽤 많으니 제발 이 부분을 누가 좀 시원하게 알려줬으면 ㅜㅜ..

 

! 또 놀라웠던 점 하나는 미야자키에서는 아직까지도 백제왕족과 관련된 마츠리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곳에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백제 왕족이 반란군에 쫓기다가 히무카국이 있는 미야자키 해변이 이르렀다고 한다. 백제의 정가왕과 차남 화지왕은 미야자키 휴가시 가네가하마 해변으로 들어와 난고손에 정착했고, 정가왕의 부인과 장남 복지왕이 미야자키 가구리우라 해변으로 들어와 기죠초에 정착했다고 한다. 하지만 반란군에 의해 결국 모두 죽었다는 슬픈 이야기.

 

물론 이 이야기는 두 마을에서 전설로 내려올 뿐이다. 일본의 사서나, 국내 사서에는 없는 이야기 인 것이다. 저자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후 일본 긴키지방으로 망명한 백제 왕족이, 일본 내에서 발생한 내란으로 화를 당한 상황이 이렇게 전설로 전해진 걸로 추측한다. 이유야 어쨌든 두 마을에서는 정가왕 일행과 장남인 복지왕 일행이 일년에 한번 씩 만날 수 있도록, 두 마을에서 합동으로 마츠리를 행하고 있었다. 아주 오랜세월동안, 지금까지도.

 

참고로 난고손은 정가왕을 제신으로 하는 미카도 신사가, 기조쵸는 복지왕을 제신으로 하는 히키신사가 주도한다.

 

정말 여러모로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된 책이다. 새로운 지식 습득이라는 것 보다, ! 이런식으로도 생각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달까?

 

혹시라도 저자가 일본의 다른 지역을 답사하고 책을 발간한다면,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바로 사서 읽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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