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여성, 최초의 여성, 최고의 여성 -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대를 정면돌파한 여성 100인
나탈리 코프만 켈리파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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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치 않게 좋은 사람에게 선물을 받은 최악의 여성, 최초의 여성, 최고의 여성. 그렇지 않아도 읽고 싶었던 책이 었다. 내 독서 취향이라면 취향이랄까, 역사 속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정확히는 한, , 일 역사 속의 인물들) 역사 속 인물에 대한 책이 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정말 읽고 싶었는데!! 특히나 내 눈길을 끌었던 제일 큰 이유는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이 역사 주류에 서 있는 남성이 아닌, 언제나 역사 뒷편에 있었던 여성들이라는 점이었다.

 

지금은 동, 서양을 막론하고(물론 아닌 나라도 꽤 많지만) 과거에 비하면 정말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여성의 권리가 높아졌다. 과거에는 그저 남편의 대를 이어주는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니었던 그런 역할에 그쳤다면, 지금은 그런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 과거에는 여성의 정치 참여는 상상도 못할 일이 었다면, 지금은 여성이 나라의 수장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난 이러한 세상이 되기 까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희생되었을까?’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희생된 그녀들 덕분에 나는 이런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일텐데..

 

목차를 찬찬히 살펴보니, 책에 실린 100인의 여성은 대부분이 서양인이었다. 아무래도 프랑스인인 저자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동양보다는, 본인이 살고 있는 유럽을 포함한 서양 역사에 접근하는게 훨씬 편했을 테니. 나만해도 동양, 우리나라 역사 속 여성에 대해서는 꽤 많이 알고 있는 반면 서양 역사 속 여성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 않나. 그런 저자가 우리 역사 속 인물인 선덕여왕을 이 책에 실었다는 것은 실로 놀랍기 그지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역사 속 인물이 더 소개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선덕여왕 말고도 최악이든, 최초든 이 책에 실릴 만한 여성들이 많이 있는데 말이다 ㅠㅠ

 

뭐 아쉬운건 아쉬운거고! 내가 과연 얼마나 많은 인물을 알고 있나 세어봤더니 이게 왠 걸! 고작 7명이다. 선덕여왕을 포함하여 아라곤의 캐서린, 서태후, 마리 퀴리, 아가사 크리스티, 마릴린 먼로, 미셸 오바마. 이렇게 딱 7.

 

서태후는 청나라 멸망사에서는 절대로 빼먹을 수 없는 여인이기에, 그녀와 관련된 책도 여러번 읽은 적이 있다. 아가사 크리스티는 추리 소설에서는 절대 빼 놓을 수 없는 작가이기도 하고, 나 역시 학창 시절 아가사 소설을 진짜 미친듯이 읽기도 했다. 마리 퀴리는 노벨상으로, 마릴린 먼로는 한 시대를 대표한 섹시 심벌이기에 당연히 알 수 밖에 없었다. 이래저래 이들에 대해서는 그 사람 자체에 대해 나름 알고 있었다.

 

반면 아라곤의 캐서린이나 미셸 오바마는 오롯이 그녀들에 대해 알려고 한게 아니라, 그녀들의 남편 때문에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라곤의 캐서린은 그녀의 남편 헨리 8세의 미친 결혼력(...) 때문에 알게 되었고, 미셸 오바마는 당연히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그녀의 남편 버락 오바마 때문이었다. 그나마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여성인데도 불구하고, 이 두 사람에 대해서는 그 사람 자체에 대해서 알고 있는게 아닌, 그녀들의 남편이 워낙 유명해서 곁가지(?)로 알게 된 것이었다. 참 뭐랄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묘하게 반성이 되는 부분이었다.

 

1.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를 선언하다: 올랭프 드 구주

전혀 몰랐던 이야기가 책 앞장에 나왔다. ‘올랭프 드 구주라는 여성이 발표한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 그 면면을 들여다 보면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당시에는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 였다. 이 모든 권리를 주장하기에는 여성은 사람이었지만 사람이 아닌 존재였다는 이야기다.

 

프랑스 대혁명은 여성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반으로 성공을 이뤘지만, 혁명 세력은 권력을 잡자마자 온갖 수단을 동원해 여성들을 가정으로 돌려보냈다. 루이 16세를 베르사유궁에서 끌어내 파리로 데려온 것도 파리 여성들이었다. 여성들은 프랑스 대혁명에 많은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이내 실망했다. 프랑스 대혁명은 보편적 인권을 내세운 대혁명이었지만, 정치영역에서는 여성을 완전히 제외시킨 것이다. _P089

 

프랑스 대혁명을 담은 소설 레미제라블에서도 혁명군에서 여러 역할을 하는 여성들을 볼 수 있었다. 나에겐 프랑스 대혁명은 딱 거기까지 였다. 이후에는 로베스 피에르의 공포정치가 있었고, 로베스 피에르는 본인이 만든 단두대에서 본인이 죽었다. 이정도?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메인 줄기로 만들어진 소설이나 만화가 많았기에, 딱 그런 것들 위주로만 봐서 그 뒤에 가려진 여성의 이야기는 솔직히 잘 모르고 있었다. 그냥 막연하게 그 당시에 많은 인권 신장이 일어났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표면적으로만 그렇게 보였을 뿐,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바뀌지 않는 현실에 낙담하지 않았던 올랭프 드 구주는 오히려 더욱 목소리를 높여 여성의 권리선언을 발표를 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물론 그녀는 그녀가 원하는 여성이 권리 신장을 보지 못했다. 로베스 피에르에 의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으니까. 다행이라면 다행인 점은 그녀는 이 땅에 없지만, 그녀가 바라는 세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2. 최초로 왕의 공식적인 정부라는 지위를 부여 받은 여인 : 아녜스 소렐

프랑스 땅에서 진행된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 백년 전쟁. 이때 샤를 6세는 자기 아들에게서 왕위 계승권을 빼앗았다. 샤를 왕세자는 그렇게 한 순간에 계승권을 박탈당한 비운의 왕자가 되어버렸다. 삶의 의지가 사라진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그런 샤를 왕세자가 아녜스 소렐이라는 여인을 만나고 변했다. 아녜스를 만나고 샤를 왕세자는 한 사람의 남자로써, 그리고 당당히 샤를 7세로 왕위에 올랐다.

 

샤를 7세의 총애를 받았으며 지성 또한 갖췄던 아녜스는 왕의 총애라는 영향력을 행사해 왕이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게 도왔다. 이리하여 광기에 빠진 샤를 6세의 폐위된 아들은 충성받은 왕’, ‘승리왕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게 된다. _P054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아녜스는 실의에 빠졌던 한 남자를 모두가 우러러 보는 왕으로 바꾼 여자라 칭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닥 부각되지 않았던, 아녜스로 인해 피눈물을 흘린 여성이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아녜스는 왕비가 아니라 정부. 국어사전에서 정부를 검색하면 아내가 아니면서 정을 깊이 두고 사귀는 여자라는 사전적 의미가 나온다. 말 그대로 내연녀라는 점! 물론 이건 불법은 아니었다. 중세 유럽, 이 시기의 왕들은 이상하게도 정부를 참 많이 뒀다.(그 유명한 마담 퐁파두르도 루이15세의 정부이기도 했고) 뭐 여튼! 아녜스도 정식 왕비가 아닌, 샤를 7세의 정부였다. 샤를 7세를 제대로 된 왕으로 만들었다는 공로는 그녀의 권력이 되었다. 권력을 휘두르는 아녜스 뒤에서 눈물을 삼킨 여성이 있었으니, 그녀는 샤를7세의 부인, 마리 왕비다.

 

마리왕비만 있는게 아니다. 샤를 7세가 왕에 오를 수 있었던 제일 큰 이유 중 하나는 백년전쟁의 승리를 쟁취할 수 있게 했던 영웅, 잔다르크의 존재였다. 하지만 잔다르크는 마녀라는 누명을 쓰고 불 길 속에서 그 명을 달리했다. 물론 잔다르크의 죽음에 아녜스가 관련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를 7세가 제대로 된 왕권을 행사하고, 아녜스가 그 권력을 누리는 데 못해도 왕비 마리와 잔다르크라는 두 여성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아녜스는 최초로 왕의 정부라는 지위를 인정 받았으며, 샤를 7세라는 왕을 만든 최고의 여성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승자의 관점에서 일 뿐, 적어도 마리 왕비나 잔다르크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녀는 최악의 여성일 지도 모른다.

 

3. 그리고..

이 책은 출현의 시대, 주장의 시대, 요구의 시대, 용기의 시대, 참여의 시대, 희망의 시대6 개의 시대로 구분하여 100인의 여성에 대해 기술한다. 시대 구분으로 보자면 고대 ~ 현대까지의 시대를 세분화했다고 보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요구의 시대 까지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다. 읽으면서 그녀들의 희생에 감사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시대가 올라가면서 어느새 1800년대 후반을 지나 1900년대 초반의 여성들이 나타났고, 이 즈음부터 책을 읽는 내 마음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우리나라 역사로 구분하자면 아주 정확하게 조선 말기 ~ 일제강점기였기 때문이다.

 

무언가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랄까? 다시 요구의 시대로 넘어와서 다시 읽기 시작했다. 곱씹고 보니 이미 이때부터 서양의 제국주의가 요동치기 시작했고, 영토를 확장한다며 여러 나라에 식민지를 세우기 시작하는 그 시기였던 거다. 그들의 제국주의는 아시아까지 넘어왔으며 어떤 나라는 그들의 식민지가 되었다. 또 어떤 나라는 그들의 제국주의를 자기들 방식으로 받아들여 나라를 개혁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웃나라를 침범했다.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제국주의를 들먹이며 조선을 침략했고, 그렇게 이 땅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 때 우리나라는 여성의 인권을 울부짖기는 커녕, 한 사람으로써의 인권조차 없었다. , 책 속에 나와 있는 당대 서양의 여성들은 여권을 신장한다는 이유로 자신을 희생한 위대한 사람이 되는 동안, 동시간대 우리나라는 여성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국민들이 서양에서 만든 제국주의 피해자로 전락했다는 사실이다.

 

뭔가, 책을 읽기 전에는 역사 속에 가려진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는 다는 사실에 중점을 두었는데, 정작 읽으면서는 이 여성들이 활동하던 그 시대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이 시대 우리나라는 어땠지?라는 생각에까지 도달했다. 고대 ~ 중세까지는 가볍게 읽었다면 근대로 넘어오는 시기 부터는 가볍게 읽을 래야 가볍게 읽히지가 않았다. 특히 우리가 그런 암흑기에 이르게 된 제일 큰 이유가 일본이라는 건 빼도 박도 못하는 제일 큰 이유지만, 그 저변에는 서양의 제국주의가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책에 나온 모든 이들을 부정하는 건 절대 아니다. 다만, 그녀들이 위대한 영웅이 되는 동안,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수 많은 참극이 떠올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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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한일사 - 분노하기 전에 알아야 할
이경훈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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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이 두 나라는 지리적으로는 정말 가깝지만 심적으로는 너무 먼 나라이다. 멀어도 너무 먼 나라다. 고대만 해도 한반도와 일본은 정말 사이가 좋았다. 도래인들 덕분에 한반도에서 많은 물자와 기술이 일본으로 전해져, 당시만해도 한반도나 중국에 비해 발전이 더뎠던 일본은 문명국가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한반도와 일본 사이에는 메워지지 않는 골이 생겼다.

 

일본은 1592년 조선을 침략하였고 이 땅을 황폐화 시켰다. 1910년에는 강제로 나라를 병합하였고 한국이라는 나라는 없었다. 오랜 식민지 생활을 받았다. 1945년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했고, 일본은 항복했다. 하지만 전후 처리가 깨끗하지 못했다. 일본을 밟아 누르려던 미국은 갑작스런 냉전체제로 인해 일본을 키워주느라 바빴다. 미국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체결 할 때, 일본은 세계 정세를 읽고 미국에 로비하느라 바빴다. 조약은 일본에 유리하게 작성 되었다.

 

일본정부는 19514월 미 국무부 고문 덜레스가 방문하였을 때 한국은 일본과 전쟁상태에 있지 않았기 댐누에 연합국의 일원으로 인정할 수 없다. 한국이 (강화조약의) 조인국이 되면 한국인들은 연합국과 동등한 재산청구권과 배상금을 주장할 것이다. 재일한국인이 100만 명이나 되는데 이 사람들기 과도한 배상청구를 하면 일본은 혼란을 피할 수 없다.” 라고 하면서 한국이 강화조약 체결에 참여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_ P 13

 

갑작스런 냉전체제로 한국 정치도 급변했다. 미국은 친일파 인사들을 그대로 고위관직에 앉혔다. 미국은 일본 식민지로 있었던 35년간 한국이 피해를 본 것에 대해는 눈을 감았다. 이후 한국은 한국전쟁을 겪느라 더 없이 피폐해졌다.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1965년 박정희 정권 때 한일국교가 정상화 되었다. 이때 한일 기본조약이 체결된다. 이 조약은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이 배상을 요청할 때마다 계속 발목을 잡는 조약이 되었다.

 

예를 들면 한일기본조약 제2조에는 1910822일 이전에 체결된 조약·협정은 이미 무효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은 일본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강요된 한일병합 이전의 모든 조약이 무효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체결은 합법이었으나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무효가 되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중략 청구권협정으로 일본이 한국에 제공한 무상 3억달러, 유상차관 2억달러의 성격에 대해서도 한국은 배상금이라고 주장하지만 일본은 독립축하금이라고 하여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한일 간의 재산·권리 등에 대한 청구권에 대해서도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음을 확인한다라고 하여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에 따른 한국국민들의 개인청구권 문제를 모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나마 일본군 위안부, 사할린 한인, 원폭피해자 문제 등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B·C급 전범으로 몰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한국인들에 대한 피해보상에 관해서도 일본 측은 한일청구권협정을 내세우며 한국 측에 보상책임을 떠넘겼습니다. 졸속으로 체결된 재일한국인협정은 재일한국인의 법적 지위와 민족차별 문제를 매듭짓지 못하였습니다. 어업협정에서는 독도문제를 협정문에 명기하지도 않았고, 문화재 협정에서는 협정 이후 새롭게 드러나는 일본인 개인이 소장한 한국 문화재의 환수에 대해서 한국정부에 '기증되도록 권장'한다고 하여 이후 약탈당한 문화재 환수에 적극적으로 나서가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_ P 16

 

샌프란시스코 조약’, ‘한일기본조약2가지의 조약은 일제강점기 피해보상을 요구할 때 마다 일본의 강력한 방패막이가 되었다. 그리고 2015, 박정희의 딸이자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본과 밀실협약을 맺는다. 그렇게 또 한번 한국 정부는 일본에게 커다란 방패를 만들어 들어주었다. 심지어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하였으나 사법농단과 재판거래로 소송이 무기한 연기되었다. 이후 2017,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의 밀실 협약을 파기한다. 일본은 당연히 동조하지 않았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밀실이든 아니는 이미 정식으로 발효된 협약을 뒤집는 다는 사실은 용인할 수 없지 않은가. 결국 협약을 파기했다고는 하나, 엄연히 정식 체결된 협약이기에 우리나라 정부도 더 이상 뭘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동시에 박근혜 정부의 사법거래로 인해 무기한 연기 되었던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도 다시 진행되었다. 당연히 일본기업을 상대로 승리했다. 물론 우리나라 법원에서다. 일본은 역시나 수긍하지 않았고, 그렇게 지금 한일관계는 악화될 때로 악화된 상황이다. 물론 해답은 없다. , 정확히는 남들은 다 아는 해답을 일본만 모른다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1. 국가총동원법, 조선인을 군수물자 취급하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사할린 한인, B·C급 조선인 전범6가지 문제는 시기상으로는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일본이 아시아를 넘어서 서양으로 뻗어 나가려 야욕을 펼치면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37년 중일전쟁을 치룬 일본은 1938년에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한다. 남녀노소 상관 없이 많은 조선인들이 끌려갔다. 누군가는 탄광, 또 누군가는 공장, 여성들은 정신대, 위안소, 또 어떤 사람은 포로관리원, 총알받이 등 분야 상관없이 여기저기 배치되었다. 이들 중에서 탄광이나 공장, 정신근로대 등 노동력을 착취 당한 사람들을 강제징용 피해자라고 부른다.

 

일본만 가면 학교도 보내주고 돈도 벌 수 있다고 했어. 그래서 갔는데 월급이 다 뭐야, 아무것도 못 받고 개돼지처럼 일했어. 월급을 달라고 하니까 니네들 월급은 우리가 잘 보관하고 있다. 귀국할 때 다 주겠다고 하는 거야. 일본 사람들 정직하고 착하다길래 그말만 빋고, 정말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아가면서 일을 했는데 . 99엔이 뭐야, 99엔이 뭐냐고!” 열 네살에 끌려갔던 양금덕 할머니는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후생연금 탈퇴수당 99엔을 갖고 미쓰비시에 반성과 사죄를 촉구하러 가는 길에 이렇게 외쳤습니다. _P 77

 

당시 일본은 노동자연금보험제도를 도입했다. 모든 민간기업의 종업원은 의무로 가입해야 했고, 월급에서 11%가 원천징수 되었다. 이 비용은 일본 전쟁비용으로 고스란히 조달되었다. 강제징용된 조선인 근로자들도 당연히 가입되었다. 이 보험은 1994년에 후생연금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과 별개로 일본 정부에 후생연금 탈퇴수당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일본 후생성은 본인이 신청하면 지급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지급 금액기준을 현재가치로 환산하지 않고, 당시 액면가 그대로 지급하였다. 위의 양금덕 할머니가 후생연금 탈퇴수당으로 받은 돈은 단돈 99. 우리나라 돈 100원이다. 일본 기업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한 부분에 대해서 일본의 입장은 이렇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한일 양국 간의 청구권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배상할 의무가 없다.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배상금 중에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보상금이 포함되어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개별 보상을 충분하게 하지 않고 포항제철공장(포스코),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경제개발 사업에 활용하였습니다. 따라서 국내의 청구권 수혜 기업들도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습니다. _ P 86

 

강제징용 피해자들 중에서는 사할린으로 끌려간 사람들도 많았다. 이들 중에는 사할린에서 또 다시 일본 본토 및 규슈 지역으로 끌려가는 이중징용자들도 나왔다. 조선에서 사할린으로 끌려 갔을 때 조선에 있는 가족들과 한번 헤어진 후, 사할린에서 다시 일본으로 끌려 갔을 때 또 한번 가족들과 헤어진 사람들도 많았다. 사할린에는 강제징용된 조선인과 그 가족들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광복 이후에 그들은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닌 채 그곳에 버려졌다. 당시 일본은 사할린에 거주했던 자국민은 전부 일본으로 입국 시켰지만, 조선인은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외되었다. 소련 역시 북한의 의견을 반영하여 사할린에 남아있는 한인들을 돌려보내지 않았다. 시간이 정말 많이 흐른 뒤에 겨우 겨우 사할린 한인들이 남한으로 귀국기 가능하게 되었는데, 1세대에 한정하였으며 21조로만 가능했다. 이미 사할린에 터를 잡고 가족을 만든 사람들은 졸지에 또 한번 이산가족이 되고 말았다.

 

한국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조국입니다. 조국은 어머니 입니다. 아이가 밖에서 머리가 터져서 들어오면, 어머니는 된장을 바르고 헝겊으로 싸매는 것이 급합니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어머니는 어떻게 했습니까? 사할린의 동포들이 머리가 터져서 피를 철철 흘리는데, 어머니는 냉정하게 누구의 잘못인가,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할 뿐, 자식의 상처에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이게 어머니가 할 짓입니까?” _ P 119

 

강제징용된 사람들 중 일부는 동남아 지역에서 사로잡힌 UN군 포로를 감시하는 포로관리원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전쟁 후 B·C급 전범으로 분류되어 사형당하거나 일본 감옥에 갇혔다. 당시 일본은 일본에 거주중인 조선인에게 있는 일본인 국적을 전부 박탈시켰지만, 일본 감옥에 있는 B·C급 조선인 전범들은 당시에 일본국적이었으므로 석방을 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시간이 꽤 흐른 뒤 대부분의 전범들이 석방되었다.

 

당시 전쟁포로에게 강제노역을 시키는 일은 국제조약으로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육군성은 조선인 포로감시원 교육 시 포로관리에 관한 국제조약은 일절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은 조약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 채, 국제조약을 위반하는 일본군 포로정책의 최전선애 베치되어 포로들을 직접 접촉하고 명령하고 통솔했습니다. 게다가 일본군은 계약기간 2년이 지나도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을 조국으로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들은 일본이 패전할 때까지 계속 일했습니다. 일본군 지위체계의 최말단으로서 무조건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했던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은 자기도 모르게 국제조약을 어긴 범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_ P136

 

일본군의 강요 및 세뇌로 인해 포로들에게 가혹행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라고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은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이들이 전범이 아니라거나, 친일행위를 한것이 아니다. 라고는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아닐까. 만약 이들이 어쩔수 없이 이런 행위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두둔하는 그 순간, 그건 일본에게도 그대로 통용되는 상황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버린다? 그건 아니다. 적어도 일본은 이들을 챙겨줘야 하는게 맞았다. 일본정부는 샌프란시스코조약 체결 이후 전쟁부상자와 전사자 유족 등에 관한 지원법을 제정하여 당시 일본군과 그에 준하는자, 유족들이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일본 전범들도 이 안에 포함되었다. 그렇게 일본 정부는 당시 군인들의 생계를 책임졌다. 하지만 조선인, 타이완인 등 광복 이후 일본인의 국적을 강제 박탈당한 식민지 국가 국민들은 지원에서 제외되었다. 일본에 의해 B·C급 전범이 되어버린 조선인에 대해서 일본은 한일청구권에 의해 전부 해결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친일행위를 했다는 죄로 배척당한 채 힘든 삶을 살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2006년 한국 정부에서는 이들을 전범이 아닌, ‘강제동원 피해자로 인정하며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었다는 점이다.

 

일본군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끌려가 성 노예 생활을 한 피해자들을 일본군 위안부라고 부른다. 국제법에도 어긋나는 반 인류적인 행태였지만 일본은 공식적으로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배상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서양국적의 위안부 피해자들에게는 사과와 배상을 했다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2. 일본군이 위안소 제도를 만든 이유는?

첫번째. 일본군의 점령지 여성 강간방지: 모든 전장에 위안소 설치는 불가능 했기에 실질적으로 일본군의 강간범죄는 줄어들지 않았다.

두번째. 성병 감염에 의한 전투력 손실방지: 하지만 군 위안소는 오히려 성병을 확산시키는 진원지가 되었다.

세번째. 성적위안 제공: 전쟁터라는 극한 상황에서 생활하는 군인들을 위한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정부에서 적극 추친했다.

네번째. 스파이 방지: 병사들이 민간 매춘업소를 이용할 경우 군사 기밀 발설을 우려하여 군 전용 시설로 위안소 설치

 

지옥에서 겨우 살아남아 고국으로 돌아온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겨우 살아왔지만 그녀들을 기다리는 건 또 다른 지옥이었다. ‘순결을 중시하는 가부장적 한국사회에서 위안부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라도 하면 가족들에게 조차도 버림받았다. 위안소 생활의 후유증으로 몸 성한 곳이 없었고, 정신적으로도 크나큰 상처를 받은 그녀들이었지만 한국 사회는 그녀들을 죄인이라 낙인했다. 이후 시간이 한참 흐른 1991. 고 김학순 할머님이 처음으로 위안부 피해사실을 공개적으로 증언하였다.이후 많은 시민단체들이 할머니들과 함께 일본의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20151228일 당시 박근혜 정부는 일분곤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방안을 밀실협상으로 밀어부쳤다. 20161월 일본 의회에서 아베총리는 지금까지 발견된 자료 중 강제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기술은 없다.’라고 하였다. 그렇게 한국 정부는 피해자인 자국의 할머니가 아닌, 가해자인 일본의 손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3. 그리고..

일본인들은 가해자로서의 기억은 멀리한 채 전쟁의 희생자, 피해자라는 의식에 갇혀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전범들을 심판한 도쿄재판을 지켜본 일본 국민들은 전쟁에 대한 책임은 군인을 중심으로 한 국가 지도자에게 있고 자신들은 국가 지도자들의 잘못된 정책의 희생자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전후 냉전체제가 강화되는 분위기 속에서 미국이 일본을 반공의 교두보로 삼고자 피해 국가들과의 문제 해결을 재촉하면서 일본국민들은 과거 일본의 침략과 전쟁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고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했습니다. _ P 18

 

일본 국민들은 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는 지를 알지를 못 한다.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정권에서 역사왜곡 교과서를 이용하여 제대로 된 역사를 알려주지 않는 이유도 있다. 일본인들에게 제2차 세계대전은 아시아·태평양 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닌, 아시아 해방을 위한 전쟁이며, 자기들은 이 전쟁에서 미국에게 원자폭탄을 맞은 가엾은 피해국가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아베가 미친듯이 바꾸려고 하는 헌법 제 9, 일명 평화헌법. 이에 반대하는 일본 국민들. 헌법개정을 반대하는 일본 국민들이 한 결 같이 하는 말은 전쟁은 두 번 다시 일어나면 안되기에 반대한다. 그냥 들어도 맞는 말이고 두번 들어도 맞는 말이지만, 이 안에는 우리와는 조금 다른 생각이 깔려있다. 본인들이 일으킨 전쟁의 참상이 너무 참혹해서 평화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들이 원자폭탄을 맞았던 전쟁의 피해자였기 때문에 평화를 원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뼛속까지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20131월 보수정당 소속의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는 폴란드 방문 당시, 42년 전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가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들을 기리는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한 것 처럼, 바르샤바의 유대인 게토 묘지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폴란드 사람들은 독일을 향해 말했습니다. 너무 계속 사과하는 것 아니냐고. 메르켈 총리의 대답은 너무나 간단했습니다. “당신들이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계속할 것입니다. 나치의 범죄는 무한책임이기 때문입니다.” - P 20

 

2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에 대해 일본과 상대적으로 비교되는 나라가 있으니, 바로 독일이다. 피해국인 한국이 나서서 한일협정이라는 정말 좋고 두꺼운 방패를 가해국 일본에 가져다 바치며 지금까지 삽질하는 동안, 똑같이 가해국이던 독일은 피해국을 찾아다니며 끊임없이 사과를 하고 또 사과를 하고있다.

 

이 책이 출간된 지 3년이 흘렀 것만, 그 때와 지금 뭐 하나 달라진 게 없다. 모든 문제는 지금까지도 계속 한일기본조약에 의해 막혀있고, 일본은 그때 보다 훨씬 더 우경화 되었다. 우리나라는? 겉은 한국인이지만 매일 광화문 앞에서 미국 성조기를 흔들며 일본을 대변해주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다. 참 이상한 나라다.

2013년 1월 보수정당 소속의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는 폴란드 방문 당시, 42년 전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가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들을 기리는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한 것 처럼, 바르샤바의 유대인 게토 묘지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폴란드 사람들은 독일을 향해 말했습니다. 너무 계속 사과하는 것 아니냐고. 메르켈 총리의 대답은 너무나 간단했습니다. "당신들이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계속할 것입니다. 나치의 범죄는 무한책임이기 때문입니다." - P20

"한국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조국입니다. 조국은 어머니 입니다. 아이가 밖에서 머리가 터져서 들어오면, 어머니는 된장을 바르고 헝겊으로 싸매는 것이 급합니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어머니는 어떻게 했습니까? 사할린의 동포들이 머리가 터져서 피를 철철 흘리는데, 어머니는 냉정하게 ‘누구의 잘못인가,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할 뿐, 자식의 상처에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이게 어머니가 할 짓입니까?"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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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왓 이런 통계가 있었다니!! 제 독서량도 알게되서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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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 셀프트래블 - 2019-2020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정승원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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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가까운 외국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흔히 알고 있는 동해바다 건너에 있는 섬나라가 아닌, 유럽이다. 어떻게 유럽이 가깝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했던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러시아 ! 북한 저 위에 있는 곳 러시아는 어마무시한 대륙을 차지하는데, 서쪽 끝은 유럽과 맞닿아있고 동쪽 끝은 북한과 맞닿아 있다. 북한과 맞닿아 있는 그 동쪽 끝이 오늘 소개할 블라디보스토크 이다.

 




연해주에 속하는 블라디보스토크는 꽤 머나먼 과거에는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였던 빛나는 땅이자약 백년 전에는 존경하는 우리 조상들이 독립운동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물론 가슴 아픈 역사도 있다똑같이 약 백년 전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수 많은 독립운동가 및 그 가족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했던 도시이기 때문이다먼 나라의 땅이라 생각했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는 이처럼 우리와 깊은 인연이 있는 곳이다.



 

셀프트래블 블라디보스토크목차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아무래도 러시아 특히 공산권 국가(..)는 생소하다보니 다른 여행서보다 조금 더 주의 깊게 살펴 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정승원님은 앞서 출간했던 셀프트래블 베트남을 출간했었는데, 그 책보다 블라디보스토크 편이 훨씬 공을 많이 들인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베트남 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여행지로써 크게 각광받는 장소는 아니였으니까..

 

-러시아는 안전한가요?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소련) · 사회주의 국가과거 러시아의 이미지다. 소련이 해체되기 전 까지 사회주의 국가였다.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는 민주주의를 채택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는 북한이라는 선례가 있기 때문에, 과거에 사회주의 국가였던 러시아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러시아도 유럽이라는 인식 때문인지 스킨헤드 범죄(러시아 백인 우월주의)도 일어나는 곳이다. 저자에 말에 따르면 이러한 범죄들은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 들었다고는 하나, 관광지를 벗어나거나 혼자 으슥한 곳을 다니는 것, 밤 늦게 현지인들이 없는 곳을 다니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 한다.



이 책은 위와 같이 러시아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궁금해하는 주요 질문부터 시작해서 러시아 여행을 위해 꼭 필요한 정보 및 어플을 소개한다. 무엇보다 길 안내 관련해서는 구글맵스와 함께 사용해야 할 어플 2GIS가 있다는 것을 콕 집어주었다. 외국 여행을 위해 지도 및 길 안내는 구글맵스 하나면 충분한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 러시아는 조금 다른가 보다. 2GIS는 러시아 지역에 최적화 되어 있는 길안내 어플이라고 하니 필히 다운받아야 할 듯!

 


이 책에서 안내하는 러시아 대표 지역은 메인인 블라디보스토크와 함께 우수리스크, 하바롭스크, 이르쿠츠크 총 네개의 도시가 있다. ‘러시아의 샌프란시스코를 표방하며 맛있는 해산물 요리가 넘쳐나는 곳 블라디보스토크, 항일운동 및 한인들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우스리스크, 진짜 러시아의 유럽을 보고싶다면 하비롭스크, 바이칼호수의 청정 자연을 느끼고 싶다면 이르쿠츠크 를 선택하면 된다.


국내에서는 비싼 돈주고 사 먹어야 할 해산물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저렴하게 맛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킹크랩이 정말 너무 먹고 싶다 !!!!

 

올 초에 블로그 이웃이신 효꾸루님 여행기에서 킹크랩 먹방 리뷰를 보고 더욱 킹크랩이 간절해졌다 ㅠㅠㅠ 진짜 킹크랩 하나 먹는 것만으로도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나고 싶었을 정도였달까 흑흑 . ! 개인적으로는 블라디보스토크는 해산물만 유명한 줄 알았더니, 뭔가 양식요리? 케이크나 이런 것도 정말 유명한 것 같았다. 다들 일본이나 중국으로 먹방여행을 계획하는데, 왠지 블라디보스토크도 먹방여행이 가능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먹방여행도 좋지만.....역시 나의 여행 취향은 역사기행이다 보니, 우수리스크를 놓칠 수 가 없다. 연해주 지역 항일 독립운동의 대부였던 페치카 최재형이 있던 곳 우스리스크. 그는 어릴적 비천한 신분으로 연해주로 이주해서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하지만 자수성가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베풀 줄 알았다. 자기 집에 찾아오는 한인들을 따스히 보듬어 주었다. 한인들을 위해 각종 학교를 설립했고 , 각종 항일단체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했다. 많은 한인들은 그에게 별명을 붙어주었다. 언제 찾아와도 따뜻한 난로처럼 보듬어준다고 하여, 러시아어로 난로를 뜻하는 페치카’. 라는 별명을 ..

 

우리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건은 알고 있지만, 그 뒤에 페치카 최재형이 있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최재형은 연해주 지역 항일의병 단체인 동의회를 결성하여 진두지휘 했으며, 당시 항일의병계에 엄청난 타격을 입혀 동료들에게 버림받았던 안중근을 품었고, 함께 단지동맹도 결성했다. 이후 본인의 집에서 안중근이 사격 연습 하는 것을 지원하였고,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 한 이후 수감되었을 때에는 직접 변호사를 선임하여 그를 돕기 위해 동분서주 했다. 그리고.. 그는 이 곳에서 일본인 경찰의 손에 명을 달리했다.

 

물론 최재형 선생 외에도 여러 독립운동가들이 이 땅에 있었다. 이상설이 있었고 이범윤이 있었다. 이들보다는 덜 알려진 문창범, 김립 등이 있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그들이지만, 이미 잊혀져 버린 그들의 역사가 바로 이 곳에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2시간이라는 짧은 비행시간으로 갈 수 있는 유럽,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이 곳 여행을 계획한다면 하루 쯤은 우리 역사의 자취를 보듬어가는 여행코스도 좋지 않을 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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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 가자고요
김종광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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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내가 주로 읽는 책 장르는 역사·문화가 80%. 나머지 20%가 여행서·에세이·소설. 그나마도 소설의 경우 역사소설을 비롯하여 미스테리나 추리, 환상문학 등을 주로 읽는 지라 이른바 문학소설이라고 하는 류는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다. 아 물론! 그렇다고 문학소설을 한번도 안 읽어 봤다고 하기에는, 한창 공부를 했어야 할 중·고등학교 때는 꽤 읽어 보긴 했다. 다만 기억이 안날 뿐. , 머리통이 커지고 나서는 문학소설과 완전 담을 쌓았기 때문에, 처음 읽는 거라고 해야 하는게 맞을 지도.


 

그런 내가, 출판계 인싸작가정신 박대리님(ㅋㅋㅋ) 영업에 홀려 문학소설, 그것도 농촌을 바탕으로 하는 놀로 가자고요를 구입하였다. 내 스스로 문학소설을 구입하다니! 호기롭게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일단 작가님 이름을 보니 완전 초면! 이라 생각했는데, 이게 또 완전 초면은 아니었더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예전에 역사소설(팩션) 왕자 이우를 구입한 적이 있는데, 그 소설을 쓴 작가님이 었다. 물론 이 책은 지금도 친정집 책장에 고이 꽂혀있다. 뭐랄까, 역사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막연하게 역사서나 혹은 진짜 관련 장르의 소설만 쓸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분의 작품들을 보아하니 그런 건 전혀 아니었나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이 책을 세 번 정독했다. 처음 이 책을 다 읽고 순간적으로 느낀건 뭐지? 이렇게 읽으면 안되는 건가? 왜 남는게 없지?” 였다.

너무 오랫동안 역사서나 관련 책을 읽으며 익숙해진 읽는 방식이, 이런 소설을 읽을 때에는 완전 불필요한, 아니 아예 책을 읽는 데 방해가 되었던 거다.

두 번째 정독. “아 농촌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남아낸 거구나”. 그리고 다시 세 번째 정독. “이 책은 농촌 이야기지만, 그 안는 지금이 남겨 있었네?”

 

선거철의 시끄러움은 도시만의 자랑이 아니었다. 오히려 농촌 더 시끄러울 수도 있었다. 색깔도 다양한 선거운동 차량이 중략 줄줄이 이어지는데, 집들이 대게 도로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고 늙은이들 귀가 대체로 어두우니 스피커 음량이 무지막스레 높았다. - P 162

 

요새 가장 만만한 타작거리가 이태백이란다. 스카이를 나온 젊은 놈이 왜 시골에서 어영부영하고 있는가. 모자라고 부실하고 능력 없고 그러니 도시에 못 살고 기어이 내려와 농촌 백수로 빌빌대는 거지 ……. 형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암튼 그러니 이태백들이 다 수도권에 있는 거다. 촌구석에는 백수 짓도 못한다. 좀 있어보이려고 해도, 말질에 된똥 쌀 판이니 배겨날 수가 있겠느냔 말이다. - P 190

 

내가 벌써 몇 년 독잰가! 두환이 경력은 넘었고 승만이 경력에 도전 중이구먼. 누가 이놈의 이장질을 하려고 해야 말이지라고 말하고 싶지만, 흐으, 실은 선거서 당선이 되어버렸네. 중략 민주주의로 뽑아놓은 시장 군수 것들 다 감옥 가 있는 거 보면, 민주주의란 것도 빛깔 좋은 호박댕이여. 그래도 민주주의밖에 방법이 없다니께 따르기는 하는디 - P 199 ~ 200

 

그렇게 많이 죽었는데도 솟값이 안 오른다니?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 떠들던 어떤 박사 말대로, 그 정도 죽어서도 솟값이 안 오를 만큼 이 땅에 소가 많은 것일까. 그렇게 한국 소가 많다면 미국 소는 왜 또 수입하는 걸까? - P235

 

도시에서 바라보는 농촌은 뭔가 여유롭고, 한적해 보인다. 큰 사건 없이 조용하게, 푸르른 산과 나무를 벗 삼아 살고 있는 그런 곳이다. 물론 그 속에서 농사 짓는 어려움, 하루 종일 뙤양 볕 아래 땀 흘리고 허리 한번 못 피는 그런 삶을 살고 있지만 말이다. 적어도 도시에서 바라보는 농촌이라고 불리우는 그 곳에 대한 이미지는 딱 저렇게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조용할 것 만 같은 농촌에서, 실은 도시에서 보이는 그런 문제들이 속속들이 나타난다는 점이 신기하다면 정말 신기했다. 뉴스에서 쉽게 볼 법한, 늘상 우리 옆에 있는 그런 사회 문제들이 농촌소설이라는 방패막이 안에 들어와 제 각각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학창 시절 문학시간에 배우던 아니, 그냥 머리속으로 외우기만 했던 소설 속 현실 풍자라는게 이런거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이 책을 읽는 내 제일 거슬렸던 사회 문제 (....라고 생각되는 것)은 바로 소설 전반에 나오는 아이와 아이 부모의 태도였다.

 

어떤 노인도 소리 질렀다. "먼저 사람이 돼야지, 사람이! 아무리 장기 잘 두면 뭐해. 사람이 안 돼먹었는데!"

무서웠다. 울면서 뛰쳐나갔다. 아빠가 노인들에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는 나를 뒈지게 야단쳤다. - P 37

 

엄마도 분해서 소리쳤다. "다시는 거기 가지 마! 아니, 내가 못가게 할 거야! 그깟 놈의 장기 끊어. 그딴 거로 애를 왜 데리고 다녀서 애를 욕먹게 해!" - P 39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에 푹 빠져 있던 아들 녀석은 손님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녀석의 머리통을 툭 건드리며, 인사드려야지, 했다. 녀석은 아이씨, 할 뿐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좋게 말하자면 숫기가 없고 나쁘게 말하자면 버르장머리가 없다. - P 251

 

초등학생이 되자 당연하게도 힘이 세졌다. 녀석이 인정사정없이 날리는 주먹이나 발길질에 얼굴이나 사타구니 같은 데를 맞으면 무척 아팠다. 아내는 아이 버릇 나빠지게 왜 맞아주느냐고 힐난하곤 했다. "애도 스트레스를 풀어야 할 거 아냐. 아빠 말고 누가 맞아주겠어" - P 277

 

읽는 내내 뭐지?’ 했다. 버릇이 없어도 너무 없는 아이와 그 부분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부모. 요새 학교에서 공부,공부,공부만 외치기 때문에 인성교육을 안한다는 건 워낙 잘 알고 있는 부분이었는데, 가정교육은? 아이의 그런 태도보다, 그 태도에 대해서 오히려 가만히 두거나 고치려 하지 않는 부모의 태도에 놀랐다. 심지어 아이의 태도에 맞장구 치는 느낌이 들어서 황당하기도 했다. 요즘 사회 전반에 나타나는 무개념 부모를 그리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이 책 후반부에 실려있는 노태훈 문학평론가의 작품해설을 읽고 나서 조금 당황했다.

 

'아이'라는 인물형은 특히 김종광이 사랑해 마지않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이 인물들에게서 그는 농촌의 '정서' 같은 것을 발견하는 듯 하다. 답답하고 고집스럽다가도 또 자유롭고 분방하게 행동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동시에 지닌, 그래서 늘 양가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농촌의 풍경과 닮아 있다. 김종광의 '아이'는 늘 '노인'과의 관계속에서 성격을 형성하고 성장을 경험하는데 그것이 단순하게 교훈적으로 귀결되지는 않는 다는 점이 특징적이라 할 수 있겠다. - P 328

 

문학과는 친하지 않는 나여서 그런걸까. 아니면 아직 문학을 바라보는 시각을 잘 몰라서 그런걸까. 아니면 단순한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시각차이일까.

ㅠㅠㅠㅠ........다시금 문학이 어려워졌다. 역시 문학은 어렵.....ㅠㅠ , 평론가들이 말하는 책에 숨어있는 메세지(?)를 읽어내기에는 실패했지만,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에게 가까운 농촌, 할머니댁이 계속 오버랩 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책은 진짜 농촌소설이구나. 싶었다.

 

자식 많은 늙은이는 꿈에도 상상 못 했던 주차장 건설 공사를 벌여야 했다. 마당이 넓다고 소문난 집도 마당을 더 넓혀야 했다. 주차장 만들고 마당 넓히는 김에 아예 집을 새로 지어버리는 집이 속출했다. - P81

 

내 친가는 강원도 춘천, 외가는 전라도 영광이다. 아무래도 지역이 지역이다 보니 친가는 밭농사, 외가는 논농사가 주였다. 이 소설 배경인 농촌은 아무래도 외가쪽과 비슷하다. 외가쪽을 빗대어 말하자면 농번기 때 할매,할배는 언제나 바쁘다. 우리 엄마, 아빠를 비롯한 자식들은 나이 드신 부모님이 농사를 짓다 몸이라도 상하실 까 전전긍긍하는 모습도 여러 번 보았다. 우리집은 시골에선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 있지만, 삼촌들은 한 시간 거리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시간되는 한에서는 자주 영광에 내려가 일을 도우는 모습도 종종 보았다(사진으로^^..ㅋㅋ). 그리고 어느 순간 할매집이 바꼈다. 분명 옛날 기와집이었는데.....현대식으로 바뀌었다. 화장실도 2개가 되었고, 심지어 침대까지 생겼다(이 침대는 외가집가면 언제나 내 차지였..). 마당도 차를 가져온 자식들이 주차를 할 수 있도록 넓어 졌다. 심지어 외가집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집들도 현대식으로 바뀌었다. 이제 농촌도 옛날의 농촌이 아니라 현대식으로 재탄생한 농촌이랄까? 이런 농촌의 변화가, 내가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보았던 할매집을 포함한 그 동네의 변화가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서 정말 놀라웠다.

 

막연히 문학소설은 어렵다, 읽어도 무슨말인지 모르겠다, 그런 느낌이 늘었었는데.. 정작 읽어보니 그렇게 막 담을 쌓을 정도 까지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이제 일반 문학소설도 조금씩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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