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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워 2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13-2018 ㅣ 골든아워 2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국종 교수님의 『골든아워』 두 번째 권. 읽기 까지 너무 망설였다. 『골든아워』 첫 번째 권을 읽고 난 뒤 내 마음 속에 남은 건, 이국종 교수님을 비롯한 중증외상센터 의료진에 대한 안타까움, 병원 정치에 대한 역겨움, 더 살릴 수 있었으나 살리지 못한 목숨들에 대한 슬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을 환경에 대한 절망 등 부정적인 감정만 남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골든아워』 두 번째 권을 읽기 시작한 건, 이국종 교수님이 얼마나 힘들게 중증외상센터를 지키려 했는지, 희망이 보이지 않음에도 이 책을 집필했는지, 조금이나마 그 이유를 알 것 같아서였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0/0426/pimg_7440571782526188.jpg)
-무슨 일입니까? 왜 강하하지 않습니까!
-상황실과 관제탑에서 계속 경고가 들어오고 있어요!
사고 해역 상공은 해양경찰이 관할하고 있었고, 다른 헬리콥터들의 진입은 충돌 사고 위험을 높인다며 밖으로 물러나라는 지시였다. 하늘 위에는 우리뿐이었으므로 나는 그 명령이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직접 상황을 설명하려 했으나 불안정한 무선에서는 영공에서 나가라는 지시만 계속 튀어나왔다. P 067
가라앉는 배 주위를 해매다 항공유가 바닥을 보였다. 인근의 진도나 목포의 해양경찰 기지 또는 공항에서 급유를 받으려고 했지만 모두 ‘공식적 절차’가 미리 통보되지 않아서 불가하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중략)
-아니, 목포에 공항도 있지 않습니까? 바다를 수색해야 할 우리가 왜 산악지대까지 갑니까?
서신철이 씁쓸하게 말했다.
-행정 절차가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P 070
우리가 다시 바다로 날아들었을 때 여객선은 함수 부분의 푸른 바닥만 힘겹게 물 위로 내놓고 있었다.
-교수님, 여전히 사고 해역에서 빨리 나가라는 명령만 합니다. 더는 비행이 힘들 것 같아요. P 072
대답은 한결같았다. ‘윗선으로부터 단지 이곳에 가라는 말만 전해 들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들은 통일된 지휘 체계 안에 있지 않았고, 누가 자신들을 지휘하고 있는지 조차 몰랐다. 각자 소속된 조직 상부에서 내려오는 파편적인 집합 명령에 따라 모인 것 뿐이었다. 모두들 위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휴대전화를 귀에 달고 있었다. P 077
-정교수, 이게 말이야. 정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선체 내에 있었다면, 내가 바로 그 위를 비행하고 있었는데 배로 들어가든 부수든 간에 뭔가 사람들을 끄집어내려고 했을거 아냐? 한/미해군이 모두 출동했다고 들었는데 그 선박 주위는 정말 조용했다고. 어느 정도 구조가 된 거 아니었어? P 082
세월호 침몰 당시, 쌍용훈련을 마치고 미7함대로 복귀하던 USS 본험리처드함은 최정예 해상 구조대원과 구명보트까지 장착한 특수 헬리콥터 MH-60 시호크 몇 대를 사고 해역으로 신속하게 출동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사고 해역 영공 진입 불허 방침으로 회항했다고 들었다. 나는 우리와 같은 시간에 사고 해역을 비행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미 해군의 시호크가 왜 보이지 않았는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알게 됐다. 한국 정부는 사고 다음 날 그들에게 사고 해역으로부터 17마일(약27킬로미터) 떨어진 해역을 배정했고, 생존자 구조 임무가 아닌 사체 수거 임무를 맡겼다고 했다. P 094
2020년 4월 16일, 6주기를 맞이한 세월호 참사. 자연재해도 아닌 인재로 일어난 대참사였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이며, 정말 뼈를 씹어도 분에 풀리지 않을 정치인의 탈을 쓴 짐승들이, 그리고 기레기들이 지금까지도 유린하고 있는 사건이다.
엄청 큰 파도가 몰아쳤거나 태풍에 휘말리는 등 정말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였다면 이 정도까진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인재였다. 그것도 경색된 정치,행정권 수반과 자극적인 기자를 쓰는 기레기들이 빚어낸 인재였다. 선내에 있던 희생자들이 들었던 말은 “기다리라”, 그리고 속보로 접한 국민들이 들은 말은 “전원 구출” 이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말하면 약 3백여명이 희생되었다.
이국종 교수님을 비롯하여 수 많은 의료진이, 한/미해군들이 세월호에 있던 탑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사고해역에 도착했다. 하지만 ‘공식절차’대로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윗선’의 지시가 없었기 때문에, 구조를 하려고 도착했던 사람들은 전부 사고해역 밖으로 밀려났다. 꽤 오랜시간 세월호는 바다에 떠있었고, 나를 포함하여 많은 국민들이 생중계로 그 상황을 보고 있었다. 누가봐도 구조가 가능해보였고, 실제로 “전원 구출”이라는 속보가 급작스럽게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우리 모두가, 실시간으로 보고있던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다.
그들을 구하지 못한 이유가 강력한 태풍 같은 피치못할 사정이 아니라, 그저 ‘윗선’의 지시가 없어서, ‘윗선’에게 보고할 자료를 만드느라, ‘절차’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만큼 우리나라가 얼마나 경색되었던 나라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쓰디쓴 사례인 것이다. 한 나라를 올바르게 이끌어가야 하는 정치/행정력이 이렇게 경색이 되어 있는데, 일반 사조직들이야 당연지사.
-교수님, 외상센터가 바쁜 줄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이렇게까지 시간 외 근무를 많이 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우리 기관이 노동부에게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진퇴양난이었다. 외상센터의 일은 줄지 않았고 줄일 수도 없었다. 나는 병원으로 오는 중증외상 환자의 수를 조절할 수 없고 병원 문턱을 넘어와 생사의 기로에 선 환자를 전원시킬 수도 없었다. (중략) 병원의 많은 부서들이 인력 부족에 시달렸고 부서 인원을 늘려달라는 요청은 동시다발적으로 올라가므로 외상센터에만 더 많은 인원을 배정해주지 않았다. P 117
새 정부는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고 나섰다. 각종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정부의 정책 방향은 외상센터에도 영향을 미쳤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의사들의 업무 공백을 메워주는 전담간호사들의 근무시간도 주 52시간으로 묶여버렸다. 김지영은 담당간호사의 근무일정표를 더 이상 짤 수 없다고 비명을 질렀다. (중략) 김지영이 극도로 어두운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전담간호사 한 명이 또다시 유산해 2주간 병가처리를 해야한다며 승인을 요청해왔다. P 295
정부에서 하는 여러 정책들, 누군가에는 좋은 정책일수도 있지만, 누군가에는 이해할 수 없는 정책도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대표적이다. 많은 기업/근로자들이 반발했다. 저녁이 있는 삶, 그 누가 싫어하겠냐만은 현실이 그렇지를 못했으니까(물론 공무원/공기관은 제외). 인력부족은 당연지사였다. 그렇다고 인력을 충원한다? 대부분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비용에 민감하기에, 인력충원은 정말 ‘개나 줘버리’는 이야기다.
혹자는 <주5일제>를 예를 들며, 이렇게라도 시행을 하면 언젠가는 주 52시간도 정착될거라고 이야기 한다. 실제로 나 학교 다닐때 해도 주 5일제가 왠말? 주 6일제였다. 토요일은 4교시라는게 얼마나 행복했는지! 고등학교 다니던 중간에 주5일제가 시작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오랜시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주6일을 하는 회사들도 있다. 생각보다 많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그 정책을 뒷받쳐주는 환경이 되어야만 제대로 굴러간다. 아쉽게도 이 나라는, 위 이국종 교수님의 외상센터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정부가 좋은 정책을 내놓으면, 그에 따른 부차적인 해결방안등이 따라줘야 한다. 그리고 이를 잘 지킬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은 당파싸움을 위해 서로의 지지층을 끌어모아, 좋은 정책에 힘을 실어주는게 아니라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나라다. 그래서 주 5일제가 아직까지도 자리 못 잡는 회사가 많다. 아니 정확히는 공식적으로는 주 5일을 지키고 있으나, 그 속을 들어가면 편법으로 주 6일이 밥먹듯이 일어난다. 분명 우리나라는 주 52시간만 근무할 수 있다고 법적으로 못 박았으나, 아직까지 온갖 편법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한 지방자치 단체에서 1,800억 원을 들여 대규모의 안전체험 테마파크를 지어놨다. 하루 평균 입장객은 350여 명, 연간 적자 규모는 15여억 원이라고 했다. 1,800억원이면 중증외상센터 전체 건립비용을 상회한다. 소방항공대 두 세곳을 창설할 수 있는 금액일 것이다. 세월호와 중증외상에 대한 이슈가 불거진 이래로 안전과 외상을 테마로 수 많은 것들이 벌어지고 있으나, 나는 그 핵심가치를 알 수 없었다. P 259
이국종 교수님이 설립하려 한 중증외상센터, 이 센터는 이 나라에 꼭 있어야 하는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병원, 지자체, 정부기관 세곳이 합하여 예산이 많이 든다고 비난을 가한다. 그런데 비난을 가하면서도, 어떻게든 유지하라고 압박을 한다. 유지를 하려면 그만큼 예산이 들어가는데, 예산은 주지않고 유지를 하라고만 하니 이국종 교수님을 비롯하여 외상센터에서 일하는 의사/간호사들만 죽어난다.
참 웃긴게, 어떻게든 예산을 짜르지 못해서 안달이 난 그들은 연간 적자 15여억원을 부르는 안전 체험 테마파크를 설립했다. 누가봐도 전시행정이다. 자기를 뽑아준 지자체 시민들에게 보여주기식으로 만든 테마파크다. 시민들이 고혈이 담긴 1,800억원의 세금을 써서 만든, 연간 15여억원 적자를 내는 테마파크. 이런 곳은 지자체별로 참으로 많으니, 어디라고 콕 집어 말하기도 어렵다.
정말 필요한 시설은, 국민들의 생명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은 중증외상센터는 돈을 많이 쓴다고 공격하고, 정작 전시행정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 우리나라.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나는 단 한번이라도 중증외상센터의 세계적인 표준을 한국에 심어보고 싶었다. 아주대학교병원 중증외상센터가 문을 닫고 한국의 중증외상센터 사업이 종료되고 나서도, 다음 세대 의사들 중 누군가 다시 중증외상센터를 만들어보려 할 수도 있다. 그때를 위해 우리가 남겨놓은 진료 기록들이 화석같이 전해지기를 바랐다. P 303
이 나라가 변하지 않는다면, 이국종교수의 말처럼, 다음 세대 의사 중 누군가가 중증외상센터를 만들려고 해도 아마 성공하지 못하리라. 정말 씁쓸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