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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 1888~1897
제임스 S. 게일 지음, 최재형 옮김 / 책비 / 2018년 11월
평점 :
선교사 제임스 S. 게일, 그는 언더우드, 헐버트와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한영사전’을 만들었다. 또 우리나라 최초로 서양 문학을 우리말 번역하여 출간했고, 그 반대로 우리 문학을 서양에 번역하여 출간하기도 했다. 그렇게 조선을 사랑했고, 아꼈다. 그리고 조선의 방방곡곡을 유람했다. 조선의 일상을, 문화를, 몸소 느끼기 위해 오랜시간, 그것도 아주 자주 조선의 끝과 끝을 유람했다. 그 기록이 바로 이 한 권의 책이다.
이 책은 어떤 관점으로 읽느냐에 따라 감상이 달라진다. 그저 찬란한 역사 위 조선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불편할 지도 모른다. 반대로 조선의 그림자를 알고 있다면, 이 게일이 바라본 조선의 모습에 놀랄 것이다. 조선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너무 정확하게 짚어내는 그의 눈이 말이다. 그리고 조선은 왜 그렇게 밖에 살 수 없었을까, 대체 조선의 위정자들은, 조선의 양반네들은 왜 미래를 내다보려 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모락모락 피어날 것이다.
1. 게일이 바라 본 조선과 상놈
조선에 사는 외국인에게 상놈들보다 더 흥미로운 존재가 또 있을까? 그들만이 오랜 기간 유교 문화가 지워버린 한민족 고유의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조선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유학을 배우기 시작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고유의 특성을 잃고 매우 인위적으로 변해갔다. 이들은 그러한 스스로를 극복하려고도, 또 새롭게 바꾸려고도 하지 않는 고대의 유령같았다. 하지만 상놈들은 그러한 속박에서 자유로웠고, 어떤 면에서는 이 땅,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가진 가장 흥미로운 특징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P 066
조선에는 짐수레같이 바퀴 달린 운송 수단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가축조차 짐을 지고 갈 수 없는 길이 많아서 결국 나라의 모든 힘쓰는 일은 상놈의 두 어깨가 담당했다. P 076
조선에서 오랜 시간 고생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인내심을 기를 수 있는데, 이왕이면 빨리 인내심을 기르는 편이 확실히 자신에게 좋다. 조선에서 여행을 하면서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조선 사람들에게 시간을 주는 것이다. 그들이 그들 방식대로 인생을 살아가도록 내버려둬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재촉하고 닦달해봤자 아무런 변화 없이 느린 그대로일 것이며, 그들이 당신을 덜 사랑하게 할 뿐이다. 정말 신기한 것은 이렇게까지 느려터진 나라가 빨리 하라는 의미의 말은 엄청많다는 것이다. Ossa, quippe, ullin, soki, balli, patpi, chiksi, chankam, soupki, nalli, nankum(원문표현; 어서, 급해, 얼른, 속히, 빨리, 바삐, 즉시, 잠깐, 쉽게, 날래, 냉큼)등은 우리가 매일 듣고 말하는 수 많은 말들 중 일부일 뿐이었다. P 102
조선의 옷가지들 중 가장 황당한 것은 바로 바지였는데, 입고 있을 때는 뭐 그렇게까지 놀랍지는 않았다. 하지만 빨아 넣어놓은 그 바지의 라인을 보고 있노라면 그 거대함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조선 사람들이 입는 이 평범한 바지의 폭이 어느 정도인고 하니 극동 지방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불상을 덮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속옷으로 입혀도 될 정도였다. P 171
연날리기는 조선사람들이 특히 뛰어나게 잘하는 놀이인데, 새해 무렵 서울의 위쪽 하늘에서 떼를 이뤄 경쾌하게 춤을 추거나, 신기할 정도로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연들로 생기가 넘쳤다. 이들의 연은 날개나 꼬리 없이 네모난 조그마한 것이었는데, 날아가는 모양을 보면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졌다. P 210
저녁이 되면 조선 사람들은 Angwangi(원문표현; 야광귀)라고 부르는 산타클로스를 막기 위해 문단속을 철저히 했다. 양광이는 저 하늘 위에 살면서 새해 선물을 가져간다는 늙은이다. 동방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조선 사람들은 신발을 문 밖에 벗어두는데, 새해로 넘어가는 그믐날 밤 양광이가 내려와 자기가 다녀간다는 기념으로 신발을 신고 가버린다는 것이었다. P 212
게일은 조선의 방방곡곡을 다니며 수많은 조선의 모습을 보았다. 그의 눈에 비친 조선은 참으로 불합리했다. 그럼에도 그는 조선을 이해하고, 사랑했다. 특히 게일은 사랑한 조선의 모습은 다름아닌, 조선에서 찬하다고 칭해지는 ‘상놈’의 일상이었다.
게일에게 조선의 상놈은 신비한 존재였다. 그리고 놀라운 존재였다. 그저 평온해보이다가도, 길거리에서 싸움을 하는 상놈을 보면 한 사람이 화가 저렇게 크게 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싸움이 끝나자 다시 평온하게 돌아오는 모습에 다시 한번 놀랐다. 무엇보다 상놈은 아무것도 안하는, 게으른 양반과는 달리 땀방울을 흘리며 노동을 하고 하루하루를 열씸히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양반에 비하면 배운게 없는 상놈이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규칙이 있었고 그 규칙안에서 움직였으며, 자신이 모시는 주인에 대해 신의를 지켰다.
가령 상놈에게 멀리 떨어진 지역에 있는 사람에게 100달러를 전달하라는 심부름을 시킨다. 심부름을 완수하면 그 댓가로 1달러를 준다고 한다. 게일의 눈으로 보면, 이런 경우 100달러를 먹고 도망가도 잡지를 못하는데, 이 상놈이라는 사람들은 끝까지 심부름을 완수하고 그보다 훨씬 적은 대가 1달러를 감사하게 받아간다.
게일에겐 이렇게 여러 얼굴을 가진 상놈이 신기하면서도 놀라웠고, 존경스러웠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게으름 피우는 양반과는 달리 그들이 없으면 조선은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야말로 상놈은 제일 대단한 존재라 생각했다.
2. 양반과 유교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공자께서는 Anja(원문표현; 안자)에게 극도로 청빈한 삶을 살 것을 명하셨는데, 청빈한 삶 속에 도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이었다. 공부를 많이 한 조선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어떠한 동요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반면, 어떤 한자를 쓸 때 점을 두 개 찍는 게 맞는지, 네 개 찍는 게 맞는지 하는 문제는 너무나 중요해서 모든 이들의 관심을 단번에 집중시켰는데, 이놈의 글자 모양이 뭔지 원래 논의하던 주제나 글자가 지닌 뜻은 완전히 잊히기 십상이었다. P 031
갑자기 모퉁이에서 멋을 부린 퉁퉁한 두 양반과 마주친 것은 모든 조선 사람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나를 뒤덮고 있던 때였다. 그들은 나를 아주 얕잡아 보면서 ‘너 같은 짐승이 사는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를, 또 ‘내가 어디로 기어가고 있는 중인지’를 물었다. 순간 혈압이 올랐고, 나를 이렇게 불러 세운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그들은 내가 이렇게 대응하는 것이 신나는지 새로운 놀림감이 생겼다고 좋아하는 것 같았다. P 148
우리가 대답하자 그는 놀란 눈빛을 보내며 “여기에서 보면 어느 쪽에 나리들의 나라가 있나요?”하고 되물었다. 우리가 지구 중심을 가리키자 원님은 아주 큰 충격에 빠졌고 혹시 우리가 땅속에 사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곳은 지구 반대편 쪽이라고 설명했는데, 이것은 그가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완전히 넘어버리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급히 주제를 바꿔 안전하게 배웅해줄 테니 얼른 마을을 떠나라고 했다. P 180
서양에서는 한 사람 앞에 펼쳐질 삶을 대비하고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교육의 목적으로 삼지만 조선사람들에겐 이러한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현재에 눈 감고 과거만 바라보고 살도록, 한 사람의 정신을 개조하거나 압사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우리는 발전을 생각하지만, 그들은 통제를 생각한다. 서양의 학생은 다양한 학업 성취화 새로 알게된 갖가지 것에 기쁨을 느끼지만, 조선 사람들은 무엇을 배워 안다는 것보다 단지 한자를 읽고 쓰는 것에서만 성취를 느꼈다. P 230
관찰사 양편으로는 부하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관찰사는 질문을 한두 개 던졌는데 내가 기억하기로는 이런 것이었다. 우리나라에 애꾸눈 부족이 살고 있느냐? 아니면 모든 사람에게 눈이 두 개씩 달려있느냐? 서양 사람들은 이빨을 아무 때나 뽑았다가 다시 집어넣었다가 할 수 있다는데 과연 사실이냐? 이 외에도 인종학적, 과학적 질문이 이어진 후 면담은 끝이 났다. P220
어떠한 것이든 예를 공고히 하는 것에 방해가 되는 것은 피해야 했고, 이러한 이유로 양반은 그 누구도 육체노동을 하지 않았다. 사실상 어떤 종류의 노동도 하지 않았는데, 양반의 삶은 상놈의 일을 지휘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상놈들은 모든 명령에 복종했다. P 237
이렇게 부르는 게 정당한지 부당한지는 몰라도 ‘나라의 병폐’라고 일컬어지는 서울의 지체 높으신 양반들은 이미 이런 외국 바람에 깊이 빠져 돈을 흥청망청 써대고 있었고, 세금을 내는 상민들은 입 쓴 비판을 쏟아냈다. (중략) 나라의 제조, 유통산업의 몰락과 더불어 발생한 최근의 이런 사치행각들은 조선 사람들을 역사에 길이 남을 절망적인 지점까지 몰아넣고 있었다. P 282
유교, 조선에 뿌리박힌 사상이다. 유교를 학문으로 공부하는 유학, 모든 양반이라면 태어나, 글자를 깨우치는 시기에 유교경전을 하나 둘 읽으며 그에 세뇌된다. 공자와 맹자가 말했던 유교라는 게, 주자학으로 변질되고, 그 마저도 조선에서 또 변질되었다. 유교를 수 많은 차별과 멸시의 명분으로 삼았다. 그 중 제일가는 차별은 바로 신분제 차별, 남녀 차별 그리고 새로운 문물에 대한 차별이다.
글자깨나 읽고, 유학을 공부한다는 자들은 정작 중요한 사실에는 눈 감았다. 그들은 조상의 묫자리가 중요했고, 죽은 자의 시를 외우는데 급급했으며, 한자에 점이 몇개 찍혀있는지에 대한 토론에 열을 올렸고, 자신들이 만든 신분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데 열을 올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게을렀다. 양반들에게 노동은 상놈들이나 하는 행위였으며, 본인들은 오로지 공맹을 외는 게 도리라 생각했다. 이게 바로 조선 말, 유학자의 모습이다.
코페르니쿠스가 천동설을 말한지 오백여 년이 지났것만, 조선은 오백년 전이나 후나 다를게 없었다. 오백년이 지났지만 조선의 양반네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않았고, 유학을 제외한 모든 학문을 천시하며 역모죄로 몰아넣었다. 그들이 계속 유학을 고집하며 나라의 문을 꽁꽁닫은 댓가는 참으로 참혹했다. 그들이 끈임없이 유지하려 했던 신분제, 본인들만 향유하려 했던 문자, 중국에만 사대하는 유교, 이 모든 게 어우러져 조선은 지식적으로도, 자본적으로도 하향평준화가 된 것이다.
3. 파란만장한 조선 말
청나라는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가질 수 있었던 무지에서 오는 자신감을 내보이며 평양으로 진군해 들어온 후, 의미 없이 시간을 지체하면서 자신들의 힘과 시간을 허비했다. 반면, 왜군은 평양의 모든 진출입로를 장악했고, 각 요충지에 병력이 증원되자 이미 승리는 보장된 것이었다. 늑대가 양을 덮치듯 그렇게 왜군은 청군을 공격했는데, 오만 명의 청나라 병력은 청나라로 도망치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인 북대문으로 미친 듯이 쫓겨갔고, 그 절망과 혼돈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짓밟았다.(중략) 그건 전투라고 부를 수도 없는 근세 전쟁에서 볼 수 있는 작전 수준에 훨씬 미달한, 도망치는 법도 제대로 모르는 무지한 생명체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이었다. P 112 - 청일전쟁
대체 누가 이 공명정대한 시대에 이러한 비열한 행위가 행해졌단고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문명을 바로 세우겠다는 거짓 명분을 앞세워 별 장식과 금술, 견장으로 치장한 서양식 제복을 입은 사백 명의 남자가 어느 밤 궁궐 담을 넘었다. 이들은 동방에서 가장 우아한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목표는 의지할 데 없는 한 여인을 죽이는 것이었다. 바로 조선의 왕후를. (중략) 그들은 저 ‘용맹스러운’ 사무라이 칼로 왕후가 죽을 때 까지 난도질한 후에 시신에 석유를 붓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태워버렸다. 그들은 왕후를 틀림없이 제대로 처리했다고 확신하기 위해 궁녀를 서넛 더 죽인 후에야 행진으로 빠져나왔다. P 256 - 을미사변
이 같은 행위에서 표출된 악의로 가득한 잔인성이 과연 일본의 실체인지 믿을 수가 없었지만, 최근 벌어진 일을 보면 그것이 바로 진짜 일본의 모습이었다! 가오슝호 격침, 뤼순 대학살에 조선 왕후 시해까지! P 259
온 사방에 일본인이 깔렸다. 나의 벗 이씨는 밖으로 나가서 왜군과 이야기를 좀 나누었는데, 왜군은 중국뿐 아니라 자신들이 마음만 먹으면 영국하고도 싸울 준비가 다 되어 있따고 털어놨단다. (중략) 일본인들은 계집다움과 소인다움으로 정평이 나 있다. 사실 일본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소인배 족속이다. P261
조선이 하향평준화 되는 동안 외세가 우리 땅에 들어왔다. 우리 땅에서 벌어진 청일전쟁, 그리고 을미사변. 전부 외세에 우리가 당한 일이었다.
청일전쟁의 시작은 동학농민운동부터 시작한다. 조선 말 양반들은 백골에도 세금을 때리고, 개에도 세금을 때리고, 길에도 세금을 때렸다. 일명 삼정의 문란이다. 하루하루 살기 힘들어진 백성들은, 그렇게 들고 일어났으니 그게 바로 동학군이다. 양반들이 비리를 저질러도 신경조차 쓰지 않던 고종은, 살기 힘들다던 동학군을 그저 역적으로 보았다. 고종은 역적 토벌을 위해 청나라에 군대지원을 요청했고, 그렇게 청나라 군대가 조선땅에 들어온다. 청나라 군대가 조선 땅에 들어오니, 일본군이 조선에 있는 자국민을 지킨다고 지들도 군대를 보낸다. 그렇게 조선에 들어온 청나라 군대와 일본군은.... 서로 조선에서 주도권을 잡겠다고 전쟁을 했다. 조선땅에서, 전쟁을 했다.
을미사변은 조선의 왕비, 민비를 일본군이 한 밤중에 살해한 사건이다. 민비 일쪽이 얼마나 쓰레기였는지는 너도 나도 다 아는 사실이라, 그녀의 죽음이 안타깝지는 않다. 다만, 누가 그녀를 죽였는가는 다르다. 민비는 조선 백성들에게 처벌을 받아야 마땅했는데, 일본군이 들어와서 죽인거다. 민씨 일족이 조선의 백성을 괴롭히는 것과, 일본놈이 조선의 백성을 괴롭히는 것은 그 무게가 달랐다. 아무리 둘다 밉더라도, 모름지기 팔은 안으로 굽는 법. 일본놈들이 자국의 왕비를 잔혹하게 죽이는 행위는 그 누가 보아도, 용서할 수 없는 행위인 것이다.
게일은 이 모든 것을 보았고, 기록했다.
4. 그리고…
난 게일이 사랑한 상놈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꽤 분노에 휩싸였다. 게일은 상놈의 순수한 면을 좋아했지만, 상놈의 순수한 면은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조선이라는 나라가 잘못된 유교를 퍼트렸고, 양반들이 신분제를 더욱 더 공고히 만들었다. 배움(물론 그 배움조차도 폐쇄적이었지만)의 기회조차도 양반네들이 독점했다. 그렇게 상놈이라 불리운 그들은, 배움의 기회조차 없었고 양반을 위해 일해야 했으며, 양반을 먹여 살리는 세금내기에 급급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했으니까, 그들에게는 이런 삶이 순리였다. 게일이 바라 본 상놈의 순수함은, 조선이라는 나라가 만들어 낸 어리석음이었던 거다.
조선왕조 오백 년 동안, 양반은 호의호식하려 했고, 상놈은 더욱더 순수해져갔다. 이미 조선은 변화할 타이밍 조차도 놓쳐버렸고, 그렇게 늑대 아가리에 고이 놓인 양이 될 수 밖에 었었던거다. 그 와중에 조선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소수였을 뿐. 이후의 상황은 우리가 모두 아는 대로 일제강점기다.
이제와서 백날 당시 조선을 비판해봤자 바뀌는 건 없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으니까. 대신 현재를, 미래를 생각해볼 수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에도 조선 말 나라를 좀 먹게 한 종자들이, 복붙하듯 그대로 남아있다. 다만 조선 말 백성들과, 대한민국의 국민은 다르다. 그러니, 나라를 좀 먹게 하는 그 종자들을 끌어내어, 조금은 우리가 사는 이 나라를 좋게 바꿔갈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부르는 게 정당한지 부당한지는 몰라도 ‘나라의 병폐’라고 일컬어지는 서울의 지체 높으신 양반들은 이미 이런 외국 바람에 깊이 빠져 돈을 흥청망청 써대고 있었고, 세금을 내는 상민들은 입 쓴 비판을 쏟아냈다. (중략) 나라의 제조, 유통산업의 몰락과 더불어 발생한 최근의 이런 사치행각들은 조선 사람들을 역사에 길이 남을 절망적인 지점까지 몰아넣고 있었다.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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