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서문들은 인간 ‘박완서’가, 작가 ‘박완서’가 되기 전에 겪었던 그 사건들이, 훗날 작가 ‘박완서’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 가를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준다. 분명 ‘간접적’으로 나타낸 것이겠지만, 이 역시 작가 박완서가 직접 겪었던 이야기이기에 생각보다 강하게 와닿기도 한다. 그래서 그럴까, 나는 이 서문집이, ‘박완서’라는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일기 내지는 수필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머니 책의 서문을 모아 이런 책을 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것은 김윤식 선생님의 서문집을 보고 나서였습니다. (중략) 놀랍게도 서문을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리기도 하고 불끈 용기가 솟기도 하고 눈물이 어리기도 합니다. 타인을 생각하고 전체 속에서 자신을 낮추는 가식이 아닌 겸양, 진실과 책임과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반성이 밑받침이 된 오만은 쉽게 흉내 낼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고개를 숙이게 합니다. - P6

책을 다시 꾸밀 때마다 좀 손을 보려고 다시 읽어보게 된다. 지금의 안목으로 눈에 거슬리는 표현의 과장이나 치졸이 자주 눈에 띄어서 고치려면 어쩐지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못 고치고 만다. 유치함조차 그것을 썼을 당시의 젊고 착하고 순수한 마음의 나타남 같아서 소중한 생각이 들곤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처녀작을 느즈막이 사십 세에 썼지만 이십 세 미만의 젊고 착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섰다고 기억된다. 그래 그런지 그것을 썼을 당시가 암만해도 사십 세 같이 않고 아득하고 풋풋한 젊은 날 같다. P 22 『나목』 재출간 - P22

혼자 사는 여자는 다만 혼자 산다는 이유만으로 불행하기만 한 것일까? 아내가 남편 외의 외간 남자에게 한눈 판 건 두말할 여지도 없이 부도덕하고, 이구동성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반면, 남편이 아내 외의 여자를 장난삼아 범한 것에는 그도록 관대하고 떳떳하다고까지 부추기는게 과연 미풍양속일까? P 67 『서 있는 여자』 - P67

이 이야기를 꾸민 나의 첫 번째 소망도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 마음이 되어 아이들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리려고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복동이 또래의 막내 손자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중략) 이 이야기를 꾸민 내 욕심도 재미 말고 또 하나 있는데 그건 아이들이 자기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남의 생명의 가치도 존중할 줄 아는 편견 없는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고 감사하며 신나게 사는 것입니다. P 162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 P162

곧 6.25가 났다. 오빠와 숙부님이 비명에 죽고, 고향 땅은 북쪽 땅이 되었다. 전쟁의 와중에 죽었으되 전사도 폭사도 아닌, 사상의 대립이 초래한 동족 간의 전쟁이라는 특구성에 희생된 고통스럽고 값 없는 그들의 죽음은 그 후 오랫동안 나에게 악몽으로 남아있다. P 38 『창밖은 봄』 - P38

6.25 때의 체험은 하도 여러 번 욹궈먹어서 6.25 때 내가 어떻게 지냈나는 많이 알려진 셈이다. 그러나 1.4 후퇴 후 텅 빈 서울에 남아서 겪은 일은 유일하게 이 작품에서만 울궈먹었다. 실은 이 경우 울궈먹었단 말도 합당치가 않다. 내가 울궈먹었다는 말을 쓸 때는 체험에다 적당히 소설적인 허구를 가미한 경우인데 이 소설 중에서도 그 시기(이 소설은 1950년 6월부터 다음 해 5월까지의 얘기를 월별로 엮어놓았다)는 의식적으로 허구를 배제하고 철저하게 사실 묘사만 했다.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지금까지도 나는 그때 내가 과연 그 일을 꿈이 아닌 생시로 겪은 걸까 문득문득 의심스러워질 적이 있다. 이 거대한 도시가 하룻밤 새 텅 비고 인기척의 완전한 진공상태가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그대는 상상할 수 있는가. P 46 『목마른 계절』 재출간 - P46

여기 모인 글들은 내 개인의 흔적인 동시에 내가 작가로서 통과해온 70년대, 80년대, 90년대가 짙게 묻어나 있는 글들이다. 우리는 앞만 보고 달리다가도 우리가 살아낸 시대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문득 뒤돌아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무의미한 현실도 좋은 추억이 있으면 의미 있는 것이 되고, 나쁜 기억도 무력한 현재를 고양시킬 수 있는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저절로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P 142 『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남길까』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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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저 큰 사고 없이 잘 살아가는게 효도라고 생각하는 못난 딸이다. 그저 내 할 몫을 다하고, 엄마 아빠에게 손을 벌리지 않는게 효도라고 생각했다. 20대 중후반 언저리에 급 결혼한다고 부모님께 이야기 했었다. 거의 통보나 다름 없었다. 거기다 내 결혼에 대해 일체 경제적 도움을 받지 않고, 오로지 내 돈으로만 진행할 거라고 통보했다. 난 내일은 내 스스로 하는 것이,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는 것이 당연히 효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걸 나중에야 알았다.



하지만 알면서도 나는 변하지 않았다. 애교넘치는 성격도 못되었고, 낯간지러운 말도 잘 못하는 성격이라 엄마에게, 아빠에게 “사랑한다”고 아직까지도 말하지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이런 내 모습은 변하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그냥... 앞으로도 지금처럼 좋은 곳을 갈 때 엄마, 아빠와 같이 가고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고, 이런 일상을 조금 더 많이, 그리고 같이 보내야지.

"엄마와 내가 병실에서 계속 기다려온 것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경험이었습니다." - P5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유골을 먹고 싶었다."

부모와 이별하는 날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내 경우엔 서른세 살때였습니다.

우리 엄마만큼은 절대로 죽지 않을 거라고,

그날이 올 때 까지도 굳게 믿었지만…

엄마는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 P12

"아직 엄마의 휴대전화 번호를 지우지 못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벌써 1년이 지는데도

꽤 오래전에 해지한 엄마의 휴대전화 번호를

아직도 지우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늦은 시간이면 참 자주 전화하셨었는데 ….



이제는 압니다.

한밤중에 계속 전화벨이 울리는 것도

늦게까지 집에 불이 켜져 있는 것도

그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는지.

그런 엄마의 번호이기에

나는 평생 지우지 못할 것 같습니다. - P17

"지뢰 같은 추억"

내가 자란 이 동네에는

여기저기에 지뢰처럼 추억이 묻혀있는데,

그건 가까운 마트도 예외는 아니라서

그 지뢰는 가차 없이 나를 덮쳐왔습니다.

건강하던 시절의 엄마 곁에는

언제나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인 어린 내가 있었습니다.

그때보다 더 행복한 시간이

앞으로 다시 찾아오는 일이 있을까요.

"1주기"

엄마의 1주기는 남겨진 사람들이

제각기 1년이라는 ‘세월의 약’의 효과를

확인하는 자리 같았습니다.

우리 가족에게 1주기는

엄마가 추억이 되기 시작한 날이었습니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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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해외여행은 저자처럼 ‘친구’와 함께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 3박 4일간 다녀온 일본 고베/교토/오사카 여행이다. 짧다면 짧은 여행 일정이었지만, 우리는 퇴근하고 혹은 휴일에 만나서 여행일정을 짜는 게 정말 즐거웠다. 여행을 다녀와서도 꽤 오랜시간 여행을 다녀왔던 이야기를 하며 행복했다. 회사에 있으면서도 “조간만 또 가야지!” 싶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조만간’은 없었다. 서로의 일상이 있었기에. 확실히 한국이라는 나라는, 서로 다른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 휴가를 맞춰서 여행을 가기에는 어려움이 너무 많았다(물론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변하긴 했지만, 어려운 점에는 변함이 없다). 심지어 지금 그 친구와 나는 회사도 다르지만 서로 근무하는 시간대 자체가 다르니, 서로 만날 시간조차도 정하기 어렵다. 아- 어쩌면 이건 변명일지도 모른다. 그 친구와 나는 걸어서 15분 거리에 사는 같은 동네 주민이기도 하니까. 그저, 서로 일하고 돌아오면 너무 피곤하고 그러니까, 집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또 다른 피로를 동반하기 때문에, 사회에 썩을 대로 썩은 우리는 그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집 밖으로 안나오는 걸지도 모르겠다.

여행이 내게 주는 기쁨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그 중 제일은 일상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어린 나이에 독립해 혼자 살아온 나는 늘 바빴다. 학교에 다니며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학교 행사를 맡아 진행하면서도 아르바이트를 몇개씩이나 해야만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 나에게 모든것을 중단하고 잠시 어딘가로 훌쩍 떠날 수 있는 여행은 떠난다는 그 자체로 정말 달콤한 것이었다. 어디에서 누구와 무얼 하든 비로소 지긋지긋한 과제와 정신없는 아르바이트로부터 떳떳하게 해방될 수 있었다. - P5

사실 아주 친한 친구 사이를 들여다보면, 각자 성격이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사고영역을 조금 더 넓어지게 만들어주기도 하며, 같은 성격이면 분명 싸웠을 법한 일에도 서로 져주기도, 참아주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나는 비슷한 성격의 사람과 친구인 게 이렇게나 좋구나, 하고 새삼 놀랐다. - P143

그리고 나는 꺠달았다.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것을. 어느 하나 부족함 없이 완벽했다. 온통 하얀 세상, 아늑한 숙소, 좋아하는 친구들, 맛있는 음식 ….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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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문명’, ‘피라미드’, ‘공룡’, ‘미이라’, ‘미스테리’. 나에게 고고학이란 이런 개념들이다. 아마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강인욱 교수님의 강연을 보지 못했다면, 아마 쭉 저런 개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연을 본 뒤, 고고학의 주 연구대상은 내가 생각한 저런 것들이 아니라, 아 물론 부수적으로 연구하는 분야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고고학의 주 연구대상은 ‘인류’였다. 고대부터 가까운 역사까지 ‘인류’와 관계된 유물을 연구하고 발굴하는게 바로 고고학이었다.



뿐만 아니라 고고학은 상상력의 산물 그 자체였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상상하는 그런게 아니다. 고고학자들이 하는 상상력은 인문학적 요소가 필수불가결이다. 그래서 상상력을 발휘해 추론한 내용이라고 해도, 근거가 있고, 당연히 그럴 것 이라 생각이 드는 그런 학문인 것이다.

이 책에는 신나는 보물찾기도, 실무적인 고고학 이론도 없습니다. 대신에 저는 이 책에서 과거의 사람을 직접 만지고 냄새 맡는 고고학자로서의 생생한 느낌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다소 낯설게 들릴실 수도 있지만, 저는 그 생생함이야말로 고고학이라고 하는 학문이 가진 놀라운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 P2

고고학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바로 유물을 통해 죽어 있는 과거에 새로운 삶을 부여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고학적인 연구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그 유물들이 원래의 기능을 잃고 땅속에 묻혀야 합니다. 즉, 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죽고 난 다음에 고고학자들은 다시 그들을 꺼내어 부활시킵니다. 생동감 있는 삶의 모습을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하는 셈입니다. - P9

우리의 과거에 대한 기억은 죽음으로 수렴이 되어 망각이 되고 망각되어버린 기억은 다시 유물이라는 몸으로 부활합니다. 고고학자에게 유물이란 다시 살아난 기억의 편린입니다. 이렇게 죽음을 통하여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고고학입니다. - P10

땅 속의 흙은 일정한 시간을 두고 마치 케이크처럼 쌓여 있다. 한 층 한 층은 수백 년 또는 수천 년의 시간을 두고 쌓인 것이다. 발굴장에서 곡학자들이 솔이나 꽃삽으로 조심스럽게 작업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따. 순간의 부주의한 발굴로 지나치는 층위는 두고두고 고고학자의 실수로 남게 된다. - P22

역사 기록에 따르면 발해의 음악은 당시 일본과 중국에도 널리 퍼졌다. 발해의 사신이 전한 음악은 일본 도다이지에서 공연할 정도이고,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중국의 송나라에서는 발해의 음악이 너무 유행해 이를 강제로 금지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도대체 발해의 음악에는 어떤 매력이 있어서 이렇게 주변 나라의 사람들을 매혹시켰을까 궁금했다. 구금이 등장한 것을 보니 발해는 초원, 중국, 그리고 고구려의 여러 음악을 조화시켰던 건 아니었을가. 비록 과거의 음악은 복원하여 듣기 어렵지만, 그들이 이뤘던 문화의 힘은 지금도 느낄 수 있다. - P105

일본이 한반도와 만주의 문화재를 약탈한 이유는 단순한 유물의 수집이 아니라, 일본 민족의 기원이 북방 어딘가에 있었다는 설을 주장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근동지역을 약탈한 서구 열강이 유럽 문명이 근원인 성서를 증명하기 위해서 나선 거라고 주장하는 의도와 일맥상통한다. - P219

기마민족설은 역설적으로 일본이 패망한 후에 본격적으로 유행했다. 일본인들은 아시아 전체를 정복할 것이라는 정부의 허황된 선전 아래 전쟁에 내몰렸다. 그리고 전쟁에서 패망하면서 다시 섬으로 쫓겨났다. 갑자기 빈털터리가 되어 버린 일본인들을 위로해준 것은 일제의 전장을 따라다니며 발굴하고 문화재를 약탈해 조사했던 고고학자들이었다. - P220

프랑스가 내세우는 주요 논리는 제3세계 국가는 후진국이어서 문화재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019년 4월에 프랑스의 자랑 노트르담 성당도 화재로 불타버렸다. 프랑스가 다른 나라보다 문화재를 더 잘 관리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이 없음이 여실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속내는 외규장각의 의궤가 반환되면 그들이 수백 년 간 세계 각지에서 가져온 문화재를 다시 뺏길 수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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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사냥꾼 - 집착과 욕망 그리고 지구 최고의 전리품을 얻기 위한 모험
페이지 윌리엄스 지음, 전행선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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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방사수하는 TV 프로그램 중 JTBC 『차이나는 클라스』라는 방송이 있다. 이 방송에서 얼마전에 다뤘던 주제가 바로 ‘공룡’이었다. 정말 흥미진진하게 봤는데, 세상에나. 차클로 공룡에 대한 호기심이 뿜뿜하는 상황에서, 흐름출판에서 출간 된 『공룡사냥꾼』 이라는 책을 읽을 기회가 주어졌다. ‘공룡’을 주제로 하는 책은 이번이 처음인지라 책에 대한 기대감도 뿜뿜!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공룡화석을 훔진 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한 남성’이다(심지어 논픽션, 실화!!). 여기서 중요한 사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이 정말 광범위하다는 점이다. 그저 공룡화석을 훔진 한 남성의 이야기가 진행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공룡 화석’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밀수·박물관·수집·화석 등을 시작해서, 전혀 연관이 없을 것만 같은 자본주의·민주주의·냉전시대·중국 천안문사태·할리우드·몽골의 정책, 거기다 경매와 행정적 규제까지. 와, 이건 정말 생각치도 못했던 부분들이 자꾸 등장해서, 집중력이나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어려운(?) 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을 화석사냥꾼으로 살아온 에릭, 그는 어릴 때부터 화석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아주 어릴 적 해변가에서 오래된 상어 이빨을 발견했을때, 이미 그때부터 에릭의 미래가 결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에릭은 명실공히 성공한 화석사냥꾼이 되었다. 그는 고생물학과 관련된 전문적인 길로 들어가 책상머리에 앉아있는게 아닌, 현장에 나가서 직접 발굴하고 만지는 것을 원했고, 그에 부합하는 직업이 바로 화석사냥꾼이었다. 하지만 에릭은 자기의 일에 자부심이 있었다. 학계에 도움이 된다는 자부심, 인류 역사에 도움이 된다는 자부심 말이다. 그래서 에릭은 발굴한 화석을 박물관에 대여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에릭은 그가 파낸 프룩스빌 화석 일부를 박물관에 대여했고, 1년 후에 그가 대여품을 찾으러 갔을 때, 그 물품에는 등록 번호가 붙어 있었다. 그가 발견한 표본 하나는 다른 직업 사냥꾼 앞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에릭은 FMNH 과학자들이 그를 심각하게 위법적인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 이유는 끝내 알 수 없었다. 과학자들은 브룩스빌 현장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에릭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고, 에릭은 분노했다. P 102



화석사냥꾼이란, 화석에 대한 전문 지식이나 고생물학자같은 부류가 아니다. 말그대로 화석을 발굴한 뒤, 멋지게 복원하여 타인에게 파는 것. 화석발굴&화석판매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화석사냥꾼들을 향한 학계의 시선은 비판적이다. 화석을 연구가 아닌 상업적인 이유로 판매하는 것이나, 비과학적인 조건에서 수집하는 점, 불법적으로 발굴해서 소유하고 있는 점 등을 지적한다. 반면 화석사냥꾼들은 그런 학계에 이렇게 말한다. 화석사냥꾼이 발견한 화석 덕분에 학자들이 연구를 할 수 있는 것이며, 박물관에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것 이라고.



화석사냥꾼들이 화석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사실에 제일 분노하는 학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본인들 역시 화석을 ‘구매’한다. 그것도 화석사냥꾼들에게서. 본인들이 제일 극혐하는 ‘화석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화석사냥꾼들을 비판을 하는게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이었으면, 본인들 역시 상업적으로 구매하지 말아야 했다. 스스로 현장에 나가서 화석을 발굴하는게 옳았다. 하지만 그런 땀흘리는 행동은 하지 않고, 그저 화석사냥꾼들이 발굴한 화석을 ‘구매’하면서, 그러한 행위를 비판하는 모순. 적어도 ‘화석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이유로 화석사냥꾼을 비판할 권리가, 현장에 나가지 않고, 직접 발굴하지 않는, 책상머리에만 앉아있는 학자들에겐 없는게 아닐까.



 적어도 이 책에서 나온 몇몇 화석사냥꾼들은, 책상머리에 앉아서 타인이 발굴한 화석을 구매하여 연구하는 학자들보다 더욱 고생물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화석사냥꾼들을 옹호하는 건 아니다. 그들도 에릭을 비롯한 여러 화석사냥꾼들처럼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가거나, 밀수도 하는 등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건 맞으니까. 다만 한가지 면만 보고 화석사냥꾼은 범죄를 저지르고, 학자들은 연구를 한다고 보는 관점은 조금 위험하다고나 할까? 이런 상황을 비판하고자 한다면 화석들이 상업적으로 거래되는 상황을 만든, 자본주의가 만든 이런 사회를 비판해야하는 게 아닐까?



맥도날드사와 월트디즈니가 시카고의 필드 자연박물관에 티라노사우루스 수를 구매해주기 위해 팀을 구성했다. 어느 신문은 시카고가 “‘다 베어스’와 ‘다 불스’에 ‘다 본즈’”를 추가하기 위해 대체 어느 정도의 금액을 지급하게 될지 궁금해했지만, 이제는 모두가 그 대답을 알고 있다. 구매 희망자에 대한 소문이 나면서 가격은 전례없는 엄청난 금액인 836만 달러에 이르렀다. 윌리엄스는 세금을 대답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여 760만달러에 팔기로 했다. 나중에 스미스소니언의 커크존슨은 “그들이 수(티라노사우루스 수;공룡 뼈 화석)를 판매한 그날부터 화석은 돈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P 099



많은 공룡 뼈 화석이 발견되는 미국, 자본주의의 대표국인 미국에서는 사유지에서 발견한 모든 것을 개인이 직접 수집, 판매가 가능했다. 그래서 에릭같은 사람들이 생업으로 화석사냥꾼을 할 수가 있었다. 말 그대로 사회가 허용했기 때문에. 문제는 미국이 아닌 나라, 몽고였다. 뜬금없이 왜 몽고냐고 하면, 몽고 고비사막에서 공룡 뼈 화석들이 왕왕 나왔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이 책에서 주요 사건으로 다루고 있는 공룡 화석 ‘티라노사우루스 바타르’ 일명  T.바타르도 있었다.



미국 답사 대원들은 곧 고비사막이 3년간 연장 가능한 답사 계약을 맺어도 좋을 만큼 충분히 유망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발굴한 화석은 몽골의 재산이지만 연구를 위해 뉴욕에 가져갈 수 있다는 조항에 모두가 동의했다. P 216



몽골에서는 공룡 화석등에 대한 구체적인 규제가 없었기에, 에릭을 포함한 많은 화석사냥꾼들이 몽골의 화석을 미국으로 들여오곤 했다. 물론 이게 또 완전 합법은 아니고, 흔히 말하듯 교묘하게, 우회적으로 들여온 것이다. 말 그대로 밀수라고나 할까? 합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위법도 아닌, 하지만 그래도 뭔가 뒤가 구린? 뭐라고 규정하기 매우 어려운 부분이랄까. 이렇게 밀수인듯 아닌듯 애매한 부분을 몽골의 대통령 엘베그도로지가 지적했다.



“몽골 대통령은 몽골의 재산일지도 모를 T-렉스 화석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P 308



언뜻 보면, 자국의 문화유산의 밀수를 우려한 대통령의 이야기라 할 수 있지만 실상 아니다. 당시 몽골의 정치 민주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이 모든일, 그러니까 엥흐바야르의 수치스러운 체포, 인권에 대한 미국의 훈계, 고착된 부패, 광산업과 관련된 논란, 치솟는 인플레이션, 엘베그도로지의 당이 6월 총선에서 승리하고 2013년에 대통령직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력, 일부 서방 외교관들 사이에서 몽골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 등이 T.바타르가 경매에 나가기 직전에 일어난 것이었다. 엘베그도로지에게는 승리가 필요했다. P 335



엄밀히 따지면 공룡 화석의 밀수사건이라 일컬어지는 이 사건의 시작은 몽골의 정치권이었다. 그렇다고 에릭이 몽골의 공룡 화석을 미국으로 가지고 와 판매하려고 한 것을 두둔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 사건이 수면위에 올라오게 된 건 자국의 ‘문화유산 보호’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정치적 승리를 위함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공룡 뼈 화석 밀수(거래? 경매?)는 순식간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미국 경매에서 판매되려 했던 공룡 뼈였기에, 미국 연방정부도 이 사건에 참전했다. 그렇게 에릭이라는 화석사냥꾼의 인생은 끝이났다(형량은 6개월 징역형) . 이후 에릭 프로코피라는 이름은 국제 화석 밀수와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그의 유죄 판결에서 판사는 이런 말을 했다.​



“(에릭)프로코피 씨는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는 많은 사람이 따르지 않는 지식 분야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가 그 분야를 따르고 그것을 위해 시장을 창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화석 연구에서 중요합니다. 또한 화석 연구는 지구에서 우리의 삶과 우리의 근원에 관해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따라서 그 점에 있어서 그는 칭찬받아야 합니다. ”


그러나 사회에서는 신뢰와 정직이 중요하다고 판사는 말을 이었다.


“그 점은 프로코피 씨가 평생 종사해온 분야와 관련해서 특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사실상 역사의 희소성으로 먹고살았고, 그 명성에 참여함으로써 실은 그 역사뿐만 아니라 그 역사를 제공하는 국가의 유산을 보존하는 데도 자신을 헌신해왔습니다.” P 393




에릭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판사는 에릭이 밀수를 저질렀을지언정, 그의 행동 결과가 나쁘지많은 았았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니까, 위에서 화석사냥꾼들이 이야기하던 ‘화석사냥꾼이 발견한 화석 덕분에 학자들이 연구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애초에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없다는 자본주의의 논리처럼, 공룡 화석 역시 학자들이나 박물관, 심지어는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까지 이러한 화석들을 소유하려 하지 않았다면 에릭같은 화석사냥꾼도 탄생하지 못했다. 어쩌면 화석사냥꾼인 에릭도, 자본주의 사회가 만든 일종의 피해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금 들기는 했다(물론 밀수를 옹호하는 건 절대 아님, 오히려 밀수 극혐!).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에 나오는 수 많은 사람 중에서 문화유산으로써의 ‘공룡 화석’을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본격적으로 화석사냥꾼 활동을 시작했던 젊었을 적 에릭이나, 1세대 화석사냥꾼인 메리-애닝 정도랄까. 그 외의 사람들, 내지 정부기관은 오로지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였다. 때로는 정치적으로, 때로는 자본주의적으로, 때로는 학술적인 이유로 움직였다. 그래서 뒷맛이 조금은 씁쓸했다. ‘공룡화석’이라는 인류의 문화유산을 둘러싸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만 활동한다는 사실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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