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TAKEOUT 유럽예술문화 - 지식 바리스타 하광용의 인문학 에스프레소 ㅣ TAKEOUT 시리즈
하광용 지음 / 파람북 / 2023년 6월
평점 :
오늘 리뷰하는 책 『TAKEOUT 유럽예술문화』는 조금 독특한 책이다. 물론 내 기준에서, 좋은 의미로다가 하는 말이다.
왜? 이런 류의 인문역사예술이 복합적인 책은 처음 읽어보거든!! 새롭고 짜릿해!!!
개인적으로 역사를 좋아하다보니, 역사가 가미된 여러 종류의 책들을 많이 읽어봤다. 예전엔 ‘거시사’를 주로 읽었다면, 한 5년 전 부터는 ‘미시사’도 즐겨 읽게 되었다. ‘미시사’ 를 자주 읽다보니, 의도치않게 미술의 역사라던가 의학의 역사, 여성 인권의 역사 등 예술과 문화같은 세부적인 분야에 대한 내용도 꽤나 많이 알게 되었다. 다만 이런 내용들을 어떠한 한 책에서 읽은 게 아니라, 이 책에서 읽고, 저 책에서 읽고, 요 책에서 읽는 등 정말 수 많은 책을 읽으며 알게된 예술문화 지식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책 『TAKEOUT 유럽예술문화』는 내가 수 많은 책들에서 조금씩 알게된 내용들을 한 권에 아주 가득가득 담아내었다. 음악, 미술, 문학, 건축 등 ‘예술’이라고 칭하는 모든 분야들을 갈고리로 아주 작은 것 까지 긁어모은 것마냥 전부! 이렇게 보면 모든 예술작품을 총 망라한 문화 인문학책 같다. 헌데 이 책이 정말 신기한 게, 어려운 기존의 인문학책과는 달리 쉽다. 정말 매우 쉽다. 읽는 대로 쏙쏙 뇌에 박히는 기분? 그래서 그런가? 저자는 이 책을 ‘인문교양에세이’라고 칭했다.
예술에 대해선 1도 몰라서 예술 문화에 대한 인문학적 소양을 쌓고 싶은데, 기존의 예술문화 책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정말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왜? 라파엘전파?
주류 회화 사조를 이끈 대륙의 프랑스에서 19세기 중반 사실주의가 성행할 시 바다 건너 영국에서는 라파엘전파라는 일단의 화가들이 작품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거두절미하고 라파엘로 이전의 그림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르네상스의 대가들 중 라파엘로를 호출하여 전면에 내세웠을까요? p 103
그런데 같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3인이라도 미켈란젤로와 다빈치에 비해 라파엘로는 좀 처지는 감이 있습니다. 3인방에서 더 좁게 들어가 르네상스의 쌍벽이라 하면 그를 제외한 미켈란젤로와 다빈치를 가리키기도 하니 말입니다. (…) 라파엘로의 경우는 후대의 평가도 그렇지만 미켈란젤로와 다빈치가 공학 등 다른 분야에서도 걸출한 역량을 보였기에 그렇게 평가되는 것도 있으리라 보여집니다. 그런데 15세기 말과 16세기 초 피렌체를 중심으로 공유했던 이들 3인의 생전엔 라파엘로의 대중적인 인기가 가장 높았다고 합니다. 특히 여성들에게 말입니다. p 107
사실 그들은 라파엘로 한 사람만을 호출해 예술의 시계를 그 이전으로 돌리자는 형제회를 조직했지만 실상은 라파엘로를 비롯한 르네상스 3대 거장은 물론 위에서 열거한 모든 르네상스 화가 이전의 그림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며 새로운 작품활동을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중세로 돌아가자는 복고주의 구현이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주장했던 이유는 중세의 예술이 그 대상이 인간이든 자연이든 그것들을 가장 사실적이고 치밀하게 묘사했다는 것입니다. p 108
생각해보면 그렇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2인을 이야기하라고 그러면 아주 자연스레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라파엘로도 분명하게 르네상스 시기를 대표하는 화가인건 맞다. 근데... 이상하리만치 르네상스 ‘대표주자’ 라는 키워드로 당대의 화가들을 떠올리자면, 유독 미켈란젤로와 다빈치만 떠오른달까? 아마도.. 현대를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않을까 싶다.
하지만 19세기 사실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21세기를 사는 나와 달랐나보다. 그들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로 미켈란젤로나 다빈치가 아닌, ‘라파엘로’를 선택했으니까. 왜? 놀랍게도 르네상스 당대에는 라파엘로가 대중적으로 제일 인기가 많았다며...!
당대에 제일 인기많고 유명했던 ‘라파엘로’의 이름을 빌려서, 주목을 받으려고 했다는 뭐 그런 느낌적인 느낌인건가 싶음!
그런데 왜 그들의 사조를 라파엘전파라 불렀을까요? 정확한 저의 의문은 미켈란젤로도 있고 다빈치도 있는데 왜 하필 그중에서 라파엘로만을 콕 집어서 그렇게 희생양의 간판으로 내세웠냐는 것입니다. 미켈란젤로전파, 다빈치전파 등 이런식으로 그들을 호출할 수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라파엘로의 의문의 1패입니다. 더구나 라파엘로 그는 그들 중 막내로 태어났고 그들과는 달리 37세에 죽음으로써 가장 먼저 죽은 애처로운 천재였는데 말입니다. (…) 지금부터는 저의 추측입니다. 일단 저는 라파엘로의 외모를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초상화입니다. 그의 외모는 미켈란젤로와 다빈치와는 달랐습니다. 우리가 서구 역사상의 예술가라면 머릿속에서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근엄한 얼굴에 긴 수염등으로 아우라가 및나는 그런 얼굴…. 미켈란젤로와 다빈치의 얼굴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라파엘로의 얼굴은 그렇지 않습니다. 미혼으로 살다 노총각인 37세이 죽었으니 그 전 모습일텐데 아무리 그렇다해도 너무나도 매끄럽고 핸섬한 외모입니다. 마치 요즘 시대 우리나라 아이돌 뺨치는 외모입니다. p 118~119
1520년 37세의 라파엘로가 죽었을 때 그의 장례식은 바티칸에서 거행되었는데 당시 교황인 레오 10세는 신께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천사를 지상에 잠깐 내려보냈다가 데려가셨다고 할 정도로 그의 죽음을 아쉬워하였습니다. 아름다운 청년 라파엘로였습니다. p 121
저자의 주관적인 추측이기도 하지만, 왠지 내가 봐도.............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초상화를 나열해보면, 너무나 당연하게 라파엘로를 선택할 것 같다. 라파엘로의 아이돌 버금가는 외모만으로도 확실히 대중적인 인기를 확 끌것같은 느낌? 그 왜, 우리가 알고 있는 다빈치랑 미켈란젤로의 초상은 뭐랄까 너무 근엄해서, 섣불리 다가가기가 어려운 포스가 있으니까. 더군다나 그 두 사람의 초상화는 사실주의 보다는 왠지 거룩하고, 성스러운 종교화에 어울리는 느낌이기도 하고.
하지만 라파엘로 초상화는 거룩하거나 성스러운건 일단 둘째치고, 잘생겼........ㅋㅋㅋㅋ 흠흠. 무엇보다 다른 미사여구 없이 오롯이 얼굴만 보이는게 그나마 사실주의와 어울리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뭐, 예술은 주관적인거니까?!
니체와 19세기 유럽의 여성
“남자의 행복은 Ich will, 여자의 행복은 Er will”
“남자의 행복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고, 여자의 행복은 그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인 페르시아의 현자 조로아스터(짜라투스트라)의 입을 빌어 니체가 남녀의 행복에 대해 독일어로 한 말입니다. (…) 이 때 남자의 행복은 별 이견이 없지만 여자의 행복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입니다. 여자의 경우 배우자인 그가 소망하는 것을 이루는 것만이 행복이라면, 그 안에 여자의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행복은 없다는 것과 같기에 그렇습니다. 그녀의 그가 행복해야 나인 그녀도 행ㅂ고하고, 그가 불행하면 그녀인 나도 불행하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마치 유교가 지배하던 우리 이조시대 여인의 삼종지도를 연상하게 하는 니체의 글입니다. 그럼 결혼하지 않았거나 남친이 없는 여자의 행복은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 것이었을까요? 니체의 말대로라면 무조건 불행해야 하는 것이었을까요? p 173~175
《짜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엔 여성이라면 읽기 힘든 심한 이야기도 많이 나옵니다. 여자는 남자의 장난감이며, 마음의 깊이가 얕고, 잘 변하며, 여자에 있어서 남자의 목적은 임신이라고 하니까요. 그래서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해야 하며, 남자는 여자를 찾아갈 때 채찍이나 회초리를 잊지 말라며 이것은 진리라고까지 말합니다. 물론 19세기 만의 진리겠지요. p 175
니체의 《짜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워낙 유명한 책이라 그 제목은 알고 있었으나, 솔직히 읽어본 적은 없었다. 당연히 내용도 몰랐다. 그런데 이 책 덕분에 조금이나마, 니체의 가치관을 들여다보게 되었다는게 함정이다. 《짜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요약이 아닌, 책을 쓴 19세기의 지성인 니체의 가치관 말이다.
저는 지금 이 책의 뒤편에 있는 <19세기 유럽 개화기의 여성 작곡가>를 쓰면서 구상한 내용을 이렇게 연동해서 쓰고 있습니다. 당시 여성들은 그렇게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그들에게 저항하며 힘들게 살았는데 정작 그녀들을 그렇게 만든 반대편 남자들의 생각이 궁금해서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니체는 19세기를 대표하는 유럽의 지성남이기에 충분히 대표성이 있을 것입니다. 당시 가장 개방적이고 진보적이라 할 수 있는 그의 말이 굳어진 글을 통해 보면 그의 여성관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결과는 위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보시다시피 거기에 답이 원히 나와 있습니다. p 176
물론 니체는 뛰어난 천재이고 난해한 철학자이니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그의 여성에 대한 서술 중 범부인 제가 이해 못하는 많은 비유와 상징이 들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작품은 평생의 연인인 루 살로메에게 차이자마자 채 한 달도 안 걸려 쓰인 책으로 알려졌듯이 여성에 대한 그의 적대적인 반감이 배가 되어 표출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그녀에게 절절맸음에도 괜히 센 척하려고 그의 작품에선 여성을 그렇게 비하하며 표현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p 177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라는 니체의 가치고나은 지금 기준으로 봤을 때, 심각하게 찌질하고, 편협적이라는게 참으로 경악스럽다. 더 슬픈건 당대 최고의 지성인의 가치관이 이정도이니, 그 시절의 평범한 남성들은 어땠을지라는 것. 중세유럽의 여성은 인권은 바닥이었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도 아닌,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라 일컫는 사람의 눈으로 보니 더욱 와 닿는다.
이렇게 여성이 차별받았던 19세기 였음에도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 위대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여성들은 그 자체로 매우 위대하다 할 것입니다. 사고와 연구를 통해 결과물을 산출하는 학문적이고 지적인 영역은 여성들에게 막혀있던 때였으니까요. 그래도 그것을 극복하고 이겨낸 그녀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그녀들의 온전한 이름으로 표현된 예술과 문학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21세기인 오늘날까지 니체가 살아있다면 그는 여자의 행복을 무엇이라고 정의할까요? 또 짜라투스트라에게 떠밀려나요? p 179
그럼에도 당대의 여성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 밖으로 내려고 발버둥을 쳤으니, 그 내용이 바로 아래의 내용이다!
19세기 유럽 개화기의 여성 작곡가
이름 없는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 그렇습니다. 물질과 인간을 혁명한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이 끝난 19세기에 들어서도 그 안에 여자는 없었습니다. 정확히 여성은 그녀의 이름으로 사회 활동을 하기 힘들었습니다. 이때 일련의 여성들이 그간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금단의 영역인 작곡에 손을 대기 시작합니다. p 381
중세 유럽은 여성들의 인권이 바닥을 치던 시기였다. 동양도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뭐.. 여튼지간에! 국가의 근간을 뒤흔든 자유와 평등, 박애를 주장한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이 지난 뒤에도 여성의 인권은 역시나 바닥이었다. 그런데... 그랬던 여성들이 작곡을 했다는게 넘나 놀라운 이야기! 그동안 내가 읽었던 역사책에는 음악 관련 이야기는 많지 않았던터라, 정말 새롭고 놀라운 내용이었다.
혹시 이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커러 벨, 엘리스 벨, 액턴 벨…. 그들은 한 형제입니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소설을 쓴 유명 작가들입니다. 그 3형제는 서로 의기투합하여 1847년 같은 해에 그 작품들을 출간하였습니다.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아그네스 그레이》가 바로 그 작품들입니다. 어 …. 그 작품들의 작가가 남자? 그렇습니다. 영국에서 초판 출간 시 그 작가들은 남자였습니다. 남자 필명을 사용한 것이지요. 그런데 샬롯 브론테와 에밀리 브론테, 그리고 앤 브론테 이 세 자매는 왜 남자 이름으로 책을 내었을까요? p 382
맏언니 샬롯 브론테는 자매들이 쓴 시를 모아 당대의 유명 작가에게 보내 평가를 부탁합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돌아온 응답은 “문학은 여자의 일이 아니며, 여자는 작가가 되고파도 될 수 없는 일”이라는 황당한 평가였습니다. 작품의 질을 평가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성을 평가한 응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들은 고육지책으로 필명을 남자로 바꾸는 도발을 감행하며 이후 각자의 소설을 세상에 내놓은 것입니다. p 383
18세기 말 영국의 산업혁명과 프랑스의 시민혁명 등이 구체제라 불린 기존의 사회를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전면 변화시켜 19세기는 새로운 가치와 질서가 만들어지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다보니 혼란은 당연하였습니다. 남녀 문제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남성은 기득권을 상징하며, 여성은 남성에 맞서는 도전 세력이었습니다. 하지만 혁명을 해도, 근대화가 되어도 그 안에 여성들은 없었습니다. “손님이 찾아오면 여성들은 지식인 티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응접실에 앉아 바느질을 해야 했다.” 이 말은 해리엇 마티노라는 19세기 영국의 여성 작가이자 사회학자가 당시 유럽 지식인 여성의 현주소를 가리켜 한 말입니다. 그 나라를 통치하는 사람은 여왕이었는데 말입니다. p 385
놀랄 ‘노’짜는 책을 읽는 내 지속되었다. 고전문학 중의 고전문학이라 일컫는 고전문학 탑티어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아그네스 그레이》가 초판 발간 당시에는 오우!! 남자 이름으로 책이 출간되었다니!!! 지금의 시선으로 본다면야 이해할 수 없을 노릇이지만, 당시의 여성 인권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간다. 대부분의 직업을 금지당한 여성들에게 작가라는 직업은 절대 이룰 수 없는 직업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이를 비웃 듯, 남자의 이름을 써서 책을 출간한 브론테 자매를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든다. 그나마 브론테 자매들은 기지를 발휘하여 자신들의 작품을 세상에 알렸지만, 그러지 못한 여성 작가들이 얼마나 많을 것이며, 그녀들이 쓴 명작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손님이 찾아오면 여성들은 지식인 티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응접실에 앉아 바느질을 해야 했다.”
지구에 인류가 살기 시작할 당시에는 분명 모계사회였다. 이건 역사적으로도 명확한 사실. 그러다 잉여재산이 생겨나고, 계급이 생겨나면서 모계사회에서 점차 부계사회로 이동하였다. 문제는 이 이후다. 부계사회로 변화된 건 이해하겠는데, 어찌하여 여성의 인권이 나락으로 떨어져야했던걸까? 마음에 안들면 여성을 언제든지 마녀사냥으로 죽일 만큼, 여성의 인권이 나락으로 떨어져야만 했던 이유가 있던걸까? 참으로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다.
프랑스 혁명의 성공엔 여성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크게 기여하였는데 혁명 세력은 권력을 잡자마자 그녀들을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에 참여한 여성 중 올랭프 드 구주가 가장 크게 분개하여 여성의 권리를 주장합니다. 그녀가 싸워야 할 적이 베르사유 왕궁의 왕족와 귀족에서 혁명 정부의 남자들로 바뀐 것입니다. 그녀가 궁극적으로 얻고자 했던 권리는 여성의 정치 참여가 가능한 참정권이었습니다. 그 결과 그녀는 1793년 단두대에 올라 처형을 당하였습니다. p 385
그런데 이런 19세기 였음에도 음악은 좀 달랐나봅니다. 남성의 전유물인 정치와 지적 요소가 투입되는 문학과는 다르게 여성의 영역으로 본 것입니다. 집에 손님이 왔을 때 남성들의 눈에 긴 드레스를 입고 응접실 소파에 앉아 바느질을 하는 여식의 모습과 피아노의자에 앉아 연주를 하는 모습은 동일하게 간주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전업 연주까지는 여전히 힘든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모차르트의 누나도 성인이 되어서는 음악교사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여성은 거기까지였습니다. p 389
하지만 남성들이 아무리 견고하게 방해해도 이렇게 음악적인 재능과 흥미로 분출되는 창작 욕구까지 막을 방법은 없었습니다. 이제 그녀들은 문학계의 여성들이 사용한 것과 유사한 방법으로 그녀들이 작곡한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파니 멘델스존은 초기에 동생인 펠릭스 멘델스존의 이름으로 그녀의 곡들을 발표했습니다. 클라라 슈만은 남편인 로버트 슈만과 공동 명의로 작품을 발표해 어느 작품이 그녀의 작품인지 알 수 없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그녀들의 별난 노력까지 더해졌기에 오늘날 우리는 19세기 여성 작곡가들의 명곡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더 많은 여성들이 작곡한 악보들은 햇빛을 보지 못하고 일찌감치 버려졌거나, 아니면 어딘가에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채로 지금도 잠자고 있을 것입니다. p 391
그럼에도 다행인건 여성의 인권이 억압되는 부조리함을 인지하고, 그 부조리함을 이겨내고자 했던 여성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녀들은 부조리한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을 쳐왔다. 누군가는 자신의 작품들을 세상 밖에 내놓기 위해 남성 가족의 명의를 빌리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여성의 인권을 위한 싸움을 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21세기를 사는 나를 비롯한 여성들은, 그녀들이 살던 부조리한 사회를 벗어날 수 있었다.
정말 여러모로 내가 접해보지 못했던 유럽의 예술문화의 뒷 이야기가 내 머리속으로 콕콕콕 들어박히는 것이, 이 책.... 확실히 물건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