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그늘
고광률 지음 / 파람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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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하기에 앞서 주의해야할 부분이 있다. 난 한국전쟁으로 순국한 영령들을 폄훼하는게 절대 아님을 밝힌다. 단지 순국한 영령들을 볼모삼아, 자신들의 죄악을 숨기기 급급한 한국과 미국의 못난 위정자들을 비판하고자 함이다.


불과 십년 전만해도 한국전쟁 당시 있었던 민간인 학살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였다. 왜? 민간인 학살의 가해자는 국군과 미군이었기 때문이다. 빨갱이가 쳐들어온 전쟁. 이 빨갱이를 몰아내기 위해 전쟁터로 나간 국군과, 그런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파견된 미군들. 이들이 전쟁에서 빨갱이가 아닌 민간인을 죽였다고 이야기하는 순간 ‘한국전쟁’이 가진 정체성은 흔들린다. 그 뿐인가? ‘한국전쟁’ 하나로 수많은 이득을 보았던 그들의 권력도 흔들린다. 그렇기에 민간인 학살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였다. 그와함께 임진왜란 후 조선이 명나라에 그랬던 것 처럼, 대한민국은 미국을 재조지은의 나라로 섬겼다. 정확히는 대한민국 정부와 지지하는 세력들이.



한국전쟁 이후 미군은 ‘한국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한국에 자리를 잡았다. 주한미군이다. 대한민국 정권은 이들을 환영했다. 재조지은의 나라가 아닌가! 국민들과 군인들이 죽던말던 한강다리 폭파하고 그렇게 꽁무니를 내뺐던, 싸울생각은 고사하고 전시작전권은 미군에게 바로 내주었던 그들은 그렇게 주한미군을 환영했다. 주한미군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범죄도 눈감아주었다. 주한미군판 위안부 기지촌을 운영했다. 주한미군이 일으킨 각종 범죄는 쉬쉬하며 눈감아주었다. 훗날 이로인해 일어날 각종 사회적 문제들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한국전쟁 발굴 유해 봉안식 장면이 전파와 지면을 통해 주요 뉴스로 다뤄졌다. 방송 기자는 이번 봉안식은 전반기이고, 후반기에 더욱 크고 성대한 봉안식이 또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고는, 창군 70주년을 맞이한 올해 국군의 날 행사는 온 국민의 자유 수호 의지와 염원을 담아 더욱 거국적으로 성대히 치뤄질 예정이라고 거듭해서 덧붙였다. 레거시 언론사가 정권에 들러붙은 국정홍보처를 자처하는 것 같았다. p 028


그렇게 쉬쉬하며 침묵하는 동안 대한민국에는 많은 독버섯이 자랐다. 한국전쟁 당시 멍청한 대한민국 정부와 미군의 합작품이던 민간인 학살사건을 비롯하여, 참전미군의 문화재약탈 및 민간인 강간, 국군에 의한 민간인 강간도 당연히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에도 독버섯은 계속 자랐다. 주한미군 위안부인 기지촌 운영으로 생겨난, 부모 없는 혼혈아들과 주한미군에 의한 성범죄 및 살인사건.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대한민국은 쉬쉬했다.


한국전쟁이 휴전된지 70여년이 지났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미군범죄는 쉬쉬한다. 미군이 버리고 간 기지촌 여성들, 혼혈아들은 대체로 가난을 되물림했다. 혹여나 누군가가 미군을 처벌하자고 말하는 순간 “니가 감히? 빨갱이야?!” 라는 삿대질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래서 이 소설책 저자가 펜을 들었다. 한국전쟁과 멍청한 대한민국 정부, 주한미군이 심어둔 독버섯을 지금이라도 뽑기위하여. 칼보다 붓이 강하기에, 저자는 소설을 썼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주도하에 자행된 민간인 학살인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을 큰 틀로 하여, 그 속에서 참전미군의 각종 범죄와 기지촌(양공주), 혼혈아 등 한국전쟁으로 인해 파생된 각종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그러니까 이 책은 소설이지만, 픽션이 아니다.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25〜29일 미군이 충북 영동 노근리 경부선 철로 위에 영동읍 주곡리, 임계리 주민 500여 명을 피난시켜 주겠다며 모아놓고 무스탕 전투기로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은 1999년 9월 AP통신 보도로 실체가 드러났으며, 이후 한미 양국 합동조사가 이뤄지고 2011년에는 사건 현장에 노근리 평화공원이 조성되기도 했다. - 네이버 지식백과 中




이 소설책에는 여러 인물들이 나온다. 그 중 눈여겨 볼 주요 인물은 넷이다. 


하지스: 한국전쟁에 파견된 미군이다. 그가 마주한 한국전쟁은 중공군을 무찌르는게 아니었다. 빨갱이가 민간인으로 위장할 수 있으니, 민간인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고 죽이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고, 그 자리에 있었다. 뿐만 아니라, 동료가 서슴치않게 민간인 강간하는 것까지 보며 경악하며 회의감을 느낀다. 이에 반발하여 여자 하나만은 살리고자 한다. 하지만 그 역시 미군 범죄라는 족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오랜시간이 흘렀다. 그는 미국에서, 한국에서 훈장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죄책감을 안고 있다.


하봉자: 부자집 여종이다. 종년 팔짜 그러하듯, 봉자 팔짜도 그러했다. 부자집 둘째자식 도완구에게 팔려와 피난길에 올랐다. 피난길에 도완구는 봉자를 겁탈하려했는데, 미군과 맞딱드린다. 하지만, 팔짜 더러운 년은 어쩔 수 없다던가. 봉자를 겁탈하려는 대상이 도완구에서 미군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그 뿐인가? 봉자의 가족들은 민간인 학살의 피해자가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봉자의 삶은 고단했다. 오랜시간이 흘렀다. 그녀를 미군들은 ‘맘’이라 불렀다. 그녀는 미군들에게 음식을 팔고 있다.


도완구: 부자집 둘째아들이다. 친일매국노였다. 독립운동을 한 형제를 일본에 팔아넘겼다. 모처럼 내려온 본가에서 봉자를 보고 마음이 동하여, 봉자를 내달라고 행패를 부린다. 그렇게 봉자를 얻어와 피난길에 올랐다. 그리고 미군과 마주하여 죽을 위험에 처할뻔 했지만, 도완구는 어떻게든 미군에게 살아남는다. 미군은 그를 피난민을 모아둔 노근리 쌍굴다리에 던졌다. 오랜시간이 흘렀다. 친일매국노 출신인 그는 여전히 돈이 많다. 하지만 쓰레기에게 쓰레기 난다고 했던가. 그 아비에 그 아들이었다. 아들이 회사를 차지한 뒤로는, 뒷방 늙은이 신세다.


남득: 어려서 기지촌에 살았다. 엄마는 양공주였다. 남득은 혼혈이라는 이유로 ‘튀기’라 놀림받고 늘 소외된 삶이었다. 그래도 기지촌에 있으면서 미8군 음악, 당대 핫했던 대중음악을 듣고 자라며 독보적인 음악적 재능을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이 재능마저 도둑맞으며 그는 체념했다. 현재는 기술을 배워 하루벌고 하루먹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런 그의 운명을 되물림이라도 하듯 남득의 아들 영수도 척박한 삶을 산다.




잊은 사람, 끝나서 정리된 연으로 알았는데,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마법처럼 모든 것이 되살아났다. 전쟁이, 아니 학살이 앗아간 아버지와 어머니와 여동생, 그리고 그 학살이 남겨준 상처이자 유산인 남동생과 아들……. 58년동안 서리서리 쌓이고 곪아 터져서 짓무르고 굳어져 옹이가 된 기억들이 칼이 되고, 창이 되고, 바늘이 되고, 망치가 되어 그녀의 몸과 마음을 베고, 자르고, 찌르고, 쑤시고, 두들겨댔다. p 037


단군의 자손들은 자신들이 지켜주지 못해 탄생한 자신들의 자식들을 책임지지 않고 유기했다. 자신들의 무능으로 오랑캐와 왜놈들에게 잡혀가 능욕을 치르고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온 환향녀를 화냥년으로 만들어 스스로 책임을 회피코자 했던 치졸하고 비겁한 역사를 기꺼이 받아들여 재탕했다. 혼혈이 순혈들에게 빌붙어 먹겠다거나 해코지하는 것도 아닌데,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멸시하고 천대하고 구박했다. p 156


어머니는 이장에게 다시 물었다. 좌익 빨갱이 짓을 한 보도연맹원들을 잡아 죽였다고 하던데, 보도연맹과 아무 상관이 없는 봉수 아버지는 대체 왜 잡아가 죽인 것이냐고. 이장이 답을 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p 176


부모 품을 벗어나 멋모르고 하천 변 자갈밭에서 깡충깡충 뛰어다니다가 미군의 총격에 즉사한 어린아이의 시신이 피 웅덩이 속에 그대로 너부러져 있었다. 미군은 무리를 벗어나려던 -이탈이나 도주 목적이 아니라, 용변을 보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청장년만 죽인 것이 아니라, 멋모르고 움직이는 어린아이까지 죽였다. 움직이는 대상은 애어른을 가리지 않았다. p 278


이웃마을로 마실이라도 온 친지인 양 쌍굴다리로 어기적대며 다가와 기웃거리는 미군의 속내는 모르겠으나, 통역이 없으니 대화를 하려고 찾아오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원점사격을 하고 표적지를 확인하러 오는 사격수 같은 태도였다. 미군은 피난민 몇몇이 토막 영어로 울부짖는 애원을 개 짖는 소리인 양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는 돌아가서 다시 사격을 가하는 짓을 일과처럼 반복했다. p 286


얼마나 지났을까. 폭격과 총격이 잦아든 뒤 미군이 산속으로 달아난 피난민들을 향해 내려오라고 했다. 미군에게 붙잡힌 피난민이 미군의 명령을 받아 방송헀다. 이 말을 듣고 산을 내려간 피난민들은 사살됐다. 미군들이 쌍굴다리 앞뒤를 포위하고는 기관총과 박격포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p 310


그날 엄마와 두 동생을 잃었는데, 엄마와 봉순이는 아직껏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아마도 죽었을 터인데, 시신조차 찾이 못했다. 시신을 찾지도, 그날 그때 그곳에서 엄마와 봉순이를 봤다는 증언을 해줄 목격자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 -철둑 위와 쌍굴다리에서 학살된 대다수가 주곡리와 임계리 주민들이었으나, 타지인인 엄마와 두 동생은 아는 사람이 없어 증언할 목격자를 찾을 수 없었는데, 경우가 비슷한 다른 희생자들도 마찬가지였다-에 봉자는 58년이 지났어도 엄마와 동생들을 그 자리에서 잃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길이 없었다. p 311



이 소설이 엔딩으로 치닫는 과정은 씁쓸하다. 이 과정이야말로, 이 내용이 소설이면서 사실에 입각하여 쓰여진 글이라는 방증일테지만.




미군이 주도한 노근리 민간인 학살사건은 한국전쟁 시 일어난 다른 민간인 학살사건에 비하면, 그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무수한 어려움이 있었다. 국군이 주도한 학살사건이 아닌, 재조지은의 나라에서 온 미군이 주도한 학살사건이었기 때문이다. 2001년이 되어서야 미국의 ‘유감표명’으로, 겨우 기정사실화 되었을 뿐이다. 이 전까지만해도 ‘노근리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해 언급을 한 사람은 ‘빨갱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2004년 노근리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하지만 피해자 유족으로 인정받은 사람들은 대게 노근리에 연고가 있는 주민들이었다. 소설 속 봉자와 같은 케이스는 유족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비단 노근리 문제만이 아니다. 이는 제주 4.3사건, 광주 5.18 민주화운동 등 정부 주도하에 진행된 수많은 민간인 학살사건에도 동일하게 일어나는 문제 중 하나다. 목격자가 없다는 이유로, 연고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많은 희생자들은 피해자가 아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책을 쓴 저자가 존경스럽다. 보통 역사소설이라고 치면, 우리에게 먼 역사적 사건을 다룬다. 그래야 뒤탈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사소설 「붉은 그늘」 처럼 가까운 역사적 사건을 다룬다면 달라진다. 권력을 지닌 소수의 사람들에게 비난(더 나아가면 협박까지)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저자같은 사람들이 많아져야만, 권력을 지닌 소수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찾을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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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할매신을 만나다 - 여성, 나 자신을 찾아서
김경희 지음 / 공명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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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역사가 아니다. 하지만 신화를 역사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창조된 이야기가 신화이며, 이 신화가 구전되어 후손에 닿는다. 후손은 신화 속에 얼켜있는 이야기를 씨줄날줄 분리하여 다시 역사적 사실을 찾아낸다. 그렇기에 신화는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이들이 신화를 읽는게 아닐까?




우리나라에서도 신화는 꽤 인기있는 장르다. 하지만 대체로 그리스, 로마, 북유럽 신화가 인기 정점에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아이들이 즐겨보는 신화 만화책도 그리스 로마신화다. 이 얼마나 아쉬운 이야기인가. 우리나라 신화가 아닌 타국 신화를 즐기고, 타국 신들을 익숙해하는 상황이라니. 근데 뭐 그럴만도 하다. 주자학을 신봉했던 조선 5백년도 버텼던 우리 신들이었것만, 결국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수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살아남은 우리나라 신들은 대중들의 외면을 받고 있으니,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 책 저자처럼 외면받고 있는 우리나라 여신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헌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 저자는 우리나라 신이 아닌, ‘여신’이라고 지칭하며 우리나라 ‘여신’을 찾아다닌다. 나 역시 우리나라 신화 하면 ‘여신’을 먼저 떠올린다. 왜? 왜 여신이 먼저인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는 여성숭배가 당연시 되는 모계사회였다. 농경, 수렵, 채집을 하던 시기였던 고대는 노동력이 중요했다. 노동력 생산은 출산이 가능한 여성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여성의 권위가 높았다. 전 세계적으로 발굴되는 나체 여인상이 그 증거다. 따라서 고대부터 숭상되는 신은 여신이었다.



하지만 청동기/철기 시대에 이르며 사회가 변했다. 잉여산물이 생겨났고, 노동력 수요가 급감했다. 잉여산물을 노획하기 위한 영토싸움이 시작된다. 따라서 금속기를 휘두를 수 있는 남성의 지위가 높아졌다. 그렇게 부계사회가 시작되었고, 여신들은 지위를 잃었다. 모든 권능과 지위는 남신이 가져간다. 예컨데 어머니 신이었던 헤라가 훗날 제우스의 배우자이자 질투의 화신으로 변모하고, ‘샛별’을 의미하던 여신 루시퍼가 타락한 악마가 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나라도 단군신화가 들어오기전에는 부족별 토템신앙(곰, 호랑이) 라던가 마고할미(창조여신류)를 숭배했다. 하지만 철기를 지닌 고조선이 들어오며 토템신앙은 건국신화 속 하위신으로 흡수되고, 창조여신들은 산신이나 마을신으로 밀려났다.



이제 우리 나라 여신을 찾아볼까? 우리나라 여신들은 크게 건국신화, 산신, 마고신, 불교신, 자연신, 마을신, 무속신으로 나뉜다. 조금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불교신이면서 무속신에 들어가있는 여신도 있고, 자연신이면서 무속신에 들어가있는 여신도 있고 뭐 그렇지만 거기까지난 각설하고!



건국신화 대표여신으로는 위에서 말한 웅녀를 포함하여 하백의 딸 유화(주몽 모), 박혁거세 부인 알영이 있다. 산신/자연신은 정견모주(가야산신), 용녀(왕건 조모) 등이 있다. 마고신으로는 노고할미, 설문대할망 등이 있고, 마을신으로는 삼신할매, 조왕할미, 측신 등이 있다.




 


이 책 『한국의 할매신을 만나다』 는 저자가 이 땅에 살아있는 할미신을 찾는 여행에세이 혹은 답사책이라 할 수 있다. 내용도 그리 어렵지 않다. 한국 신화 초심자에게 더할나위 없이 친절한 책이다. 다만 한국 신화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이 꽤 심심할지도 모르겠다. 나만해도 책 속 내용이 대체로 다 아는 부분이다보니 썩 흥미롭지는 않았다. 초심자라면 더 궁금할 내용이 있을법한 부분도 스무스하게 지나간다. 



확실한 건 이 책은 한국 신화에 대한 교양서적이 아니라, 저자가 여신 설화가 구전되는 장소를 찾아다니는 여행에세이 또는 답사기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여신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을 원한다면, 차라리 한국 신화 교양서를 찾아 읽는게 낫다. 반면에 신화가 얽힌 장소를 여행 또는 답사를 하고 싶다면 이 책이 꽤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근데 여기서 이제 또 함정이 있는게, 뭐랄까 이 책은 ‘여신’에 중점을 맞췄다기 보다는 ‘여성’에 중점을 맞춘 느낌이랄까?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다. 내가 TMI를 빙자하여 서론이랍시고 구구절절히 쓴 저런 이야기도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없다. 신화에 있어서 기본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자궁 이야기를 해볼까? 나는 솔직히 내 자궁에 대해서 그다지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14세부터 무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엄청난 생리통과 여러 몹쓸 증후군을 안겨준 것이 나의 자궁이기 때문이다. (…) 그런데 요즘 나는 자궁에 대해 좀 다른 생각이 든다. p 048



자궁을 가진 여성들은 시나브로 나이가 들고 어느 시기가 되면 할머니가 된다. 그러니 여성이 없었더라면, 혹은 할머니가 없었더라면 인류는 존재하지 못했을 거라는 이야기가 되겠다. 여성의 현신인 어머니들과 할머니들의 존재를 사랑하고 그녀들이 하는 일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 나아가 남성들이 그 일에 당연히 동참하는 것은 이 시대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힌 혐오를 깨고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 아닐까. p 049



그러니 가믄장아기가 될 수 없는 ‘당당하지도 혹은 솔직하지도 못한’ 여성들은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 현실에 타협하고 순응하는 것, 인형과 같은 삶을 사는 것, 잘난 체 하고 자신의 이익만 취하려 든다면 이러한 업의 대가로 가믄장아기 이야기 속의 우매한 여성들처럼 청지네와 말똥버섯의 몸으로 환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p 094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할매신’ 이 아닌 ‘여성’ 이었다. 보통 책 제목을 보면 어떤식으로 내용이 흘러가는지 예상이 되곤 한다. 이 책 제목은 ‘한국의 할매신을 만나다’이고, 부제가 ‘여성, 나 자신을 찾아서’다. 역시 어느정도 예상은 했었는데, 이건 뭐. 주객전도였다. 제목이 부제로 가고, 부제가 제목으로 가야 이 책과 맞지 않을까 싶은?



저자는 순수하게 ‘할매신’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여성혐오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이 책을 집필한게 느껴졌다. 물론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실제로 여신들의 권위가 떨어지고, 하위신으로 밀려나게 된 건 남성중심사회가 되면서였으니까. 따라서 여신을 이야기할 때 이런 내용은 필수불가결이다. 하지만 이 책은 거기서 더 나아간 듯 보인다. 어쩌면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한 승부수였을지도. 하지만 순수하게 한국 신화를 좋아하는 독자 입장에서는 썩 좋지 않았다. 내 지적 탐구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기도 했고.


 



마고는 어떤 의미일까? 마고할미 신화는 한국 민간에서 구비전승되어온 거인 여신의 창세신화다. 마고할미는 마고의 한자표기가 대륙 신화에서 천지를 창조했다고 하는 반고와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한자가 다르듯 그 의미도 전혀 다르다. 한국에서 마고는 단순히 ‘노파’라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제주에서 ‘묻혀 죽은 노파’라는 뜻에서 ‘매고할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즉 우리나라 토착신앙인 셈이다. p 057



마고할미 설화가 궁금하다면 한반도 여러 곳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마고할미가 쌓았다고 하여 ‘마고산성’이라 부르는 성만해도 전국에 수없이 많다. 경기도 양주 노고산성(마고성), 충주의 마고산성, 거제의 마고산성, 양산의 마고산성 등이 있으며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어 전해지는 마고할미 이갸기들은 수없이 많다. 마고할미가 만들었다거나 그녀의 집으로 불리는 고인돌만 해도 그렇다. 강화도뿐 아니라 전남 화순의 고인돌 유적에서도 마고할미 전설을 만날 수 있다. 이 지역 주민들에게 대대로 ‘핑매바위’로 불려온 바위다. 핑매바위에 전해지는 전설 역시 마고할미가 주인공이다. p 064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한국 신화 초심자가 읽기에 이 책은 썩 나쁜 선택은 아니다. 쉽고 간결하니까. 뿐만아니라 여신 설화 전승지 답사 안내서로도 그리 나쁘지 않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책은 신화 교양서가 아닌, 에세이다. 에세이. 전문적인 내용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추천하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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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터넷 상에서 자주 보이는 단어가 있다. 일명 ‘공능제’. 얼핏보면 무슨 제도인가? 싶은 이 단어는 ‘공감 능력 제로’라는 말의 줄임말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요즘 뉴스에서 접하는 사건사고와 그런 사건사고를 대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공감능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사실을 느낀다. 그중에서도 유독 사회적 약자나, 나와 성향(또는 취향)이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모름지기 공감능력이란, 어려서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배워나가는 중요한 역량 중 하나다. 이런 공감 능력이 결여된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건, 과거와 달리 요즘 가정과 학교에서 인성교육을 간과한채, 오로지 대학 입시를 위한 교육에만 매몰되어있는 것과 결을 같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처럼 인성교육을 중요시 하는 부모들도 분명히 있다. 그런 부모들을 위해 어린이도서 『제로학교』를 소개하고 싶다.



1. 메이트 러너

2. 몽당연필

3. 고치고치

4. 뻐꾸기게임



『제로학교』는 위 4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공감능력이 제로인 학생들이, 실은 공감능력이 제로가 아니라는 것. 우리 어린이들이 제로에서 한발짝 나아갈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첫번째 에피소드 『메이트 러너』 中

“다들 기주 팬클럽이야? 와, 진짜 너무한다!”

지금까지 교실에서 그 누구도 나에게 어디서 전학 왔냐, 뭐를 좋아하느냐 묻는 애가 없었다. 그런데 기주는 예외인 것 같았다. 눈이 나쁜데도 달리기를 하는 기주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전제가 붙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기를 하는 대단한 친구가 기주였다. p 027


믿을 수 없었다. 나처럼 달리기에 진심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뛰었다. 뒤에서 기주의 눈길이 느껴졌다. p 031


달리기를 좋아하는 마음이 나와 같은 기주라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달리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제야 가슴 속의 돌멩이가 사라진 것 같았다. p 037



분명 어딜가든 조건은 나보다 좋지 않은데, 이상하게 성적이(또는 성과가) 나보다 좋은 친구들이 있다. 나보다 잘하기에 당연히 시기, 질투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시기, 질투가 부정적인 감정으로 진화하게끔 두는 것은 절대 금지! 이는 본인에게도 엄청난 독이 된다.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도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였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자기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아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인정하기 시작하니, 자연스레 공감이 되었고, 그렇게 그들은 서로에게 힘이되는 러닝메이트가 되었다. 성적이 좋아지는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선물과도 같은 것!



▶두번째 에피소드 『몽당연필』 中

아리처럼 적극적인 아이는 처음 봤다. 그러다 말겠지 싶었는데 오래가고 지치지 않는 건전지를 닮았다. 아리는 먼저와서 말을 걸어 주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아리가 내 이름을 부른 순간부터 조용했던 학교 생활이 시끌벅적해졌다. p 051


늦지 말라던 아리는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놀이공원 시계탑의 시침은 열한 시를 가리켰다. 아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온다던 애들도 연락이 안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때 SNS 게시물 업로드를 알리는 알림이 떴다. 아리의 계정이었다. p 061


남자아이의 가방에 매달린 몽당연필이 그날 떨어진 몽당연필이라고 해도 더 이상 내가 주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서 아리에게로 갔고 아리는 처음부터 찾을 생각이 없었다. 몽당연필의 새로운 주인은 적어도 아리와는 달라 보였다. 나랑 같은 연필 덕후가 같은 학교에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쫙 펴지고 웃음이 실실 나왔다. 아침밥을 먹지 않았는데도 괜히 든든했다. p 071



‘아싸’ 라는 말이 있다. 풀이하면 아웃사이더. 교실에서 자의 또는 타의로 혼자있는 친구들이다.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 역시 아싸였다. 자의보단 타의에 속하는 아싸. 그러던 어느 날 보기만해도 반짝반짝 빛나던 아이가 다가오면서, 자신의 학교 생활도 빛이 나기 시작했다. 모두 그 친구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게 고도의 괴롭힘이었다면?



이런 사실을 알게되면 보통은 위축될지도 모른다.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도 위축되었다. 아니 위축될뻔했지만, 바로 일어설 수 있었다. 오히려 자신을 교묘하게 괴롭히던 그 아이가 불러도 움츠러들지않고, 당당하게 교실 문을 열 수 있게되었다. 곁에 있지 않아도, 나를 공감해주는 누군가가 있음을 알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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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세 기적의 뇌과학 육아 - 컬럼비아대 뇌과학자 엄마가 알려주는 생후 1,000일 애착 형성 가이드
그리어 커센바움 지음, 이은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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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첫 돌이 되기 전까지는 육아책을 자주 읽었던 것 같다. 하지만 첫 돌이 지난 후부터 두 돌이 된 지금까지, 한동안 육아책을 보지도 사지도 않았다. 일단 회사-육아 쳇바퀴 일상으로 바쁜 것도 있었고, 과거에 읽었던 육아책에서 하지 말라는 것들은 대게 1분 1초가 바쁜 워킹맘에게는 지키기가 너무 어려운 게 많았으니까. 예컨데 일상 생활습관 면에서.




나는 출근을 해야 한다. 하지만 출근하기 전에 아이 깨우고, 밥먹이고, 씻기고, 옷입히고, 등원을 시켜야 한다. 육아책에서는 엄마가 다 해주면 안된다고, 떠먹여주면 안되고, 아이에게 ‘보상’을 주면서 하게 하면 안되고, 어쩌고 저쩌구. 죄다 하면 안된다는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태반. 그래서 난 육아책을 멀리했다. 



그렇게 내 아이는 이제 두돌이 지났다. 놀랍게도 육아책에서 하지말라던 그런 것들을 해왔음에도, 내 아이는 너무 정상적으로 잘 자랐다. 너무나 독립적이며, 심지어 또래 개월수보다 성장 발달도 빠르다. 전문가가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했는데도 너무 잘 자라줘서, 내 아이가 예외인가 싶었다. 



이제 어느정도 육아관 정립이 되었기에 #육아책 한 권을 골랐다. 오늘 리뷰하는 육아책 『0~3세 기적의 뇌과학 육아』다.



이 육아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사실 하나. 내 아이가 또래보다 발달이 빨랐던 건 예외 케이스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거기다 이 책에 따르면, 놀랍게도 나는 내 아이 뇌가 잘 발달할 수 있는 육아를 하고 있었다는 거다!! 이것은 마치 소가 뒷걸음 치다가 쥐를 잡은 느낌!! 


※흔히 널리 알려진 육아에 대한 ‘오해’ ▶ 진짜 ‘오해’인 이유※


아기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므로 영아기의 경험은 중요하지 않다 ▶ 영아기의 기억은 뇌에 암묵적 기억으로 저장되어 정서뇌와 무의식을 구성한다.


아기가 울 때 무조건 달래주면 버릇이 나빠지고 의존성이 높아진다 ▶ 아기가 보내는 신호에 충분히 반응해주어야 정서뇌가 발달하며 독립성 또한 커진다.


아기는 스트레스 상태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다 ▶ 3세 이전의 아이는 그럴 능력이 없다. 해마와 전전두피질이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와 무언가 활동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 아이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와 부모의 뇌가 성장한다.


마땅한 이유가 있을 때만 아이의 스트레스와 감정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 좋다 ▶ 아이의 모든 스트레스와 감정에 대해 그렇게 느껴도 된다는 안정감을 주어야 한다.


아이의 뇌 발달에 도움이 되는 제품을 사야한다 ▶부모의 존재 자체가 아이의 뇌 발달에 가장 중요하다.


아이가 잘 자라려면 많은 수업에 참여하고 사회활동을 하게 해야한다 ▶ 아이에게 필요한 건 부모의 몸으로부터 느끼는 감각 경험이다.


밥은 정해진 시간에 줘야한다 ▶ 아이가 생리학적 신호를 느껴 배고픔을 표현할 때 밥을 주면 된다.


우는 아기를 안아줘도 큰 변화는 없다. 아기들은 어쨌든 운다 ▶ 얼마나 오래 울든 간에 우는 아기를 안아주는 행위 자체가 좋은 육아다.


아기가 혼자 다시 잠드는 법을 배우려면 수면 훈련이 필요하다 ▶ 아기들은 늘 자라고 있다. 뇌 발달 과정에서 큰 변화를 겪으면 간혹 더 자주 깨는 경우가 있다. 이 시기가 지나면 뇌가 더 발달하며 수면 패턴도 안정된다.




정신 건강은 대체로 태어나 3세가 퇼 떄까지의 시기에 형성된 복잡한 정서적, 인지적 뇌 회로의 변화를 통해 형성된다. 영아기에는 네 개의 주요 뇌 회로가 생성된다. 편도체, 시상하부, 해마, 전전두피질이라 불리는 네 영역은 정신 건강, 관계, 인지 등 모든 뇌 기능의 근간이다. 뇌과학적 관점에서 정신적, 정서적 건강은 회복탄력적인 스트레스 체계에 뿌리를 둔다. p 008



안정적으로 보살펴주는 양육자가 있을 때 영아의 뇌는 옥시토신으로 시작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도파민, 세로토닌, 엔도르핀, 가바로 이어지는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 종합선물 세트를 분비한다. 아이의 뇌가 옥시토신에 둘러쌓이면 스트레스와 감정, 관계, 갈등을 다루는 능력이 크게 향상된다. 회복탄력성이 커진다는 의미다. p 033



부모는 언제나 내 아이의 사회성, 사교성, 학업성취도, 공감능력 등을 걱정한다. 걱정이 너무 많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근데 아이를 낳고 보니, 정말 이 모든 걸 걱정할 수 밖에 없더라. 내 아이를 향한 수많은 걱정들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걱정하는 이 모든 것들은 생각보다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전부 건강한 정신과 신체에서 발현되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내 아이가 건강한 정신과 신체를 지니기 위해선 어떻게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회복탄력적인 스트레스 체계가 정립되어있어야 한다.



스트레스 회복탄력성이 부족한 아이가 성인이 된다면, 이러한 일들이 발생할 것이다. 이들은 사회에서 맞닥뜨린 각종 시련과 사고에 대처할 능력이 부족하여, 그로 인한 스트레스, 불안, 우울 등 부정적인 감정에 잠식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성인이 된 이들 중 일부는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정신의학적인 치료나 명상 등의 도움을 받을 지도 모른다. 



만약 내 아이가 이런 어른이 된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이렇게 자라지 않게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 그 방안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회복탄력적인 스트레스 체계를 정립하는 시기를 잘 케어해주면 되는 것이다. 그 시기가 언제인가? 다름아닌 0세 ~ 3세, 영아기다. 



영아의 뇌는 이미 기능하고 있는 생존뇌 회로, 미성숙하고 아직 발달 중인 스트레스 체계를 포함한 정서뇌 회로, 이제 막 생겨나기 시작하는 사고뇌 회로라는 독특한 구성을 보인다. 정서뇌와 사고뇌회로가 아직 성숙하지 않은 이 시점에서 양육은 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태어나 첫 3년 동안 유전적 요인과 경험에 의해 이 회로의 뇌세포가 연결되며, 개인으로서 지녀야 할 능력이 점차 성숙된다. p 046



기존의 연구는 두 가지 중요한 점을 보여준다. 첫째, 부모가 되는 누구든 커다란 뇌의 변화를 겪는다. 둘째, 부모의 뇌는 더 큰 변화를 경험하며, 육아에 필요한 능력은 생후 초기에 아이를 돌보는 데 쏟는 시간에 비례해 얻는다. 부모가 되고 처음 몇 달 동안은 ‘부모의 뇌’가 발달하는 시기로, 이때 부모의 뇌가 부모 자신과 아이에게 도움이 되도록 변하게 하려면 양육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 p 077



여러 연구에 따르면 ‘어머니기’와 ‘아버지기’는 성인기에 발견되는 가장 놀라운 되 변화와 신경가소성 발현의 시기다. 즉 육아를 위해 건강한 뇌 회로를 새롭게 만들 기회이자 우리 정신 건강의 기저에 있는 정서뇌 회로를 바꿀 기회다. 영아기의 아이들을 풍부하게 양육할수록, 가까이 있을수록, 더 반응해줄수록 옥시토신이 더 많이 분비된다. (…)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는 먼 나라 이야기다. 특이 열악한 육아 문화에서는 부모의 변화를 넓은 마음으로 포용하거나 보듬어 주지 않으며, 마땅히 받아야 할 존경심도 보이지 않는다. 부모에게 그 어떤 사회적 지원도 제공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와 직장 문화 개선을 요구하는 동시에 부모로서 필요한 사항을 요구하고 구축해가는 건 우리의 몫이다. p 078



부모가 되며 뇌가 변화할 때 많은 부모가 양가감정이라고 하는 상반되는 감정을 느낀다. 부모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생기는 일이다. 진심으로 아이를 사랑하지만,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도록 누군가 와서 아이를 좀 데려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가 꺄르르 웃는 소리에 완전히 매혹되었다가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데서 원망이 느껴지는 때도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러 상반되는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되리라는 점을 꼭 이해하면 좋겠다. 깊은 사랑은 물론 깊은 슬픔을 동시에 느끼게 될 것이다. 많은 초보 부모가 이럼 감정이 들 때 부모로서 잘못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를 부모가 되는 과정에서 겪는 주요한 인생 경험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상반되는 당신의 감정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모두와 공유하자. 당신의 감정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p 092



아이를 낳고 키운지 이제 2년이 지났다. 지금까지 내가 들어왔던 육아 정보들 중 제일 큰 비중을 차지했던 건 부모 없이 혼자 잘 수 있는 ‘수면교육’, 너무 자주 안아주면 버릇이 나빠지며 아이 ‘독립심’도 키울수 없다 등이었다. 그래서 나 역시 애 낳고 초반에는 수면교육이다 뭐다하며 아이를 울리는 일이 잦았다. 그러다보니 어느순간부터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아이가 싫다며 우는데, 수면교육을 하는게 맞는건가? 오히려 같이 자면서 아이를 편안하게 해주는게 맞지 않나. 뭐 이런 거? 물론 같이 자면 부모 수면의 질이 떨어지긴 하지만, 아이와 달리 우리는 성인이니 그 정도야 어떻게든 버틸만하니까. 그래서 갓 두돌이 지난 지금도 나는 아이와 같이 자고 있다. 



위에서도 말했듯 나는 육아 전문가들이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했다. 하지만 이 육아책에 따르면, 나는 의도치 않게 아이 뇌 발달을 돕는 뇌과학 육아를 하고 있었다. 그런 우리 아이, 두 돌이 된 우리 아이는 이렇게 자랐다. 



독립심이 엄청나다. 뭐 지금이 그런 시기이기도 하지만, 뭐든 ‘스스로’ 하는 걸 좋아한다. 수면도 그렇다. 부모와 같이 잠들면 편안하게 잘잔다. 물론 예외적인 상황도 있다. 예컨데 아프거나, 치아가 나오거나, 혹은 성장통! 근데 이런 예외상황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평소처럼 돌아온다. 



그 뿐만이 아니다. 또래 개월수 대비해서 성장발달이 꽤 빠르다. 빠르다고 생각해본적이 없었는데, 얼집 선생님 말씀을 들어봐도 그렇고, 얼집에서 같은 반 아이들을 봐도 그렇고 우리 아이가 확실히 빠른 편이다. 대화는 기본이고 긴 문장 구사도 잘하며, 타인의 슬픈 감정을 인지하여 위로할 줄도 안다. 



정말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었던 내 육아법이 잘못된게 아니란 사실에, 알고보니 과학적이라는 사실에 두 번이나 놀라게 한 육아책  『0~3세 기적의 뇌과학 육아』. 내년에 엄마가 될 내 친구에게 선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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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동화’라 하면 권성징악 따위를 말하는,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좋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일컫는다. 심지어 동화의 ‘동’짜는 한자로 ‘아이’를 뜻한다. 하지만 의외의 사실 하나. 동화는 생각보다 잔혹하다.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보통 편집되고 각색된, 아름다운 이야기만 보고 자라왔으니까. 하지만 그런 동화의 원본을 거슬러 올라가면, 뭇사람들은 깜짝 놀랄 정도로 잔혹한 이야기가 많다. 



실제로 “백설공주”, “라푼젤”, “피노키오”, “빨간모자” 등 원전은 아이에게 읽어줄 수 없는 잔혹한 내용을 담고 있다. 비단 서양 뿐이랴? 동양, 특히 우리나라 동화인 “콩쥐팥쥐”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이렇게 무서운 동화를, 진정 동화라고 해도 되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이름하야 ‘잔혹동화’ 다.



우화외 괴담을 한 접시에 플레이팅한 어른을 위한 야식

강지영 소설가 추천사



이 장편소설 『귀여운 것들』  실로 ‘잔혹동화’에 걸맞는 책이다. 제목만 봤을 땐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동화같지만, 책을 펼치면 잔혹한 세상이 펼쳐진다.


이 책속에 나오는 등장인물과 등장인형(?). 등장인형이라고 하니 좀 이상하긴 한데, 진짜 등장인형이다. ‘도살자 깔랑’, ‘그로테’, ‘어디든 뼈다귀’ 등 전부 인형이니까. 이희지의 애착인형이었던 깔랑, 인형 공장에서 불량품이었던 그로테, 혹 난 쥐라 불린 뼈다귀, 그리고 지점토 인형까지. 모두 인형이다. 사람에게 사랑받았고, 사랑받길 원했고, 사랑받기 위해 사람 손에서 태어난 인형들.


난 첫 단락인 ‘깔랑’편에서부터 꽤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를 잊었어? 내가 보이지 않아?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우리는 정말 좋은 친구였잖아. 나밖에 없다고 그랬잖아!’ 

하지만 깔랑은 인형일 뿐이었다. 움직이지 못하고 말도 못하는 인형. 짧은 시간 동안 사람에게 사랑받다가 쓰레기봉투 안에 버려진 후에 매립지에 묻힐 운명을 가진 인형 말이다. p 021


한편으로 이희지가 밉고 원망스러웠으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웠다. 이희지는 깔랑의 평생을 지배하고 있던 유일한 인간이었으니까. p 048


깔랑은 그걸 알고 있었다. 어떤 것들은 제 처지를 그저 수용하며, 모든 상황을 꾸역꾸역 감내해내기도 했다. 그게 바로 이희지였다. 깔랑은 그런 주인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인간 곁에 저라도 찰싹 달라붙어 손톱만 한 온기라도 전해주고 싶었다. p 058



네발로 기던 한 여자아기의 애착인형이었던 ‘깔랑’. 깔랑은 아기의 일상을 온전히 함께했다. 하지만 아기가 아이가 되고, 청소년이 되갈수록 깔랑은 아이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비단 깔랑이 하나만의 일일까? 한 아이의 애착인형이 되었다가, 그 아이가 커가면서 어느새 잊혀져 서랍장 구석에 쳐박히고, 소각용 봉투에 들어가는 것. 대다수의 인형의 삶이다. 나역시도 어렸을 땐 분명 애착인형이 있었을 터인데 당장 기억나는게 없기도 하고.



이제 두돌인 우리 뿡뿡이도 없으면 울고 불고 난리날 애착인형이있다. 이미 해질대로 해진 애착인형. 혹시나 안에 솜이 터질까, 똑같이 생긴 인형을 하나 더 사서 보관중인 애착인형. 이 인형들의 끝은 어떨까? 우리 뿡뿡이가 더 커서, 더 재미있는 무언가에 빠지게 되면 애착인형의 존재를 잊게 될테고, 그럼 나는 정리를 한답시고 해져버린 이 인형들을 버릴지도 모른다. 아무 양심의 가책도 없이. 그래서 이런 소설이 나왔나보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탄생했으나, 쓸모가 다하면 버려지는 귀여운 것들을 위해.


사랑도 받아봐야 제대로 줄 수 있다고 했던가. 검은 여자가 홧김에 지점토 인형을 때려 부수고 다시 이어 붙여줬던 것처럼, 지점토 인형이 다른 인형들에게 줄 수 있는 종류의 애정도 그런 것들뿐이었다. (…) 하지만 그로테는 달랐다. 그로테는 익숙한 길로만 달리던 지점토 인형의 방향을 틀어주었다. p 160


지점토 인형은 엄마가 만들어주었으니 그저 존재하면 됐다. 돌망치가 내리쳐 지점토를 깨부쉈으니 파괴되는 수밖에 없었다. 다시 엄마가 지점토를 뭉쳐줄 때도, 그냥 가만히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됐다. 그러니까 이제까지 지점토 인형은 간절했던 적이 없었다. 나를 위해서도, 내가 아닌 누구를 위해서도. 이토록 가슴 뭉클해진 적이 없었다. 그래서 지점토 인형은 선택해다. 건너도 될지 아닐지 모르겠는 신호등을 그냥 건너버리기로. p 180


어찌보면 한국판 ‘처키’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던 이 소설의 시작. 헌데 이 책을 읽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이게 정말 ‘인형’만 겪는 일이 맞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인형 ‘깔랑’은 누군가 키우다 버린 반려동물과 오버랩되고, 지점토 인형은 가정에서 학대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 아이와 오버랩된다. 또다른 등장인형인 뼈다귀, 그로테도 사회적 약자인 누군가를 떠올리게 된다. 분명 버려진 애착인형 ‘깔랑’에서 시작된 소설인데, 이상하게도 이 소설은 사회적 약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소설 속 인형의 눈으로 본 인간 세상과, 내가 살고 있는 현실. 소름끼치도록 오버랩되서 되려 찝찝함과 왠지모를 답답함만이 가슴에 남았다.



​마지막으로, 이토록 차가운 도시에서 자신만의 자유를 찾아나설 나의 깔랑, 그로테, 뼈다귀, 흰털, 곰 그리고 동그라미가 된 지점토, 너희의 내일을 응원할게! p 234 (작가의 말 中)



부디 이들이 억압되지 않고, 자유로이 날 수 있는 날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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