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 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 대한민국 도슨트 6
이서후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tvN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보고, 남부지방을 간다면 꼭 가보리라 싶었던 지역 통영. 하지만 지금까지도 멀다는 이유로 못 가본 통영. 언제쯤 가보나 고민만 하고 있던 통영인데, 때마침 「대한민국 도슨트」 다음 시리즈로 통영 편이 나왔다. 








난 통영은 이순신 장군으로 시작해서, 이순신 장군으로 끝나는 도시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니 사실, 어느 도시는 그 도시를 대표하는 유명인물이 하나 둘쯤은 있지만, 통영은 참 여러사람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 처럼 관광을 위해 내세우는 인물들도 여럿이고,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통영을 만든 사람들도 있었다. 통영은 ‘사람들’이 만든 도시이자, 그 ‘사람들’ 덕분에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 도시 통영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7년 후 당시 제6대 이경준 삼도수군통제사는 새로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할 장소를 찾고 있었다.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해안을 다 뒤지던 그가 ‘여기다!’ 하고 찾은 곳이 두룡포였다. 선조 임금의 허락이 떨어진 게 1604년 9월 9일이다. 조선 최초 군사계획도시였던 통영 역사는 사실상 이때부터가 시작이다. p 023






이 때부터 300년 가까이 통영은 전함 500여 척, 수군만 3만여 명이 주둔하는 조선 최대 군사도시였다. p 069






통영하면 떠오르는 이순신 장군. 이순신 장군이 처음 통제영을 설치한 곳은 통영에 속한 섬인 한산도였다. 하지만 한산도 통제영은 짧은 순간에 사라졌다. 선조의 못난 질투심으로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을 할 때였다. 선조와 마찬가지로 이순신 장군에게 못난 시지, 질투를 갖던 원균. 그는 이순신 장군의 자리였던 삼도수군통제사에 올랐고, 한산도 통제영을 지휘했다. 그리고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했다. 조선의 수군은 궤멸했다. 이순신 장군이 다시 돌아왔을 때, 통제영은 완도에 속한 섬인 고금도에 설치되었다. 그러니까 이순신 장군이 통영에 있었던 때는 그리 길지 않았다.






그리고 1603년. 제6대 통제사인 이경준이 바로 이곳, 통영에 다시 터를 잡았다. 그 때부터 ‘통제영=통영’이 성립되었고, 조선최대군사도시 통영이 된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 이순신 장군이 아니라, 바로 이경준 장군에 의해 시작된거다. 




원래는 100여개의 크고 작은 건물들이 있었던 통제영 관아는, 현재 세병관(객사) 한 동만 남았다. 일제강점기 때 죄다 허물었기 때문이다. 세병관이 살아 남은 이유는? 학교건물로 사용하기 적합했기 때문이다. 이걸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지. 이쯤에서 눈치채겠지만, 일제강점기 통영도 많은 수난을 겪은 도시이기도 하다. 이렇든 저렇든 통영은 일본을 대파한 이순신 장군이 머물렀던 곳이기에, 일본입장에서는 통영은 짓밟아야 할 도시였던 것이다.




통영반도와 미륵도 사이에 나있는 좁은 물길, 통영운하. 이 운하를 만든 시기는 일제강점기다. 그러니까 일본인의 의지로 파낸 운하다. 물론 기존에도 물길이 있었긴 하지만, 일본이 이렇게 본격적으로 운하를 만들어낸 이유는 무엇일까. 책에는 별다른 말이 없었지만, 이유는 뻔하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알 것이다. 그래서 통영8경에도 뽑히는 이렇게 멋진 통영운하가, 한없이 멋지게만은 보이지 않는 이유다. 






통영운하 아래에는 해저터널도 있다. 그 해저터널 역시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무려 ‘동양최초’ 해저터널이다. 이 해저터널이 지어졌을 당시, 일본인들이 붙였던 이름을 보면 더 씁쓸하다. 그 이름은 바로 ‘태합굴’.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의 ‘태합’자리에 있었다. 그러니까 이 해저터널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임진왜란 당시, 통영 한산도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대패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임진왜란 이후 약 300여년이 흐른 뒤, 일본은 본인들이 대패했던 그 통영바다에 보란듯이 해저터널을 만든것이다. 과거에는 일본이 졌지만, 지금은 일본이 이겼다는 사실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그런 가슴아픈 곳이 바로 통영해저터널이다.






이순신 장군도, 박경리 소설가도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사람이다. 그분들의 자취가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그분들을 기리는 무언가가 있다. 하지만 통영 음악가 ‘윤이상’. 이 음악가는 오래도록 수면아래에 있었다.






“그러게 왜 간첩질을 해! 간첩질을 안 했으면 영웅이 됐을건데!” p. 120







아직까지도 일부 사람들은 윤이상 음악가를 저렇게 바라본다. 간첩, 빨갱이, 배신자…. 그에게 따라붙던 꼬리표다. 대체 왜일까?






1967년, 박정희 정권. 중앙정보부에서 간첩단을 대거 잡아들인다. 일명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이다. 독일에 체류중이던 수 많은 한국인들이 다짜고짜 납치되어, 한국으로 끌려와 간첩이라며 고문을 당했다. 윤이상도 그 중 하나였다. 세계적인 음악무대에서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리고, 기립박수를 받았던 음악가였던 윤이상이 말이다(윤이상 외에도 서독에 있던 수 많은 교민들이 간첩이라는 죄명하게 죄다 납치되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외국에 머물던 이들에게 북한에 대한 반감은 있었으나 ‘분단’이라는 인식은 강하지 않던 시기였다. 실제 북한과 은밀하게 정보를 주고받은 이도 있었겠지만, 정치적인 일이라 생각치 못하고 동베를린으로 넘어가 북한 사람을 만난 이들도 많았따. 잡혀 온 이들이 받은 고문은 혹독했다. 윤이상도 결국 그를 죽기 직전까지 몰고 간 물고문 끝에 ‘북한에 봉사하는 공산주의자’ 라는 자백을 하고 말았다. 그해 12월에 열린 1심 재판에서 무기 징역, 2심에서 징역 15년, 3심 최종에서는 징역 10년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동베를린 사건은 이미 수사 과정에서부터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었고, 독일 정부는 윤이상이 무리하게 끌려가 수사를 받았다며 특별사면을 요구했다. 세계적인 음악가인 스트라빈스키, 카라얀 등을 포함한 음악인 200여 명도 한국 정부에 공동 탄원서를 보내 항의했다. 결국 1969년 2월 25일 윤이상은 대통령 특사로 풀려나 독일로 추방됐다. p 126







동백림 사건으로 간첩으로 지목된 194명. 과연 이들 중, 저들이 말하던 진짜 간첩이 얼마나 있었을까? 분명 그들이 동독 북한대사관을 자주 찾기는 했다. 다만 당시는 남한보다 북한의 국력이 조금 더 나은 편이었기에, 북한대사관에서는 남한 유학생들에게 밥한끼 먹여주는게 흔한 일이었다. 그 결과 윤이상은 빨갱이가 되었고, 모국에서 추방당했고 죽을 때 까지 돌아오지 못했다. 죽은 지 23년이 흘러, 정권이 바뀐 뒤에 그의 유해가 비로소 통영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제 통영은 윤이상의 도시가 되었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빨갱이가 되었었고, 나라의 위상을 빛낸 사람이 되기도 한 윤이상. 그의 기구한 일생이 바로 이곳 통영에 있었다.




 


이 책속에는 통영의 어느 한 시간대에 있던 사람들은 분명 여럿 있었다. 이순신 장군을 필두로, 이경준 장군, 백석 시인, 박경리 소설가, 윤이상 작곡가, 김성수 장인, 김용우 동장 등. 그 중에서도 나는 이상하리만치 빛나는 인물들 보다는, 그늘에 가려진 인물들에게 한없이 마음이 갔다. 비슷한 의미로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지형, 지물에도 마음이 간다. 




지금의 통영은 한려수도 해상국립공원이 떠오를 만큼 푸르른 해양도시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아픈 역사가 있고, 이렇게 푸르른 해양도시를 만들기 위해 뒤에서 애를 쓴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본에 대한 여섯 개의 시선은 ‘오타쿠’, ‘혐한’, ‘뉴미디어’, ‘센고쿠시대’, ‘평화헌법’, ‘일본미’를 향한다. 하나같이 현재의 일본을 읽어 미래의 일본을 전망하는 데 필수적인 주제어다. 이는 각각 대중문화룬, 사상사, 미디어론, 역사, 정치, 문학이라는 렌즈로 조준되어 있다. 각각의 꼭지는 그 단면에서 일본을 잇는 그대로 드러내되, 책의 구성은 그 단면을 하나로 엮어 육면체로 입체회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오타쿠를 보면 현대 일본이 보인다.

우선 1960년대생이 중심인 오타쿠 1세대는 일반적으로 에스에프테 관심이 많고 당시 성장한 일본 애니메이션을 본격적으로 향유한 세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우주전함 야마토》와 《마징가Z》등을 들 수 있다. 1970년대생이 주축인 오타쿠 2세대는 1980년대 거품경제의 수혜를 받은 출판업계와 관련 연상업계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상황에 등장한 사람들이다.《기동전사 건담》등 일본 애니메이션의 고전뿐 아니라 이 당시 발전한 게임기와 게임산업을 향유했고,《주간 소년 점프》등 일본만화의 전성기를 겪은 세대이기도 하다. 1980년대생이 주류인 오타쿠 3세대는 거품경제의 붕괴를 청소년기에 직접 겪은 세대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체험한 세대이기도 하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상징하는 암울한 미래와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상실한 오타쿠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았고 사회, 문화 비평의 대상이 되는 등, 주류사회에서 오타쿠 문화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 P36

일본정부는 기존의 전통문화 중심의 이미지 전략을 대폭 수정하고 세계의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오타쿠 콘텐츠 및 캐릭터 산업을 일본의 대외전략 및 산업정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이런 흐름의 결과, 일본을 대표하는 오래된 만화 캐릭터인 도라에몽이 명예 외교대사로 임명되는 등, 현재까지 쿨재팬 정책은 지속되고 있다. - P44

-난감한 이웃 일본, 증오의 감정으로는 보이지 않는 모순

반일과 혐한은 서로를 ‘상식과 도덕’이 결여한 집단, 소통이 불가능한 무뢰한으로 취급하지만, 서로를 미워하는 에너지는 같은 주파수에서 나온다. 그들 모두가 정보를 비판적으로 사유하기보다는, 국가/국민/민족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자신들의 이기심과 편파적인 의견을 숭고한 애국심으로 포장한다. - P96

역사인식 부재,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무지, 보수정치인들에 대한 암묵적인 인정, 넷우익이나 재특회 등 우리가 ‘일본시민사회’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대개 우경화하는 일본정치를 직접 투영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언론 탓만도 아니다 .이러한 정치영역과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우경화 경향에 비판적으로 움직이는 시민사회의 대응은 일본 주류 미디어에서도 잘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 P107

실제로 일본의 사회운동단체와 지식인은 정치인의 망언이나 보수정권의 미디어 장악 시도, 극우단체의 혐오발언과 혐오범죄를 규탄하고 시정을 욕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공중파 방송에서 이들의 요구나 활동을 심도 있게 다루는 경우는 드물다. 방송은 사회적 파급력이 크고 즉각적이라는 이유로 정부가 여타 매체에 비해 훨씬 더 엄격하게 규제하기 때문이다. - P120

-이토록 낯선 일본의 역사

대게 하나의 왕조는 200년에서 300년에 한 번씩 바뀐다든가, 사서오경을 열심히 공부한 지식인들이 권력을 쥐고 통치하는 등, 우리 역사에서 당연하다고 여기는 일들이 일본역사에서는 당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천년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다스린다든가, 지식인이 아닌 칼을 찬 무사가 다스리는 시대를 상상하기 쉽지 않고, 그러한 존재들로 이루어진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당연히 더더욱 쉽지 않다. - P146

센고쿠시대란 종래의 중앙권력이 약화되어 붕괴해가자, 전국각지에 통치를 위임받고 있던 지방 영주들이 각자 세력을 키워가며 서로 충돌했던, 15세기 중반부터 16세기 말에 이르는 약 150년 동안의 시기다. - P148

막부로서는 250여 개의 번 사이에 평화를 위한 세력균형이 꺠지는 일이 없도록, 혹은 막부의 권위에 대응하지 못하도록 평소에 적절히 통제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고안된 법이 바로 무가제법도, 즉 다이묘를 포함한 무사들이 지켜야 할 내용을 규정한 법이었다. - P165

근대 이래 끊임없이 서양과 비교하고 서양을 따라잡으려 했던 열등감과 욕망, 모든 어려움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며 이웃침략으로 해결하려던 이기적인 선택등이 이어져, 근대 일본은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했다. - P18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여행 가이드북 - 아이가 좋아하는 사계절 여행지, 2020-2021 최신판
권다현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벌써 「아이여행 가이드북」 개정판이 나왔다. 불과 작년에 초판을 봤었는데 말이다. 겉으로 보았을 땐 눈에 확 띄는 건 표지 색깔. 기존에는 파스텔톤의 초록색이었는데, 이번엔 하늘색이다. 그냥 뭐랄까, 조금 더 아이들의 눈 높이를 맞춘 색깔 같다고나 할까(그냥 마음에 든다는 이야기 ㅋㅋ)?




코로나19 때문에 집콕하느라, 스트레스가 쌓이는 하루하루가 벌써 반년째다. 아직 신혼인 우리 부부도 이렇게 힘든데, 아이가 있는 가정은 얼마나 힘들지, 아니 뭐. 당장 애기 엄마아빠인 회사동료들만 봐도 매일 주말마다 아이 달래느라 진이 빠진다고 한다. 그런 애기 엄마빠들이 조금이나마, 아이들과 슬기로운 집콕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울 만한게 뭐가 있을까 싶었는데, 바로 이 책 「아이여행 가이드북」이 아닐까?



아이와 함께 이 책을 보면서 코로나19가 종식되면 바로 뛰어 나갈 수 있도록 여행계획을 세우는 거다. 




“봄에는 여기를 가서 우리 ○○이 같은 이쁜 꽃을 볼꺼야, 


여름에는 시원한 바다로 나가서 수영을 해야지!


가을에는 알록달록한 나무 숲길을 걸어볼꺼야, 


겨울에는 ○○가 좋아하는 눈의 나라로 가보자!”



이렇게 말이다.




  

계절별 아이와 함께 여행하기 좋은 여행지



이 여행가이드북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아이가 좋아하는 ‘사계절’ 여행지다. 그렇다보니 목차도 계절별로 구분되어있다. 대부분의 여행가이드북은 여행지에 대해 알려줄 때 지역별로 묶어서 하다보니, 어쩌면 이 책은 여행지를 계획할 때 조금은 보기 어려울수도 있겠다. 그래서! 이 책은 계절별 목차 뒤에 지역별로도 한 눈에 찾아볼 수 있도록 두번째 목차를 만들어놓았다.



 

혹시 모르니 지역별로 다시 한번!



바로 이렇게! 



그러니까, 계절별 목차에서 여행을 가고 싶은 여행지를 미리 결정한 뒤에, 바로 뒤에 있는 지역별 목차에서 근교 지역에 있는 여행지를 추가로 선택하여 여행코스를 계획하면 된다는 것!



여행을 어떻게 계획해야할 지 고민이 끊이지 않는 부모님들을 위해서, 계절별 1박 2일 추천여행코스도 있다.



 

계절별 1박2일 추천코스!



이 추천코스에는 대체적으로 아이들이 체험을 할 수 있는 여행지와, 그 지역 맛집까지 함께 있기 때문에 힘들게 여행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다. 1박 2일이 버겁다면 당일로 나들이를 떠나도 좋다.




베스트 여행지로 선택된 이런 장소들은 당일로 나들이를 떠나도 정말 좋은 장소들이니까!



이 책에는 그저 아이와 함께 여행하면 좋을 여행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자가 10년간 아이와 함께 여행을 했던 경험을 살려서, 아이와 여행을 하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하는지, 아이를 어떻게 케어해야하는지도 알려준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아이를 위해 필요한 짐을 전부 챙겼는지, 혹은 너무 과하게 챙긴건 아닌지 다시 한번 체크해본다.



※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 QnA 



1)  아이와 나들이, 키즈카페가 답일까요?


- 키즈카페에 가면 부모들도 여유가 생기는 건 맞지만, 때로는 아이와 즐거운 나들이를 떠나요! 몸은 힘들어도 눈과 마음은 즐겁고, 아이들의 창의력에도 도움이 될꺼에요.



2) 카시트에 앉기 싫어하는 아이 때문에 장거리 여행은 엄두도 못내요.


- 카시트는 아이의 생명을 지켜주는 장치이니 절대 예외가 있을 수 없어요. 신생아 때부터 카시트에 앉는 습과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지만, 아이가 불편해한다면 다른 보상을 제시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어요.



3) 아이가 걷는 걸 싫어해요.


- 걷는 걸 싫어한다고 여행을 포기할 게 아니라, 아이가 걸을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지속적으로 시도해보길 추천해요. 아이가 스스로 걸어냈을 때는 폭풍칭찬도 해줘요.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아이도 자연스레 성취감을 느낀답니다.



4) 남매(혹은 형제자매)가 성향이 너무 달라서 여행지를 고를 때마다 고민이에요.


- 수목원이나 공원처럼 무난한 여행지를 고르거나, 하루에 하나씩 각자의 성향에 맞는 여행지를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에게 양보를 가르치는 것이 좋아요.



5) 아이가 어려서 ‘이 여행을 기억이나 할까?’ 생각하면 회의적인 기분이 들어요.


-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언어를 통해 기억하는게 아니라, 저마다의 이미지와 감각들로 여행을 기억한다고 해요. 아이의 여행 경험을 더 오래도록 기억하게 하려면 함께 여행을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좋아요.



6) ‘노키즈존’ 때문에 여행 가서 밥 한기 먹는 것도 눈치 보여요.


- 상대방을 원망하기 전에 일단 우리부터 아이들이 공공의 질서를 잘 따르도록 조금은 엄격한 부모가 되어야 해요. 그리고 식당을 선택할 때 아기의자가 있는지 미리 확인해요. 아기의지가 비치되어 있는 곳은 그만큼 가족손님을 배려한다는 의미니까요.



p.24~26, 요약



이렇게 아이 엄마에게 피가되고 살이되는 여행꿀팁이 끝나면, 이제부터는 아이여행 가이드북의 메인인 본문이 나온다.





본문의 구성은 이렇다. 



1) 추천 연령과, 추천 시기: 예를 들자면, 이제 유모차 타는 아이에게 직업체험 테마파크 이런 곳은 조금 시기상조니까.


2) 여행 지역: 우리 집에서 해당 지역까지 가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이동시간 체크가 필수!


3) 해시 태그: 해당 여행지의 특징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4) 여행지 기본 정보: 입장료가 있는지, 있다면 얼마인지, 몇 시까지 운영하는지 등 기본적인 정보는 필수!


5) 주변 정보: 해당 여행지 주변에 있는, 같이 돌아보면 좋을 여행지나 ‘키즈 프렌들리’ 맛집을 소개한다.





본문은 여행지별로 1페이지씩 있지만, 간혹 위 안면도 쥬라기 박물관 처럼 2페이지인 경우도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집 밖을 나가지 못하는 지금, 코로나19가 종식되는 그 때를 위해 아이와 함께 이 책을 보며 여행계획을 세워보는 건 어떨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헬리콥터는 바람을 깎아내며 그 반동으로 솟아오르고, 앞으로 나아간다. 어쩌면 나도 중증외상센터도 헬리콥터가 바람을 깎아 나아가듯, 내 동료들을 깎아가며 여기까지 밀어붙여왔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아파도 아프다고 하지 않았고, 힘이 들어도 힘들다고 내색하지 않았다. 간신히 구축해온 선진국 표준의 중증외상센터를 유지하기 위해 말없이 버티다 쓰러져나갔다. 결국 이 중증외상센터 바닥은 내 동료들의 피로 물들었다

-무슨 일입니까? 왜 강하하지 않습니까!

-상황실과 관제탑에서 계속 경고가 들어오고 있어요!

사고 해역 상공은 해양경찰이 관할하고 있었고, 다른 헬리콥터들의 진입은 충돌 사고 위험을 높인다며 밖으로 물러나라는 지시였다. 하늘 위에는 우리뿐이었으므로 나는 그 명령이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직접 상황을 설명하려 했으나 불안정한 무선에서는 영공에서 나가라는 지시만 계속 튀어나왔다. - P67

가라앉는 배 주위를 해매다 항공유가 바닥을 보였다. 인근의 진도나 목포의 해양경찰 기지 또는 공항에서 급유를 받으려고 했지만 모두 ‘공식적 절차’가 미리 통보되지 않아서 불가하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중략)

-아니, 목포에 공항도 있지 않습니까? 바다를 수색해야 할 우리가 왜 산악지대까지 갑니까?

서신철이 씁쓸하게 말했다.

-행정 절차가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 P70

우리가 다시 바다로 날아들었을 때 여객선은 함수 부분의 푸른 바닥만 힘겹게 물 위로 내놓고 있었다.

-교수님, 여전히 사고 해역에서 빨리 나가라는 명령만 합니다. 더는 비행이 힘들 것 같아요. - P72

대답은 한결같았다. ‘윗선으로부터 단지 이곳에 가라는 말만 전해 들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들은 통일된 지휘 체계 안에 있지 않았고, 누가 자신들을 지휘하고 있는지 조차 몰랐다. 각자 소속된 조직 상부에서 내려오는 파편적인 집합 명령에 따라 모인 것 뿐이었다. 모두들 위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휴대전화를 귀에 달고 있었다. - P77

-정교수, 이게 말이야. 정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선체 내에 있었다면, 내가 바로 그 위를 비행하고 있었는데 배로 들어가든 부수든 간에 뭔가 사람들을 끄집어내려고 했을거 아냐? 한/미해군이 모두 출동했다고 들었는데 그 선박 주위는 정말 조용했다고. 어느 정도 구조가 된 거 아니었어? - P82

세월호 침몰 당시, 쌍용훈련을 마치고 미7함대로 복귀하던 USS 본험리처드함은 최정예 해상 구조대원과 구명보트까지 장착한 특수 헬리콥터 MH-60 시호크 몇 대를 사고 해역으로 신속하게 출동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사고 해역 영공 진입 불허 방침으로 회항했다고 들었다. 나는 우리와 같은 시간에 사고 해역을 비행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미 해군의 시호크가 왜 보이지 않았는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알게 됐다. 한국 정부는 사고 다음 날 그들에게 사고 해역으로부터 17마일(약27킬로미터) 떨어진 해역을 배정했고, 생존자 구조 임무가 아닌 사체 수거 임무를 맡겼다고 했다. - P94

-교수님, 외상센터가 바쁜 줄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이렇게까지 시간 외 근무를 많이 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우리 기관이 노동부에게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진퇴양난이었다. 외상센터의 일은 줄지 않았고 줄일 수도 없었다. 나는 병원으로 오는 중증외상 환자의 수를 조절할 수 없고 병원 문턱을 넘어와 생사의 기로에 선 환자를 전원시킬 수도 없었다. (중략) 병원의 많은 부서들이 인력 부족에 시달렸고 부서 인원을 늘려달라는 요청은 동시다발적으로 올라가므로 외상센터에만 더 많은 인원을 배정해주지 않았다. - P117

새 정부는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고 나섰다. 각종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정부의 정책 방향은 외상센터에도 영향을 미쳤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의사들의 업무 공백을 메워주는 전담간호사들의 근무시간도 주 52시간으로 묶여버렸다. 김지영은 담당간호사의 근무일정표를 더 이상 짤 수 없다고 비명을 질렀다. (중략) 김지영이 극도로 어두운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전담간호사 한 명이 또다시 유산해 2주간 병가처리를 해야한다며 승인을 요청해왔다. - P29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할머니는 내게 낡은 일기장을 내미셨다. 처음보는 일기장이었다. 한번 읽어 보라고 주신 그 속에는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할머니의 젊은 시절이 담겨 있었다. 첫 아이를 낳은 젊은 엄마의 모습이었다. 일기 속 두 분의 중국 생활에는 국사 교과서에서 본 낯익은 이름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그분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동지였고, 이웃이었고, 가족이었다.

나는 읽기를 읽으며 그분들의 이야기를, 대가족 식솔처럼 의로애락을 함께했던 임시정부 요인과 그 가족들의 삶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일기 속에 담겨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임시정부 요인분들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가 내 인생을 참 많이 바꿔 놓았다. 다음 세대를 위해 본인들의 삶을 희생했던 그분들의 삶이 참 가슴에 와닿앗다. 오늘을 살면서도 오늘이 아닌 내일을 생각하고 이를 위해 행동하는 비전에 감탄했다. 나는 일기를 읽으며 그분들의 이야기를, 대가족 식솔처럼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임시 정부 요인과 그 가족들의 삶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그때 그곳에서 내일을 알 수 없는 삶 속에서 함께 희망을 만들며 살아 나간 그분들의 삶의 이야기를 출판하기로 했다. - P11

1938년 7월 4일, 중국 호남성 장사.

내 조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나는 내 딸을 가슴에 안았다. ‘상해’에서 시작된 임시정부는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고 점차 정세가 중국에 불리해지자 중국 정부가 자리하던 남경 근처의 ‘진강’으로, 얼마 후 다시 지금의 ‘장사’로 자리를 옮겼다. (중략) 아기의 이름은 ‘제시’라고 지었다. 집안의 돌림자가 ‘제’자인데 ‘제시’라는 이름이 생각났다. 영어 이름이다. 조국을 떠나 중국에서 태어난 아기. 그 아이가 자랐을 때는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 당당하게 제 몫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 아기 또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능력있는 한국인으로 활약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지었다. 세상에 나온 걸 축하한다. 우리 제시! - P34

1938년 7월 22일, 광동성 광주

중일전쟁에서 중국이 몰리고 있다 (중략) 제시가 태어났던 ‘장사’. 이른 새벽잠에서 아직 깨지 않은 ‘장사’를 뒤로하고, 모든 임정 식구들은 중국 대륙 동남쪽에 위치한 광동성 광주행 월한철로 전차를 탔다. (중략) 그렇게 기차를 타고 가던 중에는 갑작스런 일본기의 공습도 만났다. 공습이 오자 기차가 멈추었고, 사람들은 기차에서 내려와 주변의 수풀 속에 숨어 적기가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 P37

1938년 10월 11일, 광동성 불산

철 없는 제시지만, 백일맞이라 해서 그런지 경쾌한 태도로 아주 기분 좋게 잘 놀고 있다. 그런 제시의 기분과 달리 바깥의 분위기는 스산하다. 매일 아침마다 포탄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고 있다. 적이 가까이 다가온 모양이었다. 오후엔 일본군이 광동, 담수 등의 지방에 상륙하여 물밀 듯 쳐들어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불산 거리에는 짐을 옮기는 황황한 모습이 보이고 있다. - P44

1938년 12월 5일, 유주

아침 열 시쯤 되어 공습경보가 났다. (중략) 후에 안 소식으로 우리가 피신했던 5호 동굴 좌우 쪽, 기타 여러 동굴이 폭탄 투하로 매몰되어 버렸단다. 그곳에 사람이 가득 차 있지 않았던들 우리는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 1938년 12월 5일, 이날의 왜놈의 잔인한 행동은 인류 역사가 생긴 후, 세계 처음으로 꼽히는 참사였다고 한다. 동굴이 오히려 위험하다고 산 주위 숲속, 나무 밑에 은신하고 있던 피난민들은 왜놈의 저공비행으로 기관총을 난사당하여 거의 다 죽었다고 한다. 민간인들을 그렇게도 많이, 의도적으로 죽였던 일본의 잔혹한 행동은 훗날 역사가들에 의해 평가되리라. - P57

1939년 2월 8일, 유주

제시의 부모로서의 역할이 차츰 익숙해지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마치 거울이 되는 것과 같다. 자식들의 모습을 미추는 거울, 부모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거울이 깨지면 그 속에 비춰진 모습도 흉하게 일그러진다. 아이들은 거울을 통해 자신에 대해 눈뜨게 된다. 자신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현재의 모습을 확인하고 미래를 그려본다. 이제 나는 한 아이의 거울이 되어 그 아이의 참 모습을 보여주고, 또 깨닫게 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 P65

1940년 1월 29일, 사천성 기강

갈수록 제시는 사람들의 세상살이를 따라하며 배워가고 있다. 그건 좋은 일이기도 하고, 나쁜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취하는 행동들이 제시에겐 가르침이 되는 것이다. 두려워진다. 혹 내가 취하는 행동에 모자람이 있지는 않은지. 주변 사람들의 모습에서 못난 모습이 눈에 뜨이는 건 아닌지. - P104

1941년 1월 4일, 사천성 중경

이제 이 아이가 세상에서 가지고 싶어하는 것은 얼마나 많아질까? 생후 세 돌이 못 된 아이에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욕심이 생겨난다. 내 것이란 이름으로 가지고 싶은 마음. 사물이나 사람이나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고 함께 보고 나눌 수는 없는 것인가. 세상의 갈등과 괴로움을 단지 소유욕으로 단정 지을 만큼 간단한 일은 아니겠지만, 오늘 우리가 갖는 많은 절망과 어둠이 욕심에서 비롯되는게 아닌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 P148

1942년 6월 1일, 사천성 중경

마마는 제시의 교육 문제로 걱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혼자 몸으로 살림을 하시느라 아직 제시의 공부에 적극적으로 착수를 못하셨다. 때로 창가나 가르치고 가정 교육에 그치고 있다. 둘째 제니는 아직 서서 걸어다닐 생각은 않는 양으로 앉아서 놀고 있지만, 눈치와 말귀는 장족의 진보를 하고 있다. 제니는 침착하며 퍽 능한 편이다. - P186

1942년 8월 4일, 사천성 중경

한 배속에서 난 아이들의 아래위가 서로 다른 성격과 모습을 보여주듯이, 한 아이는 여리고 상냥하고 잘 챙겨주는 모습을, 또 한 아니는 자기 고집이 세고 직선적이며 도전적인 모습을. 두 아이가 어울려 만나는 이 세상은 틀림없이 다른 모습일 것이다. 같은 강줄기에 우리가 만나는 일기가 다르듯이 부모가 지켜보게 될 두 아이의 세상살이 또한 다른 모습일 수 밖에. - P190

1943년 3월 22일, 사천성 중경

저녁 식사 후, 저 멀리 산보를 몇 시간 하고 돌아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두 어린애들은 오래간만에 나가 다니매 좋다고 한다. 어떻게 가버렸는 지 모르게 가 버린 인생의 푸르른 시간들이다. 심한 역경 속에서도 천진하게 자라고 있는 이 어린애들이 어른들에게는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우리의 결합이 만들어낸 결실이다. - P2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