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대기의 수줍음 매일과 영원 3
유계영 지음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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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책을 읽을 때 출판사를 유심이 보는 편이다. 우연히 읽었는데 마음에 드는 책이라면, 그 책을 출판한 출판사의 다른 책들도 한권, 두권 읽어보다가 어느새 내 책장의 한켠을 가득 채우기도 한다. 반대로 정말 마음에 안드는 책이라면(특히 역사왜곡이 들어간) 그 출판사의 다른 책들에 눈길한번 주지않는다. 베스트셀러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의미에서 민음사는 전자에 속한다. 민음사 책을 몇권 읽어보진 않았으나, 이런 책을 출판했다면 믿고볼수 있는 출판사라 생각했다. 다만, 민음사는 내가 즐겨있는 장르와는 조금 다른 문학쪽 출판사다보니, 민음사 책을 읽을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을뿐^_T 그래도 민음사에서 나오는 에세이(또는 수필) 류는 내가 즐겨 읽는 장르 중 하나다보니, 이렇게 또 한번 민음사의 책을 읽을 기회가 생겼다.



이 에세이의 저자는 시인 유계영 이라고 한다. 현대 시인이라고는 나태주 시인님밖에 모르는 나로써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뭐 어떠한가. 나는 시를 읽으려고 이 책을 읽은게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이 녹아든 에세이를 읽으려했던 거니까.



여러사람들 틈에 있을 수록 나는 납작해진다. 변기의 용도는 유일할 것 같지만 의외로 쓰임이 다양하지. 자발적이거나 비자발적으로 혼자가 된 사람들이 변기 뚜껑 위에서 도시락을 먹기도 한다던데. 나는 가끔씩 변기에 앉아 우는 사람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시간이다. p 017



맞다. 우리집 화장실에 있는 변기는 그저 변기일 뿐이지만, 사회에 나가서, 회사 화장실에 있는 변기는 그저 변기가 아니게된다. 저자가 말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시간’이 바로 변기위에서 시작되니 말이다. 사회초년생들이 한번씩은 거쳐갔던 변기위의 그 시간이, 아주 당연하듯 나에게도 있었다. 그때는 뭐가 그렇게 서럽던지. 회사 화장실에 들어가서, 변기위에 앉아서 울었던 적이 있었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어른처럼 보이던 회사 언니들이 서럽게 우는 소리를 들었던 적도 있었다. 



저자가 그랬다. 되도록 소리내어 울음으로써, 누군가가 이 울음소리를 듣고 자신을 연민의 눈초리로 봐주었으면 한다고. 나역시도 그랬고, 회사언니들도 그랬듯이 그때는 정말 서럽게 울었다. 내 잘못이 아닌데 왜 내가 이런 대우를 받아야하는지, 내 우는 소리를 듣는 누군가가 알아주었으면 했던 그 마음. 물론 지금이야 눈물이 메말라서, 누가 뭐라그러면 기계적으로 웃으며 ‘네네~’ 하고 뒤돌아버리거나, 그건 내가 한게 아니라고 되받아치는게 아주 당연한 일상이 되었지만, 그때는 그게 그렇게 서러웠다. 



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저들은 왜 나를 함부로 대할까 생각하다가, 그래서 나는누굴까 생각하다가,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남이 나를 알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 있나 싶다. 산다는 것은 사람들을 오해하고 오해하고 또 오해하다가, 신중하게 다시 생각한 뒤에 또 오해하는  것이라던 말이 생각난다. 내가 나인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나는 내가 얼마나 소중하기에 아무것도 참을수가 없을까. 나를 가리려고 직접 골라 쓴 가면을 물끄러미 본다. 자기 자신의드라마를 위해 조금도 화를 참지 않는 낭만주의자가 겸연쩍은 얼굴로 거울을 보고 있다. p 018



책을 읽다보면, 그런생각을 자주 한다. ‘저자는 왜 이런 이야기를 썼을까? 무슨 의도일까?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이길 원하는걸까?’ 이런 류의 생각말이다. 어렸을땐 안그랬던 것 같은데, 역사책을 자주 읽게되면서(특히 역사왜곡하는 사람들의 책 포함해서)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점점 관심을 갖게되었달까? 문제는 굳의 의도를 파악할 필요 없는 가벼운 글들이나, 힐링을 위해 읽는 에세이나 수필집을 읽을때도,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래도 대체적으로 ‘아! 이런 의도인걸까?’하는 나만의 답을 내리고는 하는데, 이 에세이는 도무지 모르겠다. 근데 막 의도는 모르겠는데, 묘하게 글의 흐름이 친숙하다. 뭐랄까. 생각에 꼬리를 물고 물어 흘러가는, 이른바 의식의 흐름..? 내가 의식의 흐름대로 말을 하는 경우가 정말 많은데, 저자는 그 의식의 흐름을 말이 아닌 글로 옮긴 느낌이랄까. 아, 어쩐지 뭔가 친숙했어. 이런 글.....!!



처음에는 달리는 말을 보고 싶었던 거다. 거르나 이 땅에서 질주하는 자유를 누리는 말은 거의 없을 것이다. 경주마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인간이 만든 지옥에서 쉴새없이 달려야 하는 말 또한 있을 것이다. 몇 해 전 경주에서 꽃마차 끄는 말이 쓰러졌던 사실이 떠올랐다. 학대로 쓰러진 검은 말이 재작년에 죽었다. 죽은 말과 두 마리의 말들이 더 구조되었다. 구조 이후 다른 삶을 살게 된 말들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마음 또한 말들에게 고통이라면, 꽃마차가 사라진 거리라도 직접 보고 싶었다. 아무리 포개도 자양이 되지 않는 슬픔을 좀 덜기 위해서. p 034



뭐라고해야하나, 이 에세이를 읽다보면 저자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무언가 눈에 딱 틀어왔을때, 그 무언가에 대해 생각이 꼬리를 물고 물어질것 같은, 꼭 나와 같은 모습이 그려지는 것이다. 



과거에 해미읍성에 놀러갔다가, 한켠에 주차(?)되어 있던 꽃마차가 있었다. 꽃마차. 꽃으로 장식된, 말이 이끄는 수레다. 한마디로 그 꽃마차 앞에는 끈으로 고정되어있던 살아있는 말 한마리가 있었다. 그 말의 눈을 들여다보았는데, 어찌나 슬퍼보이던지. 심지어 간신히 서 있는 듯한 모습의 말이 그렇게 불쌍해보일 수가 없었다. 더 슬픈건, 그 때 그곳은 비가 오고 있었다.



꽃마차와 말. 누군가의 눈에는 해미읍성을 방문한 관광객을 위해 비치된 일종의 관광상품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 말이 비를 맞고 있던 말던, 건강하던 말던 아랑곳하지않고, 오로지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역할만을 시켰을 것이다. 간혹 지나가던 관광객들이, 나 처럼 말이 가엾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우리는 그 말을 구할 수 없고 구할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그 말은 누군가의 사유재산일 것이고, 누군가의 사유재산에  관여한다는 것은 내가 그 사유재산을 다시 웃돈주고 사오거나, 아니면 그저 옆에서 말만하는 오지랖일테니.



결국 나는 해미읍성 한켠에, 꽃마차와 함께 묶여있던 그말을 동정어린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딱 거기까지었다. 그 말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건 하나도 없었다. 그저 인간의 욕심에 희생되는 가엾은 동물들이라는 생각만, 말만 한 또 다른 이기적인 인간이었을뿐이다. 



단지 앞에 회오리감자 푸드트럭이 와서 사 먹으러 갔다. 트럭 앞에 서 있던 여자가 강아지 호두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질렀다.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이지만 나는 이럴 때 좀 화가난다. 사람은 사람만 보려고 한다. 이 세상에 사람만 정당하게 존재하는 줄 안다. 눈 앞에 확보된 세계가 세계의 전부인 줄 안다. 동물에게도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달라! p 050



에세이를 읽는 내내 저자는 동물에 우호적인 사람이구나 싶었는데, 역시나! 물론 저자의 말처럼 동물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야하는 건 당연하다고 본다. 해미읍성 한켠에 묶여서 오도가도 못하는 그 말을 생각하면 말이다. 그런데, 위의 저자의 에피소드를 무작정 편들수만은 없다.



푸드트럭앞에서 저자의 강아지를 보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란 여자를 비판하는듯 써내린 저 글, 저 글은 오롯이 애견인의 입장만 생각하고 쓴게 아닐까? 누구나가 애견인들처럼 강아지를 좋아하고 사랑하지는 않는다. 나 역시 어렸을때 커다란 진돗개에 물린 경험이 있기에, 내 앞에 어린 강아지가 있다면, 일단 멀찌감찌 떨어진다. 저자의 강아지를 보고 놀란 그 여자는, 나처럼 개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은 아닐지 한번 생각해보았으면 어땠을까.



당장 내가 사는 단지를 보면, 세상에세상에 개반 사람반이다. 산책을 하러 나가면 정말 여기는 큰개, 저기는 작은 강아지 난리도 이런 난리가 아니다. 물론 그 개들을 산책시키러 나온 사람들이, 개티켓을 잘 지켜준다면 나도 할말은 없다. 그런데 왜때문에, 목줄(또는 몸줄)이 없이 개 혼자 저 앞에 걸어가고 개주인은 뒷짐지고 슬렁슬렁 걸어가는걸까. 자기 개가 화단에 큰일을 치루면, 그걸 처리하지않고 그냥 무시하고 가는걸까. 심지에 엘레베이터 안에서 개를 바닥에 두고, 사람을 보고 짓든 말든 신경쓰지않는 견주들을 보면 나는 이런사람들을 보면서 ‘개가 개를 키운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다 그렇다고 일반화를 하진 않는다. 개통령처럼 개와 사람이 어떻게 공존하며 살아가는지, 개에 진심인 사람이 있는지도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심지어 개통령의  바이블을 따라, 사람과 공존할 수 있게 개를 키우는 사람들도 정말 많다. 물론 개의 입장에서 보면 수많은 통제로 인해 힘들겠으나, 사람과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으니.



하지만, 저자의 저 글은 묘하게... 저자의 개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물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는다는 일반화를 하는 것 같다. 내가 아무리 강아지를 무서워해도, 내 뒤에 누군가의 강아지가 있다면 놀라지말고 꾹 참으라고 하는 듯한 뉘앙스. 내가 좀 과하게 생각한걸지도 모르지만, 그냥 좀 그렇게 느껴진다. 내가 개를 안키워서 그런가....^_T..





이 에세이는 나에게는 묘하게 친숙하면서, 묘하게 달랐다. 많은 생각을 하게 했고, 어떤 생각은 저자와 비슷했지만, 또 어떤 생각은 저자와 대척점에 있기도 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분명 저자는 시인이랬는데, 나와 닮으면서도 닮지않은 이 사람의 시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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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11-07 1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1일 1페이지 조선사 365 - 읽다보면 역사의 흐름이 트이는 조선 왕조 이야기
유정호 지음 / 믹스커피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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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 “1일 1페이지~어쩌구~” 하는 수많은 장르의 책들이 정말 많다. 이런 책들은 대게 얉고 넓은 지식을 표방하는 교양서라 읽지는 않았다. 내 개인적으론 얉고 넓은 지식보단, 깊고 좁은 지식을 추구하는 책들을 좋아하니까. 하지만, 예외도 있는법. 이번 신간도소에 『1일 1페이지 조선사365』라는 책이 보였다. 볼까말까 살짝쿵 고민했으나, 아무래도 조선사니까. 음 조선사니까! 대체 어떤 이야기로 1페이지씩 분량을 할당했을까 궁금했다. 무엇보다 요즘 나오는 조선사 책은 어떤 기조로 서술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책을 읽어본 결과, 각 페이지별 레이아웃 구성도 괜찮았고, 내용구성도 정사와 야사를 적절히 섞어서 서술한 것이 나쁘지 않았다. 특히 정사와 야사를 명확하가 구분해준 점은 칭찬받아 마땅하다고나 할까. 특히나 학교에서 배우는, 학생들 (국사시험제출빈도 높은) 내용들도 거진 포함되어 있었다. 


책을 서술한 시각도 한쪽으로 치우쳐지지 않은 것 같아서 꽤나 만족스러웠다. 과거에 나온 조선사 책들은 대게 조선의 밝은 점을 부각시키고, 어두운점은 축소하거나 생략한 경우가 많았으니까.




내용면에서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예컨데 태종재위기에 쓰여있는 이야기에 ‘이 정책은 조선후기에 이런식으로 변한다’ 라고 기록되어있다면, 조선후기에 넘어왔을 땐 ‘조선 전기에는 이랬던 정책이 이렇게 변했다’ 라는 식의 중복되는 부분이 꽤 있었다는 것. 근데 뭐, 이건 역사의 흐름을 알기 위해서 어쩔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1페이지에 꽉꽉 채워넣다보니 글자 크기가 좀 작다^_T...




조선은 정말 민본의 나라였나?


조선은 ‘위민/민본국가’를 자처했던 나라다. 한마디로 조선이란 나라는 백성을 위한, 백성이 근본인 나라인 것이다. 하지만 조선 백성들의 실상을 본다면, 정말 조선이라는 나라가 백성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아니 노력이란걸 하긴 했는가 싶은 의구심이 들곤 한다. 어쩌면 조선이 말하는 백성은 모든 백성이 아닌, ‘양반’에 한정된건 아닌지? 하고 말이다.



양인의 수가 많아질수록 세금과 군인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만큼, 태종은 아버지의 신분을 따르는 종부법을 시행했다. 당시 양인이 천민을 첩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기에 종부법의 실행으로 양인의 수는 많이 증가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자 세종은 종부법을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는 종모법으로 환원시켰다. p 029



조선시대는 노비 매매도 문제였지만 주인이 노비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주인은 노비를 죽여도 관청에 보고만 하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중종 때 홍언필의 처 송씨는 홍언필이 여종의 손을 잡은 것을 목격하고는, 여종의 손을 잘라버렸다. 홍언필이 또 다른 여종과 잠자리를 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여종에게 심한 매질을 하고 빗으로 얼굴을 긁는 폭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송씨는 국가로부터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의지와 기개를 겸비한 여장부로 평가받았다. p 030



그와중에서도 조선의 노비는 숨을 쉬는사람이었으나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사고파는 재산이었다. 그럼 태어날때부터 노비는 노비였을까? 이에대한 답이 태종 때 종부법과 세종 때 종모법이다. 세종때 종모법은 이후로 조선 사회를 쭉 관통한다.



종부법은 아비의 신분을 따라서, 종모법은 어미의 신분을 따라서 자녀의 신분이 정해진다. 고로 아비가 양반이면 엄마가 노비여도, 자식은 양반이라는 이야기. 하지만 세종이 환원시킨 종모법은 어미가 노비면 아비 신분상관없이, 자녀는 무조건 노비가 된다. 세종이 종모법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나, 결국 종부법으로 바뀌었던 신분제를 종모법으로 다시 환원시킨건 세종이라는 이야기다.



세종의 종모법으로 환원시키며 조선 팔도에는 노비가 기하급증했다. 그 노비들은 사람취급을 받지 못했으며, 그들은 조선에서 말하는 백성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양반들은 특권을 누리기 위해 과거에 응시하는 자격 조건으로 사조(증조부, 조부, 부, 외조) 안에 관직이 나간 인물이 있는지를 보았다. 만약 사조 안에 관직에 나간 인물이 없다면 현직 관료의 보증서인 보단자를 첨부토록 했다. 이로써 신분을 양인과 천민으로 나누었던 양천제가 신분을 양반, 중인, 상민, 천민으로 구분하는 반상제로 변화했고, 결국 조선 중기 이후의 신분제는 폐쇄적 신분제가 되었다. p 041



조선 초기에는 ‘양천제’라고 하여, 사람의 신분은 ‘양인’과 ‘천민(예: 노비)’으로 구분되었다. 해서 ‘양인’이라면 신분고하 막론하고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능력우선’ 인재채용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양반’는 무엇인가? 과거에 급제에서 문신이 된 사람을 동반, 무과시험에 급제에 무신이 된 사람을 서반이라고 하였고, 이 동반과 서반을 아울러 말하는 명칭이 ‘양반’이었다. 즉 문신, 무신 관리들이 ‘양반’이었다.



하지만 물은 고이면 썩는다고 했던가? 능력으로 채용된 양반들이, 자신의 권리와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조선의 신분제도를 변화시킨다. 바로 ‘양천제’다. 기존 ‘양천제’는 양인과 천민으로 구분했다면, 저놈의 양반들이 만들어낸 신분제도 ‘반상제’는 양반, 중인, 상민, 천민으로 구분한다. 가끔 사극에서 나오는 ‘반상의 법도가 지엄한데!’ 라고 외치는건, 그 양반놈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조선사회를 망가트리며 만든 자기들만의 법도인 것이다.



‘양인’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던 과거도, 양인이 아니라 ‘양반’만 가능하게끔 바꿔버렸다. 조선 초기에는 개천에서 용 나는게 드물지 않았다면, 어느순간부터 조선에선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작금의 대한민국과 하등 다를바가 없는 사회가 된 것이다.



백성이 신문고를 울리면 의금부 당직청이 사연을 접수해 왕에게 보고토록 했다. 그러나 억울한 일이 생겼다고 아무나 신문고를 울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차적으로 한양은 주장관, 지방은 관찰사에게 억울한 사건을 고발해야했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 사헌부가 문제를 고발하도록 했다. 이 과정을 모두 마치고 나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비로소 신문고를 울릴 수 있었다. (……) 신문고가 한양에 위치해 있어 지방에 사는 백성들은 사용하기 어려웠으며, 신문고를 울렸다 해도 약자의 처지에서 고발 내용을 제대로 입증하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고발할 수 있는 내용도 조상을 위하거나, 남편을 위하는 일 등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p 045


 


백성의 고충을 듣기 위해 설치했다던 신문고, 그 신문고는 정말 백성의 소리를 들려주었을까? 정답은 ‘아니오’다. 실제로 신문고는 아무나 칠 수 없었다. 우선 신문고는 왕이 사는 궁에 있다. 그 어떤 (양반이 아닌)백성이 궁을 지키는 수문장을 다 물리치고, 궁으로 들어와 신문고를 칠 수 있었을까? 왕이 없는 저 먼 지방에 사는 백성들은, 그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백성들은 신문고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을 것이다. 



만약 신문고가 궁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나에게 신문고를 꼭 쳐야할 사연이 있다고 치자. 그래도 신문고를 바로 칠 수 없다. 신문고를 치기 전 거치는 단계가 한 두 단계가 아니다. 심지어 그 사연이, 신문고를 쳐도 되는 사연에 해당되는지도 확인해야한다. 신문고를 칠 수 있는 사연에 해당되는 것은 ‘유교국가 조선’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쉽게 그 답이 나온다. 나라(왕)을 위하거나/ 부모(조상)을 위하거나/ 남편을 위할때. 만약 신문고를 치고 싶은 사연의 주인공이 여성이라면, 그 여성의 사연이 위 세항목에 대한게 아니라면 택도 없다는 이야기다.



과연 누구를 위한 신문고였을까?



이쯤에서 현재 온라인에 존재하는 ‘국민신문고’를 생각해본다. 국민신문고는 정말 신문고 노릇을 하고 있는가? 조선시대의 그 신문고와 다를바가 없는 건 아닐까?



죽은자의 이야기(주자성리학)에 매몰된 조선 후기


그나마 조선 초기는 봐줄만하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아무리 유교국가를 표방한다 한들, 우리가 아는 꽉 막힌 조선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초기의 조선은 고려 때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기에, 여성에게도 나름대로의 자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게 바뀌어, 꽉 막혀버린 조선이 되어버린 시기가 있다. 9대왕 성종, 16대왕 인조다.


 


(조선 초기) 여성의 재혼도 가능했다. 태종은 배우자를 잃은 남녀가 재혼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며 다시는 이를 문제 삼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혼을 문제삼는 상소가 계속 올라오자 성종은 <경국대전>에 재가하거나 절개를 못 지킨 여인의 아들과 손자, 서얼 자손은 문과, 생원, 진사시에 응시하지 못하게 하는 재가금지법을 만들었다. 이혼은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여성은 요구할 수 없었고, 남성만이 부모의 동의를 얻어 요구할 수 있었다. 이때 남성이 이혼사유로 내세운 근거는 칠거지악이었다. p 108



(성종 재위기)이 시기, 어우동과 간통한 양반들은 약한 처벌을 받거나 혐의 없음으로 풀려난 것과는 달리 어우동만 처형당한 것은 조선시대의 남녀 차별이 매우 심각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어우동과 간통한 사람중에 상민과 천민에게만 죄를 물었다는 점에서 조선시대가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 115



조선 초기에는 여성을 천대시하지않았고, 무시하지않았다. 그렇다면 여성을 천대하는 문화는 언제시작되었을까? 바로 9대왕 성종때이다. 성종은 재위기에 여성의 재가금지법을 만들었다. 즉 남성은 재가를 해도 되나, 여성은 안된다는 이야기다. 이와 함께 성종의 모친인 인수대비는 <내훈>이라는 책을 발간하여 여성의 지위를 격하시켰다. 



성종과 인수대비는 여성의 존재의 가치를 ‘남편을 잘 섬기는 것’, ‘시부모를 공경할 것’, ‘자식을 바르게 키우는 것(과거급제)’에 한정시켰다. 이후부터 조선의 여성은 온갖 차별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고, 그 영향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물론 과거에 비하면(해방이후) 많이 희석되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조선 후기 정계에는 산림지사, 임하지인 등으로 불리는 특별한 존재가 있었다. 각 당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고 많은 제자를 둔 스승을 산림이라 불렀는데, 이들 대부분은 국가로부터 관직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거부하고 재야에서 학문을 닦았다. 이들은 정치를 멀리하며 학문을 익혔으나, 순수한 학자는 아니었다. 산림이 붕당의 영수로 숭상받으며 많은 제자와 관리의 존경을 받는 만큼, 그들의 말 한마디는 정국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산림과 의견이 다르거나 산림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비난을 넘어 최악의 경우에 사문난적으로 몰려 죽을 수도 있었다. (…) 효종은 북벌론을 시행하기 위해 산림 송시열, 송준길, 허목, 윤휴등을 중용하고 이들을 국정운영에 끌여들었다. 효종은 산림 송시열이 북벌론을 지지할 때는 탄력을 받아 전쟁을 준비했으나, 송시열이 반대하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를 알고 있는 숙종은 산림 송시열을 죽이는 강수를 두면서 산림보다 왕이 우위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p 218



때는 인조 재위기. 인조는 정묘/병자호란을 겪으며 청나라에 머리를 숙였다. 인조와 그 신하들은 청나라에 졌으나, 진게 아니라는 정신승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친명사대주의와 ‘소중화’ 사상이다. 조선은 대(!)명나라를 이은 나라라는 뜻이다. 물론 명나라는 이미 청나라에 잡아먹히고 사라진 뒤다. 즉 조선은 오랑캐라 비웃던 청나라에 머리를 숙인 것에 대한 분노를, 이미 망해버린 명나라를 계승한다는 것으로 정신승리로 승화한 것이다. 이 친명사대주의는 조선 후기에 아주 깊숙히 파고들었었다. 



조선 후기에 죽은 위정자들의 비문의 대부분은 ‘유명조선국’이라는 문자로 먼저 시작한다. 그 뜻은 대충 이렇다. ‘명나라의 신하 조선’ 또는 ‘명나라에 속한 조선’. 이미망해버린 명나라를 부르짓다 못해, 지들 무덤에 세우는 비석에까지 저렇게 새겼다. 뿐만 아니다. 숙종은 창덕궁 깊숙한 곳에 명나라를 위한 제단 ‘대보단’을 설치했다. 청나라에 들키면 안되기에, 아주 깊고 깊은 곳이 설치했다. 대표적인 산림이자 서인의 영수였던 송시열의 제자들도 충북 괴산에 명나라를 위한 제단 ‘만동묘’를 설치했다. 이는 송시열의 유언이기도 했다.



정신승리로 시작한 친명사대주의와 소중화를 부르짖던 서인은 권력다툼으로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지고, 노론이 권력을 틀어쥐며 안동 김씨, 풍양 조씨에 아우르는 부패하다는 단어로는 설명이 부족한 세도정치가 일었고, 백성들은 무자비한 세금부담에 죽어나갔고, 그렇게 조선은 망국의 길을 걸었다.



조선왕실의 그림자


조선의 위정자들은 안팎으로 조선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만약 군주가 멀정했더라면, 조선의 부패가 이정도까지 심해지지는 않았을리라.


중종반정은 백성과 국가를 위한 반정은 아니었다. 연산군의 폭정에 위정자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반정에 불과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했을 때 개국공신이 55명이었던 것에 반해 중종반정에서 정국공신에 오른 사람은 117명이었다. 이외에도 3천 명 이상이 원종공신으로 책봉되었다. 이 중에는 연산군에게 미녀를 바치며 나쁜짓을 일삼다가, 반정을 논의하는 자리에 술과 안주를 바쳤다는 이유로 공신에 책봉된 구수영 등도 있었다. 그리하여 관직을 가진 사람들 대부분이 공신에 책봉되어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등 많은 재물을 하사받고 품계가 올랐다. 공신의 숫자가 많아진 만큼 백성들은 농사지을 땅이 부족해졌고 세금은 늘어났다. 결국 백성들은 연산군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어려운 삶을 계속 이어갔다. p 139


계유정난의 세조, 중종반정의 중종, 인조반정의 인조. 모두 전 왕을 끌어내리고 왕이 된 자들이다. 이들이 전 왕을 끌어내린 이유는 하나다. 바로 ‘권력’. 세조가 끌어내린 왕은 어린 조카 단종이었고, 중종이 끌어내린 왕은 폭군 연산군이었으며, 인조가 끌어내린 왕은 임진왜란 때 분조를 이끈 광해군이다. 어린 단종을 끌어내린 세조는 신권(이때는 훈구)에 휘둘리는 ‘첫’ 조선 왕실을 만든사람이며, 삼촌인 광해군을 끌어내린 인조는 폐륜아 아비를 왕으로 추존하고(원종), 그릇된 권력욕으로 자기 아들을 죽였으며, 그릇된 판단으로 자기 백성들을 청나라 말발굽 아래에 떨어뜨렸고, 망해버린 명나라를 조선의 조상으로 만들어버린 사람이다.



물론 연산군은 그냥 폭군도 아닌, 자신의 향락을 위해 백성들의 터전까지 짖밟은 왕이므로 왕에서 쫒겨나야하는 사람이 맞다. 하지만 그런 연산군을 끌어내린 중종은 처음부터 힘이 없었고(심지어 신하들 손에 이끌려 왕이되었고), 수많은 반정공신에게 하사품을 주기 위해 연산군때와 다름없이 백성들을 피고름을 빨았다. 더군다나 중종의 부인인 문정왕후는 권력욕과 함께 자기 아들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조선의 질서를 어지럽히기도 했다.



결국 쿠데타를 일으켜 왕이 된 그들은 조선을 밝게 하는게 아닌, 더욱 어두운 길로 향하게 하였다.



정여립의 역모과 관련된 구체적 증언이나 물증 없이 3년 동안 많은 사람이 희생되자, 정여립이 진짜 역모를 꾀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 제기되었다. 당시 사전을 맡았던 정철이 선조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옥사를 확대했다는 주장, 서얼 출신인 서인 송익필이 양반의 신분을 갖기 위해 정철을 조종했다는 주장, 선조가 붕당의 갈등을 중재하며 왕관을 강화하려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p 185



선조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한양을 버리고 도망가기에 바빴고(……). 나라를 버린 자신과 달리 광해군은 분조를 이끌고 전국 각지에서 일본군과 싸우며 백성들의 지지를 얻고 있었고, 바다에서는 이순신이 연전연승하며 백성들에게 조선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선조는 전쟁이 끝나갈 무렵 자신의 과오를 감추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왕이 되어야 했다. 그 해결책으로 명나라 군대를 치켜세우고 조선의 관군과 의병을 평가절하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p 202



‘조’가 ‘종’보다 좋다는 인식이 생긴 것은 광해군 때였다. 광해군의 아버지인 선조는 조선시대 최초의 방계 출신 왕이었다. 더욱이 선조는 임진왜란이라는 큰 전쟁에서 왕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광해군 자신도 서자로서 왕위에 올라 정통성이 약했던 만큼, 아버지 선조의 묘호를 높일 필요성이 있었다. 그래서 선종이라 붙여질 묘호를 선조로 바꾸었다. p 155



선조는 너무 할 말이 많아서, 뭐부터 써야할지 난감한 왕이다. 분명 하성군 시절에는 나름대로 총명했던 것 같은데, 최초의 ‘방계 출신’이라는 신분 콤플렉스가 조선을 전란에 빠트릴정도로, 인재를 보는 눈을 가릴 정도로 컸던 것인가. 음. 선조에 대한 이야기는 수많은 포스팅에서 조미료 곁들이듯 썼던게 워낙 많아서 그냥 패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이 오백년이나 버틴 이유는...


세종은 결혼과 출산에 관한 복지제도도 마련해 운영했다. 가난해 결혼하지 못하는 사람은 친족이 돕도록 하고, 이마저도 어려운 사람에게는 관청에서 곡식을 지급해 결혼할 수 있게 했다. 출산에 있어서도 관청의 여종이 임신하면 출산 한 달 전부터 일을 쉬게 하고, 아이를 낳으면 100일 동안 휴가를 주었다. 남편에게도 30일의 휴가를 주어 산모를 도울 수 있도록 했다. 여성이 세쌍둥이를 낳으면 1년 치에 해당하는 쌀과 콩을 지급하며 출산을 장려했다. p 075



이렇게 가뭄에 콩나듯 백성을 위하는 군주가 나왔기 때문에, 혹은 대동법 같은 백성을 위한 정책이 나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들이 위하는 백성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정말 온전히 백성을 위한 정책인지는 차치하고. 너무 긍정적인 생각인가..? (개인적으로는 부패할대로 부패한 위정자들이 자기들의 권력유지를 위해선 나라가 계속 이어져야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딱 너무 망하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하게 조선을 끌고 나간게 아닐까 하는 뭐 그런 생각? 그나마도 조선 말기까지 가면 그 적당히조차 못한 부패관리들로 인해 나라가 아예 사라졌지만) 



여튼, 간만에 괜찮은 조선사 책을 읽었다. 만족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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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으로 시작하는 주식 투자
앤츠 지음 / 원앤원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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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관련 책은 내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읽지 않았던 장르다. 심지어 학창시절 고3 시절 담임이 경제과목 선생님이었음에도, 경제시간마다 졸았을 정도로 경제는 나와는 1도 맞지 않았던 장르였다. 하, 하지만 그것도 다 어릴때 이야기. 회사에서 받은 쥐꼬리 만한 월급으로 살기엔, 집값은 왜이리 비싸며(은행에 억소리나는 대출), 공공요금은 왜 하루가 멀다하고 인상되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재테크의 ‘재’짜도 잘 몰랐기에, 그저 무작정 적금드는게 다였다. 가만있어보자, 그때 적금 이율이 아마 3.5%였나. 그 돈으로 주식을 하기엔, 어려서부터 ‘주식, 도박, 경마’는 하면 안된다고 귀에 못박히게 들었기에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다. 허허허. 반면 당시 우리 구남친 현신랑은 이미 주식을 하고 있..었.....다는 뭐 그런 이야기...... 그래서 돈 좀 벌었다는 그런 이야기.............



그때 어른들 말 무시하고 대기업주 몇백만 사뒀어도.......후.........주식은 어려서부터 공부할 수록 좋다고 하던데.........후..........



하지만 지금에와서 포기하기엔, 아직 내 살날은 많이 남았고, 죽는 그 순간까지 돈을 써야하고, 하지만 죽는 그 순간까지 근로소득을 벌기위한 노동을 할 수 없으니!!!!!!! 재테크에 눈을 돌릴 수 밖에 없고, ‘재테크=주식’이니. 하하.하하. 지금이라도 주식을 공부해봐야지. 하하.



물론 우리 신랑은 내 전폭적인 지원아래, 지금까지 주식을 꾸준히 하고 있다는 건 안 비밀!



1장, 작고 소중한 월급을 지키기 위한 주식공부:


        ▶ 주린이가 빠지기 쉬운 세 가지 함정


2장, 주식 투자 전 이것만은 알고 하자


        ▶ 주식 투자 용어 정리, 투자 방식


3장, 돈 되는 종목은 따로 있다


        ▶ 기업의 재무재표, 현금흐름, 안정성 확인


4장, 언제 사고 언제 팔아야 하나요?


        ▶ 매매 시장 판단 분석


5장, 월급쟁이 엔츠의 투자계획


        ▶ 포트폴리오 구상, 유망 산업 주목!


코로나19 이후로 주식을 하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우리집이야 뭐, 신랑이 늘상 하고 있었고, 꽤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으니 ‘주식’이라는 것 자체가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확실히 요 몇년간 주식하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었다는 건 확실히 느낀다. TV 채널을 돌리다보면 주식 이야기가 자주 나오고, 아침 출근길에 듣는 라디오에서도 주식전문가가 나오고, 여기저기 주식주식주식. 



온갖 매체에서 ‘주식’이야기를 하다보니, 주식을 안하던 사람마저도 주식을 해야할 것같고, 주식을 하면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은 착각까지 들게하는 마성의 재테크, 주식. 하지만 여기서 함정이 있다. TV에서 주식을 말하는 사람들은 대게 성공담만 말하는 사람들이니, 그들처럼 되겠다고 무작정 주식의 길로 들으서면, 백프로 패망한다는 사실!


코 묻은 돈으로 호기롭게 주식장에 입성한 필자는 이렇게 연달아 쓰디쓴 실패를 맛보았다. 주린이가 빠지기 쉬운 함정인 리딩방, 확증편향, 뇌동매매를 보기 좋게 모두 겪은 것이다. 리딩방에 참여하면서 잃은 돈은 그래도 ‘내 탓이 아니야.’ 라고 생각하며 버틸만 했는데, 뇌동매매로 잃은 돈은 정말 스스로 한심해서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내가 사면 떨어지고 팔면 오르는 상황이 반복되자 정부가 내 계좌를 사찰하는 것이 분명하다며 카메라를 찾던 내 모습이 생각나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경제적 자유를 이루기는 커녕 거지가 되기 딱 좋았다. p 031



한때 그알에서도 다뤘던 리딩방이라던지, 확증편향에 뇌동매매. 주린이들에게 쓰디쓴 실패를 쥐어주며,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들이다. 만약 이 실패의 경험에서 무언가를 배웠다면, 주식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배우고자하는 마음이 들게했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그런건 배우지않고, 계속 수렁으로 빠지는 사람들도 있으니. 주식이란 참 무서운 친구..랄까..^_T..



‘기본에 충실해지자.’라고 판단한 필자는 곧장 서점으로 달려가 투자에 기본이 되는 이론들을 소개하는 책과 회계와 재무 전공 서적들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투자자인 워런 버핏과 피터 린치에 관한 책들부터 학교에서 배우고 책장에 박아두었던 영어로 된 전공서적까지 말이다. p 033



정말 주식으로 돈을 벌고 싶다면, 맨땅의 헤딩은 금물이다. 주식은 그 자리에서 내 돈을 불릴 수도, 박살낼 수도 있는 실전이다. 고로 기본부터 착실히 갈고 닦을 것! 나름 주식과 친할거라 생각했던, 경영학 전공자였던 저자조차도 멘땅의 헤딩으로 주식을 시작했다가 가진 돈을 다 잃고, 주식의 기초를 다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신랑이 꽤 오랜시간동안 주식을 하는지라, 나름 주식 용어에 대해선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새발의 피였다...ㅋㅋㅋㅋㅋ 뭐 이리 용어가 많아? 그마저도 아래 용어들은 기본용어들이니, 이것조차 모른다면 주식은 시작하면 안될 것 같다. 하하..하..

#주식투자 용어정리 


▶시가총액


시가총액은 상장 주식을 ‘시가’로 평가한 그 주식의 시장 가치다. 쉽게 말해 회사가 ‘지금’ 거래되고 있는 가격을 말한다. 한 기업의 시가총액은 ‘발행주식 수 X 현재 주식의 가격’으로 계산한다.


▶ 코스피


코스피는 ‘국내 종합주가지수’를 말한다. 쉽게 말해 현재 주식시장에 상장된 모든 기업의 주식 가격을 하나로 묶어 표시한 지표라고 보면 된다. 코스피 지수의 등락은 우리나라 주식시장 전체의 움직임을 나타낸다. 따라서 코스피 지수가 전일 대비 1%P  하락했다는 뜻은 그날 주식시장에 상장된 모든 기업의 주가 변동을 종합해봤을 때 상장된 전체 기업의 시가총액으로 보면 1%P 하락했다는 의미다.


▶ 코스피200


국내에 상장된 모든 기업 중 덩치가 큰 기업 200종목의 주가를 나타내는 지표다. 국내에 상장된 기업 중 업종의 대표성, 거래량, 기업의 덩치를 고려해 선정한 200종목의 주가를 나타낸다.


▶ 코스닥


코스피200이 ‘대기업’이 속해있는 지수라면, 코스닥 지수는 상대적으로 ‘중견, 중소기업’이 속해 있는 지수다. 상대적으로 영세한 중소기업 등의 자금 조달을 위해 만들어졌다. 이 중에서도 ‘코스닥50’ 지수는 코스닥 상위 50개 기업을 따로 묶어 만든 지표다.


▶ ETF


쉽개 말해서 ‘패키지’다. 투자자들이 개별 주식을 고르는 번거로움이 없는 펀드와 언제든지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는 주식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상품이다. ETF에는 ‘삼성그룹 ETF’, ‘2차전지 ETF’, ‘코스피200 ETF’ 등 엄청나게 다양한 상품이 존재한다. ETF는 적은 금액으로 다양한 기업에 투자하면서 리스크 분산 효과도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상품이라고 생각한다. 필자 역시도 ETF에 투자 비중이 높다.


▶ 인덱스 펀드


인덱스 펀드는 앞서 말한 코스피200, 코스닥50 등에 투자하는 ETF라고 보면 된다. 개별 기업에 투자하는 대신 코스피, 코스닥 혹은 코스피200, 코스닥50 등과 같은 ‘지수’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기업과 투자자 입장에서 코스피200과 코스닥50의 편입 여부가 중요한 이유가 이 인덱스펀드 때문이다. 외국인과 대형 기관은 개인 투자자보다 상대적으로 인덱스펀드 상품에 큰돈을 투자한다. 외국 입장에서 한국 시장에 투자하는 것은 보통 한국의 특정 기업에 투자하는 의미보다 리스크 분산 측면에서 ‘한국 시장’자체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다우존스 지수


다우존스 지수는 뉴욕 증권시장에 상장된 우량 기업주식 30개 종목을 표본으로 한 세계적인 주가지수라고 보면 된다. 애플, 코카콜라, 디즈니, 마이크로소프트, 세일즈포스, 콜드만삭스, 나이키 등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이 포함된다.


▶ S&P 500


다우존수와 함께 대표적인 세계 주가지수다.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미국의 S&P가 작성한 주가지수며 다우존스와 마찬가지로 뉴욕에 상장된 기업의 지수를 나타낸다. 다만 다우지수는 30개의 기업만을 대상으로 했다면 S&P 500은 500개의 우량기업주를 중심으로 선정한다.


▶ 나스닥


나스닥은 미국뿐만아니라 전세계의 벤처기업들의 자금 조달을 위래 형성된 시장이다. 비록 벤처기업들의 자금 조달을 위해 형성되었다고는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나 인텔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도 속해있는 시장이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 투자해야 할까? 패시브 투자 vs 액티브 투자


주식이란 그저 ‘재테크’라고만 생각했다. 근데 잘 생각해보니, 개인 입장에선 ‘재테크’일 수도 있겠으나, 주식이란 모름지기 해당 기업에 대한 ‘투자’를 뜻함이다. 만약 내가 우리 회사의 주식을 샀다면, 난 우리 회사에 투자한 사람이라는 뭐 그런이야기(..는 실제 이야기ㅋ).



좋은 투자 습관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주식을 ‘투자’개념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모든 투자는 장기성을 내포한다. 좋은 기업을 골라 장기 투자하는 것만큼 안정적이고 수익이 좋은 제태크도 없다. 하지만 무작정 ‘장기 투자’를 한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놀랍게도 본인이 산 회사가 돈을 잘 벌고 있는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심지어는 어떤 사업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투자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단기든 장기든). 이는 투자가 아닌 투기다. p 060



그니까 결국 주식은 그 기업에 대한 투자이므로,  내가 투자하는 기업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건 당연하다. 그나마 난 내가 다니는 회사니까, 남들보다 잘 알고 있다고는 생각하는데...ㅋㅋㅋㅋㅋ.. 음. 오ㅐ 안오르지..? 난 아직도 내가 다니는 회사를 잘 알고 있지 못하는건가, 하. 하긴, 아직도 난 우리 회사를 잘 모른다. 내가 봤을땐 대표부터 관리자까지, 이 회사가 살아있다는게 놀라울 정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하지 않는 대기업이니 말이다.


허 참....이상한 일이군.



패시브 투자자와 액티브 투자자는 주식시장의 가정부터 거의 모든 것이 상반된 의견을 토대로 한다. 하지만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패시브 투자를 맹신하는 투자자와 액티브 투자를 맹신하는 투자자 모두 돈을 버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밝혀진바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패시브 투자의 성과가 액티브 투자의 성과보다 상대적으로 뛰어나다는 자료를 여럿 확인할 수 있따. 하지만 가치 투자의 대가라고 부르는 벤저민 그레이엄이나 위대한 펀드매니터 피터 린치는 대표적인 액티브 투자자였기 때문에 ‘무조건 패시브 투자가 낫다!’라고 말 할 수는 없다. 각 투자의 장단점을 파악한 후 자신의 성향과 접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p 061


뭐 여튼! 이 책에 따르면 내가 우리 회사의 주식을 산건 아마도 ‘패시브 투자’인 듯 하다. 그....렇겠지..?


1. 패시브 투자


패시브 투자는 시장이 ‘효율적’이라고 가정한다. 효율적 시장의 가장 중요한 논지는 ‘주가는 이미 모든 정보를 반영한다.’라는 것이다. 즉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은 이미 투자자가 판단 가능한 모든 정보를 반영하고 있으므로 투자자의 판단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유로 패시브 투자를 지향하는 투자자들은 자기 주관대로 종목을 선정하거나 매매시점을 포착하지 않는다. 따라서 액티브 투자에 비해 장기 투자를 지향하고 매매 회전율과 거래세, 운용 보수가 적은 것이 특징이다. 



2. 액티브 투자


액티브 투자자들은 시장은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시장이란 것이 참여자들이 모여 형성되는데 참여자들은 결국 인간이기 때문에 비효율성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기업의 가치보다 일시적으로 주가가 폭등하는 오버슈팅 현상과 기업의 가치보다 주가가 현저히 낮은 저평가 종목들이 발생한다고 말하며, 저평가 종목은 매수하고 오버슈팅 종목은 매도하는 방식으로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업의 가치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 밸류에이션 방법을 어떻게 하는지, 향후 해당 기업의 산업을 어떻게 전망하는지에 따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기업의 가치는 천차만별로 나누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액티브 운영을 통해 전설적인 수익률을 기록한 투자자들이 너무도 많고, 지금도 액티브 운영을 통해 패시브 운영의 수익율를 넘어서는 투자자 역시 존재한다.p 61 ~ 69 中



뭐.. 장황하게 ‘패시브 투자’냐, ‘액티브 투자’냐 구분하기도 힘드니, 제일 좋은건 묻어두고 보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다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주식의 일희일비 하지 않으려면, 사고 묻어두는게 최고일지도^_T....


하지만 사람들은 주가가 내리면 ‘X잡주’라고 욕하며 매도하기 바쁘고 주가가 오르면 이때다 싶어 매도하기 바쁘다. 이런 식으로는 제아무리 종목을 보는 눈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지속 가능한 투자가 될 수 없다. 장담하건데 얼마 안 가 계좌의 잔고가 파랗게 변할 것이다. 괜히 “망치 매매법이 답이다.”라는 말이 나오는게 아니라는 걸 명심하자(망치 매매법은 매수 버튼을 누른 후 망치로 머리를 쳐서 기절한 후 꺠어나서 매도하는 매매법을 말한다. 농담인듯 진담같은 주식 투자자들의 말이다). p 071


주식투자의 리스크 관리: 분산투자


오우! 제약업계에 몸담고 있는 나에게 리스크 관리는 뗄레야 뗄수 없는 단어인데, 이게 주식시장에서도 통용될 줄이야! 하긴 생각해보면 그렇다. 주식시장이라는게, 내 기업의 가치가 올라가느냐 떨어지느냐에 따라, 그 기업에 투자한 내 돈도 더블이 되느냐 휴지쪼가리가 되느냐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 중요한 리스트 관리 방법 중 하나가 분산투자라니. 부..분산투자는 수익률이 아니라 안전성을 위한 방법이라는 것을 이제사 알게 된 난, 역시 주식을 하면 안될지도 모르겠다. 주식은 그냥 신랑에게나 맡겨야지..하..


분산투자는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한 개념은 아니다. 리스크, 즉 위험관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 분산투자는 우리의 수익률을 증대시켜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확실한 건 포트폴리오의 위험을 줄여주고 뇌동매매를 방지하는 안전벨트와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다. 내가 가진 종목이 예상치 못한 이슈로 크게 하락하거나 주식시장의 큰 조정이 왔을 때 리스크 관리가 되어 있지 않다면 큰 손해를 낼뿐더러 정상적인 사고를 방해할 확율이 높다. 하지만 나의 포트폴리오가 효과적인 분산투자로 이루어져 있다면, 시장 충격이 오더라도 나의 원칙대로 매매하며 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다. p 073~074




그래프를 보면 종목 수가 늘어날수록 비체계적 위험이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따. 이것이 바로 분산투자를 통해 리스크가 줄어드는 ‘분산 효과’다. 하지만 종목 수를 아무리 늘려도 일정 수준부터는 총 위험이 감소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왜 그럴까? 바로 시장에서 오는 위험, 즉 체계적인 위험은 종목 수를 아무리 늘린다고 할지라도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 이처럼 종목 분산을 통해 비체계적 위험을 줄일 수는 있지만, 시장 위험은 줄일 수 없다. 그렇다면 개인 투자자는 어떻게 해야 현실적으로 비체계적 위험을 줄일 수 있을까? p 075 ~ 076



*비체계적위험: 오너리스크, 산업리스크 등


*체계적적위험: 시장위험(전쟁이나 전염병 등)


분산투자는 여러 기업에 투자하는 것만 말하는 게 아니다. 금이나 부동산을 사거나, 해외주식을 사는 등의 자산군의 다양화 역시 분산투자에 속한 방법이다.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떄는 전혀 상관없는 기업(상관계수 0) 혹은 아예 반대 수혜를 누릴 수 있는 기업(상관계수 -1)을 편입하는 것이 현명하다. 예를 들어 수출 비중이 높은 A기업을 매수했다면, 수입 비중이 높은 B기업을 편입하는 것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옳다. 환율이 내리든 오르든 둘 장 하나는 수혜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장 위험을 나타내는 체계적 위험은 어떤식으로 분산할 수 있을까? 바로 자산군의 다양화를 통해 가능하다. 해외 주식, 채권, 부동산, 금, 비트코인 등 자산을 분산하면 체계적 위험 역시 감소한다. 한국에 전쟁이 나더라도 미국 시장과 금, 비트코인 등에 미치는 악영향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p 077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건, 주식이란, 그냥 돈 벌고 싶다고 무작정 시도했다간 패가망신하기 딱 좋은 재테크라는 것이다. 다만, 기초공사를 튼튼히 한다면(?) 제 2의 월급까지는 아니어도, 어느정도 안정적인 수익을 내면서 꾸려가기에 딱 좋은 재테크이기도 하다는 것.




고로, 아직까지 주식을 하기 전이라면, 하지만 주식을 하고 싶다면! 


이 책을 통해, 주식의 기초를 다지고, 주식의 흐름을 보는 눈을 0.01%라도 틔우고 주식을 시작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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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의 번역 - 요리가 주는 영감에 관하여
도리스 되리 지음, 함미라 옮김 / 샘터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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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는 음식과 관련한 책들이 꽤 있다. 음식 책 하면 단연 떠오르는 레시피 북도 있고, 음식의 역사에 대한 책도 있고. 한마디로 ‘음식’이라는 거대한 카테고리에서 세분화된 여러 장르의 책들이 있다. 그 여러장르 중에서도 없는 장르가 바로 ‘철학’인데, 이 책으로 하여금 음식에 대한 철학 책까지 내 책장에 꽂히게 되었다. 음, 맞다. 이 책에 대한 정의를 내리자면 ‘음식의 사유와 철학’ 이 정도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음식과 철학’이라고 하니, 이 책이 뭔가 무겁게 느껴지는데? 하지만 전혀 그렇지않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무거운 철학이 아니라, 한번쯤 생각해보았을 법한 그런 생각이 담겨있는 것 뿐이다. 예컨데 이 음식은 어떻게 내 밥상 위에 올라왔을까? 이 음식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뭐 이런 생각들이라고나 할까. 



일상에서 변화를 실천하고 연구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는 바로 부엌이다. 얼마나 기적적인 일이 거듭되는가. 볼품없는 감자 한 알이 감자퓌레가 되고, 뇨키가 되고, 감자수프, 포테이토 수플레로 변신하는가 하면, 밀알은 빵과 파스타가 되고, 크로와상과 피자가 되며, 돼지고기는 베이컨과 돼지고기 구이, 테부어스트가 된다. 우리 아이는 특히 동물이 살코기가 되어 접시에 오르는 변화에 엄청나게 몰두했었다. 


“이건 전에 뭐였어?”


아마도 우리가 보다 더 자주 물었어야 할 질문이 아닌가 싶다. 너무도 많은 고통이 그 변화 과정에 숨어있으니까. p 044



“이건 전에 뭐였어?”


밥상위에 올라온 음식을 아무생각없이 먹어재끼던 내 3n년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 아이의 질문이다.



내가 먹는 육고기의 시작은 나와 같은 하늘 아래 숨 쉬던 소, 돼지, 닭같은 동물들이다. 태초에 이 동물들이 처음부터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 태어난것은 아닐진데, 인간보다 약하다는 이유로 어느순간부터 인간에게 가축화되어,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 태어나기 시작했다. 말이 쉽지, 이 동물들을 인간이 먹으려면, 동물들이 죽어야 한다. 칼로 목을 치든, 약으로 죽이든, 죽이는 방법은 다양할거니 패스하고. 문제는 이 동물들이 죽어가며 겪는 그 고통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생각해보았을까 하는 점이다.



난 인간들에게 먹히기 위한 동물들의 죽음에 대해, 단연코 생각해본적이 없다. 심지어 어렸을 때 시골 한 읍내 시장에서 살아있는 닭이 한 기계에 들어가 순식간에 털이 다 뽑히고, 죽어서 나온 것까지 보았음에도 말이다. 그 모든 일을 당하는 닭에겐 엄청난 고통이 있었을 것이며, 엄청 잔혹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린 나는 그 상황을 개의치않게 보았다. 그저 ‘저 닭은 누군가가 먹기 위한 치킨이되겠구나!’ 싶었을뿐.



적어도 내가 요리를 하는 재료들이, 내 밥상위에 올라오는 음식들이 그냥 쉽게 생겨나는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이다. 내 밥상에 올리온 모든 음식들이 내 피가 되고 살이 됨에 감사하며 먹어야지.



우리 모두에게 뇌 요리는 색다르면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음식으로 남아 있다. 지금 생각해도 믿기 어렵다. 정말로 네 명의 아이를 위해 송아지의 뇌가 네 개나 있었나고? (……) 우리가 송아지의 뇌를 앞에 두고 역겨워했다면, 송아지 뇌 요리의 광팬들은 스파게티를 보면서 역겨워하지 않았을까? p 059



나라마다 소비하는 음식들 중에서 유독(!!!) 살고 있는 문화나 종교에 따라,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음식들이 있다. 내 기준에서 보면, 중국에서 먹는 박쥐나, 동물의 뇌 뭐 이런 것들. 반대로 외국인들이 개고기를 먹는 한국인들을 보면 역겹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이 모든 걸 문화의 차이라고 받아들이고 싶지만, 그래도 역겨운건 어쩔 수 없지않나. 하지만 그렇다고 “왜 이런걸 먹어? 역겨워! 이런건 먹으면 안돼!” 라고 말하면, 그건 오지랖중에서도 대형 오지랖이랄까. 그냥 ‘아, 저 나라는 저런것도 먹는구나’ 하고 넘어가면 될일이다. 그저 서로 취향존중을 해줘야 하는 부분이라는 것.



개인적으로 이해안되는 부분중 하나가 ‘식용 개고기’에 대한 논쟁이다. 개를 아낀다는 사람들은 식용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야만인 취급하며, 좁은 사육장에 있는 개가 불쌍하다며 반대한다. 근데 그들이 반대하는 사유가 오롯이 ‘개’에게만 해당된다는 점이 참 그렇다. 닭이나 돼지들도 대부분 좁고 더러운 사육장에서 살며, 때에 맞춰 도축되고, 사람들의 밥상에 오르는데 왜 이에대해선 반대하지 않는걸까? 개, 돼지, 닭 모두 다 같은 동물인데, 개는 반려동물로 키우는 사람이 많으니 먹으면 안되고, 상대적으로 식용가축에 속하는 소, 돼지, 닭은 어떤 환경에서 키우든 먹으면 그만이라는 걸까? 참 이중적인 마인드다. 



다 바꾸지 못할거면, 그냥 서로 취향존중하는게 어떠한지- 싶은 그런 마음이랄까.



우유는 지구촌 전체에 걸친 문제이다. 유럽은 지나치게 많은 우유를 생산하면서도 아무런 책임도 지려하지 않는다. 소규모 낙농 농가는 대규모 낙농업자 때문에 허물어지고 있다. 우리는 터무니없이 많은 우유를 생산하려고 젖소의 건강을 해친다. 더는 소를 목초지로 내보내지 않는다. 우리의 전원도 덩달아 황량해지고 있다. 우리가 생산한 우유를 분유로 만들어 수출하는 바람에 다른 나라에서는 낙농법이 파탄 일로를 걷고 있다. p 077



초콜릿이 주는 위로 덕분에 우리는 때때로 실패와 좌절, 근심을 잊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삶의 모든 좌절과 고통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미리 초콜릿을 먹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너무 많은 칼로리를 섭취하는 것은 곤란할테지만. 그리고 아동을 노동에 투입하거나, 거대한 코코넛 농장으로 환경을 파괴하는 등 정치적인 이유에서 피해야 하는 특정 제품도 제외해야 할 것이다. 이젠 아무것도 간단하지가 않다. 하다못해 초콜릿 하나 먹는 것도 말이다. p 089



나는 독일에 있는 모든 닭이 한목소리로 깊은 한숨을 내쉬는 걸 듣는다. 닭의 삶은 소름끼치도록 끔찍해졌다. 우리가 닭의 생육 환경에 무관심해지기 시작한 이후부터. ‘유기농 닭’이라고 해서 크게 나을 것도 없다. 왜 우리는 몇십 년이 흐르도록 칸칸이 쌓아 올린 닭장과 병아리 분쇄기를 두고만 보고 있을까? 뭐가 잘못된걸까? 제정신이긴 한 걸까? p 104



독일로 돌아온 나는 내 손에 들린 아보카도를 바라본다. 녹색의 황금. 아보카도에 얽힌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웅웅거린다. (……) 아보카도 토스트, 과카몰레에 대한 나의 열정, 아보카도 전쟁, 물 부족, 누구도 이 모든 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 아보카도에 ‘혐오 식품’이라는 뜻으로 ‘Hass’라는 작은 스티커를 붙이는 건 어떨까? p 196



환경 다큐도 꽤 즐겨보는 나로써, 이런 부분들은 꽤 마음이 아프다. 



과카몰레를 즐겨먹던 나인지라, 마트가면 아보카도 한 두개씩 꼭 집어왔었는데, 이 아보카도가 물 부족에 엄청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난 후 섣불리 아보카도를 사먹지 못하게 되었다. 조금더 들어가자면, 아보카도는 물 사용량도 많지만 ‘탄소발자국’도 큰 식품중 하나다. 



‘탄소발자국’이란, 개인이나 국가 또는 아보카도 같은 이런 과일같은 모든 것들이 직, 간접적으로 발생기키는 이산화탄소같은 온실기체의 총량이다. 한마디로 탄소발자국이 클 수록 온실기체 발생량이 많다는 이야기이며, 지구의 기후변화에 엄청나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아보카도는 물 사용량도 어마무시하지만, 탄소발자국도 엄청시리 커서 지구를 점점 망가트리는 대표 과일중 하나라고나 할까. 뭐, 아보카도가 이런 결과를 원하진 않았겠지만 말이다. 그저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이렇게 된 것일뿐. 아보카도를 사례로 들긴했지만, 대게 먼 외국에서 날라오는 열대과일류는 탄소발자국이 큰 것들이라 할 수 있다(열대과일 농장을 만들기 위한 산림 파괴, 저임금 노동착취도 부수적으로 따라온다).



즉, 우리가 열대과일을 즐겨먹음으로써, 나도 모르게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아니 뭐 그렇다고 먹지말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모르고 먹는 것보단 알고 먹는게 낫다고 생각하는지라. 뭐, 그렇다.



우리에게는 동물의 예술 작업에 대한 심미안이 전혀 없다. 그런 이유로 복어는 알아서 미리 대비했을 것이다. 복어는 독성이 매우 강하다. 일본에선 매년 복어 독에 사망하는 사람들이 발생한다. 하지만 식당에선 복어 살로 만든 요리, 특히 복어 간 요리가 별미로 손꼽힌다. (……) 복어는 비교적 자기 자신을 잘 보소하고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인간을 셈에 넣지 못했다. 그사이 품종 개량이 돼서 독성이 없는 복어가 나온 것이다. p 141



복어 독! 복어요리를 꽤나 좋아는 나인지라, 신랑이랑도 이런 동식물의 심미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했다. 예컨데 복어는 분명 살아남기 위해 체내에 독을 만들었을거고, 매운 고추도 살아남기 위해 캡사이신을 만들어냈을거다.하!지!만!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동식물들의 지혜는 인간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복어에 독이 있어도 인간은 어떻게든 그 독을 제거하고 복어를 먹고, 고추가 아무리 매워도 인간은 땀을 뻘뻘흘리며 먹는 등 인간은 음식앞에선 목숨조차 내걸 정도로 진심이니 말이다.





지금까지 음식을 먹으면서 이토록 식재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 책 덕분에 내 생각의 폭이 매우 넒어진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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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 - 시인이 보고 기록한 일상의 단편들
최갑수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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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읽을 때 전문서적이나 지식습득을 위한 책의 저자 이력은 중요사항(!)으로 생각한다. 반면에 에세이나 수필은 저자의 이력에 크게 개의치 않아해서, 이력부분은 잘 안보는 편이다. 그래서 이 에세이도 으레 그렇듯 표지를 펼치고, 책을 읽으려고 하다보니 문득 저자의 이력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이 여행에세이다보나 당연히 저자는 여행작가라는 내용의 이력만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저자의 이력 중 유독 내 눈길을 끄는 이력이 있었다. 바로 <EBS 세계테마기행-필리핀> 출연이라는 문구. 어쩜세상에나, <EBS 세계테마기행>은 내가 즐겨보는 방송이고, 심지어 코로나시국인 이때 매주 재방송해주는 것까지 챙겨보는 나인데, 어쩌면 내가 보았던 편에서 저자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괜시리 저자가 내가 즐겨보는 프로그램 <세계테마기행>에 출연했다고 하니, 이 책이 달리보인다. 왜인지 몰라도 그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장소들을 또 한번 보게 될 것 같아 기대가 되고, 괜히 더 정감가고 막 그러기 시작했다는 건 안비밀!



책 표지와 작가의 이력만으로 당연히 여행에세이라 생각하고 읽기 시작한 이 책 『오래전부터 말하고 싶었어』. 읽고보니 이 책은 단순한 여행에세이가 아니었다. 하긴 책 제목만 보아도 여행에세이와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던건데!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다 읽고나서 느낀 건, 이 책은 여행에세이이자 힐링에세이, 거기에 감성을 두스푼 곁드린 책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멋진 감성 여행사진이 실려있는 여행에세이는 시중에도 많다. 고로 널리고 널린 여행에세이 가운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언가 그 책만의 특징이 있어야 하는데, 이 책은 그 특징으로 ‘감성사진’과 저자 특유의 ‘위로’를 담은 것이었다.





맥주를 마시며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여행을 떠나온 그들(혹은 우리들) 모두가 얼마나 개성 있고, 멋있고, 다재다능한 친구들인지 알게된다. 그러니 당신.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특별하고 비범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당신은 왜 그렇게 평범해지지 못해 안달인거죠? p 027



난 살면서 평범한게 제일이라 생각했다. 평범해야 사람들 속에서도 눈의 띄지않고, 평범해야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에게 있었을 재능이나 기술도 없는 것마냥 치부하며 숨죽이고 조용히 살았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그렇다. 왜 우린 굳이 .. 아득바득 평범해지려고 노력하는 걸까? 사람마다 다 다른 재능이 있고, 다 다른 능력치가 있기에, 같을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느샌가 우리는 ‘평범’이라는 단어아래 모여서, 모두가 같은 모습을 하길 바라고 있었다.




대체 왜 우리는 ‘평범’이라는 단어 아래 모이려고 하는걸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는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해서 배척하는 우리 사회의 영향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그저 어떠한 재능이 특출나거나, 남들과 다른 것을 좋아하거나, 남들과는 다른 특징을 가졌을 뿐인데 말이다. 그저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면 되는 것 뿐인데, 우리가 사는 사회는 ‘다름’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각자 다른 재능을 품고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범’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언제쯤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가 찾아올까? 그날이 오긴 올까?




 



옛날엔 ‘청춘’ 이라하면, 다들 십대후반에서 이십대를 말했다. 하지만 지금도 그럴까? 난 그렇지 않다고 본다. 삼십대인 나만봐도 그렇다. 내 십대후반부터 이십대중반까지는 크게 빛나던 삶을 살진 못했다. 그냥 계속 학업에 치이고 일에 치이고,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제대로 하지 못했달까. 그래서 딱히 기억에 남는 시간도, 경험도 크게 없다. 하지만 이십대 후반에 들어서, 결혼이라는 터닝포인트를 기점으로 그때부터 오롯이 나만의 ‘삶’이 시작되었다. 



누군가 내게 당신의 청춘은 언제였는지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테다. 열정, 불안, 무모함, 호기심이 청춘을 정의하는 단어라면 내게 청춘은 이십 대 시절이 아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그때가 내게 청춘이다. p 051



저자는 말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그 때’가 바로 청춘이라고. 고로 내가 하고 싶은 일, 즐기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있다는 감정을 느끼는 바로 그 때가 청춘이니, 내 청춘은 지금이다. 아마 이후로도 내 청춘은 계속 이어질것이다.



어른이 되기위해 가장 먼지 배워야 할 게 뭔지 알아?



세련되게 거절하는 방법을 알 고 있을 것.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이 안면으로 일을 들이밀 때는 일단 생각해 본 다음 메일로 답을 드리겠다거나, 상사가 당직을 바꾸자고 할 때를 대비한 적당한 핑곗거리 정도는 만들어 둬야지. 곁들여 말한다면, 할까 말까 망설여지는 일은 경험에 비춰보건데, 시작하지 않는게 좋아. 일도 그르치고 인간관계도 불편해질 뿐이지. 기억해둬. 거절을 잘하면 인생이 두 배는 편해진다는 것을. p 070



아, 급 인생의 쓴맛이 나타난다. 난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에 뛰어들면, 그때부터 어른이라 생각했다. 근데 어른이라 생각한 나와, 학생이었던 나와의 차이점은... 크게 없었다. 뭐지? 난 분명 회사에 다니고, 월급을 받고있는데 말이다. 그러다 문득 회사에 오래 다니던 사람들을 보면서 깨달았다.



아, 진정한 어른은 상대방이 무언가를 떠넘겼을때, 기분나쁜 티를 내지 않고 잘 거절하는 구나!! 상대방이 무언가를 떠넘겼을때, 그것을 고스란히 받아서 일을 하고 있는 나는 어른은 커녕 풋내기에 불과했구나^_T. 이걸 깨닫는데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오랜시간동안 나는 떠넘겨진 많은 일을들 수행했고, 나는 회사에서 어느새 스마일맨.


 



 



하지만! 지금은 조금 어른이 되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이젠 절절한 타이밍에 ‘거절’이라는 스킬을 발휘할 수 있게되었으니까. 거절만 잘해도 내 회사 생활의 1/3이 편하다는 것을 깨달은 지금, ‘거절’은 내 주요 무기가 되었다.



회사생활의 나머자 2/3은...?? 사람이다. 어쩔수 없다. 그냥 버티는 것^_T......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좋은 여행이란?


그러면 이렇게 답한다. 자신의 내면을 넓히는 일, 무언가 깨달음을 얻는 일, 이런 것 다 좋다. 훌륭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런 것 다 떠나서 좋은 여행은 현지인들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는 것,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다른 여행자들과 자연을 배려하는 것, 자아를 찾아 떠나는 나의 여행보다 길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당신의 여행이 수백 배 더 아름답다. p 136



완전 공감에 공감을 덮은 말이다. 코로나19 전까지만해도 난 해외(..라고 하고, 일본이라고 읽음ㅋ)를 자주 나갔었는데, 그때마다 느낀게 있다. 왜 남의 나라까지 와서 고성방가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는지!! 왜 남의 나라까지 와서, 개도 못 줄 버릇을 꺼내며 현지인들에게 민폐를 끼치는지!!! 왜 남의 나라에서 자국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지!!!!! 일반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이렇게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이 많아서 난 해외에 가면 우리나라 국민을 만나는게 제일 싫었다. 이제와 말하지만, 일본에 갔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있는 장소에선 일본인인 척 했다. 꽤 척을 잘했는지, 일본인조차도 나에게 길을 물어보았던 신기한 상황ㅋ



뭐 그렇다. 그렇게 현지인에게 민폐를 끼치던 일부 사람들의  행태를 잘 보면 SNS 등에선 무언가를 배운 척, 깨달은 척 한다. 하, 정말 그들은 그 여행에서 무언가를 배운게 맞나? 그런 여행에서 무언가를 배웠다고 한다면, 그들은 정말 여행을 떠나면 안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그 여행에서 배운 건 현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 밖에 없었을 테니.



그러니까, 좋은 여행이란 그저 한가지다. 그 나라의 혹은 그 동네 사람들과 동화되는 것. 그들이게 민폐끼치는 행동을 하지 않고, 그들을 배려하고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 그게 바로 좋은 여행이다.




아유. 해외를 못나간지도 벌써 2년인데. 언제까지 <EBS 세계테마기행>을 보며 랜선 해외여행을 해야하나. 비행기 타고 해외로 날라가고 싶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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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9-16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계테마기행 팬 여기도 있어요 ! ㅎㅎ청춘에 대한 정의가 멋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