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교토 (꽃길 에디션)
주아현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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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회사 일이 너무 바빴다. 주말도 출근해서 몇일 째 야근. 나름 워라밸을 꾸준히 지켜왔기에, 이렇게 갑자기 라이프 밸런스가 무너지면 몸이 적응을 못한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몸이 피곤해지면 괜시리 이 곳을 벗어나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데, 지금이 딱 그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기 적절하게 여행 에세이 하루하루 교토를 읽게 되었다. 딱 이틀 동안 출근 후 20, 그리고 점심 식사 시간. 이 시간에만 읽었다. 마음 같아서는 저녁 식사 시간에도 읽고 싶었지만, 여기저기서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방해를 받지 않는 유일한 시간이 아침 20, 점심 식사시간이 유일했으니까.

 

이 책을 읽고 있는 시간 만큼은 난 바쁜 일상이 아닌 교토에 있었다.

 


제목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분홍 분홍한 표지 때문이었는지 어쩌면 둘 다 였는지는 모르지만, 이 책을 보자마자 느낀 건 교토의 봄 이었다. 책을 펼치기도 전에 이미 내 마음은 폭죽 터지듯 벚꽃이 피어있는 교토에 있었다.

 

교토에서의 한 달은 마치 영화에나 나올 법한 따스한 순간들의 연속이었다.이런 날씨에 교토라니,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

 



교토는 일본 여러 도시 중에서도 나에게는 정말 특별한 도시다. 나의 첫 해외 여행지 였으며, 나의 베스트 프렌드와, 나의 부모님과, 나의 신랑과 찾았던 곳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왜 교토가 좋냐고 물어본다면 콕 집어서 대답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년 교토를 찾았고, 앞으로도 계속 방문하고 싶은 도시다. 그런 교토에서 한 달을 살아보는 것. 나의 오랜 꿈이기도 했다. 시간적 여건만 주어진다면 당장이라도 교토로 떠날 수 있는 꼭 이뤄보고 싶은 꿈.

 

주아현 작가는 나의 이러한 꿈을 대신 실행해주기라도 하듯 교토에서 한 달을 살았다. 한달 동안 차곡차곡 일기를 써내려 갔고, 그 일기는 지금 내 손에 있는 바로 이 책이다. , 이 책은 교토 여행 에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교토여행을 기록한 일기인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걸었던 교토의 한적한 골목길을 생각했다. 누군가는 교토는 관광객이 많아서 번잡하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갔었던 교토는 한적했다. 아니지, 교토에 처음 방문했을 때는 교토가 참 번잡했었다. 두 번째 방문 했을 때 부터 교토가 참으로 한적했다.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다.

 

천천히, 그리고 느긋하게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교토의 구석구석을 만나다.”

 

처음 교토에 방문했을 때는 일명 라쿠버스라 불리우는 100번 버스가 지나다니는 곳만 방문했다. 금각사, 기온거리 등등 교토 명소 of 명소만 지나다니는 그 버스는, 수많은 관광객이 탑승하기 때문에 언제나 만원이다. 나에게 교토는 초면이었기에, 100번 버스를 타고 번잡한 교토만 보다가 돌아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좋았다. 그래서 두 번째 교토 여행을 계획했고 그때서야 한적한 교토, 교토의 진 면목을 보기 시작했다.

 


느린 여행, 여행지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교토에서 한 달 살기를 꿈꾸는 나에게는 그저 꿈일 뿐인 여행.

대한민국의 직장인이 여행을 할 수 있는 평균적인 기간은 연차 하루를 사용하여 주말포함 23. 그나마 연차 사용에 눈치를 주는 회사의 경우 오로지 주말 이틀 뿐이다. 그에 비하면 나는 연차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니 행운아라고 해야할까. 하지만 23일 이다. 아주 간혹 연차 이틀을 사용해서 34일 까지도 가능하긴 하다. 다만 눈치를 엄청나게 봐야하고, 안 좋은 소리 듣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나의 교토 여행은 언제나 빠르게 빠르게 였다. 가고 싶은 장소는 많은데 시간적 여유는 없으니까. 한적한 교토를 느끼고 싶다면서 정작 나 자신은 빠르게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다. 내가 방문한 그 장소는 언제나 한적했고, 사람들도 여유가 있어보였다. 하지만 그 속에 있는 나는 속으로 계속 빨리빨리를 외쳤다. 이 얼마나 모순된 여행인가.

(TMI - 여유있는 여행을 해보겠다며 도쿄 67일 여행을 한적이 있었는데, 역시나 여유는 없었고 그때도 빠르게 빠르게 였다ㅠㅠ)



 

교토의 봄은 벚꽃과 함께 시작한다. 4월 초 쯤이 되면 교토 곳곳에서 분홍 폭죽이 터진다. 내가 본 교토는 언제나 여름 여름한 초록빛 교토, 가을 가을한 오색빛 교토다. 올해는 꼭 분홍 분홍한 봄의 교토를 봐야지 ! 싶다가도 시간적 여건이 안되어서 교토 여행을 포기한게 한 두 번이 아니다. 나는 언제즘 분홍 분홍한 봄의 교토를 만날 수 있을까?



 

교토의 골목을 걷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행운이 있다. 생각치도 못 한, 교토를 한 껏 담고 있는 카페를 만나는 것 이다. 나에게도 그런 행운이 있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교토 에이칸도 부근의 골목을 걷다가 만났던 카페 아사노. 노부부가 운영하던 그 카페에는 배 부른 사람조차 배고프게 만드는 달콤한 카레향이 났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카레를 주문하게 만들었던 마성의 카레향, 평생 잊지 못하겠지.

 


저자 주아현님의 교토 한 달 살기 위시리스트

아무 계획 없이 동네 산책하기

아무 음식점에 들어가서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기

동네 마트에서 장을 봐와서 아침 해먹기

여행에서 만는 사람과 친구가 되기

 

몇 가지는 내 위시리스트와도 똑 닮아서 놀랍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위시리스트를 이루고 온 저자가 부럽기도 했다.

 

앞으로의 나는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한 달이라는 공백을 갖는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꼭 하나 말해주고 싶다. 많은 것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투자해서 온 한달간의 살아보기는 가치를 따질 수 없을 만큼의 큰 보물이 되었다고

 

나에게 용기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교토 한 달 살기에 도전했을 것이다. 아니 이미 교토에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용기가 부족하다. 직장인에게 타지에서 한 달 살기란, 직장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말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해서 나는 용기를 낼 수가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직 취직을 하지 않은, 혹은 공부중인 20대 초반의 아이들이 부럽다. 그들에게도 교토에서 한 달 살기는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직장에 얽매여 있는 사람보다는 덜 할 테니. 그래서 말해주고 싶다. 굳이 교토가 아닐지라도 용기를 내어 외지에서 한 달만 살아보라고.평생 이루지 못하는 꿈이라 생각하며, 왜 진작에 하지 못했을까 라고 후회하기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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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선물, 북유럽 - 홀로 떠난 북유럽 5개국 여행기
윤길 지음 / 지식과감성#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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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북유럽은 그대로 신의 나라였다. 철들 무렵 읽었던 북유럽 신화에 대한 이미지가 남아 있었고, TV에서 보여주는 북유럽은 언제나 자연이 너무 아름다운, 신이 언제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나라였으니까. 그래서 더욱 기대를 갖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헌데 읽고보니 일반적인 여행기랑은 조금 달랐다. 책의 저자는 자유여행을 자주 떠나는 2030 아닌, 이제 직장에 은퇴한 시니어였다. 인생의 산전수전을 겪고, 이제는 조금 편하기 나이가 사람이 북유럽 여행기를 것이다. 생각해보면 북유럽 자유여행은 2030 에게도 크나큰 도전인데, 노년의 나이에 북유럽 자유여행을 도전했다니. 책의 내용을 차치하고서라도, 그것만으로도 이미 책의 저자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홀로 떠나는 35 간의 북유럽 여행. 저자는 여행 준비를 위하여 국내 인터넷 사이트가 아닌, 방문국 관광청 현지 여행사 웹싸이트를 통하여 자료를 수집하였다. 일단 국내 싸이트가 아니니 당연히 국문이 아닌 영문. 언어가 다르니 이해하기 힘들텐데도 불구하고 현지 정보를 얻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멋졌다. 같으면 당연히 국내 싸이트에서 가열차게 검색했을 텐데. 생각해보면 저자의 말이 맞다. 현지 정보를 현지의 언어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확실할테니.

그렇게 저자가 처음으로 도착한 곳이 핀란드의 프랑크푸르트 공항이었다. 핀란드를 시작으로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아일랜드를 돌아보는 장장 1개월간의 여행.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걱정되기는 처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체력적인 면이나 언어적인 면에서 확실히 힘들 밖에 없는 여행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홀로 핀란드 호텔에 체크인 , 시작이 반이니 여행의 절반은 성공한 셈이라며 자축하였다.

핀란드는 여름에는 북극의 신비경이라 있는 백야를 경험할 있고

겨울에는 오로라를 있는,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할 있는 나라다.

신의 선물, 북유럽 P25

헬싱키에 들려서 포르보 올드타운을 보고, 알렉산더 3세의 별장을 보았다. 발라모 수도원을 들렀고, 콜리국립공원도 들렀다. 힘들 법도 할텐데 저자는 백야를 체험하겠다며 11시에 밖으로 나왔다. 나라면 진작에 골아 떨어지고도 남을 시간이다.


그리고 이렇게나 멋진 사진을 찍었다. 사진만 보았을 이제 해가 지는 듯한 늦은 오후 같아 보이지만, 11시다. 유명한 백야. 말로만 듣던 백야를 이렇게나마 간접적으로 경험을 하게 것이다. 조금 뜬금 없기도 하지만, 밤중에도 이렇게 밝으면 동네 사람들은 잠은 대체 어떻게 자나 싶다. 컴컴한 밤에도 은은하게 보이는 달빛조차 잠에 방해된다며, 암막커튼까지 치고 자는데. 새삼 한국에서 살고 있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기엔 요새 미세먼지가 심하니 그것도 아닌가 싶고 하하하

핀란드를 떠나 스웨덴으로 향했다. 사회복지가 무척이나 되어 있어 그저 부러운 나라다. 복지면 복지, 아이들 교육이면 교육, 각종 공공서비스가 상위권에 위치한 그런 나라다. 하지만 이면에는 50% 넘은 고율의 세금이 있었다. 물론 막연하게 나마 '세금을 많이 나라가 그만큼 해주는 거겠지' 했는데, 상상 이상으로 높은 세금이라 당황했다. 만약 나라면, 동일한 세금을 내고 스웨덴 만큼의 복지를 해준다는 전제가 있다고 해도 섣불리 찬성을 못할 같다ㅠㅠ... 이건 그저 내가 속이 좁은걸로..

동화의 나라 덴마크, 나에게는 그저 안데르센의 나라 뿐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군주정치의 고장, 코펜하겐 ! 지금은 덴마크의 수도이기도 하며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는 곳이다. 곳는 유럽에서 가장 보행자 거리가 있는데, 이름 그대로 보행자 거리. 사람을 위한 거리였다. 우리 말로 치면 차없는 거리? 도로 곳곳에서 각종 퍼포먼스 공연이 진행되고, 벼룩시장에, 음악공연까지. 내가 국내에서 없는 거리는 , 아직까지 뇌리에 남는 장소를 가본적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덴마크의 보행자 거리만큼은 실제로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노르웨이의 자연은 그냥 사실(존재) 아니고 신이 주신 선물이다.

신의 선물, 북유럽 노르웨이

노르웨이 하면 자연환경. 나에게도 거기까지 였다. 근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노르웨이 하면 바이킹이었다. 실제로 노르웨이에는 바이킹 박물관이 있었다. 이쯤 되면 북유럽에 대한 지식이 정말 없었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 시작한다. 그래도 학창시절 수능 세계사 1등급을 곧잘 받았었는데 . 노르웨이 바이방 박물관에는 여러척의 바이킹선이 전시되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이질감은 책을 읽기 내가 기대한 바와 전혀 다른 내용에서 오는 것이었다. 제목인 '신의 선물' 이라는 문구를 보고 나는 막연하게 북유럽 신화와 연관되는 여행기를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북유럽 신화와는 크게 관련이 없는, 정말 북유럽 5개국 도시 여행기? 그래서 일면 실망한 부분이 분명 있기는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책에 대한 나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니 . 내가 오해했던 부분을 제외한다고 치면, 여행기는 정말 술술 읽히는 책이었다. 실제로 북유럽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에게는 분명 도움이 이다. 저자가 몸소 체험한 사실과 정보들을 알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떠나서 책을 높게 사는 이유는 하나다. 여행은 도전이다 라는 의미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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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1 : 태조 - 혁명의 대업을 이루다 조선왕조실록 1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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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역사서 중 조선왕조실록이 유독 특별한 이유가 있다. 보통은 차기 왕조가 전 왕조의 역사서를 편찬한다. 예를 들면 조선초에 집필한 <고려사>가 있겠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에서 집필한 조선 당대의 역사서다. A라는 왕이 있으면 사관이 A왕을 따라다니며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열씸히 끄적인다. A왕이 죽고 B왕이 즉위했다. B왕은 실록청을 만들어 A왕의 실록을 편찬한다. A왕의 실록을 편찬할 때, B왕은 절대로 참여할 수 없다. 몰래 볼 수도 없다. 이는 조선왕조 500년간 쭉 지켜져 온 하나의 체계이다.

 

(참고로 정식적인 실록은 철종 때 까지다. 고종 및 순종실록은 일제강점기때 편찬되었으므로 기록에 왜곡이 많다)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책은 많다. 많아도 정말 많다. 어린이용 조선왕조실록부터 어른용 조선왕조실록, 작가도 다 다르다. 내가 읽은 조선왕조실록만 해도 열권은 족히 된다. 그럼에도 또 조선왕조실록을 읽었다. 과거에 읽은 책과는 나름 차별점이 있었기에.

 

과거에 읽었던 조선왕조실록은 대게 한권 내지는 두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반면 이번에 읽은 이덕일 작가의 조선왕조실록은 왕 별로 발행했다. 정확히 한 임금 당 한권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한 권당 1~ 3명의 왕으로 묶여있다. 과거에 읽었던 한 두권 짜리 책보다는 더욱 방대하고 세밀한 내용이 담겨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방대하고 세밀했다.

 

과거에 읽었던 책 조선왕조실록. 당시에는 너무 어렸다. 해서 책에 나온 모든 것이 실제 역사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고 머리속에 든 것이 많아지면서 깨달았다. 시중에 나온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책은 실록 그 자체가 아니라, 작가의 관점으로 쓴 소설이라는 것을.

 

그 속에 팩트는 있으나 작가마다 팩트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 달랐다. 이 책 역시 그렇다. 역사서 조선왕조실록을 읽은 것이 아니라 이덕일이라는 한 사람의 주장이 담긴 역사소설로 읽어야 했다. 그 속에서 팩트와 주장을 걸러내고, 등장인물에 대한 작가의 평가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 읽은 그대로 흡수해 버린다면 작가가 주장하는 그대로를 흡수하는 것 밖에 안된다. 물론 작가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성계가 최영에게 말했다.

"이 사변은 내 본심이 아니오. 국가가 편안하지 못하고

인민이 피로하고 원망이 하늘에 사무쳤기 때문에 생긴 일이니 잘 가시오.' - P173

 

그 유명한 위화도 회군. 최영 장군이 직접 요동정벌군을 이끌었다면 조선의 개국이 조금은 늦어졌을 지도 모르겠다. 뭐 여튼 위화도 회군으로 인해 고려의 수문장 최영 장군은 더이상 고려를 지킬 수 없었다. 그렇게 고려의 기운은 완전히 꺾어버렸다. 이후에는 뭐 일사천리였다.

 

, 꼭 일사천리라고는 할 수 없겠다. 정몽주가 아직 살아있었으니까.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이고 나서야 정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고려의 마지막 왕은 공양왕이라고 말한다. 틀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고려의 마지막 왕은 이성계다. 이성계는 공양왕의 양위를 받아들여 고려의 마지막 왕이 되었다.

나라 이름은 그전대로 고려라 하고 의장과 법제는 한결같이 고려의 고사에 의거한다 - P284

이성계는 그제야 화가위국이 비극의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왕씨에게만 비극의 길이 아니라 이씨에게도 비극의 길이었다.

그것이 왕가의 길이고, 권력의 길이었다. -P347

 

고려 말 일개 무장이었던 이성계다. 정도전이라는 책사를 만나 이씨 집안은 왕가가 되었다. 이성계는 왕이 된 후 전 왕조, 왕씨들을 몰살시켰다. 무릇 권력이란, 장애가 된다 싶으면 아들과 아비가 없을진데 전 왕조는 당연히 척살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 업보가 고스란히 이성계에게 돌아왔다.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 군사를 일으켜 동생들을 죽였다. 정확히는 이방원의 이복동생 방번과 방석이다. 그 뿐이 아니다. 방번과 방석 말고도 이복동생이 하나 더 있었다. 경순공주였다. 다만 그녀는 살아남았다. 대신 그녀의 남편이 이방원의 손에 죽었다. 그렇게 이성계는 자기의 아들이 또 다른 아들을 죽이는 모습을 보아야 만 했다.

 

내 책장에는 본 책의 2권인 정종/태종편이 꽂혀 있다. 언제 2권을 꺼내서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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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셀프 트래블 - 2019-2020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25
정승원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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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어디까지 가봤니?

너무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까지 베트남을 가본 적이 없다. 해외여행은 허구헌 날 일본만 다녔고, 일본을 제외한 나라는 인도네시아 롬복 딱 한 곳 뿐이었다. 그나마 신혼여행이라 롬복을 간 것이지, 아니면 일본 외의 해외는 지금까지 못 가봤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 요새 들어 일본 여행에 대해 매너리즘에 빠졌나보다. 나에게 일본은 비행기만 타고 돈만 좀 쓸 뿐이지, 언어도 통하고 음식도 맞고 하니 거의 국내와 다름 없다. 해외여행은 '무언가를 향한 도전' 이라는 데, 나에겐 도전이 아닌 해외여행이니.. 해서 그런가 정말 '도전'을 해야 하는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요즘이다. 그런 나에게 타이밍 좋게도 여행 가이드북 샐프트래블 베트남이 들어오게 되었다.

 

여행 가이드북은 처음이라 이걸 첫장부터 끝까지 정독해야하나, 아니면 맘에 드는 도시만 골라서 읽어봐야하나 읽기 전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책 표지를 넘기는 순간 눈 앞에 나타난 베트남 여행지의 사진을 보자마자 그 고민은 말끔히 제거 되었다. 어떤 식으로 읽든 아무렴 어떠한가 ! 베트남이라는 도시에 대해서 알아가며, 나만의 여행루트를 계획하면 되는 것을 !



 

최근 많은 방송에서 베트남 여행기를 보여주어서 그나마 베트남의 도시 이름들은 익숙하다. 다만 베트남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생겨먹은 나라인지는 잘 몰랐는데, 책에 실린 지도를 보고 알았다. 베트남은 정말 상상 이상으로 길~~ 쭉한 나라였다. 그 와중에 내 눈을 끄는 것이 있었으니 베트남 중간을 가로지르는 DMZ. 순간 깨달았다. 우리나라 근대사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베트남 전쟁, 그 흔적이었다.



 

베트남 지도를 훑어보고 책장을 넘기니, 이 책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 지 한눈에 알려주는 목차가 나왔다.

베트남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알아야 할 각종 정보를 시작으로, 베트남에서 해야할 모든 것, 베트남을 즐기는 방법, 그리고 각 지역별 정보! 특히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여행자의 관심 분야별로 지역을 추천해주는 것이었다.



근데 구분이 너무 세세하다 ㅠㅠㅠ 여기서 나와 맞는 여행지를 어떻게 골라야하나 고민을 할 찰나에, 바로 옆 페이지에 더 단순히 구분하는 방법이 나왔다. 바로 여행지 선호도 선택! 나같은 경우는 역사 문화 유적파 !! 이기 때문에 후에, 호이안을 선택했다. 추가적으로 도시파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베트남 리 왕조의 유적이 하노이에 있으니 하노이도 PICK


 

여행지를 선택했으니, 계획도 한 번 짜봐야겠다.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는 가게 될 테니까 ! 해외 여행 계획에서 제일 중요한 건 여행시기, 환전 비용 등 인데 이 책에서는 그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주고 있었다.


베트남 여행 시기북쪽(하노이), 남부(호찌민)10월 부터 5월까지, 중부(다낭)2월 부터 6월 까지 날씨가 좋다. 또 한 여름에는 고온다습하지만 스콜이 자주 내려 견딜 만 하다. 하지만 언제 가든 비가 자주 오는 것을 각오 해야할 것 같다 ㅜㅜ

여행 비용은?항공료는 25만원 ~ 50만원, 호텔은 1박에 4만원 ~ 20만원, 식사는 1인 기준 5천원 ~1만원. 기타 비용은 11만원, 관광지 입장료나 쇼핑은 별도! 저가 항공 or 국적기, 1성급 호텔 or 5성급 호텔에 따라 여행경비가 많이 갈리는 듯!

환전은?한국에서 달러로 환전 한 뒤 현지 환전소에서 베트남 동으로 재환전 한다. 과거에 롬복 갔을 때도 느꼈지만 한국에서는 동남아권 환전은 조금 ㅠㅠㅠ...... 오히려 현지에서 환전하는 것이 환율이 더 좋다 !

비자는?15일 내 관광 목적일 경우 비자는 필요 없다. 나 같은 직장인은 어차피 길게 여행을 할 여건이 안되니, 크게 문제 없고 !

치안은?범죄율은 낮으나 밤 늦은 시간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 ! 택시 사기와 오토바이 소매치기 조심 ! 녹색의 마이린 택시, 흰색의 비나선 택시, 노란색 띠엔사 택시, 흰색 택시그룹 택시가 정식 등록업체 택시라고 한다!





역사와 문화 관광 1번지 하노이.

2천년에 이르는 베트남의 역사 중 1천 년간 수도 역학을 담당했다. 특히 중요한 건 하노이 안에 호찌민 단지가 있다는 것 . 호찌민이라 하면 베트남의 독립운동가이자 혁명가, 초대 주석이 아닌가! 호찌민 단지라는 이름 답게 그 안에는 호찌민의 묘, 호찌민 박물관, 호찌민 관저 등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 총 망라해 있었다. 뿐만 아니라 11세기 경 베트남 리 왕조의 흔적까지도 ! 내가 하노이에 간다면 리 왕조의 흔적이 첫 번째요, 두 번째가 호찌민의 흔적을 찾는 여행을 할 것이다.

대체 리 왕조가 어느 왕조이길래 이렇게 목을 메냐고 내가 리 왕조에 목을 메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는 1174년 베트남 리 왕조의 수도 탕롱성, 즉 지금의 하노이에서 6대왕 영종의 아들로 태어났다. 왕자로써 비단길을 걸을 줄 알았으나, 1126년에 쿠테타가 일어났고 리 왕조가 망했다. 그 때 이용상은 최측근과 함께 도피하여 바다를 건넜다. 험난한 바닷길을 지나 도착한 곳이 바로 고려의 해안가. 이용상은 그렇게 고려에 정착하였고, 고종(고려 23대 왕)에게 화산군 이라는 작위를 받았다. 여기까지가 옛 이야기!

 

이 이후의 이야기도 있다. 이용상을 시조로 하는 화산 이씨는 지금도 국내에 남아있는다. 여기서 더 대박 사건! 1995년 경 화산 이씨 종친회가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베트남 정부는 화산이씨 종친들을 환대하고 왕손으로 인정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매년 베트남에서 열리는 리 태조 즉위 행사에도 매년 초대되고 있다. 현재 이용상의 후손들은 한국과 베트남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의 고대도시, 후에.

베트남의 후에는 우리나라 경주에 비견되는 고도라고 한다. 이유인 즉, 이 곳은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의 수도였으며, 그와 관련된 여러 유적이 남아 있는 것이다. 제일 대표되는 것은 후에 왕궁. 책으로만 봐도 왕궁이 얼마나 넓은지 왕궁을 둘러싼 성곽이 10km에 달한다고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후에에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아픈 DMZ, 즉 비무장지대가 남아있다. 이 곳이 바로 베트남 전쟁의 최접전지 였던 곳이었다. 책에 따르면 DMZ를 따라 베트남 전쟁의 흔적을 찾는데, 이동에만 5시간 이상이 걸리는 여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DMZ 일대 관광은 보통 1일 투어 참여로 진행하는 것 같다.

 



여행에서 먹거리가 빠지면 섭하다. 하지만....나는 태생적으로 동남아 음식은 입에 잘 안맞아서, 이 부분은 꽤나 걱정이 크다. 방송에서 나오는 베트남 음식들은 그렇게 맛있어 보이는데, 난 왜 그 흔한 쌀국수 하나도 잘 못먹겠는지. 그래도 커피는 베트남 커피는 꽤 마시고 싶다. 이건 아무래도 베트남 여행 방송을 본 효과가 컸던 것 같다 ! 무엇보다 책에 따르면 베트남은 전 세계에서 2번 째로 많은 커피를 생산하는 나라라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된다. 특히 '카페쓰어다' 라고 부르는 연유커피 ! 얼마전에 한국 캔커피 브랜드에서 연유커피 판매를 시작했는데, 그래도... 현지에 가서 제대로 마셔보고 싶다ㅠㅠㅠ

 

정말 너무 자세하게, 자유 여행자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이 다 기록이 되어 있다. 대체 이 책을 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헀더니, 저자 정승원님은 배낭여행 인솔자란다. 삼천포로 빠지는 이야기긴 하나, 나 역시 관광통역사와 해외여행인솔자 자격을 보유하고 있다 보니, 저자의 행보에 더 많은 눈 길이 간 게 사실이다. 어쩌면 머나먼 미래에, 혹은 내가 애기엄마가 되어서 반 강제로 회사를 그만두게 된 후(?) 나의 진로가 이런 쪽일 지도 모르니까 ! 물론 주력 여행지는 다르지만..ㅋㅋ 그런 의미에서........여행가이드북과도 친해져야 하나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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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 김훈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4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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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 꽂혀 있던 지 한참 된 책이었다. 학창시절 외삼촌에게 선물로 받았다. 당시에는 책 속에 있던 용돈 5만 원에만 온 정신이 집중되어 책은 뒷전이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 2019년 현재. 이제서야 읽었다. 요 근래 나의 관심사가 임진왜란 이어서 그랬을까, 책장에 있던 이 책이 눈에 딱 들어왔다.

 

이 책은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과 이순신 장군 본인이 작성한 일기를 토대로 각색된 소설이다. 주인공은 이순신 장군 본인이며, 시점 역시 이순신 장군 본인의 시점이다. 작가는 글이 시작되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이 글은 오로지 소설로서 읽혀지기를 바란다. 이순신의 장계, 임금의 교서, 유시를 인용한 대목들은 대체로 이은상의 이충무공전서의 문장을 따랐다. 그러나 글쓴이가 지어낸 대목도 있다. 그 구분을 분명히 하지 못한다. 해전(海戰)의 사실은 대체로 난중일기에 따랐으나,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글쓴이가 지어낸 전투도 있다. 그러나 이순신 스타일의 전투에서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책의 부록으로 첨부한 <인물지><연보>에서 소설과 사실의 차이가 드러나기를 바란다.

 

이 책은 사실이 아닌, 사실에 기초한 소설이라는 것을 명백히 밝혔다. 대체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옮겨오고자 했지만, 전개상 지어낸 부분도 있으니 부록인 <인물지><연보>를 보고 독자 스스로 소설과 사실을 구분하도록 했다. 모든 이야기를 사실로 믿을 독자를 위한 배려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정말 소설인지, 이순신 장군 본인의 자서전인지 헷갈릴 정도로 사실적인 내용 투성이었다. 이는 그만큼 작가님이 글을 잘 쓴다는 이야기다.


 

한산 통제영 모항으로 돌아오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의금부 도사는 선착장에서 나를 묶었다.

의금부 도사에 따르면, 삼도수군 통제사 이순신의 죄목은 조정을 능멸했고,

임금을 기만했으며, 조정의 기동출격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 P24

 

소설은 이순신이 백의종군을 하는 그 시점부터 시작된다. 선조는 이순신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다.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일본군이 곧 부산으로 넘어오니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가토의 머리를 가지고 오라 고. 이순신은 명령을 거역했다. 일본군이 부산으로 넘어 온다는 정보를 믿을 수 없음이 첫째요, 추운 겨울바다에 며칠이고 진을 펼치며 모르는 적을 기다리는 것은 자살 행위라는 판단이 둘째다. 하지만 선조는 가토의 머리를 원했다. 자신을, 아니 자기의 나라 조선을 지켜주는 수군이 몰살되는 한이 있더라도 가토의 머리를 원했다. 이순신은 명령을 거역한 죄로 백의종군을 하게 되었고, 이순신의 자리를 원균이 꿰찼다. 그리고 칠천량 앞 바다에서 조선의 수군은 궤멸했다.

 

한 나라의 임금이라는 사람이 오로지 자기만을 생각한 결과다. 더 기가 찬 건.... 백의종군 하고 있는 이순신을 다시 불러들여 일본군과 싸우라고 한 것이다. 원균과 함께 궤멸된 수군과 말이다. (*칠천량해전 : 조선 수군의 유일한 패배)

 

 

 

나는 다만 임금의 칼에 죽기는 싫었다. 나는 임금의 칼에 죽는 죽음의 무의미를 감당해 낼 수 없었다.

병신년에 의병장 김덕령이 장살되었을 때 나는 내가 수긍할 수 없는 죽음의 방식을 분명히 알았다.

김덕령은 그렇게 죽었다. 천하가 임금의 잠재적인 적이었다.

곽재우는 거듭된 심문 끝에 겨우 혐의를 벗고 풀려났다.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의 교서를 받았을 때 나는 김덕령의 죽음과 곽재우의 삶을 생각했다.

나는 김덕령처럼 죽을 수도 없었고 곽재우처럼 살 수도 없었다.

나는 다만 적의 적으로서 살아지고 죽어지기를 바랐다. - P66 ~ 67

 

얼마전 나의 포스팅에 달렸던 덧글이 있었다. 왜 선조가 의병장을 죽였냐고. 난 이 질문을 그 때, 그 곳에 있던 선조를 비롯하여 많은 정부 관료들에게 묻고 싶었다. 대체 왜 당신들을 위해 싸운 사람들을 죽였냐고. 그저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자기 한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인데 그렇게 죽일 수 밖에 없었냐고. 왕이 죽이라고 했다고 그것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인 당신들은 사람이기는 하냐고.

 

세계 그 어디를 둘러봐도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백성 스스로가 목숨을 걸었던 경우는 없었다. 조선의 백성은 달랐다. 자신의 터전을 지키기 위하여,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낫을 들고 일어났다. 그들은 조직적으로 일본군을 상대하였고, 이겼다. 그들의 승리는 조선의 백성들에겐 기쁨이고 환호였다. 하지만 조선의 왕 선조에게는 아니었다. 일본에 맞서기는 커녕 의주로 피난을 간 선조에게 의병은 혓바늘 같은 존재였다. 임진년 전쟁이 소강상태가 되자, 선조는 많은 의병들을 역모죄로 처형시킨다. 일부 의병은 그것을 피해 산 속으로 숨었다. 정유년 전쟁이 다시 터졌을 때, 그 누구도 의병이 되려 하지 않았다..

이순신은 알고 있었다. 선조가 무엇을 무서워 하는 지를. 본인도 언제든 임금의 손에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해서 그는 원했나보다. 임금의 칼에 죽는 것이 아닌, 적의 적으로서 살아지고 죽을 수 있기를..

 

이제 서울 백성들 중 죽은 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을 터이다.

살아남은 백성들이 마땅이 상복을 입고 있어야 하거늘, 상복 입은자를 볼 수 없으니 괴이하다.

난리중에 강상이 무너지고 윤기가 더럽혀진 탓이로되, 내 이를 심히 부끄럽게 여긴다.

서울의 각 부는 엄히 단속하여라 - p193, 선조의 교서

 

임진왜란이 터지자마자 선조는 발에 모터라도 달린냥 빠르게 개성, 평양을 거쳐 의주까지 도망간다. 20일 만에 부산에서 한양으로 진격한 일본군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런 선조가 다시 한양으로 환도했다. 그러면서 저런 교서를 내렸다. 정확히 전쟁이 아직 끝난 상황도 아닐뿐더러, 전 국토가 초토화된 상황이었다. 정상적인 왕이라면 저런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집집마다 산 자보다 죽은 자가 많고, 산 자가 적기에 입에 풀칠할 여력도 노동력도 없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겨 구휼미를 내려주는 건 고사하고, 윤리규범을 지키게 엄히 단속하라니 ..

 

항왜, 순왜라는 단어가 있다. 항왜는 투항한 일본인을 이야기하며, 순왜는 일본에 협력한 조선인을 이야기한다. 7년이라는 전쟁 속에서 많은 항왜와 순왜가 있었다. 조선과 전쟁을 왜 해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일본군이 항왜가 되었다. 선조는 일부 항왜 에게는 관직까지 주며 조선의 군인으로서 일본군과 맞서 싸우게 했다. (여담이지만 대부분의 항왜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 북부 지역으로 쫓겨난다.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이후 인조 재위 때 대부분의 항왜가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처형된다)

 

순왜는 지금으로 치면 친일파, 매국노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 이면을 잘 보자. 수 많은 순왜들은 대게 힘없는 백성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을 지켜 주었어야 할 나랏님이 먼저 그들을 버렸다. 심지어 저 멀리 의주까지 도망갔다. 나랏님은 명나라까지 들어가려고 했다. 이 모습을 본 백성들은 얼마나 허탈했을까. 그 뿐이 아니다. 선조는 자기 아들들을 각지에 보내어 의병 활동을 독려하라고 했다. 세자였던 광해군이야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임해군, 순화군은 다르다. 민폐도 그런 민폐가 없었다. 그들은 의병 독려는 커녕 부녀자 겁탈과 민간 수탈을 자행하였다. 참다 못한 마을 주민들은 일본군에게 조선의 왕자를 그대로 넘겨버린다. 과연 이들을 나라를 버린 매국노라고 욕할 수 있을까?

 

선조는 순왜에게 이런 교서를 내린다. 다시 돌아오면 처벌은 면하게 해주겠노라고.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다면? 죽이겠다고. 본인은 제 한목숨 부지하려고 의주로 도망갔으면서 말이다. 기가 차고 코가 찰 노릇이다.

 

잘못된 정보를 주며 수군을 사지로 몰아넣으려 했던 선조의 명령, 그 명령을 어겼다고 죽여도 시원치 않다며 이순신을 백의종군 시켰다. 원균이 조선 수군을 몰살시키자 마자 과인의 잘못이라고 얼굴을 싹 바꾸며 이순신을 복직시켰다. 복직시키고 얼마 안있어 조선의 수군은 힘이 없다며 육군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그런 선조의 명령을 다시 어길 수 밖에 없었다. 허나 이순신은 전과 달랐다. 앞서 백의종군을 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엔 보고서를 작성하여 선조에게 올린다.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있다고... 그렇게 승리한 전쟁이 명량해전이다.

 

 

정유년 가을에 나는 타격 방위를 설정할 수 없었다.

조정은 장님처럼 적의 먼 외곽을 더듬고 있었다.

강화 협상의 신기루 속에서 경상 해안 쪽의 점점 더 강력하게 집중하고 있었다.

명의 천자가 일본 관백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밀통해서

내 함대가 아무 곳도 조준할 수 없고 내 칼이 아무것도 벨 수 없게 되는 환영에 나는 진저리를 쳤다 - P260

 

선조가 천군이라고 부르며 치켜세운 명의 원군. 그들은 일본과 협상을 하고 있었다. 피해자인 조선은 뒤로 뺀 채 그들끼리만 쑥덕쑥덕. 그리고 협상이 체결되었으니 일본군이 조용이 돌아갈 수 있도록 보내주라고 했다. 백골이 강토를 뒤덮었다. 전 국토가 잿더미가 되었다. 그런데 그들을 평화롭게 보내주라고 하다니. 명나라의 말이 백 번 옳다는 선조는 조선의 왕이 아니었다.

 

신하가 몸을 던져 임금을 섬겨야 하는 도리를 저버릴 수는 없다.

난중일기 1597108(정유일기)

 

7년 전쟁의 끝을 알리는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 이순신 장군은 그 곳에서 전사했다. 주군에게 버림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위해 싸웠다. 정말 치열하게 싸웠다. 선조는 이순신의 죽음에 흔한 애도의 말 조차 하지 않았다. 비문은 커녕 시호 조차 내려주지 않았다. 그의 시호 충무공은 인조가 내려주었고, 비문은 한참 뒤 정조가 내려주었다.

 

수 많은 책, TV방송을 통하여 임진왜란을 보았고 들었고 공부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기적이어서 이순신 장군을 이해하지 못한다. 왕이 자기를 질투하여 죽이려 했고, 버렸고 또 버렸다. 이순신 장군 스스로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선조를 등지지 않았다.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백성을 지키기 위하여 라는 이유만으로는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 조선 수군의 총 대장이었던 이순신, 그는 조선의 군대 1/3을 호령하는 자리에 있었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왕을 갈아 엎을 수 있었을 뿐더러, 민심도 이순신 그를 향해 있었다.

 

사람이 어떻게 살면 저렇게 우직하게, 오로지 한 길만 갈 수 있을까. 나는 언제쯤 이순신 장군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다만 임금의 칼에 죽기는 싫었다. 나는 임금의 칼에 죽는 죽음의 무의미를 감당해 낼 수 없었다.

병신년에 의병장 김덕령이 장살되었을 때 나는 내가 수긍할 수 없는 죽음의 방식을 분명히 알았다.

김덕령은 그렇게 죽었다. 천하가 임금의 잠재적인 적이었다.

곽재우는 거듭된 심문 끝에 겨우 혐의를 벗고 풀려났다.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의 교서를 받았을 때 나는 김덕령의 죽음과 곽재우의 삶을 생각했다.

나는 김덕령처럼 죽을 수도 없었고 곽재우처럼 살 수도 없었다.

나는 다만 적의 적으로서 살아지고 죽어지기를 바랐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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