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버그 -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
맷 매카시 지음, 김미정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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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항생제 내성을 가진 슈퍼버그의 출현

슈퍼버그는 1960년대 이전에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고, 1990년대까지도 산발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의사들의 잘못된 항생제 처방 관행과 함께 항생제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상업적 농업이 박테리아들에게 우리의 소중한 약품들을 노출시켰고, 그 결과 박테리아들은 그 약효를 무력화시키는 법을 알아냈다. 다시말해 인간에게 치명적인 감염의 주요인인 슈퍼버그가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다는 뜻이다. P 012


동물에게 항생제를 무분멸하게 쓰는 관행은 슈퍼버그의 출현은 주요인 중 하나였다. 동물 안에 사는 박테리아들이 우리가 가진 최고의 약물들에 노출되면서 그것들을 피할 방법을 학습하는 까닭이다. 최근 18개월 주에서 100명 이상에게 발병한 감염의 최종 원인은 예기치 않게도 강아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감염된 개들 거의 전부가 애완동물 가게에서 팔린 것들이었고, 최소 한 차례 항생제를 투여 받은 이 개들 속에 살던 치명적인 슈퍼버그가 새 주인에 옮겨간 것이었다.  P 172


대다수 항생제와 달리 메로페넴은 항생제 분해 효소에 강한 저항력이 있어서 심한 감염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항생제 중 하나다. (중략) 그러나 그의 소변에서 추출된 박테리아는 의사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메로페넴을 파괴할 수 있는 효소를 가진 박테리아였다. 참담한 사태였다. 그건 박테리아가 환자와의 줄다리기에서 또다시 이기고 있다는 신호였다. 만약 박테리아가 메로페넴에 완전히 내성이 생긴다면 매년 수 만 명이 죽을 것이다.  P181


가벼운 감기 때문에 제조 약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생각해본 적이 있을 거다. ‘내 약에 항생제가 들어있으면 어떡하지?’라는 그러한 생각 말이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두눈 부릅뜨고 약봉지를 보면서 항생제가 있으면, 빼낸 적도 여러번 있었다. 회사에서도 병원 제조약에서 항생제를 빼고 먹는 동료들도 여럿 보았다. 뿐만 아니다. 항생제 내성이 두려운 엄마들이 ‘안아키’라는 또 다른 사회 문제를 만들기도 했다.


항생제는 인간에게만 사용된 게 아니다. 동물들에게도 무분별하게 사용했다. 어떠한 동물은 가축으로 길러져, 인간들의 식탁에 올랐다. 또 다른 동물들은 인간의 반려동물로 키워졌다. 가축이든, 반려동물이든 그들이 먹는 사료 속에도 항생물질이 들어 있었고, 인간의 식탁도 항생물질에 찌들어졌다. 그렇게 항생물질이 우리의 생활을 점령하였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 항생제에 계속 노출된 박테리아들은 진화했다.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거다.


인간을 살리기 위해 사용한 항생제의 무분별한 사용이, 정작 인간을 죽이는 박테리아를 진화시켜버린 것이다. 진화한 박테리아를 죽이기 위해서는, 더 강한 항생제가 필요하게 되었고, 더 강한 항생제는 또 더 진화한 박테리아를 만들어냈다. 이 악순환 속에서 정작 우리 인간들은 매우 강한 항생제 치료로 인해 죽어가거나, 혹은 죽이지 못한 박테리아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다.



2. 항생제 연구, 개발, 제조의 제약.

궁극적인 문제는 많은 항생제의 수익성이 낮다는 것이다. 아이디어 수준에서 신약의 생산과 시판 단계까지는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며 거기에는 10억 달러 이상이 소요된다. 비아그라 같은 약을 만들어낸다면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일 것이므로 그 비용이 정당화된다. 그러나 항생제의 경우 몇 가지 특성 때문에 이윤이 적다. 항생제는 대체로 환자가 아플 때만 단기로 처방되며, 훌륭한 새로운 항생제라도 머잖아 그에 대한 내성이 발생하게 된다. 항생제 내성은 시기의 문제일 뿐 반드시 생긴다. P 039


페니실린이 처음으로 시판된 뒤로 2세대가 지나면서 수억명의 생명을 구했는데 지금에 와서 전 세계적으로 재고가 발생한다는 사실은 쉽게 믿기지 않는다. (중략) 페니실린의 유효 성분을 생산하는 회사는 오직 4개 뿐인데, 중국과 호주에 본사를 둔 제조사들이 이윤이 너무 낮다는 이유로 생산 수준을 낮게 유지 하고 있기 때문이다. P 103


환자들에게는 이런 약들이 필요했지만, 시장은 그것들을 감당하게 설계되지 않았다. 누가 한 알에 1,000달러 또는 그 이상을 지불할 것인가? (중략) 일반적으로 신약 제조사들은 특허권을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이전하지 않는 한 복제약 제조사들과 경쟁하기 전에 12년에서 15년간 판매 독점권을 갖는다. 하지만 복제약 제조사들이 생산에 나서지 않는다면 특허가 만료된 후에도 가격이 오를 수 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항생제 10종 중 1종이 경쟁 부재로 인해 가격이 90%인상됐다. P 211


임상시험 등록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한 많은 조치가 있었지만 내 연구처럼 환자들이 어떤 실험적 약을 투여 받는지 알고 있는 공개 임상시험에도 장애물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그즈음 나는 그 사실을 절감하고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개최되는 회의에서 동료 의사들은 임상시험 대상제 배제 기준이 너무 엄격해졌고, 효중성 백혈구 감소증과 장기부전, 패혈증 같은 배제조건이 임상시험이 필요한 환자들을 소외시키고 있다고 매번 불평했다. 임상 연구의 개정적 고려사항을 읽으면서 따분함을 느낄 때도 있지만 항생제 연구가 너무 복잡해지고 비용도 너무 많이 든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P 280



우리의 슈퍼버그 연구는 대부분 항생제 개발과 임상시험에 초점을 두지만, 진단도 그만큼 주요한 역할을 한다. 더 나은 검사는 더 정확한 진단을 의미하며 결국에는 더 정확한 항생제 처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계속해서 불필요한 약에 노출되며, 이는 진단이 불확실할 때 주로 발생한다. 우리는 훌륭한 진단 장비를 사용함으로써 의문을 제거하고 의사들이 항생제가 필요하지 않을 때 항생제를 중단시킬 자신감을 느끼게 해주려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비용을 대야 한다. P 316


1차 세계대전이 한창 일 때, 패혈증 등 감염증에 걸려 사망한 환자들을 보며 끈임없이 감염 치료법을 연구했던 플레밍은 ‘페니실린’을 발견했다. 1차 대전에 참전한 도마크는 화합물 혼합만으로 항균작업을 하는 ‘KI-695’ 라는 화합물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과거에 발견된, 혹은 만들어진 항생제, 항진균제는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도(!) 오래동안 사용된 만큼, 내성을 가진 박테리아가 생겨났다. 기존 항생제 내셩을 가진 박테리아를 잡기 위해서, 또 다른 항생제를 만들어야만 한다. 하지만, 과학이 발달한 지금, 과거보다 의료가 발달한 지금 새로운 항생제 연구는 ‘비용’이라는 거대한 장벽에 가로막혔다.


물론 신약개발 자체는 많은 비용이 들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수익이 있다. 우리가 TV광고로 보는 핫한 약(혹은 건강보조제?) 역시 개발할 당시에는 돈이 참 많이 들었지만, 개발 완료 후 시판을 하면서 더 많은 수익을 벌어들인다. 하지만 항생제, 항진균제 등 신약개발 연구는 비용은 비용대로 드는데, 수익은 별로 없다. 수익만 없는가? 인기도 없다. 또! 하필!!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가 항생제/항진균제를 만드는 제약회사이다보니, 더더욱 공감이 될 수밖에 없다. 참 의미없는 일이긴 하지만, 제약업계 랭킹을 볼때마다 점점 뒤로 쳐지는 회사를 보면서 더욱 그랬다. 따지고 보면 타회사에서 파는 그런 인기있는 약들은 환자의 생명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부분이 아니다. 반면 우리 회사에서 만드는 저런 항생제, 항진균제 등은 환자의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환자를 살리는 약을 만드는, 그런 자부심을 가질만한 회사인거다. 근데.... 그놈의 비용이 뭐고, 인기가 뭔지. 


조금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떤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대항하는 약을 만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왜? 투자대비 수익이 안되니까. 제일 큰 이유는 아마 그 바이러스가 언제 또 다시 유행할지도 모른다는 부분이랄까. 보통 대항하는 약은 그 바이러스가 훑고 지나간 뒤에나 나오는데, 약이 나온 뒤에는 이미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전염병이 종식된 이후이다. 투자는 투자대로 했는데, 정작 약이 나오고 보니 약을 쓸데가 없는 상황인거다. 혹여 해당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약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변종 바이러스가 나오면 역시나 또 말짱 꽝이다. 이미 해당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약을 만들면서 많은 비용을 투자했을 건데, 변종 바이러스에 또 그 만큼 비용을 투자하는 건 망하라는 것과 다름 없다.


환자의 생명과 연결된 약을, 그저 비용만 생각해서 만들고 말고를 결정한다는게 너무 슬프고 아픈 사실이지만, 현실이 그렇다.


3. 임상시험

우리는 슈퍼버그나 새로운 변종 박테리아로 인한 피부 또는 연조직 감염으로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에게 달바가 기존 치료제보다 효과적인이 알아보고자 했다. P 080


임상시험 계획서를 검토하는 위원들을 바라보는 동안 속에서 조용한 분노가 차오르는 걸 느겼다. 결국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쓸 수 있는 약이 이제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 환자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P 192


이 약은 사람들에게 정말로 도움이 될 것이며, 제약사에서 무료로 제공할 거라고 목청껏 외쳐왔지만, 이 약을 시도해볼 용의가 있는 적합한 환자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후보 환자 중 일부는 내가 만나러 갔을 때는 평온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아프고 겁에 질려 동의서를 작성해줄 수 없었다. 동의서를 작성해줄 수 있는 환자들 가운데서도 일시적 혈압강하나 비정상적인 혈액 검사 결과 같은 세부 조건으로 인해 배제되는 이들이 종종 생겼다. 임상시험이 가장 필요한 환자들이 종종 참여 자격이 안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괴로웠다. P276


이 책의 저자이자 의사인 맷 매카시는, 항생제 “달바반신”을 연구하고자 했다. 다른 항생제가 듣지 않는 피부 등 감염환자에게, 즉 항생제 내성감염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함이었다. 지금까지 손 써보지 못한 항생제 내성 감염환자에게 “달바반신”이 효과가 있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효과가 좋은 신약이라도 무작정 사용할 수 없다. 신약을 사용하기 위해선 수 차례 임상시험을 비롯한 여러 검증이 필요하고, 이 검증에서 OK를 받은 뒤, 정부기관 예컨데 식약처 같은 곳에서 승인판정을 받아야만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매카시는 “달바반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런 일련의 과정을 해야만 했다. 거기다 임상시험까지 가는 길도 험난했다. 우선 연구계획서를 먼저 승인받아야 하는데, 이를 심사하는 IRB 같은 곳은 쉽게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일단 정말 이 신약이 환자에게 효과가 있을 지는 기본이고, 이에 따른 비용 소요라던가, 이 모든 걸 포괄적으로 심사하는 곳이다. 저자인 매카시 역시 수차례 연구계획서가 반려가 난 뒤에, 처음 제출했던 연구계획서와는 매우 다른 방향으로 수정하고 나서야 승인을 받았으니 말이다.


솔직히, 이 책을 읽고 꽤... 마음이 꽁기꽁기했다. 종종 우리 회사 신약이 임상시험에 돌입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난 자본주의의 노예다보니, 그 때마다 회사 주식이나 쳐다볼 뿐이었다.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이 신약이 대체 어떤 약인지,  임상시험은 어떤 식으로 진행하는지, 임상시험 대상자는 어떻게 선택하는지, 그 어떤 것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분명 우리 회사에서 만드는 이 약들이, 환자들의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인데도, 난 그 부분에 대해서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거다. “수액은 사람을 살리는 생명수다”라는 말을 그렇게 오랫동안 들으며, 이 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말이다. 


4. 고군분투하는 의사들

“우리는 방어력이 없는 이들을 방어해준다” P 088


나는 환자들이 자신의 삶 속으로 나를 끌어들이는 방식에 놀라워하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이날뿐 아니라 많은 날 나는 생각했다. ‘나는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닌데, 그럴 자격이 없는데’ 의사 가운은 환자들에게 속내를 털어놓게 만든다. 사람들은 가장 친한 친구와 가족에게도 절대 털어놓지 않을 사연을 내게 들려준다. 나는 플로리다 근교의 가톨릭 가정에서 정기적으로 고해성사를 하며 자랐는데, 지금 나는 고해소의 반대쪽, 신부님의 자리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P 265


의사라는 위치는 남다르다. 나는 의료진의 극심한 피로에 대한 글을 써왔고, 그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까 봐 걱정하는 젊은 의사들을 대상으로 강의도 하고 있다. (중략) 의사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다시 정상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들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잠을 자고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저녁에 친구와 어울리며 술도 한잔 할 시간을 가질 자격이 있다. 그들은 병원이 제공할 수 없는 것들을 필요로 한다. P270


아무래도 내가 몸담고 있는 곳이 제약회사다보니, 나에게 ‘의사’란 사람들은 생명을 구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만, 그보다 더 리베이트와 관련된 직군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보고, 대구/경북 지역으로 자원해서 가는 의사를 보고 “내가 잘못 알아도, 정말 잘못 알고있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상에는 생명을 구하는 의사가 훨씬 많았다. 아니, 대다수의 의사들이 생명을 구하는 의사였다. 의사는 “방어력이 없는 이들을 방어해주는”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궁극적인 문제는 많은 항생제의 수익성이 낮다는 것이다. 아이디어 수준에서 신약의 생산과 시판 단계까지는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며 거기에는 10억 달러 이상이 소요된다. 비아그라 같은 약을 만들어낸다면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일 것이므로 그 비용이 정당화된다. 그러나 항생제의 경우 몇 가지 특성 때문에 이윤이 적다. 항생제는 대체로 환자가 아플 때만 단기로 처방되며, 훌륭한 새로운 항생제라도 머잖아 그에 대한 내성이 발생하게 된다. 항생제 내성은 시기의 문제일 뿐 반드시 생긴다. - P39

의사라는 위치는 남다르다. 나는 의료진의 극심한 피로에 대한 글을 써왔고, 그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까 봐 걱정하는 젊은 의사들을 대상으로 강의도 하고 있다. (중략) 의사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다시 정상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들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잠을 자고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저녁에 친구와 어울리며 술도 한잔 할 시간을 가질 자격이 있다. 그들은 병원이 제공할 수 없는 것들을 필요로 한다.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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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악센트
마쓰우라 야타로 지음, 서라미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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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겨울, 나는 2020년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2019년 한 해가 점점 바빠지더니 막바지 되니까, 진짜 당장 새해가 되면 더욱 바빠질 것이 예견되서, 정말 진짜로 새해가 오지 않기만을 미친듯이 바랐다. 아니나 다를까, 2020년 시작하자마자 바쁨의 연속. 내 멘탈을 챙기는 것 조차 잊을 정도로 바빴다. 바쁨이 조금 소강된 지금 생각해보니, 아무리 바쁘더라도 그저 잠시 5분이든 10분이든 쉬어갔으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냥 바쁘든 아니든 언제나 이어지는 내 일상이고, 변하지 않을 일상이니, 잠시동안의 쉼표(,)를 찍었으면 되었는데 말이다. 참 생각이 짧았다. 왜 난 일상에서 잠깐동안의 휴식조차도 생각치 못했나 생각하던 찰나에, 흐름출판에서 「일상의 악센트」를 받았다.


「일상의 악센트」 총 6챕터로 나뉘어 있는 에세이집이었다. 각 챕터별로 주제가 있었지만, 이 모든 챕터를 아우르는 공통적인 주제가 있었다. 바로 언제나 반복되는 그런 일상이다. 헌데 저자는 이런 평상시와 다름 없는 일상에서 소소한 부분에 대한 감동하고 감사한다. 간혹 무언가 변화가 있다면, 그 변화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인다.

발견하는 것은 감동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 감동하는 만큼 발견할 수 있다. P 28

사람이든 물건이든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너그러운 마음의 눈으로 내 안을 들여다보면, 겉으로 드러나기 않았던 근사한 부분이나 자랑할 만한 모습, 숨어있던 다양한 면모가 보인다. 모두 얼핏 봐서는 보이지 안는 것들이다. P 33

좋은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내게 일어난 모든 일에 진심으로 고맙다고 생각하며 감사의 말을 반복했다. P 56

일이나 일상에서 상대방의 편리를 위해 애써 작은 수고를 들이거나 마음을 기울여도 실제로는 잘 드러나지 않아 상대방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때도 있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배려가 상대방을 알게 모르게 기분 좋게 만들고 이것이 요리에서는 맛있음으로 연결된다. 일상에서는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거나 쾌적함, 즐거움으로 연결된다. P 83

주택 한 채와 만난 나는 오늘의 일상, 오늘의 일, 오늘의 모든 것에 깃든 ‘보이지 않은 곳의 몸가짐’을 정비하고 싶어졌다. P 121

종이컵에 “Thanks!”라고 적어준 것이 오늘이 처음이 아닌지도 모른다. 여태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잘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곳에 수고를 들여 감사의 말을 써주다니, 서서히 감동이 스며들었다. 한마디 말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소중한 것을 배웠다. 늘 감사하다. P 142

저자의 모든 글이 모두 마음이 포근해지는 그런 글들이었지만, 유독 내 마음을 울렸던 건 위의 문장들이었다.

어린 날, ‘나는 하루하루를 감사히 보내야지, 고마운 것에 고마울 줄 알아야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사회에 나와 스스로의 삶을 살다보니, 어린날 내 생각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넌 왜 감사할 줄 모르고, 그렇게 밖에 못 사니?’라고 나에게 물어보면, 그저 ‘이런 현대 사회에서 그렇게 살면 호구가 되버려’ 라는 궁색한 변명만 이야기 할 뿐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달랐다. 분명 내가 생각하는 ‘현대 사회’를 사는 건 같은데, 저자는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 삶이 그에게는 너무 당연했다. 그의 삶에는, 분명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임에도, 언제나 감사함과 감동이 있었다.

나에게 일상이란, 그저 반복되는 하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새로운 거 하나 없는, 그저 시간이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그런 일상이었다. 저자의 일상도 나처럼 시간이 흘러가는, 반복되는 일상인건 분명 다를 바가 없 는데, 그는 달랐다. 매 하루마다 감동을 받았고, 고마워했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는 걸까? 싶었다. 그 이유가 궁금했고, 찾고 싶었다. 단순히 문장 속에서 그 이유를 찾는 게 아닌, 내 스스로 그 이유를 찾아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다.

그리고 바로 지금, 한 질병이 전 세계를 공포에 휩싸이게 만든 지금, 이제서야 그 이유를 찾았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해도 나에게 일상이란 그야말로 정말 평범한 하루였다. ‘평범’이란 단어는 ‘언제나 당연한 그 무언가’를 뜻하기에, 정말 당연하게도 이를 특별히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평범한 하루는, 나에게 언제나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바로 지금, 그 당연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를 깨달았다. 바람결이 좋으면 집 근처를 산책하고, 장을 보러 마트를 가는 이러한 일상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곁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고마움을 깨닫는다는게 바로 이런 걸까?

언제나 마음 편하게 문 밖을 나서서 산책을 하고, 아무렇지 않게 마트를 가는 것, 이렇게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건 당연한 게 아니었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나의 일상을 위해, 뒤에서 땀 흘리고 수고를 하고 있다는 그 사실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오늘 나의 하루를 보낼 수 있게 해준, 이름 모를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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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The Power
나오미 앨더만 지음, 정지현 옮김 / 민음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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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왓슨이 추천한 도서 「파워(POWER)」. 내 기억속의 엠마 왓슨은 그저 어리고, 똘똘한 헤르미온느였다. 그 헤르미온느가 지금은 여성을 대변하는, 페미니즘의 한 가운데 서 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이상하게 비틀어진 페미니즘이 아니라, 곳곳에 깔려 있는 여성혐오를 없애는 것이다. 엠마 왓슨 역시 후자 쪽에 속한다. 그런 그녀가 추천한 도서라고 하기에, 조금은 솔깃했는데! 좋은 기회가 생겨 이 책을 선물로 받았다.



기존에 내가 읽었던 페미니즘 도서라고는 작가정신에서 출판한 「붕대감기」가 고작이다. 그래서 과연 이 책을 잘 흡수 할 수 있을런지 걱정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읽고 보니 그런 걱정은 저 멀리! 이 책은 광고 문구인 “새로운 물결을 일으킬 페미니스트 SF의 탄생!” 그 자체였다. 일상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던 그런 상황들이 주가 아니라, 정말 정 반대인 허구의 상황이 이 책의 주된 줄거리다. 아, 물론 책 초반부에는 세계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여성혐오에 대한 부분이 보이긴 한다.



책은 네 명의 인간을 앞세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갑자기 집에 든 강도에 의해 엄마가 살해된 소녀 록시, 그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던 청년 툰데, 갑자기 파워(POWER)가 생긴 딸을 지켜야 하는 엄마 마고, 겉으로는 위탁가정에서 보호받는 것 같으나 실은 학대와 성폭력을 당하던 소녀 앨리. 이 네 사람의 이야기가 서로 맞물리며,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이야기가 진행된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제발, 제발 하지 마세요. 제발. 이게 뭐죠? 아직 어린애일 뿐이에요. 어린애일뿐이라고요.” 한 남자가 나지막이 웃음을 터트린다. “내 눈엔 어린애처럼 보이지 않던데.” 엄마가 새된 소리를 낸다. 고장 난 엔진의 금속음 같다. (중략) 엄마의 눈이 커진다. “도망쳐, 록시” P 19, 록시



처음에 툰데는 두 사람이 아는 사이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가 “저리 가세요.”라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예사로운 상황이 아님을 깨닫는다. 남자는 그래도 웃으며 한 걸음 다가선다. “너처럼 예쁜 여자는 칭찬을 들어야 마땅해.” (중략) 툰데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영상을 찍으려 한다.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과 똑같은 상황이 여기에서 벌어질 것 같다. 그 사건을 소유하고 싶다 (중략) 남자가 말한다. “야, 피하지 말고, 좀 웃어줘봐” (중략) 툰데가 촬영하고 있을 때 소녀가 홱 돌아선다. 그녀가 팔을 내리치는 순간 휴대폰 화면이 잠깐 흔들린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깔끔하게 찍혔다. 그녀가 화난 척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계속 실실거리는 남자의 팔로 손을 가져가는 장면. (중략) 뒤쪽에서는 소녀가 남자에게 독을 먹였다면서 사람들의 도움을 요청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소녀가 때리면서 독을 주입했다고. P 30, 툰데



조스가 아무런 말도 없자 마고는 계속 이야기한다. “다른 여자애들이…… 세 명이었지? 걔네들이 시작했다는 거 엄마도 알아. 그 남학생은 네 근처에 있었으면 안됐고. 존 뮤어 병원에서 검사받았어. 건 그냥 남자애를 놀라게 한 것 뿐이야.” P 38, 마고



술 냄새가 풍긴다. 그가 분노에 차서 중얼거린다. “봤다. 공동묘지에서 남자애들과 있는 걸 다 봤어. 더러운 창녀 나쁜 계집”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으로 후려갈기고 발로 찬다. 앨리는 몸을 웅크리지 않는다. 그만하라고 애원하지도 않는다. 그래봤자 더 오래가리라는 사실을 알기에. 그는 앨리의 다리를 잡아 벌리고 한 손은 벨트로 가져간다. 앨리가 정말로 창녀라는 점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이미 전에도 여러번 그랬으면서 P 48, 앨리



일단 파워가 발현된 딸을 둔 마고의 이야기는 잠시 제쳐두고, 나머지 세 사람인 ‘록시, 툰데, 앨리’의 이야기는 너무 사실적이라 충격이었다. 뉴스에서 흔히 보이는 그런 사건들이었다. 여성이 있는 집에 들어가서 강간하고 살해, 길거리 한 복판에서 여성을 성희롱하는 남자들과 그걸 무심히 지켜보는 대중, 여성을 성 상품화하여 몰래 동영상을 찍는 남자들, 딸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부모. 정말 인정하기는 싫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일어나고, 세계 곳곳에서도 일어나는 구역질 나는 그런 사건들 말이다. 



이 소설은 분명 허구다. 하지만 뉴스에서 보던 저런 사건들은 분명 사실이다. 이 소설에는 미국, 영국, 사우디 아라비아 등 몇 몇 나라들이 나온다. 상대적으로 미국과 영국에서는 여성혐오가 심하지는 않으나,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여성은 사람이 아니다. 남자에게 종속된 노예이며 물건이다. 분명 허구인 소설인데, 허구같지 않다.



이 소설 속에서는 소녀들에게 갑자기 묘한 파워(POWER)가 생겨난다. 이런 파워가 신기한 소녀들은 비밀리에 조금씩 조금씩 들어내곤 했는데, 위와 같은 여성을 상대로 한 여러 극악한 사건들이 점차 수면위로 올라오면서, 여성들은 들고 일어났다. ‘소녀들의 날’이다. 이 파워란 것이 처음엔 소녀들에게서 먼저 발현되었는데, 소녀들이 성인 여성에게 파워를 각성케 하여 점차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여자라면 전부 파워를 갖게 된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오로지 여성에게만 이 파워가 발현되었다. 



책 속 이야기가 아닌 현실로 돌아와보면, 그 어떤 나라든 아무리 여성에 대한 혐오가 있다고 하더라도 나라별로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도 분명한 여성혐오가 있다. 물론 지금 세상에는 여성혐오만 있는게 아니라, 남성혐오도 있고, 노인혐오도 있고. 그냥 ‘XX혐오’ 라는 게 사회 고질병 마냥 전반적으로 확대된 상황이지만 말이다. 



다시 여성혐오로 돌아가보면, 적어도 우리나라는 그 바탕에 분명 과거, 그 이전부터 내려오던 남존여비 사상이 한몫한 건 확실하다. 조선시대에 작성 된 묘비명이든 족보든 책이든 뭔가를 펼쳐보자. 그 글에는 남성의 이름 세자가 정확하게 적혀있지만, 여성의 이름은 없다. 간혹 누구누구의 처 강씨, 최씨, 이씨 등이라거나 누구누구의 딸 이씨, 김씨, 박씨 이런 식으로만 쓰여있을 뿐이다. 여성은 본인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물론 지금은 다르다. 대신 다른 쪽에서 차별이 생긱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직장에서 여성에게만 있는 유리천장이 그것이다(일부 고귀하다고 하는 태생 제외^^..). 실제로 많은 회사에는 동 직급으로 입사해도 남/녀 사원의 직급체계가 조금 다르기도 하고 말이다. 바로 옆 남직원이 곧 자녀가 생긴다고 하면 주변에서는 축하를 한다. 여직원이 자녀가 생긴다고 하면 다들 축하는 하면서도 업무에 지장이 생길까, 나에게 일이 넘어오지 않을까 걱정한다. 심지어는 그 여직원이 육아휴직을 쓸까봐 걱정하고, 차라리 새로운 사람을 뽑을 수 있도록 퇴사를 하기를 은근히 강요하기도 한다. 정말 씁쓸한 말이지만, 이는 실제로 내가 회사생활을 하면서 내 두 눈으로 목도한 상황이다.



어떤 사람이든 자녀가 태어나는 건 그저 똑같이 축하받아야 할 상황인데, 그 성별에 따라 대우가 바뀐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다들 엄마가 있고, 아내가 있고, 누나가 있고, 여동생이 있는 사람들일텐데 말이다. 내 딸이, 내 누나가 회사에서 저런 대우를 받았다고 고백하면 다들 눈에 불을 키고 ‘요즘 세상에 뭐 그딴 회사가 다 있어!’라고 하는 사람들이, 정작 자기가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는, 그딴 회사의 사람들이 되는거다.



뿐만 아니다. 사내 성희롱도 엄청난 문제다. 지금 세상은 바뀌었다고, 어떤 사람이 그러냐고들 하지만 아직 곪아 터진 곳이 많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버젓이 같은 사무실에 있던 것도 보았다. 가해자를 더 권력이 있는 부서로 배치하는 것도 보았다. 이러한 상황들은 여성혐오를 떠나서,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너무나 당연하다 생각하는 남존여비 사상에 대한 폐해인 것이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사실은, 아주 조금씩이나마 세상이 좋은 쪽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랄까?



예전에도 「붕대감기」 리뷰를 하며 이야기 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이란 다른 게 아니다. 바로 휴머니즘이다. 그저 내가 싫으면 남도 싫다는 사실을 알고, 서로 배려하는 것 말이다.



정말 뜬금없긴 하지만 ... 정말 만약에 현실에서 여성들이 이런 POWER를 가진다면? 이 책 속에서 나온 혼돈이 정말 눈 앞에서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속에 나온 여러 나라에서는 여성이 억압된 정도에 따라 그 나라가 변했다. 아니, 권력 주도층이 남성에서 여성으로만 변했을 뿐 사회는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은 변함없이 여성이 주도하는 군사강국이었다. 군사들도 POWER를 쓰는 여성이며, 클럽이든 어디든 약한 남성을 희롱하는 것도 여성이다. 사우디는 여성이 다스리는 신생 여성민주주의국가가 되었다. 과거 사우디가 여성을 노예로, 물건으로 대했듯 신생 사우디에서는 남성을 노예로, 물건으로 대했다. 성범죄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이 달라졌을 뿐 성범죄는 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건 그저 권력 주도층 단 하나였다. 



굳이 책 속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꽤 가까운 과거만 봐도 알 수 있다. 몇 년 전 한국에선 여성 대통령이 나왔다. 하지만, 그녀는 나라를 파탄으로 이끌었고, 끝내 국민 손에 끌어내려졌다. 무엇보다 그녀가 싼 똥은 지금도 곳곳에 남아있다. 이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남성이 권력자가 되든, 여성이 권력자가 되든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 쯤되면 드는 생각은 여성혐오든 남성혐오든 노인혐오든 권력을 쥔 자들이, 권력이 없는 자들을 선동하기 위해 불씨를 지피는 게 아닐까 싶다. 항상 보면 이런 ‘XX혐오’는 권력을 지닌 계층에서는 일어나지 않고, 그저 우리 같은 일개 힘 없는 시민들 사이에서 일어나니까. 그냥 서로 서로 ‘내가 싫은 건, 남도 싫다’라는 생각만 하고 살아도, 저런 식으로 ‘XX혐오’아래 선동당하는 일도 없고, 서로 온라인에서 미친듯이 싸울 일도 없을텐데 말이다.



어라,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는거 보면, 이 책.... 어쩌면 페미니즘 도서가 아닐지도?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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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 번역가 권남희 에세이집
권남희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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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많은 에세이를 읽어왔지만, 이번 만큼 기대되는 에세이집이 있었을까? 물론 이런 기대감은 ‘나’ 한정이겠지만 말이다.


이 에세이 저자인 ‘권남희’님은 번역가다. 그것도 일본 문학 번역가. 나 역시 나름 일본어를 할 줄 알고, 언젠가는 ‘일본어 번역가(내지는 통역사)가 되야지!’라는 생각도 잠깐이나마 있었기에, 유명한 일본어 번역가는 어떤 삶을 사는지 궁금했고, 어떻게 일본어 번역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특히 ‘권남희’님은 자타가 공인하는 번역가라, 더욱 기대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나 역시 권남희님이 번역한 소설도 꽤 여러 권 읽어보기도 했고).



하지만, 아쉽게도 이 책은 ‘번역’에 대한 직접적인 내용은 그렇게 많지는 않다. 대신 저자의 일상이 많이 드러난다. 에세이집이니 당연히 그럴테지만. 그리고 문득 놀랐던 사실은 읽으면서도, 저자의 연령대를 계속 잊고 있었던 사실이다. 이 에세이를 읽고 있다보면, 분명 내가 하루하루 보내는 평범한 일상과 다를게 없는 데, 뭔가 톡톡튀는 감성이 자꾸 느껴진다. 거기다 글빨(?)이 너무 젊었다. 심지어 나보다도 젊은 단어들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이분이 번역을 처음 시작한 시기는 내가 태어났던 바로 그 해. 와, 정말 유명한 번역가는 달라도 뭐가 달랐던 건가?! 싶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인맥이나 팔로맥(follow脈)이나 모두 소중한 인연이라고 생각한ㄴ다. 그러나 인맥의 수나 팔로어 수가 그 사람의 완성도는 아니니 이 숫자의 많고 적음에 연연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 제일 구려 보이는 사람은 인맥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인맥이 넓다고 떠들어 대는 사람이다. P 065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오조오억 명이더라도 나는 누군가가 싫어하는 오조오억 명에 들어가기 싫은 게 사람의 마음. P 085



그렇게 콘서트에 가기 시작한 지 4년째 봄에는 헬로콘, 여름에는 스콜콘, 겨울에는 헤프닝콘을 꼬박꼬박 가고 있다. 딸이 아이돌 그룹 덕질 할 때 “걔네는 무슨 콘서트를 일 년에 한번 씩해!”그랬는데, 막상 덕질을 해 보니 일년에 서너 번도 적더라고요. P 196




톡톡튄다. 그니까, 이 에세이집을 번역가가 쓴 거라는 배경지식 없이 읽었다면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와, 이 사람은 SNS에서 글빨로 꽤 날리는 사람인가보다’ 라고. 그니까 뭐랄까, 인플루언서 같은? 그런 느낌이다. 그런데 알고보면 내 부모님 연배. 이야, 정말 번역을 잘하는 번역가는, 이 정도 톡톡튀는 글 감성이 있어야 하나보다.



톡톡튀는 감성만 있는 건 아니다. 뭐라고 해야하지? 가슴 따뜻한? 포근한? 음... 뭔가 마음이 따뜻하게 적셔지는 그런 기분이랄까. 분명 나에게도 익숙한 일상이고, 그 누군가에게도 익숙한 그런 일상인데 말이다. 권남희 번역가님이 써내려 간, 그녀의 일상은 분명 평범하고 익숙한 일상이지만, 그 속에는 사람을 포근하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다.




아무래도 이 에세이의 저자가 번역가인 만큼, ‘번역’에 대해 생각을 안할 수가 없다. 특히나 내가 유일하게 읽고, 말할 줄 아는 언어인 ‘일본어’인 만큼 더더욱 그렇다.



내 개인적으로 어려서부터 일본 문화를 접하여, 어떤 매체든 가리지 않고 보았다. 특히 활자, 예컨데 잡지/만화책/소설 등을 더욱 많이 읽었다. 처음엔 일본어 까막눈이던 시절이라, 누군가가 번역한 게 아니면 읽을 수 조차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정말 읽고 싶었던 책이 한국어판이 나왔다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저 번역가님들이 한국어 번역본을 내주는게 고마웠고, 나에게 구세주였다. 내 나라 언어인 한글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며, 나름 일본어를 할 줄 안다는 수준이 되었다. 정말 좋아하는 일본 작가가 있는데, 이 작가의 책은 한국에서 번역이 되다가 중단되었다. 한국어판이 안나오니 당연히 원서를 사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만화책도 곧잘 원서로 사서 읽었던 터라, 소설 쯤이야!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일본소설을 원서로 읽기 시작했다. 간혹 막힘이 있기도 했는데, 나름 수월하게 읽혔더랬다. 그땐 무슨 생각이었는지, 집에 있던 몇몇 권의 원서와 국내 번역본을 같이 두고 비교하기 시작했다.



정말 그땐 근거없는 자부심에 차올랐었다. 원서와 국내 번역본을 비교해 보면서 ‘왜 이런식으로 번역을 했을까? 이 번역가는 이 만화, 소설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기는 한거야?‘ 라는 문제제기도 하고, ‘하, 이런 번역본은 읽을 필요가 없겠어, 그냥 원서나 사서 읽어야지’라고 볼멘소리도 했다. 정말 지금 생각하면 철이 없어도 그렇게 없을 수가 없었다. 너무 어렸고, 철도 없었고, 번역이라는 게 얼마나 힘든지도 몰랐던 나였다.



그렇게 어렸던 내가 직장을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일본어 번역업무가 나에게 떨어졌다(타부서에서 해야할 업무인데, 일본어 할 줄 알던 사람이 나 밖에 없었을 뿐더러, 회사 입장에서는 번역을 위탁하면 돈이 많이드니, 내부 직원 쓰는 게 돈 안들고 좋지 않겠냐 라며^^).



소름 돋는 사실은, 이 번역 업무라는 게 그냥 일상적인 메일이나 이런 번역도 아니었다. 무려 약학기술 전문지(내지는 논문 같은..) 번역이었다. 그리고 이 번역 업무를 하면서 깨달았다. ‘아 나는 정말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번역이란 건 정말 일본어만 할 줄 안다고 되는 게 아니었구나’. 그렇게 어린 날 번역을 왜 이따구로 하는지 볼멘소리를 했던 그 번역가들에게 정말 진심으로 미안함을 느꼈다(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정말 어릴 때 내가 생각했던 번역가는 외국어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더니, 겪은 바 그게 전혀 아니었다. 외국어 만큼 우리 말도 정말 잘해야 하며, 우리말로 옮겼을 때, 원래 우리말인 것 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읽혀야 한다. 뿐만인가? 우리 말에서 같은 단어가 없을 땐 최대한 같은 의미를 지닌 말로 의역해야 한다. 무엇보다 번역가들은 의뢰받은 건에 대해 ‘일’을 하는 거다. 의뢰받은 번역 분야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100%다 잘 알고 있는 분야라고 확신할 수 없다. 어렸던 나는 이러한 번역가들의 고충을 1도 생각치 않았던 거다.



아 ! 왠지 삼천포로 미친듯이 빠져버렸다. 「귀찮지만 행복해볼까」가 일반적인 에세이였다면 그저 책에 대해 생각하고 말았을거다. 하필 이 에세이를 쓴 사람이 유명한 일본 문학 번역가다보니까, 나도 모르게 자꾸 책과 다른 이런저런 사심이.... 하하하.



확실한 건, 권남희님이 번역하신 모든 책을 다 읽어 본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 에세이에서 그녀가 소환한 번역본은 꼭 읽어보리라 생각하게 된 점이다. 특히 그녀를 가마쿠라로 이끈 「츠바키 문구점」은 꼭 빠른 시일내에 읽어보리라. 나도 딱 한 번 가본 게 다인 가마쿠라지만, 소설 속의 가마쿠라와 내가 보고 온 가마쿠라가 얼마나 다를지 궁금하기도 하고, 권남희님이 어떤 아름다운 단어로 번역을 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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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보는 미술관 - 나만의 감각으로 명작과 마주하는 시간
오시안 워드 지음, 이선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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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이웃님이신 효꾸루님께 선물받은 책 「혼자보는 미술관」. 읽은 지는 꽤 오래되었는데, 이번 1~2월이 정말 유례없이 바쁜 달이었기에 포스팅을 제대로 못하다가 이제야 포스팅을 한다(회사에서 두 달동안 미친듯이 바쁘다가, 갑자기 여유가 생겨 오히려 마음이 붕 뜨는 신기한 상황! 이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다시 바쁨 시동 부릉부릉). 


내가 무엇을 보거나, 읽거나, 듣거나, 또는 어느 장소를 갈 때, 제일 큰 기준이 되는 건 바로 ‘역사’다. 이유는 없다. 그저 이상하게도 고대부터 비교적 가까운 근대까지, 이런 과거에 일어난 일에 묘하게 호기심이 생겨났고, 이상하게 다른 분야에 비해 집중력이 높았다. 무엇보다 ‘역사’라고 해서, 과거에 있었던 인물의 행적, 혹은 국사시간에 배우는 FM적인 내용만 관심이 있는게 아니다. 과거에 편찬된 도서, 그림, 공예품 등에도 무한한 호기심을 갖는다.


그래서 이번에 효꾸루님께서 선물로 주신 이 책  「혼자보는 미술관」은 그야말로 내 취향 저격이다. 이 책은 고전 미술작품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어떤 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지 알려주는 아주 쉬운 입문서이기 때문이다. 아! 노파심에 말하지만, 이 책은 ‘이 그림은 이렇게 해석하고, 이렇게 봐야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이 그림을 해석하는 의견으로 이러한 내용도 있고, 저러한 내용도 있으며, 때로는 감상하는 사람의 성향이나 기분에 따라 작품에서 느끼는 의미가 다르다고 이야기 한다. 미술 작품 해석을 MUST가 아닌, IF로 알려준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런지 미술작품을 보는 내 눈이 조금은 더 가벼워진 느낌적인 느낌!


저자가 말하는 고전미술 감상 방법, 10단계. 바로 ‘타불라 라사(TABULA RASA)’.

고전작품을 보았을 때 무의식적으로 평가하는 초기 6단계 “Time (시간), Association (관계), Background (배경), Understand (이해하기), Look Again (다시보기), Assess (평가)”, 그리고 심화된 4단계 “Rhythm (리듬), Allegory (비유), Structure (구도), Atmosphere (분위기)” 

이렇게 총 10단계다.


내가 경험으로 찾아낸 가장 간단항 방법은 작품 앞에서 세 번 심호흡하기다. 작품 앞에서 몇 번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어보라. 뭔가 명상을 하는 과정 같아 보이지만 사실 예술작품 감상에 가장 적합한 태도이기도 하다. 이 책은 가능한 천천히 작품을 감상하라고 권하지만, 때로는 가차 없이 판단하면서 재빠르게 보는 훈련도 필요하다. 

P 19, Time(오래, 자주, 계속의 힘)


고전 작품은 기본적으로 인물이나 형상을 묘사하기 때문에 현대 미술보다 사람들에게 더 쉽게 다가온다. 아름다운 얼굴이나 느긋하게 움직이는 인물을 보면서 그 그림에 공감할 수도 있따. 반대로 못생기고 지저분하고, 갈등하고 고통받으면서 어려움을 겪는 인물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작품과 관계를 맺기까지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을 수도 있다. 

P 23, Association(말을 걸고 마음을 나누고)


하지만 작가 이름을 무턱대고 맹신해도 괜찮을까? 위대한 화가가 그렸다고 알려졌떤 작품이 기술이나 연구 방법의 발달로 수 백년이 지난 뒤에 사실은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 밝혀지기도 한다. 작가가 잘못 알려진 작품은 아직도 많이 존재하고 있다. 이제 까지 빋어 의심치 않았떤 작품이 명성이나 진품 여부에 대한 문제 제기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이다.

P 26, Background(아름다움의 출처를 묻는 일)


감상은 ‘유레카’의 순간처럼 갑자기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훑어보고, 샅샅이 살펴보고, 골똘히 바라보아야 이해된다. 하지만 몇 단계를 거쳐 이해하고 나면 그 작품의 의미나 다른 점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P 31, Understand(얼마나 마음을 열 수 있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구하는 일처럼 작품을 다시 보면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처음 볼 때 놓친 게 무엇일까?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는가, 처음 추측하니 옳은가? 우리 모두는 사물 또는 사람의 겉만 보고 판단하기 쉽다. 다시 보기는 우리가 제대로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P 35, Look Again(작품도 내 마음도 매번 다를 때)


이제 작품을 잘 살펴보고 내 마음에 저장할지 말지 결정해야 할 때다. 예술작품을 보는 눈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아름답게 보이는 작품이 다른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없으니 정답이 없다는 뜻이다. 

P 42, Assessment(정답이 없다는 말은 정답이다)


‘리듬’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음악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배치, 화음(조화), 음조(색조), 음의 높낮이 등 음악 작품의 특징은 그림을 감상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이기도 하다. 음악 작품마다 어떻게 연주할 지 알려주는 기호가 있다. 회하에서는 이런 기호가 그림을 반짝이게 하고, 물결치게 하고, 살아 움직이게끔 만든다. 

P 47, Rhythm(간격과 박자와 배치의 유쾌함)


비유 단계는 여러 나라 문화, 고전 문학이나 민담 등 그림 속에 담긴 풍부한 내용을 해석하는 게 아니라, 그 그림 밑에 숨어 있는 상징, 의미, 징후를 읽어내는 것이다. 사람, 물건이나 사상을 다른 형태로 바꾸어서 은유한느 작가들의 전형적인 기법을 ‘알레고리’라고 부른다. 

P 50, Allegory(그럴듯한 생각과 있음직한 사람들)


리듬이 그림의 음색, 흥얼거림이나 전체적인 흐름이라면 구도는 그림의 짜임새, 뼈대, 토대, 구성 요소다. 기하학적인 선, 형태와 구획 혹은 지평선, 수평선, 소실점이 구도가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요소가 우리의 시선을 좌지우지한다. 그저 오래 바라보는 건 감상이 아니다. 화가의 구성 의도를 파악하는 일도 굉장히 중요하다. 

P 55, Structure(그림 속 풍경, 액자 밖 프레임)


분위기는 작품을 바로 앞에서 실제로 보았을 때 가장 잘 알수 있는 전체적인 느낌, 여운을 뜻한다. 광택이 나는 책에 실린 사진 혹은 고화질 사진이나 화면으로 작품을 보는 게 맨눈으로 직접보기보다 더 또렷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전 미술을 물리적으로 가까이에서 볼 때의 느낌과는 비교할 수 없다. 

P 58, Atmosphere(느낌은 아우라가 된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나PD가 연출한 tvN 「금요일 금요일 밤에」 코너 중 ‘신기한 미술나라’라는 코너가 있다. 개인적으로 ‘신기한 과학나라’와 함께 쌍벽으로 좋아하는 코너인데, ‘신기한 미술나라’에서 나오는 미술 박사 양정무 교수님께서 고전 명화를 보여주면서, 알려주던 그 내용들이 바로 이 10단계였다. 소오름. 


‘신기한 미술나라’를 보면서 너무 쉽게 이해하는 내가 이상했다. 헌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난 그 방송을 보기 전에 먼저 이 책을 읽었덨다. 알게 모르게 이 책을 읽으며 머리 속에 넣고, 느꼈던 그 영향이 그대로 남아있던거다.



자크 루이 다비드는 프락스 형멱이 일어난 지 몇년 후, ‘민중의 친구’ 장 폴 마라의 초상을 그렸다. 그림 속의 장 폴 마라는 흡사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같기도 하고,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피에타>가 떠오르기도 한다. 즉, 장 폴 마라의 죽음을 순교처럼 표현한 것이다. 정작 장 폴 마라는 죽기 전 피부병에 시달렸고, 피부병 증세를 가라앉히기 위해 목욜을 하다가 젊은 여성에게 죽임을 당했다. 



너무나도 유명한 그림, 최후의 만찬. 이 그림은 전체적으로 규칙적인 느낌을 받는다. 가운데 있는 예수에게 시선이 쏠리면서도, 예수 양 옆에 있는 제자들에게도 고루 시선이 간다. 하지만 제자들에게 가는 시선은 튀지 않는다. 그렇다고 또 그림이 지루한가? 그것도 아니다. 각 인물별로 서로 다른 몸짓을 하고 있다.


그나저나 이 책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난 매번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예수 왼쪽에 있는 여성의 모습을 한 사람이 궁금했다. 분명 이 그림은 예수와 열두제자일텐데, 분명 예수 왼쪽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봐도 여성이니까. 하지만 공식적으로 저 여성의 모습을 한 사람은 사도 요한이다. 어째서 일까? 개인적으로 이런 저런 생각 가지치기를 좋아하는 나로써는 ‘저 사람은 사도 요한이다’라고 못 받아버리는 이야기를 볼 때면,참 종교란 답답하구나 라는 생각도 든다. 다빈치가 정말 사도 요한을 그린건지, 아니면 다른 인물을 그린건지는 오롯이 다빈치만 아는 사실일텐데. 하하.



「금금밤 - 신기한 미술나라」에서 배운 ‘바니타스’! 다른 건 다 까먹었는데, 바니타스 정물화 만큼은 뇌리에 강렬하게 남았다. ‘바티나스’란 라틴어로 덧없음을 의미한다. 즉 바니타스 정물화는 유독 ‘죽음’에 직면한 인간의 허무함이나 재물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위 그림 처럼 난데없이 그림에 해골이 나타거나, 난데없이 꽃이 시들어있거나 혹은 꽃이 화병 밖에서 떨어져 나왔거나, 이런 정물들이 바로 ‘바니타스’ 정물화다.


그림은 참으로 어렵다고 느꼈었다. 그냥 막연하게 그랬다. 그림은 돈 있고 많이 배운 사람이 향유하는 작품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가, 박물관은 자주 가도, 미술관에 가본 적은 손에 꼽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런 고전 미술에 대한 입문서가 나오고, 관련 방송들도 나왔다. 덕분에 난 옛날의 나와 달리, 고전 미술과 나름대로 친숙해졌고, 지금은 몇몇 그림은 어떤 화가가 그렸는지까지 맞추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게 바로 대중매체의 힘인가 싶기도 하고(그럼에도 현대 미술은 아직 친해지기 어려운, 정말 범접하기 어렵다). 나처럼 막연하게 고전 미술이 어렵다고 느낀 사람들이 있다면, 이 책이 엄청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거기다 tvN 「금금밤-신기한 미술나라」를 보면 더할나위 없고!(나PD예능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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