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문명’, ‘피라미드’, ‘공룡’, ‘미이라’, ‘미스테리’. 나에게 고고학이란 이런 개념들이다. 아마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강인욱 교수님의 강연을 보지 못했다면, 아마 쭉 저런 개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연을 본 뒤, 고고학의 주 연구대상은 내가 생각한 저런 것들이 아니라, 아 물론 부수적으로 연구하는 분야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고고학의 주 연구대상은 ‘인류’였다. 고대부터 가까운 역사까지 ‘인류’와 관계된 유물을 연구하고 발굴하는게 바로 고고학이었다.



뿐만 아니라 고고학은 상상력의 산물 그 자체였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상상하는 그런게 아니다. 고고학자들이 하는 상상력은 인문학적 요소가 필수불가결이다. 그래서 상상력을 발휘해 추론한 내용이라고 해도, 근거가 있고, 당연히 그럴 것 이라 생각이 드는 그런 학문인 것이다.

이 책에는 신나는 보물찾기도, 실무적인 고고학 이론도 없습니다. 대신에 저는 이 책에서 과거의 사람을 직접 만지고 냄새 맡는 고고학자로서의 생생한 느낌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다소 낯설게 들릴실 수도 있지만, 저는 그 생생함이야말로 고고학이라고 하는 학문이 가진 놀라운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 P2

고고학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바로 유물을 통해 죽어 있는 과거에 새로운 삶을 부여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고학적인 연구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그 유물들이 원래의 기능을 잃고 땅속에 묻혀야 합니다. 즉, 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죽고 난 다음에 고고학자들은 다시 그들을 꺼내어 부활시킵니다. 생동감 있는 삶의 모습을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하는 셈입니다. - P9

우리의 과거에 대한 기억은 죽음으로 수렴이 되어 망각이 되고 망각되어버린 기억은 다시 유물이라는 몸으로 부활합니다. 고고학자에게 유물이란 다시 살아난 기억의 편린입니다. 이렇게 죽음을 통하여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고고학입니다. - P10

땅 속의 흙은 일정한 시간을 두고 마치 케이크처럼 쌓여 있다. 한 층 한 층은 수백 년 또는 수천 년의 시간을 두고 쌓인 것이다. 발굴장에서 곡학자들이 솔이나 꽃삽으로 조심스럽게 작업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따. 순간의 부주의한 발굴로 지나치는 층위는 두고두고 고고학자의 실수로 남게 된다. - P22

역사 기록에 따르면 발해의 음악은 당시 일본과 중국에도 널리 퍼졌다. 발해의 사신이 전한 음악은 일본 도다이지에서 공연할 정도이고,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중국의 송나라에서는 발해의 음악이 너무 유행해 이를 강제로 금지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도대체 발해의 음악에는 어떤 매력이 있어서 이렇게 주변 나라의 사람들을 매혹시켰을까 궁금했다. 구금이 등장한 것을 보니 발해는 초원, 중국, 그리고 고구려의 여러 음악을 조화시켰던 건 아니었을가. 비록 과거의 음악은 복원하여 듣기 어렵지만, 그들이 이뤘던 문화의 힘은 지금도 느낄 수 있다. - P105

일본이 한반도와 만주의 문화재를 약탈한 이유는 단순한 유물의 수집이 아니라, 일본 민족의 기원이 북방 어딘가에 있었다는 설을 주장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근동지역을 약탈한 서구 열강이 유럽 문명이 근원인 성서를 증명하기 위해서 나선 거라고 주장하는 의도와 일맥상통한다. - P219

기마민족설은 역설적으로 일본이 패망한 후에 본격적으로 유행했다. 일본인들은 아시아 전체를 정복할 것이라는 정부의 허황된 선전 아래 전쟁에 내몰렸다. 그리고 전쟁에서 패망하면서 다시 섬으로 쫓겨났다. 갑자기 빈털터리가 되어 버린 일본인들을 위로해준 것은 일제의 전장을 따라다니며 발굴하고 문화재를 약탈해 조사했던 고고학자들이었다. - P220

프랑스가 내세우는 주요 논리는 제3세계 국가는 후진국이어서 문화재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019년 4월에 프랑스의 자랑 노트르담 성당도 화재로 불타버렸다. 프랑스가 다른 나라보다 문화재를 더 잘 관리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이 없음이 여실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속내는 외규장각의 의궤가 반환되면 그들이 수백 년 간 세계 각지에서 가져온 문화재를 다시 뺏길 수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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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사냥꾼 - 집착과 욕망 그리고 지구 최고의 전리품을 얻기 위한 모험
페이지 윌리엄스 지음, 전행선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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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방사수하는 TV 프로그램 중 JTBC 『차이나는 클라스』라는 방송이 있다. 이 방송에서 얼마전에 다뤘던 주제가 바로 ‘공룡’이었다. 정말 흥미진진하게 봤는데, 세상에나. 차클로 공룡에 대한 호기심이 뿜뿜하는 상황에서, 흐름출판에서 출간 된 『공룡사냥꾼』 이라는 책을 읽을 기회가 주어졌다. ‘공룡’을 주제로 하는 책은 이번이 처음인지라 책에 대한 기대감도 뿜뿜!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공룡화석을 훔진 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한 남성’이다(심지어 논픽션, 실화!!). 여기서 중요한 사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이 정말 광범위하다는 점이다. 그저 공룡화석을 훔진 한 남성의 이야기가 진행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공룡 화석’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밀수·박물관·수집·화석 등을 시작해서, 전혀 연관이 없을 것만 같은 자본주의·민주주의·냉전시대·중국 천안문사태·할리우드·몽골의 정책, 거기다 경매와 행정적 규제까지. 와, 이건 정말 생각치도 못했던 부분들이 자꾸 등장해서, 집중력이나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어려운(?) 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을 화석사냥꾼으로 살아온 에릭, 그는 어릴 때부터 화석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아주 어릴 적 해변가에서 오래된 상어 이빨을 발견했을때, 이미 그때부터 에릭의 미래가 결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에릭은 명실공히 성공한 화석사냥꾼이 되었다. 그는 고생물학과 관련된 전문적인 길로 들어가 책상머리에 앉아있는게 아닌, 현장에 나가서 직접 발굴하고 만지는 것을 원했고, 그에 부합하는 직업이 바로 화석사냥꾼이었다. 하지만 에릭은 자기의 일에 자부심이 있었다. 학계에 도움이 된다는 자부심, 인류 역사에 도움이 된다는 자부심 말이다. 그래서 에릭은 발굴한 화석을 박물관에 대여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에릭은 그가 파낸 프룩스빌 화석 일부를 박물관에 대여했고, 1년 후에 그가 대여품을 찾으러 갔을 때, 그 물품에는 등록 번호가 붙어 있었다. 그가 발견한 표본 하나는 다른 직업 사냥꾼 앞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에릭은 FMNH 과학자들이 그를 심각하게 위법적인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 이유는 끝내 알 수 없었다. 과학자들은 브룩스빌 현장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에릭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고, 에릭은 분노했다. P 102



화석사냥꾼이란, 화석에 대한 전문 지식이나 고생물학자같은 부류가 아니다. 말그대로 화석을 발굴한 뒤, 멋지게 복원하여 타인에게 파는 것. 화석발굴&화석판매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화석사냥꾼들을 향한 학계의 시선은 비판적이다. 화석을 연구가 아닌 상업적인 이유로 판매하는 것이나, 비과학적인 조건에서 수집하는 점, 불법적으로 발굴해서 소유하고 있는 점 등을 지적한다. 반면 화석사냥꾼들은 그런 학계에 이렇게 말한다. 화석사냥꾼이 발견한 화석 덕분에 학자들이 연구를 할 수 있는 것이며, 박물관에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것 이라고.



화석사냥꾼들이 화석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사실에 제일 분노하는 학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본인들 역시 화석을 ‘구매’한다. 그것도 화석사냥꾼들에게서. 본인들이 제일 극혐하는 ‘화석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화석사냥꾼들을 비판을 하는게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이었으면, 본인들 역시 상업적으로 구매하지 말아야 했다. 스스로 현장에 나가서 화석을 발굴하는게 옳았다. 하지만 그런 땀흘리는 행동은 하지 않고, 그저 화석사냥꾼들이 발굴한 화석을 ‘구매’하면서, 그러한 행위를 비판하는 모순. 적어도 ‘화석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이유로 화석사냥꾼을 비판할 권리가, 현장에 나가지 않고, 직접 발굴하지 않는, 책상머리에만 앉아있는 학자들에겐 없는게 아닐까.



 적어도 이 책에서 나온 몇몇 화석사냥꾼들은, 책상머리에 앉아서 타인이 발굴한 화석을 구매하여 연구하는 학자들보다 더욱 고생물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화석사냥꾼들을 옹호하는 건 아니다. 그들도 에릭을 비롯한 여러 화석사냥꾼들처럼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가거나, 밀수도 하는 등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건 맞으니까. 다만 한가지 면만 보고 화석사냥꾼은 범죄를 저지르고, 학자들은 연구를 한다고 보는 관점은 조금 위험하다고나 할까? 이런 상황을 비판하고자 한다면 화석들이 상업적으로 거래되는 상황을 만든, 자본주의가 만든 이런 사회를 비판해야하는 게 아닐까?



맥도날드사와 월트디즈니가 시카고의 필드 자연박물관에 티라노사우루스 수를 구매해주기 위해 팀을 구성했다. 어느 신문은 시카고가 “‘다 베어스’와 ‘다 불스’에 ‘다 본즈’”를 추가하기 위해 대체 어느 정도의 금액을 지급하게 될지 궁금해했지만, 이제는 모두가 그 대답을 알고 있다. 구매 희망자에 대한 소문이 나면서 가격은 전례없는 엄청난 금액인 836만 달러에 이르렀다. 윌리엄스는 세금을 대답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여 760만달러에 팔기로 했다. 나중에 스미스소니언의 커크존슨은 “그들이 수(티라노사우루스 수;공룡 뼈 화석)를 판매한 그날부터 화석은 돈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P 099



많은 공룡 뼈 화석이 발견되는 미국, 자본주의의 대표국인 미국에서는 사유지에서 발견한 모든 것을 개인이 직접 수집, 판매가 가능했다. 그래서 에릭같은 사람들이 생업으로 화석사냥꾼을 할 수가 있었다. 말 그대로 사회가 허용했기 때문에. 문제는 미국이 아닌 나라, 몽고였다. 뜬금없이 왜 몽고냐고 하면, 몽고 고비사막에서 공룡 뼈 화석들이 왕왕 나왔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이 책에서 주요 사건으로 다루고 있는 공룡 화석 ‘티라노사우루스 바타르’ 일명  T.바타르도 있었다.



미국 답사 대원들은 곧 고비사막이 3년간 연장 가능한 답사 계약을 맺어도 좋을 만큼 충분히 유망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발굴한 화석은 몽골의 재산이지만 연구를 위해 뉴욕에 가져갈 수 있다는 조항에 모두가 동의했다. P 216



몽골에서는 공룡 화석등에 대한 구체적인 규제가 없었기에, 에릭을 포함한 많은 화석사냥꾼들이 몽골의 화석을 미국으로 들여오곤 했다. 물론 이게 또 완전 합법은 아니고, 흔히 말하듯 교묘하게, 우회적으로 들여온 것이다. 말 그대로 밀수라고나 할까? 합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위법도 아닌, 하지만 그래도 뭔가 뒤가 구린? 뭐라고 규정하기 매우 어려운 부분이랄까. 이렇게 밀수인듯 아닌듯 애매한 부분을 몽골의 대통령 엘베그도로지가 지적했다.



“몽골 대통령은 몽골의 재산일지도 모를 T-렉스 화석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P 308



언뜻 보면, 자국의 문화유산의 밀수를 우려한 대통령의 이야기라 할 수 있지만 실상 아니다. 당시 몽골의 정치 민주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이 모든일, 그러니까 엥흐바야르의 수치스러운 체포, 인권에 대한 미국의 훈계, 고착된 부패, 광산업과 관련된 논란, 치솟는 인플레이션, 엘베그도로지의 당이 6월 총선에서 승리하고 2013년에 대통령직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력, 일부 서방 외교관들 사이에서 몽골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 등이 T.바타르가 경매에 나가기 직전에 일어난 것이었다. 엘베그도로지에게는 승리가 필요했다. P 335



엄밀히 따지면 공룡 화석의 밀수사건이라 일컬어지는 이 사건의 시작은 몽골의 정치권이었다. 그렇다고 에릭이 몽골의 공룡 화석을 미국으로 가지고 와 판매하려고 한 것을 두둔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 사건이 수면위에 올라오게 된 건 자국의 ‘문화유산 보호’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정치적 승리를 위함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공룡 뼈 화석 밀수(거래? 경매?)는 순식간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미국 경매에서 판매되려 했던 공룡 뼈였기에, 미국 연방정부도 이 사건에 참전했다. 그렇게 에릭이라는 화석사냥꾼의 인생은 끝이났다(형량은 6개월 징역형) . 이후 에릭 프로코피라는 이름은 국제 화석 밀수와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그의 유죄 판결에서 판사는 이런 말을 했다.​



“(에릭)프로코피 씨는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는 많은 사람이 따르지 않는 지식 분야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가 그 분야를 따르고 그것을 위해 시장을 창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화석 연구에서 중요합니다. 또한 화석 연구는 지구에서 우리의 삶과 우리의 근원에 관해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따라서 그 점에 있어서 그는 칭찬받아야 합니다. ”


그러나 사회에서는 신뢰와 정직이 중요하다고 판사는 말을 이었다.


“그 점은 프로코피 씨가 평생 종사해온 분야와 관련해서 특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사실상 역사의 희소성으로 먹고살았고, 그 명성에 참여함으로써 실은 그 역사뿐만 아니라 그 역사를 제공하는 국가의 유산을 보존하는 데도 자신을 헌신해왔습니다.” P 393




에릭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판사는 에릭이 밀수를 저질렀을지언정, 그의 행동 결과가 나쁘지많은 았았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니까, 위에서 화석사냥꾼들이 이야기하던 ‘화석사냥꾼이 발견한 화석 덕분에 학자들이 연구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애초에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없다는 자본주의의 논리처럼, 공룡 화석 역시 학자들이나 박물관, 심지어는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까지 이러한 화석들을 소유하려 하지 않았다면 에릭같은 화석사냥꾼도 탄생하지 못했다. 어쩌면 화석사냥꾼인 에릭도, 자본주의 사회가 만든 일종의 피해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금 들기는 했다(물론 밀수를 옹호하는 건 절대 아님, 오히려 밀수 극혐!).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에 나오는 수 많은 사람 중에서 문화유산으로써의 ‘공룡 화석’을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본격적으로 화석사냥꾼 활동을 시작했던 젊었을 적 에릭이나, 1세대 화석사냥꾼인 메리-애닝 정도랄까. 그 외의 사람들, 내지 정부기관은 오로지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였다. 때로는 정치적으로, 때로는 자본주의적으로, 때로는 학술적인 이유로 움직였다. 그래서 뒷맛이 조금은 씁쓸했다. ‘공룡화석’이라는 인류의 문화유산을 둘러싸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만 활동한다는 사실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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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감한 이웃 일본을 이해하는 여섯 가지 시선
김효진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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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일본은 어려서부터 친숙했고, 일본어도 꽤 익숙하게 할 정도로 친근한 나라다. 하지만 친근해질수록, 그들의 뉴스를 보고, 그들의 책을 볼수록 나는 그만큼 일본을 미워한다. 어려서부터 일본문화에 친숙했던 만큼, 난 우리나라 역사도 너무 좋아했다. 덕분에 내 마음속에는.. 뭐라고 해야할까? 일본이란 나라는, 나에게 애증 그 자체였다.




일본 만화를 좋아했고, 일본 성우를 좋아하면서도, 그들의 그릇된 역사관이 담긴 일본 만화를 보면 정말 욕이란 욕을 했다. 그러면서도 그 만화를 보고 있는 내 자신이 싫었고, 그 만화에서 목소리를 더빙하는 성우들이 싫었다. 하지만 제일 싫은 건 그러면서도 그걸 보고 있는 내 자신이었다. 이렇게, 내 학창시절부터 일본에 대한 상반된 마음은 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꽤 오랫동안 이어졌더랬다. 그러다 내 취미생활이 완전 바뀌면서, 일본 문화에서 떨어져나오면서 그나마 마음의 무게를 덜었달까?




1) 대중문화편:오타쿠로 들여다보는 일본의 마음

2) 사상편:반일과 혐한의 뿌리를 해결할 실마리

3) 미디어편:보수화하는 사회와, 이에 대항하는 시민들

4) 역사편:복잡한 일본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역사

5) 정치편:우경화되는 일본과 헌법의 상관관계

6) 문학편:가와바타 야스나리로 본 일본의 미와 전쟁



이 책은 총 6가지의 주제로, 6명의 저자가 글을 썼다.



이 6가지 주제, 나에게 그리 먼 주제는 아니다. 어려서부터 꽤 오랫동안 일본 대중문화를 접했다. 일본문학은 지금까지도 꽤 자주 읽는다. 우리집 책장에 일본 원서가, 그것도 꽤 많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하고. 거기다 역사를 좋아하다보니(정확히는 한국사지만), 일본사도 일반인보다는 나름 많이 안다고 자부한다. 이래뵈도 일본학을 전공했었으니까. 거기다 지금까지도 일본 tv채널 NHK에서 다큐와 뉴스는 꾸준히 보고 있기도 하고(보는 내내 욕하는게 다반사지만).



-오타쿠를 보면 현대 일본이 보인다.

우선 1960년대생이 중심인 오타쿠 1세대는 일반적으로 에스에프테 관심이 많고 당시 성장한 일본 애니메이션을 본격적으로 향유한 세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우주전함 야마토》와 《마징가Z》등을 들 수 있다. 1970년대생이 주축인 오타쿠 2세대는 1980년대 거품경제의 수혜를 받은 출판업계와 관련 연상업계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상황에 등장한 사람들이다.《기동전사 건담》등 일본 애니메이션의 고전뿐 아니라 이 당시 발전한 게임기와 게임산업을 향유했고,《주간 소년 점프》등 일본만화의 전성기를 겪은 세대이기도 하다. 1980년대생이 주류인 오타쿠 3세대는 거품경제의 붕괴를 청소년기에 직접 겪은 세대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체험한 세대이기도 하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상징하는 암울한 미래와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상실한 오타쿠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았고 사회, 문화 비평의 대상이 되는 등, 주류사회에서 오타쿠 문화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P 036 ~ 037



일본정부는 기존의 전통문화 중심의 이미지 전략을 대폭 수정하고 세계의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오타쿠 콘텐츠 및 캐릭터 산업을 일본의 대외전략 및 산업정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이런 흐름의 결과, 일본을 대표하는 오래된 만화 캐릭터인 도라에몽이 명예 외교대사로 임명되는 등, 현재까지 쿨재팬 정책은 지속되고 있다. P 044




과거 ‘오타쿠’라는 이미지는 썩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각종 대중매체에서 이들을 표현한 모습은 대체로 부정적이었기에. 집 밖을 나오지 않는 사회성 제로의 인간, 2D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사로잡힌 인간, 말투가 이상한 인간, 대중매체에서 그린 오타쿠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일본은 정상에서 벗어나는 범주, 그러니까 자기들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경우 배척을 한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오타쿠 역시 그들이 말하는 정상인 기준에서는 벗어났기에, 일본에서 오타쿠는 그저 사회 부적응자였다. 그런데, 달라졌다. 그렇게 오타쿠를 배척하던 일본이 달라졌다.



거품경제가 무너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바로 이때 일본은 오타쿠 문화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타쿠 문화가 일본의 경제를 살린다는 사실을 알고 일본은 변했다. 그동안 배척했던 오타쿠들을 포용하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전략적으로 오타쿠 문화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전 국민의 오타쿠화랄까? 2D 애니메이션을 각종 산업정책과 콜라보하여 적극 활용하는 것은 물론이오, 지역 아이돌을 만들어 아이돌 오타쿠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일명 쿨재팬이다. 영국의 쿨브리타니아를 모방한 쿨재팬. 사족이지만, 여기서조차 영국을 선망하는 일본의 모습이 보인다.



한국은 일본보다는 조금 늦긴 했지만, 한일교류가 시작되면서 일본의 애니메이션 등이 수입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타쿠’가 생겨났다. 초기 일본에서도 그렇듯, 우리나라도 오타쿠에 대한 시선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사회가 변했다. 지금 한국에는 오타쿠가 없다. 어덕행덕을 지향하는 ‘오덕후’가 있을 뿐이다.



분명 오타쿠 문화는 일본에서 들어왔다. 하지만 일본의 오타쿠와 한국의 오덕후는 다르다. 한국의 오덕후는 2D, 애니메이션 캐릭터에만 빠진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장르불문하고 어느 한 장르에 푹 빠져서, 그에 대해 준전문가가 된 사람들을 지칭하기 시작했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뮤덕, 밀리터리를 좋아하는 밀덕, 역사를 좋아하는 역덕 등등등. 어떤 하나의 일을 좋아하고 열정적으로 하는 행위를 덕질이라 하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자 하는 ‘덕업일치’라는 말이 등장했을까. 이제는 덕질이 없는 일상은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덕질은 인생의 활력소가 되었다.



-난감한 이웃 일본, 증오의 감정으로는 보이지 않는 모순

반일과 혐한은 서로를 ‘상식과 도덕’이 결여한 집단, 소통이 불가능한 무뢰한으로 취급하지만, 서로를 미워하는 에너지는 같은 주파수에서 나온다. 그들 모두가 정보를 비판적으로 사유하기보다는, 국가/국민/민족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자신들의 이기심과 편파적인 의견을 숭고한 애국심으로 포장한다. P 096



역사인식 부재,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무지, 보수정치인들에 대한 암묵적인 인정, 넷우익이나 재특회 등 우리가 ‘일본시민사회’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대개 우경화하는 일본정치를 직접 투영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언론 탓만도 아니다 .이러한 정치영역과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우경화 경향에 비판적으로 움직이는 시민사회의 대응은 일본 주류 미디어에서도 잘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P 107



실제로 일본의 사회운동단체와 지식인은 정치인의 망언이나 보수정권의 미디어 장악 시도, 극우단체의 혐오발언과 혐오범죄를 규탄하고 시정을 욕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공중파 방송에서 이들의 요구나 활동을 심도 있게 다루는 경우는 드물다. 방송은 사회적 파급력이 크고 즉각적이라는 이유로 정부가 여타 매체에 비해 훨씬 더 엄격하게 규제하기 때문이다. P 120



사상&미디어편을 읽으면서 참으로 조소가 일었다. 일본의 언론통제, 민주주의를 표방한 독재(유사민주주의) 등등 전부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문자로 읽으니 뭐라고 해야할지. 참 얘들도 답이 없구나 싶었다. 물론 걔중에는 한국에 남아있는 일본군 성노예 할머니들과 연대하여 사회운동을 하고, 일본군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연대하여 사회운동을 하는 깨어있는 일본 지식인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일본 주류 방송에서는 아무리 봐도 찾아볼 수가 없고, 끽해야 한국에서 만든 다큐정도에서도 만나볼 수 있을 정도로 일본의 언론통제는 참으로 심각하다.



일본 NHK뉴스만 봐도 그렇다. 특히 우리나라 뉴스와 비교하면 더욱 그 차이점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 뉴스라면 공중파든 종편이든, 각종 정치권의 이야기를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암만 정치에 관심이 없는 국민이라도, 어느 당에서 어떤 사람이 어떤 망언을 했는지 바로 알 수 있고, 어느 당에서 어떤 사람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있고, 정부에서 어떤 정책을 주도적으로 진행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일본 뉴스는 그런게 없다. 그저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각종 사건, 사고를 알리는데 급급하다. 더욱 놀라운건 어떤 사건, 사고의 용의자가 특정된 경우 그 용의자의 초등학교 동창까지 찾아내어 인터뷰 한 것을 보여준다는 점. 이런 사건, 사고 다음으로 뉴스에서 자주 내보내는게 바로 북한 이야기다. 예전엔 우리나라 자칭 보수인 사람들을 보면서 북한 없었으면 저들은 뭘로 정치했을까 싶었는데, 요 몇년간 일본 뉴스를 보면서 느낀건. 일본이야말로 북한이 없으면 정치가 안돌아가는 나라였다. 우리나라 자칭 보수보다 북한을 사랑하는게 일본이 아닌가 싶을정도다. 그리고 또 하나, 한국의 자칭보수들이 만들어난 가짜뉴스를 진짜인마냥 일본 뉴스에서 보여준다는 점이랄까 ^^..



이런 일본 뉴스를 보자면, 아 일본국민들이 왜이렇게 정치에 관심이 없는지 모를래야 모를수가 없다. 우리나라처럼 TV를 틀었을 때, 국회에서 몸싸움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니. 일본 국민들은 지네 정치인들이 정치를 못하면, 욕을 할 수 있는 권리조차 빼앗긴거나 마찬가지였다. 뭐 물론, 그런 권리가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긴 하다. 우리나라는 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가며 진짜 민주주의를 쟁취했지만, 일본은 지들이 전쟁을 일으켜 발광하다가, 미국에게 원자폭탄 맞고 깨갱한 상태에서 미국에게 받은 (유사)민주주의일 뿐이니까.



아니 근데 또 일본 국민에게 정치 무지를 주도하는 일본 정부만 비난할 수도 없는게, 우리나라 역시 언론이 통제되던 군사독재시절이 있었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들고 일어났고, 수 많은 사람들이 군부에 학살되면서도 계속 투쟁했다. 그렇다는 건 일본 정부도 문제지만, 정치를 알려고 하지 않은 일본 국민도 문제가 있는 건 매한가지라는 사실.



여담이지만 일본 극우보수이자 대표적으로 혐한을 외치는 넷우익은 오롯이 자국이 위대하다는 입장하에 혐한을 외치기에, 비슷한 의미로 본다면 우리나라 넷우익이 반일을 외치며 우리나라 정부가 위대하다고 해야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우리나라 넷우익은 자국을 욕하고 친일을 외친다는점. 참 이상할따름..




-이토록 낯선 일본의 역사

대게 하나의 왕조는 200년에서 300년에 한 번씩 바뀐다든가, 사서오경을 열심히 공부한 지식인들이 권력을 쥐고 통치하는 등, 우리 역사에서 당연하다고 여기는 일들이 일본역사에서는 당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천년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다스린다든가, 지식인이 아닌 칼을 찬 무사가 다스리는 시대를 상상하기 쉽지 않고, 그러한 존재들로 이루어진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당연히 더더욱 쉽지 않다. P 146



센고쿠시대란 종래의 중앙권력이 약화되어 붕괴해가자, 전국각지에 통치를 위임받고 있던 지방 영주들이 각자 세력을 키워가며 서로 충돌했던, 15세기 중반부터 16세기 말에 이르는 약 150년 동안의 시기다. P 148



막부로서는 250여 개의 번 사이에 평화를 위한 세력균형이 꺠지는 일이 없도록, 혹은 막부의 권위에 대응하지 못하도록 평소에 적절히 통제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고안된 법이 바로 무가제법도, 즉 다이묘를 포함한 무사들이 지켜야 할 내용을 규정한 법이었다. P 165



근대 이래 끊임없이 서양과 비교하고 서양을 따라잡으려 했던 열등감과 욕망, 모든 어려움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며 이웃침략으로 해결하려던 이기적인 선택등이 이어져, 근대 일본은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했다. P 188



내 개인적으로 일본 역사는 한,일이 교류했던 고대사가 제일 좋다. 마음도 편하고 말이다. 물론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뭐, 일본의 역사에서 제일 유명한건 아무래도 전국시대가 아닐까 싶다. 무로마치 막부가 무너지고(무너졌다고 하는게 맞긴 맞나...), 각 지역에서 여러 장수들이 나타나 서로 땅따먹기를 하던 그 때. 오나 노부다가가 나타나 전국시대를 평정할.....뻔 했으나, 가신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죽자 재빠르게 오다의 후계자를 자처하고 나타난 도요토미 히데요시. 하지만 도요토미의 잘못된 선택, 임진왜란으로 인해 도요토미 병력도 거의 죽거나 사라졌고. 결국 마지막은 임진왜란 때 참전하지 않았던, 에도에 있던 인대의 대명사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국재패(TMI, 요새 대하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 읽는 중!).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정벌, 즉 임진왜란을 일으킬 생각만하지 않았어도 어쩌면 일본의 전국시대는, 우리나라에서 중국의 삼국지나 초한지처럼 흥미로운 영웅들이 이야깃거리로 읽혔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요토미는 조선 정벌을 선택했고, 조선은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심지어 당시 조선의 왕은 자기 안위만 생각하던 쓰레기, 휴. 이순신 장군님이 아니었으면 어휴. 이래저래 참 박자가 안맞아도 너무 안맞았다. 도요토미가 일본 내에서 병력을 안정시키고, 외교 등을 통해 정치를 하려고 했다면 어땠을까? 한일역사관계가 조금은 변했을지도.



일본이 임진왜란/정유재란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심지어 조선을 초토화시켰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근데 또 점령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근대 일본에서 ‘정한론’이 대두되기 쉬웠던게 아닐까? 잘못된 선택 하나가,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 결국 작금의 한일관계는 잘못된 선택들이 끊임없이 맞물려,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우리가 백날 일본을 욕한다 한들, 일본은 변하지 않는다. 일본이 백날 한국을 욕한다 한들 일본 역시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렇게 서로가 반일, 혐한을 앞세워 날을 세울 수도 없다. 그래도 이 관계를 풀려고 한다면, 역시나 일본의 자세가 관건이 아닐까?



과거에 자국민을 등지면서까지, 일본에 많은 명분을 퍼주었던 전직 부녀대통령 정권, 그 때 일본이 받은 만큼 뭔가를 했다면 우리가 이렇게까지 일본을 욕하는 경지까지 오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일본에서 동일본대지진이 터졌을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 많은 기부금을 보내줬을 때도 일본은 쌩깠다. 뉴스에서도 감사의 말한마디가 없었다. 100년전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이 조선인 수백만명 학살을 했음에도, 우리나라 국민은 일본을 돕고자 그 많은 기부금을 보냈는데 말이다. 그래서 난 더이상 우리가 일본을 상대로 무언가를 퍼주거나 하는 건 절대 원하지 않는다. 이제 한일관계가 풀어지는 방법은 단 하나, 일본이 본인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 오직 그거 하나 뿐이다. 일본이 자국의 학생들에게, 동아시아 침략사를 A to Z까지 세세하게 알려주고, 그들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한 근대화유산이 조선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민들을 강제동원해서 운영했다는 것을 알리는 것 그 뿐이다.



언제쯤 그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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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구름이 사라진 청명한 하늘 아래로 핑크빛 석양이 비스듬이 쏟아지고 있었다. 바닷바람이 몹시 차가웠지만, 갑판 위에서 헬싱키 도심의 뽀얀 풍경이 석양에 물드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황홀한 그 풍경인 마치 어린 소녀의 두 뺨에 발그레 피어난 홍조 같았다. _P 048 - P48

오늘 하루는 왠지 느슨하게 보내고 싶었다. 숙소를 나설 채비를 하며 단순한 목표 하나를 세웠다. 탐페레의 호수를 바라보는 것. 오늘의 여정에 그 이상의 목표는 부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_P 080 - P80

원작동화의 초기배경은 의외로 어둡고 무거운 편인다. 무민의 외모는 포근하고 귀엽지만 그들이 겪는 상황은 대홍수, 혜성 충돌 등 자현재해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_P 112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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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무엇인가”





내 머릿 속에 떠오른 페미니즘은 적어도 이 책에서 나온 여성들이 외치는 그런 부분은 아닌 듯하다. 서로 간에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내가 생각하는 것이 진정한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하는 태도, 그러면서 서로를 비난하고 혐오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진짜 페미니즘인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서로를 비난하고 혐오하라고 생겨난 단어는 아닐진데 말이다.



결국 이 책을 읽으며 내 머리속에서 정리된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었다. 여성이라는 단어를 ‘사람’으로 바꿔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사회,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휴머니즘으로 바꿔도 이상하지 않는 그런 사회 말이다.

세연은 진경을 보며, 정말 남자라는 족속은 왜 이렇게 내 친구를 피곤하게 할까, 생각했다. 너희들 때문에 진경이가 할 일을 제대로 못하잖아. 그리고 그 생각은 조금씩 바뀌어갔다. 왜 저렇게 남자가 없으면 못사는거야, 창피하게. 언젠가부터 세연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중략) 하지만 세연은 진경에게 대놓고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섭섭하고 무시당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진경을 좋아했고, 경외심을 품고 진경이 읽는 책들과 쓰는 문장들을 바라보았다. (중략) 세연은 진경을 동경하면서 남몰래 미워했다. P 134~137 - P134

네가 전에 말했었잖아. 여자들 사이에 갈등이 커져가고 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는 안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이야. 너는 안타까워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때 너의 말을 듣고서야 그런 게 있었다는 걸 알고 정말 많이 놀랐어. 그날 집에 가서 어떤 사람들이 결혼한 여자들을 가리켜 하는 말들을 찾아보았어. 그 말들에 대해 내가 반발심이나 슬픔이나 분노나, 혹은 어떤 사람들처럼 부끄러움 같은 것을 느끼지 않는 것 처럼 보여서 너는 놀았을지도 모르겠어. 그것에 대해 무엇을 느낄 만한 자리 자체가 내 삶에 없다는 걸 네가 이애하게 되면 더 놀랄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사실이야. 내가 삶으로 꽉 차서 폭발해버리지 않게 하려면 나는 나의 어떤 부분을 헐어서 공간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렇게 얻어낸 공간에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부정적 감정을 채울 수 없다는 것, 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전혀 모르고 내 삶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닌 사람들을 존중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삶에 대한 미움을 집어넣을 수도 도저히 없다는 것, 그게 내가 해낼 수 있었던 최선의 생각이야. P065 - P65

때로는 내가 아주 융통성 없는 사람처럼, 단지 수천 수만개의 비뚤어진 잣대들을 뭉쳐놓은 덩어리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져. 그래서 말을 잘 못하곘어, 진경아,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삶을 사는 방법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들킬까 봐 겁이나서, 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면서 그립고, 기분지 좋으면서 두려워. 내가 너한테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고맙다는 말이었는데. P 164 - P164

작가는 그렇게 나이 든 페미니스트와 젊은 페미니스트를 각각 ‘영악한 여자 꼰대/분노하는 천방지축 어린애’로 대립시키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문제삼는다. 그 프레임은 도대체 누가 만든 것인가. (중략) 그리고 이러한 ‘늙은 여성/젊은 여성’으로 대변되는 페미니즘 이분법의 프레임은 선악의 마니교적 이분법으로 전화하면서 페미니즘을 ‘좋은 페미니즘/나쁜 페미니즘’. ‘진짜 페미니즘/가짜 페미니즘’으로 나누는 진풍명품쇼로 전락시킨다. 그런데 도대체 좋은, 진짜 페미니즘은 어디에 있나. P 189~190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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