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 남자들이여, 국가를 약하게 만드는 악습을 고치지 않으면 비록 오늘은 비단옷과 명주옷을 입고 있을지라도 내일은 등에 채찍이 내릴 것이다. 대한의 여자들이여, 사회를 부패하게 만드는 추한 행동을 버리지 않으면 비록 오늘은 얼굴에 분을 발랐어도 내일은 똥을 바를 것이다. - 안창호

바로 오늘부터 우리나라를 괴롭히는 강국과 전쟁을 시작해 국권을 회복할 것이다. 의아하게들 여길 것이다. 병력도 미약하고 군함과 대포도 부족한데 대체 무엇을 가지고 싸울 생각이냐고. 러일 전쟁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선전포고는 이삼 년 전의 일이나 개전 준비를 시작한 것은 38년 전이다. 일본은 개전을 준비한 지 38년 후에 결과를 얻었다. -안창호

1919년 전무후무한 세계적 회의가 열렸고 약소민족들에게도 권리를 준다는 말이 전해졌다. 이에 동경유학생들이 독립운동의 첫소리를 냈다. 도쿄에서 사관학교를 마치고 일본 육군 기병 제1연대 사관으로 재직하던 때였다. 꿈처럼 기쁜 중에도 불 보듯 뜨거워지는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김경천

여름이 끝나가고 초가을이 다가온다. 나뭇잎이 떨어지면 군사행동을 하기 어려우니 어서 무기를 준비해 압록강 한 번 건너는 것이 소원이라고들 말한다. 내 생각도 그렇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형편으로는 압록강은 고사하고 개천도 건너기 어렵다. -김경천

나는 평생을 자유와 독립을 위한 투쟁에 바쳤다. 젊은이들은 그 정신을 잊지 말고 이어 가야할 의무가 있다. -이동휘

칼날보다 날카로운 삭풍이 나의 살을 벤다. 살은 깎여도 참을 수 있고 창자는 끊어져도 슬프지 않다. 내 발 내 집 빼앗은 것도 모자라 내 처자까지 넘겨다보니 차라리 머리를 잘릴지언정 무릎 꿇어 종이 되지는 않겠다. -이상룡

한국인들이 열망하는 건 단 두가지였다. 독립과 민주주의. 다른말로 바꾸어 쓰면 바로 자유.

자유를 모르는 이들에게 자유는 금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그 무엇! -김산

우리 혁명가들에게 나라가 넷이나 있다. 시베리아, 만주, 중국, 일본, 그러나 나라를 넷이나 가진 인간은 나라를 하나도 갖지 못한 인간보다도 훨씬 비참하다. 한국인들은 일본인, 중국인, 상하이의 영국인과 프랑스인 경찰, 심지어는 같은 한국인 경찰들에게도 합법적으로 체포된다. 그 어느 곳에서도 우리는 보호받지 못한다. -김산

젊은이들은 서로 내가 먼저 죽으러 국내에 들어가겠다는 자세였다.

나가겠다는 사람을 모두 내보낼 수는 없는 상황이었으니 나중에는 제비를 뽑기도 했다.

먼저 죽으러 가겠다고 제비까지 뽑는다?

지금 사람들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 김성숙(의열단)

의로운 일을 행하자. 의로움을 추구하는 삶을 살자. - 이종희(의열단)

내가 몸을 돌보는 방법은 오직 하나,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다. - 김시현(의열단)

한 번 죽기로 결심했으니 어찌 즐거운 마음으로 가지 않겠습니까? -나석주(의열단)

우리가 반드시 강도 왜적을 섬멸하고 최후 목적을 이룰 날이 조만간 다가올 것이다. -윤세주(의열단)

나 홀로 적국에 들어와 사형을 선고받다니, 진실로 넘치는 영광이다. -김지섭(의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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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물처럼 소중하다. 없으면 대지는 메마르고 생명은 사멸한다. ‘지금’과 ‘여기’를 규정하는 존재가 역사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시간이 흐른다. 그 시간 속에 기억이 추억이 되고, 추억은 역사가 된다. 역세는 세상을 규정한다. 나는, 역사다.

1555년 5월 21일, 비변사가 명종에게 보고했다. "왜인 평장친이 가지고 온 총통이 지극히 정교하고 제조한 화약 또한 맹력합니다. 당상의 직을 제수함이 어떻겠습니까?" (중략) 다음달 사간원이 명종에게 "총통을 주조해야 하는데 철재가 없으므로 버려둔 큰 종으로 총통을 주조하게 해 달라"고 건의했다. 그때 남대문과 동대문 문루에는 만들어놓고 설치하지 않은 종이 뒹굴고 있었다. (중략) "이미 철재를 사들이도록 했으므로 윤허하지 않는다." 사간원이 "철재를 시장에서 사들이게 하니 원망과 한탄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해도 듣지 않고 비변사와 홍문관까지 철포 제작허가를 청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그리고 명종은 이렇게 답했다. "어진 장수가 있어 잘 조치한다면 적들이 멋대로 날뛰지는 못할 일이다." (중략) 이에 세 정승이 "조선이 가지고 있는 중화기 천자총통, 지자총통 또한 잡철로는 만들 수 없다"고 거들었다. 명종이 딱 부러지게 답했다. "오래된 물건은 신령스러우니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물건을 부수어서 쓰는 것은 옳지 못하다." 스스로 억지임을 알았는지, 명종은 "이 말은 삭제함이 옳겠다"고 사관에게 일렀다. 사관 또한 어이가 없었는지 ‘삭제함이 옳겠다’는 말까지 실록에 기록해버렸다. - P51

다른 나라 군주 명을 받아 공자와 주자가 일본을 공격해온다면 내가 먼저 나서서 철포를 들고 공자와 주자의 목을 쳐 깨뜨리리라 - P144

1550년 11월 흠경각 수리공사가 있었다. 물을 받는 그릇 하나가 문제였다. 관상감 책임자 이기가 공사를 마치고 명종에게 보고했다. "(이 그릇은) 옛날 성인들이 권계하던 기구이니 언제나 옆에 두고 물을 부으며 살피고 반성하는 것이 좋겠나이다." 명종은 "그리 하겠다"라고 답했다. 때는 7년 전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 서원을 소수서원이라고 사액한 지 8개월 뒤였ㄷ. 물그릇에 빗물이 고이듯, 어느 틈에 실용을 목적으로 만든 기계가 ‘덕목 수행’용으로 변경이 된 것이다. - P83

"조선인은 전 세계에 나라가 12개 뿐이라고 생각한다. 옛 기록에 나라가 8만 4000개라고 적혀 있지만 태양이 한나절 동안 그렇게 많은 나라를 다 비출 수 없기 때문에 지어낸 얘기라고들 했다." - P125

"선왕(중국 요/순 임금)의 옳은 말씀이 아니면 노자, 석가, 제자백가가 모조로 이단이다." - P189

정부에 복귀한 지도자들은 영국에서 취한 산업과 미국에서 취한 언론과 스위스의 교육과 독일의 법률을 그대로 정책에 적용했다. 영국에서는 광업을 배웠다. 산업혁명 기초가 석탄과 철에 있음을 이들은 깨달았다. (중략) 그리고 이들이 찾아낸 서양 근대화의 힘은 교육이었다. 사절단이 정치 및 경제 분야 이외에 관심을 기울인 분야닌 교육 부문이었다. - P265

이홍장이 물었다. "왜 귀국은 서양옷을 입는가."

모리가 대답했다. "옛날 옷은 놀기에 좋았지만 열심히 일하는 데는 절대 맞지 않는다. 우리는 가난하고 싶지 않다. 부자기 되기 위해 옛것을 버리고 새 것을 취했다."

이홍장이 반격했다. "의복 제도는 조상에 대한 존중 표시다. 만세 후대에 이어야 한다."

모리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조상이 살아 있어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천 년 전 조상들은 중국 옷이 당시 일본 옷보다 우월해서 중국 옷을 택했다. 남의 나라 장점이 보이면 일본은 어떻게든 배워서 따라한다. 그게 일본의 미풍양속이다." - P287

개방과 교류, 다양성과 대중의 각성. 이 네 가지 단어에 임하는 지도자의 자세가 한 나라 백성을 고난으로 이끌었고 한 나라 백성을 부강한 나라로 이끌었다. 유럽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게 서기 1543년에 벌어진 세가지 사건과 21세기 대한민국을 연결하는 ‘징비’의 열쇠다. - P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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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본에게 오키나와는 또 다른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은 전쟁의 피해자다”라는 슬로건을 걸고 말이다. 지들이 일으킨 전쟁인데!!! 오키나와 전투 당시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니, 당연히 “일본이 피해자다”라고 생각하는거다. 물론 오키나와 한 섬만 봤을 때는 전쟁의 피해지역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죽었던 수 많은 오키나와 사람들이 누구 손에 죽었나?라는 측면에서 보면 대체 가해자는 대체 누구인가? 싶은거다. 학살당한 수 많은 오키나와인이 일본군인 손에 강제 자살당했다. ‘미군에게 잡히는 수치를 당하느니, 그냥 죽어라’ 라는 미명하에. 일본은 그 점을 묵살하고 있다. 오로지 오키나와의 ‘전쟁의 피해자’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원폭을 맞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와 함께.

류큐 왕국의 신화는 역사적 장르다. 이 말은, 신화가 역사의 문학적 서술이라는 뜻은 아니다. ‘아마미쿠가 천상에서 오키나와에서 내려왔다라는 신화를, 문화적으로 발전된 곳에서 오키나와로 도래한 이주자 집단이 있었다라는 역사로 읽을 수 있다는 입장과는 거리가 멀다. 류큐 신화가 역사적 장르인 까닭은 역사 속에서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여러 집단의 사유, 여러 집단의 사고방식이 류큐 신화를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류큐 왕국에는 다양한 집단과 그 집단이 상상해낸 다양한 신화적 우주가 자리하고 있있고, 그 우주가 다른 우주와 대면할 때 발생하는 우주의 조정은 신화라는 서사 방식으로 출현하곤 했다. 반복하건대, 류큐의 신화가 역사적 장르인 까닭은, 그 신화가 현실과의 부단한 작용 속에서 형성된 역사적 산물이라는 데 있다.

신화의 문자화, 다시 말해 사유나 관념, 상징으로 향유되는 신화가 이야기의 형태로 기록될 때, 그것은 신화를 즉정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재편하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진다는 신화 일반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 P175

조선과 거의 겹치는 역사적 시간위에 존재했던 류큐왕국은 동아시아 책봉-조공 체제의 일원이었고 동아시아 문명권의 공통적 문화기반이었던 유교와 불교, 한자문화를 공유했다. 동아시아 중세 왕조 국가로서의 일반적 특성을 지닌 듯 보이지만, 왕국을 지배한 류큐 왕권의 주요 기조 가운데 하나는 고유의 신화적 논리였다. - P19

조선과 거의 겹치는 역사적 시간위에 존재했던 류큐왕국은 동아시아 책봉-조공 체제의 일원이었고 동아시아 문명권의 공통적 문화기반이었던 유교와 불교, 한자문화를 공유했다. 동아시아 중세 왕조 국가로서의 일반적 특성을 지닌 듯 보이지만, 왕국을 지배한 류큐 왕권의 주요 기조 가운데 하나는 고유의 신화적 논리였다. - P178

류큐 라는 역사를 지닌 채 일본의 일부가 된 오키나와는 일개 지방이 아니라 제국 일본의 내부 식민지 였다. - P26

하지만 ‘평화의 나라’로 환기되곤 하는 류큐도 실제가 아닌 이미지에 가깝다. 류큐 왕국 역시 여느 왕국처럼 투쟁과 정복 위에 세워진 국가였고, 왕권을 둘러싼 피의 쟁투와 그로 인한 왕통의 변화도 겪었다. ‘평화왕국 류큐’라는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은, 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낸 오키나와 전투의 경험, 제국 일본의 패전 이후 실시된 미군정, 섬 곳곳에 설치된 미군 기지로 인해 상존해온 전쟁에 대한 공포 등 평화롭지 않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빚어낸 또 하나의 허상이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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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초기에는 우리가 가진 물건의 양이 적었던 터라 집안일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살림살이는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만큼 금세 불어났고, 동시에 할 일도 그만큼 늘어났다. 소꿉장난처럼 여겨졌던 집안일은 점점 현실이 됐고, 나는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진지한 태도로 ‘집안일하지 않을 방법’을 찾았고, 오랜 고민끝에 결론을 냈다. ‘집안일을 안 하면 된다!’ 그러니까 나는 집안일이 하기 싫어서, 너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한 것이다.

플라스틱 양념통을 받아왔을 때는 단지 새것이라는 이유만으로 ‘득템’한 기분이었다. 서랍장 형태의 통에 설탕과 소금, 고춧가루를 넣으면 되곘다고 구체적인 계획도 짜놓았지만, 슬프게도 플라스틱 양념통 역시 상부 장에 넣어둔 후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p 031 - P31

덕심을 자극하는 제품을 봐도 강인한 정신력으로 견뎌내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2020년 경자년을 맞아 각종 브랜드에서 디즈니와 협업해 미키 마우스 제품을 선보였지만 구경만 했다. 그렇게 꾹꾹 잘 참다가 결국 하나를 구입해버렸다. p 181 - P181

물건을 비울 때 스스로 해보면 좋은 질문



1) 나에게 필요한 물건이 아직도 많다고 느끼는가?

2) 단지 미련이 남아서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3) 같은 아이템을 다시 사지 않을 거라고 장담해?

4) 나를 위한 물건인가, 남을 위한 물건인가?

5) 이 물건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한가?

이제서야 물건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확실해 졌다. 가지고 있는 물건이 절대 나를 대변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물건이 아닌 나 자신을 스스로 기억하고, 추억해야 한다. 그러니까 물건에 너무 많은 감정과 에너지를 내어주지 않아도 괜찮다. - P206

처음에는 쓰레기가 우리 집, 내 공간, 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만으로 할 일이 끝난 것 같았다. 하지만 곧 내나 버린 물건들의 행선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다시 쓰이기를 바랐지만, 대부분은 재활용되지 못하고 쓰레기로 전락해서 매립된다는 것을 알았다. 잘 썩지 않는 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들어가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 P95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을 검색해보다가 아주 자연스럽게 ‘제로 웨이스트 운동’을 알게 됐다. 제로 웨이스트는 쓰레기의 사용과 배출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으로, 실 생활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특히 비닐봉지나 플라스틱 용기 같이 썩지 않는 소재의 사용을 줄이려는 실천을 말한다. - P96

가방은 무거워졌고, 텀블러는 매일매일 세척해줘야 했다. 우리의 새로운 식수 생활은 생수를 사 먹는 일보다 훨씬 불편했다. 마시고 버리면 끝이 아니라, 손이 많이 가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므로 확실히 귀찮다. 하지만 생수보다 보리차가 더 맛 좋다. - P111

이제는 물건을 집으로 들일 때, 내가 물건을 제대로 쓸 수 있을지까지 생각해본다. 방법은 간단하다. 충동적으로 가지고 싶은 물건이든, 첫눈에 마음이 뺏겨버린 물건이든 간에 우선 이성을 앞세워 이 물건과의 마지막 순간이 어떨지 예상해보는 것이다. - P129

다행인 것은 인터넷 쇼핑을 할 때, 장바구니에 넣자마자 바로바로 구입한느 대신 며칠 묵혀두는 습관이 생겼다는 거였다. 인터넷 쇼핑몰의 장점 중 하나이다. 바로 사지 않는다고 해도 누구의 눈치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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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종말이 찾아와도 내겐 메이블만 있으면 될 것 같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아버지가 거대한 파도 속으로 사라져버렸을 때, 나는 모든 걸 내팽개치고 이곳 뉴욕으로 숨는 것을 택했다. 평생 메이블이 나를 용서해줄 일은 없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바로 지금, 메이블이 왔다. 무려 40시간을 날아 내 앞으로

"마린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한 친구가 있다는 건 알아. 내가 친할아버지처럼 사랑했던 할아버지 손에 자란 애란 것도, 내가 대학으로 떠난 지 며칠 뒤에 할아버지가 물에 빠져 돌아가셨고, 그날 밤 이후 내 친구 마린의 소식을 아는 사람이 고향 사람 중 아무도 없었다는 것도, 심지어 나조차도" - P67

"내가 예전에 세상을 이해하던 방식과 지금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다르다. 나는 이야기를 읽고 눈물을 흘리고 책을 덮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지금은 모든 것에 울림이 있고 가시처럼, 종기처럼 도무지 떠날 줄 모른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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