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감한 이웃 일본을 이해하는 여섯 가지 시선
김효진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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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일본은 어려서부터 친숙했고, 일본어도 꽤 익숙하게 할 정도로 친근한 나라다. 하지만 친근해질수록, 그들의 뉴스를 보고, 그들의 책을 볼수록 나는 그만큼 일본을 미워한다. 어려서부터 일본문화에 친숙했던 만큼, 난 우리나라 역사도 너무 좋아했다. 덕분에 내 마음속에는.. 뭐라고 해야할까? 일본이란 나라는, 나에게 애증 그 자체였다.




일본 만화를 좋아했고, 일본 성우를 좋아하면서도, 그들의 그릇된 역사관이 담긴 일본 만화를 보면 정말 욕이란 욕을 했다. 그러면서도 그 만화를 보고 있는 내 자신이 싫었고, 그 만화에서 목소리를 더빙하는 성우들이 싫었다. 하지만 제일 싫은 건 그러면서도 그걸 보고 있는 내 자신이었다. 이렇게, 내 학창시절부터 일본에 대한 상반된 마음은 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꽤 오랫동안 이어졌더랬다. 그러다 내 취미생활이 완전 바뀌면서, 일본 문화에서 떨어져나오면서 그나마 마음의 무게를 덜었달까?




1) 대중문화편:오타쿠로 들여다보는 일본의 마음

2) 사상편:반일과 혐한의 뿌리를 해결할 실마리

3) 미디어편:보수화하는 사회와, 이에 대항하는 시민들

4) 역사편:복잡한 일본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역사

5) 정치편:우경화되는 일본과 헌법의 상관관계

6) 문학편:가와바타 야스나리로 본 일본의 미와 전쟁



이 책은 총 6가지의 주제로, 6명의 저자가 글을 썼다.



이 6가지 주제, 나에게 그리 먼 주제는 아니다. 어려서부터 꽤 오랫동안 일본 대중문화를 접했다. 일본문학은 지금까지도 꽤 자주 읽는다. 우리집 책장에 일본 원서가, 그것도 꽤 많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하고. 거기다 역사를 좋아하다보니(정확히는 한국사지만), 일본사도 일반인보다는 나름 많이 안다고 자부한다. 이래뵈도 일본학을 전공했었으니까. 거기다 지금까지도 일본 tv채널 NHK에서 다큐와 뉴스는 꾸준히 보고 있기도 하고(보는 내내 욕하는게 다반사지만).



-오타쿠를 보면 현대 일본이 보인다.

우선 1960년대생이 중심인 오타쿠 1세대는 일반적으로 에스에프테 관심이 많고 당시 성장한 일본 애니메이션을 본격적으로 향유한 세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우주전함 야마토》와 《마징가Z》등을 들 수 있다. 1970년대생이 주축인 오타쿠 2세대는 1980년대 거품경제의 수혜를 받은 출판업계와 관련 연상업계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상황에 등장한 사람들이다.《기동전사 건담》등 일본 애니메이션의 고전뿐 아니라 이 당시 발전한 게임기와 게임산업을 향유했고,《주간 소년 점프》등 일본만화의 전성기를 겪은 세대이기도 하다. 1980년대생이 주류인 오타쿠 3세대는 거품경제의 붕괴를 청소년기에 직접 겪은 세대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체험한 세대이기도 하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상징하는 암울한 미래와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상실한 오타쿠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았고 사회, 문화 비평의 대상이 되는 등, 주류사회에서 오타쿠 문화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P 036 ~ 037



일본정부는 기존의 전통문화 중심의 이미지 전략을 대폭 수정하고 세계의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오타쿠 콘텐츠 및 캐릭터 산업을 일본의 대외전략 및 산업정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이런 흐름의 결과, 일본을 대표하는 오래된 만화 캐릭터인 도라에몽이 명예 외교대사로 임명되는 등, 현재까지 쿨재팬 정책은 지속되고 있다. P 044




과거 ‘오타쿠’라는 이미지는 썩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각종 대중매체에서 이들을 표현한 모습은 대체로 부정적이었기에. 집 밖을 나오지 않는 사회성 제로의 인간, 2D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사로잡힌 인간, 말투가 이상한 인간, 대중매체에서 그린 오타쿠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일본은 정상에서 벗어나는 범주, 그러니까 자기들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경우 배척을 한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오타쿠 역시 그들이 말하는 정상인 기준에서는 벗어났기에, 일본에서 오타쿠는 그저 사회 부적응자였다. 그런데, 달라졌다. 그렇게 오타쿠를 배척하던 일본이 달라졌다.



거품경제가 무너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바로 이때 일본은 오타쿠 문화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타쿠 문화가 일본의 경제를 살린다는 사실을 알고 일본은 변했다. 그동안 배척했던 오타쿠들을 포용하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전략적으로 오타쿠 문화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전 국민의 오타쿠화랄까? 2D 애니메이션을 각종 산업정책과 콜라보하여 적극 활용하는 것은 물론이오, 지역 아이돌을 만들어 아이돌 오타쿠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일명 쿨재팬이다. 영국의 쿨브리타니아를 모방한 쿨재팬. 사족이지만, 여기서조차 영국을 선망하는 일본의 모습이 보인다.



한국은 일본보다는 조금 늦긴 했지만, 한일교류가 시작되면서 일본의 애니메이션 등이 수입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타쿠’가 생겨났다. 초기 일본에서도 그렇듯, 우리나라도 오타쿠에 대한 시선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사회가 변했다. 지금 한국에는 오타쿠가 없다. 어덕행덕을 지향하는 ‘오덕후’가 있을 뿐이다.



분명 오타쿠 문화는 일본에서 들어왔다. 하지만 일본의 오타쿠와 한국의 오덕후는 다르다. 한국의 오덕후는 2D, 애니메이션 캐릭터에만 빠진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장르불문하고 어느 한 장르에 푹 빠져서, 그에 대해 준전문가가 된 사람들을 지칭하기 시작했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뮤덕, 밀리터리를 좋아하는 밀덕, 역사를 좋아하는 역덕 등등등. 어떤 하나의 일을 좋아하고 열정적으로 하는 행위를 덕질이라 하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자 하는 ‘덕업일치’라는 말이 등장했을까. 이제는 덕질이 없는 일상은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덕질은 인생의 활력소가 되었다.



-난감한 이웃 일본, 증오의 감정으로는 보이지 않는 모순

반일과 혐한은 서로를 ‘상식과 도덕’이 결여한 집단, 소통이 불가능한 무뢰한으로 취급하지만, 서로를 미워하는 에너지는 같은 주파수에서 나온다. 그들 모두가 정보를 비판적으로 사유하기보다는, 국가/국민/민족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자신들의 이기심과 편파적인 의견을 숭고한 애국심으로 포장한다. P 096



역사인식 부재,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무지, 보수정치인들에 대한 암묵적인 인정, 넷우익이나 재특회 등 우리가 ‘일본시민사회’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대개 우경화하는 일본정치를 직접 투영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언론 탓만도 아니다 .이러한 정치영역과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우경화 경향에 비판적으로 움직이는 시민사회의 대응은 일본 주류 미디어에서도 잘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P 107



실제로 일본의 사회운동단체와 지식인은 정치인의 망언이나 보수정권의 미디어 장악 시도, 극우단체의 혐오발언과 혐오범죄를 규탄하고 시정을 욕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공중파 방송에서 이들의 요구나 활동을 심도 있게 다루는 경우는 드물다. 방송은 사회적 파급력이 크고 즉각적이라는 이유로 정부가 여타 매체에 비해 훨씬 더 엄격하게 규제하기 때문이다. P 120



사상&미디어편을 읽으면서 참으로 조소가 일었다. 일본의 언론통제, 민주주의를 표방한 독재(유사민주주의) 등등 전부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문자로 읽으니 뭐라고 해야할지. 참 얘들도 답이 없구나 싶었다. 물론 걔중에는 한국에 남아있는 일본군 성노예 할머니들과 연대하여 사회운동을 하고, 일본군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연대하여 사회운동을 하는 깨어있는 일본 지식인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일본 주류 방송에서는 아무리 봐도 찾아볼 수가 없고, 끽해야 한국에서 만든 다큐정도에서도 만나볼 수 있을 정도로 일본의 언론통제는 참으로 심각하다.



일본 NHK뉴스만 봐도 그렇다. 특히 우리나라 뉴스와 비교하면 더욱 그 차이점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 뉴스라면 공중파든 종편이든, 각종 정치권의 이야기를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암만 정치에 관심이 없는 국민이라도, 어느 당에서 어떤 사람이 어떤 망언을 했는지 바로 알 수 있고, 어느 당에서 어떤 사람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있고, 정부에서 어떤 정책을 주도적으로 진행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일본 뉴스는 그런게 없다. 그저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각종 사건, 사고를 알리는데 급급하다. 더욱 놀라운건 어떤 사건, 사고의 용의자가 특정된 경우 그 용의자의 초등학교 동창까지 찾아내어 인터뷰 한 것을 보여준다는 점. 이런 사건, 사고 다음으로 뉴스에서 자주 내보내는게 바로 북한 이야기다. 예전엔 우리나라 자칭 보수인 사람들을 보면서 북한 없었으면 저들은 뭘로 정치했을까 싶었는데, 요 몇년간 일본 뉴스를 보면서 느낀건. 일본이야말로 북한이 없으면 정치가 안돌아가는 나라였다. 우리나라 자칭 보수보다 북한을 사랑하는게 일본이 아닌가 싶을정도다. 그리고 또 하나, 한국의 자칭보수들이 만들어난 가짜뉴스를 진짜인마냥 일본 뉴스에서 보여준다는 점이랄까 ^^..



이런 일본 뉴스를 보자면, 아 일본국민들이 왜이렇게 정치에 관심이 없는지 모를래야 모를수가 없다. 우리나라처럼 TV를 틀었을 때, 국회에서 몸싸움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니. 일본 국민들은 지네 정치인들이 정치를 못하면, 욕을 할 수 있는 권리조차 빼앗긴거나 마찬가지였다. 뭐 물론, 그런 권리가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긴 하다. 우리나라는 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가며 진짜 민주주의를 쟁취했지만, 일본은 지들이 전쟁을 일으켜 발광하다가, 미국에게 원자폭탄 맞고 깨갱한 상태에서 미국에게 받은 (유사)민주주의일 뿐이니까.



아니 근데 또 일본 국민에게 정치 무지를 주도하는 일본 정부만 비난할 수도 없는게, 우리나라 역시 언론이 통제되던 군사독재시절이 있었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들고 일어났고, 수 많은 사람들이 군부에 학살되면서도 계속 투쟁했다. 그렇다는 건 일본 정부도 문제지만, 정치를 알려고 하지 않은 일본 국민도 문제가 있는 건 매한가지라는 사실.



여담이지만 일본 극우보수이자 대표적으로 혐한을 외치는 넷우익은 오롯이 자국이 위대하다는 입장하에 혐한을 외치기에, 비슷한 의미로 본다면 우리나라 넷우익이 반일을 외치며 우리나라 정부가 위대하다고 해야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우리나라 넷우익은 자국을 욕하고 친일을 외친다는점. 참 이상할따름..




-이토록 낯선 일본의 역사

대게 하나의 왕조는 200년에서 300년에 한 번씩 바뀐다든가, 사서오경을 열심히 공부한 지식인들이 권력을 쥐고 통치하는 등, 우리 역사에서 당연하다고 여기는 일들이 일본역사에서는 당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천년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다스린다든가, 지식인이 아닌 칼을 찬 무사가 다스리는 시대를 상상하기 쉽지 않고, 그러한 존재들로 이루어진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당연히 더더욱 쉽지 않다. P 146



센고쿠시대란 종래의 중앙권력이 약화되어 붕괴해가자, 전국각지에 통치를 위임받고 있던 지방 영주들이 각자 세력을 키워가며 서로 충돌했던, 15세기 중반부터 16세기 말에 이르는 약 150년 동안의 시기다. P 148



막부로서는 250여 개의 번 사이에 평화를 위한 세력균형이 꺠지는 일이 없도록, 혹은 막부의 권위에 대응하지 못하도록 평소에 적절히 통제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고안된 법이 바로 무가제법도, 즉 다이묘를 포함한 무사들이 지켜야 할 내용을 규정한 법이었다. P 165



근대 이래 끊임없이 서양과 비교하고 서양을 따라잡으려 했던 열등감과 욕망, 모든 어려움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며 이웃침략으로 해결하려던 이기적인 선택등이 이어져, 근대 일본은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했다. P 188



내 개인적으로 일본 역사는 한,일이 교류했던 고대사가 제일 좋다. 마음도 편하고 말이다. 물론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뭐, 일본의 역사에서 제일 유명한건 아무래도 전국시대가 아닐까 싶다. 무로마치 막부가 무너지고(무너졌다고 하는게 맞긴 맞나...), 각 지역에서 여러 장수들이 나타나 서로 땅따먹기를 하던 그 때. 오나 노부다가가 나타나 전국시대를 평정할.....뻔 했으나, 가신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죽자 재빠르게 오다의 후계자를 자처하고 나타난 도요토미 히데요시. 하지만 도요토미의 잘못된 선택, 임진왜란으로 인해 도요토미 병력도 거의 죽거나 사라졌고. 결국 마지막은 임진왜란 때 참전하지 않았던, 에도에 있던 인대의 대명사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국재패(TMI, 요새 대하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 읽는 중!).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정벌, 즉 임진왜란을 일으킬 생각만하지 않았어도 어쩌면 일본의 전국시대는, 우리나라에서 중국의 삼국지나 초한지처럼 흥미로운 영웅들이 이야깃거리로 읽혔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요토미는 조선 정벌을 선택했고, 조선은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심지어 당시 조선의 왕은 자기 안위만 생각하던 쓰레기, 휴. 이순신 장군님이 아니었으면 어휴. 이래저래 참 박자가 안맞아도 너무 안맞았다. 도요토미가 일본 내에서 병력을 안정시키고, 외교 등을 통해 정치를 하려고 했다면 어땠을까? 한일역사관계가 조금은 변했을지도.



일본이 임진왜란/정유재란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심지어 조선을 초토화시켰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근데 또 점령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근대 일본에서 ‘정한론’이 대두되기 쉬웠던게 아닐까? 잘못된 선택 하나가,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 결국 작금의 한일관계는 잘못된 선택들이 끊임없이 맞물려,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우리가 백날 일본을 욕한다 한들, 일본은 변하지 않는다. 일본이 백날 한국을 욕한다 한들 일본 역시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렇게 서로가 반일, 혐한을 앞세워 날을 세울 수도 없다. 그래도 이 관계를 풀려고 한다면, 역시나 일본의 자세가 관건이 아닐까?



과거에 자국민을 등지면서까지, 일본에 많은 명분을 퍼주었던 전직 부녀대통령 정권, 그 때 일본이 받은 만큼 뭔가를 했다면 우리가 이렇게까지 일본을 욕하는 경지까지 오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일본에서 동일본대지진이 터졌을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 많은 기부금을 보내줬을 때도 일본은 쌩깠다. 뉴스에서도 감사의 말한마디가 없었다. 100년전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이 조선인 수백만명 학살을 했음에도, 우리나라 국민은 일본을 돕고자 그 많은 기부금을 보냈는데 말이다. 그래서 난 더이상 우리가 일본을 상대로 무언가를 퍼주거나 하는 건 절대 원하지 않는다. 이제 한일관계가 풀어지는 방법은 단 하나, 일본이 본인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 오직 그거 하나 뿐이다. 일본이 자국의 학생들에게, 동아시아 침략사를 A to Z까지 세세하게 알려주고, 그들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한 근대화유산이 조선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민들을 강제동원해서 운영했다는 것을 알리는 것 그 뿐이다.



언제쯤 그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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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 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 대한민국 도슨트 5
강제윤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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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섬, 신안. 각종 다큐와 뉴스로만 본 지역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에게 신안은 전라남도 지역에 있는 하나의 도시라는 생각이 강했다. 근데 왠걸! 신안은 하나의 도시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폐가 있었다. 신안은 1,025개의 섬을 하나로 모아, ‘신안’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었다. 손암 정약전의 유배지이자 『자산어보』의 산실인 흑산도를 비롯하여, 보물섬 증도,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 하의도, 암태도 소작쟁의로 알려진 암태도 등. 정말 각각 개성있는 많은 섬들을 한데모아서 ‘신안’이라 통칭하는 거였다. 즉, 우리나라 대부분의 섬은 진도군의 진도, 완도군의 완도, 거제시의 거제도 같은 지자체의 메인인 모섬이 있는데, 신안은 아니다. 그냥 서로 다른 섬을 한데 모아서 ‘신안’이라고 통칭한다는 것! 와, 나는 정말 신안에 대해 1도 모르고 있었다.




신안의 모태인 압해도는 그 이름처럼 바다를 재패한 섬이었다. 압해도 해상 세력의 수장은 후삼국시대에 고려 왕건과 끝까지 맞섰던 능창 장군이다. 후삼국시대 서남해 해상을 재패했던 능창은 수전에 능해 수달장군으로 불렸다. 신라시대 말 동아시아의 해상황 장보고의 암살 후 해상세력은 소멸된 듯 보였다. 하지만 50여 년 뒤 능창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장보고 암살 후에도 해상 세력이 존재했음이 밝혀졌다. P 026



조선시대에는 동서남대 배부분의 섬에서 거주를 금하는 공도정책을 시행했다. 섬에 들어가 사는 이들은 반역의 죄로 다스렸으니, 섬에 사는 사람이 죄인인 시대였다. 이 무렵 신안의 섬들도 사람의 거주가 금지됐다. 신안 섬에 거주가 다시 허락된 것은 임진왜란 무렵이다. (중략) 공도정책이 섬의 역사마저 단절시켰다. P 030



나에게 섬 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그저 남해안을 재패한 해상왕 장보고가 유일했다. 근데 왠걸? 장보고 이후로도 해상 세력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거기다 조선시대 공도정책으로 인해, 섬에 사람이 산다는 것 자체가 반역죄였다는 사실도. 그 공도정책 때문에 섬의 역사가 단절되었다는 것 조차도. 



그럼에도 신안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 신안의 여러 섬에서 신석기 시대 유적인 패총이 나왔다거나, 삼국시대의 유적지가 나왔다거나 이런 건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내가 놀란 점은 이런 유적지들이 아니었다. 신안에 속한 여러 섬에서 많은 독립운동가가 나왔다는 점이다. 대표적인건 역시 암태도 소작쟁의가 아닐까? 암태도 소작쟁의는 대표적인 항일 농민항쟁이다. 소작쟁의에 참가했던 소작농들은 이후에도 항일운동에 앞장섰다. 신안의 또다른 섬인 장산도에서도 독립운동가 집안인 장씨 일가가 살았다. 장병준, 장병상, 장흥재, 장홍염 4형제는 항일독립운동, 광주학생운동, 제헌국회의원 등의 활동을 하였다. 옥도는 또 어떤가. 옥도는 일본 해군에게 점령당했던 섬이었기에, 일본 해군의 군사기지가 설치되었다. 이런 옥도에서 구한말 항일의병들이 들고 일어났다. 지금의 옥도에는 당시 일본인의 군사시설이 일부 남아있다.



나는 왜 신안의 이러한 역사를 알지 못했을까? 내가 신안을 하루 빨리 가봐야할 이유가 이렇게 늘어났다.





특혜커녕 오히려 하의도 사람들 중에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대통령 재직 시절 하의도를 위해 해준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하의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새삼 김대중 대통령이 훌륭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태어난 고향이라고 특혜를 주지도 않고 또 고향이 아니라 해서 차별하지도 않은 공명정대함. 대통령은 결코 어느 특정 지역만의 대통령이 아니라 모두의 대통령이기에 당연한 이야기다. P 104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 하의도. 솔직히 몰랐다. 이전 정권의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자기가 살았던 지역에 특혜를 주었기에, 모를래야 모를수가 없었달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김대중 대통령 고향은 들은바가 없었다. 근데 왠걸, 다 이유가 있었네? 새삼 김대중 대통령이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싶었다. 아니, 오히려 대통령이라면 이랬어야 하는게 맞다. 그동안 비정상적인 대통령을 보았기에, 이런 정상적인 모습조차도 대단하게 보이는건가보다. 지금 하의도에 남아있는 김대중 대통령 생가는 오롯이 김씨 문중이 복원하였고, 되려 이를 신안군에 기증했다고 하니 더욱 놀라울 따름이다.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비정상적인 대통령들은 본인들을 포함해서, 그 가족들까지도 서로 못해먹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는 데 말이다.






유명세를 가장 크게 탄 곳은 드라마 ‘봄의 왈츠’촬영지였던 하누넘 해변이다. 하트 모양을 하고 있어 하트해변으로도 불리는데 연인이나 부부가 하누넘에 가면 헤어지지 않고 ‘영원히 심장에 남는 사람이 된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다. P 147



가끔 TV에서 보았던 하트해변. ‘와! 저긴 한번 가서 보고 싶다’ 했는데, 그 해변이 신안 비금도에 있는 해변이었다. 예전이라면 신안의 섬은 교통편 때문에 여행하기 어려웠겠지만, 천사대교가 개통된 지금은 신안이 섬이 아니라 육지가 되었다. 물론 비금도까지 도로가 이어진 건 아니나, 아주 잠깐동안만 배를 타면 되는 것 같으니, 그 정도면 꽤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 연인이 가면 헤어지지 않는다니, 꽤 로맨틱한 전설이 아닌가?



아, 또 하나. 비금도는 천재 바둑기사 이세돌의 고향이라는 것!



흑산도는 홍어의 섬으로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삭힌 홍어는 흑산도 고유의 음식이 아니다. 그래서 손님들에게는 삭힌 홍어를 팔지만 흑산도 사람들은 정작 삭힌 홍어를 즐기지 않는다. 오히려 싱싱하고 찰진 생홍어를 주로 먹는다. 『자산어보』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나주 영산포가 삭힌홍어의 원류다. P 190



하지만 역시 신안! 하면 흑산도가 아닐까! 내가 참말로 좋아하는 홍어의 본고장★ 근데 조금 놀랐던 것은 흑산도가 홍어의 본 고장이 맞기는 하지만, 삭힌 홍어의 고향은 흑산도가 아니라 나주였다는 사실이랄까. 하하하. 그러니까 삭힌 홍어의 시작은 이렇다.



어부들이 흑산도 인근 바다에서 잡힌 홍어와 생선을 배에 싣고 영산강을 따라 올라가, 나주의 영산포까지 도착한다. 그 사이 다른 생선들은 썩어서 못먹게 되었지만, 홍어만큼은 썩지않고 자연발효가 되었다고!



지금 흑산도에서 삭힌 홍어 요리가 번성한 것은 오롯이 관광객들의 요구로 내륙 문화가 역수입 되었다는 것! 이야, 신안 섬을 따라 여행하다가 삭힌 홍어의 유래까지 알게 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흑산도는 잠깐 들렀다 가기는 아까운 섬이다. 적어도 『자산어보』의 산실인 사리마을 사촌성당에서 하루쯤 소요하거나 걸어서 여행해야 흑산도의 깊은 맛을 알 수 있다. 사촌성당은 흑산도 유배살이 중이던 손암 정약전이 아이들을 훈육하기 위해 설립한 성당이자 조선시대 최고의 어류 도감인 『자산어보』의 산실이다. P 192



나는 어보를 만들려는 생각으로 섬사람들을 널리 만나보았다. 그러나 사람마다 말이 다르므로 어느 말을 믿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창대라는 소년을 만났다. 차대는 즐 집안에 틀어박혀 손님들을 거절하면서 고서를 탐독했다. 나는 마침내 이 소년을 맞아들여 함꼐 묵으며 물고기 연구를 시작했다. - 정약전 『자산어보』 서문에서, P 245



신안 대둔도에는 창대의 묘지도 남아있고 그의 후손들도 살고 있다. P 247



흑산도는 홍어 말고도 유명한 것이 있으니, 바로 손암 정약전의 『자산어보』다. 자산어보는 조선 최고의 어류 백과사전이다. 자산어보가 저술된 장소가 바로 ‘흑산도’라는 사실! 자 여기서 정약전이 누구인가? 그는 바로 다산 정약용의 형이다. 정약전과 정약용은 정조 사후, 신유박해 당시 천주교를 믿은 죄로 유배형을 받았다. 형인 정약전은 흑산도로, 동생인 정약용은 강진으로. 동생인 정약용은 나중에 해배되었지만, 형인 정약전은 우이도에서 눈을 감았다.



여기서 조금 더 이야기 하자면,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흑산도에서 집필했기에 흑산도가 유명하긴 하지만, 실상 손암은 흑산도보다 신안의 또 다른 섬, 우이도에서 더 오랜기간 유배생활을 했다고 한다. 마지막 생을 우이도에서 눈 감은 것도 포함해서.



두사춘으로도 불리는 두사충은 실존인물이다. 물론 자은도에 전해지는 이야기 속 두사충과 동일 인물인지는 알 수 없다. 임진왜란 시기 명나라에서 조선으로 건너왔다는 점에서는 같은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중략) 우연히 박종인의 『땅의 역사』를 읽다가 그 실마리를 찾았다. 경기도 양평에 있는 한음 이덕형의 묏자리를 두사충이 점지했다는 대목이었다. P 052



아니 그나저나, 책을 읽다가 발견한 한 문구. 나도 모르게 반가워서 체크했다ㅋㅋㅋㅋ 이 책의 저자도 박종인 기자님의 땅의 역사를 읽는가보다. 역시 우리나라 어느 땅이든, 그 땅의 역사를 알고 가야 재밌는 법!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도슨트 시리즈, 앞으로 나올 지역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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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푸른 눈의 증인 - 폴 코트라이트 회고록
폴 코트라이트 지음, 최용주 옮김, 로빈 모이어 사진 / 한림출판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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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정도 지나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그 날이 돌아온다.
바로 작년에 광주 민주화 운동 유적지를 돌아다니며, 그 곳에서 독재타도를 외쳤을 그들을 생각했었다.
이 책을 쓴 푸른 눈의 이방인은, 당시 광주 민주화 운동을 어떻게 기록했을까?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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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 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 대한민국 도슨트 4
전석순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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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행을 좋아한다. 그냥 여행이 아닌, 그 땅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 여행을 좋아한다. 해서 내 여행에는 언제나 그 땅의 역사를 알려주는 길라잡이가 있었다. 때로는 책이 길라잡이가 되었고, 때로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박종인 기자님이 그랬으며, TV에서 방영해주는 역사 다큐가 그랬다. 그런 나에게 또 하나의 길라잡이가 생겼다. 바로 『대한민국 도슨트』 시리즈다. 오늘 소개할 책은 이 시리즈의 네 번째 춘천편 이다.



나에게 춘천은 많은 추억이 있는 도시다. 내 할머니가 살고 있는 곳이며, 우리 아빠가 태어난 도시이고, 우리 엄마와 아빠가 결혼한 도시다. 뿐만아니라 주민등록초본에서 떡하니 보이는, 내 본적, 그 본적이 바로 여기, ‘춘천’이다(하지만 서울 태생이라는게 함정). 그래서 춘천은 나에게 여러모로 마음이 많이 가는, 그런 애틋한 도시다. 


춘천에 가면 어느 겨울에는 논에다 조성한 얼음 썰매장에서 아빠랑 동생이랑 신나게 놀았고, 어느 봄에는 큰아빠와 아빠 손을 잡고 동생과 함께 육림랜드를 갔다. 어느 여름 날에는 아빠 친구들과 함께 여름휴가를 떠났었고, 어느 가을 날에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춘천인형극제를 보러 가기도 했다. 내 어린시절, 춘천은 이토록 즐거운 추억으로 가득했다(물론 아픈 추억들도 있지만).


내 어린날을 가득 채운 춘천이었으나, 커가면서 점점 멀어졌다. 의식적으로 가지 않게된 것도 있었다. 분명 그 곳에는 할머니가 계시지만, 말 못할 가족사도 있고 하다보니 점점 발길이 닿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던 춘천이었다. 그랬었는데, 이 책 덕분에 저 밑바닥에 있던 춘천이 뭍으로 나왔다. 온갖 추억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어린날 내 추억뿐만 아니라, 어려서부터 자주 들었던 아빠의 추억도 같이 떠올랐다.


춘천이라는 도시는 나보다 우리 아빠에게 더욱 각인되어 있는 곳이다. 춘천은 여전히 아빠의 고향이면서, 아빠의 엄마가 살고 있다. 아빠를 힘들게 한 형제들도 그곳에 있으며, 아빠의 친구들도 춘천에 있다. 무엇보다 젊은 날 아빠가 모진 고생을 했던 그 곳 역시도 춘천이다.


오래전부터 닭갈비는 서민과 가까운 음식으로 싸고 푸짐했다. 1970년대 닭갈비는 1인분씩 팔지 않고 1대씩 팔았다. 닭갈비 1대 가격은 100원이었따. 1978년 삼양라면과 초코파이가 50원 이었고, 1979년 서울 지하철요금이 60원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닭갈비는 갈비라는 이름치곤 무척 저렴한 편이었다. P 075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200m 남짓한 춘천 명동 닭갈비 골목은 그대로 남아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한자리에 있던 닭갈비집이 수두룩하다. 어지간하면 50년 전통이고 2대째나 3대째 이어져 오고 있는 곳도 많다. P 079


아빠가 젊을 적 친구들과 자주 갔었다는 명동 닭갈비 골목. 수중에 돈이 별로 없어도, 닭갈비 만큼은 저렴하여 친구들과 함께 소주한잔을 하며 고된 하루를 달랬다고 했다. 물론 그 때와 조금은 달라진 모습인 명동 골목이지만, 그래도 그때나 지금이나 명동 닭갈비 골목은 청춘들을 반겨준다. 


호반의 도시 춘천 답게 춘천에는 여러 댐이 있다. 지금은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었다. 소양강변에 건립된 소양강 처녀상도 그렇고, 소양댐이 그렇다. 하지만 이런 댐 건설 이면에, 수 많은 마을들이 수몰되었다. 아주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의암댐)수몰된 마을 중에는 우리 아빠가 나고 자란 곳도 있었다. 난 할머니 집이 있는 유포리가 아빠가 나고 자란 곳인 줄 알았는데 말이다. 

댐의 크기만큼이나 수몰 규모도 컸다. 춘천시를 비롯한 양구군과 인제군에 걸쳐 수몰 지역이 생겼다. 6개 면, 38개리가 잠기는 바람에 이주한 주민만 해도 1만 8,000여 명에 이르렀고 수몰된 집과 건물도 4만 5,000여 채에 달했다. P 041


꽤 많은 곳을 놀러다니면서 의도치않게 댐공사로 인한 수몰지역도 갔었는데, 정작 아빠가 어릴적 살던 집이 수몰되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땐 그 마음이 참 미묘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저 강 바닥에 가라앉았을까? 하지만 가라앉은 추억만큼, 더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지금도 소양댐, 의암댐, 춘천댐 등 곳곳에서 새로운 추억이 피어나고 있다.


콧구멍다리 아래는 소양강댐의 차가운 물이 보여있어 한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이 맴돌았다. 그래서 여름에는 더위를 식히려는 사람들이, 겨울에는 빙어를 잡으려는 낚시꾼들이 콧구멍다리를 찾았다. P 220


콧구멍 다리는 철거를 앞두고 있다. 낡은 다리 대신 소양7교가 그 역할을 할 것으로 전해졌다. P 221


아빠의 어린날 추억이 저 강 아래에 있다면, 어린날 내 추억도 곧 사라질 듯 하다. 춘천 갈 때마다 아빠가 대려가줬던 콧구멍 다리, 겨울만 되면 빙어잡는 낚시꾼들이 즐비했던 그 다리가 철거된다고 한다. 이 곳에서 빙어를 처음 먹어봤었는데. 이렇게 어린 날의 내 추억이 어린 곳이 또 사라져 간다는 사실이 너무 마음이 아프다. 이 책의 목적은 춘천을 알리기 위함도 있겠지만, 나처럼 사라져가는 추억을 대신 붙잡아주기 위함이 아닐까 싶었다.


​시기를 잘 맞추면 청평사로 들어서난 내내 사방에서 쏟아지는 낙엽에 걸음마저 무뎌진다. P 245


1,000년이 넘는 시간을 품은 청평사는 명승 제70호로 춘천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절터는 강원도 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되어 있다. 청평사는 고려 광종 24년에 영현선사가 세운 백암선원으로 시작되었다. P 247


소양호에서 배를 타고 한 15분 정도면 도착하는 청평사. 내 기억 속에서 제일 어렸을 적 찾은 사찰이 바로 청평사다. 당시 청평사에 대한 기억이 너무 좋아서, 꽤 오랜시간이 흐른 지금도 나는 사찰을 찾아다닌다. 산속에 있는 사찰을 찾으면, 언제고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해졌다. 하지만 이런 기억과 달리, 그 어릴적 청평사를 방문한 이유는 참으로 슬픈 이유였다. 청평사는 나의 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떠나보낸 장소였다.


하지만 그땐 너무 어렸기에, 어린 내 눈으로 본 청평사는 그저 너무 멋졌고, 구송폭포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너무 좋았고, 공주굴에 얽힌 상사뱀 전설이 놀라웠다. 할아버지를 보내드리고 할머니댁으로 돌아온 뒤, 어른들 모두가 침울해 있는데 나 혼자만 멋진곳을 다녀왔다고 그림을 끄적거렸던 기억이 있다. 한참 지나서야, 그날 그곳 청평사에서 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보내드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로 나에게 그곳은 조금은 슬픈 장소가 되었다. 


그 이후 오랫동안 가보지 못한 청평사, 조만간 할아버지께 인사드리러 한번 찾아가야겠다.




이 책은 꽤 오랜시간 잊고 있었던 춘천, 그리고 어린 날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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룬샷 - 전쟁, 질병, 불황의 위기를 승리로 이끄는 설계의 힘
사피 바칼 지음, 이지연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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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나라면 절대로 읽지 않았을 경영서적. 하지만 회사 독서통신으로 『90년생이 온다』를 읽은 이후, 경영서적도 꽤 재밌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읽다가, 이번에 흐름에서 출간된 ★대작☆ 『룬샷』까지 손이 갔다. 룬샷, 이 책은 빌게이츠를 비롯하여 노벨상에 빛나는 대니얼 카너먼, 로버트 러플린, 에릭 메스킨등이 강력 추천하는 도서이기도 했다.


저명인사들의 어마어마한 추천사! 이 중에는 정재승 교수님(과학무식자 피로를 과학에 관심을 갖게해준 멋진 교수님! 흔한 알쓸신잡 애청자1)도 있다. 이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극찬하는 책이라고 하니, 읽기 전부터 두근반기대반! 본격적으로 읽어보려 하니, 바로 다음페이지에서 룬샷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아! 룬샷이라는 책 제목에는 별다른 생각을 안하고, 그저 유명인사들이 극찬하는 책이라는 사실에만 신경쓰고 있었다니, 조금 반성 ㅜㅜ


⑴ 룬샷 Loonshot : 주창자를 나사 빠진 사람으로 취급하고, 다들 무시하고 홀대하는 프로젝트(아이디어)


⑵ 문샷 Moonshot : 달에 우주선을 보내는 프로젝트, 아주 중요한 결과가 나올 거라고 다들 기대하고 많은 것을 투자한 프로젝트(아이디어)


⑶ 프랜차이즈 Franchise : 룬샷으로 탄생한 제품의 후속작 또는 업데이트 버전


이 책을 읽기 전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아, 정확히는 문과형 인간들이 주의해야할 사항이다. 이 책은 일부 과학적 원리를 꺼내와,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듣도 보도 못한 물리학 용어 ‘상전이’와 ‘상분리’. 저자는 이 개념을 가지고 와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렇다고 겁낼 필요는 없다. 나 같은 전형적인 문과형 인간 조차도 쉽게 이해했으니까. 


쉽게 말하면, 이런 물리학 법칙이 일어난 곳이 조직(집단)이라고 했을 때 ‘상전이’는 유지와 변화의 경계이며, ‘상분리’는 유지와 변화의 공존. 그러니까 한 조직에서 상전이와 상분리가 유지될 때, 그 조직에서 나온 룬샷은 폐기처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여러 지원을 힘 입어 멋진 결과물을 내고, 이는 조직 또는 기업을 계속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그 어느 집단도 동시에 두 가지 상태의 행동을 할 수는 없다. 동시에 두 가지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없다. 그러나 예외가 하나 있다. 앞서 말한 욕조의 물이 정확히 0도일 때 얼음 덩어리와 액체 상태의 물이 공존한다. 0도보다 조금만 낮거나 높아서 전체가 얼어붙거나 액체로 변할 것이다. 하지만 상전이의 바로 그 경계에서는 두 가지 상태가 공존할 수 있다. P 034



잘 가꾸어진 룬샷 하나로 한 나라(또는 기업)의 운명이 바뀐다.


1922년 미국 엔지니어 리오 영, 호이트 테일러. 이들은 실험중 우연히 레이더 탐지기술(송/수신기)을 발견하였다. 바로 해군에게 전투에서 레이더 탐지기 사용을 제안하였으나, 해군은 즉각 거절. 하지만 엔지니어들은 끊임없이 실험하고 다듬어서, 조기경보 시스템을 만들어서 다시 한번 보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역시나 거절. 그렇게 시간은 허무하게 흐르다가 나중에서야, 조기경보 시스템을 테스트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테스트 중이던 그날 일본군 항공기 353대가 미국 진주만을 기습공격했고, 이 날 2,403명이 전사했다.


두 엔지니어가 만든 이 기술은 룬샷이다. 하지만 룬샷은 변화/혁신의 다른말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조직은 혁신보다는 안정을 추구한다. 그 결과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후 미국은 변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버니바 부시, 안정과 혁신을 공존시킬수 있는 사람을 선택했다. 버니바 부시는 프랜차이즈를 잘하거나 룬샷을 잘하는 것은 조직의 ‘상태’때문이라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 부시를 선택한 루즈벨트 대통령은 그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보냈다. 


‘우리 육군과 해군은 다가올 전쟁을 이기는 데 꼭 필요한 기술 면에서 독일에 한참 뒤처져 있다.’ 군 스스로는 제때에 그 기술 격차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부시는 루스벨트에게 연방정부 내에 새로운 과학 기술그룹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부시가 수장이 되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는 체제로 말이다. P 056


1939년 핵분열이 발견된 이후 첫 2년간은 대부분의 물리학자가 이게 아무런 실용적 용도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군사적으로든 다른 용도로든 말이다. 새로운 유형의 폭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아인슈타인의 저 유명한 편지를 받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소집한 과학위원회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1941년 영국의 어느 원자 물리학자 그룹이 만들어낸 새로운 결과는 부시가 다른 마음을 먹게 만들었다. 부시는 루스벨트 대통령과 핸리 스팀슨 전쟁부 장관에게 비록 핵무기가 만들어질 가능성은 낮지만, 독일이나 일본이 먼저 핵무기를 손데 넣는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루스벨트는 부시의 논리를 받아들여 그에게 이 문제를 맡겼다. 부시는 대대적인 연구 프로그램을 개시하고 군과 저치 지도자들 사이에 지지를 확보한 후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이 프로그램을 군에 이양했다. P 71~72


루즈벨트는 부시에게 끝없는 신뢰와 지원을 주었다. 루즈벨트는 새로운 형태의 룬샷(버니바 부시)을 폐기처분하지 않고, 룬샷(버니바 부시)을 아낌없이 지지하였다. 그러면서도 미국의 정치/행정은 타격이 없도록 안정을 유지했다. 이 책에서는 버니바 부시가 룬샷을 적절하게 활용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내 눈엔 부시보다 더 뒤에있던 루즈벨트. 그야 말로 룬샷을 제대로 활용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룬샷도 함정은 있다. 위에서도 말했듯 룬샷을 성공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전이’와 ‘상분리’가 적절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바로 ‘동적평형’이다. 


정말로 성공을 이루는 사람들, ‘우연의 설계자들’은 그보다 덜 화려한 역할을 맡는다. 그들은 어느 한 룬샷을 열열히 지지하기 보다는 많은 륜샷을 육송할 수 있는 뛰어난 구조를 만든다. 그들은 예지력 있는 혁신가라기보다 세심한 정원사에 가깝다. 그들은 룬샷과 프랜차이즈 양쪽을 모두 잘 돌보며,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압도하지 못하게 한다. 서로가 서로를 성장시키고 지원하게 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다. P 79


균형을 유지해서 어느 한 상태가 다른 상태를 압도하지 않게 하려면 필요한 부분이 있다. 바로 룬샷을 도모하는 예술가와 프랜차이즈를 도모한느 병사가 똑같이 사랑받는다고 느껴야 한다는 것. 나약하고 모호한 소리처럼 들릴 수 있지만, 아주 현실적인 얘기이자 자주 간과되는 요소다. P 83


버니바 부시와 시어도어 베일은 기술 자체보다는 ‘기술이전’을 경영했다. 그들은 룬샷과 프랜차이자 사이의 균형과 소통을 중시했다. P 216



동적평형을 만들어내라.


쉽게 말하면 어느 한쪽을 편애하지 말라는 것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버니바 부시를 전폭 지원하면서도, 군이나 정치/행정도 균형적으로 바라보았다. 버니바 부시도 마찬가지다. 부시는 본인의 연구소 사람들을 지원하면서도, 힘을 합쳐야할 해군에 존경과 찬사를 보냈다. 이것이야 말로 한 팀을, 조직을 다스리는 리더들에게 제일 필요한 덕목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균형을 지키는 리더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처음에는 룬샷을 발견하고, 룬샷을 지원하는 멋진 리더였더라도, 그 룬샷에 목이 메여 균형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성공한 룬샷이 프랜차이즈가 되고, 다시 새로운 룬샷이 나오는 선순환. 어찌보면 좋은일 아닌가? 싶을 수도 있지만,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순환은 정확하게 말하면 ‘위험한’ 선순환이다. 


위험한 선순환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폴라로이드. 즉석 카메라라고 알려진 그 폴라로이드다. 랜드가 처음 폴라로이드를 발명했을 때는 그저 허무맹랑한 룬샷이었다. 하지만 결국 찬사를 받는 성공한 룬샷이 되었고, 프랜차이즈로 성공했다. 랜드는 폴라로이드의 성공에 힘입어 새로운 폴라비전이라는 즉석 영화 상영기를 개발했다. 하지만 이 룬샷은 실패했다. 이미 이 당시에는 홈 비디오가 대중화되어 있었다. 홈 비디어보다 간편하지도 않고, 비용도 많이 들었던 폴라비전은 그렇게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현장의 병사와 벤치의 예술가 사이에 오가는 균형 있는 아이디어와 피드백을 통해 가장 유리한 룬샷을 고르는 게 아니라, 오직 신성한 리더의 뜻에 따라 아이디어가 정지될 때, 팀이나 기업은 함정에 빠진다. 리더는 자신의 보좌진을 승진시키고, 바다를 갈라 선택받은 룬샷을 위한 길을 낸다. 위험한 선순환의 주기는 점점더 빨라진다. 룬샷과 프랜차이즈는 서로를 더 크게, 더 빨리, 더 많이 키운다, 전지전능한 리더는 전략상의 이점을 바탕으로 움직이는게 아니라 룬샷에 대한 애정에 따라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바퀴가 헛도는 일이 일어난다. P 174


회사를 떠나는 직원이 줄을 잇는 것은 회사 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시어도어 베일은 ‘나머지를 희생시키면서 어느 한쪽을 무시하거나 편애한다면 반드시 전체의 균형이 깨질 것’이라고 했다.P 226

균형과 소통을 제대로 유지하려면 내부의 장벽을 극복하게 도와줄 손길이 필요하다. 어느 모세의 보좌진의 손길이 아니라, 정원사의 손길처럼 부드러운 손길이 필요하다. 아이디어가 이전되는 데 힘을 너무 받거나(추상적인 명령) 힘이 부족하면(아무 지원 없음), 유망한 아이디어와 기술도 실험실에서 썩게 도리 것이다. 그러면 조직은 그 기술을 상실하고, 시간과의 싸움에서 질 것이며, 그 기술을 발명한 사람의 충성심을 잃게된다. 핵심 인재는 회사에 오래 머물지 않을 것이다. P 268


정말 씁쓸한 사실이지만, 내가 몸 담고 있는 조직에 버니바 부시 같은 리더는 없다. 팀이든 부서든 본부든 리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리더십 관련 경영서를 그렇게 읽었음에도 깨우친게 없는건지, 아님 책을 헛으로 읽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난 이렇게 또 한번 좋은 리더가 어떤 리더인지를, 언제쯤 이런 리더를 만날 수 있는지를, 아님 이번 생에 만날 수 있기나 한지를 생각하며 이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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