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 인류를 위협한 전염병과 최고 권력자들의 질병에 대한 기록
로날트 D. 게르슈테 지음, 강희진 옮김 / 미래의창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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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한 시대를 휩쓴 역병이 있었다. 전 중세 유럽을 휩쓸어 인구를 반토막 낸 페스트가 그랬고, 1차 세계대전이 또다른 복병이었던 스페인독감이 그랬고, 아즈텍과 잉카문명을 박살낸 천연두가 그랬다. 그리고 21세기, 바로 지금 코로나19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다. 과거의 질병들은 백신, 치료제가 만들어졌다. 코로나19도 아마, 언젠가는 치료제가 나올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코로나19가 휩쓸고 지나간 이 후의 시간을 어떻게 마주해야하나?




아주 놀랍게도 이런 역병들이 창궐할 때마다, 역사의 흐름이 조금씩 요동쳤다. 어떤 때는 크게 꺾였고, 또 어떤 때는 조금씩 조금씩 휘어졌다. 역대 전염병 중 역사 교과서에 실린, 아주 유명한 병 ‘페스트(흑사병)’을 보자. 



쥐, 벼룩, 페스트균으로 이루어진 ‘3종 세트’는 화물을 실은 배와 동일한 속도로 로마, 마르세유, 스페인 해안, 유럽 문명의 중심지인 콘스탄티노플까지 단 며칠 만에 진출했다. 그 이후부터는 육지를 통해 확산된 덕분에 확산 속도가 조금은 느려졌다. p 043



역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1억 명에 달했고, 하루에 1만명씩 죽어나갔다는 기록이 있다. 그 이후에도 페스트는 유럽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7~8세기에도 유럽 내 어딘가에서는 종종 역병이 발병했고, 영국 역시 664년에서 666년 사이 페스트의 습격을 받았다. 이후 페스트는 한동안 잠잠했다. p 046



페스트는 중세유럽 때 처음 생겨난 질병이 아닌 이미 6세기에 나타난 질병이었다. 그렇다면 6세기에 발발했던 페스트는 오래전에 발생했던 페스트는, 14세기 중세 유럽을 휩쓸 때처럼 대규모로 확산되지 않고 오래안가서 잠잠해졌을까? 그 대표적인 이유는 전염병 확산 요건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염병이 확산되기에 최적화된 요건 2가지가 있으니, (1) 고도로 밀집된 도시화 (2) 교통의 발달이 있다. 14세기와 달리, 6세기는 그정도로 밀집화된 도시화라던가, 교통의 발달이 더뎠기 때문에 페스트가 점차 사라질 수 있었다.



하지만 14세기, 페스트가 다시 돌아왔다. 그것도 중국 대륙을 통해서(수많은 역병의 시작이 대륙이라는 건 정말 싸이언쓰..).



당시 기록된 보고서에 따르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철수하는 길에 타타르인들은 절망과 분노를 참지못하고 일종의 생물전을 치르기로 결심했다. 역병에 걸려 사망한 시신을 투석기에 매달아 카파 성벽 안쪽으로 던져넣은 것이다.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들이 으레 그렇듯 이 이야기 역시 ‘양념’이 많이 가미되었을 것이고, 성벽 안으로 던져진 시신만으로 전 유럽을 휩쓴 끔찍한 재앙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타타르군 진영에 서식하던 쥐들이 카파시로 들어왔을 수도 있고, 쥐들과 함께 박테리아에 감염된 쥐벼룩도 함께 유입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p 039



한 때, 기마민족인 몽고인들이 유럽땅을 짓밟았었는데, 바로 그때 페스트가 다시 유럽으로 들어왔다. 위생관념이라곤 없던 14세기 중세 유럽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불과 3~4년만에 유럽 전역에서 인구의 반 이상이 사망하였다. 왜 중세 유럽에 위생관념이 없다고 하는지는, 아래 내용만 보아도 알 수있다.



로마인들의 문화는 청결과 위생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욕구를 입증하는 사료이기도 하다. 대도시 로마가 성정함에 따라(전성기 때에는 인구가 120만명에 달했다) 각종 문제들이 대두되었다. 티베르강은 오물과 세균으로 뒤덮였고, 도시 외곽에서는 풍토병 말라리아가 만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제국에서는 위생이나 건강관리, 경험과 관찰을 통해 지식을 쌓은 전문가들의(중세 시절과는 달리, 종교적 도그마에 좌우되지 않는) 치료 행위들이 활발히 이뤄졌고, 그 수준은 당시 유럽 내 그 어떤 국가들보다 높았다. 몇몇 유럽 국가들은 19~20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고대 로마제국 정도의 위생과 의료 수준에 도달했다. p 036



뿐만 아니라,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각종 영화나 드라마만 봐도. 휴. 고대 로마제국의 반의 반도 못따라가던게 중세 유럽의 위생상태였다. 뭐, 이유야 어찌되었든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고 난 뒤, 유럽은 어떻게 되었을까? 보통이라면 경제가 붕괴되어, 유럽은 점차 쇠락의 길을 걸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반대의 상황이 나타났다. 



아이러니하게도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고 간 뒤, 유럽사람들에게 “메멘토모리”, 즉 죽음은 늘 곁에 있다는 사상이 보편화 되어, 이를 바탕으로한 예술작품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아픔을 예술로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이게 바로 흑사병 이후, 유럽에서 일어난 ‘르네상스’ 운동이다. 



두번째로는 유럽의 ‘산업혁명’이다. 뜬금없이 왠 산업혁명인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흑사병으로 인해 유럽의 인구가 반 이상이 줄어들면서 노동력이 급감했다. 노동력 자체가 희소해지면서, 그 가치가 올라갔고 그에 따라 신분이 해방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한 기술발전이 생겨났고, 그 결과가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산업혁명이다.



물론 이것들은 전부 긍정적인 측면일 뿐이다. 부정적은 측면도 분명히 있었도. 페스트가 ‘신의 분노’라고 하여, 신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마녀사냥이나 유대인학살도 많았다. 



이처럼 페스트는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는 세계사적으로 보았을 때, 중세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것 만은 분명하다. 이렇게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질병은 근/현대에도 있었다. 



콜레라는 유럽이 현대에 들어서면서 등장한 질병이다. 당시 유럽의 생활환경은 유례없는 속도로 급격히 개선되었다. 1815년 이후 유럽대륙은 18세기에 이미 근대화를 이룬 영국을 모델삼아 산업화를 급속도로 진전시켰다. p 149



현대식 생활환경이 시작된 19세기, 듣도보도 못한 병이 창궐했다. 그 이름하야 콜레라.



1817년, 인도에서 대규모 콜레라가 최초로 발발했으며, 그 전파 속도와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중략) 그러나 유럽인들에게 있어 인도나 중국은 자신들과 상관없는 먼 나라에 불과했다. 당시는 이동수단이 그만큼 느렸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느린 이동수단과 콜레라의 짧은 잠복기, 즉 감연된 시점으로부터 겉으로 증상이 들어나기까지의 시간은 짧으면 몇 시간, 길면 사흘 정도에 불과하다. (중략) 따라서 유럽은 콜레라 발생 초기에는 안전지대로 남아있었지만, 방어선은 단 몇 년만에 무너졌다. p 154~155



병원균을 들여온 이들은 대륙 곳곳의 전장을 누비던 군인들이었다. 군인들은 자신들의 짐 속에 병균을 품은 채 귀환했고, 짐이 아닌 뱃속에 병균을 품은 채 돌아온 이들은 그보다 훨씬 더 많았다. p 155



뉘른베르크는 배로는 도달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던 덕분에 콜레라의 공격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1852년 뭔헨과 뉘른베르크를 잇는 직행 열차가 개통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중략) 뮌헨에서 열차를 타면 7시간 뒤에는 뉘른베르크에 도착할 수 있다. 즉 뮌헨에서 감염된 사람이 열차를 타고 뉘른베르크에 도착했을 때에도 겉으로는 아마 멀쩡하게 보였을 것이고…. p 165



콜레라가 창궐한 19세기는 페스트가 발발했던 6세기, 14세기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때는 제국주의가 만연하여, 서로 식민지 설치를 위해 전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가던 시기였다. 전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한 교통도 과거에 비해 비약적인 발전을 한 뒤였다. 철도가 그 대표적인 예다.



식민지 설치를 위해 세계 여러나라로 쏘다니던 군인들이 수 많은 병균을 가슴속에 품어왔고, 이 병균들은 발달한 교통수단에 힘입어 전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갔다. 페스트가 유럽을 초토화 시켰다면, 콜레라는 유럽을 포함하여 아메리카, 아시아 전 세계를 초토화 시켰다.



인도에서 시작한 콜레라는 인근 아시아 도시에 퍼진건 물론이고, 인도를 밟았던 유럽의 여러 군인들이 품고온 병균은 러시아, 폴란드, 프로이센 등 곳곳으로 실어날랐다. 사망자의 단적인 예를 들자면, 독일에서만 50만명이 사망했다. 콜레라로 인한 사망자들 중 전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제일 지위가 높았던 사람은 미국 11대 대통령 제임스 녹스 포크 이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을 들자면 차이코프스키가 있다. 이처럼 콜레라는 지위고하 막론하고 전 세계적으로 수십,수만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리고 바로 이 콜레라 덕분에, 지금 우리에게는 아주 당연한 공중보건과 위생의 중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영국의 한 의사를 통해서 말이다.



그러던 중 영국에서 당대를 주름잡던 위대한 의사 하나가 콜레라의 전염 경로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공중보건과 위생 관념이 수면으로 떠오르면서 의학에 혁신적인 발견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그 혁신적 순간을 탄생시킨 의사는 존 스노우였다. p 168



영국의 의사 존 스노우는 유독 소호지구에 콜레라 환자가 급증하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발병자가 나온 집을 전부 찾아다니며 ‘질병지도’를 만든다. 지금으로 따지면 일종의 ‘역학조사’ 다. 이 지도를 통해 사망자중 대부분이 브로드가에서 펌프로 길어올린 물을 마셨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그 물이 콜레라의 원인이라는 것을 밝혀내었다. 애초에 인도에서 콜레라가 시작된 이유가 바로 더러운 갠지스강을 식수로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존 스노우의 발견은 그야말로 기적과 다름 없었다.



우리는 이 점을 콕 집고 넘어가야 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역학조사’와 ‘위생’이라는 개념이 바로 콜레라 덕분에 탄생했다는 것을.




팬데믹 현상이란 교통의 발전 및 세계화로 인해,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창궐한 현상을 말한다. 6세기, 16세기, 19세기 세계적으로 창궐한 페스트와 콜레라 역시 일종의 펜데믹 상태였다. 그때보다 더욱 전 세계적으로 밀접해진 21세기,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또 한번의 팬데믹을 맞이했다.



앞서 일어난 펜데믹의 결과로 르네상스 부흥과 산업혁명, 질병관리에 대한 기초개념이 생겨났다. 그렇다면 바로 지금,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 지나간 다음, 즉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화할까?



이미 그 변화는 시작되었다. 직장에서 근무하는 형태가 바뀌었다. 회의 형식도 바뀌었다. 장을 본다는 개념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했다. 누군가를 만나는 방식 자체가 바뀌었다. 그저 잠만 자는 공간이었던 집이, 내 ‘생활’공간이 되었다. 뿐만 아니다.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은, 평범한게 아니라 소중한 일상이라는 걸 깨달았다.




포스트코로나. 완성된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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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간편식 - 귀찮지만 집밥이 먹고 싶어서
이미경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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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신랑은 아침을 먹지 않고, 점심은 회사에서 먹는다. 고로 집에서 먹는 밥은 저녁식사와 주말동안인데, 이게 참. 매일 뭘 해먹어야할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 개인적으로는 김치찌개를 정말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매일 김치찌개만 끓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반찬은 또 어떤가. 솔직히 말해서 반찬을 만든다고 해도, 집에서 1일 1끼만 먹다보니 냉장고에 오래 저장할만한 반찬이 아니면 냉장고에서 썩히다, 휴지통 신세!


거기다 반년전까지만해도 주말마다 여행을 다녀서, 외식을 자주했던지라 집에서 해먹는 밥은 뭐 많아야 일주일에 8끼정도 되려나? 헌데 이 놈의 망할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못가서 주말 총 6끼까지 전부 집에서 해결해야한다. 하, 진짜 매번 뭘해먹어야 할지 눈앞이 깜깜할 정도. 근데 또 각 잡고 뭔갈 하자니, 재료사러 마트 갔다와야하고, 손질해야하고 아 귀찮아!!


제일 좋은 방법은 자주 사다놓은 기본 식재료로 매번 색다른 음식을 해먹는 방법밖에 없는데, 요리연구가도 아닌이상 재료만 보고 뭘 해먹을지 딱 떠오르지도 않으니까. 진짜 회사에서도 머리쓰느라 힘든데, 집에서조차 뭘 먹어야 하는지 머리를 써야하는 내 뇌가 불쌍하고 또 불쌍하던 찰나! 나를 구원해주는 책‘님’이 오셨으니! 간단한 재료를 사용해서, 세상 간단한 방법으로, 밖에서 사먹는 것만 같은 음식을 만드는 레시피 북, 「가정간편식」 되시겠다.


하지만! 레시피로 넘어가기 전에 먼저, 음식에 관한 기본적인 개념부터 먼저 알고 가는 건 기본 중의 기본!



레시피에서 제일 중요한건 계량인데, 이 책은 모두가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숫가락&종이컵 계량을 사용한다. 


간혹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아보면 어떤 사람은 밥숟가락을, 또 어떤사람은 계량전용 스푼을, 어떤사람은 비이커를, 계량도구가 아주 가지각색이라 힘들었다. 진짜 모처럼 레시피를 따라하려고 했는데, 레시피에서 말하는 계량도구가 없으면 요리하려는 의지도 훅훅 떨어지기도 하고. 다시금 느끼는 거지만 집에서 요리를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방법은, 단연코 손 쉽게 계량할 수 있는, 어느집이든 무조건 있을 법한 도구로 계량하는 레시피를 찾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가정간편식」같은 이 레시피북처럼.



이 레시피북에 기본이 되는 재료들은 대체로, 언제나 집에 있는 식자재들. 그러니까 항상 냉장/냉동고에 묵혀있는(..) 것들이다. 재료에 따라서는 오래 묵힌 것들도 많으니,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위해 냉장/냉동식품의 보존기간을 확인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가끔 냉장고 청소할 때, 먹지 못할 상태의 반찬이나 식자재가 나올 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이 책 덕분에 모처럼만에 냉장고 청소까지 완료.



맛있는 요리 탄생의 기본은 바로 양념! 어느 집이든 찬장을 열어보면, 못해도 간장, 소금, 설탕, 고춧가루는 있을거다. 왠만한 양념은 이 4가지 재료만으로 충분히 만들 수 있으니까! 뭐 여기다 요리를 조금 하는 사람이라면 설탕은 황설탕, 백설탕, 흑설탕 아니면 스테비아나 사카린 등 종류별로. 소금도 가는 소금, 굵은 소금. 간장도 국간장/양조간장에, 요리당도 올리고당이나 알룰로스 등등 종류별로!


그런의미에서 우리집엔 생각보다 기본양념이 종류별로 있으니, 난 나름대로 요리하는 사람 인증인가(나름대로 각종 볶음 요리 양념에 자신감 뿜뿜)?!




나름 만든 요리마다 완벽한 맛을 구현(?)해내다보니, 요리에 대한 자신감은 뿜뿜인데 참 이상하게도 재료 손질이나, 재료를 쉽게 써는 법은 하(ㅠㅠ).


이건 정말 아무리 봐도 요령을 익히지 못하면 답이 없다. 그런의미에서 내 칼질은 정말 겨우 손가락 안 써는 정도ㅋㅋㅋㅋㅋ. 그 외 요리하는 건 정말 자신만만인데!


칼질이나 재료손질은 역시...반복학습이 답인가? 하지만, 칼질 연습할 시간이 1도 없는 직장인의 삶이란. 나도 집에만 있으면 칼질 잘할 수 있는데, 하..




 귀찮음에도 불구하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간편가정식」 답게, 각 요리별로 레시피는 단 4컷이다. 그러니까 한 페이지당, 요리 한 개씩이라는 이야기.


정말 이렇게 간단한 레시피는 라면봉지 뒷면이나, 카레봉지 뒷면 말고는 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간단한 레시피로 음식이 탄생할 수 있는것인가?


.....싶어서, 요리 하나를 따라해보았다(그냥 배가 고팠음ㅋㅋㅋㅋㅋ). 때마침 재료들이 다 있었으므로! 그 이름하야, 여름 별미 “두부 콩국수”



책에는 필요한 재료로 흰콩 1컵, 물1컵+2컵, 면두부 2팩, 오이 약간, 소금 약간, 얼음 적당량을 이야기 했지만, 우리 집에 오이는 없으니 과감히 생략!

까르보나라를 해먹기 위한 면두부였는데, 뭐... 콩국수로 탄생해도 맛있을 것 같기도 하고 ♡



레시피에 따르면...

1. 흰콩을 물에 4시간 정도 불린뒤, 냄비에 콩을 넣고 비린내가 날아가도록 끓는 물에 3~4분 삶는다. 콩을 꼭 푹~~~ 삶는다.


2. 믹서에 콩과 물을 함께 넣고 아주 곱~~~~~~~~~~~게 갈아준다. 기호에 따라 콩물에 물을 조금더 추가하고 잠시 냉장보관!


3. 면두부는 물기를 뺀다.


4. 콩국과 면두부 합체! 맛있게 냠냠


그래서 4시간 동안 콩을 불려서, 끓는물에 푹 삶은 뒤, 믹서기를 이용하여 콩물 완성!

까르보나라를 만들어 먹으려 했던 면두부를 꺼내어, 물기 쪽 빼고(끓는 물에 살짝 데치고 ㅋㅋ) 콩물에 풍덩!

그리고 배치김치와 함께 맛있게 냠냠★ 



생각보다 콩국물이 많이 나와서, 남은 콩국물은 다음날에 은근슬쩍 콩비지찌개로 환생시켰는데. 오올,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 맛나맛나. 이 레시피북 덕분에 콩국수&비지찌개 1타 2피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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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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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최애 방송 프로그램 중 하나인 『알쓸신잡』 에서, 그 매력을 뽐내셨던 유현준 교수님. 이후 『양식의양식』에서도 또 색다른 매력을 뽐내셔서 단디 반했더랬다. 언제 한번 유현준 교수님 책을 읽어야지 하다가, 회사 북클릭으로 두 달 연속 유현준 교수님 책을 선택했다. 하나는 지금 포스팅하는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와, 나중에 포스팅할 「어디서 살 것인가」. 







이 책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알쓸신잡에서, 유현준 교수님이 여러번 이야기 했던 ‘도시’라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크게 보면 시대의 변화에 따른 도시의 변화상,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는 어떤 것인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도시의 모습, 뭐 이런 이야기랄까?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에 공통점은 바로 ‘사람’이다. 모든 도시는 그 곳에 사는 사람에 따라 변화되었고, 변화되고 있으며, 변화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도시 시흥, 여기도 참 많이 변했다. 내가 시흥 땅에서 산지도 벌써 15년이 훌쩍 넘었는데, 이 15년간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처음 시흥에 왔을 땐, 시흥 도심부로 들어오는 길에 논/밭이 가득했다. 그야말로 초록초록한 벌판이었다. 도심부로 들어오면 언덕배기에는 판자촌이 있었다. 거기다 건물들이 전부 낮았기에, 고개를 조금만 들어도 바로 파란하늘이 보였다. 하늘이 맞닿는, 그야말로 하늘과 가까운 동네였다.







하지만 15년의 시간동안 시흥은 너무나 많이 변했다.







우리의 옛 도시 속에서 다른집에 갈 때는 골목을 따라서 집을 찾아간다. 하지만 아파트에서는 복도나 엘리베이터를 통해서 길을 찾는다. 아파트 단지에는 골목은 없고 복도만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골목과 복도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 근본적인 차이는 하늘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우리의 대형 아파트 단지는 우리에게서 우리 머리 위의 하늘을 빼앗아갔다. p 055







도시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스카이라인 대신 지평선이 있었다. 그때 우리는 땅과 하늘이 만나는 자연의 선을 보며 살았다. 과거 인간은 자연과 자연이 만든 지평선을 보면서 아침을 맞이하였으나, 현대 시대에는 아침에 눈을 떠서 주변을 둘러보면 인간이 만든 건축물들과 자연인 하늘이 만나는 것을 본다. 도시에서는 높은 건물과 낮은 건물이 어우러져서 복잡한 선을 만들고 있다. 신은 지평선을 만들고 인간은 스카이라인을 만든 것이다. p 061







내가 시흥에 처음 발을 들였을때, 신도시라고는 정왕동 인근, 그러니까 시화신도시 하나였다. 시화신도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옛 정취를 가득 담고 있는 동네들 뿐이었다(가끔은 너무 시골같은 느낌이 들때도 있었지만). 하지만 지금은 배곧신도시, 은계신도시, 심지어 시흥 곳곳에 불어오는 재개발 바람이 불어오며 시흥은 변했다. 과거에는 외곽에서 시흥으로 진입하면 항상 푸른 논과 밭이 나를 반겼는데, 이제는 하늘 높이 솟은 아파트 단지가 가득가득하다. 도심으로 들어와도 역시나 아파트단지가 즐비하다. 







이런 신도시 바람, 주거생활에 변화는 오로지 사람들의 선택에 따라 변한다. 조금더 편리한 생활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주택이나 빌라보다는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주택단지는 도태되거나, 평가 절하되고, 결국엔 허물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 이 모든게 사람들의 선택에 따라 변화된 것이다. 







한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그 당시의 건축 기술력, 문화적 가치, 경제적 배경 등 여러가지 요소들이 합쳐져서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예술이다. 




500년 전 서울의 스카이라인은 도성 주변으로 둘러싸고 있는 북한산, 관악산, 남산 같은 산에 의해서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을 가지고 이썼다. 하지만 지금은 무분별하게 건축되어지는 고층 건물에 의해서 이러한 산 능선의 선들이 계속 잘려 나가고 있다. p 065







그렇게 수많은 동네가 ‘낙후’된 지역이라는 낙인이 찍혔고, 신도시(아파트) 재개발에 들어갔다. 내가 살던 집도 그 중 하나기도 했고. 그 덕분에 예전엔 고개만 살짝 들면 바로 보였던 하늘이,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거라곤 아파트, 그리고 아파트, 또 아파트. 그리 쉽게 보였던 하늘이, 이제는 고개를 뒤로 확 꺽어야만 겨우 보인다. 눈 앞이 탁 트였던 동네가, 이제는 성벽안에 갇힌 것만 같은 폐쇄적인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거기다 시야의 답답함도 추가되었고. 이제 우리 동네는 그저 삭막하고 답답한 아파트 군락만 있을 뿐, 항상 바라보던 하늘이 사라졌다. 







하지만 누굴 탓하리, 이런 말을 하는 나 조차도 곧 신축아파트로 이사갈 계획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늘을 보는 삶을 선택한다면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해야하고, 하늘을 포기한다면 편리하고 쾌적한 삶을 살 수 있는 것. 나도 사람인지라 결국 하늘을 포기하고, 쾌적한 삶을 위해 아파트를 선택하고야 말았다.















그럼에도 난 우리의 주거문화가 ‘아파트’라는 하나의 형태로 고정되어 가는 모습이 슬프다. 동네 골목길에서 만나던 그 정취를 이제 더이상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어렸을 적 동네에서 친구들끼리 뛰어놀고,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던 그 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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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앙투아네트, 개인적으로 서양사 에서 안타깝다고 생각하는 여성 중 한명이다. 오스트리아 궁정에서 사랑받던 막내 공주가 프랑스에 시집와서, 본인은 나름대로 잘 한다고 했는데, 심지어 남편 루이16세와 결혼생활도 나쁘지 않았는데, 루이 16세가 애첩을 두지 않는 다는 이유로(!!!) 왕실에서 온 갖 비난의 화살을 맞아야 했다. 정말 이해가 안가지만, 프랑스 왕들은 대대로 유부녀 애첩을 두는게 관행이어서 (쓰레기 관행!!) 그런 쓰레기 관행을 좋아하는 프랑스 귀족들은 도덕적인 루이 16세가 눈 꼴 시렸나보다. 근데 왕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으니, 아주 자연스레 다른 나라에서 시집온 왕비한테 비난의 화살이 간거다. 프랑스 왕비로써 왕실에서 그렇게 비난을 받은 것도 억울한데,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는 위와 같이 입에 담기 조차 더러운 욕을 먹고 단두대에서 처형됬다. 혁명군 입장에서는 프랑스 왕실을 모욕할 수록 좋다지만, 이건 뭐 저질도 이런 저질이 없다. 문제는 이런 일이 중세, 근세가 아닌, 현대에서도 계속 된다는 거다.

​우리는 알고 있다. 저런 더러운 정치 마케팅에 의해 희생된 한 사람을. 그 누구보다 인간적이었고, 그 누구보다 우리 같은 서민의 편에 섰으며, 그 누구보다 국민을 사랑했던 대통령을. 지금은 저 하늘 어딘가에서 우리를 내려다 볼 그 분을. 정말 가짜뉴스를 뿌리며 정치 마케팅을 하는 쓰레기 집단은 사라져야돼!!!



그나저나 오랜만에 읽었는데 역시나 재밌으니, 스캔들 세계사도 정주행해야겠다 ㅋㅋㅋㅋ

역사란 단순히 이 나라와 동맹을 맺었다든지, 저 나라와 전쟁을 벌였다 같은 정치 외교적인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개개인의 삶 하나하나를 모두 포함하는 웅장하고 다채로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른바 ‘어른’의 영역이라 하는 성(性)이나 폭력도 모두 우리 사는 이야기의 일부인데 싶어 아쉬운 마음에 다양한 소재를 모아 『은밀한 세계사』를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아주 흥미롭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입니다. 하지만 출처나 근거가 불분명한 야사가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문헌과 사진, 그림 등이 존재하는 당당한 정사(正史) 입니다. - 머릿말 中

많은 각색을 거친 후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되는 「해, 달, 그리고 탈리아」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맨 마지막에 쓰인 속담도 원작에 포함되어 있으니, 남자가 잠자고 있는 여성을 성폭행해서 피해자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자식을 잠든 채로 낳고 강간범이 심지어 유부남이어서 가해자의 부인이 매우 분노하였는데 그 부인은 남편에 의해 산 채로 불에 태워지고 피해자는 강간범이랑 결혼하게 된 것이 행운이라는 이야기네요!_P 034 - P34

그런데 이 중간에 가리는 천이 위치가 위치인지라 남성들이 입다보면 약간 튀어나올 수 밖에 없었는데 이게 참 민망하게도 누구는 약간 튀어나오고 누구는 많이 튀어나오다보니 남자들 사이에서 자존심 대결이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코드피스 속의 소중한 부분을 더욱 보호하기 위해서 얇은 패딩을 넣은 정도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 안에 들어가는 것들이 많아지게 됩니다. 솜에서 시작해서 쇠로 만든 장식에 이르기까지 코드피스의 발전은 끊이 없었습니다. (중략) 게다가 코드피스는 심지어 ‘자신감 넘치는 젊은 청년’의 상징이었습니다._P 044 - P44

마리 앙투아네트가 누군가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증거는 없다거나, 아이들에게 늘 감사하고 검소할 것을 가르쳤다거나, 마리 앙투아네트의 측근들과 시종들이 그녀의 겸손함과 친절함을 늘 칭찬했다거나, 백성들의 탄원에 귀를 기울이고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다친 사람을 위해 의사를 불러주고 그의 가족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는 등의 선행은 알려지지도 않았고 믿지도 않았습니다._P 088 - P88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하하는 중상비방문은 수도 없이 인쇄되었고 파리 전역으로, 그리고 프랑스 전역으로 날개 돋친 듯 퍼져나갔습니다. 이전 선전물들 속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심지어 인간이 아니라 반인반수로 까지 묘사되었으며, 특히 마리 앙투아네트를 성적으로 모욕하고 성적인 소문을 퍼트리는 것은 유행 수준으로 까지 널리 퍼져서 다양한 언론이라는 것이 아죽 존재하지 않았던 당시 사람들에게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미지는 불륜을 저지르고, 수간과 동성애를 즐기고, 시동생들과 잠자리를 갖는 색정광으로 자리잡았습니다._P 089 - P89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과연 이런 정치적 마케팅에서 자유로울까요? 다시 200년 뒤에 오늘날을 되돌아본다면 지금 이 지구상 어딘다게는 또 다른 마리 앙투아네트들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_P 099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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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피로 > 절대로 읽으면 안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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