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상류계급의 문화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아라이 메구미 지음, 김정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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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주 놀라운 책을 읽었다. 뭔가 21세기가 아닌, 새로운 세상을 보는 느낌의 책이었달까? 어떻게 클릭 한번이면 많은 것이 변하는 21세기에! 불과 백년 전 조선에서나 볼 법한 사회문화가!! 신사의 나라 영국이라는 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인가?!



나에게 이런 놀라움을 선사한 책은 영국의 사회문화상을 담은 『영국 상류계급의 문화』라는 책이다. 세계사책도 꽤 좋아하다보니, 그저 영국사의 일종이라 생각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이게 왠걸. 입이 떡떡 벌어지면서 “이게 진짜라고?”, “21세기 맞아?”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와, 뭐지 정말?! 나에게 영국이란 ‘유나잇 킹덤’, ‘입헌군주제’, ‘닥터후’, ‘해리포터’, ‘일본이 사랑하는 나라’ , 딱 5가지의 키워드 밖에 떠오르는게 없어서 그런가. 허허허.



입헌군주제 국가니까 당연히 왕이 있다는 것 까지는 이해했는데, 하하.. 귀족사회라니. 상류계급이라니. 심지어 지금도 이어지는 영국의 사회문화라니. 내가 지금 무슨 책을 본 것인가. 하하.허허..하하하하. 근데 생각해보니, 왕이 되지 못한 왕족들은 곧 귀족이네? 그러고보니 지금 영국 왕족들 보면 프린스, 프린세스 말고도 백작이나 공작 작위가 더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하 근데 정말 ㅋㅋㅋㅋㅋㅋ 선진국이라는 영국이 아직도 귀족이니 뭐니, 그들만의 귀족문화를 지금까지도 이어가고 있다는게 넘 충격적이다. 혹시나해서 인터넷에 검색을 좀 해봤더니, 더 충격적 사실을 발견. 영국 의회를 구성하는 구성체가 ‘귀족원(상원)’과 ‘서민원(하원)’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서민원보다 귀족원의 인원수가 훨씬 많다. 난 영국의회 의원들이 그냥 미국 상원, 하원처럼 그런 의회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건 뭐여. 내가 살고 있는 21세기와 영국의 21세기가 같은 시기가 맞는건가. 허허허. 물론 귀족원의 귀족들 중 대부분의 일대 귀족이고, 약 10%가 안되는 인원만 세습귀족이라고는 하는데, 어찌되었든 다 귀족이자나! 내참. 하 ㅋㅋㅋ 



이 책에 따르면..



영국의 귀족들은 어퍼 클래스와 어퍼-미들 클래스로 나뉜다. 어퍼는 ‘작위’를 수여 받는 사람과 그 가족. 여기서 함정이 있다면, 어퍼클래스 안에는 어퍼와 어퍼-미들이 혼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게 무슨 말이냐! 영국의 작위&재산은 대대로 장남세습제라고 한다. 즉 부친의 작위와 재산을 세습받게 될 장남은 계속해서 어퍼클래스지만, 세습받지 못하는 차남 이하는 어퍼클래스에서 방출! 그럼 차남 이하는 어떻게 먹고사느냐? 월급쟁이로 먹고산다. 단, 흔한 월급쟁이가 아니라, 고소득층인 전문직에 종사하는 월급쟁이로. 한마디로 차남 이하는 어퍼클래스 환경에서 자라지만, 독립이후에는 혼자 벌어먹어야 하는 미들 클래스로 넘어가야데, 그렇다고 미들클래스 취급하자니, 진짜 미들 클래스와는 급(?)이 아주 다르기에 어퍼-미들클래스라고 한단다. 무슨.....조선시대야?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건지. 하. 아니 근데, 영국인들은 이런 자국의 귀족 문화를 오히려 자랑스러워한다는데 진짜인건가. 와 혼란하다 혼란해. 



그러다 문득... 인터넷에서 보았던 귀족출신 영국 배우들이 떠올랐다. 이 책을 읽고나니, 확실히 알게 된 건 분명하게 어퍼클래스라면 그들이 배우를 할 리가 없다는 것. 헌데 지금 배우를 하고 있다는 건 이들은 어퍼가 아니라 정확하게는 어퍼-미들클래스라는 이야기! 이렇게 어퍼-미들 클래스 출신의 영국배우들이 누가 있느냐 하면....



해리포터의 벨라트릭스, 스위니 토드의 러빗부인을 연기했던 헬레나 본햄 카터는 어퍼-미들 배우 중에서도 제일 급이 높은 사람이라한다(어퍼-미들 중에서도 급을 따집니다요, 허허허). 대표적인 정치진 집안에다가, 증조부가 영국수상(백작)! 그녀의 친척이 지금도 귀족에(아마도 증조부 작위 상속?), 헬레나 가문은 로스차일드 가문과 연관되어있다고;;


토르에서 로키를 연기했던 톰 히들스턴도 어퍼-미들 출신인데, 외증조부가 작위를 수여받았다고 한다. 


셜록과 닥터 스트레인지를 연기했던 베네딕트 텀버베치도 어퍼-미들 출신이란다. 리처드 3세 후손이라는데, 그건 모르겠고 그보다 조금 더 가까운 조상이 대규모 노예상이었다고 한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킹스맨의 해리 하트를 연기한 콜린퍼스는 부모가 전문직 교수인, 어퍼-미들 출신이다.


해리포터의 헤르미온느를 연기한 엠마왓슨도 부모가 전문직이며, 어퍼-미들 출신이라고 한다.



위에 언급한 어퍼-미들 출신의 영국배우들은...어퍼-미들 중에서도 급(?)에 따라 나열한 것이다. 즉 같은 어퍼-미들이어도 헬레나 본햄 카터가 제일 상류계급. 하 ㅋㅋㅋ정말 21세기에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게 너무 어이없긴 한데, 이 책에서 말하는 것 처럼 영국 귀족은 지금도 있고, 계속해서 세습되고 있기 때문에, 하 ..ㅋㅋㅋ 아 근데 자꾸 얼척이 없는건 왜인가 ^_T. 미춰버리겠네. 진짜 21세기 맞는거지 지금..



뭐,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게 현대에 들어서면서 작위에 서임된 신진 귀족들이나 그 후손들은 저택이나 땅 등 상속재산과는 큰 인연이 없다고 한다. 거기다 직업을 가지고 있는 귀족들도 있다는데, 정확한지는 모르겠고. 1965년 이후로는 비왕족에게 수여되는 세습 작위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서, 귀족의 대가 끊기는 경우도 생겨나는 중이란다. 이말은 즉 귀족이 점점 줄어든다는 이야기. 그치그치, 21세기에 세습귀족이 왠말이야.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아, 또 하나. 내가 알고 있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원래 개념은 현대에 통용되는 개념이 아니었다는 사실. 원래 영국 귀족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그저 자기 영토와 저택을 지키고, 자기 영토에 사는 주민들의 삶을 지키고, 자기의 재산을 후대에 잘 물려주는 것이었다니. 거기다 자기의 토지를 밟고 다닐 수 있게 허가해주는 ‘통행권’을 주는 것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였다니. 아, 정말.... 하, 21세기. 그래 내가 살고 있는 시대는 21세기다. 하..



아.. 그러고보니 21세기 대한민국에도 계급이 세습되기는 하는구나? 대기업 설립자 가문이라던가, 뭐 그런거. 근데 유독 이런 세습들은 부정부패, 비리가 넘쳐나는데. 어차피 대기업 세습이나 영국 귀족 세습이나 계층간 이동이 불가능한건 매한가진데, 이쯤되면 차라리 자기 영토에 사는 주민들의 삶을 지켜주는 영국 귀족 세습이 더 건전한건가?


하 ㅋㅋㅋㅋ 이 책을 읽고 꽤 머리가 딩-하긴 했지만, 매번 사건, 사고, 인물이 위주인 세계사 책만 보다가 이런 사회문화를 주제로한 세계사 책을 보니 진짜 엄청 새롭긴 하다. 새로운 눈이 뜨인 기분;



아래는 영국 귀족 문화중에서 제일 관심이 높은 귀족의 칭호와, 어퍼-미들 클래스의 차이, 상속제도에 대해 일부 발췌하였다.



▶ 귀족의 칭호


헨리 왕자의 정식 명칭은 서식스 공작, 덤버턴 백작, 킬킬남작 전하였고, 메건은 서식스 공작부인 비 전하였다. 헨리 왕자의 세계의 작위는 그의 결혼식 날 아침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수여한 것이다. 그중에서 서식스 공작은 이른바 ‘정식(substantive)’ 작위이고, 나머지 두 개는 ‘부차적(subsidiary)’인 작위이다. 여러개의 작위를 가지고 있는 경우 가장 위의 작위가 ‘정식’, 나머지가 ‘부차적’ 작위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영국의 작위를 확인해보면 위로부터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 순으로, 이들이 세습귀족(hereditary peer)이다. 여기에 자녀들에게 작위가 상속되지 않고 1대만 유지되는 귀족(life peer), 그리고 세습제이지만 ‘귀족’이라고 간주하지 않고 귀족원 멤버도 될 수 없는 준남작(baronet)이 있다. p 014~015



다이애나 사후에 찰스 왕세자와 결혼한 카밀라의 정식 칭호는 프린세스 오브 웨일스 비 전하이다. 그러나 카밀라는 이 칭호를 일부러 사용하지 않고 콘월 공작부인 전하로 알려져 있다. 콘월 공작이란 찰스 왕세자의 부차적 작위로, 카밀라는 사고로 죽은 다이애나에 대한 경의의 뜻으로(그리고 아마도 여론을 고려해서) 프린세스 오브 웨일스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p 016 



이와 같은 칭호는 그 사람이 공작, 후작, 백작의 장남인지, 차남 이하의 아들인지, 그 아래의 작위를 가진 집안의 아들인지, 귀족의 딸인지, 아내인지, 이혼한 아내인지를 드러내는 구조로 되어있다. ‘정식’작위와 ‘예의상의’ 작위의 차이점도 사실은 영어 표기로 알 수 있다. ‘정식’ 작위는 The Duke of Devonshire라고 ‘The’가 어두에 붙는 반면, ‘예의상의’ 작위는 Marquess of Hartington이라는 식으로 ‘The’가 붙지 않는다. p 019



‘나이트’라는 칭호는 왕실로부터 훈장과 함께 수여된다. 여기에서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고, 편지의 수취인 이름 등으로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하나는 왕실이 설립한 ‘기사단(Orders of Chivalry)’에 속하는 것, 또 하나는 기사단 입단을 필요로 하지 않는 ‘나이트 배철러(Knight Bachelor)’라고 불리는 것이다. 어느 경우든 나이트에게는 ‘서’라는 칭후가 부여된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태어난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는 2018년에 나이트 칭호를 수여받아 서 가즈오 이시구로가 되었다. 나이트는 그 인물이 국가, 왕, 또는 교회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고 인정될 때 수여되는 칭호로 세습제가 아니다. p 025



*서식스 공작: 1801년에 조지 3세의 여섯 번째 아들인 어거스터스 프레데릭 왕자를 위해 창설


*덤버턴 백작: 스코틀랜드 작위로 1675년에 창설, 1749년에 상속자가 없어져 사라짐


*킬킬 남작: 북아일랜드의 작은 항구에서 유래된 작위. 헨리 왕자에게 북아일랜드의 작위를 수여하기 위해 창설



*The Duke of Devonshire ㅇㅇ: ㅇㅇ공작


*Marquess of ㅇㅇ: 공작의 장남 ㅇㅇ


*The Marquess of ㅇㅇ: ㅇㅇ후작


*Viscount ㅇㅇ: 후작의 장남 ㅇㅇ


*The Lord ㅂㅂㅇㅇ:ㅇㅇ공작(또는 후작)의 차남이하 ㅂㅂ




▶ ‘영거 선’과 어퍼 미들 클래스


‘영거 선(커뎃)’이란 차남 이하의 아들들이라는 의미로, 이 경우에는 특별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미트퍼드의 소설 『추운나라에서의 연애(1949)』에서는 몬트도어 백작 부인이라는 인물이 딸의 결혼 상대 후보가 ‘장남’이라는 것에 만족한다. (…)‘영거 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지만 영거 선이야”라는 문맥에서는 단순히 차남이나 셋째아들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귀족, 또는 작위는 없어도 ‘한사상속제도’가 적용되는 지주의 ‘차남 이하의 아들’, 즉 작위도 재산도 상속받지 못하는 못하는 불리한 입장에 있는 아들을 가리킨다. p 037



여기에서 말하는 ‘직업’이란 어퍼클래스의 ‘영거 선’들이 주로 종사했던 ‘전문적인 직업’이라고 불리는 일, 즉 육군과 해군의 사관, 외교관, 성직자, 그리고 법률가다. 그리고 금융과 무역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러한 직업들은 모두 ‘특수한 능력과 연줄을 필요로 하는 일’이지만 어떤 형태로든 수당과 월급을 받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피트퍼드는 「영국의 귀족」에서 “귀족이 살아가는 목적은 돈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고 언급했는데, 이러한 영거 선들은 필연적으로 그 아래 계급, 즉 누군가에게 보수를 받기 위해서 일하는 이른바 ‘미들 클래스’로 진입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가족 안에서도 귀족과 대지주인 ‘어퍼 클래스’와 보수를 얻어 생활하는 ‘미들 클래스’가 혼재하게 되는 것이다. p 039



어퍼 클래스의 ‘영거 선’이 직업을 가짐으로써 그 사회적 지위가 낮아지는 반면에 이러한 ‘전문적인 직업’에 종사함으로써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소규모의 상인과 작은 농장을 가진 사람들의 아들들, 이른바 ‘미들링 소트’라고 불린 종래의 미들클래스다. (…) 나중에 ‘어퍼 미들 클래스’라고 불리게 되는 이 계급은 이처럼 ‘위에서 아래’와 ‘아래에서 위’로 이동한 사람들이 혼재하는 사회적인 계층으로, 그렇기 때문에 그 특징과 계급의식도 좀 더 복잡해지는 것이다. p 040



▶ 컨트리 하우스와 상속


귀족의 친척이라도 ‘미들 클래스’인 경우는 많았다. 그 이유중 하나는 제2장에서 서술한 것 처럼, 장남이 아버지의 칭호와 저택, 토지를 상속받는 장자상속제도로 말미암아 차남 등은 필연적으로 어떤 직업에 종사해야만 했고, 그 결과 ‘미들 클래스’로 진입해 ‘미들 클래스’의 배우자를 얻었기 때문이다. 영어에는 ‘The Heir and the Spare(상속자와 그 예비)’라는 표현이 있다. 미국 부호의 딸로 제9대 말버러 공작의 부인이 된 콘수엘로 밴더빌트가 두 번째 아들을 출산했을 때 사용한 표현이라고 한다. 귀족과 대지주에게는 우선 장래 상속자가 될 아들이 태어나야 하는데,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 ‘예비’의 아들, 즉 ‘영거 선’도 있는 편이 좋다는 뜻이다.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작위와 저택을 상속받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형이 몸이 약하거나 할 경우에는 자신이 상속자가 될 가능성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국의 추리소설에서 유산 상속을 둘러싼 형제들 간의 갈등이 자주 묘사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장남과 차남 이하 형제들의 상속 규모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p 076



귀족의 상속제도에도 예외는 있다. (…) 영국에서 여성 최초로 총리가 된 마거릿 대처가 1992년에 수여받은 칭호가 여남작이다. 단 그녀의 경우는 ‘일대(一代)귀족’으로, 자녀들에게는 작위가 계승되지 않는다. ‘일대 귀족’제도는 1958년에 제정된 ‘일대 귀족 법안’으로 정해진 것으로, 그것을 제정한 의도는 의회의 귀족원을 근대화해서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제도에 의해 다양한 계급의 사람들과 여성들이 귀족원의 멤버가 될 수 있었다. 일대 귀족은 통상 ‘남작’이라는 작위를 받는다. 예를 들어 인기 작가이자 정치가이고 위증죄로 투옥되는 등 언제나 화제를 몰고 다니는 제프리 아처도 일대 귀족이자 남작이다. p 080



이와 같은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 영국에서는 귀족과 지주의 저택과 재산을 장남이 전부 상속받는 제도가 일반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여성 교육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장남에게 무슨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해 차남 이하의 교육도 소홀히 할 수는 없었지만, 딸의 경우에는 상속권이 전혀 없기 때문에 좋은 결혼을 하기 위한 예의범절과 교양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앞에서 언급한 제9대 말버러 공작의 부인인 콘수엘로는 1953년에 출판한 『광채와 금』이라는 자서전에서 소녀 시절에 동갑내기인 영국 귀족의 딸과 친해질 기회가 있었는데 그녀가 너무나 교육을 받지 못한 것에 깜짝 놀랐다고 기술하고 있다. p 084



레이첼 워드는 자기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어떤 것을 바꾸려고 해도 너무 늦었을지 모르지만 새로운 세대는 다르다고 말한다. 21세기의 젊은 여성들은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희망하는 직업을 가지며 남성과 같은 대우를 원하는 동시에 그러한 대우를 받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장자상속제도의 모순점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일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이야말로 마치 몇십 년 전에 있었던 여성 참정권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항후 영국 귀족과 지주를 유럽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온 ‘전통’과 ‘다음 세대에 무사히 상속한다’는 오랜 세월동안 이어져온 제도에도 변화가 생길지도 모른다. p 087



어퍼 클래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소유하고 있던 저택과 토지를 관리하는 것,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이웃 주민들의 삶을 지키는 것, 그리고 저택과 토지를 온전히 다음 대에 물려주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을 ‘소유자’가 아니라 ‘관리자’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주민들이 좀 더 가까운 길로 다닐 수 있도록 자신의 토지에 들어오는 것을 허가하는 ‘통행권’을 발급하고, 토지와 저택을 1년에 몇 번씩 공개하는 것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의무다. 19세기 후반의 소설 속에는 갑자기 큰 돈을 벌어서 토지를 얻은 ‘벼락 부자 지주’들이 이러한 의무를 다하지 않아 마을 사람들의 불만을 산다는 테마가 자주 보인다. p 090



컨트리 하우스는 그 규모나, 사람들이 감상하기에 적합한 예술적, 역사적 가치가 있는 지의 여부와는 상관 없이, 이러첨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20세기가 되자 방대한 유지비로 허덕이는 귀족과 지주들이 자신과 가족들이 살고 있는 저택의 일부와 정원을 공개해서 입장료를 받아 수입의 일환으로 삼게 된 것도 이 ‘컨트리 하우스 방문’이라는 관습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선대로부터 커다란 저택과 토지를 물려받은 후계자들에게는 그것을 어떻게 유지해서 다음 대에 물려줄 것인가 하는 것이 큰 과제였다. p 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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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읽는 세계사 교양 수업 365
김윤정 옮김, 사토 마사루 감수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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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년간 출간되는 역사책들을 보면, 대게 숫자로 보는(?) 역사책이 많아졌다. 정말 많은 역사책들이 한국사, 세계사 망라하고 역사를 숫자로 보고 있다. 우리집 책장에도 숫자로 보는 역사책이 한국사, 세계사를 망라하고 열댓권은 있다. 이런 책들은 공통점은 대체적으로 대중서, 교양서를 표방하다보니 역사를 어려워하는 청소년, 어른이들이 읽기에 딱 좋다는 점이다. 특히 책 제목에 붙는 숫자가 ‘365’일 경우, 하루에 한 페이지 또는 한 주제씩 끊어 읽어도 전혀 문제 없는 책들이다. 책에 오래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딱 좋은 책! 



이번 포스팅의 주인공인 「인물로 읽는 세계사 교양 수업 365」도 그런 류의 역사책이다. 이 책은 세계사에서 중요한 365명의 인물들을 선정하여, 그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한 인물의 삶이라니, 한 사람당 내용이 긴거 아니야?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걱정은 NO! 대체적으로 1페이지고, 길어야 2페이지에서 끝난다. 거기다 해당 인물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매 페이지마다 주석에 ‘좀 더 깊이 알고 싶은 독자를 위한 추천도서’가 선정되어 있다.



이 책은 동/서양의 인물을 시대별로 나눴는데, 시대 속에서도 ‘정치, 군사, 경제/경영, 철학/사상, 종교, 과학, 문학/연극, 예술/건축, 사진/영상, 그외’의 주제로 인물들을 나누어 설명한다. 시대별로 따지면 고대부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현대의 인물까지 총 망라되어있다. 특히 고대 편을 보자면 우리가 잘 아는 인물들 중에선 ‘정치: 함무라비왕, 람세스2세, 알렉산더대왕’,‘과학: 피타고라스(^^..)’ 등이 있고, 반대로 세계사에 크게 관심이 없을 경우에는 익숙하지 않은 ‘군사:스키피오, 플리니우스’, ‘문학/연극: 베르길리우스’ 등 어려운 이름의 고대 인물들도 있다. 시대를 훅 건너 뛰어서 서양의 현대편으로 오게 되면 ‘음악: 루이 암스트롱, 존 레넌’, ‘미술: 앤디 워홀’, ‘사진,영상: 월트 디즈니, 마릴린 먼로’ 등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세계사 속 중요한 인물들을 거론하는 책에서 만약 오롯이 모르는 인물들만 가득했다면 선뜻 읽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모르는 인물들도 있는 반면, 우리가 잘 아는(또는 교과서에서 나온)인물들도 많이 포진되어 있어서 책을 읽기에 어려움이 없다.




다만 여기서 함정이 있다면...세계사를 표방한 이 책에 실린 인물들중 동서양의 비율을 따지자면 ¾ 이상이 서양인이고, 80명이 채 안되는 나머지가 동양인이라는 점이다. 순간적으로 대체 이 비율 무엇인가 싶어서, 지은이가 서양인인가 하고 다시 표지를 보았는데 놀랍게도 지은이는 일본인! 음, 그렇다면 인정. 일본사나 일본문화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눈치챘겠지만 이상하게 일본은 유럽에 대한 환상이 강하다(일본인들의 파리증후군도 대표 사례중 하나랄까). 특히나 근대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은 서양따라하기(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론’ 등)를 목표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지금은 그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일본은 지금까지도 유럽에 대한 환상이 높은 편이다. 뭐 이건, 이게 내 편견이라고 한다면 어쩔수 없겠지만, 일본에서 생겨난 서브컬쳐들을 보면, 오랜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유럽에 대한 환상이 벗겨지지 않은 것 같다. 뭐, 거기다 난 지금도 심심하면 NHK 채널을 즐겨보는 사람이라 그런가, 서브컬쳐가 아니더라도 전체적으로 유럽에 대한 환상이 곳곳에서 보인다. 뭐, 어차피 우리에게 ‘세계사’라고 하면 우리를 제외한 아시아 역사보다는, 아무래도 서양의 역사라는 생각이 더 강하니까 동/서양 인물들에 비율에 대해선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다.



대신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책에 실린 동양인 중 일본인 비율이 꽤 높다는 점이랄까?아무래도 저자가 일본인이니 어쩔 수 없다고는 하더라도, 일본 인물들에게 너무 치우쳐있는 느낌이 들었다. 예컨데 문학/연극편에 이백, 두보, 왕희지와 함께 무라사키 시키부가 나란히 실려있다. 물론 겐지모노가타리가 수준 높은 문학작품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음. 군사편에는 단 두 사람이 있는데 항우, 도고 헤이하치로다. 도고 헤이하치로가 일본에서는 위대한 해군 제독이긴 한데, 도고가 들어있을 정도면 이순신도 저 자리에 있어야하는게 맞지 않나 싶었다. 철학/사상편에는 공자, 노자, 맹자, 사마천, 주자, 사마천과 함께 니토베 이나조가 나란히 실려있다. 약간 음. 이들이 모두 일본에서는 유명한 인물들인건 맞긴한데, 음. 인물 선정에 따른 저자의 사심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것만 제외하면 이 책에 실린 인물에 대한 내용은 꽤나 객관적으로 서술한 느낌이기에!



동양의 인물들 중 정치면에는 고대부터 근세까지 내노라하던 인물들이 꽤 많이 있었다. 대륙 출신으로는 진시황제, 한무제, 당태종, 측천무후, 양귀비, 쿠빌라이칸, 정화 등등등. 중국사 뿐만아니라 세계사 측면에서도 유명한 인물들이 줄줄이다. 한반도 출신은 세종과 김일성, 박정희 딱 세명이다. 뭐, 우리에게는 우리의 위인들이 익숙하기도 하고 많기도 엄청 많지만, 세계사 적으로 영향을 미친 사람들을 꼽으라고 하면 그리 많지는 않으니, 이 부분은 어쩔수 없긴 하지만 그래도 좀.. 위에서도 말했듯 이 책에 기록된 일본 인물들을 면면을 보자면, 조금 아쉽긴하다. 하하하. 뭐, 여튼!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님은 두말하면 입아프니 넘어가고, 김일성과 박정희는 대체 왜 이 책에 실려있나 살짝 생각을 해봤는데, 아마 이 두 사람은 일본 정치쪽에도 큰 영향을 끼쳤기에 이 책에 실린건가 싶다. 이유야 뭐- 김일성의 한국전쟁 덕분에 일본의 경제가 살아났고, 박정희는 과거 일본군 출신에다가 한일기본조약으로 일제의 만행에 면죄부를 준 사람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뭐랄까, 이런 부분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거 아니야? 하는 우려가 들기도 했다. 그런데 왠걸? 김일성이나 박정희에 대한 내용은 생각보다 사심없이, 중요한 내용들이 모두 기록되고, 심지어 정확(?)했다. 특히 박정희 편은 정말......‘오-!’ 하면서 읽었다. 특히 박정희편 말미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있다.



1979년 10월 박정희는 중장정보부 부장 김재규에 의해 61세에 암살당했다. 한국은 이후 ‘서울의 봄’이라고 부르는 민주화의 시대를 맞이하지만, 1980년 5월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후 전두환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진압해 한국의 민주화에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2013년에는 박정희의 장녀 박근혜가 대통령에 올랐으나, 세월호 침몰 사고와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사건 등으로 인해 2017년 대통령에서 파면되었다. p 416



와 ㅋㅋㅋㅋㅋㅋ 정확해정확해. 탄핵된 그 딸의 이야기까지 실려있을 줄이야. 동양 인물 선정 기준만 제외하면, 이 책은 청소년이나 역사에 관심없는 어른이들이 읽기에도 손색이 없었다. 세계사 책을 읽어보고 싶으나, 기존의 세계사 책들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가히 추천할 만한 역사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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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꼴찌부터 잡아먹는다 - 구글러가 들려주는 알기 쉬운 경제학 이야기
박진서 지음 / 혜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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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태생적으로(?) 문과이자 인문학도에다가, 심지어 전공도 인문계열인 행정학/일본학이다. 태생적 문과(?)답게 수능 사탐과목 조차도 뭘 골라야할지 모를 정도로, 대부분이 흥미로워서 고민했었다. 물론 딱 한 과목 ‘경제’를 제외하고. 심지어 고2 담임쌤이 경제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아주 극혐했다. 당시 담임쌤에겐 미안하지만, 경제시간에는 거의 다른 과목 공부 할였으니 뭐. 그정도로 난 경제와 거리가 아주 먼 사람이었다(그렇다고 경제 과목을 아예 무시한건 아님! 다만 시험을 위해 주입식으로 외웠을뿐) 당최 학교에서 배우는 경제는 무슨 공자님 말씀마냥, 내가 아는 사회의 모습과는 너무 달랐기에 이런게 경제라면, 내 삶과 무관할 것 같았다. 이런 경제를 배워봤자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냐 싶었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렇게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서, 회사를 다니며 월급을 받고, 내 집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그렇게 1n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동안 내가 한 모든 행동들은 충격적이게도, 내가 그렇게 극혐하던 경제생활이었다. 거기다가 매일매일 뉴스 경제면을 장식하는 유가변동, 금리인상/인하, 원재료값상승, 집값상승, 최저임금 인상, 코스피 급락 등등등 두말하면 입아픈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삶에, 우리 모두의 삶에 아주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었으니까. 확실한건.. 학교에서 배웠던 경제 교과서에선 이런 현실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가르쳐준적이 없었다는 거다.



거기다 TV에 나오는, 경제학자라는 명함을 들고 있는 저명한 인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뭐래?”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러니 사람들이 자꾸 경제를 멀리하게 되고, 경제를 멀리하게 된 여파는 역풍의 부메랑으로 다시 돌아오고, 거기다 역풍을 맞는 이유 조차 생각해보지 못하는거 아닌가. 예컨데 학교에서 금리에 대해 제대로 배워본적이 없는 상태에서, 사회에 나와 급하게 내집 마련을 위해 은행에서 골라준 대출을 한다 치자. 그 결과가 바로 현 상황이 아닐까? 이자가 적게는 2배, 많게는 3배까지 올라서 한달에 부담해야할 이자가 원금보다 더 높은 상황같은 뭐 그런거. 만약 고정금리, 변동금리, 금리인상/인하 등에 대해서 조금만 더 잘 알고 있었다면 만약을 위한 사태에 대비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뭐, 그렇다고 갑인 은행을 우리같은 을도 아닌, 병/정 같은 소시민들이 이길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뭐, 여튼! 한마디로 우리는 경제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이다. 



그럼 지금이라도 경제를 공부해봐야하나? 경제 공부는 어떻게해야하지?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경제도 전문용어 남발에, 대한민국 현실과는 동 떨어진 이야기만 줄줄줄이었는데? ... 라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경제도서가 있을까? 싶었는데, 있었다. 심지어 전문용어 남발이 아니라, 지금 우리 현실 경제를 이야기하며, 인문학적으로 풀어낸다. 제일 중요한건 주류 경제학자 돌려까기(^^). 내가 본투비 인문학도인 것도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난 주류보다는 비주류를 선호하고(?), 모두까기, 돌려까기도 선호하는 사람이다. 헌데 바로 이 책 「악마는 꼴찌부터 잡아먹는다」라는 경제도서가 내 취향이 딱 맞았다. 내 나름대로 경제관련 책도 몇권 읽어봤지만, 솔직히 와닿지 않아서 한 권 읽는데 몇일을 소비하고 심지어책장 구석에 처박아뒀는데.. 이 책은 펼친 그 자리에서 다 읽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책 읽을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깊이 잠들어주신 우리 뿡뿡이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을..ㅋㅋㅋ



이 책의 목차는 총 8개로 나뉘어 있는데, 목차만 봐도 .... 내가 말한 모두까기, 돌려까지, 주류까기(ㅋㅋㅋ)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학자들을 믿지마라


경제학자들은 왜 경제를 예측하지 못할까?


우리가 잃어버린 이름 ‘정치경제학’


경제학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경제학이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


경제적 불평등은 정말 피할 수 없는 것일까?


부자만이 아닌 모두의 자유를 위한 경제학


경쟁은 누구도 승자로 만들지 않는다




특히 첫 주제인 “경제학자들을 믿지마라”. 와, 너무 멋져! 박수치고 싶다.


▶경제학자들을 믿지마라


왜 사람들은 경제를 알고 싶지 않은 것으로, 경제학을 어려운 학문으로 생각하는 걸까요? 어쩌면 우리 사회의 많은 경제학자들이 현 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혹은 현실에 근거한 이론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이론에 현실을 끼워 맞출 때에만 경제학을 호출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경제는 우리들의 삶과 현실 그 자체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을 연구하는 사회과학은, 그중에서도 특히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를 다루는 경제학은 밤하늘의 별과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근본은 현실이라는 땅에 발을 딛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경제는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것이기 때문입니다. p 016



우리는 경제학 교과서 즉 주류 경제학에서 너무나 좁게 정의한 ‘개인의 최대 만족을 위한 최적의 선택’ 이라는 명제로부터 탈출을 모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최적의 선택만으로 나의 경제적 상황이 나아질 수 없다는 걸 알게되는 것이죠. 이러한 고민은 굳이 어려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됩니다. ‘돈 쓸 일이 많으니 지금보다 더 벌어야지’ 라는 생각부터 ‘똑같은 일을 하는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왜 월급은 정규직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걸까?’처럼 현실의 평범한 언어로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근데 경제학자들은 이런 고민을 굳이 ‘생산성 증대를 통한 소득의 증가’라고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문제’라고 어렵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p 020



경제 발전을 모색하고 연구하는 경제학은 최신 기술을 이용해 기업의 생산성을 올리고 이윤을 더 많이 확보하는 길만을 찾는 학문이 아닙니다. 기업의 생산성을 올린 대가로 얻은 성과와 이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이를 연구하는 것 또한 경제학 본연의 임무인 것입니다. 앞에서 예로 든 사례에서 보다시피 문제는 새로운 기술의 도입이 아닙니다. ‘그 기술을 도입해 얻는 혜택은 과연 누구를 위한것인가?’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함께 풀어 가야 할 문제입니다. 경제발전을 통해 얻어진 성과물들은 서류로만 존재하는 법인이 아닌 생명을 가진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p 029




▶경제학자들은 왜 경제를 예측하지 못할까?


매해 11월 초, 기업의 각 부서들은 다음 해 사업 계획서를 준비해야만 합니다. 어느 직장인의 푸념처럼 연간 사업 계획은 “계획을 위한 보고서, 보고를 위한 계획서”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두 달여 동안 최소 3번 이상의 승인 요청과 반려를 거듭한 사업계획서는 CEO의 승인을 받는 순간 부메랑으로 돌아와 그것을 작성한 노동자에게 1년 동안 족쇄로 작동합니다. 매달, 매 분기별 수치화되어 있는 목표와 그에 따른 실적은 각 팀 구성원의 인격(!)입니다. 또한 목표 대비 달성률을 나타네는 퍼센티지(%)는 회사가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기본 급여와 보너스의 기준이 됩니다. p 045



-주요 대학의 이른바 일류 경제학자의 연구일수록 외국 학술지를 지향해 한국 경제의 현실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한국 경제학계는 대부분 외국에서 학위를 받고 외국 학술지 게재를 지향하는 연구자들로 구성돼 있어서, 한국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결핍돼 있고 학문 재생산 능력도 상실했다.(…)이런 이유로 한국의 경제학은 관료나 기업들과 진정으로 대화하지 못하며, 한국의 경제학자들은 한국의 경제 문제에 대한 진정한 전문가로 자처하기 힘들다.


경제학자들에게는 몹시 유감스러운 노릇이겠지만 위의 내용은 한국 경제학계와 학자들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동업자(!)의 주장 중 일부입니다. 어쩌면 한국의 주류 경제학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외국 경제학의 하청 업체일지도 모릅니다. p 054



한국 현실을 말하는 경제학자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학계의 중심에 있거나 이런 내용이 연구나 교육의 중심에 있지는 않다. (…) 경제학 연구와 교육이 한국 경제 현실에 기반을 두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경제뿐만 아니라 경제학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사람이 더욱 적다. p 056 /연세대 경제학과 홍훈 교수


1n년간 내가 회사에서 하는 업무 중 하나가 바로 저놈의 ‘사업계획(예산)’이다. 초반 몇년은 사업계획을 작성할 때마다 아주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 몇년 간 얻은 교훈은, 사업계획은 ‘답정너’ 라는거. 다음해 물가인상은 커녕, 당해년도 물가인상 고려하는 것 마저도 원가절감이라는 이유 하나로 칼같이 잘라낸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나와, 직원들이 받는다. 더군다나 ‘대기업’이라는 명함을 달고 있는 회사인데도 이런데 다른 회사들은 어찌할런지. 그렇게 ‘답정너’가 되어 승인된 사업계획을 보고 있노라면, 그 사업계획을 바탕으로 새해 업무를 하고 있노라면. 하 ㅋㅋㅋㅋ 뭐, 대놓고 직원은 소모품이라고 말하는 회사인데, 뭘 더 바랄게 있나 싶기도 하고.



근데 여기서 원가절감 운운하는 것도 결국 회사 경제를 위함인데, 대체 이 회사 경제는 누구를 위함인가? 적어도 나와 다른 직원들은 아닌 것 같다. 오롯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법인’을 위한건지, 아니면 그 ‘법인’뒤에 숨어있는 설립자 가족을 위한건지. 확실한건 회사 경제는 회사를 이끌기 위해 야근을 마다않는 대다수의 직원이 아닌, 그들 위에 군림하는 소수의 누군가를 위해 돌아간다. 우리가 아는 대다수의 회사들도 이런 모습을 취하고 있고, 이에 대해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분명 뭔가 잘못된거 같은데, 아무도 잘못되었다고 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런 이상한 회사경제가, 실은 우리 사회 모습의 축소판이라서 그런게 아닐까싶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실제로 ‘경제’에서는 고려되지 않았으니까.




▶경제학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디어 마이 프렌즈」에 등장하는 인물들 하나하나를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국가의 부가 20배로 들어날 때 과연 이들의 삶도 20배 좋아졌을까요? 온 생애를 바쳐 열심히 살아온 그들에게 남은 건 고작해야 서울 변두리의 허름한 집 한채 뿐입니다. 누구는 평생의 소원인 해외여행 한 번 가지 못했고, 누구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짬뽕과 커피장사에 매달려 있으며, 누구는 콜라텍에서 노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걸로 하루하루를 연명해 갑니다. 박정희 시대에는 1인당 국민총소득이 20배로, 전두환 시대에는 GDP가 2.8배 늘어났지만 그 눈부신 열매는 결코 그들의 몫이 되지 못했습니다. p 113



경제를 성장시키는 일은 결국 인간의 삶을 성장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명제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숫자보다 그 시절을 살아낸 평범한 이들의 작은 역사를 소중히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지금껏 버텨 낼 수 있었던 건 숫자로 대변되는 눈부신 경제 발전의 결과 때문이 아니라 팍팍한 삶 속에서도 함께 부대끼며 끝까지 곁에 있어 주었던 사람들 때문입니다. p 113



1934년 GDP 개념을 최초로 정희한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는 GDP의 태생적 한계에 대해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국민소득 추계로부터 한 나라의 후생을 알아내기는 매우 어렵다.


이 말을 현실에 적용해 볼까요? 공장의 폐수로 인해 마을의 식수원이었던 강물이 오염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마을 사람들은 그동안 공짜로 마시던 강물 대신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생수를 사서 마셔야 합니다. 이 소비 덕분에 GDP수치는 오르겠지만, 그 마을의 후생 즉 살림살이는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쿠즈네츠가 말하는 GDP의 태생적 한계입니다. p 118



거창한 경제 개념을 몰라도 우린 여러 경험을 토해 어떤 통찰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1948년 정부가 출범한 이래 1970년대 오일파동과 1998년 IMF 탁치 시절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의 GDP는 단 한 번도 내려간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여전이 많은 이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을 중산층이라 생각하는 사람의 수도 점점 줄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의 모순을 좀 더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GDP라는 숫자가 지닌 허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경제학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p 119



그동안 경제학에서 정의했던 빈곤은 ‘필요한 상품을 살수 없을 정도로 부족한 소득 상태’를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센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빈곤은 물적 자원이 부족한 상태가 아니다. 잠재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 상태다.” 라고 말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상황을 빈곤으로 규정했습니다. 빈곤은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을 가질수 없다는 데 있는게 아니라, 가난을 더욱더 비극적으로 만든는 상황에 있다는 것입니다. (…) 그러나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빈곤은 필연적으로 불평등과 공정성 같은 사회문제와 연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기근과 마찬가지로 전반적인 경제 위기 또한 ‘악마는 제일 뒤처진 꼴찌부터 잡아먹는다.’는 표현처럼 사회에서 가장 최하층에 속한 사람들부터 희생시키지요.”라는 센의 말은 자본주의 사회의 잔인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p 123~124



“한강의 기적”. 6.25 전쟁 이후 대한민국의 고도 성장을 일컫는 말이다. 근데 참 웃기다. 실제로 한강의 기적을 경험한 건 서류상으로만 있는 ‘법인’이 아닌가? 아니면 ‘법인’을 내세워, 그 뒤에 숨어있는 설립자가족이라던가. 근데 분명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사람들은 ‘법인’이 아니라, 대다수 노동자들이 땀과 고혈이 아니었나? 그들의 땀과 고혈이 아니었으면, 한강의 기적은 개뿔. 어쩌면 아직도 한국전쟁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헌데... 그렇게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대다수의 노동자들의 삶은 어떠한가.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노동자중에는 우리 부모님도 있다. 우리 부모님은 한강의 기적을 맞이했나? 음, 글쎄. 우리 부모님의 지금 상황은 그저... 과거에는 시골이었던, 이제서야 조금 수도권 취급받는 외곽 도시의, 대출이 껴있는 아파트 한채가 고작이다. 거기다 두분 모두 아직도 은퇴를 못하셨다. 아, 아니면 한강의 기적이란게 이런걸 뜻하는거였는데, 내가 몰랐던건가!




▶경제적 불평등은 정말 피할 수 없는 것일까?


국내총생산이 절반으로 줄었다는 건 국민들의 수입이 반토박 났다는 의미입니다. 한마디로 모두 함께 망해버린 것이죠. 하일부로너는 대공황의 원인을 이렇게 분석합니다.


생산성 증가에서 나온 이득을 저소득층에게 분배하지 못한 반면 잠재적으로 지출하지 않으려 드는 사람들의 소득이 크게 불어난 관경에 주목해야 한다.


대공황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열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창출된 부가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지 않고 굳이 필요치 않은 계층으로 흘러들어 금고에 쌓이기만 한 결과 경제긔 균형이 무너지고 대공황이 불어닥친 것입니다. 결국 불평등은 이렇게 사회 구성원 모두를 가난하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p 191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자본과 노동이 손을 맞잡고 같은 목표를 향해 노력하자 경제 질서가 바뀐 것입니다. 이 협약을 통해 경제적 활동의 과실은 더 이상 특정 계급에 의해 독식되지 않고 자본가와 노동자가 함께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 기술의 진보, 자본과 노동 간의 협약 그리고 정부의 역할,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 것은 위기를 극복하고야 말겠다는 인간의 의지와 실천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연,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대공황 시대에 빗대 묘사한 ‘대압착시대(1930~1950까지 미국에서 증세 등 강력한 조세 정책으로 부유층과 저소득층 사이의 소득 격차 및 근로자 간 임금 격차가 급격히 좁아졌던 시대)’도 결국 인간에 의해 그 운명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세계화와 자유주의의 공모로 태어난 신자유주의가 대압착 시대의 저격수로 나섰기 때문입니다. 결국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에 의해 추동된 신자유주의도 인간들이 만든 정치적 결과였던 것입니다. p 194



정치와 경제 그리고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일 모두 인간의 영역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역사를 기억하고 진실을 좇는다면 ‘불평등은 어쩔 수 없다’라는 체념이 ‘불평등도 그 격차는 줄일 수 있다’ 라는 신념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p 195



▶부자만이 아닌 모두의 자유를 위한 경제학


지금으로부터 50녀년 전 한 흑인 인권운동가(마틴 루터 킹)가 외친 보장소득 즉 ‘기본소득 운동’은 경제학자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던졌고 시대 담론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킹 목사가 암살당하고 한 달 뒤, 폴 새뮤얼슨, 제임스 토빈, 존 케네스 캘브레이스 등으로 대표되는 1,200명의 경제학자들은 미국 의회에 ‘(연간)보장소득’도입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냈습니다. 그에 대한 응답으로 1969년 닉슨 대통령은 4인 가족 기준 연간 1,600달러를 보장하는 법안인 ‘가족지원제도(FAP)’를 추진하였습니다. 하지만 마틴 루터 킹의 유산은 결국 현실화되지 못했습니다. 당시 백악관이 추진한 현대판 기본소득 법안은 미 하원의 문턱은 넘었지만 상원에서 10표차로 부결되고 말았습니다. 킹 목사의 꿈은 결국 무너져 버렸고, ‘진보와 복지’ 대신 ‘보수와 불평등’을 선택한 미국은 현재 선진국 중에서도 경제적 불평등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가 되고 말았습니다. p 213



기본소득은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논쟁거리를 낳았습니다. 망명가들의 이해할 수 없는 논쟁에 아득함을 느낄때면 저는 그들의 주장에 현실을 대입시켜 봅니다. (…) 그럼에도 여전히 ‘아무 일도 안하면서 정부에게 돈을 달라고 하는 건 미친 짓이다’ 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가족 공동체를 한번 떠올려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일을 하는 어머니, 직업이 없는 아버지, 대학생 아들과 고등학생 딸, 이렇게 네 식구로 이루어진 가정의 어머니는 자신의 수입을 아무 조건 없이 다른 가족들과 나눕니다. 만일 당신이 지구 공동체라는 말을 혐오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세상의 모든 부는 몇 안되는 천재가 만든다는 끔찍한 우화를 믿지 않는다면 당신도 지구 혹은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아무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존재 자체가 경제를 움직이고 부를 창출시키는 기반이니까요. p 222



실질적 자유를 얻기 위한 도구로써 기본소득에 관한 당신의 생각은 무엇인가요? 어쩌면 이에 대해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코로나19 이후 세계에 대한 새로운 구상이 될지도 보릅니다. 팬데믹이라는 인류 전체의 위기 앞에서 우리가 불러낼 얼굴이 신의 형상일지 아니면 악마의 화신일지 결정하는 것도 이 고민과 대답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p 224


‘기본소득’. 난 기본소득을 찬성한다. 하지만 ‘모두’에게 ‘평등’하게 나누어주는건 반대한다. 적어도 일정 금액 이상의 소득이 있는 사람들이 기본소득까지 받는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누군가는 똑같이 세금내는데, 왜 받지 못하냐고 하며 ‘역차별’이라고 한다. 과거에 책인지 칼럼인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그 내용만큼은 선명히 기억나는 어떤 글을 읽었다. 그 글의 내용은 ‘역차별’을 이야기 한다는건, 무언가를 누리는 데에 있어서 그 사람이 이미 기득권층이기 때문이라는 내용이었다. 해서 ‘역차별’이 많아질수록, 사회적 약자에게 더 많은 것이 돌아갈 수록, 사회는 점점 살기 좋아지는 거라고 했다. 이 글이 지금까지도 내 뇌리에 남는 건, 나 역시 같은 사회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런 사회가 온다면 빈곤이라는 악마가 찾아왔을 때, 항상 잡아먹히던 꼴찌들이 힘껏 저항할수 있지 않을까? 자포자기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뿡뿡이가 그런 사회에서 살 수 있기를 바라는 건 내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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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 현실과 환상이 만나고 다투다가 하나 되는 무대 클래식 아고라 2
일연 지음, 서철원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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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역사책을 정말 좋아한다. 역사를 주제로한 교양서, 에세이, 여행서, 입문서, 학술서 기타 등등 왠만하면 다 읽는 편이다. 세계사도 좋아하고, 한국사도 좋아하기에 우리집에 있는 책중 많은 양이 역사를 주제로 한 책이다. 물론 그 중에서도 한국사가 압도적이다. 개인적인 취향을 고르자면, 난 한국사 중에서도 고대사에 관심이 많은 터라, 고대사 관련 책을상당수 읽었다. 내가 읽었던 수 많은 책들이 참고한 역사서 중 상당수가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이야기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에서 고대사를 기록하고, 현재 남아있는 제일 오래된 기록물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이기 때문에. 심지어 학교 국사시간에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대해서 무조건 배운다. 그렇기에 한국인이라면 이 두 역사책을 모르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을 것이다. 다만, 정말 씁쓸하게도 이 두 책을 다 읽어봤느냐고 물어본다면, “아니요” 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대다수 일 것이다. 나 역시 각잡아서 읽은 역사책은 『삼국사기』 뿐, 『삼국유사』는 읽어본적이 없으니까^_T. 




하지만 또...그렇다고 『삼국유사』의 내용을 모르는 건 아니다. 위에서도 말했듯 수 많은 역사책들이 『삼국유사』를 인용했고, 학교에서도 『삼국유사』에 실려있는 일화들을 가르치기도 했으니까. 예컨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모르는게 이상한) 환웅, 곰, 호랑이가 나오는 ‘단군신화’는 『삼국유사』 기이편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뿐만아니라 ‘미추왕과 대나무잎 군사들’, ‘만파식적’, ‘처용설화’, ‘수로부인 헌화가’, ‘서동요’ 등도 『삼국유사』 기이편에 실려있다. 고로 난 『삼국유사』는 읽어본적이 없으나, 『삼국유사』에 실려있는 상당수의 이야기들을 알고 있는 아이러니 한 이야기랄까? 하하하. 그래도 언제고 한번 쯤은 『삼국유사』를 제대로 읽어봐야지! 싶었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 21세기북스(아르테)에서 고전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는데, 이번에 나온 고전이 바로 『삼국유사』. 역사덕후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TMI지만.... 개인적으로 책을 살 때는 통일성을 중시하다보니, 시리즈로 나오는 책들은 계속해서 구입한다. 대표적인 예가 서해문집 고전시리즈 ‘오래된 책방’(리뷰올린건 몇 건 안되는게 함정ㅋ). 헌데 이번에 21세기북스에서 출간된 『삼국유사』를 읽고 보니, 표지도 이쁘고 무엇보다 가독성이 좋다. 아무래도 고전은 옛말을 지금 우리가 쓰는 말로 번역해야하는 어려움이 있고,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단어도 있고 하다보니 가독성이 떨어지는 번역서도 많다. 헌데... 이 책은 가독성이 좋네? 고전은 가독성이 제일 중요하니까. 그러다보니...21세기북스 고전시리즈도 전부 모아볼까 싶은 생각이 스물스물 든다. 아 근데 분명 서해문집 고전시리즈랑 중복되는 책이 한 두권이 아닐거라, 솔직히 고민중. 하 ㅋㅋㅋ고민되네.



『삼국유사는 』  그 분량이 정말 방대하다. 쉽게 말하면 ‘벽돌책’이랄까^^. 벽돌책이라면 손 조차 가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그런 사람들도 『삼국유사』 만큼은 아주 쉽게 읽을 수 있다. 왜? 삼국유사는  읽고 싶은 부분만 골라서 띄엄띄엄 읽을 수 있는 책이니까. 거기다 고리타분한 인세의 ‘정치사’가 아니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기이하고 신기한 이야기들이다. 단군신화처럼 곰이 여자가 되고, 때로는 도깨비가 나오고, 전쟁을 멈추는 피리도 나오고, 용도 나온다. 즉 『삼국유사』에 실려있는 이야기들은 대부분이 흥미진진하다.






『삼국유사』는 ‘왕력.기이.흥법.탑상.의해.신주.감통.피은.효선’ 이라는 총 9편의 주제로 나뉜다. 다만 왕력은 일종의 연표, 계보에 해당하여 이 책에서는 제외되었다. 



기이편은 왕들의 이야기이되, 기이한 이야기가 섞여있다. 대체적으로 기이편에 실려있는 이야기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가 많다. 흥법, 탑상, 의해, 신주, 감통, 피은편은 저자가 스님이다보니 불교적 내용이 많다. 『삼국유사』 이야기중 절반 이상이 불교적인 색채가 가미되어 있는 이유가 바로 이때문이다. 마지막 효선편은 말그대로 효도와 선행에 대한 것이다. 



지금까지 『삼국유사』는 여러 출판사에서, 여러 번역/해설본이 나왔는데 내가 굳이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뭐였을까?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삼국유사』에 대한 이 책 번역자의 해석이 와 닿아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언젠가 단군 신화 이래로 단일민족, 통일된 한 줄기 민족혼 등을 강조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한국에 필요한 덕목은, 그 무엇보다도 다양성을 존중하고 개성이 다른 사람들끼리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남과 다른 ‘나’가 존중받지 못하는 탓에, 언제부턴가 누구라도 분노와 울분을 품고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나’가 존중받지 못하는데, ‘너’를 인정해서 이들이 ‘우리’로 이루어질 리도 없다. 그런데 사실은 단일 민족설의 토대가 된 단군 신화를 전해준 『삼국유사』 조차도, 불교와 비불교, 정치와 문화예술,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들, 말하자면 세상 모든 것들의 공존과 만남, 화해를 거듭거듭 강조해왔다. 

『삼국유사』에 나왔던 이들을 보자. 바다를 넘나들며 문명을 교류했던 석탈해, 허왕옥과 연오랑, 세오녀 등은 다문화를,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김현의 아내 호랑이, 살아있는 몸으로 신이 된 욱면 등의 여주인공은 편견을 벗어난 다양한 시각을, 한국의 고유신앙을 포용하며 성장했던 한국불교는 이념과 사상의 다원성을 증거하고 있다. 우리가 미래에 이루려 하는 다문화, 다양성과 다원성을 지닌 새로운 한국은 이미 『삼국유사』를 통해 우리가 한 차례 이미, 이루었던 것이다. p 016



과거 우리는 단군의 후손, 단일민족이라고 운운했던 적이 있다. 이 땅에서 단군의 후손이자 단일민족이라며, 우리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시작했던 때는 다름아닌 우리 역사의 암흑기였던 일제강점기 당시였다. 악마같은 일제와 맞서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라는 끈이 필요했을 때다. 이때의 단군신화는 일제에 핍박받던 우리 민족의 힘이자 등불이었다. 일본에 맞선 조선인들은 (고)조선을 세운 단군의 후예이자, 단일민족이었다. 우리끼리 똘똘 뭉쳐야 했기다. 그게 바로 시대가 만들어낸 가치관이기도 했다. 그때는 그게 정답이었다.



그 이후로 백여년의 시간이 훌쩍 지났다. 시대가 바뀌었다. 지금은 단일이 아닌, 다원화된 사회이다. 지금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고, 존중해야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단일민족 운운하며, 나와 ‘우리’끼리만 똘똘 뭉쳐서 다른 사람들을 차별, 더 나아가서 혐오를 조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민족을 떠나서, 그들이 말하는 ‘우리’와 ‘다른’ 사람이라면 무조건 적대시하고 배척한다. 그들은 단군신화를 하나의 방패로 삼아, 자신들의 생각이 올바르다고 믿는다. 참으로 웃기지도 않다. 정작 단군신화를 뜯어보면 하늘을 숭상하는 종족과 곰을 숭상하는 종족, 즉 서로 다른 종족들의 공존이다. 뿐만 아니라 단군신화를 알려준 『삼국유사』도 단일민족이라고 외부 종족을 배타적으로 대하지 않았으며, 외려 여러 민족과 어울려 사는 모습을 그리고, 때로는 그들에게 무언가를 배우기도 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외침이 잦았기에, 단일민족이 될래야 될 수도 없다.



16세기에 쓰여진 『삼국유사』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알려주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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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품격 - 말과 사람과 품격에 대한 생각들
이기주 지음 / 황소북스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요즘 새벽마다 눈이 번쩍!하고 뜨인다. 그리고.....꽤 오랜 시간 잠을 못잔다^_T. 집나간 잠을 돌아오게 하려고 이런 저런 방법을 써봤지만 실패. 그러다 신랑이 책을 읽어보라길래, 이번엔 그 새벽에 책을 집었다. 왠걸. 잠은 더 달아나고 그냥 다 읽었다. 그렇게 새벽녘에 읽은 책이 「말의 품격」. 하하하. 역시 밤에 책 읽으면 잠이 더 달아다는 건 국룰................은 개뿔. 다음 새벽엔 「코스모스」를 봐야겠다. 그정도면 다시 잠들겠지....




그나저나 오랫만에 읽은 「말의품격」은 한 밤중에 내 잠을 깨운 것은 물론이요, 내 자신을 반성하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하나 같이 맞는 말 투성이에다가, 읽으면 읽을수록 내 지난날의 언사가 계속해서 떠오르기 때문이다. 말은 글과 달리 내뱉으면 주어담을 수 없다. 그래서 말을 할 때는 한번씩 생각하고 말해야하는데, 하. 그게 정말 어렵다. 



무심코 내뱉은 말은 누군가를 할퀴는 칼이 될 수도 있기에, 말하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한다는 사실을 안다. 해서 격식을 차리고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는 그게 가능하다. 하지만 반대로 나와 친한 사람들과 마주하면, 이상하게 잘 안된다. 나와 평생 갈 사람들이기에, 그래서 더욱 말할 때 예를 갖추고 조심스레 대해야하는게 맞는게 그게 어렵다. 그래서 때로는 악의 없는 내 말 한마디에, 내 주위 사람이 상처를 입기도 한다. 이게 참, 반성을 하는데도 고치기가 어렵다. 하, 나이를 먹어도 이러니 원. 앞으로 우리 뿡뿡이가 이런 엄마를 보고 뭘 배울지T_T..



옛말에 이청득심耳聽得心이라 했다. 귀를 기울이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일리가 있다. 독일의 철학자 게오르크 헤겔은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바깥쪽이 아닌 안쪽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상대가 스스로 손잡이를 돌려 마음의 문을 열고 나올 수 있도록,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해야 한다. 그런 뒤에야 마음을 얻는 것도 가능하다. 이는 얼핏 교과서적인 얘기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수많은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적절한 말과 행동을 건네야 하는데, 이때 본질적인 해결책은 다름 아닌 상대방의 말속에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p 025-026


중용은 기계적 중립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용은 단순히 중간 지점에 눌러앉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여건에 맞게 합리적으로 위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유연한 흔들림이라고 할까. (생략) 절충과 협상 과정에서 나름의 전제 조건이 있을 거란 생각도 든다. 무엇일까? 상대에 대한 완벽한 이해일까? 글쎄다. 각기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은 서로 다른 우주의 충돌이다. 충돌은 두 주체가 서로 맞부딪치고 맞서는 것이다. 갈등을 낳는다. 나와 생각이 다른 누군가를 향해 내뱉는 “내가 당신을 이해할게요” 라는 말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완벽히 뿌리내리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p 064-065



이 구절들을 요약하자면, 결국 ‘존중’과 ‘경청’ 이다. 존중과 경청은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에 제일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서로 존중할 줄 안다면 아주 자연스레 혐오는 사라진다. 모름지기 존중이란 서로가 같은 인간임을 알고,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그 다름을 인정할 수는 있게 한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에, 경청도 가능해진다. 경청이 가능해지므로써 불통은 소통이 되고, 불통으로 인한 감정소모도 사라진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만약 존중과 경청이 아주 당연한 사회적 가치가 된다면, ‘다름’이라는 이유 하나로 쏟아지는 혐오범죄와 마녀사냥은 자연스레 사라지지않을까.




삶의 지혜는 종종 듣는 데서 비롯되고

삶의 후회는 대개 말하는 데서 비롯된다.

-말의품격 p 018



살다 보면 크리스 가드너의 사례처럼, 긍정적인 말 한마디에 절로 미소를 짓게 되는 순간이 있다. 말에는 분명 모종의 기운이 담긴다. 그 기운은 말 속에 씨앗의 형태로 숨어 있다가 훗날 무럭무럭 자라 나름의 결실로 이어지기도 한다. 말은 오며하다. 말은 자석과 같다. 말 속에 어떤 기운을 담느냐에 따라 그 말에 온갖 것이 달라붙는다. (생략) 반대로 긍정적인 생각이 모두 걸러진 말, 비판론과 염세주의로 똘똘 뭉쳐진 언어만 내뱉는 사람은 사회 관계망 속에서 고립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p 099 - 100



말과 글에는 사람의 됨됨이가 서려 있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사람의 품성이 드러난다. 말은 품성이다. 품성이 말하고 품성이 듣는 것이다. 격과 수준을 의미하는 한자 ‘품品’의 구조를 뜯어 보면 흥미롭다. 입 ‘구口’가 세 개 모여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말이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품성이 된다는 뜻이다. 사람의 체취, 사람이 지닌 고유한 ‘인향人香’은 분명 그 사람이 구사하는 말에서 뿜어져 나온다. p 137-138



타인을 향해 생각을 표현하고 감정을 전달하는 행위는 만인이 고민하는 숙제다. 그 과정에서 혹자는 상대의 의표를 찔러야 한다는 부담을 떨치지 못하고, 혹자는 누군가의 화법과 말투를 무작정 따라 하다가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우린 그렇게 살아간다. 말에 비법은 없다. 평범한 방법만 존재할 뿐이다. 그저 소중한 사람과 나눈 대화를 차분히 복기하고 자신의 말이 그려낸 궤적을 틈틈히 점검하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화법을 찾고 꾸준히 언품을 가다듬는 수밖에 없다. p 153



말에는 힘이 있다고 한다. 비슷한 의미로 옆나라 일본에는 언령言靈(코토다마)이라는 말도 있다. 나역시 말에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매일을 긍정적인 말을 쓰는 사람과, 부정적인 말을 쓰는 사람은 행동부터 분위기, 주변사람들까지도 판이하게 다르지않나. 특히 부정적인 말을 쓰는 사람들 주변에는 제대로된 사람이 없기도 하다. 끼리끼리는 과학이니까.



본인도 모르게 부정적인 말, 뾰족한 말, 험한 말을 쓰다보면 그로인한 부정적인 영향은 생각보다 크게 돌아온다. 그 영향이 본인에게만 한정된다면 ‘똥 묻은 개’라 생각하고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특히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원치 않아도, 부정적인 말만 쓰는 사람들을 만나기 일쑤다. 회사에서, 거래처에서, 혹은 학교에서. 분명 기분이 정말 좋은 하루였는데, 부정적인 말만 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네발내발하면서 욕짓거리를 내뱉는다면 어떠겠는가? 말이 누군가를 해치는 무기가 되는 극단적인 상황도 있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무분별한 악플들을 보자. 우리는 여러차례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무분별한 악플에 못이겨 생을 뒤로한 사람들을. 부정적인말은 그 자체 만으로도 누군가의 인생을 처참하게 무너뜨리는 무기가 된다.



나는 왠만하면 긍정적인 말을 쓰려고 노력한다. 욕같은 험한말은 왠만하면 사용하지 않는다. 이건 학창시절부터 그랬던 것 같다. 중학생 때였나, 네발내발하면서 욕하는 동급생들을 보면서, 꼭 뇌 텅텅인 것 처럼 보였다. 그전에도 욕을 잘 하지 않는 나였지만, 이 이후로는 더더욱 안하게되었다. 물론 운전을 하다가 가끔 만나는 김선생님(^^)들로 인해 자그맣게 욕을 하는 경우가 있긴 한데, 그건 뭐 차에 나 혼자있을때니까!



우리 뿡뿡이에게도 말에 대한 교육을 잘 해줘야할텐데. 휴. 요즘은 뭐 어린애들도 밖에서 뛰어놀다가도 네발내발 하고 있으니, 이런 험한 욕의 파도에서 우리 뿡뿡이에게 어떻게 교육을 해야할지 고민이 많다.



사람이 지닌 고유한 향기는

사람의 말에서 뿜어져 나온다.

-말의품격 p 132



정신과 의사이자 저술가인 아론 라자르에 따르면, ‘사과는 곧  솔루션’ 이다. 용기에 바탕을 둔 진솔한 뉘우침이야말로 상대망의 마음을 움직이는 유일한 해결책이며 이해 당사자들이 갈등과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의사소통 도구라는 것이 그의 논리다. 일리가 있다. 사과는 갈등과 갈등 사이에 유연함을 스며들게 한다. 사과는 틀어진 관계를 복원하는 기제機制로 작용한다. (생략) 지는 법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지는 행위는 소멸도 끝도 아니다. 의미있게 패배한다면 그건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다. 상대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인정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p 187-188



이 구절을 읽었을 때, 요즘 뉴스를 도배하고 있는 두 사건이 떠올랐다. 카카오 먹통 사건과 SPC그룹 제빵사 사망 사건. 두 사건 모두 워낙 어마어마한 사건이었기에,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 자, 그럼 잘못을 일으킨 두 그룹의 대표는 사과와 이후의 행동은 어땠을까? 



카카오 대표가 사과할 당시에는 자신들의 잘못을 인지한 듯 했으나, 이후 국감 및 과기부에 제출한 사고 보고서등에서는 본인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식으로 말을 바꿨다. 카카오 먹통으로 인한 소상공인, 카카오 유저들에 대한 피해보상에 대해서도 매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SPC그룹 대표는  유가족들에겐 사과 한마디도 없었지만, 기자들 앞에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대체 왜??). 심지어 고인의 장례식장에 삼립 빵을 무더기로 보내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사망사건이 일어난 공장은 계속 가동되었고, 불과 몇일 안지나서 또 다른 SPC 계열사 직원의 안전사고가 발생했다(하지만 SPC그룹에서 만드는 포켓몬빵은 지금도 잘팔린다^^).



이는 비단 카카오나 SPC 문제만이 아니다. 수많은 기업들은 돈으로 덮기 어려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언제나 피해당사자가 아닌, 대국민 사과를 한다. 미리 입이라도 맞춘것처럼, 하나같이 다 똑같다. 이는 범죄자들이 피해자가 아닌 판사들에게 반성문을 제출하는 것 만큼이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거기다 재발방지, 후속조치라고 하는 것들도  피해당사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이 아닌, 어디까지난 기업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한다.



잘못을 했으면 깔끔하게 인정하고, 사과하고, 보상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것일까. 어른들을 보고 자라는 우리 아이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무엇을 배울까? ‘돈 있으면 잘못을 저질러도 괜찮구나, 내 잘못이아니라고 잡아떼도 되는구나’ 라고 배우는 건 아닐까. 씁쓸하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우주를 얻는 것과 같다.

-말의품격 p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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