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김제동 지음 / 위즈덤경향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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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이라는 사람을 처음 본 것은 십여년쯤 전이었다. 그 무렵 그는 대구 번화가의 어느 쇼핑몰에서 주말마다 열리는 이벤트의 MC를 맡고 있었다. 첫 대면에서부터 그느 여느 진행자와 다르게 느껴졌었다. 구수한 입담과 물 흐르듯 자연스런 진행은 절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에 충분했다.

'아~ 이 사람, 조만간 서울로 진출하겠군' 모두의 예감대로 그는 몇년 후 서울 입성에 성공했지만 기대 이상이었다. '윤도현의 러브레터'라는 지상파 TV 음악방송에 얼굴을 내비친 것이었다. 철저한 무명이었던 그가 단박에 연예계에 진출해 갖가지 어록을 남기며 대중의 큰 인기를 한몸에 받았으니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 났다고 할 수 밖에.

그는 대중에게 웃음을 주는 희극인이다. 남을 행복하게 하려면 우선은 스스로가 행복하고 즐거워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그가 만들어 내는 웃음이 건강하고 행복한 에너지를 전달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김제동은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故 노무현 대통령의 노제 사회를 맡은 이후 방송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것이 정치적 외압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후 그는 여러 사회 현안에 대해 소신있는 발언을 그치지 않고 있다. 그에게서 그저 편안한 웃음과 즐거움을 원했던 사람들은 이제 그가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딴따라' 주제에 어울리지 않게 뭔 소신 타령이냐고 타박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저 시류에 몸을 싣고 편하게 돈벌며, 인기를 누리며 살 수도 있을텐데 왜 그렇게 고난의 길을 자초하는 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나무 손잡고 더불어 숲
자기 그림자를 자기가 거느리고 사는 당당함
그런 서로서로를 존중하고 있는 어깨동무

그가 책에서 밝혔듯 그기에는 어떤 계기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세상에 대한 관심없이 그저 하루하루 앞만 쳐다보고 사는 젊은이들처럼 살아왔던 그를, 서로를 배려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이 세상의 약자들에 관심을 가지고, 소위 "삐딱한 김제동"으로 변하게 만들었던, 거부할 수 없는 인연을 누구나 다 한번쯤은 만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살맛나는 세상을 꿈꾸며 김제동이 이번에 펴 낸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라는 책에서 우리는 내노라하는 스물다섯명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정권의 유력한 실세에서부터 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을 하고 있는 제주도의 해녀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면면도 다양하다. 사람마다 무늬와 색깔이 다르고, 깊이와 넓이가 다를 뿐 세상에 내가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김제동의 말에 공감이 간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스물다섯명의 인터뷰가 하나같이 마음에 와 닿았지만(솔직히 딱 한명은 빼야겠다)  그래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버려서는 안된다는 정호승 시인의 얘기가 인상깊이 남았다. 시인이 얘기했던 화순 운주사의 석불을 나도 지난해 가을에 직접 본 적이 있었기에 누구보다 공감이 갔다고 해야 하나. 단정하고 잘 생긴 느낌의 얼굴이 아닌, 깎일대로 깎이고, 고통받을대로 다받은 그 얼굴 말이다.

김제동이 대하소설 '태백산맥'이라는 거대한 산맥을 접하고서 진정한 세상을 보는 눈을 뜨게 되었듯 그런 큰 떨림이 언젠가 내게도 올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나를 스쳐 지나갔을 수도 있겠다. 모르고 지나쳤든, 용기가 없어 못본체 지나쳤든 불혹이 지난 삶부터는 뭔가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겠다는 강박증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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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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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고 싶었다. 혹시라도 이 책을 읽고나면 이 책 속에 있는 행복을 조금이라도 나눠 가질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제목만 보고서 구입하게 된 것이 바로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라는 책이었다. 그렇게 무작정 책만 사놓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3월의 어느날. 아직은 쌀쌀한 기운이 남아 있는 충청도 땅으로 떠났다.

여행지에서의 첫 날 꽤 야심한 시각이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 귀에 익은 목소리에 빠져 들었다. 꽁지작가 공지영의 목소리였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난 이렇게 책 보다도 TV 프로그램을 통해 지리산 행복학교를 먼저 접하게 됐다. 덕분에 나중에 책을 읽을 때 등장인물과 장소들이 눈에 쏙쏙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버들치 시인, 낙장불입 시인, 고알피엠 여사, 최도사 등등 조금 독특한 이름을 지닌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고 있는 지리산 산자락 아래 섬진강 풍경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었다. 난 섬진강이 그렇게 큰(?) 강인 줄은 미처 몰랐었다. 올해 초 처음 섬진강을 따라 전라도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벚꽃이 만개한 섬진강의 봄 풍경이 가져단 준 큰 감흥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봄이면 이곳을 찾아오는 것이로구나. 차에서 몇시간을 꼬박 갇혀 있으면서도 하동에서 쌍계사에 이르는 십리길을 다녀오는 이유를 절로 알게 됐다. 봄이면 벚꽃이요, 벚꽃이 만개한 봄날의 풍경은 어디나 환상적이며 몽환적이지만, 특히나 이곳 섬진강의 벚꽃은 섬진강이 있기에 더욱 아름답게 빛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온통 낭만적으로 그려져 있긴 하지만 어찌 보면 이 책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은 모두 타지에서 이곳을 찾아 와 터를 잡은 사람들이다. 그것이 정착인 것인지, 아니면 그저 몇해 머물러 있다가 다시 구름처럼 떠나갈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이런 여유자적한 삶이 일반인들에게 현실을 뛰어 넘는 또다른 환상으로 자리잡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책 마지막 부분에 소개되어 있는 낙장불입 시인의 시 한편이 이런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 삶이 팍팍해지고 괴로워질 때면 누구나 일탈을 꿈꾼다. 일상의 삶에서 우릴 옥죄던 모든 것을 버리고 그저 변함없는 자연과 벗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하지만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사진에 관심이 많다 보니 책 구석구석에 실어놓은 지리산 사진들에 눈길이 많이 간다. 특히나 지리산 사진작가 강병규 님의 사진은 지리산의 넓은 품과 위대한 자연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꽁지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들에 담겨 있는 소소한 지리산 사람들의 꾸밈없는 모습도 좋았지만 마음을 끄는 사진은 따로 있었다.

책 본문 중에서는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섬진강변 코스모스길 사진이 바로 그것이다. 포장되지 않은 흙길을 따라 흐트러지게 피어 있는 코스모스. 그 옆을 섬진강은 유유히 흐르고 있다. 가을을 느끼게 하는 사진이다. 섬진강은 벚꽃 피는 봄이 제격인 것 같지만 왠지 내게는 어느 가을날 해질녘의 섬진강 풍경이 그 제일경으로 각인된 듯 하다. 올 가을에는 다른 단풍 명소를 제치고 이곳을 찾아가야만 할 것 같은 까닭모를 의무감을 느끼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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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나요, 내 인생
최갑수 글.사진 / 나무수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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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쉽군요. 이것을 마지막으로 이번 여행은 막을 내리는 건가요?
"아뇨.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는 거죠."

아침이 오면 당신의 새로운 여행이 시작될 것입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스스로를 더 사랑하는 법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책을 펴자마자 만나게 되는 글들이다. 읽고 또 읽다보면 긴 여운이 남는 글이기도 하다. 어차피 인생 자체가 긴 여정이다. 굳이 어딘가를 향해 떠나지 않더라도 우리는 매일매일 인생이라는 이름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최갑수의 말처럼 좀더 열심히, 맹렬히 살기 보다는 나를 좀더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여행이라면 더 좋을 것 같다.

이 책에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내가 좋아하는 장소, 그리고 내가 심히 공감하는 글이 있어서 좋다. '가을로'라는 영화는 내게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풍광을 소개해 주었고, 그 곳들을 직접 찾아봐야 겠다는 강렬한 욕망을 일깨워 주었다. 지금도 가끔씩 영화 속 현우, 민주, 세원의  발길을 쫓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영화 속 소쇄원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사진이나 영화 속 배경을 실제 가보고 실망하는 경우도 많은데 소쇄원은 그렇지 않았다. 영화에서 느껴지던 그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듯 했다. 마치 민주가 저만치에서 대나무 홈통에 단풍잎을 띄워 보내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도 된다. 소쇄원에 가게 되면 '가을로'를 떠올리게 되고, '가을로'를 보게 되면 난 항상 소쇄원을 그리워하게 된다.

"새로 포장한 길인가 보죠? 전에 있었던 길들의 추억이 다 이 밑에 있을텐데....... 사람들은 그 길을 잊고 이 길을 또 달리겠죠? 좋은 길이 되었으면 좋겠다."

민주가 메타세콰이어 길을 걸으며 했던 말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시간이 흘러 현우는 세진과 함께 이 길을 걷는다. 궁금했었다. 그들은 결국 손을 잡게 될 것인가. 영화가 막을 내리는 순간까지도 둘은 손을 마주잡지 않지만 우리는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결국 손을 잡게 될 것이라는 것을..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힘든 게 무엇일거 같은가. 지독한 '외로움'이란 대답은 식상하다. 그것은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끼니의  곤란함이다. 혼자 다니다 보면 그럴듯한 식사에 대한 준비가 소홀해지가 마련이고 혼자 맘편히 먹을 수 있는 밥집을 찾기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예 1인분을 팔지 않는 곳도 많다.

정말 처음에는 혼자 식당에 들어가 밥 먹는 게 고역이라 간단하게 인스턴트 음식으로 떼우거나 시간이 맞지 않으면 끼니를 거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다보니, 또 이런 혼자 떠나는 여행에도 익숙해지다 보니 혼자 밥을 먹는 것도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게 됐다. 작가의 얘기를 빌려 보자면 혼자 먹는 밥이 나쁘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다.

혼자 밥 먹을 때 떠오르는 얼굴은 아마도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고 가장 필요한 사람일 거라고. 사는 게 힘겹고 팍팍하게 느껴질 때, 혼자서 밥을 먹어 보시라. 숟가락 가득 밥을 떠서 입 안으로 넣어 보시라. 당신을 밥을 먹고 있는 동안 떠오르는 그 얼굴과 따뜻한 밥 한끼 나눠 보시라.

정말 그렇더라. 겪어 본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지치지 않기 위해서, 다음날 새로운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혼자서 밥을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 넣고 있다 보면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더라. 그리고 그 얼굴은 내가 몹시도 그리워하고 보고싶어 하는 고마운 얼굴이더라.

당신은 당신 생에서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하루를 가지고 있는 지.
만약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까지 잘 살아온 것이다.

내 인생은 잘 지내고 있을까. 잘 지내고 있다고 자신있게 얘기하진 못하겠다. 일상의 구질구질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떠나지 못하고 맴돌아야만 하는 현실의 안타까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말이다. 내 생에서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하루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나는 지금까지 충분히 잘 살아왔다는 위안을 나에게 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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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 - 최갑수 골목 산책
최갑수 글.사진 / 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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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누군가 모질게도 그리운 바로 그 사람이 지금 걷고 있는 골목 끝에 서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그런 마음을 담은 이 책은 여행작가 최갑수가 전국의 골목 스물 네 곳을 1년간 여행하고 난 후의 감상과 사진을 정리해 펴 낸 여행 산문집이다. 

나도 어느새 최갑수의 팬이 되고 말았다. 우연찮게 목요일의 루앙프라방을 읽고 난 후 이 책이 벌써 세번째다. 불과 몇해 전만 해도 최갑수란 이름 석자를 전혀 알 수도 없던 내게 이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년에 책 한권 읽는 게 쉽지 않았던 내가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펴들고 있는 내 모습에 감동하고 있다는 걸 그 사람도 알고 있을까.

골목. 어릴 적만 해도 참 친근한 공간이었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던 곳이 집이 아니라 골목이었을 때도 많았을테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린 골목으로부터 멀어졌다. 하늘 높은 줄만 알고 위로 위로 올라만 가는 고층 아파트에 살면서, 도심의 빌딩에 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면서 우리는 가끔 마주치게 되는 골목이 생소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최갑수가 1년간 돌아다닌 골목들은 한결같이 좁고 누추하고 가파르다. 건축가 오영욱은 우리나라 산동네의 수많은 골목들은 그 생성 과정이 산토리니의 그것과 다르지 않지만 똑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이유를 아마도 그건 트라우마처럼 심장에 각인된 고통과 가난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서평에서 밝힌 바 있다.

나 역시 그의 의견에 공감한다.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이제는 사라져버린 그 수많은 골목에는 가난과 고통스런 삶이 함께 녹아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물론 이제 얼마 남아 있지 않은 골목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 골목이 언제나 고달프고 서글픈 공간만이 아닐 수 있는 것은 그 골목에 기대어 살고 있는 이웃들의 삶과 인정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의 글과 사진을 통해 잊고 지냈던 골목에의 추억을 다시 떠올릴 수 있어 좋았다. 그가 소개한 골목길 중 몇 곳은 이미 카메라를 들고 다녀온 곳들이고 내가 어릴 적 걸어다녔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똑같은 공간을 다른 시간 속에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사진과 그 속에 담겨진 느낌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던가.

이제 주변의 골목들과 친해질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고, 이채롭지도 않은 풍경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사진을 찍는 사람의 책무라고 하니까 말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또 사라져버릴 지도 모를 그 길 끝에서 혹여 너를 만나게 될 지도 모를 행운을 기대해 보면서.


골목 끝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생수를 우물거리며 '기대수퍼'라고 조그맣게 발음해 본다.
서로 기대 살자고 해서 지은 이름.
하늘 위로 떠가는 구름이 가볍다.
우리의 여생은 가난할 터이지만 그렇다고 꼭 가난한 표정으로 살아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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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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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집권플랜이라는 다시 거창한 제목의 책은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와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간의 7개월에 걸친 대담을 정리한 것이다.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이었지만 단숨에 마지막 장을 넘기게 할만큼 흡인력이 있었다. 사회와 경제 민주화, 교육, 남북문제, 권력 등 다소 무겁고 포괄적인 주제를 담고 있지만 뭔가 손에 잡히는 시원스러움이 느껴져 좋았다.

스스로에게 물어 본다. 나는 진보의 편에 서 있는가, 아니면 보수의 끄트머리에 서 있는가. 이 단순한 질문에도 쉽게 대답할 수가 없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 탓에 진보를 꿈꾸기도 하다가 바로잡을 수 있는 힘과 열정의 부재에서 오는 무기력함에 보수의 안락함에 젖어들기도 하는 것이 나, 혹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진보는 선이고, 보수는 악인가. 진보냐 보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건강한 진보, 제대로 된 보수가 이 사회에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헷갈린다. 자신을 보수라고 내세우는 사람들에게서는 좀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개혁의 진정성을 느낄 수가 없다. 진보주의자들에게서는 지금 당장의 배고픔과 일자리와 등록금 문제를 해결해 줄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조국 교수는 2012년, 혹은 늦어도 2017년에는 빼앗긴 정권을 다시 진보세력이 잡아야 하며, 그것을 위해 이번에는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는 점을 누누히 강조하고 있다. 김대중과 노무현 진보정권 10년의 실패에 대해 성찰해 보고 왜 우리는 진보의 편에 서야 하는 것이며, 또한 국민들에게 '진보가 밥먹여준다'는 것을 인식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300여쪽에 달하는 책 속에 담겨 있는 수많은 담론들에 대한 공감 보다도 책 말미에서 인용한 나폴레옹의 "지도자는 희망을 파는 상인"이라는 얘기가 가슴을 친다.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오늘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그 희망의 파랑새는 어느 숲에서 홀연히 날아와 줄 것인가.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 희망을 온전히 우리가 가지려면 그걸 파는 지도자를 막연히 기다리기 보다는 열정, 책임의식, 균형감각을 갖춘 정치인을 지도자로 성장시켜 주어야 하겠다는 아주 당연한 깨우침을 얻고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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