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얼티프리 - 동물과 지구를 위한 새로운 생활
린다 뉴베리 지음, 송은주 옮김 / 사계절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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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방송인 알베르토가 유튜브에서 동물을 먹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본 적이 있다. 햄을 만드는 일을 하신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 돼지를 잡는 장면을 자주 보며 자란 알베르토는, 일찍부터 고기가 어떻게 식탁에 오르는지 왜 귀한지를 알고 있었다. 요즘 마트에 있는 고기를 보면 너무 많아서 대부분 버려질 것이 자명해 안타깝다고 하며, 이탈리아에서는 동물을 죽여본 사람만이 고기를 먹을 자격이 있다는 말이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때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이 말을 얼마전 일본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서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오리농법으로 활용하던 오리를 잡는 장면이 영화에 나오는데, 처음에는 살아있었던 오리를 죽여서 털을 더 잘 뽑기 위해 끓는 물에 넣고 털을 뽑아서 조각조각 내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나온다. 마지막에 요리하기 직전의 고기가 되었을 때는 그게 원래 오리였다는 걸 알 수가 없게 되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알베르토의 말이 떠올랐다. 마트에서 보는 고기들은 이름표를 보고 소인지 돼지인지 닭인지를 파악할 뿐이고, 그 고기가 원래 살아있는 한 개체였다는 사실은 잊게 된다.

식생활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라서 누군가가 강제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고기를 먹는 사람과 먹지 않는 사람 모두에게 해당될 것이다. 현재 나는 고기를 먹는 사람이고, 점차 먹는 고기의 양을 줄여나가려고 노력하기로 했다. 그 노력에 도움이 될까 해서 이번에 읽은 '크루얼티프리'와 같은 종류의 책이 나오면 꼭 읽어보려고 하는 편이다. 올해 읽었던 비슷한 분야의 책들은 각각 동물권, 환경문제, 인간의 건강 등의 측면에서 고기 없는 식탁을 권했다. 이 책은 그 중 어디에 초점을 맞췄을지 궁금했다.



이 책은 환경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식생활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쳐서 환경에 해가 될 수 있는 일을 어떻게 줄여나갈 수 있는지, 어떤 고민이 필요한지를 담고 있다. 식생활 부분에서는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지구 환경에도 좋고, 동물권 면에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공장식 축산 자체도 동물에게는 좋지 않겠지만, 도축하는 방식만큼은 꼭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했다. 그리고 이런 분야의 책을 읽을 때 늘 드는 생각이지만, 동물의 권리를 '어느 범위까지 어느 정도로 보장해야 하는가'는 정말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이런 부분도 언급해줘서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의문들이 어느 정도는 해소되었다.



비건에 대한 책이나 다큐멘터리를 여럿 접하면서 여러모로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아직 고기를 먹고 있다. 다만 집에서 내가 직접 음식을 준비할 때는 고기를 먹지 않는 편이다. 바깥에서 밥을 먹을 때는 그게 쉽지 않고, 그걸 극복할 마음의 준비도 아직 되지 않아서 할 수 있는 부분을 우선 해나가는 편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왜 고기를 먹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솔직히 맛이나 영양 측면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 겪어야 하는 불편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게 컸다. 지금은 평일 대부분 내가 차린 밥을 나 혼자 먹으니까 괜찮지만, 회사에서의 점심 시간이나 친구와의 약속, 가족 식사 등을 생각하면 고기를 걷어내기가 쉽지 않다. 무리하다가 금방 포기하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차근차근 노력해보려고 한다.



그런 마음가짐을 가진 나에게 이 부분들은 위로가 되었다. 예전에 '우리가 날씨다'를 읽으면서도, 이미 고기를 먹지 않는 식생활에 대해 책을 낸 저자가 햄버거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먹은 후 자괴감을 느끼는 이야기를 읽으며 어떤 위안을 느꼈었는데 그런 느낌이었다. 한 사람이 완벽하게 비건의 삶을 유지하는 것도 소중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주 조금이라도 고기를 줄이려는 마음을 가지는 일이 지구 전체로 보면 더 유익할 것이다.



책에서는 동물과 함께 사는 일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작가도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으며, 그래서 반려동물과 가족이 되는 일에 대한 어려움과 미리 생각해야할 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어려움에 대한 경고도 하지만, 반려동물을 제대로 아끼고 돌봐준다면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일은 누군가의 인생에서 가장 보람찬 경험 중 하나라는 점도 밝혀둔다.



올여름의 이상한 폭우나 가뭄, 전 세계적으로 있었던 이상 기후만 보더라도 이미 지구가 많이 앓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어느 시대건 환경은 변화하고 있고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이 개입해서 안좋은 방향으로 너무 급박하게 변화하는 일은 자연스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인류는 또 해결할 방법을 찾아낼 수 있겠지만, 그때까지 지구가 버텨낼 수 있을지가 살짝 걱정되기 시작했다. 환경 문제를 볼 때마다 지구라는 집에 불이 붙은 걸 보면서 언젠가는 반드시 올 소방차를 기다리는 심정이 된다. 소방관이 너무 늦지 않기를, 그리고 도착하기 전에 집이 다 타지는 않기를 바라게 된다.



환경이나 동물을 위해 사람마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 있을 것이고, 감당할 수 있는 일이 다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실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내가 할 수 있는만큼만 시도하고 노력하면서 점차 범위를 넓혀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


크루얼티프리는 원래 동물 실험을 거치지 않은 제품을 일컫는 말이지만, 이 책에서는 조금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해서 쓰고 있다. 지구 환경에, 동물에게 유해하지 않은 생활 방식 전반이 모두 크루얼티프리다. 책을 쓰고 조사하면서 저자가 처음으로 떠올린 제목은 '친절하게 살자, 가볍게 걷자'였다고 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그 제목도 잘 어울렸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말대로 해를 입히지 않고 살려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더 친절하고, 더 푸르고, 더 지속가능한 곳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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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답지 않은 세계 - MZ에 파묻혀 버린 진짜 우리의 이름
홍정수 지음 / 부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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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집에서 엄마랑 같이 TV를 보고 있을 때였다. 정확히 어떤 프로그램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MZ세대라는 말이 계속해서 반복되었고, 방송을 보고 있던 엄마가 정확히 어디부터 어디까지의 세대가 포함되는지를 궁금해하셨다. 나도 정확히 몰라서 바로 검색했더니 의외로 범위가 거의 30년에 가까워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이걸 한 세대로 묶어도 되나 싶은 심정이었다. 엄마도 같은 생각이셨는지 그럼 우리집 10살 넘게 터울이 지는 우리집 삼남매는 죄다 MZ세대냐며 웃으셨다.

이렇게 넓은 범위를 한 덩어리로 묶다 보니 어떤 특징을 일반화하기는 어려워보인다. MZ세대에 포함되는 나도 막연히 '요즘 애들', '젊은 애들'이 그 세대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정확히 특징을 정의하기는 난감했다. 그런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책이 바로 이번에 읽은 '__답지 않은 세계'였다. 



마지막으로 다녔던 회사에 입사했을 때, 인사팀에서 '이 회사는 MZ세대가 90% 이상이에요' 하면서 웃길래,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회사라서 직원들 연령대가 낮은가보다 했다. 그런데 90%는 과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축소해서 이야기한 것 같은 느낌마저 있었다. 회사 대표가 내 또래였고, 80년대생을 손에 꼽을만큼 90년대생들이 많았다. 심지어 그 80년대생들도 모두 MZ세대로 묶이니 사실상 구성원은 거의 MZ세대 100%에 가까웠다. 그때 새삼 다시 이렇게 30년 범위의 사람들을 한 세대로 묶는 게 현실적으로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좀 과도한 일반화라는 의견에 동의했다.



작가는 MZ세대의 모순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플렉스와 짠테크가 공존한다거나, 집을 나만의 분위기로 꾸미는 것에 골몰하지만 결국 '오늘의 집' 그 자체로 보이는 점이나, 누구보다 개인의 특성과 취향을 중시하지만 그 특성을 고작 16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 MBTI에 열광하는 점 등이 그렇다. 이와중에 작가와 나의 MBTI 유형이 같고, 그 유형이 가장 소득이 낮은 유형이라는 걸 알고는 복잡한 기분이었다. 그럴줄 알았다는 심정...



MZ세대에게 할머니는 더 윗세대의 할머니와는 좀 다른 느낌일지도 모른다. 책에서 언급한대로 '맞벌이로 집을 비운 부모님의 빈자리를 메워 준 따뜻한 존재'로서의 할머니의 존재일 가능성이 크다. 나에게도 어쩐지 어려웠던 할아버지와 내가 외갓집에 도착한 순간부터 찐감자를 한 광주리 내미시던 할머니는 다른 느낌이다. '할매니얼'이라는 말에서 내가 따뜻한 어떤 이미지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를 책을 읽으며 알 수 있었다.



어느 세대든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순간이 많겠지만, 결혼이나 출산 등 예전에는 제법 당연하게 여겨지던 일들이 선택의 문제가 된 요즘은 굵직한 선택을 하게 되는 순간이 더 많아진 것 같다. 결혼을 할 것인지, 아이를 낳을 것인지, 인간관계를 이어갈지 끊어낼지, 채식을 할 것인지 등 삶의 방식에 대한 선택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더 윗세대에서도 해왔던 고민과 선택들이겠지만, 왜 이런 일들이 최근에 더 부각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책을 읽으며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었다.



정말 혐오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닌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 느낌이다. 혐오를 위한 혐오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나도 못견디게 혐오하는 것들이 몇 있다. 동물 학대가 그렇고 아동을 향한 폭력이 그렇다. 이런 부분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너무 쉽게 사소한 것에 대해 '극혐'이라든지 혐오를 내포한 표현들을 써오지는 않았는지를 반성하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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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이 쫓아오는 밤 (양장) - 제3회 창비×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 소설상 수상작 소설Y
최정원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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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틈틈이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더 몰입이 확 되는 내용이라서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었다. 군더더기 없이 내용이 쭉쭉 전개되면서도 중간중간 등장인물들의 비밀도 함께 담겨있어서 마지막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스릴러 소설일까 생각했는데, 다 읽고 나니까 스릴러보다는 성장 소설 느낌이 강했다. 많이 긴장하며 읽어야 하는 성장 소설. 출간되면서 바뀐 부분은 없는지 출간된 버전으로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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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먹고살려고 책방 하는데요 - 20년 차 방송작가의 100% 리얼 제주 정착기
강수희 지음 / 인디고(글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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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었다. 아직 사서라는 직업이 있다는 건 몰랐지만, 엄마가 매일 데려다주던 어린이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였다. 도서관에서 일하면 책으로 둘러싸여서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미취학 아동이었던 내가 나중에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다고 하면 아빠는 좋은 생각이라면서 도서관에서 일을 하다가 나중에 멋진 도서관을 직접 만들라고 했고, 엄마는 다른 멋진 직업을 가져서 원하는 만큼 책을 사는 것도 좋지 않겠냐며 다른 직업들을 권했다. 둘 다 멋진 대답이라서 나는 좀 더 고민해 보기로 했었다.

나중에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사서가 아니라 내 입맛대로 꾸민 서점 주인이 되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책만 들여놓고 좋아하는 커피랑 책이랑 파는 작은 공간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후에 독립서점이나 동네 책방이 우후죽순 생겨나던 시기에 나도 저런 공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서점 주인을 하면서 내가 만든 공간에서 책을 읽고, 쓰고, 팔면서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막연히 상상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하며 서점 주인이 쓴 책들을 읽다가 생각이 다시 바뀌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서점은 도서관과 다르다. 책이라는 물건을 파는, 완전한 자영업의 영역이었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현실적인 부분을 읽어내려가면서 내 수당 계산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누군가가 취향을 담아 만든 서점에 가거나 그 서점을 만들고 운영하며 만난 사람들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걸 더 좋아한다. 이번에 읽은 '제주에서 먹고살려고 책방 하는데요'도 그래서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다. 



여행지로서의 제주는 너무나 매력적인 곳이지만 그곳에서 사는 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하기가 어려웠는데, 책을 읽으면서 제주 생활의 불편함과 매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단점을 이과수 폭포처럼 쏟아낼 수 있을 만큼 불편한 점도 싫은 부분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다니, 제주 생활에는 도대체 내가 모르는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숨비소리를 들으며 행복하게 잘 살고 싶다는 의욕을 되찾은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좀 부러웠다. 사는 게 재미없게 느껴지거나 매일매일 똑같이 느껴지는 생활을 하다가도 숨비소리를 듣고 있던 저 순간을 떠올리면 다시 살아나갈 기운이 나겠구나, 싶어서 부러웠다. 제주에서 작가가 찾은 빡침 해소제인 노을과 살아갈 의욕을 불러일으킨 숨비소리를 언젠가 나도 직접 보고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가가 말했듯이 절벽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결국 또 다른 길이라는 말은 뻔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내가 요즘 막다른 길에 서있는 느낌이라 그런지 읽으면서 위로가 되었다. 내가 생각 못했던 방향으로 또 다른 길이 나타날 수도, 남들에게는 별거 아닐지 모를 별거가 나에게 나타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도 공감하며 읽었다. 애초에 인간관계가 그렇게 폭넓지 않아서 책에서 나온 것처럼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 빠져나가듯 인간관계가 정리된 경험은 아직 없지만 앞으로도 인간관계 그 자체에 너무 집착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서점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당신의 헌 책장' 코너였다. 단골손님의 취향이 묻어나는 중고책으로 책장 한 칸을 꾸며놓고, 거기에서 발생한 수익은 기부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책장 칸칸이 그 칸을 꾸민 사람의 설명이 붙어있는 것도 좋았다. 성수기에 어느 가게에나 있을 이른바 진상 손님에 대한 대처에서도 많은 고민과 어떤 원칙이 느껴졌다. 먹고살기 위해 시작했다고는 했지만, 서점 아베끄의 운영 방식에서 서점 주인만의 철학이나 원칙을 느낄 수 있어서 언젠가 제주에 가면 들러보고 싶어졌다.



빵 한 봉지를 사 먹어도 소확행 소리를 듣는 것에 진저리가 나는 것에도, 세상이 행복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말에도 깊이 공감했다. 내가 미처 몰랐던 행복이 있지는 않았는지 찾아보자는 처음 의도는 좋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이 사람들을 행복 그 자체에 너무 집착하도록 몰아가는 건 아닌가 싶을 때도 종종 있었는데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고 반가웠다. 시작은 좀 헐렁해야 오래 버틸 수 있는 것 같다는 말은 요즘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이었던 것 같다. 내가 요즘 모든 게 다 준비된 상태로 뭔가를 시작하고 싶어 하는 태도를 버려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이라서 그런지, 아베끄를 운영하며 '시작할 때의 헐렁함'의 소중함을 느낀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다.


아직도 내가 소소하게 꾸민 내 공간에서 책과 커피를 파는 상상은 종종 한다. 하지만 아직 실행에 옮기고 싶지는 않고, 언젠가 만들지도 모를 그 공간에서 나오는 수익이 내 생계를 완전히 책임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책이든 커피든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것으로 계속 남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직은 더 크다. 누군가가 큰 각오를 안고 자신의 취향을 담아 만든 서점들을 다니면서 좋은 책을 만나고 읽을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렇게 나만의 취향을 만들어나가다가 먼 미래에 나도 내 취향을 담은 공간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한다. 그때 내가 만들 공간에 이번에 책을 읽으며 만났던 서점 아베끄의 영향도 조금은 있을 것 같다. 언젠가 제주도에 가면 아베끄에서 마음에 쏙 드는 책을 사서, 북스테이 오 사랑에 묵으며 찬찬히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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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자답 나의 1년 2022-2023
홍성향 지음 / 인디고(글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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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다이어리 소개글을 쓴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2023년 다이어리며 달력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곧잘 쓰는 로이텀은 11월만 돼도 슬슬 내가 원하는 색상이 품절되기 때문에 올해도 빨리 준비해야 할 것 같아서 10월 말이 되니 마음이 슬슬 급해지는 중이었다. 새 다이어리를 사기 전 문득 올해 내 다이어리에는 어떤 내용들이 채워졌나 들여다보다가 올해 나에게 알게 모르게 굵직한 일들이 많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다이어리에 기록을 해두니 이렇게 한 해를 돌아볼 때 좋구나, 하며 기록의 중요성을 체감했지만 매번 이걸 이렇게 다 돌아보긴 좀 번거롭지 않나 싶었다. 그러다가 질문을 통해 나의 1년을 찬찬히 돌아볼 수 있는 책을 발견했고, 운 좋게 미리 읽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내가 채워야 하는 칸이 많은 책은 읽어본 적이 없어서 어떤 내용을 어떻게 채우게 될지 기대가 됐다.



너무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책과 귀여운 스티커 세 장이 같이 왔다. 스티커는 생각 못했던 거라서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귀여운 스티커를 사모으지만 아까워서 못쓰는 나는, 요 스티커도 결국 잘 모아놓게 되겠지만, 다꾸하는 사람들은 기뻐할 것 같은 귀여운 스티커였다.



책의 구성은 심플했다. 하지만 질문들도 심플한 편이었지만 내가 채워나가야 할 답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올해 먹었던 음식 중에 제일 맛있었던 게 무엇이었는지를 묻는 간단한 질문에도 선뜻 답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고민하는 동안 내가 하나를 꼽을 수 없을 만큼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었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올해 분명히 안 좋은 일도 좋은 일도 많았는데 이상하게 지나고 보니 다 좋은 일처럼 느껴진다.



책의 첫머리에는 책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은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등이 적혀있었다.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고 원하는 때에 원하는 부분부터 채워나갈 수 있다고 되어있어서 마음이 편했다. 사실 나는 책이든 뭐든 강박적으로 앞에서부터 채워나가는 편인데, 이 책은 시작부터 그럴 필요가 없다는 문장으로 내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실제로 읽다 보니 순서대로 답을 채울 수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나는 책을 펼치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올 한 해를 부정적으로 기억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체크하면서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놀랐다. 힘들긴 했어도 끔찍할 정도는 아니었지, 그 정도면 걱정할 일도 아니었지, 같은 소리를 하면서 부정적인 감정들에는 선뜻 체크를 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보면서, 힘든 일이든 기쁜 일이든 지나고 나면 다 아주 큰일은 아니라는 걸 새삼 느꼈다. 그래서 책에 나온 저 문장에 공감하며 체크했다. 실제로 내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채워야 할 부분에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책이 부담스럽지 않았던 이유는 책의 중간중간에 저런 식으로 부담을 덜어주는 문장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을 때 약간 죄스럽다고 느끼는 나에게는 저 말도 위로가 됐다. 답을 좀 채워볼까 하고 책을 열었다가도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발견했거나 하기 싫은 날은 부담 없이 책을 덮었다.



사실 질문들이 까다롭지는 않았다. 쉬운 질문이지만 답을 생각해서 써 내려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 이야기를 내가 쓰는 건데 생각보다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해서 놀랐다. 심지어 남은 두 달 동안 답이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쉽게 빈칸을 채울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해결책을 찾았다.



아예 답을 12월로 미루고 싶은 질문들은 마음 편히 비워놓고, 12월에 답이 바뀔지도 모르지만 지금 답을 하고 싶은 질문에는 포스트잇에 답을 적었다. 나중에 바뀌었는지 안 바뀌었는지 확인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12월이 기다려진다.



올해를 돌아보는 파트도 있지만, 올해를 돌아보며 얻은 인사이트로 내년을 그려보는 파트도 있었다. 이 부분도 12월쯤 되어서 채워나가게 될 것 같지만 질문을 읽고 나니까, 구체적인 계획이나 목표는 아니더라도 어렴풋이 내년 생각을 하게 된다.



고민만 하며 혼란스러워하기보다는 실제로 어땠는지 실체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에도 깊이 공감했다. 올해는 이래저래 생각이 나 고민이 많았던 한 해라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생각을 멈추거나 안 할 수는 없으니까 생각의 방향을 잘 잡을 수 있도록, 그리고 생각 그 자체에 너무 매몰되지 않도록 해야겠다. 남은 11월과 12월 동안 차근차근 질문의 답을 찾으면서 내년에 어떻게 살아나갈지도 생각해 봐야겠다.


책 리뷰를 하려고 보니 문득 이 책의 카테고리를 무엇으로 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검색을 해보니 책은 에세이로 분류되어 있었다. 저자가 분명히 있는 책이지만 내가 채울 칸이 더 많아서인지 내가 만드는 에세이 같은 느낌이었다. 아직 올해가 2달이나 남아서 모든 칸을 채워볼 수는 없었지만, 질문들을 읽고 답을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남은 2달 동안 내가 어떤 답을 찾게 될지 기대가 됐다. 아직 채우지 못했거나 포스트잇으로 답을 적어놓은 질문들을 12월에 다시 읽어볼 생각인데, 그때 내가 만족스러운 답을 적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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