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설계자 - 장르불문 존재감을 발휘하는 단단한 스토리 코어 설계법
리사 크론 지음, 홍한결 옮김 / 부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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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하면 너무 mbti에 과몰입하는 느낌은 있지만, 네 자리 중 두 번째 자리가 N인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공상에 가까운) 생각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나는 mbti 검사를 최초로 했던 대학생 때부터 최근까지 계속 같은 유형이 나온다. infp인데 p와 j는 그럭저럭 60:40 정도로 반반 느낌인데, n과 s는 80:20 정도로 n의 비중이 월등히 높다. 심지어 가족 구성원 전원의 둘째 자리가 다 n이라 기본적으로 다들 쓸데없는 상상들을 많이 해서, 나는 다들 이렇게 들숨에 공상을 하고 날숨에 망상을 하며 사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어느날 이렇게 공상만 할 게 아니라 이야기로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아이디어 노트를 쓰기 시작했다. 막상 써놓으려니 너무 평범한 것 같고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아이디어를 써놓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아이디어가 10개쯤 모이면 그중 하나는 써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고, 올해 초 10개가 찼다. 그리고 공상을 하는 것과 그 공상을 짧게 적어놓은 아이디어로 한 편의 이야기로 완성하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이라는 걸 한글파일을 켜는 순간 깨달았다. 마감이 있는 것도 아니니 이건 천천히 생각해보자고 슬쩍 미뤄놓고 지내다가 스토리 설계자 출간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어쩌면 미뤄놓은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스토리의 축은 외적 투쟁이 아니라 내적 투쟁이다. 주인공이 '외적' 플롯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풀기 위해 '내적'으로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극복하고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

책을 펴고 들어가는 글을 읽으면서 이미 '아 나는 시작부터 완전히 잘못 쓰고 있었구나'라고 느꼈다. 아무리 매력적이고 흥미진진한 사건들을 꽉꽉 채워도 그걸 관통하는 하나의 '내적' 투쟁이 뚜렷하지 않으면 독자들에게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읽었던 매력적인 이야기들이 대부분 그랬다는 걸 깨달았다.


작가들이 골치 아플 수밖에 없는 게, 스토리에 반응하는 행동이야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지만, 독자의 뇌를 장악하는 스토리를 '쓰는' 능력은 처음부터 타고 나지 않는다.

이 부분도 공감하며 읽었다. 가끔 스토리나 소재는 평범한데 작가가 글을 너무 잘 쓰는 바람에 필력에 멱살 잡혀서 끝까지 읽는 경우가 드물게 있지만, 반대로 소재가 너무 독특하고 스토리가 참신해서 글 자체는 살짝 아쉽지만 끝까지 읽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책에서 예로 든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빈말이라도 작가가 글을 잘쓴다고 할 수는 없는 수준이지만 스토리의 힘으로 1억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고 한다. 문장을 갈고 닦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스토리를 체계적으로 만드는 노력이 우선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리텔러로서 당신이 할 일은 주인공이 무엇을 깨닫는다고 말로 일러 주는 게 아니라, 주인공에게 그 깨달음을 가져다주는 사건 속에 독자를 떨어뜨려 놓는 것이다. 작가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장면 속으로 너무 늦게 뛰어드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이런 내용을 마주칠 때마다 '정말 그랬나?' 하며 그동안 재미있게 읽었던 문학 작품들을 떠올려 봤는데 거의 예외없이 들어맞아서 신기했다. 독자한테 하나부터 열까지 다 설명하지 말고 주인공의 머리, 주인공이 겪는 사건 속에 떨어뜨려 놓으라는 말이 와닿았다. 구구절절 설명을 하는 게 이미 개연성이나 설득력이 약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작가들이 가끔 저지르는 실수가 있다. '아이의 생각'을 지나치게 단순하고 피상적이며 뻔하게 그리는 것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 아이들 생각은 더 원초적이기에, 어른들 생각보다 훨씬 정직할 때가 많다. 사고의 깊이도 어른보다는 깊지 않을지언정 어른 못지 않다.

이야기를 쓰려고 이것저것 작법서를 찾아보며 캐릭터를 잡아가려고 할 때 나한테는 '어린이'가 가장 어려웠다. 내 어린이 시절은 너무 한참 지나버렸고, 가까운(!) 어린이가 없어서 기준을 잡기가 쉽지 않은가 싶었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어린이를 너무 뻔하게만 그리고 있지 않았나 반성했다. 책에서도 언급한 <앵무새 죽이기>,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은 나도 정말 좋아하는 소설인데, 다시 읽으면서 어린이를 어떻게 그렸는지 살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라고 질문하면서 뿌연 안개를 몰아내고, 스토리의 인과경로를 머릿속에 명확하게 그려 금방이라도 생동할 것처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물음의 답은 항상 과거에 있다.

드라마나 책을 볼 때 처음에는 도대체 누가 이런 (긍정적으로) 미친 생각을 했을까 소름끼쳐하며 읽다가 끝날 무렵에 수습이 안되는 걸 보면서 안타까웠던 적이 가끔 있었다. 물론 처음에 뿌려놓은 떡밥 회수까지 싹 다 하고 깔끔하게 끝나는 작품도 있지만, 개연성 어디갔냐고 안타까워하게 만드는 작품도 있다. 후자가 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왜?"를 물으면서 쉽지는 않겠지만 인과관계를 탄탄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컨대, 주인공을 항상 더 힘들게 해야 한다. 절대 봐주지 말자. 나쁜 일이 일어날 만하면, 일어나게 하자. 주인공이 상상한 최악보다도 더 나쁘게 만들자. 한마디로, 작가는 끊임없이 주인공의 발목을 붙잡을 의무가 있음을 잊지 말자.

이건 사실 작법보다는 내용 자체가 와닿아서 옮겨 적은 부분이었다. 주인공도 몰랐던 깊숙한 내면의 힘을 최대한 끌어내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작가는 주인공을 봐주면 안된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나도 주인공이긴 한가보다...하면서 위로 아닌 위로를 받았다. 이야기를 쓰게 되면 내 주인공도 너무 봐주지 말고 필요하면 가차없이 굴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책을 다 읽고 나니까 내가 이야기를 쓰려고 다짐한 후에 왜 막막했는지, 어디에서 막혔는지를 알 수 있었다. 물론 진짜 도움이 되려면 읽는 걸로 끝내지 않고 적용을 해야겠지만, 적어도 쓰기 전에 큰 방향을 잡아준 느낌이다. "왜?"와 "그래서?"라는 질문을 아끼지 않으면서 인과관계가 탄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인공이 외적 목표를 달성하도록, 그리고 내적 변화가 뚜렷하게 보이도록 잘 궁리해봐야겠다. 언젠가 아이디어를 한 편의 이야기로 완성하고 싶은 사람들이 읽으면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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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하게 살아 있는 캐릭터 만드는 법 - 심리학으로 풀어낸 개성 넘치는 캐릭터 창작법 예비 작가를 전업 작가로 만드는 작법서 시리즈 2
키라앤 펠리컨 지음, 정미화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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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정말 매력적인 이야기를 읽으면 사건에 집중하며 읽었었다. 도대체 어떻게 사건을 이렇게 꼼꼼하게 설계했을까, 이런 이야기는 어떻게 생각해냈을까 하고 작가에게 감탄했었다. 요즘도 정말 잘 짜인 이야기를 읽으면 사건을 꼼꼼하게 만들어낸 작가의 상상력에도 놀라지만, 없던 인물을 창조해낸 것에 더 크게 감탄한다.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상상하고 설정해서, 성격의 어떤 부분을 드러내고 감출지를 생각해내는 게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다. 작가들은 어떤 방법으로 인물의 성격과 삶을 만들어내는지 막연히 궁금해하던 차에 이 책을 발견했다. 작품 속 인물을 어떻게 창조하는지에 대해 알면, 앞으로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 등장 인물의 대사나 행동에서 더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몰입했던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항상 등장인물이 그 후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항상 신경이 쓰였다. 요즘도 1년에 한두번은 꼭 읽는 마틸다를 처음 읽었을 때 특히 그랬다. 책을 덮고 나서도 마틸다가 어떤 어른이 되었을지가 계속 신경쓰였다. 책에서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마틸다 생각이 났다. 처음에는 마틸다에게만 집중했었는데, 여러 차례 읽으면서 다른 인물들의 매력도 발견할 수 있었다. 로알드 달은 어떻게 이렇게 매력있는 인물들과 사건을 만들어냈을까 내내 감탄하며 읽었다.



문학작품을 읽었을 때의 장점으로 간접 경험을 꼽는 사람도 많다. 어릴 때는 글로 읽는 간접 경험이 크게 의미가 있나 싶었는데, 책으로 어떤 상황을 한번 접해본 것과 아닌 것에는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은 암담한 상황에 처했을 때도 비슷하게 절망했던 소설 속 인물들의 태도나 마음가짐 같은 것들을 떠올려보며, 그래도 내 상황이 그 지경으로 최악은 아니라는 어떤 안도를 느낄 때도 있고 사람 사는 건 결국 다 비슷하구나 하는 위로를 받을 때도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매력적인 인물은 항상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 이야기 속 등장인물뿐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연애를 시작할 때는 상대방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궁금하고 신경이 쓰이다가도 연애가 끝날 무렵에는 무덤덤해지는 그런 것과 비슷하지 않나 싶었다. 작가들은 등장인물을 사이에 두고 독자와 이런 밀당을 펼치는 건가 싶어서 새삼 대단하다고 느꼈다.



결국 매력적인 인물을 잘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인간을 잘 관찰하고 공감하고 특징을 잘 뽑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특징을 어떻게 설정해서 캐릭터를 만들어야할지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위해, 책에서는 빅 파이브 모형을 제시해서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처음 접할 때 나도 빅 파이브 모형을 생각하며 인물을 분석하게 될 것 같다. 등장 인물의 사소한 행동이나 대사가 왜 나왔는지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책을 읽고 나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읽기 전에는 소설이나 시나리오를 쓸 때 인물 캐릭터를 잡아가는 작법 같은 것을 담고 있는 책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법이라기 보다는 심리학에 가까운 내용들을 읽다 보니 허구의 인물을, 그것도 읽는 사람이 매력을 느끼는 인물을 만드는 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야기의 매력은 사건이 얼마나 참신하고 몰입이 되는가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건들도 결국 사람이 벌이는 일이라는 걸, 그래서 내가 매력을 느끼고 몰입했던 대상은 사건보다 인물일 때가 많았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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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쁨 기록 생활 - 행복은 셀프. 좋은 순간을 채집하는 행복 기록 일기장
김혜원 지음, 림예 그림 / 인디고(글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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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회사에서든 개인적으로든 기록을 제법 사소한 것까지 꼼꼼하게 하는 편이다. 성격이 꼼꼼해서가 아니라 그 반대라서 더 기록에 집중한다. 가벼운 건망증은 학교다닐 때부터 있었고 적어놓지 않으면 깜빡깜빡하는 일도 잦았다. 학교 다닐 때야 내가 일정을 잊으면 내 점수를 까먹고 끝이었지만, 회사에서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서 약간 강박적으로 일정을 체크하고 꼼꼼하게 적어두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하는 기록들은 그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있었던 일들을 되도록 잘 체크해두려고 한다. 여러 다이어리를 써보다가 작년부터 불렛저널에 정착해서 내 마음대로 뭘 적을지 꾸미는 중이다. 


https://m.blog.naver.com/mindyland/222649736786

작년에는 저렇게 세 권을 쓰고 있었고, 올해도 10년일기와 불렛저널은 유지하기로 했다. 작년에 썼던 불렛저널은, 내가 프리랜서라서 더 그랬겠지만 일 스케줄이 집중적으로 써있었다. 올해는 회사와 내 생활을 분리해서 기록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불렛저널에 어떤 항목들을 넣을까를 작년 말부터 고민했다. 그때 만났던 책이 <작은 기쁨 기록 생활>이다. 내가 하루를 알차게 살기 위해 시간관리를 어떻게 할 것이고 열심히 지켰는지를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루하루의 사소하게 즐거웠던 일과 작은 기쁨도 함께 기록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책은 에세이 카테고리에 들어가 있지만, 책과 다이어리의 중간쯤이라고 느껴졌다. 매주 미션이 있는데 어쩌면 정말 사소할 수도 있는 작은 기쁨들을 채집해서 기록하는 일이다. 책의 첫머리에 적혀있었던 '행복은 크기보다 빈도가 중요하고, 인생은 자주 웃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제목들을 훑어보면서 1월 첫 주에 어떤 미션에 도전해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새로운 회사에서 보내는 첫 주라서 이 미션을 적당하지 않아보였지만, 지난 6개월동안 이렇게 살았던 기억이 나서 반가운 미션이었다. 시간 여유가 있어서 간단한 음식이라도 꼭 그릇에 잘 담아서 먹으려고 노력했었는데, 책에서 미션으로 보니 내가 잘 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한 줄 일기는 첫 주에 도전했던 미션은 아니었지만, 올해의 불렛저널을 구성할 때 포함시켰다. 불렛저널 설정을 하면서 이 책에서 아이디어를 제법 많이 얻었다. 나는 월별로 한줄일기 페이지를 따로 뒀다. 한 줄씩 쓰면 내용이 적을텐데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오늘자로 1월 한줄일기가 8줄이 된 걸 보니 나중에 모아서 읽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



올해 첫 미션으로 고른 것은 바로 이 미션이었다. 긴 출퇴근 길 위에서 음악은 꼭 듣고 있을테니까 적당하다고 느껴졌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곡들로 채워진 플레이리스트를 랜덤으로 재생하면서 출근하는데, 그날 들었던 곡들 중에 마음에 들었던 세 곡을 골라서 기록했다.



이게 1월 첫 주에 내가 들었던 노래들 중에 그날그날 마음에 들었던 곡들. 듣기는 3곡 이상 들었지만 듣다보면 유난히 그날따라 가사가 마음에 꽂히는 곳이 있기도 했고, 옛날 노래가 생각나서 일부러 찾아듣기도 하고 그랬다. 모아놓고 보니까 내 플레이리스트는 진짜 중구난방이구나 싶어서 좀 웃겼다. 주말에는 따로 노래를 찾아듣지는 않았고, 청소하고 여명이랑 노는 동안 유튜브로 음악을 계속 틀어놨었다. 앞으로도 노래를 들을 때 오늘의 세 곡에 어떤 곡을 넣을지 두근두근하며 듣게 될 것 같다.


책에는 다양한 미션들이 있는데, 그 모든 미션이 내 기쁨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했다. 새해에 비장한 각오로 목표들을 세우면서, 내 기쁨을 위해서 어떤 사소한 것들에 도전할지를 함께 생각하는 게 즐거웠다. 1월에 할 미션들은 다 골라놨는데 어떤 내용들로 책을 채워나갈 수 있을지 기대된다. 새해에는 나 자신의 기쁨에 더 집중하고 사소하게라도 좀 더 자주 웃고 싶은 사람들이 한번쯤 보면 좋을 것 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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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선씨네마인드
박지선.황별이.최윤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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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어떻게 된 건지 영문을 모르겠지만 유튜브 알고리즘의 안내로 처음 지선씨네마인드를 보게 되었다. 평소에 범죄 스릴러 영화를 많이 보기도 하고, 그것이 알고싶다를 빠뜨리지 않고 보는 편이기는 하지만, 유튜브에서는 고양이 영상이나 일상 브이로그 같은 평화로운 콘텐츠를 많이 보는데 왜 지선씨네마인드가 내 알고리즘에 걸려들었는지 모르겠다. 조금만 볼까 하고 잠깐 틀었다가 끝까지 보고 다른 편도 찾아봤을 정도로 재미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인기가 있어서, 작년 가을에 지선씨네 마인드는 무사히(!) SBS 정규 방송으로 편성되었다. 

소개하는 영화들 대부분은 이미 봤던 영화고, 타짜나 화차 같은 영화들은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영화라서 몇번씩 봤는데도 범죄심리학자의 눈으로 보니까 내가 못봤던 부분들이 숨겨져 있어서 방송을 볼 때마다 신기했다. 그렇게 재미있게 봤던 방송 콘텐츠가 책으로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다. 영상으로 한번 봤던 내용인데도 책으로 읽으니까 새로운 느낌이라서 재미있게 읽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도 살짝 소름이 끼쳤다. 특별한 동기가 없는 사이코패스형 범죄가 늘어나고 그것을 다룬 영화들을 봐와서 더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영화 추격자의 저 장면에서 없는 동기를 만들어내라는 기동대장의 모습을 보며 윗사람들이란...정도의 생각을 하고 넘어갔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생각하니 동기가 없는 살인사건이라니 그렇게 무서운 일이 있을까 싶고, 그걸 영화를 보는 당시에는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에 소름이 끼쳤다.



밀양은 다 보고 나서 생각이 많아지고 여운도 길었던 영화였다. 그런데도 정확히 무엇 때문에 그런지는 몰랐는데, 지선씨네마인드에서 분석한 내용들을 보고 읽으면서 왜 내가 찜찜한 마음을 가졌는지, 무엇이 해결되지 않아서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계속 생각이 났는지를 알 수 있었다. 영화 자체에 대한 분석도 인상적이었지만, 머리로 하는 공감과 감정으로 하는 공감에 대한 이야기도 마음에 오래 남았다.



내가 좋아하는 화차를 다룬 편도 재미있게 보고 읽었다. 화차는 원작 소설도 재미있게 읽었고, 스토리를 이미 다 알고 있는데도 영화도 흥미진진하게 봤다. 그 영화 속 사람들의 심리를 분석한 지선씨네마인드도 당연히 재미있었다. 아직 영화를 보기 전인 사람들이 이 글을 먼저 읽게 될까봐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하기가 조심스럽고, 책을 읽으면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화차편 마무리 멘트를 소개해봤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러고보니 여러 미디어에서 요즘 부쩍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을 많이 듣게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못느끼다가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그게 가스라이팅이었구나 싶은 그런 것들이 나에게도 있었다. 의도적으로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각하지 못하고 남에게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도 있을테니,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인지하지 못한 채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서 새삼 심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각한 범죄가 일어나고 가해자의 얼굴이 공개되면 항상 충격을 받는다. 출퇴근 길에 지하철에서 언제든 만날 수 있는 보통 사람의 얼굴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범죄자는 얼굴만 봐도 티가 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범죄자들은 눈만 봐도 뭔가 쎄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내 똥촉으로는 절대 구별을 할 수 없겠으니, 알아볼 수 있는 가이드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심리 분석을 하면서 비슷한 유형의 실제 사건이나 실제 인물에 대한 이야기도 중간중간 소개를 하고 있어서, 사람에 대한 이해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한다고 밝힌 머리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픽션이기는 하지만 영화는 결국 현실에 닿아있기 때문에 영화 속 사건과 사람들을 분석하는 내용을 듣고 있다보면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고 있는 느낌도 들었다.


포스팅을 하려고 제목을 쓰려는데 문득 이 책의 장르가 무엇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범죄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영화 속 인물의 심리 분석이니까 사회과학일까 싶었는데, 출판사에서는 이 책을 예술/대중문화 카테고리에 넣었다. 처음에는 예술이라고? 하며 의아한 마음도 들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애초에 영화가 없었으면 나오지 않았을 책이니 자기 카테고리를 알맞게 찾아간 것 같았다.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 속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왜 그런 사건이 일어났을까? 등을 생각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를 다루다 보니 방송으로는 시각자료들을 풍부하게 볼 수 있어서 몰입이 잘 되어서 좋았고, 책으로 읽으니 내 호흡에 맞게 속도를 조절하며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좋아하는 방송이 짧게 편성되어서 아쉬운 마음이었는데 책이 출간되어 두고두고 읽을 수 있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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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단어 1분으로 끝내는 지구공부 - 지구의 탄생부터 미래까지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 1·1·1 시리즈
마틴 레드펀 지음, 이진선 옮김 / 글담출판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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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배웠던 복잡한 공식같은 것들이 과학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라서 내 손으로 과학 분야 책을 골라서 읽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과학 책들도 크게 거부감을 갖지 않고 읽게 되었다. 어린이 책을 만들던 시절에 과학책을 만들면서 원고를 들여다 보고 팩트 체크를 하려고 여러 책들을 뒤적거리다가 과학이 내가 겁먹었던 것만큼 지독하게 어렵지는 않다는 걸 깨달아서 그 후로는 종종 찾아 읽게 되었다. 뇌과학이나 생물에 대한 책들로 시작해서, 요즘에는 우주나 지구에 대한 책도 종종 찾아 읽지만 여전히 용어들이 좀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올해 환경과 지구에 대한 책들을 읽으면서도 간혹 개념이 어렵거나 사실 여부를 알 수 없어서 책을 읽다가 검색을 한 적이 여러번이었다. 그러다가 <1일 1단어 1분으로 끝내는 지구공부>를 발견하고 어떤 책인지 흥미가 생겼다. 청소년이 읽을 수 있는 수준이라면 과학 상식이 별로 없는 내가 읽어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과학 공부를 제일 열심히 하는 나이일 청소년들이 이해하는 수준이 훨씬 높을 텐데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 하며 기대 반 불안 반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 들어가는 글을 읽으면서 어려운 지구과학에 대한 내용을 이해 못할까봐 걱정했던 마음을 많이 내려놓을 수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별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그 경이로운 별에 대해 더 알기 위해 생각해볼만한 것들은 무엇인지를 찬찬히 써내려간 내용을 읽으면서 앞으로 지구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읽게 될지 기대가 되었다.



항상 지구와 우주에 대한 책을 읽다 보면 도대체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걸 알아냈을까 하며 놀라고, 심지어 그 기술들이 계속 개선되거나 새로워진다는 것에 감탄하게 된다. 지구에서 소규모 지진들이 매일매일 일어나고 있고, 그 지진들이 지구 내부를 읽는 데 사용된다는 건 읽을 때마다 놀랍다.



긴 지구의 역사가 쌓이는 동안 땅의 모양도 많이 달라졌다. 판이 충돌하고 한쪽이 다른 쪽의 밑으로 들어가는 현상이 있다는 걸 학교다닐 때 교과 지식으로는 배웠지만, 이 책에서 앞뒤 상황과 함께 읽었더니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화석만으로 지금은 없는 공룡의 모습과 생태를 추측하는 것도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지구의 탄생부터 지금까지를 24시간으로 가정하면 공룡은 밤 11시 38분에 멸종했고, 현생 인류가 아프리카를 벗어나기 시작한 건 밤 11시 59분 58초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새삼 인류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가장 나중에 등장한 인류가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지구에 큰 영향을 미치며 지구를 장악하다니. 지구의 역사를 살펴보다가 읽어서 그런지 '언젠가는 인류가 지구를 장악하고 있는 이 시대도 끝날 수 있다'는 내용이, 환경 분야 책에서 읽었을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지구의 탄생부터, 역사 그리고 미래까지를 어렵지 않게 풀어서 다루는 책이라서 읽고 나면 내가 살고 있는 지구에 대해 조금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든다. 내용을 쉽게 풀어놓기도 했지만 한 꼭지가 짧은 호흡으로 되어 있어서 읽기가 더 편했다. 앞으로 지구나 우주에 대한 책을 읽더라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깊고 넓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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