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해방 - 치매, 암, 당뇨, 심장병과 노화를 피하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법
피터 아티아.빌 기퍼드 지음, 이한음 옮김 / 부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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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부쩍 읽은 책과 읽고 싶은 책 목록에 건강과 관련된 책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도 그렇고 주변 친구들도 그렇고 어딘가 한 군데는 아파본 경험을 직간접적으로 하면서 관심을 두고 싶지 않아도 신경을 쓰게 된다. 그러던 중에 질병 해방 출간 소식을 듣고 기대 중이었다.

나는 특히 심장병 파트에 관심이 많았는데, 친가 쪽이 대체로 심장이 약한 편이라 항상 은은한 불안을 안고 있어서 그랬다. 큰아버지는 심장 질환으로 돌아가셨고, 아빠는 환갑도 되기 전에 심혈관에 스텐트를 여러 개 넣으셨다. 나도 일상 생활에 지장은 없지만 심장 판막이 조금 덜 닫힌다는 이야기를 검진에서 들었던 터라 심장병을 어떻게 조금이라도 예방할 수 있을지 궁금함을 안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부분은 책 본문이 아니라 <느리게 나이 드는 방법>의 저자 정희원 교수님의 추천사 중 한 부분인데, 읽으면서 뜨끔했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건강에 대한 걱정은 있으면서도 건강을 위해 크게, 아니 작게라도 노력하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유전적으로 심장 질환과 멀지 않은 자에게 좀 공포스럽게 읽혔던 대목이었다. 특히나 큰아버지의 케이스가 돌연사였기 때문에 더 그랬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무에게나 찾아올 수 있고 가장 흔한 증상이 돌연사인데 과연 예방이 가능한가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병의 원인을 책에서는 여러 가지로 지목하는데, 단호하게 병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만이 심장병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언급한다. 심지어 나이와 관계없이 찾아올 수 있기 때문에 일찍부터 예방 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서 정신이 들었다. 그래도 한 50대쯤부터 조심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더니 30대, 혹은 그 이전을 이야기해서 놀랐다.


이건 몰랐던 이야기인데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다. 토끼나 닭이 아니라면 콜레스테롤을 걱정하며 콜레스테롤 높은 식품을 피하지는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읽고 좀 놀랐다. 왜 그런 오해가 생겼고 사람들의 인식에 뿌리를 깊게 내렸는지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현대병 파트가 끝나고 다음 장에는 각종 현대병에 전술적으로 맞설 수 있는 방법들이 등장했다. 소제목만 보고는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읽다 보니까 잘못 알고 있었던 내용들도 있었고 새롭게 알게 된 것들도 많았다.


운동이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운동의 어떤 기능 때문에 질병 예방 차원에서 해야하는지, 어떤 부분에 더 집중해야 하는지는 책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근육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근육이 힘을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부분을 읽으며 운동 계획을 조금 수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책에서 각종 현대병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언급한 것은 현대인이 더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데, 물리적으로 몸 건강을 챙기는 것만큼 정서적인 부분에도 신경을 써야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동안 왜 부모님이나 다른 친척 어른들이 미래에 대한 계획을 이야기할 때 묘한 안도감이 들었는지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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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지음 / 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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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느 회사에서 면접을 볼 때였다. 직무와 관련된 질문은 대강 마무리가 되었는데 시간이 남은 건지 아니면 내가 스트레스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알고 싶었는지, 뜬금없이 면접관은 나에게 여가시간에 뭘 하는지 물었다. 요즘 같으면 고양이랑 시간을 보낸다고 했겠지만 그때는 아직 여명이와 만나기 전이라서 나는 제일 만만한 독서를 내밀었다. 무난한 답변을 했으니 그냥 넘어가주면 좋으련만 그거 말고는 뭘 하는지 제법 집요하게 물어서 영화 감상과 야구경기 관람 같은 것들을 읊었다. 면접관이 웃으면서 눈 관리를 잘 해야겠다고 해서 처음으로 내 취미 활동에는 눈이 꼭 필요하다는 걸 인지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면접을 계속 떠올렸던 건 그때 내가 처음으로 눈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제목만 보고는 알 수가 없어서 나는 작가가 말하는 지랄맞음의 장르가 궁금했다. 일상적으로 먹고 살면서 겪는 종류일지 아니면 내가 상상하기 어려운 분야일지. 궁금함을 안고 작가 소개를 봤더니 내가 가장 공포스러워하는 종류의 지랄맞음임을 알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책을 열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 나가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는 게 민망했을 정도로 지랄맞은 인생에 씩씩하게 맞서거나 때로는 순응하며 살아나가는 작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책의 작가는 15살 무렵에 시력을 점점 잃어갈 것이며 종국에는 앞을 못 보게 될 것이라는 판정을 날벼락같이 받게 된다. 앞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작가가 도서관에 가서 쫓기듯이 책을 읽는 장면이 안타까워서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그 장면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책을 최대한 읽고 싶었을 마음도 이해가 되는 한편, 눈을 무리하게 써서 시력을 잃는 속도가 더 빨라지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며 읽었다. 작가의 어머니도 같은 마음이셨는지 책을 읽고 온 딸에게 책 좀 읽지 말라지 않았냐고 호통을 친다. 아마 대체로 안타까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그후로 어머니와 작가는 읽는 내 입에서 ‘제발 그만...’이라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싸우고 화해하는 걸 반복한다. 어머니는 딸에게 닥친 현실을, 시력을 잃는 당사자보다도 못 받아들이고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그 과정에서 모녀 갈등이 극에 달했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해 읽는 내가 다 속상할 지경이었다.


글을 시작하면서 작가의 씩씩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해놓고 왜 필사 문장들은 이렇게 슬프고 먹먹한가 싶을 수도 있다. 자신의 일과 삶을 대하는 태도는 더없이 씩씩하고 무던한 작가가 타인과의 관계나 타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더러 약한 마음을 드러낼 때가 있었다. 장애 자녀를 둔 부모의 이야기에서도 그랬지만 장애를 가진 부모를 챙기느라 일찍 철이 든 어린 자녀의 이야기에 작가도 나도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다.


작가와 어머니가 갈등을 빚는 모습을 안타깝게 읽고 있었는데, 그건 차라리 행복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곧 하게 되었다. 그렇게 염려하던 어머니와 작가의 이별이 너무 일찍 찾아온 것이다. 책에는 작가가 가까운 주변인과 작별하는 장면을 여러 번 담아냈는데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중 어머니와의 작별이 제일 안타까웠다. 나 없으면 어떻게 살 거냐고 호통을 치던 어머니의 모습을 책 초반에 읽어서 그런지 마지막까지 딸을 걱정하셨을 마음이 짐작되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집안 내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읽는 내 눈에는 작가의 외가 식구들이, 외람되지만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 캐릭터처럼 느껴졌다. 작가의 외할아버지도 너무하시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구박을 하시다가, 또 슬그머니 챙기시다가 하는 모습이 어머니와 판박이였다. 작가를 타박하는 장면에서는 마음은 그렇지 않을 거면서 왜 저렇게까지 말씀을 하시나 하며 나까지 섭섭했는데, 작가가 시력을 잃는다는 소식에 통곡을 하시고 도시의 장애인학교로 떠날 때 언제든 돌아오라는 인사를 덧붙이는 모습에는 괜히 나도 울컥했다.


직업 선택의 폭이 좁다는 말을 붙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작가의 앞에 주어진 선택지는 적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의무라고 할 정도로 마음에 차지 않았던 직업이었던 것 같지만, 일을 거듭하며 스스로 보람을 찾아서 키워나가는 모습에서 일을 하는 사람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수미씨를 향한 작가의 마음에 공감하며 읽으면서도, 작가와 수미씨의 대화를 보면서는 내가 수미씨처럼 악의없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은연중에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고 새삼 느꼈다.


시력을 잃는다는 사실을 알고 막막해하던 작가가 자신의 불꽃이 더 찬란하고 빛난다는 말을 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선택의 순간들이 있었는지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된다는 제목에 담긴 뜻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실패가 두려워서 핑곗거리를 찾는 건 누구든 마찬가지구나 하고 안도하는 한편, 내 핑계와 작가의 핑계는 무게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반성도 하게 됐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기 위해 용기를 내는 자세를 나도 갖춰야겠다.


그저 보통 모녀간의 애증이겠거니 하고 책을 읽어가다가 나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야 그 갈등이 내 짐작을 훨씬 넘어섰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작가의 어머니는 창피하고 외면하고 싶다는 이유로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장애인학교라는 말이 들어간 작가의 트로피는 화장대를 받치는 데 쓰였고, 작가는 어머니의 부끄러움을 이해한다고 했다. 속사정을 모르면서 누군가의 언행을 두고 말을 얹고 싶지는 않지만, 창피하다는 어머니의 말씀은 지면 밖에서 책을 읽고 있는 나까지도 섭섭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부끄러운 자식이 되고 말았다는 자가의 말이너무 속상했는데,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었다는 문장이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책을 덮고 나서야 작가가 겪어온 지랄맞음이 내 어렴풋한 짐작을 한참 넘어섰다는 걸 알았다. 작가에게 펼쳐진 ‘당연히 보이던 것들이 보이지 않게 된 삶’은 내 생각보다도 더 험난했고, 주변의 선의와 악의 모두 다른 의미로 작가를 지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작가가 담담하게 그려내는 일상은 평범한 회사원인 내가 느끼는 하루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고, 작가의 단단한 마음을 보며 나는 위로와 자극을 받았다. 하루하루 스스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한편, 쌓아올린 일상을 모아 책을 지은 작가의 삶이 대단하게 느껴지고, 언젠가 만날 다음 책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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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흑역사 - 이토록 기묘하고 알수록 경이로운
마크 딩먼 지음, 이은정 옮김 / 부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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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학교 앞에서 간혹 신기한 책자를 나눠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떨 때는 종이 한 장일 때도 있었고, 어떨 때는 제법 여러 장이 엮인 책자일 때도 있었다. 그 안에는 괴담을 포함한 온갖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허무맹랑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나온 것처럼 어릴 때 들은 말은 힘이 세서, 그 중에 몇 가지는 어른이 되고 나서도 기억을 할 만큼 뇌리에 깊게 남았다.

이번에 <뇌의 흑역사>를 읽으며 그 중 일부는 사실일지도 모르고, 허무맹랑한 거짓말이 아니라 그때는 몰랐을 뿐 뇌와 관련한 문제가 있는 사람의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아닌 건물과 결혼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 같은 건 어린 나이에도 거짓말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책에서 비슷한 케이스의 실존 인물이 있다는 걸 알고 놀랐다. 

그런 케이스를 포함해서 이 책에는 뇌와 관련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의 다양한 케이스가 담겨있다. 다만, 모든 이야기가 실존 인물의 실제 이야기라는 점에서 신경뇌과학자인 저자는 모든 케이스를 단순히 흥미 위주로 다루고 있지 않으며 누구에게든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덧붙인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모든 일을 다 숙고하고 결정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 생각없이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자율 주행 같이 결정하는 부분이 있다니. 심지어 그 결정에 대해 뇌가 그럴듯한 설명을 제시한다는 예시들을 읽으며 내 짐작보다 뇌가 적극적이고 자율적인 기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경 구성 요소 중 어느 부분이 고장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아주 다양한 케이스를 소개하고 있어서 읽는 내내 흥미진진했다. 다만, 저자도 말했듯 실존 인물의 실제 케이스를 다루고 있어서 흥미진진이라는 표현에는 어폐가 좀 있겠다. 나는 12가지 챕터 중 강박, 인격 등에 특히 관심이 있었다.


어디서 봤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손가락이 잘린 사람이 느끼는 환지통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섬뜩했었는데, 책에서 환각지와 신체 도식에 대한 부분을 읽으며 그 이야기가 어떤 가설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알면 알수록 뇌와 신체 기관 사이의 매커니즘은 정말 복잡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나도 심하지는 않지만 강박이 있어서 이 파트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내가 하는 게 강박사고에서 비롯된 강박 행동인지, 많이 심한 건 아닌지 걱정하며 읽었는데,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책의 뒷부분에서 이 점을 짚어줘서 마음이 편해졌다.


늘 궁금하게 생각했던 다중인격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내가 가진 다양한 성향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고 ‘내면에 있는 모든 인격이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잘 통합되어 있는 상태’를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플라세보 효과는 굉장히 자주 접하는 말이라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고, 실제로 그랬지만 처음 알게된 사실도 있었다. 진짜 약을 먹고 느끼는 효능의 일부도 도움이 될 거라는 심리적인 부분에 기대고 있다는 내용을 읽고 신기했다. 


실인증은 사실 현실에서도 책이나 영화에서도 종종 보게 되는 현상이라 익숙한 개념이었지만, 그 실인증의 종류가 이렇게 방대한 줄은 몰랐다. 특히 신기했던 건 시간실인증이었다. 먼 과거와 가까운 과거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던 개리의 사연에 막막한 기분이 들었는데, 의외로 자연스럽게 괜찮아졌다는 결과를 읽으며 뇌는 정말 신비롭다고 다시 한번 느꼈다.


필사는 앞부분에 소개했지만 이 부분에 대한 부연 설명으로 강박을 다루고 있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내가 가진 강박도 보통에서 과잉 사이 어딘가에 있을 뿐 그 정도와 빈도를 봤을 때 장애는 아니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뇌든 신체든 영원히 정상적으로 건강하게 기능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내 뇌의 아주 일부분에 아주 작은 손상만 생겨도 어마어마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여러 케이스들을 읽으며 짐작해볼 수 있었다.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뇌든 신체든 더 열심히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연구가 꽤 많이 진행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인간의 뇌에 대한 연구는 진행이 된 부분보다 건드려보지도 못한 부분이 더 많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만큼 복잡하기도 하고,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새롭게 밝혀지는 것도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듣도보도 못한 다양한 증후군이 있다는 것에도, 앞으로 더 늘어날 여지가 있다는 것에도 놀랐다. 책에 실린 이야기들 중에는 절망적이거나 너무 괴로운 것들도 많아서 앞으로도 연구가 더 활발하게 진행돼서 뇌에 문제가 생겼을 때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바라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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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기억들
마리야 스테파노바 지음, 박은정 옮김 / 복복서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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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에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고 나서 책을 읽는 중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걸 믿을 수 없다고 리뷰를 남겼다. 더불어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기억과 진술을 담은 생생한 이야기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는 것도 기억이 난다. 한편으로 그 귀중한 자료들로 에세이가 아닌 소설을 쓴다면 어떤 내용을 담을 수 있을까 궁금했다. 기존의 전쟁문학과는 또 다른 느낌의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이번에 소설 ‘기억의 기억들’을 읽으면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생각이 여러 번 났다. 러시아라는 공통 요소가 있기도 했고, 소설 속 화자가 남겨진 기록들을 찾아 탐구하면서 가족사를 써나가는 이야기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소설인데도 소설 속 화자가 작가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야기는 픽션과 논픽션 사이 어딘가에 있는 느낌이었다.




소설은 갈카 고모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고모가 남긴 ‘상세하지만 불명확’한 기록이 ‘나’에게 가족의 이야기를 쓸 계기가 되는데, 이후로 무려 5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낯선 러시아 이름을 가진 등장 인물이 많아서 메모를 해가며 읽었는데, 책의 맨 뒤에 친절하게 가계도가 있어서 나중에는 가계도를 확인해가며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도 읽고 나서도 계속 이 부분을 의식하고 고민하게 되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누군가의 기억이 기록으로 남겨지고, 그 기록이 객관성을 꿈꾸는 역사의 일부가 되어가는 과정을 책을 읽는 동안 함께 지켜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5대에 걸친 가족사를 돌아보는 동안 당연하지만 전쟁 이야기도 있었다. 그중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사람에게 도착한 전사통지와 설명을 요구하는 가족에게 도착한 또 다른 편지를 읽으면서 참담했다. 아직도 전쟁 중인 곳에서 누군가는 저렇게 억장 무너지고 어처구니 없는 통지를 받고 있겠다는 게, 그리고 1942년에 전쟁 중이었던 나라가 현재도 전쟁 중이라는 게 안타까웠다.



소설 속 ‘나’는 가족이 남긴 여러 기록들을 더듬어가며 가족사를 써내려간다. 그 기록들은 일기, 편지, 사진 등 종류가 다양하다. 읽다가 사진과 초상화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고 인상적이었다.



발로 뛰어가며 여러 기록들을 찾아서 글을 써나가던 화자가 남긴 ‘우리 가족의 역사를 생각하면 할수록 이루지 못한 꿈의 목록을 보는 것 같다’는 말이 안타깝지만 그 가족사를 너무 잘 요약한 문장이라서 마음에 인상적으로 남았다.


이 책은 가볍게 쓱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주제 자체도 가볍지 않았고 문장도 여러 번 곱씹어 볼 부분이 많았다. 그리고 낯선 러시아 이름들이 많이 나오기도 했고 누가 이 집안의 몇대째 인물인지 집중하면서 읽었다. 우리나라 영화 ‘국제시장’에서는 3-4대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도 러시아 현대사에서의 굵직한 사건들이 언급되는데 알고 있는 것도 있고 낯선 것도 있어서 중간중간 찾아가며 읽었더니 더 흥미로웠다.
2022년에 시작된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 사이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되었다. 뉴스와 신문의 전쟁 기사로는 알 수 없는, 직접 전쟁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기억과 기록이 언젠가 다시 이런 형태로 세상에 나오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착잡했다. 누군가의 가족사, 나아가 현대사에서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안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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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환담
윤채근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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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역사 책을 주로 만들던 기관에 다닐 때 저자들로부터 원고를 받을 때마다 두근거림과 함께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나씩 찬찬히 살펴보면 분명히 흥미로운 내용인데 아무래도 학술적인 성격이 강하다보니, 전문가들에게는 그렇지 않겠지만 나처럼 그냥 역사를 좋아하는 일반인에게는 아무래도 어려워서 내용 파악이 어려울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는 그 원고를 속속들이 다 파악한 후에 편집해야 하는 자리라서 더 부담스러웠다. 책이 완성되는 내내 여러 사료들과 논문들을 뒤적거리면서 가능하면 다음에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양서를 만드는 자리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책을 완성하고 나서야 전문적인 학술서들이 왜 어려울 수 밖에 없는지, 왜 근거를 촘촘하게 제시하는지 알 수 있었다. 같은 사료를 두고도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거나, 단호하게 결론을 낼 수 없는 민감한 사안들도 많아서 활자로 남는 책은 아무래도 보수적으로 쓰여질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제한된 사료가 남아있다는 건 빈 부분을 채울 상상을 펼칠 여지가 많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어서, 일이 끝나면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한 역사 소설들을 종종 찾아 읽었다. 거의 모든 문장에 출처를 주석으로 달아야하는 원고를 보다가 조금 더 자유롭게 쓰여진 소설을 보면 살짝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배경으로 쓰인 소설 <고전환담>을 발견하고 어떻게 재미있게 풀어냈을지 기대하며 펼쳐들었다.


<고전환담>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두고 쓴 장편 소설이 아니라, 폭넓은 시대를 배경으로 각각 다른 사건과 인물을 주제로 쓴 단편 소설을 엮었다. 26개의 이야기를 3부로 나누어 담고 있는데, 삼국시대 이전부터 조선 이후의 이야기까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물과 사건들도 등장해서 흥미롭다.


이순신 장군을 주제로 한 부분은 한산도 앞바다에서 전투를 벌였던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화자라서 신선했다. 각 이야기가 끝나면 ‘역사와 문헌’이라는 코너를 통해 관련 역사적 사실이 기록된 문헌 자료를 밝혔다. 더불어 사료에 근거해서 기술한 부분과 창작한 부분을 구분해 두어서 방금 읽은 이야기가 어디까지 사실인지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이덕무가 쓴 ‘김은애전’을 배경으로 한 소설도 흥미로웠다. ‘김은애전’을 읽으면서 혜경궁 홍씨와 연결해서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이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뿐만 아니라 책에 수록된 소설들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들에 대해 다른 관점으로 상상해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책에 등장하는 역사속 인물들이 각 지방의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평강 공주가 자기 소개를 하면서 내래 어쩌고 하는 부분을 읽으면서는 저항없이 터졌다. 예전에 찰진 사투리 대사 덕분에 더 재미있었던 영화 황산벌을 볼 때처럼 재미있게 읽었다. 위에 필사한 부분은 원효대사의 말이다.



여러 이야기들 중에 사료에 근거한 부분과 상상이 더해진 부분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서 제일 마음에 오래 남았던 글은 정의공주가 아들 안빈세에게 쓴 편지였다. 아버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던 현장을 그려낸 부분을 읽으면서는 정말 그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버지가 만든 글자로 아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긴다는 설정이 왠지 마음을 더 찡하게 만들어서인지 26편의 글 중에 이 글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건이나 인물도 소설로 각색해서 보니 더 생생하고 박진감이 있어서 새로운 느낌이었다. 항상 역사소설은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궁금해하며 읽었는데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있었던 ‘역사와 문헌’ 덕분에 그런 궁금증도 바로 해소가 되어서 좋았다. 근거가 되는 사료를 나도 읽어보면서 이 책의 저자가 사료의 빈 부분을 어떻게 채웠는지 따라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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