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나니까 퇴근할게요
메리엠 엘 메흐다티 지음, 엄지영 옮김 / 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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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나니까 퇴근하겠다는 이 제목을 보고 마음이 동하지 않을 직장인이 몇이나 있을까. 나도 처음에는 제목에 이끌려 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스페인령 카나리아제도에 사는 90년대생 인턴 메리엠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이름과 지명을 바꾸면 우리나라의 어느 회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담을 글이라고 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는 내용을 그려내고 있다. 지금 사회초년생이거나, 사회초년생 시절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이야기였고, 나도 주인공과의 여러 공통점들을 발견해가며 재미있게 읽었다. 그동안 퇴근보다 퇴사를 선택할 때가 많았던 나는 사회초년생인데도 나보다 훨씬 단단한 마음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메리엠의 모습을 보고 반성을 하기도 했다. 무려 500쪽이 넘어서 처음에는 살짝 멈칫했지만, 웃기도 하고 같이 열을 내기도 하다 보니 눈 깜짝할 새 이야기가 끝나 있었다.


사회초년생의 사회생활이 거의 그렇듯 메리엠의 인턴 생활도 만만치 않은 일들로 가득차 있다. 읽는 동안 도대체 나라도 다르고 회사도 다른데 진상 유형은 어쩌면 이렇게 비슷한가 놀랍기도 하고 진저리가 나기도 했다. 어딘가에 숨어서 울기도 하고 화를 주체하지 못할 때도 더러 있지만 ‘지금의 시련 또한 잘 이겨낼 것’이라는 메리엠의 기본적인 태도가 든든했다. 


메리엠을 제일 지독하게 괴롭히는 상사인 욜란다는 차라리 그 괴롭힘이 너무 1차원적이라서 오히려 읽는 입장에서는 좀 덜 괴로웠고, 점잖은 척하면서 은근히 사람 피를 말리는 다른 상사들의 이야기가 나한테는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너무 심할 때는 회사 구석에 숨어서 울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무던한 태도로 상황을 돌파해나가는 모습이 때로는 짠하고 때로는 멋있었다.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이해가 안 가던 문장. 상대방을 짜증나게 하는 걸 즐기는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하는 게 사회적 약속 아니었던가요...? 저렇게 점잖게 대응해놓고 220도 오븐에 머리를 넣고 싶다는 메리엠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 소리를 들었으면 나쁜 사람 맞다고 패악을 부렸을 나는 1000도짜리 도자기 불가마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위에서 헛소리했던 상사가 했던 말인데, 매사에 저런 식으로 점잖고 매너 있게 사람을 긁는다. 차라리 대놓고 괴롭히는 욜란다는 여차하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라도 할 수 있는데, 저런 유형은 답이 없어서 더 환장하게 만든다. 메리엠이 저 회사에서 인턴으로 시작해 계약직을 거쳐 정직원이 됐다는 게 생각할 수록 너무 대단하게 느껴졌다.


만만치 않은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 메리엠이 점점 철학자 같아지는 걸 보면서 웃기도 많이 웃었지만 짠하기도 했다. 


화폐 단위가 아니었으면 서울의 상황이라고 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이야기였다. 저 동네도 닭장같은 집을 비싸게 세놓는 건 똑같다는 생각에 씁쓸했다. 집과 직장이 멀어서 통근을 버거워하는 메리엠의 이야기를 읽으며, 사회초년생 시절 경기 남부에서 서울 북부로 통근을 하던 생각이 나서 약간 ptsd 오는 느낌이었다. 메리엠은 그래도 1호선은 안 탔잖아... 출근할 때 1호선 광인들까지 겪었으면 책이 700쪽으로 늘어났을 듯.


주인공 메리엠과 나는 공통점이 상당히 많았는데, 형제들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더 똑똑한 동생들을 둬서 자랑스러운 한편 아주 가끔 머쓱해지는 심정도, 이과 집안에서 혼자 문과인 문송한 기분도 잘 알아서 왠지 모르게 더 응원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메리엠과 나 사이에 공통점만 있는 건 아니고 다른 점도 있었다. 혐관을 좋아하는 건 비슷했지만, 취향 판독 3대장인 ‘제인에어, 폭풍의 언덕, 오만과 편견’ 중에 메리엠은 오만과 편견 파였던 것. 폭풍의 언덕 돌잡이파인 나는 여기서 메리엠과 취향 차이를 느끼는 한편, 메리엠에게 미친 사람들의 매운맛 혐관도 한번 슬쩍 권해보고 싶었다. 책에서 본 말투나 개그코드를 보면 폭풍의 언덕도 좋아할 것 같은데.


나도 내적 평화에 도달하지 못한 어른이고, ‘나의 인생’이라는 1인 기업에서 훌륭한 최고책임자가 되지 못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이 부분이 마음에 와닿았다.


인턴을 막 시작했을 때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를 내가 물려받을 일은 없다’고 되뇌던 메리엠이 계약직을 거쳐 정직원이 되었을 때 깨달은 ‘누군가 지시하면, 다른 이가 처리한다’는 진리가 나에게도 씁쓸하게 느껴졌다.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일에 나도 모르게 익숙해진다는 감각이 큰 문제라는 것에 깊이 공감하면서 읽었다.


솔직히 다 읽을 때까지 이 책이 소설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줄 몰랐다. 사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헷갈리는데,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고 혼자서 정리했다. 책을 읽는 동안 결은 조금 다르지만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과 <언러키 스타트업>이 종종 떠올랐다. 어느 나라에서 어떤 회사에 다니든 먹고 사는 일은 만만치 않다는 걸, 그 만만치 않은 일을 이렇게 유쾌하게 그려낼 수 있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새삼 느꼈다. 메리엠은 질색할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관리자가 된 메리엠의 글도 읽고 싶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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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 설자은, 불꽃을 쫓다 - 전2권 설자은 시리즈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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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을 어슬렁거리다가 한국소설 코너를 볼 때면 이 책에 꼭 한 번씩 눈길이 갔다. 정세랑의 소설들을 좋아하는 데다가 역사 미스터리도 좋아하니까, 내 취향의 키워드를 몽땅 쏟아부어놓은 이 책이 재미있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희한하게 자꾸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다. 그러다가 올해 초 서점에서 설자은의 새로운 표지를 발견하고 리커버인가 하고 들춰봤다가 이 이야기가 시리즈라는 걸 알고 이제는 더 미루지 말고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사왔다.

이야기의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한참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통일신라 시대다. 줄거리를 거칠게 정리하면 당나라 유학을 앞두고 갑자기 죽은 오빠의 자리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차지한 설자은이 다시 금성으로 돌아와 여러 사건들을 해결하는 이야기인데, 사건 자체도 흥미진진했지만 등장인물들이 다 입체적이고 매력있어서 더 재미있게 읽었다.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책의 맨 앞에 있었던 짤막한 안내인데, 없었던 사람들의 없었던 사건들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 시기의 기록과 유물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게 역사학자들에게는 아쉬운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에게는 상상으로 채울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설자은과 그 형제들도 매력이 있었지만, 내가 유독 마음을 쏟았던 인물은 백제 출신 목인곤이었다. 나라는 망했고, 설자은의 집에 식객으로 기거하는 처지인데도 전혀 기죽지 않고 설자은과 함께 다니며 활약하는 인물인데, 틈만 나면 백제부심을 부리고 묘하게 신라를 낮잡아 보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내가 삼국 중에 백제를 제일 좋아해서 그럴지도.


요즘도 보통 때는 딱히 의식하지 않다가도 현충일이나 광복절에는 나라를 위한 누군가의 희생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 시절 통일신라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흥미로웠다. 


하는 말의 70%는 농담이나 깐족거림인 것 같은 목인곤이 가끔 설자은을 짠하게 여기면서 말을 아끼거나 배려 섞인 대답을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한편,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왜 그렇게 깐족거려요...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미은이 원래 이름을 버리고 오빠 ‘설자은’의 삶을 살게 만든 장본인인 큰오빠 호은은 내가 보기에도 가끔 밉상이었다. 사람을 잘 긁어서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지략이 있어서, 밉상이라고는 했지만 매력있는 인물이었다. 


그동안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 고구려와 백제 유민들의 생활은 교과서에 언급된 정도로만 떠올려봤을 뿐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고구려에 비해 백제와 신라의 골이 훨씬 깊었겠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의 모습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아보거나 상상해본 적이 없었는데, 소설 속 금성의 모습을 읽으면서 얼마나 복잡한 상황이었을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목인곤이 저런 식으로 신라 사람 설자은을 앞에 두고 은근히 신라를 깔(!) 때가 제법 있어서 조마조마하면서도 재미있었다.


설자은의 형제 자매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인물은 바로 아랫동생인 도은이다. 속으로는 투덜거리면서도 말을 들어줄 때가 많은 자은과 다르게 도은은 큰오빠 호은이 수 틀리게 굴면 참지 않는 편. 노름판을 기웃거리다가 걸린 호은에게 벼루도 막 집어던지고 말도 거르지 않아서 도은이 나오는 장면은 대체로 속이 시원했다.


그런 도은도 질리게 만드는 사람이 바로 목인곤이라는 것. 그렇지만 그 어느 누구의 눈치도 안 보는 것 같은 목인곤도 도은 눈치는 살짝 본다. 아무래도 도은이가 설자은 집안의 실세라서... 


호은의 이목구비를 설명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도, 차라리 때려라 도은아... 하면서 좀 웃었다. 거기에 한 술 더 뜨는 목인곤. 


웃으면서 읽을 수 있는 부분도 많지만, 설자은이 왕과 대면하는 장면은 나까지 긴장될 때가 많았다. 그 시절에는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왕이 너무 눈치보게 만들잖아요...


두 번째 책까지 다 읽고 나니까 다음 이야기가 있다는 게 다행인 한편, 기다려야 한다는 게 슬프기도 했다. 이야기 자체도 재미있었고, 한번도 구체적으로 상상해본 적 없는 통일신라시대의 모습을 나도 같이 그려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세 번째 책도 얼른 나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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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드라, 떠나보니 살겠드라 - 65살, 여자, 혼자, 세계 여행자 쨍쨍으로부터
쨍쨍 지음 / 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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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이 아니고, 그나마도 혼자서 떠날 때가 많다. 보통 현생에 시달리다 지쳤을 때 여행을 떠나는데 나를 괴롭게 만드는 건 일보다 사람일 때가 많아서 철저히 혼자 쉬다가 오고 싶어서 그렇다. 아무리 편한 사이라도 가족이나 친구와 떠나면 여행보다 사람에게 신경을 쏟아야 할 때가 많아서, 처음 가는 곳이나 쉽게 갈 수 없는 곳은 꼭 혼자서 간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돌아다니다 보면 다시 돌아가서 그럭저럭 사회성을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는 마음 상태가 된다.

이 책을 읽기로 한 이유도 표지에서 본 ‘65살, 혼자’라는 키워드 때문이었다. 나중에 할머니가 돼서도 이렇게 혼자서 자유 여행을 다닐 수 있을까 가끔 걱정하던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여행기였다. 철저히 혼자가 되고 싶어서 혼자 떠나는 나와 달리 이 책의 저자 쨍쨍은 여행지에서 여러 사람과 부대끼기 위해 혼자 떠나는 느낌이었다. 예상과는 달랐지만, 많은 사람과 부대끼는 걸 질색하는 내가 (아마 평생) 해볼 일 없는 여행 이야기를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저자는 염원하던 세계 여행을 위해 26년 간의 교직 생활을 정리하고 여행길에 오른다. 프롤로그를 읽으며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고방식과 행동패턴을 가진 분이라는 건 알았지만, 초반 에피소드 두 편을 읽으면서는 동공지진이 났다. 마흔에 인도에서 만난 19살 많은 영국 히피와의 불같은 연애(한 달)로 퇴직까지 고려했던 이야기를 힘들게 넘겼더니, 억류에 가까웠던 영국 입국 심사 에피소드가 이어져서 내가 과연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든 건 에피소드 사이사이에 있는 사진 속 그늘 한점 없이 활짝 웃고 있는 쨍쨍의 얼굴이었다. 


좋은 문장인데 이 부분을 읽을 때 내 심기가 썩 편안하지 못했다. 앞서 얘기했던 영국 입국 심사 에피소드 뒤에 나온 말이었기 때문에. 영국 입국 심사에 대비해 사전 조사를 하면서 ‘절대 친구 집 주소를 대면 안 되고 꼭 호텔 주소를 댈 것’이라는 정보를 얻었는데도 불구하고 제일 중요한 호텔 주소를 미리 찾아두지 않아서 몇 시간이나 방에 갇혀서 취조에 가까운 인터뷰를 하는 장면을 보며 내가 여러 번 머리를 싸맸다. 깜빡할 게 따로 있지!!! 하면서 나는 괴로웠는데 사진 속 쨍쨍의 얼굴은 이번에도 아주 밝았다. 초반에는 내가 소인배라서 이렇게 괴로운가...했는데 책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쨍쨍 스타일에 적응을 했다.


세계 여행을 하는 중에도 연애 이야기가 빠지지 않아서 처음에는 금사빠, 불나방 같은 말들을 떠올리며 읽었는데, 책을 거의 다 읽어갈 때쯤에는 그냥 사랑이 많은 분이구나,로 감상이 바뀌었다. 여행을 위해 학교를 그만둘 결심을 할 때 다른 어떤 현실적인 문제들이 아니라 아이들과의 헤어짐을 괴로워하는 모습에서도, 여행지 곳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애정이 가득한 시선으로 그려내는 모습에서도 인간 자체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다.


‘혼자’라는 키워드가 무색하게 쨍쨍의 여행에는 등장인물이 많다. 여행지의 정보보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 인물들이 쨍쨍의 희노애락을 이끌어내는 이야기들이 훨씬 많아서 흥미로운 여행기였다. 팁 문제로 쪼잔하게 굴던 안토니오 때문에 10년 넘게 스페인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쨍쨍은 산티아고 순례자길에서 또 다른 스페인 사람들에게 감동을 받다 못해 급기야 쪼잔한 건 안토니오가 아니라 본인이 아니었을까 의심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슬퍼하거나 분노할 때 일면식도 없는 타인의 도움을 받으면서 인류애를 회복하는 이야기가 여러 번 등장해서 신기하기도 하고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나도 뜨끔했다. 그러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선입견과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모양이라고 반성하면서, 나와는 여러 면에서 완전히 다른 쨍쨍도 같은 상황을 보고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것에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미리 대형 스포(크게 의미는 없음)를 하자면 거의 책 마지막까지 꼰지라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 지금도 좀 꼰지랍게 여행 중이시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책 초반에는 왜 그러세요...라는 말이 절로 나왔는데, 나중에는 상황이 저래도 어떻게든 해결하시겠지 하는 믿음이 생겨서 좀 마음 편하게 읽었다. 수습을 할 수 있으니까 좀 꼰지라운 여행을 하셔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건 다른 얘긴데, 나름 경상도 네이티브 부모님 밑에서 자랐는데도 ‘아슬아슬하다’는 뜻을 가진 꼰지랍다는 말은 이 책에서 처음 봤다.


요즘도 세계를 자유롭게 다니는 쨍쨍은 제주도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집이라는 말보다 베이스캠프가 어울리는. 쨍쨍랜드는 쨍쨍의 집인 한편, 다른 여행자들의 집이기도 하다고. 별명처럼 옷차림도 쨍할 때가 많은 평소 스타일로 미루어보아 쨍쨍랜드는 왠지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저자의 블로그를 찾아봤다. 눈이 아플 정도로 강렬한 핑크 배경을 보니 동명이인인지 의심할 필요조차 없었다. 최신 글에서 이제는 66세가 된 쨍쨍이 여전히 밝은 얼굴로 강아지 옆에서 요가 다운독 자세를 하고 있는 사진을 보고 나도 모르게 슬쩍 웃었다. 성격, 스타일, 여행 방식 등 여러 방면에서 나와 쨍쨍은 조금 다른 정도가 아니라 거의 대척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책 초반에는 그래서 힘들더니 나중에는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화려한 착장에도 묻히지 않을 밝은 얼굴로 앞으로도 세계 곳곳을 다니며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많이 들려주시면 좋겠다.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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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순간들 세트 - 전2권 - 식빵고양이 박스 + (1권)고양이가 재능을 숨김 + (2권)나만 없어, 인간 + 이 아이는 자라서 이렇게 됩니다 리커버 미니북 + 2025 달력 고양이의 순간들
이용한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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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소식이 들리면 두근두근하면서 기다리게 되는 이용한 작가님의 새 책이 (진작에) 나왔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한정판 세트 안에는 책 두 권과 함께 전작인 <이 아이는 자라서 이렇게 됩니다> 리커버 미니북과 2025년 달력이 함께 들어있어서 상자를 열면서 이미 잔뜩 신이 났다. 그리고 그 상자 크기가 넉넉해서 고양이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준비물: 고양이)



우리집 고양이도 흥미를 보이기는 했는데,



고양이답게, 인간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책이 두 권 구성이라 귀여움도 두 배였다. 책머리에 이번에는 웃으면서 읽을 수 있는 사진과 글을 담았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정말이었다. 앞서 읽었던 책들은 마음이 찡하고 눈물나는 이야기도 제법 많아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때도 더러 있었는데, 이번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고양이들의 귀여움과 웃김(!)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찡한 부분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고...



해마다 일어나는 아깽이 대란을 경계하는 이런 글도 실려 있었고,



이렇게 귀여운 내용도 더러 담겨있다. 글만 이렇게 귀여운 건 아니고 사진... 진짜 너무 귀여워서...



이렇게 귀여운 친구들이 두 권 가득 들어있다. 어느 계절에 읽어도 좋겠지만, 요즘처럼 찬바람 부는 계절에 읽으면 더 훈훈하고 마음도 따뜻하고 그렇지 않을까 싶다. 물론 고양이랑 같이 읽으면 더 좋음.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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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임무는 게임을 만드는 것입니다 - 벼랑 끝의 닌텐도를 부활시킨 파괴적 혁신
레지널드 피서메이 지음, 서종기 옮김 / 이콘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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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건 유전이 아닌 모양인지 눈과 손이 모두 느려서 게임을 잘 못하는 나와 다르게 동생들은 게임을 잘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한다. 그래서 다 같이 살던 시절에는 우리 집 거실에 플레이스테이션과 엑스박스, 그리고 wii가 모두 있었다. 그중에 내가 건드려볼 만한 건 wii 정도였고, 동생들이 본격적인 게임을 접고 잠깐 쉬어가는 느낌으로 마리오카트를 할 때나 좀 들이대보는 수준이었다. 착한 동생들이 많이 봐주는데도 내가 절망적으로 못해서 몇 번 참아주다가 결국 다 집어치우고 동숲이나 하라면서 DS를 쥐여줬고, 그래서 요즘도 내가 하는 게임은 동물의 숲과 문명 정도다.

이렇게 문외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게임을 잘 모르기도 하고 좋아하지도 않아서, 만약 내가 ‘벼랑 끝의 닌텐도를 부활시킨 파괴적 혁신’이라는 이 책의 부제를 못 봤다면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제목만 봤을 때는 게임 프로그래머가 쓴 책인가 했는데, 여러 분야에서 마케터로 활약하다가 닌텐도 아메리카의 사장이 되어 혁신을 꿈꿨던 사람의 이야기였다. 혹시나 게임 이야기가 너무 많으면 어쩌나 살짝 걱정하다가도 닌텐도는 좀 익숙하니까 괜찮을까 하며 책을 집어들었는데, 걱정이 무색하게도 책에는 겜알못이라도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들이 담겨있었다. 


나도 일본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어서 일본 회사의 경직된 분위기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게임회사니까 좀 낫지 않을까 넘겨 짚어봤는데 빗나갔다. 아무리 게임을 만드는 닌텐도라도 근무 환경은 꽤나 보수적인 느낌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이들 하는 시차출퇴근이나 유연근무제 같은 게 도입되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근무시간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는 걸로도 모자라 종소리까지 울린다니... 심지어 퇴근 종은 안 울린다니 지독하다고 생각했다.


회의에 들어가서 누군가와 의견 충돌이 있을 때마다 늘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도 실려있었다. 서로 주장을 꺾지 않고 대치하다 보면 내가 신념에 근거해서 타당한 주장을 하고 있는 건지, 그런 줄 알았는데 사실은 고집을 부리고 있는 건지 헷갈릴 때가 가끔 있다. 책에서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서 두 가지를 구분하고, 둘 중 어떤 경우라도 되도록이면 상대방과의 협의점을 찾아볼 것을 권한다.


첫 회사에서 내 멘토를 맡았던 대리님은 우리 계열사 안팎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새롭게 멘티가 된 나도 달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인사를 시켜주곤 했는데, 자주 만날 일은 없는 사람이든 아니든 안면을 터놓으면 일하기가 수월하다고 조언을 해줬었다. 대리님이 자주 하던, 회사에 친구를 사귀러 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알아두면 일할 때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책에서도 발견하고 괜히 반가웠다. 


이건 회사 업무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 가끔 눈앞의 일에 마음이 급해서 일단 일을 막 하다가 나중에 이게 맞나? 싶을 때가 많은 나같은 사람한테는 도움이 되는 조언이었다. 일이든 뭐든 하기 전에 목표를 명확히 하고, 급할 때도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늘 체크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회사에서 만났던 선배들과 상사들이 했던 모든 지시와 행동에 이유가 있었다는 걸 뒤늦게 새삼 깨달았다. 늘 업무 진행 상황을 한쪽으로 정리해서 들고오라던 부장님과 함께 일할 때, 이게 매번 무슨 짓인가 투덜거렸는데 이런 이유였나보다. 이런 이유로 시키셨던 게 맞겠지...? 하며 살짝 의심이 되기는 하는데.


뭔가 실수를 하고 엄청 깨지고 풀이 죽은 나한테 ‘실수를 안 하는 사람도 없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는 쓰겠지만 같은 실수를 다시는 안 하는 사람도 없다’고 위로인지 조언인지 모를 말을 해줬던 멘토 대리님 생각이 났다. 이상하게 그때 들었던 말과 비슷한 취지의 내용이 이 책에 유독 많아서,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참 좋은 멘토를 만났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초안에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되어 있었는데, 여러 의견을 수렴해서 결국 최종안은 게임을 만드는 주체가 ‘우리’로 바뀌었다. 나도 바뀐 버전이 더 마음에 든다.


이직을 많이 해서 그런지(지금 회사가 열 번째...) 인수인계 자리에 앉을 때가 많았는데, 내가 일을 넘겨 받을 때는 늘 ‘전임자는 바보가 아니다’라는 말을 마음에 둔다. 전임자는 이걸 왜 이렇게 했지? 하면서 의문이 생기는 일들도 막상 내가 하다보면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렇게 됐구나, 할 때가 많아서 가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일단은 이해해보려고 하는 편이다. 그런데 책에서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전임자는 바보가 아니다’를 마음에 장착하더라도, ‘우린 늘 이런 식으로 해왔다’는 말에는 저항할 수 있도록 균형을 잘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이 책 리뷰를 하는 내내 멘토 대리님 이야기를 하게 되는 기분인데, 리더의 어려움을 일찌감치 눈치챈 것인지 대리님의 소원은 만년대리였다. 그렇게 야망이 없어서야 되겠냐던 사람들은 다 그 회사를 떠났고, 만년대리가 소원이던 내 멘토는 몇 해 전 부장이 되었다. 기껏해야 애물단지였던 멘티(나) 하나를 책임지던 대리 시절보다 부장이 된 지금 얼마나 큰 책임과 결정이 주어질지 생각하니까 대단하면서도 좀 짠하기도 하다.


책을 읽는 동안 회사에서 겪었던 많은 장면들이 떠올랐다. 회사에 다니거나 다니지 않거나,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은 조언들이 많이 담겨 있어서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닌텐도의 게임을 좋아했던 사람들은 책 중간중간에 나오는 게임 이름을 보면 반가움도 느끼지 않을까. 나도 DS, 3DS, 스위치를 모두 거쳐온 사람이라서 책을 읽으면서 이런 과정을 거쳐서 세상에 나왔던 거구나, 하면서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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