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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순간들 세트 - 전2권 - 식빵고양이 박스 + (1권)고양이가 재능을 숨김 + (2권)나만 없어, 인간 + 이 아이는 자라서 이렇게 됩니다 리커버 미니북 + 2025 달력 고양이의 순간들
이용한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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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소식이 들리면 두근두근하면서 기다리게 되는 이용한 작가님의 새 책이 (진작에) 나왔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한정판 세트 안에는 책 두 권과 함께 전작인 <이 아이는 자라서 이렇게 됩니다> 리커버 미니북과 2025년 달력이 함께 들어있어서 상자를 열면서 이미 잔뜩 신이 났다. 그리고 그 상자 크기가 넉넉해서 고양이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준비물: 고양이)



우리집 고양이도 흥미를 보이기는 했는데,



고양이답게, 인간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책이 두 권 구성이라 귀여움도 두 배였다. 책머리에 이번에는 웃으면서 읽을 수 있는 사진과 글을 담았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정말이었다. 앞서 읽었던 책들은 마음이 찡하고 눈물나는 이야기도 제법 많아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때도 더러 있었는데, 이번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고양이들의 귀여움과 웃김(!)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찡한 부분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고...



해마다 일어나는 아깽이 대란을 경계하는 이런 글도 실려 있었고,



이렇게 귀여운 내용도 더러 담겨있다. 글만 이렇게 귀여운 건 아니고 사진... 진짜 너무 귀여워서...



이렇게 귀여운 친구들이 두 권 가득 들어있다. 어느 계절에 읽어도 좋겠지만, 요즘처럼 찬바람 부는 계절에 읽으면 더 훈훈하고 마음도 따뜻하고 그렇지 않을까 싶다. 물론 고양이랑 같이 읽으면 더 좋음.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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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임무는 게임을 만드는 것입니다 - 벼랑 끝의 닌텐도를 부활시킨 파괴적 혁신
레지널드 피서메이 지음, 서종기 옮김 / 이콘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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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건 유전이 아닌 모양인지 눈과 손이 모두 느려서 게임을 잘 못하는 나와 다르게 동생들은 게임을 잘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한다. 그래서 다 같이 살던 시절에는 우리 집 거실에 플레이스테이션과 엑스박스, 그리고 wii가 모두 있었다. 그중에 내가 건드려볼 만한 건 wii 정도였고, 동생들이 본격적인 게임을 접고 잠깐 쉬어가는 느낌으로 마리오카트를 할 때나 좀 들이대보는 수준이었다. 착한 동생들이 많이 봐주는데도 내가 절망적으로 못해서 몇 번 참아주다가 결국 다 집어치우고 동숲이나 하라면서 DS를 쥐여줬고, 그래서 요즘도 내가 하는 게임은 동물의 숲과 문명 정도다.

이렇게 문외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게임을 잘 모르기도 하고 좋아하지도 않아서, 만약 내가 ‘벼랑 끝의 닌텐도를 부활시킨 파괴적 혁신’이라는 이 책의 부제를 못 봤다면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제목만 봤을 때는 게임 프로그래머가 쓴 책인가 했는데, 여러 분야에서 마케터로 활약하다가 닌텐도 아메리카의 사장이 되어 혁신을 꿈꿨던 사람의 이야기였다. 혹시나 게임 이야기가 너무 많으면 어쩌나 살짝 걱정하다가도 닌텐도는 좀 익숙하니까 괜찮을까 하며 책을 집어들었는데, 걱정이 무색하게도 책에는 겜알못이라도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들이 담겨있었다. 


나도 일본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어서 일본 회사의 경직된 분위기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게임회사니까 좀 낫지 않을까 넘겨 짚어봤는데 빗나갔다. 아무리 게임을 만드는 닌텐도라도 근무 환경은 꽤나 보수적인 느낌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이들 하는 시차출퇴근이나 유연근무제 같은 게 도입되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근무시간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는 걸로도 모자라 종소리까지 울린다니... 심지어 퇴근 종은 안 울린다니 지독하다고 생각했다.


회의에 들어가서 누군가와 의견 충돌이 있을 때마다 늘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도 실려있었다. 서로 주장을 꺾지 않고 대치하다 보면 내가 신념에 근거해서 타당한 주장을 하고 있는 건지, 그런 줄 알았는데 사실은 고집을 부리고 있는 건지 헷갈릴 때가 가끔 있다. 책에서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서 두 가지를 구분하고, 둘 중 어떤 경우라도 되도록이면 상대방과의 협의점을 찾아볼 것을 권한다.


첫 회사에서 내 멘토를 맡았던 대리님은 우리 계열사 안팎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새롭게 멘티가 된 나도 달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인사를 시켜주곤 했는데, 자주 만날 일은 없는 사람이든 아니든 안면을 터놓으면 일하기가 수월하다고 조언을 해줬었다. 대리님이 자주 하던, 회사에 친구를 사귀러 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알아두면 일할 때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책에서도 발견하고 괜히 반가웠다. 


이건 회사 업무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 가끔 눈앞의 일에 마음이 급해서 일단 일을 막 하다가 나중에 이게 맞나? 싶을 때가 많은 나같은 사람한테는 도움이 되는 조언이었다. 일이든 뭐든 하기 전에 목표를 명확히 하고, 급할 때도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늘 체크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회사에서 만났던 선배들과 상사들이 했던 모든 지시와 행동에 이유가 있었다는 걸 뒤늦게 새삼 깨달았다. 늘 업무 진행 상황을 한쪽으로 정리해서 들고오라던 부장님과 함께 일할 때, 이게 매번 무슨 짓인가 투덜거렸는데 이런 이유였나보다. 이런 이유로 시키셨던 게 맞겠지...? 하며 살짝 의심이 되기는 하는데.


뭔가 실수를 하고 엄청 깨지고 풀이 죽은 나한테 ‘실수를 안 하는 사람도 없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는 쓰겠지만 같은 실수를 다시는 안 하는 사람도 없다’고 위로인지 조언인지 모를 말을 해줬던 멘토 대리님 생각이 났다. 이상하게 그때 들었던 말과 비슷한 취지의 내용이 이 책에 유독 많아서,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참 좋은 멘토를 만났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초안에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되어 있었는데, 여러 의견을 수렴해서 결국 최종안은 게임을 만드는 주체가 ‘우리’로 바뀌었다. 나도 바뀐 버전이 더 마음에 든다.


이직을 많이 해서 그런지(지금 회사가 열 번째...) 인수인계 자리에 앉을 때가 많았는데, 내가 일을 넘겨 받을 때는 늘 ‘전임자는 바보가 아니다’라는 말을 마음에 둔다. 전임자는 이걸 왜 이렇게 했지? 하면서 의문이 생기는 일들도 막상 내가 하다보면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렇게 됐구나, 할 때가 많아서 가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일단은 이해해보려고 하는 편이다. 그런데 책에서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전임자는 바보가 아니다’를 마음에 장착하더라도, ‘우린 늘 이런 식으로 해왔다’는 말에는 저항할 수 있도록 균형을 잘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이 책 리뷰를 하는 내내 멘토 대리님 이야기를 하게 되는 기분인데, 리더의 어려움을 일찌감치 눈치챈 것인지 대리님의 소원은 만년대리였다. 그렇게 야망이 없어서야 되겠냐던 사람들은 다 그 회사를 떠났고, 만년대리가 소원이던 내 멘토는 몇 해 전 부장이 되었다. 기껏해야 애물단지였던 멘티(나) 하나를 책임지던 대리 시절보다 부장이 된 지금 얼마나 큰 책임과 결정이 주어질지 생각하니까 대단하면서도 좀 짠하기도 하다.


책을 읽는 동안 회사에서 겪었던 많은 장면들이 떠올랐다. 회사에 다니거나 다니지 않거나,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은 조언들이 많이 담겨 있어서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닌텐도의 게임을 좋아했던 사람들은 책 중간중간에 나오는 게임 이름을 보면 반가움도 느끼지 않을까. 나도 DS, 3DS, 스위치를 모두 거쳐온 사람이라서 책을 읽으면서 이런 과정을 거쳐서 세상에 나왔던 거구나, 하면서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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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어른
이옥선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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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선택한 데는 제목의 역할이 컸다. 만약 책의 제목이 <즐거운 할머니>였거나 <즐거운 노인>이었다면 (그래도 읽었을 것 같긴 하지만) 왠지 지금처럼 기대를 안고 보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즐거운 ‘어른’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고, 때때로 유튜브를 보고, 운동을 하며 지내는 어느 어른의 이야기가 왠지 미래의 내 모습처럼 느껴져서 친근한 마음으로 책을 집었는데 저자와 개그코드까지 맞아서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원래는 쓸 생각이 없었던 책을 쓰게 된 저자의 변을 읽으면서 나도 이 부분에 공감했다. 조금만 방심해도 글이 한없이 느끼해져서 가능하면 너무 감정을 싣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그래서 글이 너무 사무적이거나 메마르게 느껴질 때가 있다. 보고서나 논문을 쓸 때야 좋지만 에세이는 죽어도 못 쓰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감정을 적당히 덜어낸 글도 매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덕분에 재미있는 책을 읽게 되었으니 착한(!) 물고문을 했던 분들에게 조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읽는 중간중간 딱히 웃기려고 하는 얘기는 아닌 것 같은데 웃음이 터지는 부분이 더러 있었다.


이번 직장으로 이직하기 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불면증에 시달렸다. 다음날 할 일이 딱히 없는데도 늦게 일어나면 왠지 인간말종이 된 것 같아서 새벽까지 잠 못들었지만 알람은 회사 다닐 때처럼 맞춰놓고 자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만성 수면부족에 시달렸었다. 그때 이 부분을 읽었더라면 조금 더 편하게 마음을 먹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때의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이 대목에서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먼저 그 나이를 살아본 사람의 책을 읽으면 대체로 그렇듯이 이번에도 막연한 미래 때문에 가졌던 불안을 많이 내려놓을 수 있었다. 저자의 생활을 엿보면서 나도 나중에 지금처럼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고, 유튜브와 ott도 간간히 보고, 틈틈이 운동도 하면서 지낼 것 같으니 눈 관리나 잘 해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말을 한번씩 읽지 않으면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며 사는 일이 실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자꾸 잊게 된다. 이렇게 가끔만 깨달을 수 있도록 일상이 깨지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며 읽었다.


임종을 지키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유일하게 그래도 자식 마음은 그게 아니라구요... 라며 살짝 반발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자식 입장은 되어봤지만 부모 입장은 되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여전히 부모님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게 나한테는 제일 큰 공포인데, 내 힘으로 어떻게 되는 게 아니라서 더 그런 것 같다.


앞에서는 반발했다고 했지만, 자식에게 이후의 일을 부탁하는 부모님의 마음은 이럴 수밖에 없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좋은 계절에 자식들이 만날 수 있도록 가을에 떠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문장을 읽으면서 괜히 마음이 찡했다.


나도 청년에서 중년으로 슬슬 넘어가는 시기이다 보니 이 대목에서 생각이 많아졌다.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은 건 아니지만 계속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 늘 고민하면서 하루하루 살고 있는 기분. 그래도 회사에서 맡겨진 일을 차질 없이 해내고 있고, 차질을 빚는다 해도 수습을 그럭저럭할 수 있으니 유능한 사람으로 살고 있는 건가 하며 만족스러워 했다.


유머, 친절함, 자기 억제가 본질이 아니라 인공적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모든 것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사물과 나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두며 사는 게 지금 나에게 필요한 태도라서 그런지 유독 마음에 와닿았다.


제목과 책 소개를 보고 기대했던 부분들이 다 충족되는 책을 만나는 게 은근히 쉽지 않은데, 오랜만에 마음에 쏙 드는 글을 읽어서 책을 덮고 나서도 아주 만족스러웠다. ‘따뜻한 할머니는 품어주지만, 까칠한 할머니는 해방시킨다’는 글귀를 보며 까칠한 할머니의 조금 차가운 글이 아닐까 싶었는데, 뜻밖에 개그코드가 잘 맞아서 잊을만 하면 한번씩 웃음이 터졌다. 나중에 나도 즐거운 어른, 그리고 다른 사람도 즐겁게 만들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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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 안에서 빛나게 하소서
이문재 엮음 / 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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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아주 안 읽는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나는 시인이 쓴 시보다는 시인이 쓴 에세이를 더 많이 읽는 편이다. 시가 싫다기보다는 아직 나한테는 좀 어렵게 느껴져서 그렇다. 졸업한 지가 한참인데 아직도 시는 왠지 함축된 뜻이나 비유 은유를 다 파악하며 읽어야 할 것 같아서 선뜻 손을 못 내밀게 된다. 그런 거 치고는 제일 좋아하는 시로 영문을 모를 <오감도>를 꼽기는 하는데, 아무튼 시에 대한 내 심정은 그렇다.

막연히 어렵게만 느껴지는 시들 중에서 어렵지 않게 느껴지는 시들도 있기는 있다. 기도하는 내용을 담은 시들은 직관적으로 내용이 눈에 들어와서 뭘 더 파악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니 읽을 때 마음이 편하다. 기도를 하면서 뜻을 숨기고 은유와 비유로 묘사하는 경우는 별로 없을 테니까. 그런 기도시들을 모았다는 소식에 모처럼 시집을 손에 들었다.



필사한 문장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 실려있는데 시집을 읽기 전에 미리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사실 시집을 열었을 때 왜 기도시를 모았을까 하는 의문이 살짝 있었는데,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궁금증이 완전히 해소가 되었고 처음부터 시들을 다시 한번 훑어보게 되었다. “기도와 시는 ‘간절함’의 혈연이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어디선가 일부분을, 혹은 약간 변형된 형태로 봤던 시 구절들을 책에서 여러 번 만났는데, 이 시도 그랬다. 읽을 때마다 셋 중에 뭐가 제일 중요할까를 생각하게 되는 시.



한 줄 한 줄 다 공감하면서 읽었던 시인데, 특히 ‘혼자인 것에도 약하고 함께인 것에도 약하다’와 ‘시작에도 약하고 끝에도 약하다’는 부분에서는 내가 쓴 글인가 싶었다.



좋은 시들이 정말 많았지만 이해인 수녀님의 이 시가 특히 마음에 오래 남았다. 특히 필사한 부분은 다이어리에도 따로 옮겨놨을 정도로 인상적이었고, 쉽지는 않겠지만 저런 마음을 닮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시는 기도문의 형태는 아니라서 처음에 약간 의아했는데, 시 전체를 다 읽고 나면 결국 시인의 염원을 담고 있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시집에는 이렇게 꼭 본격적인(!) 기도가 아니라도 그 내용이 기도에 가까운 시들도 제법 있었다.



시든 에세이든 동화든 일단 출간 소식이 들리면 바로 기대하며 읽을 준비를 시작하는 박준 시인의 시도 있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예전에 생일 초를 끌 때 딱히 떠오르는 소원이 없다고 해서 모두를 부럽게 만들었던 친구 생각이 났다.



병석에 누워서 죽음을 앞둔 사람이 담담하게 쓴 시라서 읽는 내 마음이 더 먹먹했는데,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는 어머니 때문에 슬퍼졌다. 부모보다 먼저 죽는 자식이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새삼 생각했다.



책에는 여러 편의 시가 있는데, 제각각 내용도 다르고 형식도 다르다. 심지어는 내용을 따져 보면 비슷한 걸 구하는 시인 것 같은데도 결과적으로는 전혀 다른 시로 완성이 되어 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어떤 시든 결국 이문재 시인이 마지막에 적어둔 기도하는 자에 대한 내용을 크게 벗어나는 시가 없다는 걸, 저 부분을 읽으며 새삼 느꼈다.


시집도 종종 읽고, 인상깊은 구절은 필사도 하는데 이상하게 리뷰를 쓰기가 쉽지 않아서 어쩌다 보니 이번에 읽은 시집이 첫 시 리뷰가 되었다. 아무래도 시를 제대로 읽고 있는 게 맞는지, 내가 뭘 잘못 해석해서 리뷰하는 바람에 시를 쓴 시인에게 누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할 일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읽었다. 나처럼 본격적인 시는 약간 어렵게 혹은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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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역은 요절복통 지하세계입니다 - 현직 부산지하철 기관사의 뒤집어지는 인간관찰기
이도훈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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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까지는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대학교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경기 남부에서부터 서울 한복판까지 4년 내내 지하철 통학을 했고, 졸업과 동시에 입사했던 회사는 심지어 대학교에서부터도 여섯 정거장 더 멀어졌다. 날마다 지하철, 그것도 1호선으로 3시간 이상의 통학과 통근을 거치면서 온갖 지하철 빌런들을 봤다. 1호선은 충남에서부터 경기북부까지 커버하는 긴 노선이다보니 광인들의 인력풀도 상상초월로 풍부한 편이라서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다 봤다. 사람도 사람이지만 정말 괴로운 건 분초를 다투는 출근길에, 열차 간격 조정같은 사소한 것들부터 차체 고장 같은 심각한 내용으로 운행이 지연되는 일이었다. 학생 때는 막연히 낡은 열차와 누군지 모를 관계자를 그저 원망했는데,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기관사든 다른 직원이든 우리 모두 같은 직장인인데 아침부터 식은땀 나겠다고 안쓰러운 마음을 가지기도 했다.

매년 주시하고 있는 브런치북 대상 중에 이번에 기관사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책이 나오기 전부터 기대하고 있었다. 다른 이야기들도 독특하고 읽어보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지하철처럼 나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가 또 없을 것 같아서 유독 눈이 더 갔다. 존재는 알고 있지만 지하철에 타서부터 내릴 때까지 마주칠 일은 좀처럼 없는 기관사의 하루를 알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보면 공공성과 정시성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모두가 같은 마음은 아닐지 모르지만 기관사들이 자신의 일을 대하는 마음에는 사명감과 책임감이 더 진하게 담겨 있어서 일반 직장인과는 약간 결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열차 지연이나 서행에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내가 탄 지하철이 나를 집 근처 역까지 데려다줄 거라는 사실을 의심해본 적은 없었다는 걸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아마 나를 포함해서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 중에 스크린 도어와 지하철 문 간격이 벌어져서 그걸 맞추느라 시간 걸리는 걸 겪어본 사람들이 많을 텐데, 왜 그렇게 시간이 걸리는지 이번에 알았다. 퇴행 운전에는 관제의 허가가 필요하고, 만약 융통성 있게 사후 보고를 하고 마음대로 퇴행 운전을 하면 벌금 150만원이라고... 그걸 읽었더니 앞으로는 퇴행 운전에 시간이 좀 걸려도 이전처럼 답답해하지 않을 것 같다.



생각보다 다양한 물건이 유실물센터로 들어온다는 걸 보고 남일 같지 않아서 웃긴데 웃을 수가 없었다. 우산을 다섯 개쯤 유실물센터로 보낸 후부터 나는 지하철에서 손에 든 물건을 아무것도 놓지 못하는 병에 걸렸다. 


이미 타고 내릴 사람들은 다 행동을 완료한 것 같은데도 지하철이 움직이지 않을 때, 대부분은 앞차와의 간격 유지라는 방송이 나온다. 그런데 가끔 앞 역에서 사고가 났다는 방송이, 그것도 사상사고라는 방송이 나오면 가슴이 철렁하다. 동시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됐는데도 그럴 수가 있나 하는 생각과 함께 사고 현장을 맨 앞에서 피할 도리 없이 보셨을 기관사를 걱정하게 된다. 실제로 기관사들이 받는 충격과 상처는 내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거라는 걸 읽으면서 스크린도어 이상의 안전 장치가 필요한 건 아닐까 생각했다.


어느 회사에서건 일단 출근하면 커피 타임을 가지면서 업무 시작 전에 예열하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기관사들도 마찬가지라는 걸 알고 괜히 반가웠다. 요즘은 형태가 조금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자판기 앞에 후배들을 줄 세워 놓고 커피를 한 잔씩 사 먹였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 마음이 괜히 훈훈했다. 정작 나는 부장님이 커피 마시러 가자고 하면 썩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잘 몰랐던 기관사들의 일과 생활에 대해 알 수 있었던 것도 좋았지만, 일을 하면서 깨달은 점을 삶과 연결해서 풀어낸 이야기들도 좋았다. 


이건 첫 줄을 읽는 순간 냉난방일 줄 알았다. 아마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은 모두 짐작했을 것 같다. 주말에 부모님 댁에 가면 엄마와 아빠의 희망 온도에도 차이가 극심한데, 하물며 지하철에 탄 사람들의 희망 온도를 모두 맞춰주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겠지. 문제는 냉난방 민원이 너무 쉬워졌다는 게 아닐까 싶었다. 아무 민원이 없을 때 오히려 더 불안해진다는 부분을 읽으면서는 웃다가도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어떤 공휴일에도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건 본 적이 없다는 걸 책을 읽으며 새삼 깨달았다. 심지어 해가 바뀌는 날은 쉬기는커녕 보신각 타종 행사 때문에 연장 운행을 하던 1호선을 떠올리고 왠지 숙연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나도 알람 강박이 제법 있는 편이라서 알람을 완전히 끄고 자는 주말이 아니면 잠을 깊게 못자는 느낌이라서 가끔 괴로운데, 기관사들의 알람 강박에는 댈 것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게 나는 알람을 못 듣고 지각을 해도 그냥 나 혼자 근태 점수를 깎아먹는 정도지만, 지하철은... 생각만 해도 아찔해진다.


부산에도 무인 경전철이 다니듯 수도권에서도 신분당선이 무인 열차로 운행되고 있다. 신분당선을 타면서 이러다 나중에는 기관사 없이 다 무인 열차로 다니는 건 아닐까 생각을 간혹 했었는데, 역시 당사자인 기관사들도 그 생각을 하게 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환경이 달라지면 근무 형태도 그에 맞춰서 바뀌는 게 당연하다는 말을 읽으면서 이미 그 업계(!)에서도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을 놓았다.


이 책의 배경은 부산이다. 시간이 한참 지나기는 했지만 나도 부산 여행 중에 부산 지하철을 여러 번 탔었는데, 책을 읽는 동안 혹시 2호선을 타지는 않았는지 여러 번 내 과거 여행 경로를 확인했었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부산에서 다시 지하철을, 그것도 2호선을 탄다면 괜히 반가운 기분이 들 것 같다. 그리고 이제 기관실 안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으니, 매일 아침 회사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서행이나 간격 조정, 혹은 퇴행 운전으로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예전보다는 짜증을 덜 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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