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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기억 1~2 - 전2권 (특별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신이라고 믿는 게 당신의 전부가 아닙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당신이 진정 누구인지 기억할 수 있나요?” (1권 p. 13)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기억]은 첫 문장부터 의미심장하다. 소설을 시작하자마자 전생체험을 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너무 궁금하고
흥미진진한 스토리 전개 때문에 소설속으로 확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기억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 현재에도, 앞으로도.” (1권 p. 60)
르네는 전생체험을 한 뒤로
갑자기 말려든 살인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 사건이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도록 사체를 유기하고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그렇게 행동한다고 한들 있었던 일이 없었던 것이 될 수는 없다.
르네는 나중에 자신의 첫번째
삶이었던 게브를 만나고 나서는 아틀란티스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그들의 삶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들이 섬에서 살아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라고 알려준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들은
물거품이 된다. ‘의지와 무관하게’라는 마술 이름처럼. 아틀란티스는 더 이상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곳이지만, 그렇다고
없었던 일은 아니다. 르네의 살인사건처럼 말이다. 그러나
결국 르네의 살인사건은 드러나고 르네는 용의자가 된다. 아틀란티스도 언젠가는 이렇게 드러나게 되는 진실인
것일까?
우리는 이미 정해진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의지와 노력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걸까?
그런 헛된 노력들조차 정해진 삶 속의 일부일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기억>은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이었다.
르네는 그동안 이런
사회가 존재할지 모른다는 직감에 가까운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의 눈앞에 지금 보이는
것은 하나의 발견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정신 깊숙이 묻혀 있다 떠오른 일종의 기억이다. 전생들이 쌓이며
지워져 버렸던 기억. 1백 번이 넘는 전생들은 인간의 절망과 두려움 속에서, 국가와 종교라는 미명하에 만들어지는 거짓말들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그에게 심어
주었다. (1권 p. 249)
게브가 살고 있는 곳이 우리의
마음 속 이상향과 비슷한 모습이라고 느끼는 것은 우리가 그런 삶을 이미 살아보았고, 그 경험에서 행복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집단 무의식이라는 것이 사실은 개개인의 수많은 전생의 기억들이 각자의 무의식
속에 남아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은 아닐까. 말도 안되는 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상상이 진짜일지도 모르잖아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게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의 매력인 것 같다. 나는 이런 점 때문에 그의 소설이 너무 좋다.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는
나만의 공상이 그의 소설을 읽으면 공감 받는 기분이 든다.
작가는 단순히 역사책에서
건조한 문장들로 만났던 사건들을 개인의 경험에서 보게 될 수 있는 재밌는 상상을 한 것 같다. 역사
교사였기 때문에 사실로서의 역사에 지식을 갖고, 내 전생의 기억으로 개인적인 경험을 하며 느끼는 개인적인
역사들을 체험한다. 아무 잘못도 없던 사람들이 느껴야 했던 고통과 슬픔들 말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건조하게
배웠던 역사들과 뉴스에서 매일같이 흘러 나오는 사건들도 다 누군가의 기쁘고 슬픈, 살아있는 삶이었구나
싶다. 육하원칙에 맞게 쓰여진 기사들은 듣는 사람의 감정도 건조하게 만들지만, 개인의 스토리가 드러나는 순간 그 사건에 공감이 되고 그때부터 같은 사건은 다르게 들리기 시작한다. 르네의 역사교사로서 갖고 있던 지식들은 그의 전생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있는 생생한 삶이 된다.
“태어나기 전에 우리 모두는 전생을 살았던 전임자로부터 일종의 유산을 물려받았어요. 어떤 재능을 갖고 싶은지, 누구를 만나고 싶은지에 대한 그들의 소망이
바로 그거죠. 그래서 삶을 거듭하는 동안 우리는 서로 돕는 하나의 가족이 돼요. <영혼의 가족>인 거죠.
이 영혼의 가족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서로의 재능을 발견하게 도와주고, 응원해 줘요. 그리고 각자의 삶의 마지막에 가서는 이런 질문에 맞닥뜨리게 돼요. <너는
너의 재능을 어떻게 썼느냐?>” (2권 p. 338)
이 소설 전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다. “너는 너의 재능을 어떻게 썼느냐?” 이미 주어진 것은 지금의 ‘나’의
의지는 아니었지만, 주어진 것으로 어떤 삶을 살아낼지는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것이 의지와 무관한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지한 자들의 행복이었지. 물론
욕망과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건 만족감을 주지만 그건 정신적 마비를 부르기도 하네. 자넨 소심하고
늘 불안과 두려움에 떨지만, 그래서 매사를 궁금해하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거야. 그게 바로 자네 진화의 원동력이 되는 거고. 위험을 마다 하지 않고
훌륭한 선택을 한 자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네. “(2권p. 344)
나의 일상이 흔들리고 위태로운
순간이 되어야 인간은 질문을 던진다.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이 긍정적인 것일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내 주변과 나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들어 주니까. 질문을
던지면 언젠가는 답을 찾게 된다. 그것으로 인간은 조금씩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이 소설은 전혀 지루하지
않고, 끝까지 긴장감 있게 스토리를 끌고 간다.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서 책을 손에서 놓기가 힘들었다. 재밌는 영화를 한 편 본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머릿속에서 이미지가 너무 잘 그려져서…
지난 삶의 죄를 씻는 의미에서
현생의 고난들이 주어진다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나의 바람대로 다음생이 결정된다는 말은 매우 긍정적으로
들린다. 결국 내 영혼은 다양한 삶의 경험들 속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는 것일까.
“약간의 신비를 남겨 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공연에서 본 마술의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 싱거워지잖아요. 얼마나
단순한 원리인지 깨닫게 되는 순간 실망하게 되죠. 게브를 생각해 봐요.
당신이 그에게 벌어진 일을 모두 말해 줬다면 게브는 어땠을까요? 당신은요?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당신 인생의 뒷 이야기를 확인하고 나면, 당신은
어떨까요?”
“나는 모든 것이 미리 쓰여 있다고 믿지 않아요. 자유 의지의 힘을 믿죠. 아직 113번
문 뒤에는 아무도 없어요. 그리고 어쩌면 이 순간에도 게브에게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남아
있을지도 몰라요. 그걸 누가 알겠어요?” (2권 p. 389)
결국 아틀란티스인의 미래는
바뀌지 않는 걸까. 우리는 정해진 미래를 사는 것인가.
전생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나는 어떤 재능과 환경을 원해서 태어난 걸까. 나의 이전 삶에서
내가 가장 원했던 삶은 어떤 것일까. 나는 지금 어떤 삶을 동경하는가.
그것이 내 다음생의 모습이 될까? 질문을 많이 남긴 책이었다.
우리는 정해진 이야기속의
삶을 살 뿐인가? 내가 원해서 시작한 삶이지만 그 끝은 어떨지, 어떤
좋은점과 나쁜점이 있을지, 어떤 후회가 남는 삶일지는 모른다. 그저
주어진 재능과 환경 속에서 ‘최선의 나’가 되어야 하는 걸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기억 1, 2>는 너무나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긴 길이에도
불구하고 금새 읽게 되었다. 그러나 읽은 시간에 비해 소설에 대한 여운은 길었다. 이 소설을 읽은 후로 나는 역사적 사건이나 뉴스들이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고, 내가 이 삶을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서도 조금 다른 시각에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책을 읽는 기쁨이란 이런 것 같다. 읽는 순간 재미를 주는 것도 당연히 좋지만, 읽기 전의 나와 읽고 난 후의 내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특히나 즐겁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조금 더 넓어지고, 마음의 공간과 생각의 공간도 점점 넓어지는
변화되어가는 내 모습 말이다. 이 책은 읽는 재미 뿐만 아니라 생각거리도 계속 던져주니 책을 읽는 동안과
그 후에도 기쁨을 마구마구 느낄 수 있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팬이라면
이 책을 당장 읽어 보길 권한다. 그 외에도 전생이라는 소재에 관심과 흥미가 있는 사람, 단순히 재미있는 소설을 찾는 사람에게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