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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 -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무너뜨린 정신의학사의 위대한 진실
수재나 캐헐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11월
평점 :
♣♣♣
* 발행일 : 2023년 11월 27일
* 페이지 수 : 500쪽
* 분야 : 인문 / 심리
* 체감 난이도 : 보통
* 특징
1. 정신의학사를 흥미롭게 설명
2. 균형 잡힌 시선에서 서술
* 추천대상
1. 정신의학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
2. 데이비드 로젠한의 연구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으로 지내기>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한 사람
♣♣♣
【 발표된 지 거의 50년이 지난 로젠한의 연구는 (정신의학자가 아니라 심리학자의 연구임에도) 정신의학 역사에서 가장
자주 편저에 실리고 인용되는 논문 가운데 하나다. 1973년 1월
저명한 저널 <사이언스>는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으로 지내기 On being sane in insane
places』라는 제목의 아홉 페이지 짜리 논문을 게재했다. 정신의학에는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을 구별하는 확실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 논문의 요지였다. “우리는 진단이 유용하거나 확실하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았지만 그럼에도 진단을 계속 사용해왔다. 이제는 우리가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을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처음으로
상세하고 경험적인 자료가 뒷받침하고 명망 있는 저널 <사이언스>가
승인한 로젠한의 극적인 결론은 그로부터 30년 뒤에 <신경정신질환
저널>에 실린 한 논문이 표현하듯 “정신의학의
심장에 칼을 꽂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p. 68)
이 책은 데이비드 로젠한의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으로 지내기>라는 제목의 연구를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는 인문학 서적이다. 실험 자원자들이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가짜 증상을 호소해 정신병원에 입원하며 진행된 다소 파격적인 이 연구는
정신의학사에서 너무도 큰 존재감을 자랑하지만 정작 이 연구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관련되었던 건지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고 한다. 로젠한은 ‘자신의
비판이 개개의 의사들과 병원이 아니라 전체 시스템을 겨냥한 것이므로 그들의 사생활을 지켜주고자 했다’(p.
82)며 끝까지 이 연구에 대해 함구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 수재나
캐헐런은 자신의 과거 경험과 이어져 있는 이 연구의 미스터리를 풀고자 했고 이 책에서 그 결과물을 들려준다.
로젠한은 자신을 포함한 8인의
자원자들을 정체를 숨긴 채 정신병원에 들어가도록 했다. 그들은 모두 의사에게 “쿵thud, 비었어empty, 공허해hollow” 라는 목소리가 들린다고 했고, 그로
인해 모두 조현병 및 조울증 진단을 받게 된다. 그들의 평균 입원 기간은 19일이었고, 그 기간동안 총 2100개의 알약(독한 항정신제)이
처방되었다고 한다. 인상적인 점은 그들이 진단을 받은 뒤부터 매우 정상적으로 행동했음에도, 의사들은 그들의 행동을 정신질환의 틀 속에서만 바라보며 그 누구도 가짜 환자임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오히려 함께 병동 생활을 했던 동료 환자들의 30퍼센트가
그들이 가짜임을 알아보았다고 한다.
멀쩡한 사람이 가짜 환자로 정신병원에 들어간 뒤 그곳의 실상에 대해
폭로한 사례는 과거에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로젠한의 실험이 가장 많이 언급되고 그 파급력도 상당히
컸던 이유는 그가 신망 높은 교수였고,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저널인
<사이언스>지에 그의 논문이 실렸으며, 그의
연구 또한 흠잡을 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정신의학계로부터 엄청난 경멸의 시선을 받게 된 그의 실험은 정신의학에
도전하겠다는 대단한 열망도 아니고, 정신 병동 안의 상황이 궁금해서도 아닌, 그저 그가 강의했던 한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정신질환자가 어떤 존재인지 정말로 알고
싶으면 직접 정신질환자가 되어 보라.”(p. 95) 라는 본인의 말에서부터 호기롭게
시작된 일이었다고 한다. 책에서는 로젠한의 실험 과정을 상세히 들려준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실험에 임했고, 그가 환자로써 어떤 대우를 받았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드라마를 보듯 생생히 전달되었다.
당시 그의 연구는 대중을 사로잡았고, ‘정신의학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에도 압도적인 영향을 미쳤다.’ (p.
189)고 한다. 과거 정신질환자를 치료하겠다는 목적으로 행해진 기괴한
연구들은 거의 공포영화 수준이었다. 멀쩡한 사람을 오히려 미치게 만드는 방법을 연구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런 시대에 로젠한의 연구는 더욱이나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의 연구로 인해 미국의 공공 정신병원들은 문을 닫기 시작했고, 정신질환자의
숫자도 급속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와서 보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저자가 기자 출신이어서 인지 글이 매끄럽게 잘 읽혔고(물론 번역도 잘 된 거겠지만) 전달력도 좋다고 느껴졌다. 장황하지 않고 깔끔하게, 그러면서도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어 읽는
내내 만족스러웠다. 또한 그의 연구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에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도 좋았다. 그의 연구가 제기하는 의문점은 정신의학에 꼭 필요한 물음이긴 했지만, 연구
과정과 논문의 신뢰성에 관해 생겨난 의문점은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치 잘 짜인 다큐멘터리 또는 흥미로운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정신의학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 너무도
유명한 데이비드 로젠한의 연구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으로 지내기>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한 사람, 흥미로운 내용의 인문 서적을 찾는 이에게 이 책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를 읽어 보길 강력 추천한다.
【 신경학자들은 뇌의 손상이 어떻게 신체 기능을 손상시키는지 알아내는 일을 한다. 정신의학자들은 뇌가 어떻게 감정, 의욕, 자아를 만들어내는지 이해하고자 한다. 비록 두 분야는 상당 부분
겹치지만 별도로 구분됨으로써 마음과 신체의 이원론을 오늘날에도 공고하게 보여주고 있다. 】 (p. 56)
【 정신과 의사들은 치료 가능성이 거의 없는 까다로운 환자들로 가득한 정신병원의 후미진 병동을 흔쾌히 떠나
분석가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고는 현대적 삶으로 인한 불안에 시달리는 이른바 건강염려증 환자를 상대로 돈벌이가 되는 대화 요법에 나섰다. 분석가들이 환자(주로 심하게 아프지 않은 부유한 백인 환자)를 골라서 받게 되면서 정작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방치되었다. 】 (p. 62)
【 정신과 의사들은 사회적 일탈의 범위를 아주 넓게 잡아 거의 모든 사람에게서 병을 확인했다. 인류학자 타냐 마리 루어만이 『두 마음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말하기도 했던 “진정한 정신적 건강이라는 것이 착각”임을
보여줌으로써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의 간극을 메운 것이다. 1962년 미드타운 맨해튼에서 도심지 주민
1600명을 대상으로 두 시간씩 인터뷰한, 이제는 악명 높은
연구에 따르면 불과 5퍼센트만이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갑자기 온 세상이 미친 사람들 천지였고, 정신과 의사들은 망토를 걸친 십자군 전사로 나섰다. 】 (p. 64)
【 병원 밖에서 로젠한은 감정이 메말랐다는 말을 한 번도 들을 적이 없었지만, 안에서는 근심스러운 표정이나 무기력한 말투가 “경미한 위축”으로 여겨진 것이다. 밖에서 글을 쓰는 성격이 안에서는 질환을 앓고
있다는 표식이 된다. 이것은 로젠한 본인이 이상심리학 수업에서 가르치기도 했던 낙인 이론의 생생한 예다. 】 (p. 146)
【 로젠한은 논문에 이렇게 썼다. “정신질환자라는 꼬리표는 자체적인
삶과 영향력을 갖는다. 환자가 조현병이라는 인식이 만들어지고 나면 그가 계속해서 조현병 환자일 것이라고
예상하게 된다. (···) 꼬리표는 퇴원하고 나서도 살아남아 다시 조현병 환자처럼 행동하리라는 근거 없는 예상을 하게 만든다.” 】 (p. 167)
【 로젠한의 논문은 과장되기도 했고 부정직한 면도 있지만 그럼에도 진실을 건드렸다. 의학에서 맥락이 행하는 역할, 다른 의학에 비해 정당성이 떨어진다고
무시되는 정신의학의 실태, 정신적으로 아픈 ‘타자’가 느끼는 이인증, 우리가 가진 진단 언어의 한계. 이런 메시지들은 가치가 있다. 메시지를 전하는 메신저는 안타깝게도
아니지만 말이다. 】 (p.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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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