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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평점 :
지난번 저자가 오랜만에 예능에 나온 것을 보았다. 이전의 차가워 보이는
모습과는 좀 달라진 것 같았다. 독신주의 인줄 알았던 저자가 결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며
좀 놀랬었다. 지난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어떤 것이 저자의 생각을 바꾸게 만든걸까 궁금했다.
이 책은 그가 오래전 필요했지만 들을 수 없었던 말들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아파하는 청년들을 위해 쏟아내 주었다. 저자가 유명인이고 그의 모습을 많이 보아와서 그런지 글을 읽고 있지만 글 속에서 왠지 목소리가 들리는 기분이었다.
책 속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1.
인간이라면 노력하지 않아도 당연히 작동한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 삼키고
뱉고 싸고 자는 모든 것들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거나 아예 먹통이 되었다. 나는 내가 더 이상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처럼 생겼지만 정확히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p. 30~31)
항암의 고통스러움을 책 속에서 간접 경험을 하였다. 아니 경험이 아니라
그냥 들었다. 누군가의 고통을 말로 아무리 자세히 설명한들 그걸 진짜 알고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손가락에 상처가 나서야 내 손가락이 여기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손가락 하나가 나의 많은 일을 함께 해주고 있었구나 느끼게 된다. 아프기
전에는 당연한 것이 아프고 나서야 고맙게 느껴진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고마움을 잊어버리게
된다.
2.
오늘 밤도 똑같이 엄숙하고 비장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천장에 맞서 분투할 청년들에게 말하고 싶다. 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것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벌어질 일이
벌어진 거다. 그러니까 괜찮다. 찾을 수 없는 원인을 찾아가며
무언가를 탓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에 수습하고, 감당하고, 다음
일을 하자. 그러면 다음에 불행과 마주쳤을 때 조금은 더 수월하게 수습하고, 감당하고, 다음 일을 할 수 있다.
내일은 차를 수리해야겠다. (p. 57)
마음이 아프고,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권해주고픈 책이다. 혼자 참고, 괴로워만 하고
있지 말고, 아픈 일을 겪은 사람의 진짜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았으면 한다.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이 책을 통해 알았으면 좋겠다.
3.
나는 여태 내 삶이 농담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딱히 성공적이지
못한 농담 말이다. 백 명의 관객 가운데 두 명밖에 웃기지 못한 실패한 농담. 그게 내가 생각하는 내 삶이었다. 그런데 일곱 가지 장면을 꼽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꽤 입체적이다. 이야기 속 인물이라고 생각했을 때 적어도 애정을 가지게 되는 종류의
캐릭터 말이다. 일곱 가지 장면을 꼽는 일은 내 삶을 이야기로, 나를
캐릭터로 만든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지나가던 행인이 아니다. (p. 73~74)
내 인생의 섬네일 이미지 7장을 꼽는다면 어떤 순간들일까. 나에게 의미있는 순간들은 어떤 때였지? 이것을 떠올려보면 별볼일
없다 여겨진 내 삶도 내가 주인공인 나만의 드라마가 된다. 나의 섬네일 이미지를 고르며 생각해보니 내
인생은 드라마적 요소가 섞여 있는 시트콤같다. 저자의 발상이 재미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아이디어이다. 앞으로 나에게 일어날 사건들을 만나면 드라마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더 추가되었구나 생각이 들 것 같다.
4.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등장하는 영원회귀는 ‘동일한 것의 영원한 반복’이다. 우리가
죽으면 똑 같은 인생이 다시 반복된다는 이야기다. 시간 여행이 아니다.
평행 우주도 아니다. 완전히 토시 하나 바뀌지 않은 그대로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 구절을 여러 번 읽고 이해한 뒤 토할 뻔했다. 우리가 과거의
인생을 반복하고 있고 그것을 다시 영원히 반복한다는 아이디어는 끔찍한 생각이다. 니체는 정확히 바로
그 공포에 맞서라고 이야기한다. 모든 것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운명론적 공포를 극복하고, 반복되더라도 좋을 만큼 모든 순간에 주체적으로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상관없다고, 이토록 끔찍한 삶이라도 내 것이라고 외치라는 것이다. 나아가 그런 삶을 사랑하라 주문하는 것이다. 니체의 영원회귀는 바로
그 순간 네 삶의 고통과 즐거움 모두를 주인의 자세로 껴안고 긍정하라는 아모르파티와 결합한다.
(중략) 삶의 가장 기쁜 순간을 반복하기 위해서라면 가장 추악한 순간마저 얼마든지
되풀이하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니체는 차라투스트라가 되어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다. “그것이 삶이었던가?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p. 172~173)
5.
사람들은 아프기 전과 후의 내가 다르다고 말한다. 나는 뭐가
달라졌다는 것인지 조금도 모르겠다. 하지만 글로 써서 말하고 싶은 주제가 달라진 것만큼은 사실이다. 나는 언제 재발할지 모르고, 재발하면 치료받을 생각이 전혀 없다. 항암은 한 번으로 족하다. 그래서 아직 쓸 수 있을 때 옳은 이야기를
하기보다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을 남기고 싶다.
회복한 이후에 쓴 모든 글이 그랬다.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하지
않기를 바라고 불행하거나 외롭지 않기를 바란다. (p. 217)
이 책은 이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글들이었다.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보였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작가의 이 마음이 전해졌으면 한다.
어떤 도덕적 기준이나 흔히 하는 위로의 말들이 아닌 진짜 작가의 경험을 통해 느끼고 깨달았던인생의 쓴맛에 대해
솔직한 조언을 들려준다. 작가의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짠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6.
내게는 그것이 상처는 상처고 인생은 인생이라는 선언이었다. 당신에게
그건 다른 종류의 선언일 수 있고 어떤 표정일 수 있으며 특정한 여가 활동일 수도 있다. 아니면 말
그대로 달아오른 마음이 식을 때까지 시간을 보내며 버티는 방식일 수도 있다. 자신에게만 통하는 객관화의
방법이, 사건과 나를 분리시켜주는 방아쇠가 반드시 있다. 여러분은
그걸 찾아야 한다.
(중략) 하지만 지금과
같은 태도로는 어렵다. 그건 삶에 관한 해석이라기보다 스스로에게 거는 저주에 가깝다.
과거는 변수일 뿐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저주 같은 것이 아니다. 앞으로의
삶을 결정짓는 것도 아니다. 자기 객관화를 통해 불행을 다스린다면, 그리고
그걸 가능한 오래 유지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이 얼마든지 불행을 동기로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한다. (p.
261)
상처가 아프다고, 그 상처에만 집중하고 머물러 있는 것은 사실 자신에게
스스로 저주를 거는 것
과 다름없다. 상처가 영원히 지속되고 그것이 나를 망칠 것이라고 계속 되뇌는 것과
같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거기에서 상처를 받았더라도
우리는 ‘나’의 의지로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불행과 상처, 아픔도 내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고, 세상에 등 떠밀려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며 산다는 것이 아닌, ‘나’의 의지에 따라 ‘나’의
삶을 살아야 한다. 저자가 책에서 인용했던 니체의 “그것이
삶이었던가?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처럼 말이다.
저자는 자신이 추락했다고 믿는 이들에게 ‘그럼에도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대답해주는 자신이 역겹다고 표현했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말은 조금 삐죽삐죽해도 그의 진심이 무엇인지 전해진다. 힘들어서 지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하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진다.
힘든 일을 극복해낸 저자에게 현재 자신들의 아픔을 호소하고 위로 받길 원하는 청년들을 보면서 그들을 위해 이런
책을 출간한게 아닌가 싶다. 우리는 타인의 아픔에 완전히 공감해 줄 수도 없고, 완벽한 해결책을 줄 수도 없고, 딱 맞는 위로의 말을 해 줄 수도
없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지난 삶을 살아오면서 직접 부딪히며 얻은 자신의 깨달음과, 불행속을 지나오면서 얻은 것들과 변화된 생각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흔히
보이는 격려와 위로의 말들은 아니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아파하는 이들을 안타까워하고 그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픈 저자의 마음이 전해진다. 흔한 위로의 책들에서 느낄 수 있는 마음이 따뜻함으로 가득
차오르는 그런 느낌은 없다. 그러나 그의 진실된 마음이 어떤 정형화된 위로의 이야기들보다 더 큰 위로를
준다.
저자가 지난 시간 동안 힘겨운 삶을 살았던 것이 가엾게 느껴졌다. 혼자라는
생각에 몸에 가시를 돋아낸채로 주변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애쓴 모습이 그려졌다. 그러면서 더 자신을
혼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저자의 이전 책은 읽어본 적이 없어서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크게 변화한지는 모르겠다. 그저 글을 읽는 동안 힘든 시간을 겪고 버텨온 저자의 남은 날들이 이전보다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살고 싶다는 농담>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몸이나 마음의 병으로 힘들고 지쳐 있는 사람들이 이 글을
꼭 읽어 보았으면 한다. 삶의 고통이 자신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혼자인 것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으면 좋겠다. 이 책으로 그들이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이 글은 출판사(웅진지식하우스)에서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