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 (양장) 소설Y
천선란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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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승택이야, 승택. 내 이름. 이름 말해 주려고 왔어.”

내가 네 이름 알아서······.”

그래야 부르기 편하잖아. 너 나를 헛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

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네가 듣고 있는 이상한 소리, 그거 식물이 대화하는 소리야. 그게 들리는 건 너도 식물이라서야. 좀 많이 진화하긴 했지만.” (p. 29)


희귀 식물을 기르고 판매하는 화원 브로멜리아드. 이곳에서 이모와 함께 살고 있는 고등학생 소녀나인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평범한 아이였던 나인은 언제부턴가 이상한 소리를 듣기 시작하고, 헛것을 보다, 급기야 손톱 사이에서 새싹이 돋아나게 된다. 믿기 어려운 일들이라 속으로 혼자 고민에 빠져 있던 그녀는 어느 날 밤 화원에서 마주친 소년에게서 자신이 식물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까지 듣게 된다. 부모 없이 이모와 살고 있고, 아파도 병원 한번 가본 적 없던 나인은 정말 진화된 식물일까.


학교 가는 길에 버스 정류장에 붙어 있는 전단지를 보았다. 여기에 붙여 봤자 아무도 안 본다고 했는데 아저씨는 기어코 붙였고, 나인은 그런 생각을 했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세상 바깥에라도 그 이름을 붙여 두고 싶은 것이라고. 파도에 휩쓸릴지라도 모래에 이름을 적어 두는 것이라고. (p. 158)


나인의 정체성에 관련된 문제와 더불어 소설은 2년 전 실종된 고등학생 박원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실종된 날 밤 친구의 전화를 받고 나갔던 원우는 그날 이후로 자취를 감추었고, 소년의 아버지만이 원우를 찾기 위해 애타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나인은 어느 날 사라진 원우와 관련된 큰 비밀을 알게 되는데


주인공 나인이 실종된 고등학생에 얽힌 비밀을 캐어내는 과정을 매우 흥미진진하게 풀어내기도 하고, 그녀가 남다른 출생의 비밀을 품은 존재이기까지 해서 더욱 흥미롭게 읽히는 작품이었다. 또한 주인공이 십대이고 그 나이 또래의 고민과 이야기(부모의 이혼, 집단 따돌림, 교우관계 등)가 꽤나 나오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읽기에도 좋을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천선란 작가를 SF 전문 소설가로 알고 있어서 이 작품 역시 SF인줄 알고 펼쳤는데, 일부 설정만 SF에 포함될 수 있을까, 내용은 전혀 SF스럽지 않아서 기대했던 만큼의 만족감은 얻지 못했다. (기대가 컸던 것이 문제인듯하다. 내용이 재미없다는 말은 아님.) 그러나 그런 이유 때문에 평소 SF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재미있게 읽힐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이 책은 10~20대의 젊은 독자들에게 더 와닿을 만한 내용이었다. 가볍게 읽기 좋은 재미있는 스토리의 소설을 찾고 있는 이에게도 권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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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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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섬이 아니다. 한 권의 책은 하나의 세상이다.”(p.19) 라는 문장을 간판에 내걸어 놓은 앨리스 섬의 유일한 서점인 아일랜드 서점’. 이곳의 주인 A.J. 피크리는 자기만의 독서 취향이 확고한 괴짜로,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잃은 후 혼자 서점을 꾸려가고 있었다. 까칠한 성격 탓에 섬마을 사람들과도 별다른 교류 없이 지냈던 에이제이.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노후를 책임져줄 희귀본 고서 <태멀레인>을 도둑맞게 되고설상가상으로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쪽지와 함께 25개월 아기 마야까지 에이제이의 서점에 맡겨지는데


소설은 유머러스한 분위기 때문에 매우 재미있게 읽혔다. 책에 빠져 사는 너드한 주인공 캐릭터도 매력적이었고, 소설의 스토리도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어 매우 만족스러웠다. 이 소설에는 정말 다양한 책들이 언급되는데, 그 책들은 실제로도 존재하는 것들이며, 내가 읽어본 책보다 읽어보지 못한 책들이 훨씬 많았다. 소설 속 인물들의 대화나 주인공 에이제이의 짧은 북리뷰에서 흥미가 생기는 책들도 꽤 있어 메모해두고 언젠가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적당한 유머와 러브 스토리, 작은 갈등과 반전이 자잘하게 골고루 버무려져 있어서 편안하게 잘 읽혔던 작품이었다. 서점 이야기, 책 이야기가 가득한 소설을 찾는 이에게 <섬에 있는 서점>을 추천하고 싶다. 서점이라는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좋아할 수밖에 없을듯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좋은, 따뜻하면서도 재미있는 소설을 찾고 있는 이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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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브레인 - 코로나19는 우리 뇌와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정수근 지음 / 부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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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연구자가 코로나19 팬데믹을 두고 인류를 대상으로 한 사상 최대의 사회적 고립 실험이라고 표현한다. 전 세계인이 강제로 참여하게 된 이 실험의 결과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팬데믹이 종식된 이후에나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그 결과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을 통해 최대의 실험이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p. 21)



그동안 뉴스에선 코로나19에 대한 여러 연구 소식들을 전해왔다. 코로나로 인한 후각 상실은 뇌 손상 때문이라는 말부터 시작해, 팬데믹이 아기들의 인지 기능을 떨어뜨린다는 이야기, 코로나19 완치자들이 겪는 다양한 후유증에 대한 연구 등. 이 책은 이런 연구들 중에서 심리학, 뇌과학, 신경 과학 분야의 자료를 모아 소개하고 있다.


우리는 팬데믹을 겪으면서 오랜 기간 모임이 제한되었고 바깥 활동도 자유롭지 못했다.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사회적 고립을 겪을 때 뇌에서는 신체적 고통을 겪을 때와 비슷한 반응이 일어난다고 한다. 또한 극지 탐험가나 우주 비행사들처럼 한정된 공간에서 외부와 고립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해마의 크기와 뇌유래신경영양인자(BDNF, 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가 줄어들어 인지 기능에도 영향을 준다고 한다. 우리가 그간 왜 그리 거리 두기를 힘들어했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었다.


요즘마기꾼이란 말도 자주 들리는데, 이것은 마스크와 사기꾼이 합쳐진 말로, 마스크를 벗었을 때 기대와 다른 외모를 보이는 사람들을 말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맨얼굴의 매력도가 낮은 사람일수록 마스크를 쓴 얼굴이 더 매력적’(p.114) 이었다고 하는데, 매력도가 낮은 맨얼굴 소유자가 마스크를 쓰면 약 40% 높은 평가를 받은 반면, 맨얼굴의 매력도가 높은 사람들은 점수가 6% 정도밖에 오르지 않았다’(p.114) 고 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을 볼 때면 우리의 뇌는 가려진 부분을 예측하게 되는데, 이때 매력도가 높은 평균적인 얼굴을 추정하여 전체 얼굴을 평가’(p. 117) 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앞서 소개한 이야기 외에도 책에는 화상 회의나 줌 미팅이 더 피곤하게 느껴지는 이유, 팬데믹을 잘 견디는 사람들의 특징, 방역수칙을 지키는 것과 인지능력과의 관계 등 흥미로운 내용이 꽤나 실려 있다. 출처가 불분명한 가짜 뉴스가 아닌, 코로나19에 관한 최신의 연구들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 <팬데믹 브레인>을 읽어 보길 추천한다. 팬데믹 상황 속에서 생겨난 다양한 의문점들에 대한 답을 듣고 싶은 이에게도 권해보고 싶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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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그리면 꽃 - 식물 컬러링북
전유리 지음 / 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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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태교를 위해 명화 컬러링 북을 구매해 색칠을 해본 적이 있었다. 그저 눈으로만 감상할 때와는 달리, 직접 색칠하면서 만나는 명화들은 훨씬 자세히 관찰하게 되어 각각의 작품이 가진 매력을 더 크게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화가들이 얼마나 대단한 분들인지 명화 컬러링을 하면서 제대로 느꼈달까?) 그래서 이번에 출간된 꽃 컬러링 북 <마음을 그리면 꽃> 역시 꽃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꽃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되어줄 것 같다는 생각에 매우 기대되는 마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저자는 이 책을 엄마를 생각하며 그렸다고 한다. 좋아하는 꽃을 떠올리며 행복해하던 엄마에게 꽃을 선물하고 싶어 이 책을 썼다는 그녀는 참 예쁜 마음을 가진 것 같다. 이 책 앞에서 행복해할 모녀의 모습이 떠올라 내 마음도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저자의 이야기처럼 이 책은 고마웠던 누군가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생화는 예쁜 색과 향기를 가졌지만 며칠만 지나도 시들기 시작해 아쉬웠는데, 이 책 속 꽃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자주 펼쳐 색칠할수록 화사하게 피어나니 말이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색깔들로 가득 채워지니 더욱 기쁠 수밖에 없다.



나의 경우 유튜브를 통해 자연의 소리(시냇물 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컬러링을 했는데, 정말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면서 좋은 것들로 채워지는 느낌이 들어 너무나 좋았다. 이 책을 구매한 사람이라면 색칠을 할 때 자연의 소리와 함께 해보길 강력 추천한다.



꽃을 선물할 일이 많은 5, 이번에는 매년 선물하던 꽃 말고 새롭게 꽃 컬러링 북을 선물해 보면 어떨까. 알록달록 예쁜 꽃들을 색칠하며 다채로운 봄날을 보내고픈 사람, 봄날에 하기 좋은 취미를 찾고 있는 사람, 태교를 위한 컬러링 북을 찾는 사람에게도 <마음을 그리면 꽃>을 추천하고 싶다.



이 글은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만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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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크 머리를 한 여자
스티븐 그레이엄 존스 지음, 이지민 옮김 / 혜움이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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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인디언 자치 지구에서 도망쳐 나와 노스다코타의 석유 시추 현장에서 일하는 리키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주차장에서 소변을 보던 그의 앞에 나타난 엘크 한 마리. 그것은 갑자기 주차된 차들을 향해 돌진하며 차들을 망가뜨리기 시작했고, 이내 그곳에 서 있던 리키를 향해서도 달려들었다. 엘크와 몸싸움을 벌이다 자동차를 망가뜨린 범인으로 몰린 리키는 그날 그곳에서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리키의 짧은 비극에 이어 소설은 그의 오랜 친구인 루이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집의 전등을 수리하기 위해 사다리에 올라갔던 루이스는 거실 바닥에서 엘크의 환영을 보게 되고, 그때부터 이상한 일에 휘말리게 된다. 처음에는 그저 마음에 쌓인 죄책감 때문에 헛것을 보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그것이 실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믿음이 강해져 갔고.. 결국 끔찍한 장면들이 나열되며 루이스의 이야기는 멈춘다. 리키와 루이스의 이야기에 이어 또다시 소설은 캐시디게이브의 잔인한 비극을 들려준다.


왜 이들은 모두 불행에 빠지는 걸까? 사실이 넷은 오랜 친구 사이로 10년 전 함께 엘크를 사냥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들 비극의 중심에도 엘크가 있었다. 과연 오래전 그날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이고, 이 비극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걸까.


<엘크 머리를 한 여자>는 다소 환상적인 분위기가 섞여 있는 소설이었다. 엘크 머리의 여자라는 이미지부터 그런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작품은 초반 몰입도가 큰 소설은 아니었고, 개인적인 취향과도 맞지 않아서인지 문장을 향한 눈길이 자꾸 미끄러졌다. 그러나 계속 읽다 보니 어느새 소설 속 장면에 내 발이 푹 빠져 있음을 발견했고, 소설을 읽지 않고 있는 순간에도 자꾸 소설 속 장면들이 떠올라 마음이 어지럽기도 했다.


이 소설의 작가 스티븐 그레이엄 존스는 북아메리카 원주민 블랙피트족 출신으로, 북아메리카 원주민 이야기와 호러 소설을 주로 써왔다’(저자 소개란에서 발췌)고 한다. 이 작품 역시 인디언이 주인공으로 나오기 때문에 그들의 삶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비 오는 날 이 소설을 읽어서 그런지 마음이 더욱 어두워졌다(날씨와 소설이 매우 잘 어울리기는 했음). 작품성 있는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남는 여운과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많은 이의 찬사를 받았다지만 개인적으로 그렇게까지 와닿는 작품이 아니라 조금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스티븐 그레이엄 존스의 팬이라면, 환상적인 이미지가 섞인 호러 소설을 좋아한다면 한번 읽어보아도 괜찮을 것 같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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