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에세이&
백수린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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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고백하자면 나는 아주 오랫동안, 슈퍼에서 파는 플라스틱 통 안의 꿀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아름다운 병에 든 , 사실은 그렇게까지 맛이 크게 차이 나지도 않는, 아주 미세한 감각의 차이로만 구별될 뿐인 그런 꿀에 매혹되는 인간일까 하는 생각에 고통스러울 때가 많았다. 어째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죄다 하찮고 세상의 눈으로 보면 쓸모없는 것들뿐인 걸까. 하지만 이제 나는 쓸모없는 것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촘촘한 결로 세분되는 행복의 감각들을 기억하며 살고 싶다. 결국은 그런 것들이 우리를 살게 할 것이므로. (p. 59)


내 마음은 언제나, 사람들이 여러가지 면과 선으로 이루어진 존재들이고 매일매일 흔들린다는 걸 아는 사람들 쪽으로 흐른다. 나는 우리가 어딘가로 향해 나아갈 때, 우리의 궤적은 일정한 보폭으로 이루어진 단호한 행진의 걸음이 아니라 앞으로 갔다 멈추고 심지어 때로는 뒤로 가기도 하는 춤의 스텝을 닮아 있을 수밖에 없다고 믿고 있다.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만 아주 천천히 나아간다고. (p. 72)


페이지가 줄어드는 걸 아까워하며 넘기는 새 책의 낱장처럼, 날마다 달라지는 창밖의 풍경을 아껴 읽는다. 해의 각도와 그림자의 색깔이 미묘하게 달라지고 숲의 초록빛이 조금씩 번져나가는 걸 호사스럽게 누리는 날들. (p. 78)


봉봉은 차갑고 이기적이기만 하다고 생각한 내 안에도 사랑이 이렇게나 많이 숨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려준 존재다. 봉봉이 먹고 싶어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목숨을 잃을까봐 먹지 못하게 막거나 고통스러워 하는데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해야만 할 때, 자유의지를 주었다면서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게 만들고 누구보다 사랑한다면서 때때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시련을 주는 신의 뜻을 나는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p. 102)


상대의 슬픔에 공감하는 일에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는 기쁨과 달리 슬픔은 개별적이고 섬세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슬픔을 겪어낼 수밖에 없는데, 그건 슬픔에 잠긴 사람의 마음이란 살짝 스치기만 해도 쉽게 긁히는 얇은 동판을 닮아서다. 슬픔 앞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겪고 있는 감정과 타인의 감정이 끝내 포개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없이 예민해지고, 슬픔이 단 한사람씩만 통과할 수 있는 좁고 긴 터널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슬픔에서 빠져나온 이후엔 그 사실을 잊은 채 자신이 겪은 슬픔의 경험을 참조하여 타인의 슬픔을 재단하고, 슬픔 간의 경중을 따지며,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와 크기로 슬픔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고 쉽게 말한다. (p. 132)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는 행복이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행복은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깊은 밤 찾아오는 도둑눈처럼 아름답게 반짝였다 사라지는 찰나적인 감각이란 걸 아는 나이가 되어 있었으니까. 스무살이었던 나의 빈곤한 상상 속 마흔과는 다르지만 나의 40대가 즐겁고 신나는 모험으로 가득하리란 걸 나는 예감할 수 있었다. 어린 날들에 소망했듯 나 자신을 날마다 사랑하고 있진 않지만, 나쁘지만은 않다. 앞으로 살아가며 채울 새하얀 페이지들에는 내 바깥의 더 많은 존재들에 대한 사랑을 적어나갈 테다. (p. 225)


저자의 문체가 좋았다. 조곤조곤 잔잔하고 편안하게 들리는 그 느낌이 좋았다. 적당히 쓸쓸함이 베여 있는 따뜻함, 편안함이랄까. 그녀의 글에선 그런 느낌이 묻어났는데 그것이 매력 있게 다가왔다. 작가는 예민하고 섬세하게 주변을 바라보고 느끼며 그것을 글로 옮겨 적었다. 빈 화분에 저절로 자라고 있는 달맞이꽃, 곡물을 담아 놓은 재활용 유리병 등 일상에 흔히 보이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사물들도 작가의 시선을 거치면 감성적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니 따뜻한 오후의 햇살을 내리쬐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적당하게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오래된 골목길 어딘가를 산책하는 기분도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작가와 그녀의 반려견봉봉에 대한 이야기였다. 특히 그녀의 다정함은 강아지 봉봉에게서 온 것이라는 이야기와 강아지가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모습에 감사함을 느끼는 부분에서 깊은 공감을 느꼈다. 강아지를 키우며 그에게서 사랑을 배웠다고 말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아이를 키우며 더 다정해지고 진짜 사랑을 배운 내 모습과 겹쳐 보였다. 다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지극히 자기애만이 충만하던 나는 나의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진짜 사랑을 배워갔다. 그 덕분에 사람들 하나하나가 모두 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작고 여린 것들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아이가 나를 신뢰하고 그에게 중요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그런 경험이 주어진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졌던 나는 사랑을 배운 대상은 다르지만 내 마음과 너무도 닮은 글을 보며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지금의 계절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책이라 생각했기에, 가을날과 잘 어울리는 에세이집을 찾는 이에게 백수린 작가의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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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달력 - 영감 부자를 만드는 하루 한 문장
정철 지음 / 블랙피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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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 이 책의 제목만을 들었을 때는 할아버지(영감) 컨셉의 달력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내 표지를 보고 하루에 한 페이지씩 카피라이터가 쓴 글을 읽으며 영감을 얻는 책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매일의 날짜에 맞춘 짤막한 글의 모음집이다. 짧은 분량의 글이지만 읽고 있으면 아차 싶기도 하고, 머릿속에 느낌표가 번쩍 떠오르기도 한다. 책 속 글들을 만나고 나면 머릿속에 박혀 있던 고정관념에 금이 가기도 했고, 가라앉아있던 마음속 말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했고, 갑자기 누군가가 막 그리워지기도 했다. 익숙한 형태로 다가와 날카롭게 찌르고 가는 말. 잠들어 있던 마음을 흔들어 깨우고 가는 말. 이것이 바로 카피였다.





무료한 일상에 지쳐 있는 사람, 신선한 자극이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한 사람이 바로 이 책 <영감달력>이 필요한 이들이다. 이 한 권과 함께 매일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 보길 바란다. 즐겁고 활기찬 한 해를 보내라는 의미를 담아 연말, 연초 선물로 주어도 좋을 것 같다. 카피의 매력을 느껴 보고픈 사람, 또는 카피라이터 꿈나무들에게도 권해보고 싶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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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똥보다는 불씨가 좋아! 맑은아이 6
이이나 지음, 변우재 그림 / 맑은물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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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와 그림의 분위기가 딱 이 계절에 어울리는 그림책이었다. 쌀쌀한 가을밤 동물 친구들은 모여서 모닥불의 따뜻함을 나누고 있었다. 불속에다가 고구마와 밤을 구우며 한밤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동물들의 모습은 편안해 보였다. 왠지 어디선가 타닥타닥기분 좋은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기도 했다. 편안함 속에서 졸음이 서서히 밀려오는 시간. 그런데 그때 고양이는 모닥불 옆에서 춤을 추다가 그만 수염을 그을리고 만다. 게다가 갑자기 바람이 세지면서 불길도 커지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살짝 잠이 들었던 친구들은 모두 놀라 깨어나게 된다. 동물 친구들은 거세진 불을 끄고 편안하고 안전한 밤을 마저 보낼 수 있게 될까.


이 책은 에 대해 알려주는 그림책이었다. 추운 날 우리를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고구마와 밤도 맛있게 구워주는 불은 잘만 사용하면 우리에게 이롭지만, 고양이의 수염을 그을리는 것처럼 우리를 다치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이 책은 거센 바람으로 불길이 커졌을 때 동물들이 불을 끄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아이들이 자연스레 불을 끄는 방법과 불을 다루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만든다. 요즘은 캠핑장에서 아이들이 불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아이가 이 책을 먼저 읽고 불을 만난다면 보다 안전하게 불을 다루고 감상할 수 있어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군밤과 군고구마를 호호 불어가며 먹고 싶어졌다. 밤을 싫어하던 아이도 그 맛이 궁금한지 먹어보고 싶다고 한다. 궁금해하는 아이를 위해 다음번에 모닥불과 군밤을 만날 기회를 한번 만들어봐야겠다. 따뜻한 분위기와 유익한 내용의 그림책 <불똥보다 불씨가 좋아>는 가을에 읽기 좋은 그림책을 찾는 이에게, 아이에게 에 대해 알려주고픈 이에게, 아이와 캠핑장에서 불멍을 계획 중인 이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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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읽는 시간 - 도슨트 정우철과 거니는 한국의 미술관 7선
정우철 지음 / 쌤앤파커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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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읽는 시간>은 한국의 미술관을 소개하고, 그곳의 화가와 작품에 대해서 설명하는 책이다. 책에서는 환기미술관, 양주시립 장욱진 미술관, 제주도립 김창열 미술관, 이중섭 미술관, 양구군립 박수근 미술관, 수원시립미술관 나혜석 기념홀, 이응노 미술관 이렇게 7곳을 소개하고 있다. 요즘 미술 입문서용 책들이 꽤나 많이 보이는데, 대부분이 서양화와 서양화가에 대한 책들이라 아쉬웠던 차에 한국 화가와 한국 미술 작품에 대해 다루는 책을 만나니 매우 반가웠다.


이 책은 각 미술관 별로 따로따로 설명하기 때문에 순서대로 읽지 않고 궁금한 미술관부터 찾아 읽어도 상관이 없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전국으로 미술관 투어를 하며 책 속 내용을 되새겨도 좋을 것 같고, 미술관에 직접 가서 도슨트의 설명을 듣듯이 이 책을 읽으며 관람해도 좋을 것 같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각 미술관의 주소, 전화번호, 휴관일, 도슨트 정보 등을 실어 두었고,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미술관에 처음 가는 사람들을 위한 소소한 꿀팁들(조용하게 도슨트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나 미술관 에티켓 등)도 실려 있으니 미술관에 직접 가보려는 이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누구에게나 쉽게, 그리고 가볍게 읽히는 책을 쓰고 싶었다는 저자의 바람대로 이 책은 미술에 대해 잘 모르는 이도 수월하게 읽을 만큼 쉽게 쓰여 있어 좋았다. 저자가 미술 작품과 화가의 삶을 잘 엮어서 설명하기 때문에 전혀 지루하지 않게 술술 책장이 넘어갔고,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마지막장까지 단숨에 읽어버렸다.


이 책은 일반 책과는 달리 쫙(?) 펼쳐지도록 만들어져 미술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만족스러웠다. 그동안 만난 책들은 큰 사이즈의 작품을 실을 때 작품이 책장이 접히는 부분에 가려져 제대로 감상하기가 어려웠는데, 이 책은 그 점을 세심히 헤아렸다는 점이 좋았다.


이 책을 읽고 있으니 저자가 왜미술관의 피리 부는 남자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한국의 대표 화가들과 그들을 위해 세워진 미술관에 관심이 있다면, 한국 현대 미술 작품과 화가들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주는 책을 찾고 있다면 이 책 <미술관 읽는 시간>을 읽어 보길 추천한다.



이 글은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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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괴담하우스
사와무라 이치 지음, 남소현 옮김 / 북플라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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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묘한 분위기를 가진 괴담 7편을 들려준다. 처음에는 하나하나 독립적인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이 단편들은 공통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있어 하나의 줄기로 엮여 있었다. 검은색 숏컷에 검은 옷을 입은 하얀 피부의 여자.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녀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방법으로 사람의 마음을 지옥으로 떨어뜨린다는 점에선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잠깐의 대화와 작은 행동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은 빠져나올 수 없는 구덩이에 밀어 넣어졌고, 이것은 얼마 전 읽었던 저자의 또 다른 작품 <예언의 섬>에서 보여준 저주의 말이 가진 힘을 다시 떠오르게 만들기도 했다. 소설 속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괴담 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인간의 욕심, 이기심, 어리석음이란 생각이 든다. 사와무라 이치가 들려주는 으스스한 이야기들은 자꾸만 착하게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들게 만들었다.


바퀴벌레를 무서워하는 사람한테 등에 바퀴벌레가 붙어 있어!’라고 하면 미칠 듯이 무서워하죠. 실제로 바퀴벌레가 등에 붙어 있지 않더라도요. 다른 감정들도 그렇지만 특히 공포는 사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그래서 가상의 이야기나 캐릭터가 공포심을 유발할 수 있는 거죠. 호러도 그렇고 괴담도 그렇고.” (p. 207)


그래, 공포란 안 좋은 예상을 할 때 생겨나는 감정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내일은 가난해질지도 모른다는 예상. 케이코는 조만간 이 남자가 나를 덮칠지도 모른다는 예상.

아까 케이코가 예로 든 바퀴벌레를 무서워하는 사람도 바퀴벌레가 옷깃을 타고 옷 안으로 들어올지도 모른다’, ‘눈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같은 생각을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바퀴벌레를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귀신의 집이나 호러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저 골목을 꺾는 순간 무언가와 맞닥뜨릴지도 모른다, 등장인물 뒤쪽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훌륭한 연출이란 결국 관객들로 하여금 그런 예상이나 예감을 하게 만드는 기술이 뛰어나다는 거죠.” (p. 209)


<예언의 섬>보다는 이 작품이 더 무섭고 재미있게 읽혔다. 이 작품은 사람들이 어떤 것에 공포를 느끼는지, 나는 어떤 것을 무섭게 생각하는지 생각해 보게 만들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간다면, 부끄러울 것 없는 과거를 가졌다면 살아가면서 그리 무서움을 느낄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일러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잔인한 장면은 없지만 묘하게 사람의 심리를 이용해 무서움을 느끼도록 만드는 점이 이 작품의 특징이었다. <기묘한 괴담 하우스>는 기묘한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재미있게 읽을 만한 책이다. 특히 적당하게(?) 무서운 호러/미스터리 소설을 찾는 이라면 읽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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